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 인한 교권 침해를 줄이려면, 학교 현장의 특수성을 반영한 별도의 학교 민원 처리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단순 질의·상담과 교사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교육 상담을 구분해 처리하고, 악성 민원일 경우 이에 대한 대응 절차를 마련, 교원을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조치도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한국교육개발원(KEDI)과 교육부는 21일 제215차 KEDI 교육정책포럼 및 2025년 교육활동보호센터 운영 사업 정책 포럼을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공동 개최했다. 포럼은 ‘학교·교원의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교육공동체의 역할과 과제’를 주제로 열렸다.
‘학교 민원 처리 계획과 방안’에 대해 발제한 김성식 서울교대 교수는 “학교 민원을 일반적인 민원으로 간주해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학교 현장의 특수성을 반영한 민원 처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선, 학교 교육의 맥락에서 민원과 상담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고 유형에 따라 구분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정부합동민원센터와 영국·호주 학교의 사례를 소개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정부합동민원센터의 경우 상담은 ‘민원 신청을 하기 전에 관련 법령·제도·절차 등을 문의하거나 민원 담당 기관을 안내받을 때 신청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다시 말해, 궁금증 해소를 돕는 과정이다. 민원은 ‘국민이 행정기관에 대해 처분 등 특정한 행위를 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과 호주의 학교는 민원과 상담을 구분해 대응한다. 김 교수는 “학부모나 학생이 중요한 이슈에 대해 걱정이나 의문을 표현하는 것을 ‘우려(concern)’로, 이미 조치하거나 조치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족의 표현을 ‘민원(complaint)’으로 구분한다”며 “항상 분명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구분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부모의 요구는 목적과 내용 방식, 해결(조치) 가능성 등에 따라 ▲교육상담(외부 지원 필요 사항 포함) ▲민원 ▲불합리한 민원 ▲무리한 요구(교육 방해·침해)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학교 민원 접수 창구를 단일화하고, 대응팀이 기준에 따라 분류해 사안에 따라 대응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특히 “교직원 개인이 민원 담당자로 고립되지 않도록 체계를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악성 민원이라고 불리는 불합리한 민원으로 인정되면 학교 수준에서는 민원 처리를 종료하고, 민원인에 대해서는 제한 조치를 시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등 제도적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발제자로 나선 김혜진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법·정책적 성과와 향후 과제’에 대해 발표했다.
김 연구위원은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교육활동 침해 실태 자료를 제시하면서 “교권보호위원회 개최 건수가 2023년 가장 많았다가 2024년 줄었지만, 교권 침해 추세는 완만히 증가하고 있다”면서 “특히 상해·폭행과 성폭력 범죄, 성적굴욕감을 일으키는 행위 등 심각한 침해유형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교원들은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제도 변화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보였지만, 보호자는 낮은 인지도를 보였다. 김 연구위원은 “교사들은 교육활동 보호 관련 법과 정책의 변화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지만, 제도의 효과에 대해서는 체감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원들은 교육활동 보호를 위해 필요한 방안으로 ‘부당 민원에 대한 대응 방안 강화’, ‘아동학대법의 무분별한 적용 금지’ ‘교권 침해자에 대한 강력한 조치 시행’ 등을 꼽았다”고 덧붙였다.
현장 교원들의 정책 제언도 이어졌다. 김선 한국교총 부회장은 “법과 제도가 강화됐어도 현장 교원들이 교권을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은 무분별한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 악성 민원, 현장 체험에 대한 불안감 등 크고 작은 사건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라고 짚었다.
또 다른 이유로는 법령과 제도의 미비를 꼽았다. 김 부회장은 “정당한 교육활동은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법과 아동학대 신고 시 교육감 의견 제출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가 남발되고 있다”면서 “아동복지법 상 모호하고 포괄적인 ‘정서적 학대 행위’에 대한 개념을 개정하는 한편, 교육감이 정당한 교육활동으로 의견을 제출하고 경찰이 무혐의 판단한 아동학대 신고 사안은 검찰에 불송치하도록 아동학대처벌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