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24,505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그동안 교대생들이 우려하던 것이 현실로 드러났다. 2007학년도 초등교사 임용예정인원이 2006학년도에 비해 2,500여명이나 감축되어 교대졸업생들의 심각한 불안과 반발을 초래하고 있다. 발표가 늦어져 대체로 예년수준을 예상하고 있던 교대생들은 갑작스런 정원감축에 모두가 당황하고 있으며, 부산교대의 경우 4학년을 중심으로 수업거부 및 임용고사 거부에 들어갔다고 한다. 시험일을 20여일 앞 둔 시점에서야 임용인원이 발표되어 임용고사 준비생들이 전혀 마음의 대비를 할 수 없었으며, 이처럼 중차대한 수급인원은 중장기 수급계획에 의해 예견이 가능토록 해주어야 하나, 갑작스런 정원감축으로 교대생들을 당황하게 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교원수급은 여러 가지 변인들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중장기 계획이 수립되었다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나 이번의 발표는 너무나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제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행정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인데 교육부는 아직도 공급자 위주의 편의주의적이고 시대착오적인 행정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또한 이번 정원발표는 교육여건의 심각한 악화를 우려하게 한다는 점이다. 7.20 교육여건 개선사업의 일환으로 학급당 학생 수가 많이 줄어들어 교육여건이 개선되고 있었으나 참여정부 들어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개정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으로 인해 각 시도가 신규교사 충원에 따르는 인건비 부담으로 교사증원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경기도의 경우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바로는 초등교원 부족인원이 1만 명이나 됨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신규교사를 750명밖에 충원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재 초등교원의 법정정원확보율은 97% 정도이며, 그나마 교과전담교사확보율은 65%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국민기초교육을 담당하는 초등교육에서 조차 교원의 법정정원을 충원하지 못하고 신규채용 인원을 급격히 줄인다는 것은 교육여건을 심각히 악화시키는 일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명심하여 교육부는 교원수급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기 바란다.
전주교대 4학년생들은 1일 신규 초등교사 감원에 반발, 임용시험 응시를 집단 거부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학교 총학생회는 이날 4학년 재학생 중 특별편입생을 제외한 450명을 대상으로 임용시험 거부 찬반 투표를 벌인 결과 응답자 315명중 286명(91%)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에 따라 4학년생들은 이날부터 초등 임용시험 원서접수 거부에 돌입했으며 다음달 19일부터 치러지는 교육학과 논술, 면접 전형 등에도 응시하지 않기로 했다. 학생들은 이날 오후 교원 수급 재조정을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교육부가 내년 신규 초등교사 정원을 감축한 것은 교육 현장을 무한 경쟁 체제로 몰아넣으려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총학생회는 2일 오전부터 전교생 2천900여명을 대상으로 수업거부 찬반 투표를 벌이는 등 교사 정원 재조정을 요구하며 본격적인 투쟁에 나설 계획이다. 한편 이날 오후 4시까지 도 교육청에 접수된 초등 임용고시 응시자는 90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경남도교육청은 내년도 초등학교 교원 300명을 모집한다. 경남교육청은 1일 2007학년도 공립 초등학교 교사 임용 후보자 선정경쟁시험 변경 공고를 내고 지난 10월 210명으로 발표된 초등학교 교원 모집인원을 90명 늘려 모두 300명을 선발한다고 밝혔다. 당초 경남교육청은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학생수 감소, 학급 감축, 학교 폐교 등을 이유로 지난해보다 대폭 감소된 정원을 배정받았으나, 교육부에 교원 수급 장기계획에 따른 정원 조정을 추가로 건의해 모집 정원을 늘렸다.
2008년부터 모든 초중고교에서 교원평가제를 전면 실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이 1일 입법예고 돼 교원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교육부는 규제심사, 법제심사 등을 거쳐 내년 2월까지 입법을 완료할 계획이다.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교육부장관 및 교육감은 소속 교원에 대하여 상급자 및 동료, 학생 또는 학부모의 참여에 의해 실시되는 교원의 능력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평가를 실시하고 ▲교육감과 학교장은 교원능력개발평가와 능력개발 지원을 위하여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실시한다고 규정했다. 교육부는 교원평가를 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확보해 시범학교를 내년 500개까지 확대 운영한 후,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평가내용을 마련키로 했다. 이에 앞선 지난달 20일 교육부는 2008년부터 유치원교원, 전문상담교사, 사서교사, 보건교사, 영양교사를 제외한 모든 초중등 교원을 대상으로 하는 교원평가방안을 발표했다. 평가주기는 3년으로, 동료교원은 평소 관찰이나 수업참관 등을 종합해 평가하고 학부모 및 학생은 설문 조사서를 작성, 제출하는 방식으로 평가에 참여한다. 평가결과는 개별 교원에게 통보되고 개인별 결과는 공개되지 않지만 해당 학교 교장ㆍ교감에게 통보된다. 평가결과는 인사와 연계되지 않는다. 아울러 내년부터 전국 초중고교 500개교를 대상으로 교원평가 시범운영이 확대 실시된다. 시도별 3~6개교, 지역교육청별 1개 초등학교와 1개 중학교 이상, 국립대 부속학교, 기존 시범학교 등이 우선 선정된다. 한편 교총은 ‘교원평가 시범 운영을 2,3년 연장한 후 법제화 여부를 결정하라’며 ‘교원평가 연내 법제화 반대’ 및 연금법 개악 반대 등 교육현안에 대한 전국 교원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일본 큐슈 남쪽에 위치한 마야자키현 교육위원회는 금년도부터 우수한 교원을 인정하여, 다른 교원들의 모델이 될 수 있는「슈퍼티처」제도의 시험 실행을 시작하였다. 이 제도는2009년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을 하는 것으로 새로운 직책을 설정하여, 교감이나 교장 승진 코스와는 다르게, 현장에서 가르치면서 경력을 쌓아 승진할 수 있는 길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 슈퍼 제도는 관리직에 필적하도록 봉급면에서 후한 대우도 검토하고 있다. 교단에 서면서 수업 상담이나 공개수업, 연수회 강사 등도 해내는 "슈퍼 선생님"을 양성함으로서, 교원 전체의 지도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현은 올해 3월, 모범적 사례로서, 초중고에서 경력을 20~30년의 슈퍼티쳐 7명을 인정하였다. 각 교장으로 부터 추천을 받아 28명을 현교육위원회가 응모 서류나 수업 내용을 세밀하게 조사하여 선정하였다. 국어과 슈퍼교사로 인정된 시립초등학교 한(47살)교사가 6월에 한 공개수업에는, 20명 정원에 백명이 넘는 교원이 견학을 신청하였다. 수업은 5학년의 국어로 나라현의 재건에 종사하는 대장장이들의 일에 임하는 태도나, 생각을 묘사한 글을 제재로 하였다. 낭독을 반복한 후에, 학생들이 3명 1조로 감상과 코멘트를 서로 말하는 것을 마쯔다케교사가 돌면서 듣는다. 「잘하는 아이」만이 아니라, 전체가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견학자는「속도가 적당하다」,「문제를 내는 방법이 적절하다」라고 견학 감상을 털어 놓았다. 마쯔다케 교사는 슈퍼티처 제도에 대해서 「학생들의 성장을 현장에서 실감할 수 있는 것은, 저에게 있어서 큰 매력」이라는 것이다. 인정된 7명의 공개수업은 1학기만 12회 실시하였다. 수업 후에는 교사간의 의견 교환과 워크숍도 있어서, 신입교사로부터 근속 30년을 넘는 배테랑까지 폭넓게 참가하였다. 이처럼 우수한 교원을 인정하는 제도는, 히로시마현이나 도치기현의「엑스퍼트 교원」, 에히메현의 「수업의 철인」등이 있고, 큐슈에는 처음으로 시험하여 보는 것이다. 교토부는 「슈퍼티쳐」,토쿄도의 「수업스페셜리스트」의 명칭으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교원측으로 부터는 「인정 기준을 잘 모르겠다」,「납득이 되는 요건을 제시했으면 좋겠다」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마야쟈키현 교육위원회는 내년도 이후, 수업뿐만 아니라, 진로나 클럽활동의 지도력, 학급 경영력 등도 인정 요건으로 도입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교원의 자질 향상을 위한 노력이 각 지역 교육위원회별로 이루어지고 있다.
전북 지역에서 신규 초등교사 정원이 대폭 줄어들면서 전주교대 학생들이 임용고시 거부 찬반투표에 돌입하는 등 반발하고 있지만 교육청은 교사정원 확충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갈등이 확산하고 있다. 1일 도 교육청과 전주교대 총학생회에 따르면 내년 도내에서 선발되는 초등교사는 160명으로 전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전주교대 4학년생이 510명인 점을 감안하면 올해 임용고시에서는 최소 3대1 이상의 경쟁률을 보일 것으로 교육청은 내다보고 있다. 특히 임용고시 '재수생'인 지난해 전주교대 졸업생이 90여명에 달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올해 경쟁률은 지난해 경쟁률 1.7대1을 크게 웃돌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전주교대 총학생회는 이에 대해 "교육 현장을 무한 경쟁 체제로 몰아넣으려는 처사"라며 반발, 이날 오전부터 4학년 재학생을 대상으로 임용고시 거부 찬반투표를 벌이고 있다. 도 교육청은 그러나 "신규 초등교사 정원을 재조정하는 방안은 사실상 불가능 하다"고 밝혀 갈등이 확산하고 있다. 교육청 관계자는 "교육공무원 선정 규칙에 따르면 시험계획은 20일전에 공고해야 하는 만큼 정원 변경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교육부에서도 정원 확충과 관련한 지침이 내려온 적이 없어 도내에서는 증원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교육청은 임용시험 원서접수를 오는 3일 마감하고 다음달 19일부터 교육학과 논술, 면접 전형 등을 실시해 내년 1월12일 최종합격자를 발표할 계획이다.
