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이틀간 심술궂은 비를 뿌려 미안했는지 하늘이 참 맑고 공기도 좋다. 이른 아침에 출발은 좋았으나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도로마다 막혀 피곤하고 배도 고파 공주 입성하자마자 바로 식당을 찾아갔다. 점심 식사는 곰골 식당이란 곳에서 생선조림과 생선구이를 시켰다. 곰골 식당은 오래된 한옥으로 천정도 나지막하고 방도 작은 전형적인 서민 가옥인데 반백 년은 족히 돼 보인다. 넉넉한 양과 혀에 딱 느낌 오는 맛에 가격까지 적당하다. 서울 식당과 비교하니 가성비가 매우 높아 다시 오고 싶다.
곰골 식당 근처에는 공주사대부속중고등학교가 있다. 정문이 기와를 얹은 높은 망루 같아 백제 옛 도읍지답게 전통과 문화가 살아있는 것 같다.
학교 주변 큰 샘골 마을엔 단독 가옥들이 모두 갓 시집온 새댁같이 깨끗하며 단정하게 단장하고 자리 잡고 있다. 그 옆엔 언제 적 우물인지 오래된 큰 샘골 우물이 마을의 수호신처럼 마을을 지키고 있다. 두세 정거장 떨어진 공산성에 도착하여 소형차 주차장으로 들어가 주차하였다.
금서루가 장엄하게 버티고 있는 공산성 입구에는 서른 개 정도의 비석들이 줄지어 서있다. 마치 '내가 백제의 충신이다'라고 호령하는 듯 그 자태가 제법 장엄하다. 장대하고 묵직한 비석들이 줄 서서 근엄하게 입장객들을 맞이한다.
주로 관찰사와 목사 등을 역임한 분들의 공적비라고 한다. 공주의 산 역사를 비석으로도 설명이 되는 것 같아 백제의 오랜 향기가 풍겨 나오는 듯하다.
금서루를 지나니 왼편 성벽엔 노란 깃발이 줄지어 서있다. 다소 비탈진 언덕을 올라가며 공산성의 맑고 신선한 공기를 맘껏 마셨다. 폐부 깊숙이 들이마신 공산성 산소로 몸속의 폐가 한결 정화된 느낌이 든다.
지금도 발굴하고 있는 현장도 살펴봤는데 아직도 발굴 중이라는 공산성은 주변 무령왕릉과 유적들을 포함하여 백제의 살아있는 역사로 그 역사적 가치가 대단하여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공주시는 단정하고 깨끗함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한옥식 카페도 식당도 눈에 많이 보인다.
다음 일정은 마곡사로 정하고 출발했다. 어휘가 주는 느낌이 심상치 않은 절 이름에 호기심도 있고 백범 김구 선생이 스물두 살에 이 년간 은거하던 곳이라 하여 꼭 가보고 싶어 계획을 잡았다. 마곡사를 처음 보니 기둥도 서까래도 분칠 안 한 할머니 같은 느낌이 든다. 질박하고 소박하나 나이 드신 품에서 나오는 아늑함과 푸근함, 바로 그것이었다.
해탈문이 첫 관문이다. 해탈문을 들어서면 속세를 벗어나 불교 세계로 들어가며 해탈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한다. 나도 해탈문을 들어섰으니, 속세의 번뇌를 다 떨쳐버리고 해탈하려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백범 김구 선생이 기거하던 백범당이 바로 보인다. 친필 사인이 적힌 태극기가 처마 밑 벽에 게시되어 있고 사진과 친필 휘호 등을 볼 수 있었다. 백범의 절절한 애국 애민 정신에 대한 경외심으로 고개를 숙이고 마곡사를 뒤로 발길을 돌렸다.
그 부근에 연미산자연미술공원이 있어 들어가 봤다.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곳이라는 설명을 듣고 입장하였다. 유치원 원생들이 단체로 입장하여 재잘거리고 있어 고요한 숲속에서 작은 새들이 종알거리는 노랫소리같이 들렸다.
