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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일 대회의실에서 2대 김성동(金成東) 원장의 취임식을 갖는다. 김 신임원장은 정부출연기관장 공모절차에 의해 지난해말 선출됐다. ◇약 력 △42년 경남 남해생 △진주사범, 서울교대, 국제대,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졸. 철학박사 △행시 17회, 문교부 대학학무과장, 경상대 사무국장, 교육부 사회국제교육국장, 대통령비서실 교육비서관, 교육부 기획관리실장, 교원징계재심위 위원장 역임.
공교육 정상화와 OECD 수준 교육여건 개선의 핵심과제인 교원정원 증원이 오히려 뒷걸음을 치고 있다. 교육부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2004년까지 학급당 학생수를 초·중학 35명(현재 초35.8, 중38), 고교 40명(〃41.7)으로 감축하기 위해 매년 5500명씩 총 2만2000명의 교원정원을 증원키로 했다. 특히 논란을 빚고있는 7차 교육과정의 원활한 시행을 위해 교원정원의 증원이 불가피하단 것이 교육부의 주장이다. 그러나 내년도 정원 조정작업을 벌이고 있는 현재, 행자부 등 관계부처의 `작은 정부 방침'에 밀려 내년도 정원증원이 1945명 수준에 머물고 있어 법정정원 확보율이 올 보다 오히려 감소하는 등 뒷걸음을 치고 있다. 잠정 결정된 정원증원분 1945명을 시·도별로 가배정한 결과 법정정원 확보율이 금년도의 91.3%보다 2.6%나 떨어진 88.7%에 불과하다. 특히 초등의 경우 97.2%에서 92.2%로 무려 5%나 감소하고 있다. 1945명은 내년도에 신·증설되는 8766개 학급의 18%선에 불과하다. 특히 교육시설 팽창비율이 가장 큰 경기도의 경우 금년에 3569개 학급이 신·증설되는데 따라 5321명의 교원이 신규로 증원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1632명만 가배정돼 무려 3689명이 부족한 실정이다. 경기도 초등의 경우 2998명이 신규 증원돼야 하나 503명만 가배정된 상태다. 이에 대해 일선 교육계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공교육 정상화와 OECD 수준의 교육여건 개선을 공약한 정부가 정작 핵심사안인 교원 정원확보에서부터 개악을 조장하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교육부 김정기 교원정책심의관은 "2월중 확정 배정될 때까지 행자부나 기획예산처 등 관계부처를 설득해 정원 증원을 최대한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를위해 1월중 `지방교육행정기관 및 공립학교 공무원 정원규정' 개정을 요청하는 등 관계부처와의 증원 협의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국회는 지난달 27일 교육부를 교육인적자원부로 변경하고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격상하는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통과시켰다. 당초 한나라당은 작은정부 원칙에 따라 교육부총리제 도입을 반대해 통과여부가 불투명했으나 행자위 표결 결과 12대 11로 가결됐다. 정부는 법통과에 따라 이달중 대통령령인 직제개정안을 확정하고 이에따른 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다. 국회는 또 당초 예산안에서 305억을 감액한 23조5234억원의 교육예산안이 포함된 총액규모 100조2246억 규모의 2001년도 새해 예산안을 확정했다. 내년 교육예산안중 교직단체와의 교섭협의를 거쳐 확정된 교원 처우개선 소요예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본급 5.5%인상(보수4.7% 인상효과) 5045억 ▲기말수당 200%산입(보수 2% 인상효과) 2146억 ▲학급담임수당 월 6→8만원으로 인상(535억) ▲보직교사수당 월3→5만원으로 인상(157억) ▲국내 이전비 지급(29억) ▲노조사무실 지원(10억) 등이다. 그러나 국회 교육위 계수 조정과정에서 증액됐던 초·중등교원간 수당차액 해소와 보건활동 수당안은 예결위 심의과정에서 제외됐다.
신사년(辛巳年)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를 맞아 40만 교원과 학생, 학부모 여러분의 가정과 학교에 축복이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저 찬란한 새해의 빛으로 지난 해 우리들의 가슴을 억눌렀던 온갖 울분과 고통의 묵은 감정이 말끔히 녹아 사라지고, 동토(凍土)가 되어 버린 우리 교육이 양지(陽地)로 변하기를 교육가족 여러분과 함께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지난 해 우리는 새 밀레니엄과 함께 큰 희망을 안고 출발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전분야에 걸쳐 심각한 위기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우리 교육도 교원정년 단축 등 무모한 정책시행의 후유증으로 교단 혼란과 교육의 질 저하 현상이 나타났고, 교권경시 풍조와 교원사기 저하, 학생, 학부모의 학교불신 심화로 교실붕괴 현상이 더욱 가속화된 한 해였습니다. 교육재정 부족과 정부의 의지 미흡으로 교육여건은 오히려 후퇴했으며, 교원들의 전문적 의견을 무시한 정책으로 일관해온 교육개혁은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교육환경을 OECD국가 수준으로 높이고 교원의 사기를 한층 높여 세계 10대 지식정보 강국을 이룩하겠다는 정부의 새천년 교육구상은 이미 허울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약속을 저버린 채 교원에게 부담을 강요하는 연금법 개정을 강행하고 실패로 끝난 교원정년 단축의 재조정을 위해 과반수 이상의 국회의원이 낸 법안을 정책의 일관성이란 이유로 무산시키려는 정부·여권의 태도에 교원들의 불신은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교육동지 여러분! 이처럼 우리 교육은 지금 깊은 수렁 속에 빠져들고 있지만, 우리마저 좌절감에 사로잡혀 도전을 포기해서는 결코 안되겠습니다. 교육은 우리 삶의 의미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가시덤불 속에서 장미가 피어나듯 우리는 절망속에서 희망을 찾아내야 합니다. 얼어붙은 우리 교육에 새 희망의 불씨를 지펴 녹여내야 합니다. 안팎으로 겪고 있는 시련과 넝마처럼 얽히고 섞인 교육난제(敎育難題)를 우리들의 힘으로 풀고 다시 가지런히 되감아야 하겠습니다. 교총으로 굳게 뭉쳐 위기에 처한 이 나라 교육을 살려냅시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우리 교육동지들이 먼저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면서 올바른 교육 실천에 앞장섭시다. 그리고 우리들의 요구를 강력하게 표출합시다. 교총은 교육동지 여러분의 질책과 요구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더욱 강력한 힘으로 이를 실현해 나갈 것입니다. 금년에는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한국교총에 바로 전달되는 '열린교총'으로 체제를 개혁하고 다양한 수혜사업을 벌여 선생님의 삶의 질을 한 차원 높여 나가겠습니다. 현장을 무시한 교육·교원정책을 봉쇄하고 수석교사제 실시하며 7차 교육과정 보완, 교육여건 개선 등 숙원 정책과제의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강력한 교권옹호와 이해증진 활동으로 교직의 신뢰를 높이고 교원종합연수원 설립을 추진하는 등 교직의 전문성 향상에 힘쓸 것입니다. 통일기반 조성을 위한 남북 교원교류의 물꼬를 트고 교원, 학생, 학부모가 하나되는 학교공동체 형성운동을 광범위하게 추진하여 교육의 일대 전환점을 이루고자 합니다. 신사년(辛巳年) 새해 교육가족 여러분의 가정과 학교에 축복과 기쁨이 늘 함께 하기를 다시 한번 기원합니다.
한국교총과 교육부는 지난달 29일 교육부 대회의실에서 제7차 교육과정 관련 주요 쟁점사항에 대해 협의했다. 이날 협의회는 먼저 교육부측에서 제7차 교육과정의 쟁점사안에 대해 입장을 설명하고 이에 대해 교총측에서 쟁점사안별 학교급별 실정과 교원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토론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양측은 쟁점사안으로 수준별 교육과정, 고교 2∼3년의 선택중심 교육과정, 재량활동 및 특별보충과정, 교원신분, 교원확보 및 교원연수, 시설·설비 및 교재·교구, 행·재정적 지원, 교과서 관련 내용, 교육과정 관련 제도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교총측에서는 채수연 사무총장, 문덕심 서울사당초교사, 배원룡 서울선화예중교사, 한승천 강원대사대부고교사, 박진석 교권정책국장, 이병기 연구부장, 전제상 선임연구원이 교육부측에서는 김조영 학교정책실장, 김정기 교원정책심의관, 이경환 교육과정정책과장, 김만곤 장학관, 김동원 연구관, 김대원 연구사, 권영민 연구사 등이 참석했다.
당선입니다. 다 아는 얘기를 그저 서사로 꾸며 봤을 뿐인데 장원 급제라니, 귀를 의심하였다. 이번 작품 속에 들먹인 에피소드들은 대부분 실화를 윤색한 것으로 교사 생활을 하면서 겪은 것들로부터 유추된 유사연합 적인 것도 있다. 알다시피 빙산의 일각. 하지만 그처럼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 잖은가. 평생 잊을 것 같지 않은 일이 하나 있다. 막 수업을 시작하려는 때였다. 목에 점액성 이물이 끼어 있었다. 폐강 속의 공기를 급속히 끌어내어 그것을 긁어냈다. 그 때였다. 코앞에 앉아 있던 녀석이 꺼내 놓은 연습지를 한 장 황급히 찢어 두 손을 모아 나에게 내밀었다. 그 행동은 장난기 어린 행위가 아니었다. 여기까지도 놀랄 일이지만 더욱 놀랄 일은 그 순간의 내 심경이었던 것이다. 그 뜻밖의 배려에 비복이 상전으로부터 숭늉 대접을 받은 것 같은 황공함이었다니...... 제자와 스승의 관계를 구매자와 판매자, 고객과 점주의 관계로 보면서 고객은 왕이라던가, 그것을 헌신적 자기 희생의 성직자연하여 마치 선진적 교육 철학인 양 착각하는 저간 일각의 그 자기 비하적 발상에 서글픔을 느낀다. 대접은 스스로가 만드는 법, 교육만은 권위주의적 바탕 위에서만 성취되는 것이다. 많은 어려움을 속으로 삭이시며 어둠 속에서 나름의 빛을 깜빡이시는 반딧불이 선생님들께 존경의 염을 주체할 수 없다. 자존심 건드리며 용감하도록 거침없던 집사람의 작품에 대한 잔소리가 오늘의 영광을 가져 왔다는 것에서 고마움으로 다가온다. 이 영광을 집사람과 나누고 싶다. 심사 위원님, 감사합니다.