‘만5세 초등 입학’안은 학제개편 논의에서 삭제되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일 이군현 의원(한나라)과 유아교육발전을위한유아교육대표자연대 주최로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만5세 초등학교 전면취학 주장, 무엇이 문제인가’토론회에서 이윤경 서원대 교수는 “ 만6세 초등입학 유예율이 9.6%에 이르는 등 만6세 초등 입학에 대한 불안이 증대되고 있다”며 “초등・유치원 학부모, 초등 교사 모두가 반대하는 입학연령 하향화는 학제 논의에서 전면삭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등・유치원 학부모, 초등 교사 세 그룹 모두 ‘현행 학제, 즉 만6세 초등 입학 학제 유지 적절’(49.5%, 73.2%, 86.1%)에 가장 높은 답을 보였으며, 전체적으로도 현행학제 유지(70.5%), 7세 입학이 더 적절(18.4%), 만5세 입학 찬성(9.3%)의 순으로 나타났다. 신은수 덕성여대 교수 역시 “세계 유아교육 동향 및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만6세 취학이 적정하다”며 이 교수의 제안에 힘을 보탰다. 신 교수는 “2005년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보고한 경제 순위 20위 국가 80%가 초등 취학 연령 만6세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만7세 입학 4개국(20%), 만6세 입학 12개국(60%)으로 80%가 만6세에 초등 입학을 시키고 있으며, 만5세 입학 학제는 1개국뿐. 신 교수는 “만5세 입학 국가인 영국도 초등입학 을 6, 7세로 전환하자는 정책 연구 및 언론의 목소리가 높은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또 신 교수는 “입학 연령이 높은 국가 학생들이 초・중등에서 높은 학업 성취도를 나타내고 있다”며 “질 높은 노동력, 사회 복지 비용 감소, 높은 고용효과 및 고 연령의 고용효과 등까지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은혜 이화여대 교수는 “학제 개편이 완성되면 교원양성, 자격증 취득, 임용 등에도 변화가 올 것”이라며 “복잡한 유치원 교사의 양성 및 자격증 취득 경로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02년부터 전문대학 유아교육과가 선택적 3년제로 개편되어 있기 때문에 심화・ 연계학점제를 통해 1년 연장하는 방안을 모색해야한다는 것이다. 한편 토론자로 나선 김창복 서울교대 교수는 “선진국 동향은 만5세 하향화 논의를 신중하게 만드는 좋은 자료라고 본다”며 “급진적 개편보다는 문제를 보완하고 강화하는 것이 보다 긍정적 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고 발제자 견해에 동의했다. 김명수 한국교원대 교수도 “유치원 교사도 이제는 학사학위를 갖춘 교사를 양성할 시기가 왔다”며 “엄격한 자격기준과 시험을 통해 선발된 교사가 유아교육을 담당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정원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위원장은 “입학을 유예시키지 않은 학부모들의 의견과 만족도 연구가 병행되지 않은 것은 문제”라며 대조군의 부재를 꼬집었다. “부모의 우려와는 달리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 아동들도 많다”는 지적이다.
충북도교육청은 1일 2007학년도 공.사립 중등교사 임용후보자 선정 경쟁시험을 공고했다. 공고에 따르면 모집 인원은 27개 교과목에 218명으로 작년 20개 교과목, 100명을 모집했던 것보다 118명이 늘어났다. 과목별로는 영어가 38명으로 가장 많고 국어 33명, 수학 24명, 체육 18명, 특수교사 10명, 지리 9명, 일반사회 8명, 화학.생물.역사.중국어.일본어 각 7명, 전문상담(순회) 각 6명 등이다. 특히 이번부터는 전체 모집인원의 2%를 장애인으로 구분해 모집하게 된다. 원서 교부 및 접수는 6-10일, 1차 시험은 12월 3일, 2차 시험은 내년 1월 16-18일 사이에 각각 실시하며 최종 합격자는 1월 30일 발표할 예정이다. 도교육청은 지난 달 28일 초등 230명, 유치원 9명, 특수학교 18명(유치부 2명, 초등부 8명, 치료교육 8명) 등 모두 257명의 초등교원 모집 공고를 냈는데 이는 작년(317명)보다 유치원 40명, 초등 20명 등 60명이 줄어든 것이다.
대전에서 출발할 때부터 날씨가 흐리기는 하였으나 워낙 가뭄 탓으로 모두가 비가 오기를 갈망하고 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가을 풍경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정감을 가지게 한다. 가뭄으로 단풍의 빛깔이 예년만 못하다고는 하나 누렇게 익은 벼와 들녘의 갈색의 조화가 아름다운 풍경을 그림으로 보는 듯하다. 자연 예찬을 하는 순간에 중부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증평에서 충주방향으로 접어들었다. 가끔은 빗방울이 차창에 내려앉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몇 개월 만에 보는 빗님이기에 문학기행 가는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다. 충주에 다다를 즈음 빗방울은 제법 차창을 흘러내리고 있었다. 충주 공용시외버스 옆 롯데마트에 주차를 하고 시사문단 회원들을 만나게 되었다. 언제나 처음 만나면 쑥스러움으로 서로가 한 마음으로 동화되기까지에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가 보다. 서로가 인사는 하였지만 서먹서먹한 감정은 어찌할 수가 없다. 한 쪽 귀퉁이 쓰레기통 주위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특별히 할 일이 없다거나 여러 사람을 만나서 무료할 때 하는 버릇이다. 뒤늦게 도창회 회장님과 손 발행인님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고 점심식사 할 곳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가는 중에 충주댐에서 우중에 관람을 하는데, 작은 우산으로 비를 피할 수 있다는 행복을 맛볼 수 있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서로가 간단히 소개를 하며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조금 늦은 시간에 점심을 먹게 되어 포만감을 느끼도록 먹고 소주도 몇 잔을 먹게 되어 좀 더 부드러운 분위기가 조성이 되었다. 비가 오는 관계로 우리는 서둘러 청풍명월에 도착을 하게 되었다. 충주호를 휘돌아 드라이브하면서 보는 경치가 너무나 아름답다. 우리가 도착을 하니 대형관광버스와 승용차들로 주차할 공간이 없을 정도이다. 우중에도 관광을 위해 전국에서 오는 관광객을 보고, 세상이 아무리 살기가 어렵다고 한다지만 우중에도 여행 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제법 빗방울이 굵어지면서 함께 출발하였던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순간에 오늘 안내해줄 해설사님도 만나게 되었다. 단정한 외모에 안내를 멋지게 해줄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문학기행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으며 마네킹 포졸이 철저히 지키고 있는 팔영루에서 시작이 되었다. 팔영루를 지나면서 민속촌 분위기의 고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가 앞 연자방아에서 일행이 오도록 기다리는 순간에 해설사의 청풍명월에 대한 유례를 이야기 해 주셨다. 내륙속의 바다의 충주호는 1985년 10월에 완공된 충주댐이 만들어낸 절경이다. 충주댐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콘크리트 중력식 댐으로서 길이 470m 높이 97m 에 이르며, 이 거대한 다목적 댐의 건설로 저수면적 97㎢에 이르는 충주호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충주호의 여행의 백미는 물 맑고 산이 아름다운 고장 청풍면을 이른다. 충주 호반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에는 충주호 부근의 풍류 넘치는 문화 유적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은 청풍문화재 단지가 이루어 졌다고 한다. 청풍문화재단지는 충주댐 건설로 부근의 여러 명승지가 수몰되기 시작하자 수몰지에 있던 여러 유적들을 옮겨 와 원형 그대로 복원해 놓은 곳이다. 82년부터 85년까지 3년 동안 공을 들여 만든 이곳은 선사유적부터 한벽루와 석조여래입상 등의 보물과 향교와 고가 등이 나란히 모여 있는 곳이다. 이 고가들은 청풍면 황석리. 도화리와 수산면 지곡리 등에서 옮겨 온 것으로 모두 200년 전의 고가구들로 그 당시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고가에서 지금이라도 우리 동인들을 반갑게 맞이하러 주인이 나올 것 같다. 되돌아 나오면서 석조여래 입상을 볼 수 있었다. 보물 제546호인 이 여래 입상은 원래 청풍면 읍리의 대광사 입구에 서 있던 것을 수몰 전에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풍만하면서도 자비로운 얼굴 윤곽과 도톰한 양쪽 볼, 뚜렷한 입술, 양 어깨까지 드리워진 두 귀 등이 인자함을 느끼게 만든다. 남자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낙네들이 여래상의 코를 긁어 가루를 물에 타서 먹으면 사내아이를 얻는다는 속설로 실제로 행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유심히 살펴보니 그야말로 한쪽 코가 긁어서 없어진 듯 하여 모두 세속의 삶에 한바탕 웃음으로 흘려버리기는 안쓰러움 마저 든다. 전체적인 조각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나 고려 초기 작품으로 보여 지는 이 불상은 옮겨 오면서 만들어진 조그마한 비각 안에 자비스러움을 간직한 채 세월을 잊은 듯 서 있다. 옛날 청풍부의 정문이었던 기백과 기품이 넘쳐 보이는 금남루에는 문이 모두 3개가 있는데 가운데 문으로는 부사가 다니고 양쪽 문으로 평민이 출입해야 한다는 해설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오른쪽 문을 통해 들어가면서 모두가 잘 지키는 모범생이라며 한바탕 웃었다. 한벽루는 고려 충숙왕 4년(1317)에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여 관아에서 세운 독특한 양식의 부속 목조 건물로 연회장소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루에 올라갈 때 계단 역할을 하는 익랑은 현존건축물로써 전무한 양식이고 현판글씨는 우암 송시열의 친필이라고 한다. 곁에 아담하게 서있는 금병헌은 명월정 또는 청풍관이라고도 하는데, 조선 숙종 7년때 부사 오도일이 창건한 청풍부 당시의 동헌으로 부사가 집무를 하던 이곳은 유일하게 단청을 하지 않은 건물로 당시 행정관의 검소한 생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 한벽루에 올라 호수를 바라보면 산기슭의 울창한 숲, 깎아지른 바위산이며, 호수 저편에 우뚝 솟아오른 비봉산은 웅장한 모습으로 새 자태를 갖추었고, 이름 그대로 봉황이 알을 품은 형상으로, 어느 곳에서 보아도 봉황이 나는 형상이기에 호수에 뜬 봉황, 또 호수를 나는 봉황으로 불린다고 한다. 그냥 바라보기만 하여도 아름다운 한국담채화를 보는 듯 탄성의 소리가 들리며 누구든지 읊기만 하면 아름다운 시가 될 것 같다는 감동을 받으며, 다시 한 번 가족과 함께 여유를 가지고 이곳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비봉산 등산을 꼭 해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보게 된다. 바람은 맑고 시원하며, 달뜨는 밝은 밤의 정취는 가히 강산 제일이라고 하니 아마도 청풍명월이란 이곳에서 유래된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오늘과 같이 비가 뿌리는 날이면 운무로 인해 청풍대교 아래로 운치 있는 유람선이 다리 밑을 왕래하고 강안의 산천 경관이 물안개로 운무 속에 잠기게 되니 바라보는 마음마저 산이 되고 호수가 되어 절로 자연에 도취되어 옛 풍류가락이 호수의 물결과 가을바람에 실려 은은히 울려나는 것 같다. 돌아 나오는 길에 풀밭위에는 청풍명월이라 새겨져 있는 커다란 선돌이 솟아있고, 그 뒤로 지석묘와 비석 무리들이 열병을 서 있는 듯하다. 