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말들이지만 한번더 짚고자 한다. 정부는 고령교사 1인을 내보내면 젊고 활기찬 교사 2.59명을 더 쓸수 있어 국가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IMF 상황을 조기 졸업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 했다.
일부 국민들은 학교의 속사정도 모른채 정부의 교원정년 단축에 찬성의 손을 들어주었고 지금도 교원정년단축은 잘 된 정책이라고 믿고 있다. 여기에다 학생체벌 금지조항을 만들고, 대통령이 절대 피해 없게 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하고도 교원과 공무원의 연금을 줄였다.
정부는 이처럼 교원의 사기를 꺽는 정책들을 잇따라 수행하는 한편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에서 국가가 살아 남으려면 교육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며 교육입국을 말하고 OECD 국가 수준으로 교육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청사진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의 교육정책은 목표와 처방이 따로 놀고 이율배반적이라 국민도 교원도 신뢰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OECD 수준으로 교육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교육입국을 이루겠다는 목표의 이행상황을 살펴보자.
국민의 정부가 취한 대표적인 교육개혁 조치랄 수 있는 교원정년 단축 정책은 유감스럽게도 이 목표와 배치된다. OECD 국가들의 교원정년은 65세가 보편적이고 이들 국가 수준으로 교육여건을 개선하려면 그야말로 획기적으로 학교를 신축하고 교원 수를 늘려나가야 하는데 교원정년 단축으로 교원부족 사태를 초래했다.
또 정부·여당은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공교육을 살려야 한다면서 매년 5500명씩 교원을 증원하겠다는 계획을 국민들에게 공표하고는 첫해부터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가 새해 벽두부터 다시 행자부와 기획예산처를 상대로 3555명 추가 증원을 협의하고 있으나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이 나오기도 전에 중학교 의무교육의 단계적 확대를 발표하는 등 혼선을 보이고 있다.
중학교 의무교육의 확대를 반대해서가 아니라 미흡한대로 OECD 수준으로 가기 위한 교원증원 계획은 새학년 시작이 임박했는데도 불구하고 뒤로 미루어놓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군사부일체니, 선생님의 그림자는 밟지 않는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다 라는 말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교원의 권위만 내세우자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학생들은 선생님의 말을 듣고 따라야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한마디 나무라거나 잘못을 지적하면 코웃음치는 것은 예사요 심지어 대들고 폭행을 하는 폐륜적 행위가 비일비재한데다 교육여건은 해마다 악화되는 판이니 많은 교원들이 설레임보다 두려움으로 새학년을 맞이하는 참담한 실정이다.
올해만 해도 전국에서 197개 학교가 신설되고 8766학급이 새로 생기므로 시·도교육청이 교육부에 증원을 요청한 교원수는 모두 1만 1987명이지만 지난 연말 배정한 증원 인원은 1945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수도권 인구 집중으로 교육여건이 가장 열악한 경기도의 경우 금년도에 초등학교만 53개 학교가 신설되고 2730여 학급이 신설 또는 증설되고 향후 3년간 190여 개교에 총 6900학급이 새로 생긴다. 따라서 올해 실제 소요인원은 2730명인데 교육부가 가배정한 교원정원은 500여 명 밖에 되지않으니 부족인원이 2230명에 달한다.
지난해에도 초등의 교과전담교사가 전국 최하위인 57% 정도에 그쳤는데 올해는 상황이 더욱 악화될 지경이다. 이런 판국이니 수준별교육을 강조하는 7차교육과정과 초등 영어 확대가 차질없이 이행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교원들의 수업부담만 배로 늘어나고 여건은 뒷걸음질 해 정상적인 학교교육 마저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교육개혁이라는 미사여구만 외치고 책상머리에서 탁상공론만 하는 행정부처의 무사안일이 사상초유로 '담임없는 학급' '교과전담교사 없는 학교' '학생없는 신설학교'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 초등교사 부족으로 인해 담임교사가 교과전담교사 몫을 해야하고 교감이 수업을 하는 가 하면 교장마저 수업을 맡아야 할 형편에서 수준별 교육은 갓쓰고 자전거타는 꼴이 될 것이다.
교원 5500명 증원 약속은 지난해 과외금지 위헌 판결 이후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으로 정부는 이를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정부는 공교육 살리기를 포기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경기도의 경우 지난해 초등교사 2000명을 공채했지만 897명밖에 임용하지 못했고 올해 또 1100명을 모집했지만 227명밖에 임용하지 않았으니 정부가 교원 증원 결단만 내리면 된다.
차제에 고령교사 1명 퇴출에 젊은 교사 2.59명을 쓸 수 있다며 호응했던 일부 학부모단체들도 이런 사태를 외면하지 말고 교원 증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여주기 바란다. 아니 그 보다도 수도권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이 고교평준화 시책같은 인기영합적 현안에 보여준 정열의 반만이라도 투입해 공교육을 살리기를 공론화하고 정부에 해결을 촉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