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시절의 어느 날이다. 점심시간이 끝난 후 친구들과 함께 지도교수님의 연구실에 들렀다. 교수님께서는 상당히 기분 좋은 표정을 하고 계셨다. 그 이유를 여쭤 보니, 교문 밖에서 식사를 하고 들어오시는 중에 길거리 좌판상에서 눈에 띄는 액자가 있어 두 개를 사 오셔서 책상 앞면 벽에 걸려고 하는 참이라는 것이다.
그러시면서 그 액자들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다. 하나는 지휘자가 눈을 지긋이 감은 채 지휘봉을 들고 있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발레리나가 허리를 숙여 발레 슈즈를 여미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별 것도 아닌 싸구려 액자들을 사 놓고 싱글벙글해 하시는 교수님을 의아스럽게 쳐다보았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그 사진들이 주는 의미를 설명하셨다. 즉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지휘를 하기 직전에 최선을 다해 지휘를 하겠노라는 마음가짐과 발레리나가 무대에 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슈즈를 점검하는 마음가짐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인다면서, 바로 교사도 항상 그런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즉 늘상 있는 강의를 교사는 태만한 자세로 임하기도 하고, 때로는 싫증을 내기도 하면서 시간 때우기식 강의를 하기도 하는데, 그림의 지휘자나 발레리나처럼 강의에 들어가기 직전에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이번 시간 강의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수님께서도 강의에 들어가시기 전마다 그 액자의 사진들을 보면서 태만하고 교만한 마음을 불식하고 최선을 다하는 강의를 하겠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책상 앞에 걸어 두고자 한다고 하셨다.
그날 이후 머릿속에는 항상 교수님의 말씀이 맴돈다. 특히 강의준비가 덜 됐거나, ‘몸이 피곤하니 대충 강의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 때는 예외 없이 교수님의 말씀이 뇌리를 스치곤 한다. 교육의 질이 교사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고 할진대, 교사의 학생들에 대한 열과 성의는 최선의 교육내용이자 방법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사론의 핵심인 것이다. 학부시절에 수강한 교사론 과목의 내용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교수님이 잡담 삼아 무심코 우리한테 하신 말씀은 평생동안 뇌리에 남아있다. 바로 이것이 잠재적 학습이다. 이처럼 잠재적 학습의 교육적 효과는 지대하다.
그런데 이런 잠재적 교육은 교사가 의도적∙계획적으로 준비해 와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일거수일투족에서 묻어 나오는 의도하지 않은 교육의 한 형태다. 이처럼 교육에서 교사의 인격적 모범은 가장 최선의 교육내용이자 교육방법인 셈이다. 그러기에 옛말에도 “참된 교사는 지식이나 기술보다도 먼저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師, 敎人以道者之稱也)”라고 했으며, “스승은 사람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다(師者, 人之模範也)”라고 하지 않았던가?
교육의 핵심은 인격적 만남
지금까지 다소 장황하게 경험담을 늘어놓은 것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교사의 인격적 모범과 그것에 토대한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 ‘만남’의 관계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바로 이러한 교육 메시지를 몸소 보여주신 분이 필자를 16년이나 지도해 주신 대학의 한 은사님이시다.
페스탈로찌를 전공하셨던 선생님께서는 한때 김교신 연구에 심취하시다가 김교신 인물평전을 출간한 적이 있다. 그 책에서 말한 김교신의 인격적 특질을 학자적 기질, 예술적 기질, 지사(志士)적 기질, 종교적 기질, 감읍(感泣)적 기질로 논했는데, 바로 그런 기질들이 이제와 생각하니 선생님의 기질들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당신에게 김교신이라는 인물은 교육적으로 하나의 모범이 되는 상이었으며 그런 역사적 인물과의 ‘만남’과 흠모를 통해 당신의 교사상과 교육관을 재정립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사실 이 시대 교육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학생들이 따라야 할 인격적 모범상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데 있다고 하겠다. 이런 시대에 필자는 훌륭한 스승의 곁에서 16년 간이나 당신의 삶과 학문을 접할 수 있었으니 어찌 행복하다 아니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런 모범을 오랫동안 접하고도 지금까지 언행 하나 반듯하지 못한 나 자신의 무능함을 오늘도 자책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