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레 가방 속에는 '예정사항록'이란 메모장이 들어있다. '신속, 정확, 슬기로운 삶'이라고 쓰여진 낡은 표지를 넘기노라면 하루의 알찬 계획이 보일락 말락 깨알처럼 담겨져 있다. 옳고 바른 구상이 떠오르면 서슴없이 메모해 정해진 기일 내에 실천함이 습관화되었다. 당해 연도에 계획한 목표를 항해 열심히 생활하려 애쓰는 것이다.
그리고는 하루를 마치면 일기로 남겼으니 어느새 50년 가까이 되었다. 단기 4286년(1953년) 7월25일, 인천 계동국민학교(지금의 인천 부평초등교) 6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써왔다. 당시 담임이셨던 이윤경 선생님께서 '일기 쓰기'를 과제로 내주신 것이다. 6.25동란이 끝나면서 모두가 어려운 시절, 선생님께서는 희망만은 잃지 말자는 뜻에서 일기를 쓸 것을 권하셨다. 지금에 생각하니 너무나도 귀한 방학숙제가 아닐 수 없다.
대학까지의 학창시절은 물론 교단생활 42년(야학 5년 포함)의 하루 하루가 기록되어 있어 이제는 우리나라 교육 반세기의 흐름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중학교까지 생활문 형식으로 썼으나 고등학교부터는 그 날의 주요 일들을 요약 메모 식으로 기재하고서 월말이면 굵직한 사실만을 간추려 따로 실었다. 그리고 연말에는 '주요뉴스'를 선정, 나름대로의 한 해를 엮는다. 10년 주기로는 연대별 개인사를 정리해 반성과 미래 생활 설계에 참고하는 등 자신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일기로 엮은 반세기'를 있게 하신 나의 스승 이윤경 선생님! 10년 전 정년으로 교단을 떠나실 때 제자들과 함께 하신 후로는 근황을 알 길 없어 몹시 뵙고 싶다. 칠순을 넘기셨을 은사님께서는 어떻게 지내실까. 감사의 큰 절 올리고 일기장 속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동산에 올라 잔디 씨 채취하던 일에서부터 밤이 깊도록 등잔의 심지 돋우면서 중학교 입시 준비에 열 올렸던 추억 되새기며, 긴긴 밤을 지새웠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