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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생존을 위한 독서에서 존재를 위한 독서로

독서, 모든 것의 시작



이 책에는 동서양의 고전 21권을 중심으로 생각의 힘을 키우는 아포리즘(신조, 원리, 진리 등을 간결하고 압축적인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이 가득해서 좋다. 세상이 좋아지지 않는 이유를 밝혀주는 시키고 대학의 고전 읽기가 그것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음에 놀라고 당황스럽다. 지혜의 시작이 ‘나는 아는 것이 없다’ 던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철학에 한숨 섞인 긍정이 나를 감싼다.

현명하다는 말은 지혜롭고 사리에 밝다는 뜻이다. 공부의 목적, 고전을 읽는 목적은 현명한 사람이 되어 보다 나은 행동을 통해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함에 있다. 정신의 공허와 마음의 부족함을 비추어주는 고전을 만나는 책읽기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다. 읽을수록 목이 마르다. 중독 중에 최상은 책읽기가 아닐까.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고 인생의 가치를 깨닫기 위한 공부는 큰 공부다. 그 공부는 우리가 왜 태어났고 왜 살아가야 하며 고난과 경험이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려 하는지 살피게 한다. 인간이 돈을 벌고 번 돈을 쓰면서 느끼는 말초적 행복만을 추구하는 존재라면 그것은 동물과 다를 것이 없다.

인간은 돈 이외의 것도 필요하며, 오히려 돈 이외의 것을 발견할 때 진정한 행복도 알게 되는 법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가진 문제의식의 가치가 여기 있다. 세상은 부조리하고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는가? 이런 질문은 우리의 존재 이유를 고민하게 해준다. ‘왜 살지?’라는 고민을 하다 보면 일상의 사소한 문제들은 별것 아닌 것이 돼버린다. 이런 질문은 우리를 인생의 밑바닥으로 데려가 내가 누구인지를 묻고 생각하게 한다. (23~24쪽)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생각해볼 주제는 ‘죽음’이다. 우리가 죽음을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는 죽음을 생각할 때 더욱 현명해지기 때문이다. 중년이 되면 변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인생관이다. 중년이란 인생의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한마디로 죽을 날이 그렇게 멀지 않다. 중년이 되면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기에 자연스럽게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죽음을 생각하게 되면서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한다. (65~66쪽)

《신화의 힘》을 쓴 조셉 캠벨은 고전에 대하여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제대로 된 글” 이라고 정의한다. 제대로 된 사람이 전제 조건이라는 점에서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글과 삶이 괴리된 작가의 글은 위선적이기 때문에 공감을 얻기 어렵다. 위대한 삶을 산 작가들의 글이 세월을 이기고 오래도록 남는 이유다. 노벨문학상에 주목하는 이유도 같은 이유다. 조셉 캠벨은 박사학위 과정을 앞두고는 홀연히 학교를 떠나 오두막집에서 책만 읽으며 5년을 지낸다.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에 사로잡혀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신화 공부에 필요한 기초적인 공부를 그때 다 했다고 할 정도였다.

영웅과 구도자의 차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뭘까?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을 일종의 구도자 같은 상태라고 생각한다. 험난한 세상에서 삶의 지팡이가 되어줄 스승과 책들을 간절한 마음으로 갈구하기 때문이다. 공자나 석가모니도, 소크라테스도 모두 구도자였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불완전한 상태에서 세상을 헤쳐나 가려면 구도자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안상헌 작가는 말한다. “공부에서도 구도자와 영웅이 있다. 자신의 곤란을 극복하기 위해 배움을 추구한다면 이것은 구도자의 상태다. 영웅은 배운 것을 공동체를 위해 사용한다. 영웅은 보다 큰 것을 생각하고 큰 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그럼으로써 더욱 커진다. 구도자와 영웅은 생각의 크기가 다르다.”고. (116쪽)

지식이 종이 위에서만 머무를 때 그 지식은 죽은 것이 된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견할 수도, 우리 삶을 구원할 수도 있다. 살아 있는 지식, 실천적이고 현실적인 지식이 되려면 공부한 것이 삶에 녹아들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진리에 대한 믿음과 실천이다. 그것이 없을 때 공부는 수단이 되고, 삶은 진리와 괴리된다. 지금 우리가 겪는 삶의 위기는 실천의 결여에서 오는 것이다.(145쪽)

철학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과 본질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보는 법을 배우는 것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은 눈으로 하여금 깊고 사색적인 주의력, 오래 천천히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이것을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157쪽)

엄밀히 말하면 이 세상에 옳고 그름은 없다. 옳고 그름은 인간이 자신의 관점에서 만들어 놓은 편견일 뿐이다. 이런 편견에서 벗어날 때 사물과 세상의 본질이 더욱 잘 보이는 법이다. (168쪽)

