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6월 12일)부터 모레(6월 14일)까지 평양에서 열리는 제1차 남북정상회담은 글자 그대로 역사적인 사건이다. 우리 겨레가 스스로 뜻에 어긋나게 남과 북으로 갈라져 살기 시작한 때로부터 54년 10개월만에 처음으로 남과 북의 정상들이 만나 민족의 화해와 협력의 문제들을 논의하기에 이르렀으니 이 어찌 감격스런 일이 아니랴! 비록 가시적인 성과가 당장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이 만남 자체만으로 분단민족사에 커다란 획이 하나 그어지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처럼 뜻 깊은 남북 정상회담에 우리가 거는 기대가 어찌 한 둘에 그칠 것인가. 참으로 많은 기대를 걸게 된다. 그러나 첫 술에 배부르랴는 우리 속담 그대로 첫 정상회담만으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몇가지 기대만을 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불가침과 평화에 대한 원칙적 선언이 발표되기 바란다. 남과 북은 꼭 50년 전인 1950년에 6·25전쟁의 발발을 겪음으로써 동족상잔의 뼈아픈 기록을 남겼다. 이 전쟁이 1953년에 휴전협정으로 마무리된 뒤에도 여러 차례 크고 작은 무력충돌을 겪었으며 그 과정에서 한반도는 군사적 긴장에 둘러싸이기도 했다. 이것은 자연히 남북 사이에 지나친 군비경쟁을 유도했고, 그리하여 남과 북 모두가 너무나 많은 자원과 예산을 무기구입과 군대 유지에 써야 했다.
이로써 남과 북은 모두 와훼어 스테이트(warfare state), 곧 전쟁국가가 됐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웰훼어 스테이트(welfare state), 곧 복지국가가 되고자 함에 반대되게 남과 북은 전쟁을 준비하거나 전쟁에 대비하는 국가가 된 것이다. 그 결과 남과 북을 통털은 한민족의 역량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쓰이지를 못하고 자기소모의 길을 걷고 말았으니 참으로 통탄스러웠다.
21세기에 들어 선 이제 우리는 이 잘못을 고쳐야 하겠다. 그렇기에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과 북이 상호 불가침과 평화를 다짐하는 공동선언서를 발표하기 바란다.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남과 북은 지난 1991년 12월에 남북총리회담을 통해 `화해와 불가침 및 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에 조인했기 때문에 이 정신을 되살리면 되기 때문이다.
둘째, 이산가족의 재회가 실현되기 바란다. 6·25전쟁은 약 1천만 명의 이산가족을 발생시켰다. 그 뒤에도 남과 북은 상대방 간첩의 체포와 상대방 주민의 억류 등 여러 형태로 상대방 주민을 자기 의사에 어긋나게 자기 쪽에 눌러 살게 만들어 놓았다. 이들 역시 이산가족의 범주에 포함됨은 물론이다. 이들 모두 자기가 바라는 곳으로 돌아가거나 자기의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돼야 한다. 이것은 인도주의의 기본이다.
셋째, 이산가족의 재회를 계기로 3통이 실현되기 바란다. 3통이라 함은 통행 통신 통상을 뜻한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에서 실현되고 있는 이 3통이, 그리고 문명사회에서는 보편적으로 승인되고 실시되는 이 3통이 같은 민족 사이에서는 지극히 제약되어 있는 현실은 우리 민족의 수치이자 불행이다. 이 못난 현실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3통의 개시와 확대는 남북관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시킬 것이다. 사람과 정보와 물자가 비교적 자유롭게 남과 북을 오가면서 인위적인 분단의 장벽은 허물어질 것이며 한반도의 얼음은 녹을 것이다. 이 점은 이미 분단 독일에서 입증됐다. 3통이 확대되면서 동서독은 하나가 되는 길에 접어들었던 것이다.
3통의 개시의 신호는 부분적으로 이미 울렸다. 최근 북한의 예술단이 몇 차례 서울에서 공연한 일, 그리고 남한의 예술단이 몇 차례 평양에서 공연한 일이 그 신호이다. 북쪽에 이미 남쪽의 기업들이 진출해 남북경제협력의 터전이 마련됐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철도가 남북을 연결하도록 합의가 성립된다면 3통에서 큰 진전이 이룩된다고 하겠다.
이어 남북 교원들 사이에 상호 방문이 실현되기 바란다. 교원들이 상대방의 교육 현황을 파악하면서 서로 보완해서 민족교육의 수준이 세계적 수준으로 향상되기 바란다. 학생들도 서로 상대방 명승지로 수학여행하면서 이해와 관용의 폭을 넓히기 바란다. 넷째, 김정일의 서울 답방이 실현되기 바란다. 그래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게 되면 남북관계는 훨씬 더 좋아질 것이다. 또 그것을 계기로 3차 4차 5차 6차, 이렇게 계속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