지석묘는 크기가 엄청나게 커서 어른 200여명 정도가 있어야 만들 수 있기에 아마 1000 여명 이상을 통솔하는 부족장 정도가 되어야 지석묘를 세울 수 있다는 이야기에 동감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지석묘에 새겨진 별자리는 고고학계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으며, 우리 조상들이 큰 돌을 필요할 때 쓰기 위해서 바위에 작은 홈을 여러 곳을 파고 대추나무를 심어서 필요로 하는 만큼 잘라서 활용을 하였다는 이야기에 다시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아름다운 청풍문화재단지 여행의 아쉬운 마음을 접고 일행은 제천의 명산 금수산 자락에 자리한 금월봉으로 찾아갔다. 쏟아지는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젖어 날이 어두워지는 것도 아랑곳없이 도착한 곳은 기괴한 암석으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바위산이 반갑게 맞이한다. 이곳이 바로 금월봉이라 한다. 바위 생김생김이 천태만상으로 보는 이들을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곳에서 장길산 영화를 촬영지라며 안내판이 붙어 있어서 여행객들을 더욱 관심을 끌도록 하고 있다. 이곳에서 아쉬운 듯 시사문단 동인들은 서로가 사진을 찍으면서 모두가 주연이라도 된 듯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동인들은 삼삼오오 추억 남기기를 재촉하고 있었다. 이제 날은 어둠으로 땅거미 지고 우리는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굵어지는 빗줄기를 따라 어디로 가야하는지, 얼마만큼 가야하는지, 쏟아 붓는 빗줄기로 방향도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정겨움으로 별로 쾌념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호반을 따라 돌고 돌아서 만난 곳은 우리가 처음 점심을 먹으러 갔던 곳으로 되돌아 온 듯하였다. 배도 고팠지만 또 헤어져야한다는 아쉬움에 저녁을 먹으면서 더욱 정감을 느끼게 하였다. 서로가 자기소개를 하면서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즐거움에 소리치는 권주가 “~위하여”가 되풀이 하여 외칠 때 마다 식당아주머니 소주병 나르는 발걸음은 바빠졌고, 갈 곳은 머나먼 길이었지만 나그네들은 갈 생각을 하지 않으니 웬일인지 모르겠다. 뒤풀이로 노래방까지 가서 싫 컷 에너지를 소진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두시가 넘었다. ‘문학기행 한번 참! 거창하게 원 없이 하고 돌아왔다.’
부산교대생들이 초등교원 신규채용 규모축소에 반발, 임용고시와 수업을 거부키로 하는 등 2007학년도 교사채용을 둘러싸고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부산교대 총학생회는 31일 오후 4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긴급 임용고시 거부 찬반투표를 실시, 491명의 투표참가자 중 88.4%인 434명의 찬성으로 임용고시를 거부키로 결정하고 1일 오전부터 4학년 학생을 중심으로 수업거부에 들어갔다. 총학생회는 이날 낮 12시 교내 원형극장에서 '임용거부와 무기한 학사거부를 위한 총력투쟁선언대회'를 갖고 초등교원 채용축소 방침 철회와 교육재정 확충을 정부에 요구키로 했다. 총학생회는 또 내주부터 1, 2, 3학년까지 수업거부를 확산하는 등 투쟁강도를 높이기로 했다. 총학생회는 그러나 3일까지 실시되는 임용시험 응시원서 교부 및 접수에는 일단 응하기로 했다. 부산시교육청은 지난달 27일 2007학년도 초등교사 채용 인원을 지난해 100명에서 40명이 줄어든 60명으로 최종 확정해 발표했다.
김종진 | 전북 진안중 교장, 전북중등교육협의회장 교장은 미성년의 교육 관리자 현행 교장임용 제도가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에 이토록 개정을 서두르는 것인가? 개선 배경의 하나로는 승진에 집착하는 경쟁풍토로 승진을 하고자 하는 교사들이 점수관리에 집착함으로써 학생지도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고, 승진평정점수에 의한 서열화가 교사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학교장의 학교경영 전문성과 교사의 수업 전문성의 차이로 학교장의 교육경력 자체는 수업 전문성을 보증할 뿐, 학교경영이라는 교장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자질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개선의 근거 내지는 필요성으로 들고 있다. 그러나 교육현장이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승진하고자 노력하는 교사일수록 성취동기가 강화되어 오히려 학생지도에 더 열성적이다. 더구나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교직풍토 속에서도 연구논문의 작성과정에서 다양한 서적을 탐독할 수 있어서 전문성이 향상된다. 뿐만 아니라 승진을 위해서 각종 자격증 취득을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교사의 사무능력이 향상되고 변화하는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교사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교장의 직무수행에 대한 역할적 측면 또한 관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학교는 일반 상품을 생산하는 곳이 아니고 성인을 교육하는 곳도 아니며 발달 단계에 있는 청소년을 교육하는 곳이다. 따라서 교육현장에서의 많은 교육적인 경험과 직접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쌓은 지식과 지혜는 책상머리나 귀동냥으로 체계화시킨 이론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성년의 교육 관리자인 학교장은 원칙적으로 현장 체험의 교육자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교장임용을 다양화시키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바라보는 시각은 마치 전투와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해서 군대의 지휘관 임용 제도를 개선해서 정훈장교나 경리장교를 전투부대 지휘관으로 배치하고 경력 높은 군무원을 일선 사단장이나 군단장으로 임용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교육은 교육인 것이다. 학교에서는 교육전문가인 현장 교사 출신이 교육 관리자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교장공모 제도를 확대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성을 안고 있으므로 교장공모제는 최소한의 폭으로 시행함이 마땅하다. 즉, 교육부 내지는 지역 교육청 단위의 특수 사업이나 목적에 부합되게 운영되어야 한다. 예컨대 경마축산고등학교나 마사고등학교에 마사기능인을 양성하기 위해 마사회 추천인사가 교장이 된다든지 외국어고등학교에 외국어 향상능력을 향상시키기고 게임과학고등학교 등과 같은 특수 프로그램을 적용시켜 보기 위해서 한시적으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교장으로 임용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때에도 교육은 어디까지나 바람직한 인간을 육성하는 곳이기 때문에 기능교육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인성교육임을 잊지 않는 원칙이 필요하다. 아직 부족한 '학운위'의 책무성 개정안은 또한 공모교장에 대한 최종적 판단을 학교운영위가 하도록 되어있어서, 초빙제보다도 더 많은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교운영위의 대표성, 위원의 전문성뿐만 아니라, 책무성은 개념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실정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모교장 선발의 최종 판단을 학교운영위에 맡긴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즉, 특정 세력이 학교운영위를 지배할 경우에는 후보자의 역량과 관계없이 정략적인 지지와 최종 선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위학교에서 현행의 교장임용제를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공모교장제를 선택할 것인지를 학부모 전체의 의견수렴으로 결정하도록 되어 있는데, 과연 학부모들에게 자율적 선택에 따른 책무성이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다. 자율은 책임을 전제로 하고, 책임지지 않는 자율은 방종에 지나지 않는다. 외국의 예를 볼 때, 학교가 공모교장을 선택하는 경우는 단위학교의 운영이 전적으로 학교구성원에 의해서 자립적으로 운영되고, 그 결과에 대해 구성원들이 스스로 책임지는 형태의 학교에 한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육당국의 관할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서 스스로 운영하고 책임지는 자립형 사립학교나 대안학교 정도에서나 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공립학교는 임의 조직인 학부모조직뿐만 아니라, 공식기구인 학교운영위 마저도 그런 정도의 책무성을 지니고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장자격증 미소지자가 교장이 될 수 없다는 원칙에서 보면 교장자격기준에 '학식과 덕망이 높은 자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자'라는 말이 참 애매하다. 이는 교육에 관심 있는 자는 누구나 교장이 될 수 있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교육에 관심 있는 자와 교육 전문가와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대통령 교육문화 수석비서관을 역임한 자가 대학총장은 할 수 있지만 초등학교 교장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초등교장은 초등학교 실정을 잘 알고 초등교육에 알맞은 교육 마인드를 갖고 있는 초등교사 출신이 하는 것은 당연하다. 교장선출방식을 '다양화 한다'는 미명하에 무자격자를 학교장으로 확대 임용함은 교육을 그르치는 지름길이자 커다란 잘못을 하는 방안인 것이다. 현실에 맞지 않는 선출보직제 보직제는 현재의 교원 및 국민 정서와 제반 여건에서 현실 적용 가능성이 낮으며 또한 특정 교직단체에서 주장하는 교장선출보직제의 경우, 교육행정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학생을 교육하고 교직원을 이끄는 지도자가 아닌 상징적인 사무담당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어 학교의 위계질서와 책임경영이 위협 받을 수 있다. 또한 실질적으로 단위학교 학교운영위에서 교장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게 되므로 학교운영위의 상호견제기능이 무너져 학교장이 학교운영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하여 단위학교의 운영이 학교운영위에 종속되는 상황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공립학교 교원의 경우 순환근무제 적용으로 교원이 정기 인사로 이동하면 원천적으로 교장을 선출할 수 있는 권리와 출마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또한 교직단체간의 갈등으로 인하여 교장이 정해진 기간 동안에 선출되지 못하고 학교운영상의 공백 기간이 발생할 경우 국민들에게 학교교육에 대한 불안을 안겨 줄 공산이 크고, 이로 인하여 학생의 학습권 침해가 우려된다. 만약 선출보직제가 도입되면 도서·벽지 및 농어촌지역 등 근무환경이 열악한 지역에 교원들이 전보를 기피하고 우수한 후보자들이 교육여건이 좋은 곳으로 몰리게 되어 학교 간, 지역 간 교육격차도 심화될 것이다. 아울러 교장선출보직제는 학교 내 보직업무 및 힘들고 궂은 일에 대한 기피풍조를 확산시켜 학교교육 업무의 정상적 운영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어 학교현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학교는 하나의 독립된 기관이며 학교장은 학교라는 기관을 총책임지는 기관장이다. 