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섯 살 무렵,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작은고모를 보내지 못해 엉엉 울며 떼쓰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당시 어린 마음에는 고모가 떠나면 다시는 못 볼 것만 같아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며칠 동안 어린 조카에게 쏟아부어 주었던 고모의 깊은 사랑을 먼 훗날에야 깨달았다.
지켜낼 수 있었던 3가지 약속
이제 교감으로 첫 발령을 받았던 학교를 떠나왔다. 50여 년 전 터미널에서의 그날처럼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고, 누군가 옷자락을 붙잡는 듯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지난 시간 근무했던 학교를 깊이 사랑했기 때문이리라.
2023년 2월 말, 부임 인사를 하며 선생님들께 세 가지를 약속했었다. 첫째는 ‘기본이 바로 선 학교’를 만드는 것, 둘째는 아이들에게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 밥’을 듬뿍 주는 것, 셋째는 교장 선생님의 교육철학을 받들어 학교를 내실 있게 조력하는 것이었다.
우선 학교에 기본이 바로 서려면 경청을 넘어 가르침과 배움의 권리가 온전히 보호돼야 한다. 교사는 아동학대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생활지도를 할 수 있어야 하고, 학생은 안전하게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활동보호 노란불 지원팀’을 꾸려 학교폭력, 아동학대, 교권침해 등 38건의 민감한 사안을 대화를 통한 중재로 원만히 해결해 냈다.
둘째 약속인 ‘놀이 밥’은 아이들이 마음껏 에너지를 발산하면 학교폭력도 자연스레 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매 학기 자전거 및 탁구 축제를 개최해 총 14회의 결실을 맺었다. 선생님들의 부담을 줄이고자 기획부터 품의, 완주증 출력, 보도자료 작성까지 직접 발로 뛰었다. 물론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첫해에는 학부모회의 손길을, 둘째 해부터는 자원봉사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았다. 특히 성심껏 현장을 지원해 주신 행정실무사와 시설관리원님들의 노고는 감사함을 넘어 존경스러움으로 남아있다.
셋째로, 교장 선생님의 교육철학을 뒷받침하기 위해 악성 민원 창구를 체계화했다. 무분별한 교장실 방문 대신 업무 담당자의 사안 파악과 교감 선에서의 1차 중재 및 해결을 원칙으로 삼았다. 대다수의 민원을 현장에서 지혜롭게 풀어내자 교장 선생님께서도 깊은 신뢰와 고마움을 전해 오셨다.
새로운 씨앗 싹 틔울 것
연양초를 떠나며 딱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면, 아이들과 함께 대청호까지 라이딩을 하며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지 못한 점이다. 하지만 이 아쉬움은 새로운 씨앗이 될 것이다. ‘그란폰도’가 이탈리아어로 ‘긴 거리를 달리는 장거리 레이스’를 뜻하듯, 다음 학교에서는 세종의 모든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이 함께하는 ‘학교폭력 Zero 그란폰도’를 추진해 볼 생각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전거 길을 탐색하고 개척해 나가며, 자신의 인생길과 진로 또한 주도적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