올해로 번 째 맞이하는 교원문학상 소설부문은 우선 각박한 교단 현실에서도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사물과 현상을 자유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교사로서는 매우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다. 응모한 작품들 대부분이 교육 현장의 문제에 대해서 매우 치밀하게 인식하고 있고 그 것을 형상화한 문학은 우리의 교단생활을 매우 보람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최우수작에 뽑힌 '일직 날'은 교단에서 겪은 이야기를 매우 시니컬하게 다른 작품으로 구성도 반듯하며 상황처리도 탁월했다. '신 죄와 벌'은 문제 학생의 실상과 그들을 지도하는 교육현장의 문제를 학생시점으로 처리한 점이 좋았다. '1999 덕적도'는 학교 통합으로 빚어지는 섬 학교의 실정과 분위기를 잘 처리했다. '그녀의 일기 속에'는 그녀의 일기 속에 끼어 든 배추흰나비의 잔잔한 사랑의 이야기를 알레고리로 삼아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반전시킨 발상이 돋보였으나 너무 평면적이었다. 대부분 작품들이 너무 교단 현장 문제에 치우쳐 있고 그 문제를 접근해 가는 태도도 매우 이념적이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교단은 교육대상자로서의 학생들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진실을 수없이 만나는 특별한 공간일 것이다. 그러한 진실을 체험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교육에 임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성장소설이 나올 수 있는 좋은 환경이다. 한 인간이 성장해 가는 과정은 그 것이 어떤 모습이든 매우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이나 그 것은 훌륭한 문학의 소재가 될 뿐만 아니라 교육의 소재가 된다면 학교 부재의 우리 현실에서 문학교육과 창작을 통해서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교단으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내년에는 정말 아름다운 성장소설들이 많이 응모해주기를 기대하면서...
지난달 19일 민통선 안에 소재하고 있는 작은 규모의 강원 양구 해안초등학교(교장 이영배)에서는 그동안 한번도 해보지 않은 형태의 수업이 열렸다. 일본 동경의 히로소학교 6학년 48명과 이 학교 6학년 21명이 최초로 한·일 원격화상 수업을 펼친 것. 수업의 내용은 컴퓨터 음악. 학생들이 직접 컴퓨터를 이용해 만든 동요곡을 실시간으로 서로 듣고 평가했다. 조별로 사전에 제시된 주제 사진을 보고 여기에 맞춰 학생들의 느낌을 작곡한 것이다. 두 학교는 이번 수업을 위해 이미 수업 교류 및 음악 교류 협정을 맺었고 조별로 인원도 배정했다. 각자 속한 조별로 자기 소개 및 음악에 대한 생각과 느낌, 자화상 등도 E메일로 교환해 왔다. 이날은 학생들이 화상카메라로 멀리 떨어진 서로를 보면서 자신이 만든 곡에 대한 소감을 나눈 것이다. 한 차원 높은 교수 학습이 이뤄진 셈이다. 수업을 마친 뒤 학생들은 우리 음악을 세계에 알린데 대한 자부심과 전혀 색다른 수업을 한 것에 대한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다. 일본 문부성 관계자들도 우리 나라 학생들의 작곡실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담임인 최광석교사는 컴퓨터 음악이 학교 음악수업에 이용될 때 얻는 장점이 무수히 많다는 생각에서 이번 수업을 준비해 왔다. 컴퓨터 세대인 초등학생에게 호기심과 흥미 유발, 수업 목표 이상의 심화학습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물론 도시 문화의 혜택에서 소외된 벽지 어린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다른 나라 어린이들고 교류를 한다는 것도 의의가 컸다. 최교사는 컴퓨터 음악을 활용한 창작 지도 방안으로 교총 주최 전국현장연구 논문 음악부문에서 푸른기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광석는 "우리 나라와 일본 어린이들이 화상을 통해 서로의 음악문화를 접해 보는 기회를 가짐으로 양국간의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도심지에 위치한 학교의 경우 소음공해로 인해 교육활동에 지장을 받는 경우가 많다. 또 예산부족으로 인해 방음벽과 같은 소음방지대책을 강구하기도 힘들고 방음벽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교실의 경우에는 그 효과가 낮다. 전직 교장과 교사가 이같은 학교의 소음공해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해 화제다. 전 이리여고 최성수교장과 전 이리여중 진교준교사가 그 주인공. 이들이 개발한 장치는 방음커튼. 방음커튼은 소음을 흡수시키는 흡음홈과 흡음기공을 다수 뚫어 놓은 특수 흡음소재를 투명 아크릴판 위에 부착시킨 것으로, 3각면이 형성되도록 구성돼 있다. 교실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소음은 방음판의 1면각에 부착된 흡음재에 접촉하여 1차로 흡수·감소되고 1차로 감소된 소음이 실내로 유입되면서 방음판의 제3면각에 부착된 흡음재의 흡음홈과 흡음공에 접촉하여 2차로 흡수·감소된다. 2차로 감소된 소음은 다시 좌측면에 있는 방음판의 2면각에 부착된 흡음재의 흡음홈과 흡음공에 접촉하여 3차로 흡수·감소된다. 이 커텐을 통과해 창 밖으로부터 실내까지 유입된 소음은 가청 주파수 이하에 가까운 음파인 30dB정도로 감소되고 햇빛도 약해지게 된다. 일반커튼을 대신해 사용할 수 있어 1석2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고 교실환경을 아름답게 하며 겨울철에는 보온효과도 높아진다. 기존의 방음벽의 설치비용은 수억원씩 하는데 이 제품은 한 교실당 약 50만원정도로 저렴하다. 최교장과 진교사는 이 장치로 행정자치부가 주는 올해의 우수창안상 금상을 수상했다.
정동극장은 방학 기간중인 1월 한달동안 `어린이 연극축제-정동극장과 함께하는 겨울 어린이극장' 무대를 연다. 어린 왕자, 콩쥐랑 팥쥐랑 이야기, 춤추는 허수아비 등 모두 세 작품이 오르게 되는 연극축제는 재작년과 지난해 서울국제아동청소년 연극제에서 수상한 작품을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ASSITJ)와 함께 정동극장이 함께 선정한 작품으로 꾸며진다. 각 작품별 공연일정은 다음과 같다. ▲어린 왕자(극단 수레무대) 9∼14일 오후 2시, 4시 ▲콩쥐랑 팥쥐랑 이야기(극단 모시는 사람들) 16∼21일 오후 2시, 4시 ▲춤추는 허수아비(극단 님비곰비) 25∼31일 오후 2시, 4시(29일 쉼)
태풍이 올라오면서 곳곳에 비 피해가 크다. 어제로서 후반기 보충 수업이 끝나긴 했지만 이러다간 나들이 한 번 가보지 못하고 사흘 얻은 휴가 마저 다 놓칠 것 같다. 그나마 하루는 일직으로 걸렸으니...... 이번 정류장은 오거립니다. 다음 정류장은 b동 고갭니다. 부산히 쓸리는 전망창 닦개 너머로 멀리 빗발 속 우산들이 승천을 기다리는 혼령들 형상으로 까마귀 떼처럼 모여 있다. 차 머리가 인도 쪽으로 꺾이자니 먼발치의 우산들이 진작에 서둘러 차도로 내려서며 밀치며 헤집으며 실랑이질에 앞자리 다툼한다. 빠듯이 들어차는 물생들. 일요일 아침에다 이 우중에 오늘 따라 웬 사람들인고? 그들이 묻혀 들이는 비릿한 빗물 냄새와 함께 차안이 후텁한 무덤 속이다. 정체된다 싶어 전망창 앞을 내다보았다. 두 마리의 두꺼비가 짝짓기 하듯 엉켜 있고, 그 옆에 반바지와 대머리가 빗줄기 속에서 상대의 멱살을 부여잡고 그들의 두꺼비처럼 엉켜 있다. 그 통에 한길이 온통 얹혀 버린 것이다. 어디다 손을 대요? 갑자기 찌르듯 삦어 나온 여자의 외마디, 드디어 숨가쁨의 뻐끔질이 시작되려나 보다. 이 아주머니가! 누가 손을 댔다는 거야! 되받아치는 사내의 지름소리에 이어 아저씨, 내려 줘요, 걸어갈래요, 하는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가 천장을 찌른다. 진작 그럴 것이지, 느물거리는 사내의 목소리에 능글맞아요! 하는 그녀의 대거리가 만만치 않다. 기사 양반, 나두 내리겠우. 문 열어요. 숨차 헐떡이는 뻐끔질, 그 빈사상태. 차가 그 뻐끔질에 동조한다. 여자가 내리고 사내가 내린다. 이 무슨 해괴한 광경인가? 개 고양이 같던 여자와 사내가 한 우산 속에서 다정하게 붙어간다. 나는 손목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7시 50분. 8시안에 대 가긴 애저녁에 틀린 일이다. 소금쟁이 같은 검은 제복의 모자가 등장한다. 엉켰던 반바지와 대머리 사이에 간격이 지어진다. 소금쟁이가 팔을 들어 길가 쪽을 가리킨다. 반바지와 대머리가 각기 제 두꺼비에 오르고 그들의 두꺼비가 길가 쪽으로 끌리면서 비로소 엉겼던 한길이 봇물처럼 터진다. 일련의 광경이 무성 영화를 보는 듯하다. 또 태울 참인겨? 차 머리가 보도 쪽으로 꺾이는가 싶으면서 송곳 같은 날카로운 지름소리가 천장을 가른다. 어째 잠잠하다 했다. 고만 태우라우! 어데 더 탈 틈이 있다고 이라노! 삶의 뻐끔질이 용틀임칠 기세다. 어머! 내 돈! 60만 원! 돌연한 절규와 동시에 그 성 희롱 연극의 우산 속 남녀의 환영이 아차 하는 머리받힘을 일으킨다. 아저씨! 아무도 내려 주지 마세요! 숨차 할딱이는 여인. 열리려던 차 문이 서둘러 아물린다. 이 안에 소매치기 있다구요! 다급해 하는 여인의 목소리. 아니다. 소매치기는 없다. 나는 속으로 뇐다. 접어들이려던 차가 내쳐 발길을 내딛는다. 차 세워! 내린다구! 차 안 서고 와 이라노! 차 세우라우! 차안이 분화구처럼 들끓기 시작한다. 경찰서까지 가야 합니다. 운전수가 우련히 뇐다. 경찰서가 어디야? 강파른 말마디가 앞으로 날아온다. 조금만 가면 됩니다. 운전수가 차의 고삐를 다그친다. 쓰린 쓰리고 내릴 사람은 내려야지! 가이고 탔으만 단다이 챙길 기지 시간 없는데 이기 뭐꼬! 쓰리꾼이 여태 이 안에 있가지비! 바보야? 촌각을 다투는 아침 시간에 이게 뭔고! 시내를 한 바퀴 돌 참이여? 익명성 뻐끔질이 화산처럼 폭발한다. 포도청 마당 안으로 차 머리가 디밀리자 의례 그것이려니 하는 표정의 하늘색 반소매가 다가온다. 소매치기. 운전수가 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그 일상성에 '남의 일' 하듯 하늘을 쳐다보며 다가온 반소매에게 말하였다. 