정상적인 조직의 경우라면 당해 기관장을 보직제로 운용하는 기관은 없으며, 대학의 경우 총·학장 직선제를 시행하고 있으나 학연, 지연, 줄서기 등의 문제점이 많이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잘못된 진단이 엉뚱한 처방으로 일부 교원단체와 국회의원 측에서 주장하는 교장선출보직제 개정안 발의 목적의 한 항목을 보면 '교장의 임무와 기준을 재설정하여, 교장이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교무를 총괄하고 학교수업을 담당하도록 함'이라는 항목이 있다. 이는 마치 지금 학교현장의 관리자들이 학교경영을 잘못하고 비민주적이기 때문에 교육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교육문제를 잘못 진단한 대표적인 사례다. 잘못된 진단에는 엉뚱한 처방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금 교육현장은 교장의 지휘권이 행사될 수 없을 정도로 민주화되어 있다. 예를 들어 학교 기능직 사무 보조원 하나 마음대로 인사할 수 없고 환경개선 교사를 소신껏 처리할 수 없을 정도이다. 또한 물론 교장도 원하면 수업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교육경력이 있는 교장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그들의 교육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적응교육이나 창조적 재량활동의 한 부분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도 학교경영과 현장장학에 지장을 주지 않는 최소한의 범위로 한정해야 된다. 선진국의 교육제도와 교장임용 제도를 차용하는 것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모든 교육체제가 우리의 실정에 맞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식 열린교육일 것이다. 역설적으로 일본은 칼의 문화, 미국은 총의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공공질서가 확립되었다고 한다. 즉, 공공의 질서를 해치는 자는 언제나 누군가에 의해서 칼과 총에 의해서 제거될 수 있기 때문에 서로가 조심해서 오늘날의 선진강국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일정부분 자율성과 책임성이 담보된 정서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열린교육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교장임용 제도도 마찬가지다. 아직 한국교육현장에 한국사회의 전통이자 모순인 학연, 혈연, 지연사회가 계속되는 한 선출보직제는 시기상조다. 예컨대 훌륭한 교육철학을 갖고 있는 ○○교대 출신 교사가 △△교대 출신이 다수인 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임용될 수 있겠는가? 또 유능한 □□사대 출신 교사가 ◇◇사대 출신이 다수인 중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임용될 수 있겠는가? 책임에 따르는 권한 부여해야 교육문제가 교장의 역할 변화에 따라서 적임자를 찾는 교장임용방식의 모색이 안 되어서인가? 그리고 교장임용방식의 준거는 교장의 역할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단위학교의 자율경영체제가 안되어서 문제인가? 단위학교의 자율성 요소가 없어서 문제인가? 그러면 다양한 임용방식을 채택한 선진국은 교장임용 제도를 개선해서 교육문제를 해결하고 청소년들이 건전하게 교육목적에 맞게 길러져 바람직한 인간성을 함양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아니다. 교장임용 제도의 개선이 교육행정체계 개선의 본질이 아니다. 차라리 교육재정의 확충과 교사의 법정정원의 확보, 상급교육기관의 교육지원체제(교육서비스체제)로의 변화 등이 선결과제이다. 교장자격증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교육경력자가 교장이 된다는 전제에서, 교장의 지위에 정무직 개념을 도입해서 운영하고 연봉과 수당을 별도로 규정하여 지급하고 교장 퇴직 후에는 교장 되기 이전의 마지막 호봉과 교장연봉을 합산 조정하여 퇴직금이나 연금으로 지급하도록 하는 방식도 필요할 것 같다. 이는 지금의 교장 임기제의 취지와도 부합되는 것이다. 단위 학교 보직교사가 교장이 되는 길을 열어 주는 것 역시 일리가 있다. 왜냐하면 최근의 풍조는 보직교사를 기피하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 따라서 장학사 경력 3년이면 교감 연수기회가 부여되고 차후에 장학관이 되어 교장이 되듯이 보직교사 5년이면 일정한 평가를 거쳐 교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확보되어야 한다. 교장의 정무직 개념이 도입되어 보수와 수당이 지자체장에 준하는 수준으로 확보되고 교육운영의 실질적 권한(교사와 행정실 직원의 초빙)과 연계되어 능력 있는 자는 계속 교장으로 임용되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연한이 차면 퇴직의 문을 열어주어 신규 교장에게 순환의 길을 터줄 필요도 있다. 교육에는 백 가지의 이론이 있고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교원정책을 수립할 때는 교육실무 경험이 풍부한 전문직과 일선 교장을 포함한 다수의 교원이 참여하기를 바란다. 현재 교원정책을 수립하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교육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지만 전문성 결여로 믿을만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의 정책을 개발하여 시행하는 제도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시행하는 사람의 선발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교장을 그저 승진이나 준비하여 된 사람들로만 여기지 말고 교육기관의 장으로서 책임에 합당한 권한을 부여하고 전문성 신장을 위해 더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하길 바란다. 또한 교원정책의 수립과 시행에 있어서 개혁과 혁신을 앞세워 급진적이고 가시적으로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불가에서 말하는 돈오돈수(頓悟頓修)보다 돈오점수(頓悟漸修)적으로 여러 채널의 의견수렴과 검증과정을 거쳐서 교육의 진정한 백년대계가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와! 교과서가 너무 얇다. 옛날에는 배우는 게 별로 없었나봐." "저것 봐라. 아빠가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란다." 경기 파주초등학교(교장 황덕순)에 마련된 파주교육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의 반응이다. 교육 변천 과정 한자리에 지난 4월 파주초에서는 개교 100주년을 맞아 파주교육박물관(이하 박물관)을 개관했다. 1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개관한 박물관은 '파주초등학교 100년 사관', '교육역사관', '파주교육관', '옛날 교실 체험관', '야외 전통놀이 학습장 및 야외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민속자료관'도 준비 중이다. 또 실물 전시자료 1900여점과 터치스크린, 3D 입체 영상자료 45점이 확보되어 있어 다른 박물관에 손색이 없다. 그동안 박물관에는 10여개 학교에서 단체 관람을 했고 일반인들도 400여명이 넘게 찾았다. 그중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파주초등학교 100년 사관과 교육역사관. 100년 사관은 파주초가 설립된 이후부터 현재까지 주요 연혁을 중심으로 100년사를 한 눈에 체험할 수 있도록 파노라마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을 졸업한 동문들이 내 놓은 자료들이다. 이 학교 동문인 김순희 씨는 초등학교 시절 6년간 쓴 일기를 기증하기도 했고, 상장과 통지표 이외에 육성회비 납입통지서 등 지금은 보기 힘든 자료들이 모였다. 100년 전 학교와 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전시되어 있다. 또 직접 찾아볼 수 있는 졸업 앨범(51~97회)과 바닥 유리를 통해 볼 수 있는 각종 메달 및 우승컵은 동문들에게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교육역사관은 삼국시대부터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고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별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곳이다. 특히 1차 교육과정부터 7차 교육과정까지 실제 교과서, 교육자료 등이 전시되어 근대 우리 교육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또한 실제 자료를 구하기 어려운 근대 이전의 교육 자료는 모형과 홀로그램을 통한 영상자료로 보충하여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校·民·官의 합작으로 탄생 12학급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교육박물관을 만들게 된 것은 100주년 기념관을 계획하면서 시작되었다. 한때 40학급이 넘는 학교였지만 학생 수가 감소하면서 생긴 학교 내 빈 공간을 활용하고 100년의 역사를 기념하고자 준비된 사업이었다. 그러나 100년간의 역사 자료를 수집하던 중 박물관의 교육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파주시청과 파주교육청을 비롯한 파주지역주민들의 관심이 모아졌고, 경기교육청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아 박물관으로 탄생했다. 지역단위에서 교육역사를 정리·보존하여 연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박물관을 만드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교무부장 박미영 교사(45)는 "우리 박물관을 세밀하게 관찰하면 교육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많은 학교가 방문해 주길 바란다"며 "앞으로 학예연구사가 파견 배치되어 상주 근무하면서 전문적인 관리 체계를 마련해 진정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 9월에 이 학교로 발령을 받은 황덕순 교장(52)은 "전임 교장 선생님(김기풍 현 칠봉초 교장)을 비롯한 많은 선생님과 주민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박물관이니 만큼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는 전국적인 박물관으로 발전시킬 것"이라며 "우리의 교육 노하우를 후손들에게 전수하고 교육지표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이니만큼 계속해서 가치 있는 자료를 발굴, 보존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파주초는 앞으로도 실물 교육자료 및 민속자료를 계속해서 확보하여 박물관을 파주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만들고 '파주향교'나 '수리홀 통일체험 학습장'과 연계한 체험 학습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여 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을 찾도록 할 계획이다. 박물관의 단체 관람을 원하는 학교나 단체는 홈페이지(www.paju.es.kr)에서 신청 양식을 다운 받아 관람 15일 전까지 접수하면 된다.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한 날(10:00~17:00)에 개방을 하고, 개인 방문도 가능하다. 관람 문의 : 파주초 교무실 031-952-4216 | 엄성용 esy@kfta.or.kr
