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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닭털 같은 나날'을 읽고

평범한 소재에서 거대한 이야기를 뽑아내는 힘

난 개인적으로 황석영 작가를 무척 싫어한다.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대문호 운운하는 얘기가 있지만, 그의 글 스타일이 너무도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생각이나 말 자체를 크게 신뢰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말만은 충분히 수긍이 간다.

대단한 작가다! 지옥도 같은 세상을 능청스럽고, 냉정하게 그리고 있다. 온 세계를 뒤덮은 보통 사람들의 고단하고 쓸쓸한 일상을 드러내면서, 어째서 대지에 펼쳐진 인간의 역사가 끊임없는 변화를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나게 한다. - 황석영

책의 뒷표지에 실린, 이 책 『닭털같은 나날』에 대한 황석영 작가의 추천사 같은 글귀였다. 아마도 이 이상 이 작품을 명확히 규명할 말은 없는 듯 하다.

정확한 수치자체가 추산이 안 될 정도로 거대 인구 국가인 그 어마어마한 스케일을 생각해 봤을 때, 난 처음에 중국인 작가가 쓴 작품이라면 스케일 역시 매우 클 거라 생각했다.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읽을 때도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고, 이번 작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읽어 보니 그 생각은 여지 없이 깨지고 말았지만, 두 작품은 내게 커다란 깨달음을 주었다.

작품의 소재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가) 흔히 접하기 쉽지 않은 특별한 직업의 세계를 다루어야 한다거나, 잠시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작품을 치밀하게 구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읽어 본 위화의 소설과 류진운의 소설은 모두 너무도 평범한 소재를 다루고 있었다. 얼핏 보면 '어떻게 이런 것이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지인들과 만나 시간 때우기 용으로나 가능할 법한 한담 정도의 이야깃거리들이 소재가 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정도 얘기만 들어보면 작품의 깊이도 없어 보일 수 있고, 작품이 던져주는 메시지 또한 미미할 것이라 생각하기 쉬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장에 떨어지는 몇 방울의 가랑비를 의식하지 않고 하루종일 돌아다니다 보면 옷이 흠뻑 젖는 것과 같은 이치로, 두 작품은 내게 가랑비 같은 역할을 해 준 듯 했다. 작품의 처음에서 점점 끝으로 가면서 어느새 감동과 깨달음이라는 커다란 변화가 내 온 몸을 흠뻑 적셔 주었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세 편의 중편을 들여다 보자면……. 먼저, 한 가정의 일상 생활 속에서의 작은 바람-사실 그 바람들은 조금도 과욕은 아니었다. 아이를 조금 더 괜찮은 유아원에 보내려는 부모의 마음이나 방법은 옳지 않았지만 뇌물을 써서라도 집에서 너무도 먼 직장을 좀 더 가까운 곳으로 옮겨 보려 한 것이나, 실패한 시장경제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10원에 아등바등하는 그들의 모습은 오히려 너무나도 인간적이었다-과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벌어지는 가족 구성원들간의 자잘한 다툼들을 그린 「닭털 같은 나날」은, 작품의 제목이 주는 희화적인 느낌만큼 어쩐지 서글프기까지 한 상황을 무리없이 한 편의 코미디처럼 그리고 있었다. 읽어 보면서 어쩌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걱정들이랑 똑같은 걸 고민하고 있나 싶기도 했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정에서 보이는 사소한 다툼 역시 그들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묘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다음으로, 한 정부(공산당) 기관에서 인사이동 사태를 두고 벌어지는 기관 구성원들간의 담합과 모반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군상들과 그들의 심리와 행동의 양태를 그린 「관리들 만세」역시 유쾌하다 못해 뼈 아픈 공감을 불러일으켜 주었던 것 같았다. 뇌물이 통하고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내가 밀려나지 않으려면 저 자식을 밀어내야 하는 그런 약육강식의 세계'에 다름 아닌 모습들이 비단 그들만의 세상은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솔직히 말하자면 흡사하다 못해 너무도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선 신물이 올라올 정도였다고나 할까?

마지막으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바로 세 번째 중편인「1942년을 돌아보다」이다. 제목만큼 특이한 이 중편 소설은, 1942년에서 1943년에 걸쳐 중국 하남성에 밀어닥친 대기근 사건과 연관시켜, 공산당과 국민당의 싸움으로 국내 정세에 관심을 기울일 틈이 없었던(?) 장개석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소설이다. 사실 소설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도 생소할 정도로, 대기근으로 인해 무려 300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한 사건을 취재하는 형식으로 구성한 독특한 글이었다. 작가는 여기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하고 신문지상에 발표된 기사들을 게재하고 또 적절히 자신의 생각들을 나타냈다.