얼마? 반소매가 물었다. 60만 원. 운전수가 여전히 해바라기 하듯 얼굴을 하늘에 꽂은 채 대답하였다. 추적이는 빗발 속에서 반소매가 앞문에 붙어선다. 또 다른 반소매가 나타난다. 먼저 나타난 반소매에게 다가간 뒤의 반소매가 먼저 온 반소매와 잠시 더듬이짓 하더니 뒷문으로 간다. 반소매가 빚어지는 사람들을 하나 하나 몸뒤짐한다. 내가 내리자 반소매가 나의 대봉투에서 책을 꺼내 책갈피를 후루룩 넘겨본다. 그리고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꺼낸다. 지갑 속에서 편지 봉투와 돈이 나왔다. 얼마요? 반소매가 지갑을 들치며 물었다. 편지 봉투 속의 것은 알지만 지갑 속의 것은 아슴아슴하기에 '글쎄요.' 하였다. 그 쭈밋거림이 못마땅한지 얼만지도 모른단 말이요, 하고 타박이다. 선생이요? 반소매가 뒤져 꺼낸 신분증을 들여다보며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나의 대답에 촌지 받은 거요? 하며 편지 봉투를 까불린다. 어제 보충 수업비 받은 겁니다. 미처 집사람에게 건네지 못하고......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나의 쭈밋거림이 수상한지 아주머니! 이리 와 봐요! 하고 소리 친다. 한 아주머니가 달려온다. 이거 봐요, 하며 반소매가 봉투에서 수표를 꺼내 아주머니에게 내 보인다. 아니에요. 현찰이에요. 아주머니가 징징거린다. 반소매가 지갑과 수표를 나에게 돌려준다. 비가 삐어 가고 있으므로 우산을 접었다. 어제 보충 수업비 받은 겁니다, 미처 집사람에게 건네지 못하고...... 뒤늦게 그 변명이 비굴하고 자괴스럽고 언짢다. 그 언짢은 기분을 해소시킬 양으로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찾았다. 없다. 그 흔한 담뱃가게 하나 눈에 띄지 않는다. 문 앞까지 와서야 담뱃가게를 만날 수 있었고, 담배를 사 가지고 돌아섰을 때 하늘이 다시 비를 퍼붓기 시작한다. 접었던 우산을 도로 펼쳐 들었다. 철문이 배죽이 열려 있다. 철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서 문을 징거 주었다. 비에 씻긴 운동장이 휑뎅그렁하고, 여러 가닥의 물길이 실개천을 이루며 지절거리고 있다. 바람까지 실은 빗줄기는 빗발의 삼대밭이다. 튀겨 오르는 물방울이 자자하게 물안개를 피워 올리며 바짓가랑이에 무게를 단다. 우산 천 속으로 튀겨드는 는개 같은 물방울이 소분소분 눈썹에 달라붙는다. 누렇고 비썩 마른 개 한 마리가 빗속을 누비며 비실비실 뒷문 쪽으로 기어가고 있다. 꼬리가 축 처진 녀석의 잔등은 빗물로 털이 줄줄이 엉겨 붙었다. 꼬락서니하군, 나인지 개인지를 딱해 하며 층계를 올랐다. 빗발 속에 갇힌 두 동의 회색빛 시멘트 덩이는 거대한 괴물만 같다. 구관의 현관은 자물쇠를 물고 있었다. 지나치는 걸음으로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자니 창문 하나가 열려 있고, 그 열려진 창문으로 빗물이 들이치고 있다. 창문을 닫아 주지 않고는 집채가 빗물에 잠길 형국이다. 열쇠를 가져 와야 했고, 서둘러 본관으로 향하였다. 현관문을 밀었다. 집채를 허물어뜨릴 듯한 문소리가 비명을 질러대며 몸서리치게 하였다. 수납 창구를 통해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도 없다. 시계를 보았다. 9시가 반이 넘고 있다. 일직 교사를 기다리던 야간 경비원 곽 씨는 그만 들어간 모양이다. 여태 기다릴 리가 없다. 주혜자 선생도 아직 오지 않았나 보다. 이런 일을 감안해서 두 사람씩 짝 지어 놓지 않았는가. 우산을 문 옆에 세우고 복도로 올라 서무실 문을 열었다. 드르릉거리는 미닫이가 몸살을 앓는다. 서무과장 책상으로 가 당직 근무 일지를 당겨 끈을 물고 있는 갈피를 잦혀 당직자 서명란에 '한정수'를 기재하고 사인을 했을 때 현관문 소리가 났다. 수납 창구를 통해 내다보았다. 무슨 일로 이제야 나타나는가? 그녀가 우산을 접어 벽에 세우고 복도로 올라서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목례를 하고는 곧장 교무실 쪽으로 향한다. 무슨 대면이 저런가? 열쇠함 쪽으로 걸어가 함을 열어 보았다. 함이 비어 있다. 사방을 두리번거려 보았다. 열쇠 꾸러미는 사환 아이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열쇠 꾸러미를 집어들고 복도로 나오자니 그녀가 교무실 문 앞에 서 있다. 뭐 꺼낼 거 있나 보다는 생각에 뭐 꺼낼 거 있습니까, 하고 다가가자 그녀가 네, 하고 희미하게 대답하였다. 넝마뭉치 같은 열쇠 꾸러미는 뒤죽박죽 미친년 머리채다. 열쇠 꾸러미를 뒤져 '교무' 열쇠를 건져 교무실 문을 열어 주고 돌아서서 현관으로 나왔다. 우산을 집어들고 현관문을 밀었다. 우산을 뒤집을 기세의 바람비가 콩자루를 쏟는 듯한다. 우산대를 꽉 거머쥐고 빗속을 뚫어 구관의 현관 앞에서 몸을 날렸다. 열쇠 꾸러미를 뒤져 '구.현' 열쇠를 건져 올려 자물쇠를 따고 안으로 들어갔다. 비릿한 빗물 내가 고역스레 얼굴을 덮쳤다. 뻔한 유리창들은 청맹과니다. 비바람에 청맹과니들이 아우성을 쳐댄다. 들이치는 빗발을 피해 맹수한테 접근하듯 열려진 창문으로 다가갔다. 벌떼처럼 날아드는 빗방울을 무릅쓰고 창문을 당겨 보았다. 꼼짝도 하지 않는다. 꼼짝도 하지 않으니까 그냥 가 버린 것이다. 부룩송아지를 다루듯 해 보았다. 마침내 부룩송아지가 비명을 지르며 머리채를 메다꽂았다. 복도가 한결 성질을 죽였다. 손수건을 꺼내 팔뚝과 얼굴에 달라붙은 빗물을 훔치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자욱한 습기에 갱도처럼 침침한 복도가 한 배 가득 푸른빛을 머금은 거대한 고분을 연상시키며 무섬증을 몰고 왔다. 후텁 하면서도 서늘한 복도가 발길을 옮겨 놓을 때마다 삐극삐극 몸살을 앓는다. 한 틈입자가 벽 틈 어디에 은밀히 몸을 사리고 있다가 얼른 다른 곳으로 몸숨김 했을 것만 같다. 물어뜯는 빗발 서슬에 유리창들이 와그르르 한바탕 소란을 피우며 비바람의 날카로운 발톱에 사정없이 할퀸다. 입시 격문이 붙은 복도 천장의 시멘트 턱살이 희번득희번득 인광을 풀어내는 사자의 관구만 같다. 교실 쪽 벽의 두어 발 간격으로 나무틀에 갇힌 연필화 석고상들은 사자와 함께 순장된 내관들만 같다. 벽 속의 한 천둥벌거숭이에게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는 벌거숭이를 노려보았다. 벌거숭이도 나를 노려보았다. 어딘가 씨무룩한 벌거숭이에게서 씁쓸한 눈길을 거두고 총총 삼층 복도로 발길을 돌렸다. 삼층에서 길게 뚫린 복도를 흘낏 일견하고 사층을 거쳐 오층으로 올랐다. 수업을 파하고 우르르 빠져나간 도깨비들의 지껄임과 웃음소리와 발자국 소리들이 복도 바닥의 틈바구니에 틈틈이 박혀 있다가 여름날의 논두렁에서 꽉꽉거리는 엉머구리 떼 마냥 와그르르 한꺼번에 되살아날 것만 같다. 내다보이는 바깥은 여전히 세찬 빗줄기로 희뿌옇고, 회색빛 하늘은 가라앉을 듯 대지를 짓누르고 있다. 운동장 끝의 구름을 찌르는 한 떼의 유령 같은 거대한 사시나무들은 비바람에 휘청거리며 뿌연 우연 속에서 산발한 머리채를 흔들흔들하고 있다. 철조망 가두리에 갇힌 이 엄청난 시멘트 덩어리는 양 날개를 열 길도 넘는 낭떠러지 위에 드리우고서 아래로 토물을 게워 내고 있다. 또 다른 토물은 사태가 난 곳 뒷부분께서 철조망 밖으로 하수구처럼 배설되고, 그 건너편 주택들의 지붕 위에서는 빗줄기들이 모래알처럼 부서지고 있다. 별안간에 재채기가 터져 나왔다. 손등으로 인중을 훔쳤다. 비릿한 열쇠 쇳내가 코 끝에 달라붙는가 했을 때 천둥소리가 시멘트 덩어리를 할퀴고 심장을 갈아 뭉개며 짜증을 몰고 왔다. 그 짜증이 나를 단숨에 일층으로 내려오게 하였다. 현관문까지 내려와서야 본관으로 건너가려 했던 것을 상기하였고, 다시 이층으로 올랐다. 구관에서 본관으로 통하는 이층 사잇문에도 자물쇠가 채어 있다. 밖에서 들여다볼 때나 마찬가지로 본관은 희뿌연 망자의 영기로 가득 찬 고분의 긴 회랑 그것이었다. 발길을 옮겨 놓을수록 음산하고, 창문들이 비바람에 울어댄다. 복도 깊숙이 눈길을 한번 주고 삼층으로 올랐다. 독서실 문이 양 날개를 펼친 채 벌렁 퍼드러져 있다. 삼백여 개의 의자와 책상들이 깊은 잠 속에 빠져 있고, 밤늦도록 시달린 의자와 책상들이 입시생처럼 지쳐 끄물끄물 휴일 하루를 정양하고 있다. 커튼마저 후줄근해진 몰골로 축 늘어진 채 곤스레 잠들어 있고, 밤늦은 커피를 끓여 마시고 팽개친 감독 교사실의 주전자가 가스렌지 위에서 을씨년스레 꾸벅이고 있다. 문을 여며 주고 독서실을 나와 긴 복도를 지나 생물실까지 왔다. 튼튼하게 생긴 주먹만한 잠금쇠가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문짝을 굳게 아물고 있다. 사층으로 올랐다. 사층 역시 휘말리는 빗발 서슬에 으스스 몸서리를 치고 있다. 긴 복도를 걸어 들어갔다. 곧장 서무실로 내려가려던 나는 구관 현관문을 잠가야 하겠기에 이층으로 되돌아왔고, 구관과 본관의 사잇문을 잠그고 일층으로 내려와 밖으로 나왔다. 현관문을 잠그고 우산을 펼쳐 들었다. 빗속을 누벼 본관으로 왔다. 현관문을 밀었다. 현관문이 비명을 토하였다. 문을 잡은 채 살며시 징거 주었다. 우산을 벽에 세우고 복도로 올라 서무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서무실에 없었다. 그저 교무실에 있나 보다. 일직은 서무실에서 같이 하게 돼 있지 않은가? 열쇠 꾸러미를 함에 넣고 소파에 몸을 묻었다. 원격 조정기로 텔레비전을 켜 보았다. 허공에 뜬 곰보 자국의 창백한 원구가 나타났다. 지구의 나이와 같습니다. 50억 년을 지켜 온 처녀성을 유린당했습니다. 지하에서 이태백이 통곡할 겁니다. 달인가 보다. 촌지 받은 거요? 소파의 감촉이 내 마음인 양 끈끈하다. 탁자 위의 음식점 성냥곽을 집어 담배를 붙여 물었다. 온통 자고 있다. 마녀의 주술에 걸린 성채다. 주검과 같은 깊은 늪. 그리고 폭풍우. 모든 존재는 종말로 닿아 있다. 자아의식에 과민함은 부질없다. 전화 소리가 심장을 흔들었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벌떡 일어나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학교지요?" "그렇습니다." "겨우 통화군." "예?" "전화 받는 사람이 없어서요." "녜?" "저, 2학년 8반 담임 선생님 나오셨나요?" "방학에다 일요일 아닙니까?" "2학년 8반 담임 선생님 전화 번호 좀 가르쳐 주세요." "너, 학생이지?" "녜." "그럼, 학생이라고 밝혀야지." "죄송합니다." "담임 선생님 성함이 뭐야?" "차순복요." 전화통 옆의 직원 주소록을 당겨 가나다 순의 주소록 끝 부분께서 '차순복'을 들춰냈다. "여보세요." "녜." "3*3에 0606." "씨이팔, 미친개 번호 한번 기똥차네." "뭐라구!" "안녕히 계세요응. 