이곳은 둘레길 다니듯 오르내리며 전시된 미술작품을 관람하는 코스로 주로 대나무, 나무 등을 이용한 자연 친화적인 재료를 쓴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마침 프랑스인 작가가 작품을 제작하는 모습이 있어 다가가 보았다. 파란 눈의 작가가 엄청난 크기의 사람 얼굴을 대나무로 엮어 만드는 과정이 신기하여 한참을 보고 짧은 영어로 몇 마디 주고받았다. 작품이 멋있다고 하니 활짝 웃으며 좋아한다. 칭찬은 고래만 춤출 뿐 아니라 전 세계 모두에게 통용되는 공용 언어임이 증명되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숲속에서 작품 감상하니 등산에 버금가는 에너지가 소비되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동학사가 있어서 들렸다. 맑은 계곡 따라 어우러진 숲과 길이 어깨동무하듯 동학사까지 이른다. 하루에 사찰 두 곳을 방문하니 부처님도 우리를 잘 보살펴 주실 것 같다.
공주시는 판소리의 대가 박동진 님의 소리 전수관이 있다. 제자들이 옛 소리를 전수하는 연수관 같은 곳인데 먼저 박동진 명창의 기념관으로 들어갔다. 살아생전 유품과 업적을 살펴보니, 마치 박동진 명창이 살아 계신 듯하다. 판소리를 음향으로 틀어놓고 영상으로 생전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더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평생 판소리를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여 국악의 기틀을 잡으신 명창을 찾아뵙고 아쉽지만, 다음 일정으로 문을 나섰다.
필자도 문학인으로 족보에 올렸으니 지역 문학관은 빠지지 않고 가보고 있던 차에 공주시에 나태주 풀잎 문학관이 있어 찾아갔다. 공주시 세무서와 공주사대부속고 사이에 끼어 있는 문학관은 뒤로는 아늑한 작은 숲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으며 나지막한 언덕배기 위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성큼 현관 앞으로 가니 웬 자그마한 어르신이 문밖으로 나오시는 것이다. 직감으로 나태주 작가임을 알아챘다. 문을 들어가며 스쳐 가는 와중에 젊은 분이 어떻게 오셨느냐고 묻는다. 여기 방문하러 왔다고 하니 공사 중이라 주말 외엔 개방을 안 한다고 거절하는 것이었다. 마침 밖에서 그 소리를 들은 나태주 작가님이 "어디서 오셨어요?"라고 묻는다. "서울서 일부러 보러 왔습니다"라고 말씀드리니 들어오라고 하셨다. 작가님의 남을 배려하는 넉넉한 마음 씀씀이를 읽을 수 있었다.
방으로 들어와서 차나 한잔하고 가라며 녹차 한 잔을 따라 주셔서 작가님과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슬그머니 일어나 뒷창문 쪽으로 가더니 "창으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이 마치 인생 같아요. 여기 와 보세요"라고 말하며 창문을 가리킨다. 일상에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작은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예사로 보지 않는 작가의 범상치 않은 감각과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방안에 3대나 있는 풍금도 보여주고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갔다. 대작가님과 차 한 잔 나누며 대화도 하고 기념 촬영도 선뜻 응해주셔서 어제 꿈을 잘 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인사하고 나오는데 시집도 한 권 주시는 것이다. 뜻밖의 시집을 받으니 횡재한 기분이었다.
나 작가님은 초등교장 출신이어서 동업자라 그런지 더욱 친근감이 들었고 일찍이 1971년 시인으로 등단하여 수많은 시를 발표하신 대작가이다.
나태주 풀잎 문학관을 뒤로 하고 공주한옥마을로 향했다. 이곳은 한옥 체험을 기본으로 숙박, 캠핑 등을 하는 곳이었다. 좋은 경치와 함께 행운이 더한 날이다. 이번 공주 여행은 백제를 이해하는데 더없이 소중한 체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