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의원. 정치인 가운데 그만큼 화려한 이력을 지닌 사람도 드물 것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의 명문대에서 경영학 석사,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만큼 공부하기까지는 본인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넉넉한 가정환경도 무시할 수 없다. 세계 1위의 조선회사인 현대중공업의 실질적 오너로 고문을 맡고 있으며 대한축구협회장, 국제축구협회(FIFA) 부회장도 역임했다. 게다가 이번 충선에서 접전 끝에 승리함으로써 현역 최다선(7선)의 영광도 거머쥐었다.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된 정 의원의 모습은 무엇보다도 2002 한·일월드컵 때의 모습이다. 당시 조직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인 대회 개최와 대한민국 4강 신화까지 일궈냈다. 정 의원이 체육인으로서 대중적 이미지 구축에 성공했다면 교육자로서는 베일에 가려진 면이 많다. 그러나 사실 그의 이력을 들여다보면 교육계에서도 큰 역할을 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친인 고 정주영회장이 설립한 학교법인 현대학원과 울산대학교 등이 포함된 학교법인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런 그가 집권당 대통령 예비후보로 나섰기에 교육에 대한 철학과 정책만큼은 신중하고 사려 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5월, 속전속결식으로 교육공약을 발표했다. 교육문제를 선점하기 위한 의도는 의해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진정성에 의문을 갖게 된다. 그는 한 해 20조원이 넘는 사교육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입시지옥에 내몰린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입학사정관제를 폐지하고 내신과 수능위주로 입시 제도를 단순화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의 대입전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경우 입시 제도를 단순화하면 마술처럼 사교육과 입시지옥이 해결될 듯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위험한 발상이다. 입학사정관제로 인해 공교육 정상화의 싹이 조금씩 돋아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자칫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지금 학교 현장에는 아이들이 소질과 적성을 찾아 이를 계발하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진로교육이 강화되고 도구과목 중심의 보충수업도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반영하는 수업으로 서서히 변화되고 있다.
정문준 의원도 현장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들어보기 바란다. 내신 때문에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다가오면 친구의 노트를 훔치거나 아예 찢어 버리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고3이 되면 정규수업시간에도 멀쩡한 교과서를 제쳐두고 수능문제풀이에 열을 올리는 것이 대한민국 고3 교실의 현실이다. 그런 안타까운 현상이 입학사정관제 도입으로 조금씩 희석되면서 공교육의 역할과 책무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얼마 전 언론을 통해 설립 50년 이내 세계 대학평가에서 우리나라의 포스텍이 1위에 올랐다는 기사를 본 일이 있다. 카이스트(KAIST)도 5위로 뒤를 이었다. 포스텍은 오랫동안 수능과 전혀 무관하게 입학사정관제로만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최근 들어 카이스트(KAIST)도 포스텍과 동일한 방법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고 있다. 이들 대학이 수능을 반영하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 주입식, 암기식 위주의 평가 방법으로는 학생들의 창의력을 검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대가 올해부터 정원의 80%를 입학사정관제로 뽑기로 결정한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 의원의 공약문에는 ‘교권 붕괴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고 학교폭력은 우리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습니다.’고 개탄하는 내용이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교대 등 일부 교원양성대학들이 내신이나 수능 성적이 좋은 학생보다 점수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따뜻한 인성을 지닌 예비 교사를 선발하기 위해 대입전형을 입학사정관제로 바꿨다. 이제 공부만 잘하는 냉정한 학생이 교단에 서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얼마 전, 정 의원이 교총을 방문했다. 그런데 순서가 뒤바뀐 것이 아닌가 싶어 아쉬움이 남는다. 적어도 이 나라의 지도자를 꿈꾸는 분이라면 교원의 의사를 대변하는 최대 교원단체의 의견을 묻고 신중하게 고려해 공약을 발표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후보들보다 교육문제에 관심이 높아 교총을 방문한 것으로 이해하고는 싶다.
정 의원은 축구에 조예가 깊은 분이기에 일명 ‘뻥축구’의 문제점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뻥축구’는 상대편으로 공을 길게 차놓고 모두가 달려 들어가면 그만인 단순한 전술이다. 강한 상대를 만나 세밀한 작전 수행 능력이 부족할 경우 흔히 써먹는다. 치밀한 전략을 필요로 하는 현대 축구의 흐름에 비춰볼 때, 아직도 ‘뻥축구’에 미련이 남아있다면 이는 축구 변방으로 전락하는 지름길이나 다름없다. 정몽준 의원께 묻는다. 후진적인 ‘뻥축구’와 내신과 수능 위주로만 개편된 ‘줄세우기식 대입전형’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