퍼큐! 매롱." 전화가 뚜우 끊어졌다. 이놈의 도깨비! 눈을 떴다. 잠이 들었었다. 소파에 깊숙이 파묻혀 있었다. 달 표면에 붙은 두 마리의 벌레가 고무 풍선처럼 둥둥 지면을 날고 있다. 민물 징거미 같다. 달에서 보이는 지구가 허공에 걸려 있다. 창백한 비누방울이다. 저 속에 아옹다옹이 있다니, 개미의 일만이나 할까? 희로애락이 그지없이 가소롭다. 채널을 바꾸었다. 비가 너무 왔다. 열차가 전복되었다. 사람들이 죽었다. 사람들이 통곡한다. 다시 채널을 바꾸었다. 지구는 그저 비누방울이다. 그래, 비누방울일 뿐이라구, 중얼거리며 일어났다. 방안을 걸었다. 밖은 세찬 비에다 좁은 방안이니 단 둘이 코를 맞대고 앉아 있기 쑥스럽기도 하겠지. 나의 구둣발 소리가 도깨비 발자국 소리 같다. 아니야. 나를 파렴치한 놈으로 보는 모양이야. 이 고도의 성채 속에 단 둘이니...... 탁자 위의 바둑통 뚜껑을 열었다. 흰 알을 집어 화점에 놓았다. 다른 통 뚜껑을 열었다. 하나를 집어 흰 알 옆에 날일자로 걸쳤다. 흰 알이 몹시 경계한다. 흰 알을 또 하나 건져 올렸다. 건져 올린 흰 알을 중앙으로 한 칸 벌여 놓았다. 흰 알이 도망치며 공포에 떨고 있다. 알들을 몰아 통 속에 거두어 넣고, 성채에 갇힌 폭풍우 속의 고도, 중얼거리며 좁은 공간을 맴돈다. 서무과장 책상 위에 나뒹구는 잡지를 집어 올려 한 꺼풀 책장을 거두어 보았다. 백치 같은 눈매로 헤 벌어진 마를린 몬로의 입술이 입술을 기다리고 있다. 아무 입술이라도 상관없다는 듯하다. 자유분방하였다. 탓할 것이 못 된다. 자신을 충실히 살다 갔다. 자유분방과 방임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후루룩 넘겨보다가 책을 책상 위에 탁 내던졌다. 아차, 순간적이었다. 책상 위에 놓인 쪽 떨어진 화병 운두에 장지손가락의 가운데 마디의 살점이 할퀴면서 금세 선혈이 뚝뚝 떨어진다. 황급히 상처 부위를 움켜쥐고 휴지통에서 휴지 한 겹을 뽑았다. 교실은 도떼기시장이었다. 나는 교탁을 탁 치고 고함을 쳤다. 하지만 어떠한 통제도 위협도 먹혀들지 않았다. 드디어 나는 한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녀석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녀석이 발딱 고개를 쳐들고 곁눈질로 시이팔 하며 나를 치켜보았다. 섬뜩히 드러난 흰자위가 내 가슴을 비수로 찌르는 듯하였다. 녀석의 볼따귀를 찝으려 하자 녀석이 나의 손을 획 뿌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 통에 여자의 손톱처럼 길게 기른 녀석의 손톱이 나의 손등을 할퀴었고 금세 혈점이 번져 흘렀다. 에이 씨팔! 녀석은 책상을 박차고 휑하니 교실을 나가 버렸다. 야, 이 녀석! 나는 녀석을 소리쳐 불렀다. 폭력 교사는 물러가라! 녀석의 고함 소리가 복도를 타고 메아리쳐 흘렀다. 휴지를 동여 응급 조처를 취하였다. 사환 아이 책상 서랍을 당겨 보았다. 볼펜이랑 물건들이 잡다하다. 스카치테이프를 풀어 상처를 감싼 휴지 위에 친친 동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왔을 때 녀석의 담임 선생이 나에게로 왔다. 이번 시간에 손 댄 아이 있습니까, 그 아이 어머니가 와서 벼르고 있습니다, 하며 그의 자리로 나를 데리고 갔다. 한 여인이 오도마니 앉아 있다가 내가 다가가자 발딱 일어나며 다짜고짜 야! 이 폭력 교사야! 네가 선생이냐! 깡패지! 하며 날카로운 삿대질로 내 얼굴을 찔러댔다. 기가 막힌 나는 아이가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다. 머리가 터져 집에 드러누워 있다면서 고소하겠다고 악을 썼다. 나는 증인으로 그 반의 반장을 불러와 그 때의 상황을 설명시켰다. 했지만 머리가 터진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냐며 여인은 한층 더 길길이 뛰기만 하였다. 한바탕 소란을 피운 여인이 돌아가고 이내 파출소에서 즉시 나와 달라는 호출이 날아들었다. 나는 그 반의 반장을 데리고 파출소에 출두해야 하였다. 반장이 상황을 설명했지만 터진 머리가 있는 한 파출소에서는 선뜻 이쪽의 해명을 믿으려 하지 않는 눈치였다. 반장 아이는 양호 교사를 데려 왔고, 점심 시간에 운동장에서 다친 것으로 드러나면서 겨우 일을 잠재울 수 있었다. 밖은 여전한 비바람, 무언가 자꾸 찜찜하다. 탁자 위에 널브러진 신문을 집어 들었지만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돌멩이 섞인 모래판만 같다. 신문을 탁자 위에 팽개치고 다시 소파로 돌아가 몸을 묻었다. 읽을 거리라고 가지고 온 T씨의 수필집을 펼쳐들고 활자를 좇아 보지만 역시 의미의 전달이 따르지 못한다. 읽은 곳을 되짚어 보지만 여전히 활자가 눈 끝에서 흘러내릴 뿐이다. 또 담배를 꺼냈다. 하지만 귀찮았고 눈을 감았다. 서먹서먹하겠지, 처녀이고 부임한 지 얼마 안 되니까. 하지만 내일부터 당장 나를 어떻게 대하려고 저러는 걸까? 전화 소리가 눈꺼풀에 쏟아져 내렸다. 기절할 것같이 놀랐다. 또 잠을 잤다. 허겁지겁 전화기를 들었다. "하 학굡니다." 놀란 끝이 말 마디를 중첩시켰다. "아빠야?" 아내의 목소리다. "무슨 일이야?" "가 있었구만." "가 있다니?" "학교에서 전화가 왔었어." "학교에서라니?" "일직 선생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교대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다고. 가도 두 번은 오갔을 시간인데도 가지 않았다니 웬일인가 해서......" "뻐쓰간에서 일이 있었어." "일이라니?" "별일 아니야." "장동표 엄마라고 쓴 봉툰 뭐야?" "돌려 줄 거야." "돌려 줄 걸 가지고 오긴 왜 가지고 왔어?" "녀석 편에 보내 오기도 했고......" "웃기지도 않는군. 그럼, 녀석 편에 돌려 줬어야지." "고스란히 돌려 줄 녀석이 아니야." "알았어." 전화기를 내려놓고 지갑을 꺼내 지갑 속에서 정성스레 접어 간직한 한 장의 천 원 짜리 지폐를 꺼냈다. 때에 전 지폐는 변함 없이 구운 오징어 껍질처럼 쪼글쪼글 그 추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때때로 생각나면 그것을 꺼내 늘어지려는 탕개를 조이는 각성제로 써 먹곤 하는 그것이다. 지각이 상습적인 녀석의 종아리에 두어 대 매를 댄 그 이튿날 보충수업 전 신새벽에 불이나케 달려온 녀석의 어머니가 교무실로 달려들어 낮도깨비처럼 나타나 손바닥에다 종이 탁구공을 재빨리 쑤셔 넣고는 휑녀케 돌아서서 바람처럼 나가 버렸다. 얼떨결에 당한 나는 돌돌 구겨 비벼 만든 손안의 종이 탁구공을 펴 보았다. 어디서 구해 왔는지 용케도 구한 시래기 잎 같은 천 원 짜리 지폐. 나는 우거지 같은 지폐를 다시 착착 접어 지갑 속에 넣고 시계를 보았다. 2자에 짧은 침이 걸쳐져 있다. 점심을 어떡허나? 알아서 하겠지. 중얼거리며 사환 아이 책상으로 걸어갔다. 스카치테이프에 물려 있는, 책상 위의 외부 전화 번호들에서 중국집을 더듬어 내려갔다. 전화기를 끌어당겨 숫자를 찍었다. 세 번째 울림에서 신호가 떨어졌다. "우성 반점이지요?" "예, 우성입니다." "짜장면 하나요. 국일 학굡니다. 고량주 한 도꾸리하구요." "예." 전화기를 내려놓고 사환 아이 책상으로 가 직원 주소록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중간쯤에서 주혜자 선생의 주소와 약도가 드러났다. 약도가 자세하다. 정교한 그림과 반듯한 글씨가 그녀의 깔끔한 마음이다. 방과 후 홀로 남아 휑뎅그렁했던 교무실 책상 밑의 가지런했던 그녀의 실내화가 떠올랐다. 그녀의 단정한 증표들이었다. 또 전화다. "학굡니다." "한정수 선생님 계세요?" "접니다." "저, 길주 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댁으로 전화 올렸더니......" "예, 안녕하십니까?" "근래 왜 낚시 안 나오세요? 붕어 향어 해서 많이 나옵니다." "그렇습니까? 요즈음은 입어료가 얼맙니까?" "아따, 일변 입어료 타령입니까? 제 언제 선생님한테 입어료 챙겼습니까? 정말 섭섭합니다. 그냥 들르세요. 그나저나 길주란 놈 말썽은 안 부리는지......" "말썽 부릴 놈이 따로 있지 길주는 얌전하지 않습니까?" "이쁘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이나 모래쯤 나오실 시간 나실는 지...... 낚시 겸......" "시간은 있습니다만 이 태풍 속에......" "내처 이러겠습니까? 꼭 나와 주세요. 3학년이니 드릴 말씀도 있고......" "알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그 문제로 전화 올렸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씨이팔." 허허, 머리가 찡 편두통이 인다. 수화기 저편으로 아득히 증발하는 마지막 말은 못 들었어야 하였다.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문 바퀴가 심장을 갈아 뭉갰다. 복도로 나와 교무실 쪽을 넘겨다보았다. 문이 아물려 있다. 문을 잠그고 있을지도, 해졌고 현관으로 나왔다. 비는 좀처럼 그칠 것 같지 않다. 현관문 앞으로 다가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움직이는 한 덩어리의 이물이 눈에 잡혔다. 뒤엣 것이 앞엣 것의 꽁무니에 주둥아리를 붙이고 혀를 널름거리며 줄레줄레 따라간다. 뒤엣 것은 들어올 때 본 그놈이다. 앞엣 것은 이따금 획 돌아서서 꼬리를 내리깔고 땅바닥에 주저앉곤 한다. 들어올 때 본 녀석은 더욱 안달이 나서 주둥아리를 앞엣 것의 꽁무니에 들이밀려고 한다. 앞엣 것이 일어나 걸어간다. 다시 녀석이 줄렁줄렁 따라간다. 앞엣 것이 이번에는 성가시다는 듯 흰 이빨을 드러내고 녀석을 돌아보며 앙, 용을 쓴다. 녀석이 주춤 물러난다. 다시 앞엣 것이 걸어간다. 콧중배기를 앞엣 것의 꽁무니에 들이대고 킁킁거리며 따라가던 녀석이 앞엣 것의 등을 훌렁 걸터타고 흘레질을 친다. 헤헤거리는 녀석의 주둥아리에서 침인지 빗물인지가 계 에 흘러내린다. 신발장을 열고 헌 슬리퍼짝을 꺼냈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문이 자지러졌다. 뒤엣 놈을 향해 슬리퍼짝을 냅다 뿌렸다. 뒤엣 것에 정통으로 꽂혔다. 통쾌하다. 이물들이 운동장으로 달아났다. 다시 들어왔다. 화장실을 들렀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화장실 갈 일도 없나 보지? 방안을 한 바퀴 돌았다. 흑판에 한일자를 그었다. 두 바퀴 돌았다. 또 한 획을 그었다. 다섯 바퀴에서 바를정자가 되었다. 