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는 없어선 안될 학습자료다. 혹자는 부수 자료라지만 교단에서는 둘도 없는 필수 자료다. 그래서인지 귀한 만큼이나 관심이 높은가 보다. 다루면서 흡족치 않은 부분이 눈에 띈다. 초등학교 3학년을 담임하면서 고쳤으면 하는 점이 있다. 1·2학기 국어과(읽기, 쓰기, 말하기·듣기) 교과서의 맨 뒤에 '학습 용어 해설'이라는 읽을거리가 있는데, 이의 자리는 교과서 초입이 아닌가 싶다. '차례' 다음에 실어 교과서를 다루기 전에 충분히 지도해야 할 내용이기 때문이다. 국어뿐만이 아니다. 2학기 과학과 '실험 관찰' 교과서에서도 마찬가지다. 뒷장의 '실험실 안전 기호와 주의 사항'은 교과서 앞에 싣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학기초에 확실한 지도가 이루어질 때, 아니 학생들이 숙지함으로써 제반 안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나마도 1학기 교과서에는 실리지 않아 더욱 안타깝기까지 하다. 그러기에 실험 안전수칙은 각 학년, 매 학기 '실험 관찰' 교과서에 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습하는데 필수 교구라면 뭐니뭐니해도 책걸상일 게다. 책걸상이 없었던 1940년대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더욱 그 필요성을 느낀다. 나라 살림이 어려운 때라 각자 개인이 집에서 앉은뱅이 책상을 짜다가 이용했다. 그것도 있는 가정의 자녀들 이야기다. 초등학교 교실에 책걸상이 갖추어진 것은 동란이 끝난 195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한다. 2인용 책상이지만 어찌나 좋았던지 가운데에 경계선을 그어 영역 침범을 못하게 한 추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러다가 사뭇 뒤인 1980년대 후반에는 1인용 책걸상이 들어선다. 이처럼 아동용 책상의 역사가 바뀌지만, 그의 면적은 제자리걸음이다. 아니, 이전에는 책상의 크기까지 생각 못했다. 과밀 학급에서는 그럴 겨를조차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학급당 인원수가 줄어들면서 책상의 크기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특히 미술 시간이면 넓은 책상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만들기와 그리기 시간에도 그렇지만 서예 시간에는 더욱 비좁아 보기에도 민망하다. 시간 내내 먹물의 피해는 없을까, 교사와 아동 모두가 마음을 죈다. 솔직히 이것은 미술 활동을 기피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학교 책상(59.5×40㎝)에 시중에 유통되는 화선
아이들은 옛날 이야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특히나 초등학교 1학년은 더더욱 그런 것 같다. 도시 아이들이어서 그런지 시골을 배경으로 한 동화를 듣고 싶어한다. 마침 수업 시간에 절친한 우정을 그린 동화 `엉터리 점쟁이'를 들려주었다. 줄거리인 즉, 몹시도 가난한 친구를 옆에서 볼 수만 없었기에 서로 짜고 감춘 값비싼 물건을 찾게 하고는, 부모님으로부터 도움을 받게 했다는 이야기다. 그것도 여러 차례 말이다. 꽤나 감명 깊었던지 박수로 답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뒤에 탈이 나고 말았다. 열흘 뒤쯤, 하교 지도를 하면서 갑자기 캐비닛 열쇠가 없어진 것이다. 좀처럼 물건을 잃지 않기에, 열쇠를 찾느라 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허사였다. 다음날, 하는 수 없이 이 사실을 아이들에게 말했다.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선물까지 준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쉬는 시간에 한 아이가 아주 쉽게 열쇠를 찾아온 것이다. 엉뚱하게도 화장실에서 문제의 열쇠를 보았다고 한다. 어찌했던 참으로 반가웠다. `수사 반장'이란 칭호까지 부여하고는 약속대로 학용품을 주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했다. 며칠만에 똑같은 일이 벌어지면서 역시 그 아이가 찾았다며 으스대지 않는가.
