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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김민철의 꽃과 문학] 반려식물 해피트리·녹보수

 

김지연은 2018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젊은 소설가다. 등단 8년 차지만 문인들이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단편 <마음에 없는 소리>는 2022년 교보문고가 주관한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2위에 올랐다. 사석에서 ‘김지연 팬’이라고 고백하는 소설가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을 세 번 받았고 2024년 현대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요즘 젊은 작가의 소설에 관심을 갖는 독자라면 그의 이름이 어느 정도 익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음에 없는 소리>는 그의 첫 소설집 표제작이다. 작가 고향인 거제로 보이는 해안가 소도시를 배경으로, 할머니가 휴업한 작은 식당을 이어받아 소고기뭇국과 ‘멸추김밥’을 메뉴로 개업하는 35세 여성 이야기다.


고향 또래들은 어느덧 번듯하고 안정적인 삶을 찾아가는데 주인공은 ‘아무것도 안 하지는 않았는데 딱히 무얼 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처지에 있다. 시에서 지원해 주는 청년 사업의 커트라인에 딱 걸리는 나이 만 35세지만 생일이 보름 정도 지나 지원금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일단 식당을 개업한다.


고향 좁은 동네엔 서로 십 대에서 이십 대 때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친구들이 많았다. 이 친구들과 가끔 만나 티격태격하는데, 그중 하나가 개업 선물로 해피트리를 가져온다.

 

개업 날 커다란 화분을 들고 나타난 화영은 (…중략…) 화영이 가지고 온 식물의 이름은 해피트리라고 했다. 너무 재미없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과업을 떠맡은 기분도 들었다. 길을 걷다 보면 완전히 시들어버린 화분들이 가게문 앞에 놓여 있고 유리문에는 ‘임대 문의’라는 종이가 붙어 있는 광경과 종종 마주칠 때가 있었다. (…중략…) 그 장면을 떠올리자니 해피트리가 시들지 않도록 잘 가꾸어야만 식당도 망하지 않을 거라는 이상한 믿음이 생겨났다.


친구들은 종종 찾아와 김밥을 포장해 가고 여기저기 전화해 손님을 모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식당은 침체된 재래시장에 위치해 손님이 많지 않았고, 감염병이 돌기 시작하면서 유동인구는 더 줄어든다. 하루 종일 오롯이 해피트리와 식당을 지키는 날도 있었다.

 

식당 일은 해피트리를 돌보는 일과 함께 돌아갔다. 어느 날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어 해피트리와 나만 식당을 지키기도 했다. 그래도 해피트리가 무사했으므로 식당도 망하지 않았다.

 

해피트리 잘 가꾸어야 식당도 안 망할 것
개업 날 해피트리를 가져온 친구 화영은 아이가 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자 더 나은 교육환경을 위해 대도시로 이사 간다. 화영은 이사한 후에도 가끔 전화해 “보고 싶다”라고 하는데, 화자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핀잔을 주지만 그 친구가 보고 싶어진다.


소설에 표현이 나오진 않지만, 화자가 해피트리를 나름 아끼며 돌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식물을 키우는 일은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 겉흙이 마를 때마다 물을 주는 등 많은 공을 들였을 것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삶은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고 거기엔 아주 많은 공을 들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해피트리는 주인공의 반려식물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친구가 ‘마음에 없는 소리’하듯 개업 선물로 보냈을지 모르지만, 해피트리가 세상을 함께 견디는, 생기를 주는 반려식물이 된 셈이다.


큰 사건이 생기는 것도, 개성 넘치는 인물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소설은 술술 읽힌다. 담담하면서도 가벼운 농담과 능청이 나와 재미있다. 요즘 청년세대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수 있는 것도 이 소설의 장점이다. 중간에 ‘우리가 불행을 극복하는 방식은 태연해지는 것이었다. 낫는다는 것을 믿고 그 미래가 이미 도래한 것처럼 굴기. 그렇게 하면 반복되는 불행들을 점점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었다’ 같은 문장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작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별일이 안 일어나는 것 같지만, 거기에 사는 사람들 나름의 속사정 같은 걸 세심하게 이야기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살다가 ‘마음에 없는 소리’라도 하는 것이 일종의 에티켓, 인간에 대한 예의 아닐까 싶다. 장례식장에 가면 ‘상심이 크시겠습니다’고 하는 것과 같이. “영혼 없는 소리 하지 마라”는 말을 들을망정 마음에 없는 소리는 세상 살아가는 데 윤활유 같은 것 아닌가 싶다.

 

해피트리 수피엔 굴곡이 촘촘
소설에 나오는 해피트리는 행복나무라고도 하는데 녹보수와 함께 사무실·식당·거실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엽식물 중 하나다. 녹보수는 ‘녹색의 보석 나무’라는 뜻이다. 근래 도입된 나무들인데, 식물학자들이 관심 두기 전에 유통업자들이 이름을 잘 지어서인지 승진이나 식당·카페 등 개업 선물로 많이 쓰는 나무다. 행운목·관음죽·홍콩야자·금전수·고무나무 종류도 개업 선물로 많이 쓰는 식물이다.


해피트리와 녹보수는 비슷하게 생겨 많은 사람이 헷갈린다. 하지만 해피트리와 녹보수는 전혀 다른 나무다. 해피트리는 두릅나뭇과이고, 녹보수는 능소화과여서 과(科) 자체가 다르다. 과가 다르다면 꽃과 열매 등 생식 방법이 전혀 다른 나무라는 뜻이다.


이 둘을 구분하는 방법은 먼저 잎 모양을 보는 것이다. 해피트리 잎은 가장자리가 매끄럽고 물결 모양을 이루지만, 녹보수는 잎의 가장자리가 톱니처럼 뾰족뾰족하다. 그러니까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으면 해피트리, 있으면 녹보수다.

 

 

잎 모양을 보는 것보다 더 쉬운 것은 수피. 특히 나무 아래쪽 수피를 보는 것이다. 해피트리는 굴곡이 촘촘한, 울퉁불퉁한 수피를 갖고 있다. 반면 녹보수 수피는 잔무늬가 없지 않지만, 매끄러운 편이다. 그러니까 수피에 잔 굴곡이 촘촘하면 해피트리, 골곡 없이 매끄러우면 녹보수다.


인터넷 등을 검색하다 보면 해피트리에 꽃이 피었다는 글과 사진을 볼 수 있는데, 필자가 본 것은 전부 녹보수 꽃이 핀 것이었다. 녹보수는 국내에서도 조건이 맞으면 꽃이 피는데, 능소화과 꽃답게 능소화 비슷한 연노랑색 꽃이 피는 것을 볼 수 있다. 해피트리는 두릅나뭇과여서 두릅나무처럼 잎자루 기부가 부풀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해피트리는 우리나라에선 꽃이 피지 않는 것 같다. 열대·아열대 지역에서 핀 꽃 사진을 검색해 보면 정말 두릅나무 꽃과 비슷한 꽃이 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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