다시 소파로 돌아왔다. 하나에서 백으로 세어 갔다. 백에서 거꾸로 내려왔다. 주선생! 미간에 송곳을 들이댄다. 일어서시오. 나가시오 3층 생물실로 가시오. 폭풍우 속의 고도. 아무도 오지 않소. 쥐도 새도 모르오. 삐그르르 현관문 소리가 나고 닫히는 소리가 머리를 도끼질하였다. 피식 웃음이 빚어 나왔다. 온통 빗물에 뒤발린 비옷의 아이가 알루미늄통을 들고 복도로 올랐다. "식사 시켰습니까?" 아이의 목소리가 솜방망이 문 듯 볼메어 있다. "응. 이리 가져 와." 드르릉거릴 문바퀴가 지레 살덩이를 오그라들게 한다. 아이가 문을 열었다. 심장이 졸아붙었다. "수고했어. 비 오는데 미안해." 아무 말 없이 아이가 탁자 위에다가 짜장면과 단무지, 장, 젓가락, 술잔들을 고량주하고 털어놓았다. "달아 놔. 한정수라구." 그저 대답 없이 아이가 돌아섰다. 현관문이 메다꽂혔다.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젓가락을 튿어 짜장을 비볐다. 끈끈한 짜장이 어째 내 마음인 양 찐득인다. 주전자를 찾았다. 주전자는 함지박 엉덩이를 깔고 문 옆 가스렌지 위에 퍼질러 있었다. 일어나 주전자 뚜껑을 열어 보았다. 먹다 남은 보리차를 반쯤 담고 팅팅 불어터진 보리톨들이 강바닥에 나붙은 골뱅이처럼 깔려 있다. 냄새를 맡아보았다. 쉬지는 않은 것 같다. 가스불을 켰다. 파란 불꽃이 피어올랐다. 탁자로 돌아와 한 자락 면을 걸어 넣었다. 보기보다 맛이 없다. 고량주 물점을 한 점 핥고 또 면을 걸어 넣어 보았다. 하지만 입맛이 당기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또 한 점 고량주물을 핥았다. 면을 다 비우도록 입맛이 쓰다. 남은 고량주물을 홀짝 핥았다. 주전자 물이 끓는다. 주머니 속에 챙겨 가지고 온 봉지 커피를 확인하였다. 탁자 위에 있는 컵에다가 봉지를 튿어 커피 가루를 비웠다. 커피 봉지를 돌돌 말았다. 끓는 물을 컵에 따르고 가스불을 끄고 돌돌 만 커피 봉지로 컵 속의 물을 저으며 소파로 돌아왔다. 술기가 알딸딸해 온다. 한 모금 한 모금 커피물을 머금으며 어딘지 날씨 같은 추진 마음을 달랜다. 전화가 운다. 벌떡 일어나 전화기를 들었다. 잠을 잤다. "학교지요?" 대뜸 송곳 같은 여인의 지름소리다. "예, 그렇습니다." "오팔팔 선생 집 전화 번호 좀 가르쳐 주세요." 여인의 목소리가 앙칼지다. "우리 학교에는 오팔팔이란 선생님이 없습니다." 나도 조금은 퉁명스레 말하였다. "애들이 노상 오팔팔 오팔팔 하는데 없어요?" 여인의 목소리가 한층 앙칼지다. "오팔팔이 아니라, 천양리 선생님이십니다. 그런데 왜지요?" 나는 감정을 꾹꾹 눌러 가며 또박또박 말하였다. "우리 집 애가 어제 나가곤 여태 안 들어왔어요. 애들을 어떻게 가르치기에 가출을 해요?" 맹랑하다. "그런데요?" "우리 집 아이하고 가까이 지내는 그 반 아이 좀 알아보려고요." "예, 좀 기다리세요." 직원 주소록을 당겨 천 선생의 주소를 들추었다. "여보세요. 3*7에 2397입니다." "선생이란 사람이 오팔팔 같은 데나 다니니 애들이 그 모양이지." "예?" "애들이 선생 닮지 누굴 닮아요!" 빽 소리치고 전화가 뚜우 끊어진다. 머리가 또 찡 편두통이 인다. 빗소리가 창을 넘어든다. 나는 또 담배를 피워 물고 눈을 감았다. 한정숩니다./ 안녕하세요? 순범이 어머닙니다. 다름 아니라, 어저께 학교로 선생님을 찾아간다는 게 다른 반 선생님을 만나고 왔지 뭡니까? 오팔팔 선생이라고요...../ 그런데요?/ 그런데 어제 만난 오팔팔 선생님 반에도 정순범이란 학생이 있다면서요?/ 예, 있습니다. 3학년 2반이지요. 순범이가 제 이름과 반을 말하지 않던가요?/ 왜 안 했겠어요. 3학년 4반 한정수라고요....../ 그런데 어떻게....../ 그게 어떻게 됐냐믄요, 교무실에 들어섰더니 수업중이라 그랬는지 선생님이 한 분만 계시더라구요. 그래 다가가 정순범이란 학생의 어머니 되는 사람인데, 하는데 아, 순범이 어머니십니까? 제가 순범이 담임입니다. 여기 앉으시죠, 하고 의자를 내밀며 반기지 않겠어요./ 그래서요?/ 그래 앉아 이 얘기 저 얘기하고 봉투를 건네고 왔는데, 저녁에 우리 집 애가 왔길래 키 크고 안경 쓰고 구렛나루가 거뭇한 게 너희 담임 선생 잘 생겼더라 했더니만, 우리 담임은 키도 작고 안경도 안 끼고 구렛나루도 없고 똥배가 뽈록 튀어 나와서 별명이 맹꽁인데 혹시 3학년 2반 담임인 오팔팔 선생을 만나본 게 아니냐면서, 그 반에도 제 이름하고 똑 같은 정순범이란 아이가 있다 잖겠어요./ 그런데요?/ 오팔팔 선생님한테 가서 봉투를 돌려 받으시라고 전화 드리는 겁니다./ 제가 어떻게...... 어머니께서 돌려 받으세요. 그보다 전 절대로 봉투 같은 거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의 집 애도 그러긴 합디다만 괜히 그러는 척하지 돈 싫은 사람 봤나 캤더니만 우리 집 애도 그럴 거라면서 찾아가 보라고 하길래....../ 어머니께서 돌려 받으세요./ 제가 어떻게 준 돈을 돌려 달라고 합니까, 빈대도 낯짝이 있지? 꼭 돌려 받아쓰세요./ 알겠습니다. 돌려 받아 순범이 편에 보내 드리지요. 고량주 기운이 전신에 쏴 하다. 직원회 끝났습니까? 한 마디 물어 보겠습니다. 선생을 옆차기로 때려눕히고 발길질을 한 김동문이 오늘도 버젓이 학교를 활보하고 다니는데 어떻게 처리하실 지 교장 선생님과 학생 주임 선생님, 그리고 담임 선생님의 의중을 듣고자 합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습니까?/ 퇴학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담임 선생님이 꺼리고 당사자 선생님 본인도 처벌을 바라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좀 더 두고 봅시다./ 뭘 두고 보자는 겁니까? 그냥 저냥 넘어가자는 겁니까?/ 누가 그냥 저냥 넘어가겠다고 했습니까?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어디 그게 그레 간단한 문젭니까? 삐그르르르 철겅. 현관문 소리에 잠을 깼다. 복도로 오르는 발소리가 들리고 드르릉 미닫이 소리가 가슴을 까뭉갰다. "수고가 많습니다." 경비원 곽 씨다. "아침엔 왜 늦었지요?" 곽 씨가 다가와 몸을 소파에 맡겼다. "그렇게 됐습니다." 나는 소파에 묻힌 몸을 뽑아 올렸다. 교무실 쪽에서 또박또박 구둣발 소리가 다가온다.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5시가 10 분을 남기고 있다. 벌써 그렇게 됐나? 죽은 듯이 잠을 잤다. "한 분은 누구죠?" "..........?" "일직 교사 말입니다." 곽 씨가 나를 돌아보았다. "주혜자 선생입니다." 나의 성대가 푸르르 떨렸다. "새로 부임한 처녀 영어 선생? 벌써 들어갔나요?" "교무실에......" 나는 귀찮았고, 겨우 입술을 놀렸다. "안녕하세요?" 그녀가 문께서 빼끔히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살짝 목례를 하였다. 나의 고개가 반사적 반응을 보였다. "수고하세요." 그녀가 말하고 곧 돌아섰다. 그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들어가시게요?" 곽 씨가 그녀의 등에 대고 말하였다. "녜, 수고하세요." 그녀가 다시 말하며 현관으로 내려섰다. "안녕히 가세요." 곽 씨가 그녀의 등에 대고 커다랗게 소리쳤다. 그녀가 나가고 곽 씨가 담배 한 개비를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비죽이 내밀린 담배 개비 하나를 뽑았다. "한 선생님, 어디 아프세요?" 곽 씨가 탁자 위의 성냥을 끌어당기며 나를 돌아보았다. "마음이 아프답니다." 투덜거리고 나도 성냥을 끌어당겨 불을 붙였다. "남을 가르치며 밥을 먹는다는 게 얼마나 보람 있는 삶이라고 마음이 아프다는 겁니까?" "남을 가르친다는 보람이라구요?" 씨부리고 흘레질이라 해라, 속으로 너부죽거릴 때 곽씨가 허공에 연기를 풀어내고 나를 돌아보며 말한다. "그나저나 각방을 쓴 것 같군요." "신혼 부부요, 한방을 쓰게?" 나는 투덜거렸다. "요새 사람들답지 않게 내외를 했다 그겁니까? 하하하하......" 곽씨가 하하거렸다. "각방 쓴 것까지는 좋아요. 문까지 잠그고 있었다니까." 나는 미확인 사실을 이죽이었다. "접근을 꺼렸다 그거군. 보긴 제대로 봤우. 나 같아도 그랬겠습니다. 하하하하......" 곽씨가 또 하하거렸다. "농담이요, 진담이요?" "나 언제 농담하는 거 봤어요?" 하다가 곽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농담이고...... 들어오다 보니 개놈 둘이 흘레붙어 있습디다. 하지만 누가 그 개놈들을 비난하겠습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선생이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라구요?" 나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건성 대꾸하였다. "그래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요." 곽씨가 강조하듯 '다른 사람'에 힘을 주었다. 곽씨의 말을 귓전으로 흘리며 나는 그녀를 떠나 보내기 위해 한동안 몸을 소파에 맡겼다가 손톱 밑까지 타 들어간 담배를 비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석이 어머니와 다방에서 만나기로 한 시각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다. 형석이는 장동표한테 맞아 머리가 터졌고 일곱 바늘이나 꿰맸다. 형석이 쪽에서는 위자료 조로 200만 원을 요구한다. 아니면 고소하겠단다. 동표 어머니는 50만 원으로 중재해 보라지만 중재가 먹혀들지는 의문이다. "들어가시게요?" T씨의 수필집을 봉투에 넣는 나를 올려다보며 곽 씨가 말하였다. "예, 수고하세요." "수고 많았습니다." 곽 씨의 말을 뒤로하고 어딘지 그저 울적한 나는 현관으로 내려서서 벽에 기대어 둔 우산을 집어들고 밖으로 나왔다. 바깥은 그저 비다. 언제쯤 비구름이 걷힐까? 우산을 펴들고 운동장으로 내려서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선생이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하던 곽 씨의 말을 되씹어 보았다. 선생은 그러지 않는다는 뜻인가, 그래서는 안 된다는 뜻인가? 아니면 그러고 있다는 뜻의 반어적 풍자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그 모두를 망라한 포괄적이고도 단적인 표현인가? 이놈의 신분, 그 무게는 얼마나 될까? 이 놈의 직업 팽개치고 구멍가게나 낼까? 