*서애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당(보물 제414호)* 최효찬 | 저자, 비교문학 박사 위기 때 빛난 '절충의 리더십' "류성룡이 활약한 시대는 당쟁이 시작되고 당쟁으로 인해 최초로 사화가 일어났던 시기이다.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성혼, 송강 정철, 이산해, 이덕형, 이항복, 윤두수, 이원익 등 기라성 같은 문신들이 있는가 하면, 이순신, 원균, 권율, 김시민, 곽재우, 사명당 등 조선시대에 가장 출중했던 인물들이 그와 함께 활약했다. 류성룡은 이들과 때로는 반목하고 때로는 화합을 하면서 정치력을 발휘하여 국정을 이끌었다. 동인의 계열에 있으면서도 서인인 정철을 변호하여 절충과 상생의 리더십을 실천했다."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징비록(懲毖錄)〉을 바탕으로 쓴 〈우국의 향기〉에서 저자 이수광은 서애에 대해 묘사하면서 그가 '절충의 리더십'을 가졌다고 말한다. 절충의 리더십은 때로 현실 영합적이라는 평가를 들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조선시대 사관이 쓴 인물평가〉에 따르면 서애는 30여년 관직에 있었지만 임금에게 직간(直諫)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성정이 오히려 임진왜란 전후 위기의 시대에는 필요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온 국토가 왜군에 짓밟혀 있는 상황에서 정쟁의 단서가 될 만한 발언을 하거나 시비를 하는 것은 고위공직자로서의 올바른 길이 아닐 것이다. 이는 요즘 우리 사회를 봐도 알 수 있다. 혼란한 시대일수록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해 세상을 어지럽게 하기보다 말 한마디로 세상을 감싸 안을 수 있는 그런 리더십이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서애는 인재를 키우는 데도 누구보다 탁월한 안목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알려진 대로 당시 좌의정이던 서애는 임진왜란 직전 이순신을 적극 천거했고, 선조는 이순신을 종6품 정읍현감에서 정3품 전라좌수사로 7품계나 올려 파격적으로 승진시켰다. 요즘으로 보면 중대장급에서 사단장급으로 진급한 셈이다. 당연히 파격 인사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있었지만 서애는 이에 개의치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서애의 인재를 키우는 안목이 왜구로부터 조선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서애는 이순신뿐만 아니라 종5품 판관 권율 장군도 5품계 특진시켜 정3품인 의주목사에 기용했다. 이순신과 권율의 인사는 조선왕조 500년 사상 전례가 없었던 일이었다. 서애는 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에 절충의 리더십을 발휘해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고 또 인재를 키우는 데도 소신껏 임했다. 자녀 교육에도 관심 갖은 '총리' 뿐만 아니라 그는 가정에서는 아버지로서 솔선수범하며 언제나 집안을 독서하는 분위기로 이끌었다. 임진왜란 전후의 혼란기에 영의정 등 최고위 공직을 지낸 서애였지만 자녀들에게 편지를 보내며 학문을 점검하고 독려하는 한편으로 따끔하게 질책하고 조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서애는 공부하기 위해 절에 들어간 두 아들에게 자신의 심경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최고 권력을 누리는 총리로서의 준엄한 모습 대신 자식들이 공부에 더욱 매진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이 절절히 담겨 있는 편지였다. "며칠 동안 너희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괴로웠다. 산사는 조용하고 편안하니 독서를 하는 데 아늑하고 평온하지 않겠느냐. 퇴계 선생이 손자에게 주신 이 시를 너희들도 본받기 바란다. '나이 어린 때는 산속 절에서의 즐거움을 가장 사랑하였기에 / 벽사를 드리운 창 깊은 곳에 등 하나 밝혀놓았구나 / 평생 동안 이뤄낸 많은 사업들은 모두가 / 이 한 등 아래서 나온 것이었네'." 서애는 산사에 들어간 자녀들이 공부를 게을리 하자 자녀들에게 '어린 시절 산사의 적막한 등불아래 읽은 책들이 평생 동안의 나침반 역할을 해주었다'는 퇴계의 시를 들려주며 공부에 매진하기를 당부했던 것이다. 요즘 고위공직자들 가운데 과연 자녀들이 무슨 책을 읽고 있으며,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조언을 하는 이들이 있을까? 더욱이 그가 일국의 총리라면 다섯 명이나 되는 아들의 공부에 신경을 쓸 수 있을까? 과연 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국무총리가 아니라 대부분 직장인들도 '바쁘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자녀 교육을 어머니에게 맡겨놓기 예사이다. 아버지는 자녀 교육에 필요한 돈만 벌어다주면 제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퇴계 이황이나 고산 윤선도, 다산 정약용 같은 위대한 인물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자녀 교육에 열성적이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심지어 독서를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까지 꼼꼼하게 챙기고 게을리 하면 질책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리더의 한 가지 공통점은 독서 미국 교육과학연구소가 2002년에 발표한 '미국의 리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보고서를 보면 미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은 초등학교 시절에 좋은 책을 많이 읽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반면 범죄자들은 대부분 거의 책을 읽지 않았거나 교육적인 가치가 없는 책을 읽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보고서에는 '초등학교 시절에 읽은 책이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발표한 보고서에도 고등학교 1, 2학년 중 성적이 상위 10% 이내인 학생들의 첫 번째 특징으로 독서량을 꼽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분석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특징이 대부분 독서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어려서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공부는 스스로 자기 주도적으로 한다 ▲학원보다는 도서관이나 집에서 혼자 조용히 공부한다 ▲공부하는 것이 매우 즐겁다 ▲문학작품이나 신문을 즐겨 읽는다 등이다. 서애는 이러한 독서의 중요성을 400여 년 전에 꿰뚫고 있었다. 서애는 틈틈이 자녀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는 형식으로 공부를 제대로 하는지를 점검했다. 편지를 보고 아이들의 글이 별로 진전이 없을 때에는 심지어 "젖비린내가 난다"면서 단호히 꾸짖으며 학문에 더욱 힘쓸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모범만큼 더 훌륭한 교육은 없다. 서애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위기의 시대를 살았지만 항상 독서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는 집에서 항상 책을 읽으며 다섯 아이들에게 솔선수범했다고 한다. 퇴계 이황으로부터 "그는 하늘이 내린 인물이다"는 평가를 받았던 서애는 네 살 때부터 붓을 잡기 시작해 66세로 죽을 때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서애는 열여덟 살 때 관악산으로 들어가 절에서 몇 달 동안 〈맹자〉를 스무 번 읽어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했다고 한다. 이듬해에는 고향인 하회에서 〈춘추〉를 서른 번도 넘게 읽었는데, 이때부터 문장 짓는 방법을 조금 알게 되었다고 한다. 서애는 처음부터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맹자〉와 〈춘추〉 등을 공부했는데, 이게 큰 도움이 되어 과거에 합격했다는 것이다.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 '점수 따기'식 공부 대신, 학문하는 자세로 공부를 한 결과 과거에도 합격하고 학문도 깊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과거 공부를 하는 데 합격하는 길로 통하는 문을 살핀 일이 없다. 다만 경서를 연구하는 학문은 비록 얻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평생토록 아끼며 귀중하게 여기고 있으니, 너희들도 부질없는 과거 공부를 잠시 접어두고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가져다가 정밀하게 사색하고 익숙하게 읽어서 자기의 것이 되도록 한다면, 안목은 저절로 높아지고 마음도 저절로 넓어질 것이니 기타의 보잘것없는 것들이야 힘들이지 않고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태산에 오르고 나면 모든 산들이 언덕과 개미둑처럼 작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부디 노력하기 바란다." 서애는 자신의 독서 경험을 자식들에게 끊임없이 일깨워주었다. 한번은 독서를 게을리 하는 자식들에게 서애는 편지로 준엄하게 꾸짖기도 했다. 독서를 하면 모르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고, 또 궁금한 것이 생겨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위인이나 성공한 사람, 학자들의 단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누구나 독서광이었다는 점이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집안이 몰락해도 자신과 가문을 일으키는 방법은 오직 독서밖에 없다. 오직 독서만이 살 길이다"라고 호소했다. 책 읽는 집안에서 인재가 난다 요즘은 대부분 학생들이 입시준비 위주로 공부를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책을 읽어보지도 못하고 청소년기를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의 신문 보도를 보면 고등학생들은 대부분 국어 시험에서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영어와 수학은 평소에 과외나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해둔 덕에 좋은 성적을 얻는 반면, 국어는 문학과 비문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독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지 않은 학생들은 그야말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당장의 성적을 의식한 나머지 한가하게 소설책이나 읽고 있을 여유가 없다. 반면 평소에 책을 많이 읽어 '책벌레'라는 별명이 붙은 학생들은 그야말로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해 국어 시험에서 다른 학생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성적이 높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점수 따기'식 공부와 '정도(正道) 공부'의 차이다. 결국에는 점수 따기식 공부를 하는 학생보다 정도 공부를 하는 학생이 막판 뒤집기에 성공해 더 높은 성적을 얻기도 한다. 그런데 자녀의 교육을 직접 챙기는 부모들은 여기서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부모는 아이에게 점수 따기식 공부를 하게 할 것이냐, 아니면 다양한 양서(良書)를 읽게 해 이해력과 사고력을 높이는 정도(正道) 공부를 택할 것이냐의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점수 따기식 공부를 외면할 수 없어 전 과목 과외를 시키는 경우도 있다. 필자 역시 아이가 전 과목 과외를 시켜달라고 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필자는 기초를 중시하는 정도 공부 방식을 고수했다. 