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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테스의 일생이 주는 의미

신은 있을까? 그렇다면 왜 한 여자의 일생을 이렇게 비참하게 짓밟고 형장의 이슬이 되게 하였을까? 공간적 배경은 다르지만 테스가 살던 시대도 그러하였다. 인습에 매어 희생을 강조하는 남성우월주의 시대상은 지금까지 그 맥을 유지하고 있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우리네 여인들의 삶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여기에 나오는 테스도 그런 여인의 일생을 부각해 주고 있다.

테스는 가난한 소작농의 장녀였다. 부모님은 더버빌 가문이란 옛 명예를 빌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열여섯의 테스를 흑심 있는 알렉 더버빌의 집으로 일하러 보낸다. 그러나 흑심을 눈치채지 못했던 테스는 알렉에게 몸을 유린당하고 사생아를 잉태하지만 죽고 만다. 그리고 그 충격을 뒤로 새 삶을 찾아 다른 농장에서 일하던 중 남편 에인절 클래어를 만난다. 에인절 클래어의 집안은 성직자 가문으로 원리 원칙의 계율을 중요시하였다.

하지만 에인절은 그것에 반감을 품고 양가의 어떤 친척도 없는 가운데 결혼식을 올린다. 그리고 첫날밤 테스는 지금까지의 있었던 일을, 에인절도 여기까지 오며 있었던 일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 고해성사는 또 다른 파장을 몰고 온다. 테스는 남편의 과거를 용서했지만 순결한 처녀로 믿고 있던 에인절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남미 대륙으로 긴 방황을 시작한다. 그로 인해 테스의 삶은 돌아오지 않는 에인절에 대한 기다림과 욕심을 채우려는 알렉 더버빌의 끈질긴 유혹의 수렁에 적과 동침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긴 방황의 종지부를 찍고 돌아온 에인절과 해후를 한 테스는 결국 알렉을 살해하고 그렇게 사랑했던 에인절과 며칠 되지 않는 행복감에 젖어들지만, 살인죄로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소설이지만 정말 안타깝다. 전근대적이면서 모든 게 남성우월주의로 얼룩진 시대에 가난에 볼모가 되어 딸을 사지로 몰아넣는 테스의 부모, 그리고 재력을 앞세워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하는 알렉, 자신의 허물은 별것 아니지만 테스는 반드시 순결해야 한다는 에인절의 행동, 판단의 수평선은 멀미를 거듭한다.

어느 시대 어떤 집이건 재력만 있다면 철부지 자식들을 삶의 전쟁터로 내몰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단지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현실에 굴복하며 눈물을 흘렸을 부모의 가슴은 형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부호들의 횡포. 예나 지금이나 가진 자만큼 큰소리치는 자는 없을 것이다. 물질의 위력은 여전히 정의의 개념을 흔들고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다는 통념이 판치는 현실이다. 깨달음이 있고 베풂이 있는 자의 재물은 선으로 쓰임새를 달리하면 훈훈한 세상을 만들지만 악한 자의 재물은 치명적인 무기로 전락한다. 그런 모습은 심훈이 쓴 상록수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일본을 등에 업은 친일파 지주들의 횡포에 스러지는 소작농의 단면들은 테스의 사생아가 세례도 못 받고 약도 못 쓰고 죽는 모습과 뭐가 다르랴?

남성의 동물적 기질과 청교도적인 자존심의 희생물이 된 테스! 성 이데올로기에 있어서도 여성이 자유롭지 못한 인습의 폐단은 테스가 살았던 19세기 말 영국이나 유교로 큰 맥을 수놓은 조선 시대 구한말이나 다를 게 없다. 수컷의 근본적인 속성은 번식과 욕구충족이 주류를 이룬다. 순간의 쾌락을 위하여 파괴하고 악을 만들어 낸다. 그 악역이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인물인 알렉 더버빌이다. 여린 순결을 짓밟고도 모자라 개심했다는 탈을 쓰고 끝까지 욕망의 눈초리를 버리지 못하는 가련한 남자의 욕망. 그 결말은 테스의 단죄로 막을 내린다. 비록 살인은 잘못되었지만 테스의 행동은 카타르시스를 던져준다.

가련한 사내 에인절 클레어! 신부집안의 계율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사상을 찾으려 했지만 그 역시 고정관념을 깰 수 없었다. 누가 물어본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순결을 잃은 여자를 자신의 배우자로 선택할 수 있을까? 그러면 대부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용서해줘야 한다고 말하지만, 마음 밑바닥에는 여전히 부정 하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겉 다르고 속 다른 남자의 마음인가?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는 갈등이 순결의 중요성이었다. 육체적인 순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순결이라며 테스는 끝까지 외쳤다.

분노 반 아쉬움 반으로 책을 덮으며 테스의 모습을 떠올린다. 비록 여러 상황이 얽힌 비극적인 한 여인의 삶이었지만 누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리고 테스의 진심을 외면한 에인절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판단의 숙제로 남겨놓았다.

너무나 처절했던 그녀의 삶. 끝까지 마음의 순결을 지키며 복수의 화신으로 천사의 합창 앞에 선 가련한 여인 테스. 오늘을 사는 모든 이들은 한 번쯤 생각의 나침반을 테스에게 맞춰 보는 것도 삶의 이정표를 새롭게 하리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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