중얼거리며 교문을 나서자니 그녀가 문 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웬일일까? 의아해 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죄송해요. 전화 받으시느라 하루 종일 귀찮으셨죠? 혼자 조용히 생각해 봐야 될 심각한 고민이 있었어요." 그녀가 씁쓸한 표정으로, 그러나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말하였다. 그랬었구나, 해지자니 불쾌감이 조금 누그러지는 듯했고, 마침 포장마차를 본 나는 하루의 찜찜함을 풀 겸 그녀와 한 잔의 술을 나누고 싶었다. "주 선생님, 대포 한 잔 하시겠습니까?" 나는 포장마차의 장막을 들추고 그녀의 대답을 기다릴 것도 없이 그녀의 팔을 포장마차 안으로 끌었다. "아저씨, 홍합하고 소주 좀 주세요." 의자에 앉으며 술을 청하였다. "아침엔 죄송했어요. 뻐쓰깐에서 소매치기 소동을 만났지 뭐에요." 그녀가 내 옆에 앉으며 말하였다. "저도 소매치기 소동을 만나 늦었는데 같은 뻐쓰를 탔었군요." 담배를 후비적거릴 때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선생님, 이게 뭔지 아세요?" 그러고 보니 그녀의 손에 신문지 보따리가 들려 있다. "학이에요.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묵묵히 세상을, 창공을 포르르 날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날개를 달아 주시는 선생님들을 용타고 우러르며 하루 종일 이 종이학들을 접었어요." 말하며 그녀는 신문지 보따리를 펼쳤다. 신문지 속에서 수십 마리, 아니 수백 마리는 될 듯한 종이학들이 수르르 쏟아져 나왔다. "여기는 아무나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더군요. 이 학들을 접으며 새학기부터 다른 직종으로 옮기느냐 마느냐로 하루 종일 고민했어요. 그런데 이 학들을 접다가 아이들에게 세상을 포르르 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 준다는 생각이 문뜩 들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단순한 생물학적 영위가 아닌 반딧불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비록 천칭에나 달릴 서글픈 무게지만 제 빛을 깜빡이잖아요. 너나 없이 자기 직업에 보람을 느낀다지만 결국은 남의 돈이나 긁어 주고 그 대가로 입에 풀칠이나 하기 위해 터덜거리다가 죽는 거 아니겠어요. 그래 학교에 남기로 결론 봤어요. 이보다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랬었구나, 그녀가 하루 종일 교무실에 틀어박혀 있었던 이유가 풀려지려는 때에 그녀가 또 말하였다. "가다가 버리려고 했는데 이 학들, 개학하면 선생님 반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세요. 저도 나눠줄래요. 이 학들처럼 창공을 날 수 있는 날렵한 날개들을 달라구요......." 순간 흘레질 칠 뿐이라는 초라한 모습이 불식되면서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보람이 조용히 일었고, 나는 속으로 뇌었다. 그래. 날개를 달아 주는 반딧불이다!
사립학교교직원연금관리공단(이사장 금승호)은 사학교직원을 위해 실시하고 있는 생활자금대여이율을 1일부터 0.5% 인하한 9.5%로 시행한다. 대여한도액은 본인 퇴직금의 2분의 1 이내에서 최고한도 5000만원으로 종전과 변동이 없다. 공단은 앞으로도 대여이자율을 시중금리 변동 상황에 맞춰 시중금리보다 낮은금리로 계속 조정할 방침이다. 문의=(02)769-4260∼7
그 후 얼마 있지 않아 저는 황 교감과 헤어져 학교를 옮겼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그 분을 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저도 이제 그 분처럼 교감이라는 직책을 맡고 보니 더욱 그 분의 훌륭한 인격과 따뜻한 인간애가 자꾸만 제 삶의 지표로 떠오르곤 합니다. 세상은 번득이는 머리로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우직하리 만치 정직하고 성실한 가슴이 사람들을 더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저는 그 분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황 교감, 그 분은 참, 좋은 교육동지였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 더구나 시를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갈수록 깊이 느낍니다, 길 없는 사막에서 길을 찾아가는 막막함과 두려움, 방황과 고뇌가 달콤한 수면을 앗아가는데도 참, 이상하지요. 왜 글 쓰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너무 기뻤습니다. 요술쟁이의 머리카락 같은 전화선을 타고 수 백 리 저쪽에서 당선을 알려주는 목소리가 어찌나 아름답고 반갑던 지요. 아무런 확신도 없이 작품을 응모하고 나서 처음에는 은근히 기대도 하고 기다리기도 했지만 계절이 바뀌어 가는 동안 차츰 응모한 사실마저도 잊고 있었습니다. 제 작품이 좋았다기보다는 심사위원님들과 어쩌다 감성의 궁합이 딱 맞아떨어진 게지요. 존경하는 황 교감을 본받아 열심히 근무하며 글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우리 나라의 교육통계 정보가 매년 산출되고 있지만 신뢰성이 취약해 활용이 매우 저조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에 따라 정보활용성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최근 발간한 `교육통계정보의 활용성 제고 방안 연구'에 따르면 현재 우리 나라의 교육통계 정보의 그 활용성 면에서 초보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지적됐다. 활용성이 취약한 이유는 산출과정에서의 1차 자료의 신뢰성 취약, 공개된 정보의 현실 적합성 취약, 서비스 체제의 비다각화로 요약된다. 첫 번째가 산출과정에서의 1차 자료의 신뢰성 취약이다. 교육통계 담당자들과의 면담 결과에 의하면 개별 교육기관에서는 구조적으로 신뢰성있는 정보를 산출하기가 어렵게 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담당 업무가 전문화되지 않은 것이 주원인으로 지적됐다. 다른 업무와 병행해 수행하고 있어 업무 과중은 물론 교육 통계 작성의 연속성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현재 조사·공표되고 있는 정보는 실용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됐다. 수요자 또는 잠재 수요자들은 시·군·구별, 교육기관별 정보나 가공된 정보를 원하고 이쓴 반면 현재 제공되고 있는 정보는 전국 수준 또는 시·도 수준의 1차 자료 총합뿐이다. 항목도 교육체제의 순환단계를 균형있게 반영하기보다는 투입단계에 집중돼 있어 교육통계 정보로는 교육현황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서비스체제의 경우도 인쇄물과 인터넷을 통해 전국 수준, 시·도별 수준의 총합만 정형적으로 서비스되고 있을 뿐이다. 일반 수요자들이 활용할 가치가 있는 정보도 제한돼 있다. 보고서는 우리 나라 교육통계 정보가 행정용이나 전시용으로 평가 절하되고 있는 이유를 여기서 찾았다. 보고서는 이에 따라 1차자료를 산출하는 담당자의 업무 경감을 위해 중복 작성하고 있는 과부하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 일환으로 제출일 및 발간일을 조정해 병목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으로 주문했다. 또 통계 전문직을 신설하거나 일반직에 대한 직무 연수를 통해 전문성을 제고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교육체제의 순환단계를 반영하고 항목간의 상관관계를 반영하는 지표 개발에 관심을 기울이고 서비스체제도 다각화해 가능한 한 `원 스톱 서비스'를 지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년에 비해 응모자 수는 적었지만 작품 수준은 월등하게 상향 평준화되어 있었다. 또 응모자 한 사람이 수 십 편 씩 시집 한 권 분량을 보내오는 무모함도 많이 사라졌다. 스스로 작품을 거르고 정선하는 태도가 나타났다. 말하자면 응모자 층이 많이 두터워졌다는 얘기가 되겠는데 이런 점은 교원문학상이 교단 현장에서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희망적인 증거요, 소기의 목적대로 점진적인 제도 정착을 의미이기도 하여 환영할만한 일이라 하겠다. 또 하나, 특기할 만한 점은 교단 현실에 대한 격앙된 목소리가 많이 가셔졌다는 점인데 이 또한 긍정적인 변화로 여겨졌다. 오랫동안 창작 수련과정을 거친 흔적이 엿보이는 응모자들이 많아서 반가웠다. 교단에서 건져 올린 주제들을 언어적 구조물로 형상화하는데 만만찮은 기량들이 감지되기도 하였다. 끝내 우열을 가리기 힘든 작품들이 있었는데 이런 저런 트집으로 수상 권에서 멀어지는 응모자들에게는 안타까운 마음이 머물렀다. 부디 단발로 끝내지 마시고 내년에도 좋은 작품을 낚아 응모해주셨으면 좋겠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한결같은 바램이었다. 당선작 강만씨의 '호랑가시나무'는 시적인 상징을 십분 살리면서 교단의 애환을 명쾌한 언어로 교직(交織)해 내고 있는데 이 작가의 장점은 역시 굴절된 삶의 골목길들을 따스한 눈초리로 감싸 안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라 하겠다. 가작 허근씨의 '등나무 그늘'은 끝까지 당선작과 맞섰는데 꽤나 거친 주제를 다루면서도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로 표현해내는 언어적 정교함이 강점이라 하겠다. 이정희씨의 '영강에서' 또한 활달한 화법이 좋았으며 권선숙씨의 '회양목에게 길을 묻는다' 또한 엄정한 현실을 보는 잔잔한 시각과 따스함에 후한점수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밖에 김경민, 이정숙, 정선호, 송남석, 박재범, 김영덕 제씨들의 작품을 좋게 보았다. 내년에도 좋은 시를 낚아 이 제도에 재도전해 주시기 바란다.
