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일이 똑같이 나눠지고 공평하게만 이뤄질 수도 없는 일이지만, 가능하면 같은 처지와 형편으로 함께 더불어 살았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이상이다. 그러나 궁익궁 달익달(窮益窮達益達)이라 할까, 빈익빈 부익부(貧益貧富益富)라 할까. 계층간, 지역간의 갈등이며 위화(違和)의 골은 깊어져만 간다. 교육의 일도 그렇고 학교의 일도 그렇다.
도시에서는 너무 많은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기 위해 운동장을 잘라먹으면서까지 교실을 짓고 있는데, 시골 학교 운동장에는 밟고 뛰어 놀 아이들이 별로 없어 잡초만 자란다. 그 잡초가 자욱해 질쯤이면 학교는 문을 닫아야 한다.
농어촌 사람들, 농어촌 학생들은 자꾸 도시, 도시로만 나간다.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교육적으로,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상황과 이유가 충분히 있겠지만, 어찌하였던 이렇게 되어 가다가는 모든 시골 학교 교정에는 잡초만 우거지고 교문 앞에는 교적비(校跡碑)만 휑뎅그렁하게 남게 될 것 같다.
그래도 규모가 비교적 크다는 군부(郡部)의 고교인데, 신입생을 모집해 보니 턱없는 미달이다. 학교를 돌아다니며 지역 학교 진학의 온갖 장점을 이야기하며 설득을 해도 아이들은 도시로의 진학을 포기하지 않는다. 추가 모집을 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응시한 아이들은 대부분 인근 도시 고교에서 불합격해 역류해 온 아이들이다. 도시에서 안아주지 않은 아이들을 받아야 하는 시골학교. 그래도 식구가 불었다고 좋아해야 하는 시골학교의 아픈 속내를 도시 사람들은 알까.
시골 학교의 비애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추가 모집에 온 아이들 몇몇은 다시 도시로 돌아가겠단다. 도시의 학교에 합격한 아이들 중, 다시 더 큰 도시로 나가버린 아이들이 있어 그 빈자리를 불합격자로 메우려다 보니, 시골 학교의 추가 모집에 응했던 도시 학교의 불합격자들이 다시 빠져나가려고 한다. 그 도시 학교는 시골 학교의 등록 여부와는 상관없이 다시 입학수속을 받아 버렸다. 또 아이들을 빼앗겨야만 한단 말인가 그러나 생각해보면 학생 수를 확보하겠다고 불편한 통학을 하게 해야 하는 것도 교육적으로 할 노릇은 아니었다. 그 도시 학교에 이렇게 타일렀다. "이미 남의 학생이 된 것을 그리 빼 가는 것은 법으로도 도리로도 안 될 일이지만, 아이를 생각해서 입학 후에 원하면 자퇴 처리를 해 주리다.
3월 30일까지는 입학이 가능하니, 추가 입학을 시키면 될 것이오. 전학을 시켜주면 안되느냐고요? 너도나도 전학 가겠다고 다 나서면 이 시골 학교는 어찌하란 말이요. 같이 삽시다,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