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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 ‘부모’의 관심 ‘학부모’의 눈물

지지난 주 대입 수시모집 합격자들이 대부분 발표됐다. 물론 수능 전에 합격자를 발표한 대학들도 있지만 수능 최저 학력에 논술이나 적성검사 등 대학별고사 성적을 반영하는 대학이 많기 때문에 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대입 수시는 정시보다 상향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수험생들의 수도권 대학 쏠림현상은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물론 올해부터 ‘묻지 마 지원’을 차단하기 위해 수시 지원을 여섯 번까지로 제한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제한 횟수를 채우기 때문에 경쟁률은 보통 수십 대 일을 넘기는 것이 다반사다.

수시모집 합격자 발표에 따라 탈락한 학생들은 정시모집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물론 정시모집은 수시모집과는 달리 수능성적에 따라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이나 학과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목표로 하는 점수를 얻지 못한 학생들은 이미 재수를 결심한 경우도 많다. 그런데 정시모집의 경우 수능영역별 반영비율이나 가산점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기 때문에 한 두 과목 성적이 낮다고 해서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정시도 수시보다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고 정밀한 상담이 필요한 것이다.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정시상담을 진행하다 보니 전국 각지의 학생이나 학부모로부터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다. 수시 발표가 마무리될 즈음, 교무실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비교적 원거리에 있는 고3 학생의 학부모인데 절박한 목소리로 상담을 해 줄 수 있냐고 물어왔다. 그렇게 시작된 어머니의 말씀은 5분 남짓 계속됐다. 아이의 성적 향상을 위해 수천만 원의 학원을 보내고 과외까지 시켜줬는데 원하는 성적이 안 나왔다는 것이다. 부모가 갖고 있는 기대치에 아이가 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이튿날 아이를 데리고 갈 테니 상담을 부탁한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초겨울 눈발이 장맛비처럼 쏟아 붓는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모자(母子)는 몇 시간을 달려 학교에 도착했다. 교무실을 들어서는 모자(母子)의 얼굴에는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몸집이 큰 아들은 마치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어머니의 뒤에 붙어 있었다. 아이와 어머니를 분리해서 상담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먼저 아이를 만났다. 아이의 수능 성적표를 살펴보니 사실 상담하기 어려울 만큼 안타까운 결과였다. 어렵게 입을 뗀 아이는 시험을 치르는 당일의 컨디션도 좋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지나친 기대가 오히려 부담이 된다는 말을 꺼냈다. 성적을 보면 재수를 해야 마땅하지만 솔직히 가시밭길 같은 재수에 도전할 만한 용기가 없다고 했다. 아이는 많이 지쳐보였다.

아이가 자리를 비켜주고 어머니와 함께 마주 앉았다. 부모로서 아이가 반듯하게 자란 것만으로도 대견하다고 했다. 다만 학부모로서 아이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많은 비용을 들여 사교육에 공을 들였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지원했던 수시전형은 모두 탈락했고 정시를 생각하니 길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아이의 가능성을 얘기했던 사교육에 배신감을 느끼지만 지금 와서는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는 처지라고 했다. 말씀마다 후회와 진한 아쉬움을 토로하며 급기야 굵은 눈물을 쏟아냈다. 아이의 꿈을 키워 주기보다는 성적에 급급했던 당신의 경솔함을 꾸짖는 것 같았다.

다시 모자(母子)를 앞에 두고 마무리 정리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께는 아이의 생각을 존중해 주라는 것이었고 아이에게는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자신의 꿈을 펼쳐볼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현재의 수능 성적에 따른 최선의 지원 전략을 설명했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을 전제로 하고 다시 한 번 도전해보되 사교육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부해 볼 것을 권유했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했다. 모자(母子)는 그제야 얽혀있던 실타래를 풀어낼 끈을 잡은 듯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부모가 자식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학부모의 입장이 되면 자식의 성적표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급기야 공익광고에 “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합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 합니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을 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라는 카피까지 등장했다. 어머니께 마지막 말씀을 드렸다. 자식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학부모의 시각이 아니라 아이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부모의 관점에서부터 시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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