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교사, 누가 우선이냐’ 식 논쟁 무의미 분쟁 사전 예방, 사후 조속‧원만 해결 노력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 ‘학교는 제2의 가정’이라는 말을 새삼 떠올리지 않더라도, 한 개인의 장래나 국가의 미래를 위하여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학교가 지식 보급의 유일한 창구였던 시대는 지나가 버렸다. 지식의 전파자요 인생의 멘토 역할을 맡았던 선생님 역시 스승이라는 이미지는 퇴색되어만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쩌겠는가. 시대가 변한 것을…. 인터넷과 매스미디어 등을 통한 넘치는 지식과 정보들,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전문 학원들은 자칫 학교 교육을 한 박자 뒤처진 것으로 낮게 평가해 버리기도 한다. 또 멘토 역할을 담당해 온 스승들을 단순히 수많은 직업 중 하나인 ‘교사’라는 전문 직업군 중 하나로 치부되어 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자녀를 ‘학원이나 개인과외, 홈스쿨링으로 학교 교육을 대체 하겠다’고 하는 이는 없다. 그 이유는 아직도 ‘학교는 지식의 산실이요, 인격형성의 터전이자 고도의 윤리와 도덕이 요구되는 곳’, ‘범죄나 비리, 부도덕, 비윤리
2011-01-24 14:55불행히도 외부 요인에 의해 교실에서 교사의 목소리는 잠기고 말았다. 하지만 교사라면 잊지 않는다. 교사와 학생 모두가 가장 행복해야 마땅한 공간은 교실이라는 것을... 교사들은 교실을 좋아한다. 그들이 교사로서의 존재감을 분명해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교실에는 그 어느 삶의 현장에서도 맛볼 수 없는 생기가 흐른다. 교사라면 이 생기를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교실 화단의 페튜니아 꽃 내음과 적당한 먼지 내음, 그리고 교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각의 공간감이 교사들을 이끌어낸다. 여기 교실에 교사들을 위한 무대가 펼쳐진다. 이곳 교실에 교사는 스스로를 한 사람의 연기자로 만든다. 자신이 지닌 것을 내보이고, 전달하고 그리고 쏟아 붓게 된다. 이곳은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교사와 학생들이 만나는 신성한 공간이 된다. 교사들은 학생들과 호흡하고, 대화하고 그리고 자신이 지닌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필자는 교무실에서 학생들을 격의 있게 대하는 편이다. 학생 개개인과는 다소 격의를 두는 게 옳다는 소신에서다. 그러면 교사와 학생으로서 교단과 교탁만큼의 거리감이 확보된다. 교사는 교사답고 학생은 학생다운 모습이 생긴다. 하지만 다수를 접하는 교실에
2011-01-24 09:18
2010 수능 응시자 10.9%만이 ‘한국사’ 선택 국사 홀대는 정체성, 생존 포기 어리석은 짓 최근 동북아 각국들은 영토・역사・자원・핵문제 등을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과 충돌을 벌였다. 특히 천안함, 연평도 피폭 사건 등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남북통일과 민족적 존립문제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복잡하고 심각한 국제정세 속에서 그 해법을 역사 속에서 찾아보려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역사학은 선조들의 발자취 속에서 터득한 교훈들을 바탕으로 오늘의 삶을 성찰하면서 내일을 설계하고 올바른 길로 찾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학문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제왕학(帝王學)의 핵심으로 국정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실례로 중국의 마오쩌뚱은 자치통감을 끼고 살았고, 영국의 처칠 수상은 국정의 해법을 역사 속에서 찾곤 했다. 역사는 공동체의 기억으로서 어느 민족이나 국민을 막론하고 정체성과 단결력, 존망을 좌우하는 정신적 동력으로 작용해왔다. 그래서 역사의식이 투철하지 못해 단결하지 못한 민
2011-01-19 09:28故 양주동 박사께서 ‘3인칭 단수’라는 뜻을 몰라, 30리를 걸어 영어선생님을 만나 뜻을 알아내고는 그 기쁨에 언제 집으로 돌아왔는지 몰랐다는 일화가 있다. 이렇게 우리 세대까지는 선생님이나 부모님을 통해 의문점을 해결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가르치는 지금의 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 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고, 통신망을 통해 대화를 나누며 성장한 세대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선생님보다는 네이버, 다음, 구글 등의 검색사이트를 통해 의문을 쉽고 빠르게 해결하는 세대인 것이다. 교사의 역할이 지식 전수자에서 생산자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어떤 생산자가 되어야 할까. 가수 서태지의 라는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 나는 어린 학생들에게 이 노래가 폭발적 인기를 누림에도 국민정서와 동떨어져 있으므로 조금 유행하다 곧 시들해 지리라고 단언했었다. 문화소비의 주체가 어른에서 학생 및 아이들로 바뀌어 간 것을 간과한 나의 불찰이 그런 단언을 하게 한 것이다. 물론 지금도 이런 종류의 노래들은 장르 융합 등으로 계속 발전해 끈끈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시장에 가보면 많은 생산물들이 점포 및 난전에 즐비하다. 이 상품들은 필요한 수요자
