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는 산업화 시기 중등교육 기회의 확대와 직업계 고등학교 육성, 그리고 산업인력 양성을 위한 특성화 대학 정책을 살펴보았다. 교육기회의 획기적인 확대는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 발전을 뒷받침할 인적자본을 공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산업화 시기 교육정책이 교육기회의 양적 확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1980년대부터는 교육체제 자체를 정비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이 이동하였다. 1980년대 한국 교육의 거대한 변화는 국가적 차원의 대수술이었던 ‘7·30 교육개혁 조치(1980년)’로부터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이 개혁 조치를 기점으로 교육재정과 교육행정, 유아교육과 평생교육 등 오늘날 교육국가의 기본 틀이 본격적으로 마련되기 시작했다. 대체로 1980년대 교육정책은 과외 전면 금지나 대학입시 개편과 같은 정책으로 기억되며, 군사정권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한 정책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러한 역사적 평가는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시기의 교육정책을 유화책이라는 관점만으로 이해하기에는 교육체제 전반에 걸쳐 추진된 제도개혁의 범위와 내용이 매우 폭넓었다. 교육정책사의 관점에서 보면 이 시기에는 교육재정과 교육행정, 유아교
2026-08-05 10:00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참 솔직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속담을 인정하는 순간, 마치 내가 질투심 많고 속 좁은 사람인 것만 같아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도 어렵다. 참 묘하고도 짓궂은 속담이다. 사실 우리의 복통 유발자는 꼭 ‘사촌’일 필요도 없다. 나와 비슷한 연차의 동료 교사가 먼저 승진했다는 소식, 친구 자녀의 명문대 합격 소식,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대학 동기가 강남권 새 아파트에 입주했다는 소식까지. 심지어 SNS에서 나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살던 지인이 최고급 해외 휴양지 사진을 올렸을 때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정말 잘됐다, 축하해!”라는 말을 건네지만,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었는데’, ‘왜 저 사람에게는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지?’ 등 축하와 부러움, 시기와 씁쓸함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경험하곤 한다. 이상한 일이다. 내 삶은 어제와 달라진 것이 없다. 어제와 같은 집에서 살고, 지난달과 같은 월급을 받으며, 늘 하던 대로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왜 주변 사람의 좋은 소식에 내 마음이 사정없이 흔들릴까? 내가 옹졸해서, 인격이 덜 성숙해서일까? 아니다. 오히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감정, 즉 ‘시기’나…
2026-08-05 10:00
사고외주 (홍진기 지음, 어크로스 펴냄, 152쪽, 1만 5,000원) 편리함을 이유로 생각하는 과정 자체를 AI에게 넘겨주는 ‘사고외주(思考外注)’ 현상을 짚는다. 대학 교수인 저자는 강의실에서 마주한 학생들의 매끄러운 보고서에서 고민과 망설임 등 사람 냄새가 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는 우리가 ‘똑똑한 무능함’에 빠져들고 있다고 경고한다. 질문을 던지고 상충하는 정보를 비교하며 논리를 다듬는 비효율적인 시간이야말로 인간의 판단력을 키우는 핵심임을 역설하며, 사유의 주도권을 되찾아올 것을 제안한다. 신화의 역사 (심용환 지음, 민음사 펴냄, 정보 없음, 1만 9,000원) 신화를 흥밋거리 정도로 소비하는 경향을 지적하며, 수천 년간 끊임없이 재해석되어 온 역사적 산물로서의 가치를 조명한다. 그리스신화의 시작부터 북유럽과 이집트, 그리고 중국에 이르기까지 각 문명이 시대의 위기와 욕망을 어떻게 신화화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저자는 아이돌 숭배, 팬덤 정치, 음모론 등을 새로운 형태의 신화로 평가하며, 인간에게 거대 서사로서 신화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다. 읽지 않는 사람들 (나오미 배런 지음, 전병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412쪽, 2만 2,000
2026-08-05 10:00