결국에는 책을 많이 읽은 아이, 즉 기초가 튼튼한 아이가 세상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고 사회성이 높은 아이로 자랄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 교육과학연구소의 보고서를 보더라도 독서가 평생을 좌우한다고 했고, 퇴계는 평생의 등불이 된 것이 바로 어린 시절 등을 밝히며 읽은 책들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책 읽는 집안에서 인재가 난다는 옛말이 있다. 서애의 다섯 형제 가운데 장남은 벼슬이 장수도찰방에 이르렀고, 차남과 삼남은 각각 세자익위사 세마와 사헌부 지평에 올랐다. 그리고 서애에서 시작해 내리 9대 직계손들이 모두 벼슬길에 올랐다. 물론 음직(국가에 공을 세웠을 경우 그 자손에게 벼슬을 주는 제도)도 있었고, 과거에 급제한 경우도 있었지만 노론이 득세한 조선 후기의 상황을 감안하면 9대째 공직에 나아가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노론계와 달리 영남의 남인 집안은 대부분 당쟁에서 밀려 과거에 급제해도 관직이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그들 대부분은 일찌감치 벼슬길을 포기하고 학문과 후학을 가르치는 데 전념했다. 벼슬을 하지 못한 선비들을 '백두(白頭)'라고 불렀는데, 이들 중에는 몰락양반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대로 벼슬길에 오른 서애의 후손들은 풍산 류씨의 대종가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파보를 만들었다. 하회마을에 있는 풍산 류씨 대종가는 서애의 친형인 겸암 류운용이 살던 '양진당'이다. 서애는 대종가에서 분리된 소종가로 '충효당'이라고 불린다. 하회에 정착한 풍산 류씨는 서애의 부친 류중영이 문과에 급제해 황해도관찰사 등을 지냈고, 그의 아들인 겸암과 서애에 이르러 명문가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했다. 공직자로서 청렴한 생활 실천해 서애는 평생 청렴결백하게 살아 66세로 세상을 떠날 때에는 장례 비용조차 없었다고 한다. 서애의 제자였던 우복 정경세는 "어찌 10년 동안이나 재상을 지내고도 제갈량이 남겼다는 뽕나무 800그루도 없단 말인가"라며 그의 청렴한 기백을 기렸다. 현재 후손들이 살고 있는 충효당은 서애의 제자들이 그의 정신을 기려 사후에 지은 집이다. 서애는 중앙조정의 관직에 있으면서도 서울에 집이 없었고 전세를 얻어 생활하였다. 당시 지방에서 올라온 벼슬아치들은 한양에 첩을 두었는데 이를 '경첩(京妾)'이라고 불렀다. 경첩은 유행이었는데, 백의정승으로 이름난 황희도 첩을 두기도 했다(서자가 있었는데 나중에 궁중의 물건을 훔치다 들통나 가문에서 쫓겨났으며 성을 조씨로 바꿔 살았다고 한다). 물론 서애는 경첩을 두지 않았다. 서애는 첫째 부인과 사별한 후 재혼을 해 5형제를 두었다. 서애는 25세에 벼슬에 올라 영의정을 지냈고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는 중국의 선비들이 '서애선생'이라고 칭할 정도로 학문에 밝았다. 청백리로 산 그는 고향에서도 마땅히 거처할 곳이 없어 풍산 서미동(西美洞)의 깊은 산중에 초가를 짓고 칩거했다. 여기서 그는 임진왜란을 후세의 교훈으로 전하기 위해 〈징비록〉을 썼다고 한다. 서애는 국난에 처한 위기의 시대에 리더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자녀 교육에 열정적인 부모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남긴 유시(遺詩)에서 후손들에게 "충효만큼 더 중요한 사업은 없다(忠孝之外無事業)"는 교훈을 내리며 후손들에게 삶의 지표를 제시한다. 후손들은 이처럼 서애의 정신을 본받아 명문가의 전통을 이어갔던 것이다. 이러한 방침은 오늘날까지 살아 있다. 방위산업체로 이름난 풍산그룹은 바로 서애의 후손이 창업한 회사이다. 서애는 한 가문의 가장으로서 귀감을 보여주었다. 이는 요즘 비유하자면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같은 면모를 보인 것이다. 무엇보다 서애는 공직자로서 청렴한 생활을 앞장서 실천했다. 또 최고경영자가 기업에 꼭 필요한 인재를 키우듯이 이순신 등 국가에 필요한 인재를 천거했고, 가정에서는 자녀들의 교육에 헌신했다. 서애의 청렴한 삶은 오늘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처신이나 입시위주의 공부, 자녀이기주의가 팽배한 현실을 반추해보기에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신아연 | 호주 칼럼니스트 한국의 대학 입시가 가까워 올 때나 학년 말경이면 호주 유학에 관해 물어오는 주변 사람들을 자주 접한다. 중고생들은 물론이고 초등학생조차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둬야 하는 한국 실정에서 한 학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이 되면 뭔가 미진하고 만족스럽지 않은 지금의 학업 상태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이나 돌파구를 찾고 싶은 심정에서 일 것이다. ‘머리 회전 빠르고 두뇌 기능 말랑말랑할 때 영어가 쏙쏙 들어가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초등학교 저학년인 자식을 1, 2년 정도 단기 유학을 시키고 싶다는 학부형들을 비롯해서, 자녀가 중학생만 돼도 내처 호주에서 대학까지 보내는 게 어떨지를 진지하게 상의해 오는 부모들도 있다. 부모와 자녀들이 머리를 맞댄 심사숙고 끝에 마침내 ‘유학을 간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고 이와 더불어 기왕 가는 것, 제대로 해 보자는 의욕 또한 하늘을 찌르게 마련이다. 유학생활의 이점은 생활공간과 일상 자체가 바로 영어 습득 체험 기회로 하루 24시간을 영어를 하며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원컨대 꿈조차 영어로 꾸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고스란히 ‘영어의, 영어에 의한, 영어를 위한’ 시간으로 채워지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의욕이 이 정도로 넘치다 보면 학교생활뿐 아니라 먹고 자는 곳도 기왕이면 호주 사람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타진해 온다. 자녀가 유학 기간 중에는 되도록 한국 사람과 접촉을 안 했으면 하는 것이다. 부모 동반 유학이 아닌 경우 현지에 친척이나 지인 등 자녀를 돌봐 줄 사람이 있다 해도 다만 얼마간은 자녀 혼자 독립적으로 영어권의 생활을 고스란히 경험하게 하고 싶다는 욕심에서이다. 호주 현지인들과 생활하려면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거나 호주인 집에서 하숙(홈스테이)을 해야 하는데 원한다면 학교에서 외국 유학생들과 홈스테이 가정을 체계적으로 연계해 주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호주 가정에서 유학 짐을 풀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발생한다. ‘이제부터 내 아이가 호주 사람들과 밤낮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겠지…’ 한다면 대부분 착각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호주인 홈스테이를 경험한 한국 학생들 대부분이 제대로 적응을 못 하거나 불평불만을 늘어놓기 일쑤이며, 심지어 다시는 호주 사람 집에 안 가겠다며 공포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말하기 좋게는 이질적 언어와 환경에 어린 학생들이 적응을 못한 탓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고 듣게 되면 단순히 문화 차이와 언어 불 소통에서 원인을 찾을 일만은 아니라는 느낌이다. 한국 학생들에 대한 호주인들의 공통적인 평가는 한 마디로 ‘기본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자고 난 후 침대나 책상 정돈, 옷가지 개기, 욕실 사용 후 뒤처리 등 개인의 위생과 신변 정리 습관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물론 한국 학생들 처지에서도 할 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정에 따라 지나치게 부실하고 빈약한 식단을 제공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사사건건 일거수일투족을 트집 잡거나 학생들의 행동에 지나친 잔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심하다 싶은 쪽은 역시 한국 학생들이다. 호주 하숙집 아줌마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눈치를 살피려 해도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인 것이다. 자신이 아무리 어질러도 뒤치다꺼리는 당연히 엄마의 몫이며 그저 공부만 잘하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 호주에 왔다고 해서 갑자기 자기 주변을 척척 정리 정돈하기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탓이다. 더욱이 깔끔한 집에 걸렸다가는(?) 영어 회화보다는 묵묵히 입 다물고 청소하는데 시간을 죄다 보내야 하는 설움조차 겪을 판이다. 특히나 호주 사람들은 욕실 사용 후에 물기 한 점 남김없이 깨끗하게 닦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바닥에 머리카락을 흘린다거나 세면기 주변이 젖어 있을 경우 질색하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아왔다. 우리나라 부모들이 그저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응석받이로 자식들을 키우고 있다면 호주 부모들의 자녀 양육 관은 사람 사는 일의 기본을 철저히 가르치는 것을 우선시한다. 내가 사용한 물건을 제자리에 두고, 내 주변은 내가 정리하는 것을 아주 어릴 때부터 몸에 배도록 훈련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 간의 최소한의 책임이자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를 익히는 첫걸음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가까이 지내는 호주 청년 하나가 잠시 한국의 한 가정에 머물면서 어릴 적부터 습관화된 매너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경탄 어린 칭찬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 청년은 기상 후 반듯하게 이부자리를 개키고 샤워를 하고 난 후에도 몸을 닦은 타월로 말끔하게 물기를 훔쳐내는 등 지나간 곳마다 두 번 손 갈 일이 없도록 자기 단속을 철저히 하더라고 했다. 자기 자식들을 그렇게 가르치고 남의 자녀들에게도 같은 가정교육을 기대하는 이 나라 사람들의 눈높이를 맞추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제멋대로 살아온 한국 학생들로서는 호주 가정의 엄격한(?) 규칙을 지킨다는 것이 고역스런 일이 아닐 수 없고, 그러다 보면 밉살스레 보이게 되어 말 한마디라도 퉁명스레 주고받는 일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대개는 한 달, 길어야 두 달을 채우지 못하고 보따리를 꾸려 다시 한국 가정으로 거처를 옮기는 학생들을 볼 때면 씁쓸함과 안쓰러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어린 아이들을 탓할 게 아니라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가르친 부모 탓이라는 생각 때문에서이다. 귀한 내 자식이 남의 나라에 공부하러 가서 집에서도 생전 해 보지 않은 방 청소나 목욕탕 청소를 하고 있다면 펄쩍 뛸 부모가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자유롭게 말을 통하기 위해서는 피차간에 마음을 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고, 함께 있는 공간이 즐겁게 느껴져야 비로소 대화가 오고 갈 수 있는 법이다. 기본 예의가 없는 이방의 어린 학생들을 너그러운 시선으로 받아 줄 수 있는 호주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14년을 호주에서 살면서 직·간접적으로 이 나라 사람들을 겪어온 경험자로서 이 기회에 한마디 충고하고 싶다. 혹 호주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면 원어민을 통해 자식에게 영어를 가르치겠다는 섣부른 욕심만 가지고는 십중팔구 일을 그르치게 된다는 것을….
