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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 19세기 러시아를 만나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19세기 러시아의 젊은이들의 사랑과 삶을 만나다

톨스토이의 소설 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안나 카레니나는 다소 재미없고 나이차는 나지만 부유하고 능력 있는 남편, 사랑스러운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교양있고 사랑스러운 사교계의 꽃이다. 그녀는 젊고 멋지며 격정적인 브론스키 백작을 만나 그 사랑에 몸을 던진다. 감각적이고 격정적인 사랑의 화신인 안나와 브론스키와 대비되는 커플은 청렴한 지주 레빈과 키티이다. 그들의 사랑은 정직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영혼의 순수성이 곁들여져 아름답고 성스럽다. 레빈은 톨스토이 자신의 분신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철학적이고 도덕적이다. 끊임없이 정진적으로 성장하는 인물이다. 레빈과 키티는 이상적인 부부상에 가장 근접해 있다.
안나카레니나는 19세기 러시아 사회의 정치, 사회, 경제, 종규 등 거의 모든 것들이 다루지는 방대한 소설이다. 톨스토이의 다양한 관점이 책 속에 오롯이 녹아 있다.
석영중 교수는 강의에서 톨스토이의 모든 것을 레빈에게 투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소설은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불행을 안고 산다.” 라고 시작한다. 이 문장을 통해 톨스토이는 불행의 다양한 이유를 안나와 브론스키, 또 하나의 커플인 스테반과 돌리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스테반 오브론스키 공작은 가정교사와 바람을 피운 사실이 발각되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스테반의 여동생 안나 카레니나는 이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모그크바에 온다. 안나의 노력으로 두 부부는 화해하지만 안나는 이곳에서 젊은 브론스키 백작에게 사로잡힌다. 브론스키 역시 처음만난 기차역에서 안나에게 매혹당해 그를 사랑하며 청혼을 기다리던 기티를 외면한다. 레빈은 키티에게 청혼하나 거절당하고 시골로 내려간다. 사랑의 고통으로 키티는 병이 들어 요양을 떠난다. 브론스키와 안나는 밀회를 계속하며 속절없는 사랑으로 빠져들고, 안나는 남편 카레닌에게 이혼을 요구하지만 그는 거절한다. 결국 안나는 브론스키의 딸을 낳고 브론스키와 살기위해 떠난다. 상류사회의 멸시 속에서 안나는 브론스키의 사랑만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브로스키는 안나와의 생활 속에서 사랑이 식어가고 그 사실에 질투와 광기를 과민해 진다. 결국 안나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브론스키에 대한 절망감과 복수심으로 기차에 몸을 던진다.  

불행을 짊어지고 시작한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성장과 발전이 없는 사랑이다. 단지 욕구충족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안나는 끊임없니 브론스키에게 집착하고 그의 사랑을 소유하고자 한다. 사랑에 매달리는 안나, 그것이 짐스러운 브론스키는 결국 서로를 증오하게 되는 파국을 맞게 된다. 고려대 노어과 석영중 교수는 안나의 자살은 증오에서 오는 자기 학대이며 변함없는 사랑만을 쫒는 사랑은 불행하다고 말한다. 그에 비하여 레닌과 키티는 결혼한 뒤에도 불안, 의심, 질투를 하지만 끊임없이 서로 소통하며 성장하는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특히, 레빈은 자아의 성장을 보여주는데, 그 중 가장 명장면으로 꼽히는 것이 풀베기 장면이라고 한다. 레빈은 농부들과 함께 풀베기를 하는데, 그 때 그 과정에서 그는 자아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게 된다. 몰입의 모습이다.

레빈은 계속 젊은이와 노인 사이에서 풀을 벴다. 양가죽 재킷을 입은 노인은 여전히 쾌활하고 익살스럽고 움직임이 자유로웠다. 숲에서는 물기 어린 풀 틈에서 부풀어 오른 자작나무 버섯이 낫에 베여 계속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노인은 버섯을 발견할 때마다 매번 허리를 굽혀 줍고는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는 “또 할멈에게 줄 선물이 생겼네.” 하고 웅얼거리곤 했다. 축축하고 부드러운 풀을 베는 일이 아무리 쉽다 해도, 협곡의 가파른 비탈을 따라 오르내리는 일은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노인을 속박하진 못했다. 그는 계속 똑같은 모습으로 낫을 휘두르며 커다란 짚신에 쑤셔 넣은 발을 작은 보폭으로 단단하게 떼면서 험한 낭떠러지 위를 천천히 기어올랐다. 비록 온몸이 후들거리고 루바슈카 아래로 축 늘어진 바지가 떨리긴 했지만, 그는 걸어가는 내내 풀 한 가닥, 버섯 한 개도  놓치지 않으며 계속 농부들과 레빈에게 농을 지껄였다. 레빈은 그를 따라가면서, 낫을 들지 않아도 오르기 힘든 이 가파른 언덕을 이렇게 낫을 들고 오르다 보면 틀림없이 떨어지고 말거라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러나 끝까지 올라가 해야 할 일을 다 해냈다. 그는 어떤 외부의 힘이 그를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안나 카레니나 중에서)

톨스토이의 분신 같은 레빈의 모습을 통해 톨스토이는 인간의 삶이 감각적이고 욕구 충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좀 더 높은 경지의 삶을 이야기한다. 도덕적이고 종교적이며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젊은이로서 안락하고 풍요로운 생활보다는 농민들의 생활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하기를 원한다. 지주는 가진 자로 금숟가락을 물고 태어난 존재로 온갖 향락을 즐기는 것은 비도덕적이며 그 물질적 풍요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인식하고 그 풍요를 이룬 자들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열린 작가이다. 19세기 러시아의 젊은이와 21세기 한국의 젊은이가 과연 다를까라는 생각을 한다. 한국의 젊은이들 중 많은 이는 근면하고 성실하고 깊이 있는 철학적 성찰이 있는 삶보다는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는 풍족하고 감각적 모습을 더 선호하든 듯하다.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아름다운 안나가 결코 행복할 수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야한다. 그 불행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행복한 사람의 눈에는 긍정적이고 맑은 도덕의 향기가 서려있고 불행한 사람은 그 불행의 이유를 끊임없이 만들어 낼 것이다. 불행의 원인을 누군가에게 항의하고 싶을 것이다. 안나가 자신이 선택한 사랑으로 불행해지고 난 뒤 그 불행을 견디지 못하고, 브론스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요구하고 불행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 그 모습이다.

대문장가 톨스토이는 왜 이 문장으로 소설을 시작했을까? 다시 읽어본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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