최근 드라마 참교육을 계기로 ‘교권보호국’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물론 현실의 교육행정이 드라마처럼 작동할 수는 없다. 교육활동 보호는 감정적 응징이나 즉각적 제재가 아니라, 법령과 절차에 따라 교사의 교육활동을 보호하고 학생의 학습권을 회복하는 공적 책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교사가 드라마 속 교권보호국에 공감한 이유는 분명하다. 악성민원, 반복 민원, 생활지도 이후의 아동학대 신고, 교육활동 침해 사안이 뒤섞일 때 교사는 여전히 혼자 대응해야 한다고 느낀다. 제도는 늘어났지만,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체감은 충분하지 않다. 최근 민주연구원에서 제안한 교육활동보호국 논의의 핵심은 별도의 ‘응징 조직’을 만들자는 데 있지 않다. 교사 개인에게 전가되어 온 민원·신고·분쟁 대응 부담을 학교·교육청·교육부가 공식적으로 책임지는 체계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교육활동보호국은 교사 대신 싸워주는 조직이 아니라, 교사가 혼자 싸우지 않도록 만드는 국가책임형 교육활동 보호체계의 상징이다. 서이초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서이초 사건 이후 정부는 교권 보호와 학부모 민원 대응을 위한 여러 대책을 추진해 왔다.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보호하기 위…
2026-08-05 10:00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거주형태, ‘전세’ 우리나라에는 세 가지 거주 형태가 있다. 바로 매매·전세·월세다. 매매와 월세는 다른 나라에도 존재하지만, 전세는 매우 드문 형태이며 사실상 우리나라에만 남아있는 독특한 제도다. 외국인들에게 전세 제도를 설명하면 고개를 갸웃거릴 만큼 낯선 개념이지만, 전세는 수십 년 동안 우리 주택시장에 계속 남아있었다. 또한 만기 때 보증금을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으니 사회초년생 입장에서는 주거비를 낮추는 동시에 자산 형성의 종잣돈을 모으는 경로로 많이 활용됐다. 이토록 특이한 임차 형태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집주인과 세입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과거 고도 성장기와 고금리 시절, 집주인에게 전세 보증금은 은행 대출보다 저렴하고 유용한 ‘무이자 사적 금융’이었다. 이를 통해 집주인은 자산을 증식하거나 또 다른 부동산에 투자할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고, 세입자 역시 매달 생돈이 나가는 월세를 아껴 자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즉 전세는 집주인도 세입자도 모두 만족한 공생의 산물이다. 전세는 시장의 공급과 수요를 매끄럽게 잇는 윤활유 세입자가 이처럼 매달 나가는 고정 주거비 없이 자산을 축적하는 동안…
2026-08-05 10:00
한때 학교는 작은 사회이자 풍요로운 무대였다. 아이들은 이른 아침 합창단의 화음 속에서 하루를 열었고, 오후에는 오케스트라의 활시위 너머로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며 음악의 결을 익혔다. 작품 한 점, 글 한 편에도 학교의 따뜻한 인장이 박힌 상장이 주어졌고, 학급 임원 선거는 어른들의 정치보다 한층 진지한 민주주의 학습의 장이 되었다. 평가는 성장의 거울이었으며, 틀린 답 옆에 놓인 빨간 빗금은 부끄러움의 표지가 아니라 다음 발걸음을 위한 이정표였다. 그러나 지금, 이 풍경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사라지는 까닭은 교육철학의 진보적 변화도,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도 아니다. 다만 극소수에 불과한 일군의 학부모가 보내는 민원이 학교의 일상을 잠식한 결과다. 일본 교육계는 일찍이 이런 부모를 ‘몬스터 페어런츠(Monster Parents)’라 호명했고, 미국 사회는 같은 현상을 ‘헬리콥터 페어런트’와 더 공격적인 ‘잔디깎이 부모(lawnmower parent)’로 분류한다. 헬리콥터가 아이 머리 위를 맴돌며 위험을 감시한다면, 잔디깎이는 아이의 앞길에 놓인 풀 한 포기까지 미리 깎아 없앤다. 이름이 무엇이든 본질은 하나다. 자녀를 향한 사랑이 공동체의…
2026-08-05 10:00
올여름 전 세계 영화팬들이 가장 기다리는 영화 중 한 편은 누가 뭐라 해도 오디세이(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임에 틀림없다. 고대 그리스신화의 정수이자 현대 문학의 근간이 된 호메로스의 고전 오디세이아에서 트로이 전쟁부터 함락 이후 오디세우스가 10년 동안 미지의 세계를 거쳐 이타카로 돌아가는 여정을 웅장하고 장대한 서사시로 스크린에 그려냈다. 이번 ‘시네마 톡톡톡’에서는 천재 감독이라 불리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포인트들과 함께, 그리스신화를 다룬 영화들도 함께 복습해 본다. 609km 분량 IMAX 필름에 담은 이탈리아·스코틀랜드의 광활한 자연 “영화감독으로서 아직 채워지지 않은 영화적 영역,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것들을 늘 찾게 된다. 내가 자라면서 봐온 수많은 신화적 영화가 있었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급 예산과 IMAX 스케일이 만들어낼 수 있는 무게감과 진정성으로 구현된 신화는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런 면에서 오디세이는 거대한 이야기이고, 정말 흥미로운 도전이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영화로 만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놀란 감독이 누구던가! 5분마다 기억을 잃는 남자가 아내의 복…
2026-08-05 10:00
