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이라고 기억한다. 사상 유래 없는 불볕더위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온도계를 보면 30도였고 한낮 더위는 체온을 넘는 날이 이어졌다. 급기야 TV와 신문에서는 농업 용수를 공급해야 한다며 성금 모금을 하였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단축수업을 하였으나 고등학교에서는 정상수업을 하였다.
아이들과 아무리 집중을 해서 수업을 하려고 해도 10분 이상 집중이 되지 않는 날씨였다. 그 해 이후 날씨가 덥다하면 보통 35도 이상을 기록한다. 전국의 초·중·고교에 에어컨 보급률과 가동률은 얼마나 될까. 정확한 통계를 본 적이 없으니 뭐라 할 말은 없으나 교단에 선 지 1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한 번도 에어컨 있는 교무실과 교실에서 근무를 해보지 못했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21학급에 직원이 50명이지만 교실에 선풍기 4대, 교무실에는 교사 4명에 한 대가 있을 뿐이다. 가끔 은행이나 관공서에 가면 추울 정도로 찬바람이 나오는데, 면적도 시원하게 넓은 편이고 드나드는 사람까지 쳐도 교실보다 사람수가 적다.
지금은 장마철이라 더위가 한풀 꺾였지만 일주일 전만 해도 한 교실에 사오십 명씩 공부해야 하는 교실에서 5교시나 6교시 수업을 하다보면 내가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체육을 하고 난 뒤라든가 옥상 바로 밑에 있는 교실이라면 들어가기 전부터 긴장을 하게 된다.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 전력 소비율이 사상 최대라는 말을 해 가며, 학교에까지 에어컨 설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요즘 아이들은 참을성이 없다고 몰아붙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른도 참기 힘든 이 더위에 옥상 바로 밑에서 하루 종일 수업이 아닌 더위와 씨름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교사로서 그런 말은 아예 나오지 않는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욕구가 수용되고 난 다음 교실 선진화 기자재가 더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육부는 현장의 이런 욕구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교실 선진화 기자재가 급속히 들어오는 교실에서 사십 명이 넘는 학생들이 겨울에는 손발이 꽁꽁 얼어 빨갛고 여름에는 찜통 더위에 시달려야 하는 현실을 상상하겠는가. 학생, 교사 이전에 인간으로서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보내고 싶은 심정이 참을성이 없다는 한 마디로 묵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에어컨 설치가 불가능하다면 수업일수 안에서라도 융통성 있게 해주면 좋겠다. 수업도 날씨가 좋은 4, 5월에 조금 많이 하고 6, 7월에는 단축하면 어떨까. 장마가 지나고 다시 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뭔가 시원한 소식이 전해졌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