2011-01-17 09:21권위에 대한 최대한의 위협은 조소와 경멸이라고 한다. 요즘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는 체벌금지 이후의 우리 교실 모습에서 조소와 경멸이라는 단어가 연상됨은 무슨 까닭인가? 사제지간의 정으로 온기가 느껴져야 할 우리의 교실에 싸늘한 냉소주의 또는 무관심이 자리 잡은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교실은 교사와 학생간의 가르침과 배움의 접점을 이루는 공간이며, 그것은 교육적 권위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최근 한국교총의 설문 결과를 보면 체벌금지 이후 학생들의 생활태도와 관련한 변화 중에서 교사의 지도에 잘 따르지 않거나 거부하는 경향이 심해졌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교사들이 교실에서 잠을 자거나 떠드는 학생이 있어도 소극적으로 지도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외형적 체벌이 사라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이 교권 추락과 교단의 냉소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체벌금지로 인하여 학생지도가 어렵게 되었다는 것은 미래를 짊어질 우리 학생들이 체벌과 강압에 의지하지 않으면 교육되지 못할 존재란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근대식 교육이 시작되던 때에 일제강점기의 억압에 의한 교육이 얼마나 우리 교단을 황폐화시켰고, 교육을 왜곡시켰던가? 맹목적인 교육에 대한 귄위 추구도 위험하
2011-01-17 09:16대한민국 존재 사라지는데, 입시교육만 해서야 통일안보 교육예산 삭감해 무상급식 전환 안 돼 우리 대한민국은 지난해에 북한의 어뢰 피격으로 인한 천안함 침몰 사건과 연평도 민간인 거주 지역을 포함한 전역에 대한 무차별 포격으로 수많은 장병들과 민간인들이 살상되는 참변을 겪었다. 북한의 이와 같은 무모하고도 무분별한 군사적 행동은 우리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모독하는 도발이라는 표현 외에는 표현할 말이 없다. 이는 정치적 상황이 어찌되었던 무고한 장병과 민간인을 무차별 살상하는 북한 정권의 이러한 도발행위는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상당수의 후속 세대들이 이러한 참극이 그냥 영화나 게임의 한 장면 같아서 “설마 전쟁이 일어나겠나?”라는 우려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교총이 서울시내 초(5‧6학년), 중‧고교생 124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는 학생들의 안보관과 남북관계에 대한 의식 수준이 심각함을 보고하고 있다. 연평도 피격이 북한의 도발인 것을 모르거나, 한국의 군사 훈련이 북한에 원인을 제공했다는 등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응답자의 43%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고, 북한이 6
2011-01-13 13:59
“1993년 2학년7반 교실. 공자, 이생진, 조스캥 데프레가 함께했던 ‘즐거운 교실’은 이제 대한민국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2011년. 올 들어 연일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 엄혹한 겨울 한파를 뚫고 우리 학생들은 아침 8시부터 삼삼오오 교실로 찾아온다. 겨울방학 기간의 방과후학교 수업을 듣기 위해서이다. 필자도 이런 저런 방과후학교 수업으로 인해 방학 중 매일 출근하고 있다. 오가는 복도에서 그들은 해맑은 미소로 반갑게 내게 인사를 건넨다. 교사의 존재 이유를 그들이 깨닫게 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훈훈해진다. 반면 추위를 녹이는 이들의 향학 열기에 일견 대견하면서도, 갈수록 이들과의 교류가 단순한 수업 관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심히 허전해진다. 근자 들어 학교와 학생 그리고 교사 간의 삼자적 관계가 요동치고 있다. 특히 교사는 전통적 인성교육의 멘토에서 단순 기능인의 모습으로 그 역할이 아주 급격히 변모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후반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교육 현장의 전산화는 교사들의 순진한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교사 역할의 끝없는 확대를 불러와 감당키 어려운 폭발적인 업무의 증가를 초래했다. 담임교사의 경우를 보
2011-01-13 09:46“교장이 교사 하나하나를 기억해주고 믿어주며, 이해할 때 학교는 희망이 있다. 군불을 때야할 때 불쏘시개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게 관리자의 역할이다.” 친구들을 만나면, 그 자리가 더러 술이라도 오가는 자리라면 더욱, 친구들은 예의를 구하지 않고 말을 한다. “우리 같은 놈은 개고생 하는데, 선생은 방학이 있어서 할 만 할 거야. 안 그냐?” 하하 맞는 말이다. 그래서 선생이 부러운 것이라면 맞다. 선생에게는 펑펑 놀 수 있는 방학이 있으니까. 그러나 해즐리트의 말처럼 그것은 무식의 소산이다. 그들에게 아니라고 반박해봤자 무엇 하겠는가. 술 취한 자의 면책특권인 것을. 나는 그냥 웃어넘긴다. 그러나 야박한 말이지만, ‘선생의 똥은 개도 안 먹는다’라는 말로 논박을 끝내고 싶다. 얼마나 고되고 팍팍했으면 그 같은 말이 속담이 되었을까. 만약 선생이 편해서 할 만한 직업이라고 말하는 ‘교사’가 있다면 그는 분명 명품은 아니다. 초등과 중등이 서로 다르겠지만, 인문계 고교 같은 경우엔 방학 중에 보충학습을 해야 한다. 부장은 부장대로 긴급한 공문이 도착하면 출근해야 하고, 교장과 교감도 교대로 출근하여 학교를 관리해야 한다. 모두 바쁜 셈이다. 중요한 것은 그 하루
2011-01-03 1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