박준용 | 한양대 강사, 문화평론가 중국의 어느 시골, 쇠락한 초등학교에 한 달 임기의 임시 교사가 도착한다. 고작 나이 열세 살의 완전 초짜 선생 웨이 민치가 그 장본인이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한 달간 자리를 비워야 하는 가오 선생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작 노래 몇 곡, 그것도 제대로 부를 줄 아는 건 하나도 없는 웨이에게 스무 명이 넘는 학생들을 맡길 것을 생각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는가? 그는 웨이에게 "한 사람도 없어져서는 안 된다"는 엄명을 남기고 길을 떠난다. 교사가 된 열세 살 소녀 웨이 정식 교사도 아니면서 임시 교사직을 자청한 웨이의 관심사는 사실 필요한 돈을 마련하는 것 외에 없다. 말 그대로 직장 개념만 있는 직업 교사인 셈이다. 적어도 학교의 대표 말썽꾸러기 장휘거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린 휘거가 빈곤한 가정형편으로 인해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떠났다는 소식를 접한 웨이는 그를 찾기 위해 머나먼 도시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문제는 돈. 수중에 한 푼도 지니지 못한 그녀에게 도시까지 왕복 버스비는 엄청난 장벽이었다. 웨이는 먼저 아이들에게 돈을 걷는다. 너무나 당당하고 당연한 태도로 말이다. 그녀에게 있어 휘거의 부재는 남은 아이들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공동의 숙제였기 때문이다.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아홉 명의 아이들과 계산을 거듭하고 계획을 짜면서 아이들과 웨이 그리고 학교의 모습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산 교육'의 장으로 변화해 간다. 학교를 떠나기 전 가오 선생은 웨이에게 노래나 가르치고 칠판 가득 아이들이 옮겨 적어야 할 글들을 매일 적어 놓으라고 한다. 그냥 아이들을 붙잡아 놓으라는 지시나 다름 없다. 이에 따라 웨이는 자신에게 지시된 일, 곧 잔뜩 글을 적어 놓는 것 외에 아무런 일을 하지 않는다. 기본만 해도 다행이라는 식이다. 하지만 위기가 곧 기회라 했던가. 뜻하지 않은 휘거의 실종을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웨이는 아이들의 의견을 묻고, 아이들은 서로 어떻게 하는 것이 휘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인지를 토론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버스비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산술계산이 빠질 리 없다. 책에 적힌 산수가 아니라 사라진 친구를 찾으러 가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돈을 계산하는 일에 아이들 모두는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이 와중에 누구보다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어가는 사람은 다름 아닌 웨이 선생이다. 처음에 아이들 앞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던 그녀는 직면한 문제해결을 위해 아이들의 의견을 듣고 해야 할 일들을 선택하고 지시하고 무엇보다 이를 솔선수범하면서 점차 어엿한 선생님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간다. 기적 만들어낸 교육적 헌신 부족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모두 합심하여 벽돌공장에서 종일 돌을 나르고, 받은 일당을 모아 보지만 여전히 목표치에는 턱없이 모자랄 뿐이다. 결국 웨이는 아이들의 의견에 따라 무임승차를 감행해 보지만, 얼마가지 않아 들통이 나는 바람에 버스에게 쫓겨나게 된다. 이 정도 했으면 포기할 만하다. 누가 봐도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웨이는 걷기 시작한다. 끝없는 길을 걷고 또 걷는다. 그리고 도시에 도착한다. 산 넘어 산 이랬던가. 분주함, 무관심, 돈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들 등 도시의 벽은 더욱 높기만 하다. 웨이의 불굴의 등반은 또다시 계속된다. 온 도시를 돌며 휘거가 있을만한 곳을 찾아다니고, 손으로 수십 장의 벽보를 만들어 붙이며, 마지막에는 방송국 앞에서 이틀을 버티며 광고 담당자를 만나기 위해 무모한 투쟁을 계속한다. 이런 웨이 선생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이 막히게 한다. 완전히 가망 없는 일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것처럼 답답한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쉽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라 말하고 중도 포기를 설득한다. 웨이에게 있어 지극히 현실적인 마을 촌장이 그러하고, 도시에서 만난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그러했다. 하지만 웨이 선생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달린 일이기에, 한 인생이 달린 일이기에 그랬다. 열세 살의 어린 선생 웨이가 교육이 무엇인지, 바른 선생의 길이 무엇인지 알 리 없다. 하지만 자신에게 맡겨진 학생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말 그대로 '헌신'하는 웨이의 모습에서 교육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근본적인 자질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상황은 중요하다. 여건도 무시할 수 없다. 환경은 변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불비(不備)하다고 학생을, 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럴 때 요구되는 것이 바로 불굴의 의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 길을 걸어가고, 찾고 또 찾고, 구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그런 의지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의지만이 종국에 기적을 이루어 낼 수 있다. 방송국 문 앞에서 이틀을 지센 웨이 선생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한 방송 담당자가 그녀의 이야기를 취재해 방영하기로 한 것이다. 만남을 전제로 한 참된 교육 이 일로 인해 웨이는 휘거를 찾게 된 것은 물론 낙후된 시골학교를 위한 각계각층의 넉넉한 후원까지 받아, 글자 그대로 금의환향하게 된다. 발명가 에디슨은 천재는 99%의 땀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기적도 마찬가지 아닐까? 언뜻 허황해 보일 수 있는 영화의 결말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까닭은 그런 기적을 이루는 웨이의 땀과 노력이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이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웨이는 휘거를 포함한 아이들과 감격스런 해후를 맞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그간 부족함으로 인해 아이들이 감히 만져 볼 수 없었던 분필, 그것도 여러 색깔로 마련된 새 분필을 하나씩 집어 자신들이 적고 싶은 글을 하나씩 적게 한다.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가? 아이들은 조심스레 원하는 색의 분필을 집어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글을 적기 시작한다. '하늘', '행복', '물', '성실'. 이제 휘거의 순서다. 시골학교 최고의 말썽꾸러기 휘거가 칠판에 쓴 글은 바로 '웨이 민치 선생님'이였다. 아이들은 이제 알고 있었다. 비록 웨이 선생이 자신들의 글쓰기를 지도할 수도, 노래 한 곡 제대로 가르칠 수 없었지만, 그 누구보다 자신들을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국 교육의 위기에 대한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공교육이 경시되고 사교육이 비정상적인 규모로 확대되어 가는 우리의 교육현실은 점점 더 효과와 효용성이 우상시되는 기능주의의 메마른 각축장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중국영화의 거장 장이모 감독은 척박한 시골학교의 초짜 교사 웨이 민치를 통해 인간 상호간의 진실한 만남을 전제로 하는 참된 교육의 가치와 의미를 그 나름의 소박한 화법으로 우리에게 반문한다. 기능보다는 사랑의 관계, 잘 하는 여러 명보다 그에 미치지 못하는 한 명의 문제아가 더욱 소중히 여겨지는 말 그대로의 '교육'의 가치를 말이다. 영화를 위해 장이모 감독은 실제 시골학교를 배경으로 모든 배우를 현지에서 캐스팅했다. 그런 이유로 다소 어색하기는 하지만 전문배우들이 결코 줄 수 없는 실생활의 모습과 정서를 잘 전달한다. 대리 선생 역에는 13살 소녀인 웨이 민치가 맡았고, 문제아 학생은 실제로 대단한 장난꾸러기였던 장휘거가, 그리고 가오 선생과 촌장, 방송국 국장도 다 실제 인물들이라고 한다. 이 영화는 '99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가족들과 모일 기회가 잦은 가을,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산채나물 정식 같은 영화 이다.