곳곳에서 사람이 죽어나가고 개가 사람 시체를 먹는 것은 물론이며 나중엔 사람이 사람까지 먹는 지경에 이르러도 오로지 체제 유지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던 장개석 정부와 지도층의 생각에 회의를 갖게 했고 그들의 잘못된 생각들이 그와 같은 대재앙을 불러 일으켰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다.

물론 이 과정들이 밖으로 모조리 까발려 놓고 고자질하는 형식의 그런 투정들이 아니라 여러 신문 기삿글과 당시 증인들을 통한 생생한 증언 등의 다양한 참고 자료들을 통해, 당시 대기근이 얼마나 혹독했으며 그에 못지 않게 정부가 얼마나 이 사태를 철저히 외면해 왔는지, 뿐만 아니라 이를 보다 못한 미국 언론인이 오죽했으면 미국에서 기사를 게재하여 다른 나라로부터 원조가 들어오는 지경이 되어 버린 그 현실을 통탄해마지 않고 있었다.

그처럼 장엄하고 화려한 곳에서, 말쑥하게 옷을 입고 커피를 마시며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던 소수가, 세계 대다수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짓는(210쪽) 그런 국제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소수-중국 인구에게 300만은 분명 소수는 맞는 듯 하다-의 아픔은 외면되는 것이 당연하며, 통치자가 되기만 하면, 피부색과 민족에 관계없이, 세계 일류의 의식주와 교통 수단을 누릴 수 있는(225쪽) 그런 위정자들이 그들의 아픔을 이해해 줄 리 없으며(아마도 이 점은 우리 나라의 위정자들도 조금의 예외적인 모습을 보이진 못한 것 같다)-, 1942년 중국에도 '맛있는 커피'가 있었다-장개석과 그의 참모자인 미국인 스튜어트가 다투는 것을 보며 뭘 그리 다투냐고, 그냥 잠시 앉아 맛있는 커피나 마시자며 둘을 화해시키려던 장개석의 부인 송미령의 말에서 화자가 따온 것-는 사실(227쪽)에서 그런 국제 사회의 분위기에 편승한 중국 정부와 그런 의식을 가진 위정자들이 있는 한, 한쪽에선 굶어 죽어가도 다른 한쪽에선 자신들이 뭘 먹어야 하는지를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상한 사회가 바로 그 당시의 중국이었단 사실을 일깨우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연예인들이 발벗고 나서서 자선모금공연을 벌여 거둬들인 수익금이 곧바로 이재민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단계적인 수탈과 중앙 관리들의 착복-구호금을 은행에 입금시켜 이자를 챙김-과 마지막 단계에서 17%라는 어마어마한 수수료를 낸 나머지 푼 돈들만 고스란히 쥐어지는 상황(283쪽)에서도 중국 사회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결국엔 1943년 하남성에 침공한 6만의 일본군이 30만의 중국 대군을 섬멸한 데에는 하남성 사람들의 활약(?)-일본군이 군량을 방출하여 하남성 사람들을 기근에서 구제해 줌으로써 민심을 돌리게 하고 만 셈이 되어 버렸다. 기근과 기아의 공포에서 놓여 난 그들은 기꺼이 매국노 아닌 매국노가 되어 버렸다. 작가는 말했다. 누가 손가락질할 수 있을 것인가, 라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런 반역 행위를 하게 된 그 근저에는 중국군 장교의 한 마디가 크게 작용을 했고 이 말은 바로 극심한 대기근을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해 버린 장개석 위원장의 생각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결론을 내렸다.

"백성들이 죽어도, 땅은 역시 중국인 것이다. 만약 군인이 굶어 죽으면, 이 나라는 일본군에게 접수되어 관리될 것이다." (292쪽)

난 황석영 작가와 같은 전문 작가가 아니다. 물론 비평가도 아니다. 그래서 더 거창하고 고상한 말로 류진운의 작품을 더 이상 그럴 듯하게 논할 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가벼운 소재라도 충분히 이야기를 이끌어 갈 수 있으며 시대의 아픔과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가진 사람만이 작품 속에 오롯이 담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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