‘심각한 폭력 사태만 아니라면 교사에게 어떤 민원도 하지 않겠다.’ 학부모가 되어 아이를 보육기관·교육기관에 처음 보내게 되었을 때 내 나름대로 세운 원칙이다. 유치원·어린이집 교사로 15여 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학부모와 교사를 만나왔다. 그때 체득한 것은 나쁜 학부모도 나쁜 교사도 사실은 전체 인원에 비하면 극소수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이들 교육하기에도 바쁜 교사의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았고, 잦은 전화로 극성 학부모로 보이는 것도 피하고 싶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면 엄마도 초등학교 1학년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면 엄마도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법! 등굣길부터 화장실 사용하는 것 하나하나까지, 아직 어려 보이는 우리 아이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당황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남자아이라도 걸핏하면 잘 우는데, 어려움이 있어도 말도 못 하고 있으면 어쩌나.’ 전화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신학기 상담까지 기다렸다가 담임선생님께 궁금한 걸 여쭤보았다. 다행히 선생님은 친절하게, 저학년 아이들은 이래저래 잘 운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아이가 말로 표현할 수 있게 잘 지도해주시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2026-08-05 10:00
프롤로그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지리 교사로서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장소 중 하나였다. 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많은 지리 교과서에 실려 있는 그 사진이었다. 지면을 뚫고 치솟는 거대한 물기둥, 올드 페이스풀(Old Faithful) 간헐천의 그 장면은 어린 시절부터 ‘언젠가는 직접 보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으로 남아 있었다. 지구가 살아 숨 쉰다는 것을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눈앞에서 체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여행의 첫 번째 동기가 되었다. 또 다른 이유는 이 장소 자체가 갖는 의미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1872년에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옐로스톤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자연보전이라는 철학이 처음으로 법제화된 장소이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자연유산이기도 하다. 인간이 자연을 개발과 착취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시대에 이 땅만큼은 있는 그대로 보존하겠다는 결단이 어떤 풍경을 만들어 냈는지, 두 발로 걸으며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을 결정적으로 이끈 것은 아이들을 위한 주니어 레인저(Junior Ranger) 프로그램 워크북의 존재였다. 옐로스톤을 방문하기 전후로 꾸준히 접해 온 이 프로그램은 교육자로서 큰 영감…
2026-08-05 10:00
최근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겪는 큰 어려움 중 하나는 학부모와의 관계다. ‘학부모’는 본래 학생의 보호자를 의미하지만, 오늘날 학교 현장에서 이 단어는 종종 교권침해나 악성민원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와 연결되곤 한다. 현장에서는 “예전엔 이러지 않았는데”라는 탄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오늘날의 학부모는 실제로 달라진 것일까? 달라졌다면 무엇이, 왜 달라진 것일까? 지금 필요한 것은, 현상의 표면 아래에 숨겨진 ‘요즘 학부모’의 본질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렌즈다. 이들의 정체성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학교가 나아가야 할 공존의 방향을 모색해 본다. ‘밀레니얼 세대’ 학부모의 등장 오늘날 유·초·중등학교 학부모의 주축은 1980년대생과 1990년대 초반생을 아우르는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다. 이들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물질적 풍요 속에서 성장한 세대다. 핵가족 환경에서 개인주의에 익숙해졌고, 인터넷과 함께 성장한 초기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로서 정보탐색 능력 또한 매우 뛰어나다. 이러한 환경 속에 자란 요즘 학부모는 의문이 생기면 즉시 검색하고, 심지어 전문가의 말조차 검색을 통해 검…
2026-08-05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