충북도교육청은 초등학교 이하 학교의 입학기준일이 현행 3월 1일에서 1월 1일로 변경 시행되는 시점이 2010년 입학 예정 아동부터라고 밝히고 학부모들이 혼선을 빚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했다. 도교육청은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 최종 확정될 경우 당초 입법예고대로 2008년 3월 1일자로 시행되어 2009년 3월 입학대상 아동은 초등학교가 2002년 3월 1일부터 2002년 12월 31일생까지, 유치원이 2003년 3월 1일부터 2005년 12월 31일생까지라고 밝혔다. 또 2010년 입학대상 아동은 초등학교가 2003년 1월 1일부터 2003년 12월 31일생까지, 유치원이 2004년 1월 1일생부터 2006년 12월 31일생까지라고 덧붙였다. 도교육청은 2007학년도와 2008학년도 초등학교 취학시 1, 2월 출생자가 취학유예를 희망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취학유예 결정시 학부모들에게 진단서 제출 등을 무리하게 요구, 민원이 발생되는 경우가 없도록 유의하도록 했다.
우리가 영어교육에 올인하고 있는 가운데 영어보다 국어 실력의 저하를 염려하는 소리가 높아가는 현실이다. 일본도「다음 세대를 담당할 아이들에게 국제적인 시야를 가진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육성한다」라는 차원에서 일본 중앙교육심의회의 외국어 전문 부회는 금년 3월에 초등학교 5,6학년생을 대상으로 주1시간 정도의 영어교과 필수화를 제언하였다. 이에 학습 지도 요령 재검토를 위해 현재는 이 과제가 교육과정 부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전문 부회 논의의 과정에서 「국어의 표현력이나 독해력 부족이 지적되고 있는 아이들에게 우선 국어교육을 충실하게 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하는 의견도 상당히 뿌리가 깊다. 이러한 점에서 앞서 실시한 우리가 안고 있는 과제를 염려하고 있다. 이처럼 영어 필수화에 대한 시비가 논의가 되고 있는 초등교육에서의 영어교육에 대하여, 이번 교육개혁의 핵심 수장으로 아베 내각에 취임한 이부키 문부과학 장관은 29일의 내각회의 후 기자 회견에서「과자는, 여유가 있으면 먹으면 된다」라는 지론을 다시 전개하여 초등학교에서의 영어 필수화에 부정적인 견해를 분명하게 표명했다. 이같은 대신 발언이 영어 필수화를 둘러싼 논의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은 틀림없다. 그는 기본적으로 신체를 유지해 가는데 중요한 것은 「단백질이나 타수화물」이라며, 국어 등의 기초 교과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호소했다. 나아가 이러한 것들이 「충분히 몸에 섭취되고 과자는 여유가 있으면 먹으면 된다」라는 관점을 강조했다. 따라서 문부과학성 관료들은 신임 대신으로부터 뛰쳐나온 예상외의 발언에 대하여 놀라거나 당황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국제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국제어인 영어 교육의 중요성은 확실히 높아지고 있다.그러나, 초등학교 때부터 전국 일률적이고 필수로 하는 것에 적지 않은 국민이 불안이나 의문을 안고 있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어력의 저하를 염려하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제적인 감각을 닦거나 외국인과 접해 문화적인 차이를 학습하거나 하는 일의 필요성은 시인하면서도 「최저한의 일본어의 소양을 마스터 하고 난 후 하여도 좋은 것은 아닌지」라고 말했다. 또, 3살 까지 영국에서 산 경험이 있는 자신의 아이를 사례로 들면서, 「(일본에) 돌아와 1개월 경과하고 나니 전혀 영어를 말할 수 없게 되었다」라며 자신의 직접 체험담도 말했다. 이처럼 찬성과 반대가 엇갈리는 시점에서 초등학교 영어 필수화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교육현장의 창의적 연구를 살린 선택제도 포함해 유연하게 검토해도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한글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영어는 또 하나의 스트레스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는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30년간 어린이 근시 유병률이 3배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안과학회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상반기까지 학회에 보고된 임상연구논문들을 분석한 결과, 1970년대에 8~15%에 그쳤던 어린이(초등학생) 근시 유병률이 2000년대 상반기에는 46.2%로 30여년 새 3배 가량 증가했다고 31일 밝혔다. 각 연대별 근시 유병률을 보면 1970년대 8~15%, 1980년대 23%, 1990년대 38%, 2000년대 46.2%로 꾸준히 증가했다. 대한안과학회 백혜정교수는 "어린이의 근시 유병률이 높아지는 원인은 취학 이전부터 학습량이 증가하는데다 컴퓨터 활용 등으로 과도하게 눈 조절 근육을 사용하기 때문"이라며 "또한 어린이 시력에 대한 진단과 교정이 증가하는 것도 유병률 상승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학회는 어린이가 만약 사물이 흐릿해 보인다고 호소할 때 부모가 어떤 검진과 교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어린이의 시력 상태가 좌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가성근시' 여부까지 명확히 파악해야만 바른 시력 교정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가성근시는 어린이에게 많은 일시적인 근시 증상으로 앞서 학습시간 증가, 컴퓨터 게임, 비디오 시청 등으로 피로해진 눈의 조절 근육이 수축돼 오는 '가짜' 근시 증상을 말한다. 가성근시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근시 증상이 있는 상태에 맞춰 시력 교정을 해주게 되면, 과 교정으로 인한 어지럼증, 두통 등의 부작용과 근시의 급속한 진행을 부르게 된다고 학회는 경고했다. 이에 따라 학회는 어린이 시력 검사 때 반드시 '조절마비제 점안 굴절 검사'를 할 것을 권고했다. 특히 첫 시력검진이라면 필수사항이라는 게 학회의 공식 입장이다. 조절마비제는 눈의 조절 근육을 풀어주는 점안액을 넣어 가성근시 여부와 굴절조절 내사시 등을 보는 검사 방식이다. 이 같은 검사 결과 근시를 비롯한 난시, 원시 등의 굴절 이상으로 인한 시력 저하가 진행되고 있다면 반드시 안경 교정을 해줘야 한다. 방치하게 되면 약시로 진행될 위험이 있다고 학회는 덧붙였다. 학회 오세열 교수는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자동굴절검사는 가성근시 등을 파악하기 어렵다"면서 " 예를 들어 시력감소를 호소하는 가성근시 어린이에게 근시 교정 렌즈를 착용시키면 그 상태로 시력이 굳게 돼 정상시력으로 회복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초등학생은 성격ㆍ대인관계ㆍ가족문제 등을, 중고생은 진로진학ㆍ학업 등을 주로 고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인적자원부가 31일 전국 181개 지역교육청에 배치한 전문상담순회교사를 통해 상반기 상담실적을 분석한 결과 모두 9만4천10명의 초중고생이 각종 고민을 상담한 것으로 집계됐다. 상담 유형을 보면 초등학생은 대인관계(179건), 가족문제(171건), 성격ㆍ정신건강(170건), 진로진학(87건), 따돌림(80건), 학업(79건) 순이었다. 중고교생은 진로진학, 성격ㆍ정신건강, 학업, 대인관계, 폭력 순으로 상담을 많이 했다. 따돌림과 관련된 상담은 초등생 80건, 중학생 1천723건, 고교생 230건이었고 폭력 관련 상담은 초등생 40건, 중학생 7천166건, 고교생 659건 순이었다. 성폭력과 관련된 상담은 중학생 595건, 고교생 42건, 가출과 관련된 상담은 초등생 6건, 중학생 725건, 고교생 121건, 흡연 상담은 중학생 881건, 고교생 428건 등이었다. 학교폭력대책팀 박정희 교육연구관은 "지난해 9월 처음으로 전문상담순회교사 308명을 배치한 뒤 학교상담이 활성화되고 있다"며 "학생 비행 및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상담활동을 대폭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기도내 초.중.고교생들의 해외 조기유학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1일 도 교육청이 국회 교육위원회 김영춘(열린우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자비로 해외유학을 다녀오거나 떠난 학생은 초등학생 3천250명, 중학생 1천917명, 고교생 1천793명 등 모두 6천960명이었다. 도내 자비 유학생은 2003년 2천674명(초등학생 1천124명, 중학생 846명, 고교생 704명), 2004년 5천185명(초등학생 2천10명, 중학생 1천583명, 고교생 1천292명) 등으로 매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 가운데 초.중학생의 자비 해외유학은 관련 규정상 인정받지 못하는 사실상의 불법 유학이다. 국외유학에 관한 규정 5조는 자비유학의 조건을 '중학교 졸업이상의 학력이 있거나 이와 동등 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로 규정,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자비유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지난해 초.중학생의 자비 유학은 성남교육청 관내가 1천122명(21.7%)으로 가장 많은 가운데 다음으로 고양교육청 관내 1천30명(19.9%), 용인시 관내가 517명(10.0%)을 차지, 소득수준이 비교적 높은 지역이 자비 해외유학의 상당수를 차지했다. 김 의원은 "국민적 합의를 통해서 만들어진 초.중학생의 자비유학 제한 규정이 교육현장에서 사문화됐다"며 "학생들이 어학연수.관광 등의 비자를 이용한 외국유학을 결정할 경우에는 학교에 반드시 통보하도록 하고 불법적으로 조기유학을 다녀와서 국내 학교로 복귀하는 학생 등에 대해서는 소정의 페널티를 부여하는 방안도 강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