국민신용카드사는 지난달 27일 한국교총 장학회에 2000년도 국민교육자카드 장학기부금 1800만원을 전달했다. 한국교총 사무총장실에서 열린 이날 전달식에는 국민신용카드사 김철호 부사장, 김동준 제휴전략부장, 김찬배 제휴전략팀장과 한국교총 장학회 채수연 상임이사, 손인식 사무국장, 백복순 사업부장 등이 참석했다. 93년 교육자 카드를 발급한 국민신용카드는 회원의 금융서비스 지원 및 할인행사를 벌이는 한편 교육자카드 연 매출의 0.05%를 한국교총 장학회에 기부하고 있다. 국민신용카드가 94년부터 기부한 장학금의 총액은 9000만원이다.
짜릅시다 먹장구름 어둡게 덮힌 학생징계위원회 교육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한 선생님들은 퇴학 쪽으로 가닥을 잡아갔다 성칠이의 운명이 촛불처럼 꺼져가는 순간 짜르면 한 인생이 끝장나는 것이니 한 번만 더 기회를 줍시다 우직한 황교감의 말이었다 짜릅시다 입춘 지나고 춘분 지나고 목련꽃이 다 져도 앙상한 가지에 싹이 돋지 않은 호랑가시나무 흉물스럽게 교정의 분위기만 망친다고 잘라내야 한다고 모두들 입을 모았다 그러나 우직한 황교감 나무 밑 풀을 뽑고 흙을 파고 물을 주느라 아침저녁으로 젖은 손이 바빴다 시나브로 봄도 다 기운 어느날 아, 싹이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선생님들은 일제히 창가로 몰려갔다 이미 사망선고가 내려진 호랑가시나무 이승의 문을 열고 우듬지에 푸른 싹을 내밀고 있었다 지성이면 하늘도 감동한다더니 그 뒤로 토종 황소처럼 우직한 황교감 앞에서 짜르잔 말 아무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
쉰이 다 되어 가는 동창들은 가끔 내가 보내는 편지를 기다린단다. 컴퓨터 앞에 앉아 제대로 다듬지 못한 詩를 띄우는데도 반응은 감동적이다. 그래서 용기를 내었다. 편지를 쓰던 감상으로 하얀 봉투에 꽃씨를 담듯 그림을 넣은 글을 부쳤다. 벌써 20년만인가? 교육자료에서 시로 추천을 받고 또 국영 방송국에서 희극 입선을 하고 얼굴을 내밀게 되는 게……. 그 동안 마흔이 넘으면 생의 아픔을 찍어내듯 글을 쓸 수 있으리란 막연한 예감에 이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었나 보다. 그런데 이 나이에 동화라니? 어느 해, 도시 빈민아들을 가르치면서 참 가슴이 아렸었다. 제 키를 훌쩍 넘는 가정사라는 고통의 무게를 진 아이들을 만나면서 일기장 끄트머리에 써주는 짧은 응원으로는 안 되는 무언가가 동화를 쓰게 하였다. 어쩌면 이제는 고전이 된 '빨간 머리 앤'이나 '알프스 소녀 하이디' 같은 강인한 주인공으로 그 아이들을 자라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화려한 크레파스 그림이 걸린 교실에서 움직이는 아이들은 모두가 내 동화 속의 주인공이다. 지독한 개구쟁이도 말을 잃은 자폐아도 내가 상상하지 못한 이야기 세계를 들려준다. 그들이 움직이는 공간마다 동화 속 배경이 된다. 기뻤다. 아마 내 앞에 널려진 많은 글감을 주워 담으란 뜻으로 알고, 늦게나마 아이들 꿈을 담을 그릇 하나를 빚는 기쁨이랄까? 투박한 질그릇 하나 빚어서 두고두고 아이들 동화 나라에 남기고 싶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시던 부모님, 어렵게 공부하여 지금은 교육이라는 공통 화제를 안고 사는 동생들, 그 동안 글을 쓰라고 용기를 준 친구, 동료들에게 이 소식 전하며, 올 겨울 편지에 담을 자작시 한편을 동봉한다. 우리 집 창을 가린/벚나무가/내 말동무다./바람이 훑고 가버린/앙상한 가지 하나가/내 그림이다/내 소설이다./연둣빛 잎사귀에서/만개한 꽃으로/무성한 잎사귀로/노랗게 물든 단풍으로/지금은 스산한 겨울이란다./'인생은 이런 거야'/끝내 맨몸을 보이며/벚나무가 말한다.(詩 '벚나무가 말한다'에서)
올해 응모된 동화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그 수준이 작년에 못 미쳤고, 동화의 본질에서도 많이 벗어난 것이 많았다. 그래서 다음에 응모할 여러분을 위해 몇 가지 부탁을 하고 싶다. 동화라고 해서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것도 결손 가정의 어린이나 문제아 이야기를 적당히 읽을거리로 만들어 놓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동화는 어린이가 제일 먼저 접하는 문학 장르이기 때문에 교육성·예술성·재미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어야 한다. 동화를 쓸 때 교육을 본업으로 하는 교사들이다 보니 알게 모르게 교육에 대한 비중을 키우기 쉽다. 그래서 문학 완성도가 낮고 교육 지향의 천편일률적인 작품을 빚기가 쉽다. 이번에 응모한 작품들 중 반 이상도 이런 류에 속한다. 교사이니 역으로 교직 밖으로 눈을 돌려 다른 소재를 택해 보라면 너무 무리한 요구일까. 당선작 '감꽃 목걸이'는 응모작 중 가장 동화의 본질에 가까이 섰고, 문장력도 흠잡을 데 없는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말기암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어머니의 가족 사랑이 가슴에 진하게 전달되었지만 주인공을 제외한 아버지와 연지가 일 때문에 요양하는 엄마 곁에 오지 않는다는 것은 뭔가 부족한 감이 있다. 전염병도 아니고, 가장 마음 아파할 사람이 남편이기에. 가작 '비밀의 방'은 요즘 우리나라 전역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현실 문제를 누구보다 먼저 부각시킨 점은 좋았지만 주제가 너무 드러나 교훈성이 문학적 완성도를 누르는 결과를 낳았다. '우렁이가 이룬 꿈'과 '하느님을 안은 작은 천사'는 동화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섰으면서도 비슷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전작은 어미우렁이가 많은 새끼가 태어났으면 자기를 희생한 것으로 끝나고 다음 세대의 그 어떤 사건 등을 통해 부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고, 민물 우렁이가 짠물인 바닷가에 갔다고 좋아하는 것도 문제였다. 후작도 대나무가 하나뿐인 생명을 톱에 잘려 잃게 되는데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러길 바랐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번에 선에 들지 못한 분들도 미완점을 보완해 더 나은 작품 빚기에 전력 투구하기를 바란다.
연회색 양복에 장밋빛 나비 넥타이를 맨 아버지는 아까부터 예식장 홀 안을 서성거립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둘러싼 예식장의 흰색 의자들은 텅 비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누군가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사람처럼 문 쪽을 자꾸만 흘낏거렸습니다. 그 때마다 성문처럼 커다란 유리문은 금빛 햇살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도록 환합니다. 얼마나 그런 장면이 반복되었을까요? 병수가 부신 눈을 비비고 있는 사이 투명한 유리문이 스르르 열렸습니다. '누굴까?' 침을 꼴깍 삼킨 병수가 막 들어서는 하얀 구두코에 둔 눈빛을 천천히 위로 올렸습니다. 역시 눈같이 하얀 드레스였습니다. 투명한 꽃술이 보석처럼 박힌 드레스에 초점을 모으자, 이번에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습니다. '아!' 놀랍게도 그 얼굴은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는 미스 김 누나였습니다. 붉은 카펫 위로 성큼성큼 걷는 아버지는 텔레비전 만화에 나오는 프랑스의 왕자 같았습니다. 병수는 그만 비상구 쪽 둥근 기둥을 껴안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냐, 아냐. 내가……잘못 보았을 거야.' 다시 눈을 비비며 바라보자, 수많은 사람들이 누나와 아버지의 뒤를 행진하듯 따라오는데 더더욱 놀란 것은 하얀 드레스 앞에서 분홍빛 꽃잎을 뿌리는 연지 때문이었습니다. '야, 연지야!' 연지를 말릴 새도 없이 박수 소리가 터졌습니다. 그런데 또 이상한 것은 박수가 터질 때마다 바닥에 떨어진 꽃잎들이 나비가 되는 것입니다. 금세 예식장 안은 온통 색색의 나비가 날고 아버지의 장갑 낀 손은 누나를 향해 가볍게 들려졌습니다. "안 돼, 안 돼!" 병수가 손을 저으며 아버지를 향해 달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팔을 마구 쳤습니다. 그러나 손에 닿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앙!" 약이 오른 병수가 소리내어 울고 말았습니다. 얼마를 그렇게 훌쩍이다가 이상한 예감에 눈을 번쩍 떴습니다. 제일 먼저 병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뽀얀 문살이었습니다. 그리고 문 쪽 선반에는 외할머니가 아끼는 도자기 꿀단지랑 시집 올 때 가져왔다는 왕골 바구니 모양의 반짓고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병수는 그제야 자신이 꿈을 꾸다가 일어난 것을 알았습니다. 볼을 문지르자, 꿈속에서 흘린 눈물이 묻어났습니다. "쯧쯧, 웬 안개여? 마당 끝도 보이지 않는구나." 문밖에서 외할머니가 혀를 찼습니다. 여전히 못 마땅한 듯한 말투입니다. "오늘은 날씨가 아주 맑으려나 봐요. 저는 안개가 좋아요. 저 안개가 천천히 걷히면 산봉우리랑 나무들이 공중에 둥둥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여서 아주 재미있어요. 세상이 온통 마술에 걸린 것 같잖아요? 그러면 저는 옛날 이야기 나라의 마녀가 되어서 무슨 일이든 주문만 외우면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 같아요." 어머니 목소리가 오늘따라 아주 맑게 들려왔습니다. 병수는 반가운 마음에 연두색 차렵이불을 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 좋을 게 따로 있지……쯧쯧……." "어머니, 집배원이 지나가면 이 편지 좀 부쳐 주세요. 병수랑 연지 이야기를 전화로 전하는 것보다 편지로 쓰는 것이 나아서요." "또 그 미스 김한테 말이냐?" "……." "세상 오래 살다보니까 별일 다 있구나? 네가 당장 죽냐? 멀쩡하게 눈뜨고 살아서 병수 애비 새장가 못 들여 안달이게?" "제발, 제가 준비를 잘하고 여행을 떠나야 애들 장래가 조금이라도 편하지 않겠어요? 누가 당장 결혼을 하래요?" "글쎄, 여러 가지로 부탁할 것 많고 미리 정 들여놓자는 에미 심정을 나도 아는데……." "미스 김 만한 여자 없어요. 어머니도 잘 아시면서 그래요. 제 대신 어머니의 좋은 딸 노릇도 할 거구요. 우리 연지가 얼마나 잘 따르는데요." 외할머니는 대답대신 한숨만 쉬었습니다. 문갑 위에 이불을 올려놓던 병수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깡마른 어머니의 가슴을 더듬던 어젯밤 감촉이 되살아났습니다. 