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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의 꽃과 문학] 저 흰구름 같이 꽃 핀 나무, 이팝나무? 조팝나무?

 

윤성희 소설집 <날마다 만우절>에 ‘블랙홀’이라는 단편이 있다. 이 소설에 쌍둥이 자매가 고속도로 옆에 핀 하얀 꽃 군락이 이팝나무꽃인지 조팝나무꽃인지를 놓고 티격태격하다 내기하는 장면이 있다.

 

고속도로 옆으로 하얀 꽃들이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었다. 나는 자동차 창문을 내렸다. 향긋한 냄새가 날 줄 알았는데 아무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언니는 그 꽃이 이팝나무꽃이라고 했다. 나는 조팝나무꽃이라고 했다.


“내기할까?” 
“응, 내기하자.” 
우리는 무엇을 걸지 한참을 생각했다. (…중략…) 나는 휴대폰을 꺼내 이팝나무와 조팝나무를 검색해 봤다. 세상에. 이팝나무는 물푸레나무과이고 조팝나무는 장미과였다. 
“이름만 봐서는 쌍둥이 같은데 말이야.” 
내 말에 언니가 쌍둥이들도 얼마나 성격이 다른데, 하고 받아쳤다.
“그건 그렇고 그래서 저 꽃은 뭐야?” 언니가 물었다. 
“잘 모르겠어. 너무 멀어서 그런가. 똑같아 보여.” 


우리는 확실해질 때까지 당분간 고속도로 옆에 핀 흰 꽃을 이조팝나무꽃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팝나무와 조팝나무는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이름이 비슷한 데다 둘 다 흰색 꽃이 피어 많은 사람들이 헷갈리는 나무다. 더구나 둘 다 꽃이 예뻐서 산과 들에서는 물론 도심에서도 흔히 볼 수 있기도 하다.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팝나무는 키가 큰 교목이고, 조팝나무는 키가 작은 관목이라는 것이다. 교목은 보통 5~6m 이상의 나무를, 관목은 2m 이내의 나무를 가리킨다. 두 나무는 자생하는 나무지만 이팝나무는 도심 가로수로, 조팝나무는 산울타리 또는 화단용으로도 많이 심는 나무다.

 

 

키 큰 이팝나무, 키 작은 조팝나무
이팝나무는 서울 가로수의 9%를 차지하는 나무다. 은행나무·플라타너스·느티나무·왕벚나무에 이어 다섯째로 많다. 부산의 경우 왕벚나무·은행나무·느티나무에 이어 이팝나무가 넷째로 많다. 4월 말부터 서울 시내에서는 이팝나무 가로수가 하얀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팝나무는 이른 봄 공원이나 화단에서 새하얗게 피는 꽃이다. 서울 청계천 등 공원이나 화단에서 새하얀 가지들이 너울거리면 조팝나무꽃일 가능성이 높다. 조팝나무는 산울타리로 많이 심는 나무이기도 하다.


그럼 윤성희 단편 ‘블랙홀’에 나오는 하얀 꽃 군락은 어떤 나무일까? 조팝나무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고속도로를 가다 보면 조팝나무 군락이 피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팝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의 산과 들에서 흔히 자라는 나무다. 다만 확률이 낮지만, 이팝나무를 무리로 심어 놓은 걸 보았을 수도 있으니,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겠다.


가까이 가서 보면 이팝나무꽃은 꼭 이밥(쌀밥)을 얹어 놓은 모양이다. 이팝나무라는 이름도 거기서 나온 것이다. 조팝나무라는 이름은 하얀 꽃잎에 노란 꽃술이 박힌 것이 좁쌀로 지은 조밥 같다고 붙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옛사람들은 이팝나무꽃에서나 조팝나무꽃에서나 밥을 연상한 모양이다. 