근래 노동계의 위치가 사뭇 달라졌다고 한다. 경영자 측이 노조를 동반자로 인정하면서 대등한 노사 관계를 정립했다니, 이는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협의의 결실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교육계도 교육정책을 심의 결정하는 국가적 차원의 조직이 필요함을 느꼈다. 정부와의 대화 창구를 개설해 문제 해결에 머리를 맞댈 때가 된 것 같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그리고 한국교원노동조합 등의 단체 대표를 구성원으로 하는 `교육정책 협의체'를 구성해 상설기구화 할 때, 산적한 문제는 원만히 풀릴 것이다. `국민의 정부'라는 미명 아래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식의 낡은 정책으로 학교 현장은 황폐화된 지 오래다. 교육 실정을 경시한 탁상 행정이 엉뚱하게도 교원의 정년을 단축한 것이 그 화근이었다. 옛말에도 늙은 말이 길을 안다고 했다. 연륜이 중함을 일깨운 교훈으로서, 정년 고수의 당위성이 바로 이점에 있는 것이다. 원로를 우대하지는 못할 망정 내쫓은 처사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실정이다. 그러니 정년 단축을 개혁의 치적으로 내세울 것이 아니라, 실리 없는 실책이었음을 솔직히 시인하고 당장 환원해야 한다. 이제는 교육인적자원부가 교육계의 의견을 겸허하게 수렴하는
으레 가방 속에는 '예정사항록'이란 메모장이 들어있다. '신속, 정확, 슬기로운 삶'이라고 쓰여진 낡은 표지를 넘기노라면 하루의 알찬 계획이 보일락 말락 깨알처럼 담겨져 있다. 옳고 바른 구상이 떠오르면 서슴없이 메모해 정해진 기일 내에 실천함이 습관화되었다. 당해 연도에 계획한 목표를 항해 열심히 생활하려 애쓰는 것이다. 그리고는 하루를 마치면 일기로 남겼으니 어느새 50년 가까이 되었다. 단기 4286년(1953년) 7월25일, 인천 계동국민학교(지금의 인천 부평초등교) 6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써왔다. 당시 담임이셨던 이윤경 선생님께서 '일기 쓰기'를 과제로 내주신 것이다. 6.25동란이 끝나면서 모두가 어려운 시절, 선생님께서는 희망만은 잃지 말자는 뜻에서 일기를 쓸 것을 권하셨다. 지금에 생각하니 너무나도 귀한 방학숙제가 아닐 수 없다. 대학까지의 학창시절은 물론 교단생활 42년(야학 5년 포함)의 하루 하루가 기록되어 있어 이제는 우리나라 교육 반세기의 흐름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중학교까지 생활문 형식으로 썼으나 고등학교부터는 그 날의 주요 일들을 요약 메모 식으로 기재하고서 월말이면 굵직한 사실만을 간추려 따로 실었다. 그리고 연
살아가면서 잊을 수 없는 한때를 꼽는다면 아마도 학창 시절일 것이다. 그러기에 모교에 대한 애착심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운동 경기 등 모교의 이름이 자랑스럽게 언론 등에 오르내릴 때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매스컴에서는 시·도명을 생략한 채 학교 이름만을 알릴 때가 많다. 그렇게 되면 어느 곳의 학교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학교가 여럿이다 보니, 동명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특히 초등학교는 더 심하다. 시·도내에서도 같은 이름의 학교가 있다. 한자까지도 말이다. 학교가 불분명할 때, 재학생은 물론 교사, 학부모, 동문들의 서운함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학교 이름을 나타낼 때는 반드시 시·도명은 물론, 때에 따라서는 지역명까지도 명시했으면 한다. 이를테면 산곡남 초등교 보다는 인천 산곡남 초등교로 명기할 때, 보다 정확한 표기가 될 것이고 애향심도 커질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