눈물이 솟았습니다. 어머니가 이 곳 외갓집으로 옮겨온 것은 겨울이 막 지나가던 이른봄부터입니다. 병원에서도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는 말기 암이라는 사실을 알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졸라서 어릴 적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외갓집으로 온 어머니는 한동안 병이 나아지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고향 친구들을 만나고 오리를 걸어서 다녔다던 학교 길도 산책 삼아 걸을 정도였습니다. 일요일이면 달려오는 병수에게 어머니의 어린 시절은 끝이 없는 동화 세계였습니다. "병수야, 난 네 나이 적이 제일 즐거웠던 것 같단다. 열두 살 초등학교 때가 정말 예쁜 그림 엽서처럼 남았어. 지금도 저수지 둑을 걸으면 그 시절의 마음으로 동시도 동화도 지을 것 같단다. 저수지에서 건져다 까먹던 말가시랑 귀여운 방게랑 둑방의 보라색 제비꽃이랑 나눈 이야기가 내 마음 속의 노래가 되었지." 명랑한 목소리로 자랑하는 어머니였지만 병수는 안방에 걸린 달력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아버지가 달라졌습니다. 서울에서 전자제품 대리점을 운영하는 아버지가 안방에 걸린 달력을 하염없이 보고 있을 때가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병수는 궁금한 나머지 검은 숫자가 빽빽한 달력을 혼자서 넘겨보았습니다. '유월, 칠월, 팔월, 구월…….' 그리고 10월 달력에서 그만 뻣뻣하게 굳어버렸습니다. "아!" 달력 한 장이 빨간 색연필로 커다란 ×표를 그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1일 마지막 칸에 까만 글씨가 씌어 있었습니다. "모두 안녕! 사랑하는 병수랑 연지랑 안녕! 미안해요 여보. 미스 김 부탁해요! 모두모두 사랑해요!" 병수는 그제야 어머니의 죽음을 실감하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 후부터 병수는 개그맨 흉내내기를 딱 멈추었습니다. 어두운 집안 분위기를 바꾸려고 노력한 자신이 미워졌습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웃으면서 고향으로 왔던 것입니다. 병수는 막 일어난 척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외할머니가 마루와 이어진 주방에서 콩나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네 에미 감나무골로 갔나 봐라. 그 감나무가 네 에미 놀이터였거든……. 왜 그리 어린 시절이 생생할까. 휴!" 외할머니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병수는 초록빛 벼가 자라는 논둑을 지나 과수원 옆 오솔길로 달렸습니다. 안개가 하얀 그물처럼 사방에 걸쳐 있었습니다. "엄마아!" 속눈썹에 맺힌 이슬이 눈물처럼 흘렀습니다. "엄마아!" "소쩍소쩍" 불안한 생각에 연이어 어머니를 부르자, 어디선가 소쩍새가 대답을 대신하였습니다. 새 이름을 알려 준 것도 어머니입니다. 오월 이 때쯤이면 소쩍새, 뻐꾸기가 운다고 하였습니다. 논에서 우는 뜸부기 소리도 압니다. 날카롭게 자란 풀잎들이 병수의 바지에 부딪히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었습니다. "엄마아!" 하얀 안개를 고깔처럼 뒤집어 쓴 감나무 밑에서 하늘색 스웨터를 입은 어머니가 허리를 펴며 일어서는 게 보였습니다. 어머니는 대답대신 한 손을 흔들었습니다. 반가움에 야생 말처럼 펄쩍거리며 뛰어가던 병수가 콩밭을 질러갔습니다. "엄마, 뭐 하셔요?" "응, 감꽃 줍는다." "감꽃도 있어요?" "똑똑한 내 아들이 감꽃도 몰라? 이 감꽃으로 나는 화려한 공주가 될 수도 있는데……." 어머니는 스웨터 주머니에 수북히 모은 감꽃을 내보이며 웃었습니다. 감나무 아래 풀밭 새로 초롱꽃 같은 앙징스러운 꽃들이 하얗게 흩어져 있었습니다. 병수도 앉아서 그 꽃들을 손바닥에 주워 담았습니다. "열매가 있으면 꽃도 있겠지만 감꽃은 생각도 못 했어요." "잎사귀에 가려서 피니까 그래. 사과나 배처럼 꽃부터 화려하게 피지 않아서 대부분 감꽃을 몰라. 그렇지만 시골이 외갓집인 내 아들 자연 공부가 소홀한 것 같아서 실망스러운데?" "에이, 지금이라도 알았잖아요." "그래, 어릴 적 우리들은 이 꽃을 주워 먹고, 실에 꿰어서 목걸이랑 팔찌, 심지어 머리띠까지 만들어 꽂고 화려한 공주 흉내를 내었단다. 물론 남자애들에겐 시시했지만 먹을 게 귀한 시절이라서 그 애들도 감꽃을 너희가 먹는 팝콘처럼 먹어댔어." "그래서 여기가 엄마 놀이터라고 하셨구나!" "할머니가? 아냐. 놀이터는 아냐. 가슴을 두근대며 몰래몰래 숨어서 줍다가 꽃재집 할아버지가 나타나면 도망치느라 난리였는데? 감나무 밑에 심은 농작물을 버릴까봐 그러셨나봐." "꽃재집요?" "응, 우리 동네 한가운데에 있는 빨간 기와집 말이야. 이 감나무밭 주인이었지. 난 지금도 그 할아버지가 살아서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린단다. 저 소쩍새 소리 들리니? 꼭 그 할아버지 같잖아? 얼른 나오라고 재촉하는 것 같잖아?" 어머니는 숨이 차는지 허리를 펴며 짙은 안개 속을 뚫어져라 바라보았습니다. "오래 전에 그 할아버지도 가고, 그 분의 아들도 돌아가셨지. 늙으면 그렇게 다 가는 게 자연의 법칙인데……" "……." "휴!" 어머니가 콩밭을 벗어나며 감꽃을 한 줌이나 흘렸지만 전혀 알지 못 하는 것 같았습니다. 병수가 대충 주우며 어머니를 따라왔습니다. 쓸쓸한 어머니의 등뒤에서 여전히 소쩍새가 울고 뻐꾸기도 울었습니다. 어머니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소쩍새가 무서운 할아버지로 뻐꾸기는 그 아들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아까부터 감꽃을 줍는 어머니와 병수를 향해 목놓아 소리를 지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날 늦은 아침을 먹은 어머니랑 병수는 외할머니의 반짓고리에서 제일 굵은 실을 골라 바늘에 꿰고 감꽃을 둥글게 이었습니다. 외할머니도 소복히 모아진 감꽃을 쓰다듬었습니다. "이쁘다. 내가 어릴 때도 이 감꽃을 튀밥처럼 먹었지. 익지도 않은 땡감도 왜 그리 달게 먹었는지 몰라. 땡감 먹고 체하면 약도 없다고 하면서 김칫국만 연신 들이마셨어." 감꽃 하나를 입에 넣은 할머니가 합죽한 입을 연신 오물거렸습니다. 어머니도 병수도 감꽃을 입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마주보며 웃었습니다. 동화 속 같은 이 행복이 오래오래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게 이은 감꽃은 어머니가 외출하실 때 즐겨 걸던 진주 목걸이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제일 먼저 어머니가 걸었습니다. 그러자 외할머니가 안방에서 거울을 가져왔습니다. "어머니도 걸어보세요." "에이 늙은이가 망칙스럽게……." 외할머니가 팔을 홰홰 내젓자, 어머니가 거울 앞에서 뱅그르르 돌았습니다. 그리고 거울 속에서 하얀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외할머니도 입을 헤 벌리고 그런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그 순간 어머니는 시골 소녀였습니다. "우리 병수나 걸어 보라 해라." 외할머니 말씀에 어머니가 눈을 반짝였습니다. "그래, 열두 살 우리 병수가 잘 어울릴 거야." 어머니가 목걸이를 벗어 병수의 목에 걸었습니다. 쑥스러운 일이지만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 드리기 위해 병수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와! 감꽃 왕자님이 되었어요. 어머니, 왜 옛날 저수지 옆에 살던 초등학교 동창 귀남이 같지 않아요? 귀남이가 저한테 감꽃 목걸이를 자주 주었거든요. 그 애 때문에 놀림도 많이 받았어요. 목걸이는 결혼 할 때만 받는 예물이라며 방앗간 집 옥화가 얼마나 놀려댔게요?" 흥분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병수는 거울 속에서 커다란 감나무를 보았습니다. 어머니의 초록색 조끼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거울 가득 아침의 그 안개가 뽀얗게 피어났습니다. 그 속에서 어머니는 열두 살 소녀가 되어서 팔짝거렸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상상도 잠깐입니다. 헛구역질을 시작한 어머니가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 쪽 손으로 병수 어깨를 꽉 움켜잡았습니다. "엄마아, 왜 그래?" "그래, 네 에미가 너무 무리한다 싶었어." 가슴과 가슴을 맞대어 안은 어머니와 병수가 마루에 나뒹굴었습니다 "엄마, 가지마. 엄마, 가지마. 우리 두고 가지마 응?" "그……럼, 우리 왕자님을 두고 어……떻게…… 가?" 외할머니가 서둘러 하얀 약을 먹이자, 어머니는 병수를 움켜잡은 손에서 스르르 힘을 뺐습니다. 그리고 빙그레 웃기까지 하며 눈을 감았습니다. "놀랬냐? 그 놈의 감꽃 때문에 약 먹을 시간을 놓친 거야." 고개를 숙인 병수의 등을 토닥이는 외할머니가 한숨을 쉬었습니다. 아마 병수 모르게 눈물을 닦을 것이 분명합니다. 어머니는 병수가 서울로 가야 할 시간에도 잠에서 깨어나지를 못 했습니다. "네 아버지가 데릴러 온다는데 내가 말렸어. 그 사람도 온종일 일하고 달려오려면 힘들어. 그리고 밤 운전도 위험하구. 후딱 가거라. 버스 올 시간이 다 되었어." "다음 일요일엔 연지도 꼭 온다고 전해 주세요 할머니, 안녕히 계세요." "그래 걱정마. 내가 눈 훤히 뜨고 지키고 있을게. 걱정마. 에미 없는 집구석이 얼매나 썰렁할꼬! 쯧쯧……." 병수는 찻길로 이어진 시골길을 달렸습니다. 오후 햇살이 그런 병수를 뒤따라왔습니다. 그 때마다 목을 간지럽히는 감꽃 목걸이 때문에 병수는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마치 자신이 엄마의 옛날 남자 친구인 귀남이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열두 살 어머니의 옛 모습이 되어 벌판을 뛰어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 '아! 맞아. 서울에 가면 아빠께 감나무를 심자고 할거야. 우리 집 정원에 감나무를 심으면 아까 그 소쩍새가 된 할아버지처럼 우리 엄마도 감나무가 되어서 우리랑 함께 살게 될 거야. 오케이!' 버스 유리창에 기대여 졸고 있는 병수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습니다. 병수는 눈을 감고 햇볕에 반짝이는 초록빛 감나무 숲 속을 한없이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감꽃이 눈처럼 쏟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