플라톤의 교육론도 인상적이다. "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육이란 장님의 눈에 빛을 넣어주는 주입식이어서는 안 되네. 우리가 탐구해본 바에 따르면 우리의 영혼 속에는 이미 학습에 필요한 능력이나 기관들이 다 구비되어 있네. 그래서 밝은 곳을 보기 위해서는 몸 전체의 기능을 전향시켜야 하듯, 영혼으로 하여금 밝은 부분을 볼 수 잇도록 관조하면서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네. 그것이 최고의 존재인 선을 찾아가는 첩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네."(158쪽)

스승이었던 플라톤은 영혼의 세계를 믿었고 죽어서 이데아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동안 지성을 통해서 이데아를 추구하는 철학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과는 생각이 달랐다.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 행복한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현실의 행복에 대해서 연구하고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 지를 고민했다.(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스 윤리학> <정치학>165쪽)

탁월성을 향한 노력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최고의 탁월성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탁월성이란 인간을 이롭게 만들어주고 인간답게 살게 해주는 것을 말한다. 탁월성은 지성의 탁월성과 성품의 탁월성으로 구분된다. 지성의 탁월성은 교육을 통해서 달성할 수 있고, 성품의 탁월성은 습관 형성을 통해 도달할 수 있다.(166쪽) 이 대목에서 교육의 필요와 학교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는다. 학교와 선생님은 그 탁월성을 향한 노력을 열심히 해야함을!

정치적 삶이란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성찰적 사고를 통해 스스로를 통제하고 선택에 책임지려 하는 의지를 말한다. (195쪽) 여기서 말하는 정치는 현대의 정치를 말함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삶은 정치적 삶이 아닐까? 위기의 순간에 그 사람의 인성이, 품격 수준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지식을 두 가지로 나눈다. 소유적 지식과 존재적 지식이 그것이다. 소유적 지식은 생존을 위한 지식이며 소유적 생존방식을 추구한다. 이것은 자기계발서나 직업을 얻기 위한 공부와 책 읽기에 해당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소유적 생존방식을 위한 독서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에 비해 존재적 지식은 실존을 위한 지식이며 존재적 생존방식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장자의 공부론도 공감이 간다. "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삶에는 끝이 있다. 아는 것에는 끝이 없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할 뿐이다. 그런데도 계속 알려고만 한다면 더더욱 위험할 뿐이다. 해결 방법은 익숙하고 고루한 지식 버리기, 선입관 내려놓기 경계를 허물고 모두가 하나임을 보는 것이다. (250쪽)"

어떤 외적인 일로 네가 고통 받는다면, 너를 괴롭히는 것은 그 외적인 일이 아니라 그에 대한 네 판단이다. 네 의견을 버려라. 그러면 네가 피해를 보았다는 느낌이 사라질 것이다. 내가 피해를 보았다는 느낌이 사라지면 피해도 사라질 것이다. (183쪽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에서)

공자, 정치적 인간의 길 "더불어 말을 해야 할 때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하지 않아야 할 때 더불어 말하면 말을 잃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도 말을 잃지도 않는다. <논어> 공자

생각한다는 것은 이성을 사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성의 뒤에 웅크리고 있는 본능을 무시해버렸다. 기업에서 인사이트(insight)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어떤 문제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통찰을 가리킨다. 기업이 인문학을 강조하는 것도, 사람들이 고전을 스스로 찾아 읽는 것도 이런 인사이트를 얻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문제를 잘 풀고, 해외유학을 다녀오고, 박사학위를 받아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인사이트로 연결되지는 않을 듯하다. 오히려 지식은 인사이트와 거리가 멀지도 모른다. 인사이트는 지식이 아니라 도취와 그 너머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돈키호테적인 것, 미토스적인 것, 비극적인 것,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해답은 그동안 우리가 동물적이라며 비천하게 여기고 오해했던 것들에 있지 않을까? (277~278쪽)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내가 만든 것이 우상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내가 만들어온 우상은 무엇이었을까? 절대적인 진리도, 옳고 그름에 대한 맹신도 모두 우상임을 깨닫는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 깨닫는 순간의 행복을 누리는 순간이 바로 天福이다. 이 책은 하늘이 준 복을 깨닫게 하는 것이 고전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시카고대학의 고전읽기를 소개한 이 책의 깊이와 저자의 통찰력에 감사하며 책을 덮는다. 몇 번은 더 읽어야 할 책이다. 메모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독서력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초록을 소개하는 것은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탓이다. 인문고전 독서지도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과 부모님께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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