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29 (목)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월요논단> 인문주간을 지내면서

인문학의 특성이 무엇인지에 관한 탐구는 여러 측면에서 이루어질 수 있지만, 르네상스시대의 큰 흐름인 휴머니즘(humanism)과도 관련시켜 그 특징을 밝힐 수 있다. 휴머니즘은 인문주의와 거의 같은 의미를 지닌다. 휴머니즘은 라틴어의 후마니스타(humanista)에 그 어원을 둔 것으로 ‘인간성’, ‘인류성’ 또는 ‘인간미’라는 뜻이다. 후마니스타는 인간을 인간답게하는 고귀한 본성으로 이성, 자유, 박애 및 행복의 추구를 내세우고, 이런 것들의 조화로운 발전을 중요시한다. 이런 점에서 인문학은 바람직한 인간의 삶이 무엇인가를 부단히 탐구하는 가치지향적 학문으로 이성, 개성의 존중 및 자유의 증진을 중시한다.

오늘날의 과학은 ‘순수과학․대학과학’에서 벗어나 ‘산업화과학․거대과학’으로 치닫고 있다. 거대과학은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함께 참가하는 국민총력전과 같은 양상을 지닌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나라의 힘이나 부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고 있다. 그런 과정에 그 역기능으로 국가 간에 갈등이 싹트고 급기야는 전쟁으로도 이어지게 됐다. 핵무기가 나타난 것도 그런 갈등구조에서였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기술자가 과연 가치중립자로서 자기의 지적호기심에만 전념해도 되는지에 관한 의문은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싹텄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이 그의 유언장에서 “내 재산의 이자는 매년 그 전해에 인류의 복지를 위해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상금형식으로 분배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나 1955년 아인슈타인이 그의 연구가 원자폭탄을 만드는데 기여했음을 개탄하면서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면 과학자가 아니라 시계 수선공이 되는 건데…”하고 고통스런 말을 했다는 사실은 과학자가 가치중립성에서 해방될 수 없음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 인문학과 과학기술, 문과와 이과로 크게 나누는 것은 지나친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기인한다. 어느 분야나 ‘바람직한 삶’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나친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서 좀 더 통섭의 자세로 나아가야 할 때다. 탐구대상이 전자는 주로 인간의 가치관이나 상상력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고, 후자는 외적인 사물들이나 사태들을 다루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 인간의 일상적, 구체적인 삶은 둘 다 모두와 관련돼 있고, 바람직한 삶을 위한 것이다. 단지 탐구의 편의를 위해 그런 경향이 있지만, 우리의 구체적, 현실적인 삶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길들여진 우리의 경향은 희석시켜야 할 과제라 여겨진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관계당국이나 학자들에 의한 사고방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과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 인류는 바람직한 삶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자연과는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하는지 생각하고 그것을 해결하면서 살아 왔다.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인문학은 자연과학의 성과에, 자연과학은 인문학의 가치지향성과 상상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인문학도는 자연과학에, 자연과학도는 인문학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정책기관, 교육행정기관, 현장에서 실제로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우선,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바람직한 삶이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삶이 바람직한 삶인지를 생각하면서 실천에 옮기는 데 있어서는 인문학적인 상상력도 상응하는 과학기술의 발전도 모두 중요하다.

앞으로 인문학의 경우에는 인문학의 사회적인 기능에 관해서도 좀 더 관심을 지닐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의 경우는 연구개발성과가 뚜렷하며, 그 파장이 사회에 미치는 역할도 크며 가시적이다. 반면에 인문학의 경우는 그런 점에서 좀 아쉽다. 그 아쉬움은 인문학의 특성에서 라기보다는 인문학관련 탐구자들의 치우친 연구풍토에서도 기인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에 일각에서 싹트고 있는 인문치료나 철학상담과 같은 분야는 의의 있는 일이다. 이는 인문학이 사회에 보다 구체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실천적 측면이 강하다. 주장이나 담론수준에서 머무르기 쉬운 현실의 인문학풍토에서 벗어나고자하는 하나의 시도로도 보여진다. 인문학은 바람직한 인간의 삶이 무엇인가를 부단히 탐구하는 가치지향적인 학문으로 이론이나 실천적인 측면에서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소통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생명공동체 속에서 인간의 역할에 관해서도 숙고해야 한다. 예컨대 환경재앙이나 핵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위해서는 생명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닫는 마음을 싹트게 해야 한다. 유전공학, 복제기술의 발달에 따른 문제들도 바람직한 삶의 견지, 생명공동체라는 견지에서 해결돼야 할 인문학적 과제다. 인문학이 무엇보다도 바람직한 인간의 삶이 무엇인가를 부단히 탐구하는 가치지향적인 학문인 한 더욱 그렇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