조팝나무는 영어로 ‘신부의 화관(bridal wreath)’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졌다. 그러고 보니 조팝나무꽃을 보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 5월의 신부를 연상할 수도 있겠다. 조팝나무꽃이 피었을 때 가지를 떼어 화관을 만든 다음 머리에 쓰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다.

 

 

이팝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해온 나무다. 전통적으로 우리 조상들은 이팝나무꽃이 피는 것을 보고 한 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짐작했다고 한다. 꽃이 풍성하게 피면 풍년, 드문드문 피면 흉년이 든다고 점쳤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만 해도 이팝나무를 가로수로 심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서울시가 청계천을 복원(2003~2005년)할 때 가로수로 이팝나무를 선택하면서 가로수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팝나무는 개화기간도 긴 편이고 봄꽃이 들어가는 초여름에 꽃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 후 회화나무·메타세쿼이아 등과 함께 새로운 가로수로 각광을 받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이 나무를 많이 심는 이유로 “봄에 피는 하얀 꽃이 아름다우며, 다른 수목에 비해 병충해에도 강해 관리가 용이하고, 생육속도가 빠르지 않다 보니 간판 가림 등 민원 발생이 적어 상가·지역 주민들이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근래 이팝나무를 많이 심다 보니 서울 시내에도 이팝나무 가로수길이 부쩍 늘어났다. 서울시가 몇 년 전 시민들이 찾을만한 ‘봄꽃 길 160선’을 선정했을 때 이팝나무길이 19곳이나 들어있을 정도다. 청계천 양방향 외에도 남산3호터널 남단, 미아사거리~월계2교, 상도역~봉천고개, 은평구 진관2로 등이 서울시가 선정한 찾을만한 이팝나무길로 올랐다.

 

조팝나무에서 아스피린 추출
봄에 서울 청계천에 가면 화단에서 새하얀 조팝나무 가지들이 너울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4~5월 도로변 산기슭이나 언덕, 공원 화단에서 흰 구름처럼 뭉게뭉게 핀 꽃이 있다면 조팝나무꽃일 가능성이 높다.


조팝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의 산과 들에서 흔히 자라는 나무다. 흰색의 작은 꽃이 다닥다닥 피어 있는 가지들이 모여 봄바람에 살랑거리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흰 구름이나 솜덩이처럼 생겼다. 봄에 시골길을 가다 보면 산기슭은 물론 밭둑에도 무더기로 피어 있고, 낮은 담장이나 울타리를 따라 심어놓기도 했다. 풍성한 꽃이 보기 좋아 공원에 조경용으로 심어 놓은 것도 흔히 볼 수 있다. 우리 아파트 앞 화단에도 해마다 봄이면 조팝나무꽃이 몽글몽글 피어나고 있다. 특히 바람이 불 때 함께 오는 조팝나무 꽃향기는 발걸음을 멈추게 할 정도로 상쾌하다.


고전소설 <토끼전>에도 조팝나무가 나오는데, 자라가 토끼 간을 구하기 위해 육지에 올라와 처음 경치를 구경하는 대목에서다. ‘소상강 기러기는 가노라고 하직하고, 강남서 나오는 제비는 왔노라고 현신(現身)하고, 조팝나무에 비쭉새 울고, 함박꽃에 뒤웅벌이오띵.’


무엇보다 조팝나무는 인류에게 매우 고마운 식물이다. 전 세계 인구가 하루 1억 알 넘게 먹는다는 진통제 아스피린은 ‘아세틸살리실산’이라는 물질로 만드는데 이 성분이 바로 버드나무와 조팝나무에 들어 있다. 1890년대 독일 바이엘사는 조팝나무 추출물질을 정제해 아스피린을 만들었다. 아스피린이라는 이름은 조팝나무의 속명(屬名) ‘스파이리어(Spiraea)’와 아세틸의 머리글자인 ‘아’를 붙여 만든 것이다.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은 앞으로 이팝나무와 조팝나무의 꽃을 보고 헷갈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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