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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 통렬한 반성과 혁신 필요하다

보충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와 지친 목을 풀기 위해 차를 마시러 가던 중 한 선생님의 책상 위에 놓인 명함이 한눈에 들어왔다. 뒷면의 가운데에 ‘청렴한 세상’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얼마나 청렴하게 살려고 마음먹었으면 명함에 ‘청렴’이라는 문구까지 새겼는지 존경스런 마음으로 앞면을 살펴봤다. 어느 장학사님의 명함이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크게 의식하지 않고 지나쳤겠지만 최근 언론에 오르내리는 낯 뜨거운 소식과 겹쳐졌다.

필자가 소속된 충남교육청이 또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전직 교육감들이 각종 부정으로 인하여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보궐선거를 치렀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인데 이번에는 현직 장학사가 개입된 전문직 선발 시험 문제 유출 의혹이 속속 드러난 것이다.

출세지상주의가 만든 슬픈 자화상

필자가 기억하는 장학사에 대한 어린 시절의 추억은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렇듯 대청소를 하는 장면이다. 1970년대 중학교 시절이었다. 한창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릴 무렵, 아침 조회 시간에 교감 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오후에 장학사님이 학교에 방문하기 때문에 대청소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그 때는 그 분이 대단히 높은 분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빗자루를 들고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운동장으로 향했다.

교육계에 몸담은 후에야 장학사 본연의 역할이 전문적인 식견을 살려 학교를 발전시키기 위해 지도·조언하는 역할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왜 일부 교사들은 그렇게 비리를 저지르면서까지 장학사 시험에 목을 매는 것일까.

고시라 불릴 정도의 엄청난 경쟁을 뚫고 교직에 입문한 새내기 교사들이 교직에 대한 회의감으로 절망의 늪에 빠지는 데는 결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현장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데만 헌신하는 선생님은 세상물정 모르는 순둥이고, 오로지 승진을 위해 스펙 쌓기에만 열중하는 교사가 능력을 인정받는다고 느끼는 순간, 젊은 교사들의 열정은 절망으로 치환(置換)된다.

이렇게 스펙 쌓기에 밀려 절망하고 있을 때 역전의 기회가 있다는 얘기가 귀에 들어오게 된다. 전문직이 되면 더 빠르게 교감, 교장으로 승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문직들은 승진보다는 교육 발전을 위한 본연의 임무에 충실히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절망에 잠식당한 일부 교사들에게는 그 말이 사실처럼 들리게 된다.

그렇게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된 교사들이 결국 교육을 골병들게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작금의 사태의 원인은 우리 사회가 빚어낸 비뚤어진 출세지상주의에 있다. 교직에서 평교사로 정년퇴임하는 것이 마치 능력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고 교장이나 교감 정도는 돼야 성공적으로 교직을 수행한 것처럼 인정되는 현실이 거짓의 탈을 쓴 위선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충남교육청이 사건의 진상을 철저하게 파악하기 위해 당사자를 엄중 문책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냈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마저도 변명으로 들릴 뿐이다. 일부의 그릇된 오해 때문이라고는 하나 그것을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문제 해결의 본질은 결국 교장, 교감만 성공한 것으로 인정되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장이 학교에서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봉사하고 헌신하는 자리라는 문화확산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르치는 교사들을 우대하고 존경받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와 풍토 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불법과 부정을 부추기는 교육감 직선제 선출 방식에 대한 전면적 개선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철저한 시험 관리 시스템 필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학생이나 학부모를 대할 면목이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장탄식만 늘어놓고 있을 수도 없다.

일선 경험이 필요한 교육 행정의 특성에 비춰 교사들을 대상으로 전문직 시험을 치르는 것은 필요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출제 등 시험 관리만큼은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외부위원을 더 많이 참여시켜서라도 철저하게 해야 한다. 지금처럼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식’의 시험관리 시스템은 처음부터 부정과 비리를 저지를 소지를 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만큼은 고질병처럼 번진 교육계의 병증을 뜯어고쳐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비뚤어진 전문직 선호 풍토에 대한 교육계 내부의 통렬한 반성과 제도 혁신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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