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80,421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
세계는 지금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는 학생들이 증가하면서 해외의 교육 환경 또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띠게 되었다. 특히 중국과 같은 국가에서 한국 학생들을 교육하는 재외한국학교는 한국 교육의 방향과 교육과정을 해외에서 실현하는 동시에 현지 사회의 문화·법·정치 환경을 존중해야 하는 이중적 책무를 갖는다. 이런 특수한 맥락 속에서 교원의 정치기본권 문제는 단순히 국내 교육에서의 논의를 넘어, 국제사회에서 한국 교육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들의 ‘교원의 정치기본권’ 한국에서는 교원의 정치적 표현, 정당 가입 등을 폭넓게 제한하고 있다. 이는 1960~70년대 권위주의 시절부터 이어져 온 규제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해 왔다. 그러나 해외에서 바라볼 때 이러한 규제는 국내보다 더 복합적이고, 때로는 모순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전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는 공무원이나 교원의 정치적 활동을 어느 정도 제약하고 있지만, 정당 가입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는다. OECD 국가들 상당수 역시 정당 가입을 자유롭게 허용하고, 교원이 지역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들은 교원의 정치기본권을 ‘직무 중 중립성’과 ‘직무 외 자유’로 명확히 구분해 보장하는 경향이 강하다. 미국의 경우 연방 대법원은 교사의 시민적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 왔으며, 실제로 많은 주(州)에서는 교사가 지역 의회나 교육위원회 선거에 출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직무 수행과 선거운동이 명확히 분리되는 한, 정치 후원이나 의견 표명, 정당 가입은 헌법적 권리로 간주된다. 유럽에서도 상황은 유사하다. 프랑스는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제한하되 정당 가입의 자유는 보장하며, 영국은 교직을 ‘민주사회 형성에 참여하는 전문직’으로 규정해 지역 정치 참여를 장려한다. 핀란드·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교원이 지방의원으로 활동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학교 운영에도 다양한 정치적 배경을 가진 교사들이 참여함으로써 거버넌스의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수업의 정치적 중립성’은 엄격히 유지하되, 교원의 일반적 시민권을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가진다. 이는 교원이 정치적으로 완전히 침묵해야 교육이 중립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수업에서 균형성과 다원성을 지키는 전문성을 통해 중립성이 실현된다는 철학에 기반한다. 독일·핀란드와 같은 나라에서는 교사가 지역 정치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활동하며, 민주주의 기반을 튼튼히 하는 역할을 한다. 독일 연방의회에서 교사 출신 의원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는 교원의 정치 참여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점, 오히려 교사가 사회문제에 대해 깊이 참여할수록 교육활동이 성숙해지고 민주주의도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정치적 중립성은 전문적 윤리의 문제 그러나 한국의 법과 제도는 국내에서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모두 동일하게 적용된다. 재외한국학교 교사 역시 한국 법령을 기반으로 정치적 표현과 정당 활동이 전면 제한된다. 해외라는 특수한 사회적·정치적 환경을 고려할 때 교사의 신중한 정치활동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직무 외의 모든 정치기본권까지 제한받는 것은 글로벌시대의 교육 환경과는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재외한국학교는 국제사회에서 ‘한국 교육의 얼굴’ 역할을 한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성장하는 학생들은 국제적 감각과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동시에,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민주주의 가치를 함께 배우게 된다. 하지만 정작 이 가치를 가르치는 교사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와 정치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면, 이는 학생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와도 어긋나고, 나날이 높아져 가는 대한민국의 위상에도 맞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가르치지만, 민주주의적 권리는 제한된 채 살아야 한다는 모순이 존재하는 것이다. 더욱이 재외한국학교는 단순히 한국 교육과정을 그대로 옮겨놓는 곳이 아니다. 다양한 문화·법·정치 환경을 경험하는 학생들에게 균형 잡힌 세계 시민성을 길러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교사들이 사회 현안에 대해 건전한 토론과 분석을 할 수 있어야 학생들 역시 국제적 감각을 익히고 복잡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특히 2022 개정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주도성, 비판적 사고력, 세계 시민성 등을 방향성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이는 교사의 사회적·정치적 이해 능력을 필수적 요소로 전제하고 있다. 정치적 중립성은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와 같이, 수업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특정 이념을 강요하지 않는 전문적 윤리의 문제이지,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묶어두는 방식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의 특성상 정치적 민감성을 더욱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는 점은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는 언제, 어디서나 모든 정치적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와 같은 현재의 획일적인 규제는 국내외 교육 현실, 민주주의 환경, 학생의 선거권 등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교원의 정치기본권 문제를 재외한국학교까지 포함하는 더욱 넓은 시각에서 논의해야 한다. 국내 이해관계자뿐 아니라 해외 교육 환경, 재외동포 사회, 재외교육기관 운영 경험 등을 참고하여 한국의 법·제도와 글로벌 기준 간의 조화를 모색해야 한다. 학생·학부모·교사·전문가가 참여하는 공론화가 이제는 필요한 때다. 해외의 사례를 연구하고, 우리 현실에 맞는 법·제도를 고민하며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세계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은 교사 스스로 민주주의 주체로 설 수 있어야 가능하다. 시대는 변하고 있으며 교육의 역할 역시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교원의 정치기본권에 대한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AI 시대는 자기 역량을 발견하고 발전시켜 ‘최고의 나’를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면 기존 성공 모델의 ‘플러스 원(Plus One)’은 될 수 있지만, 결코 ‘더 원(The One)’은 될 수 없습니다.” 세계적 교육학자 폴 킴 전 스탠퍼드대 부학장은 새교육과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에 만연한 ‘정해진 길 따라가기’ 식 성공 모델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대세를 따라가는 것이 오히려 가장 위험한 선택이 됐다”며 “학교에서의 배움이 잉여지식이 되지 않도록 교육의 작동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그는 국내 한 대학이 주최한 포럼에서 AI를 질산암모늄에 비유하며 “잘 쓰면 인류를 이롭게 하지만 교육이 통제하지 못하면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러면서 “이제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의 창의적 질문을 중심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질문 없는 교실에는 미래가 없다” 폴 킴 교수는 “학생이 배웠는지 확인하는 유일한 증거는 ‘질문’이다”라고 단언했다. 단순히 외운 내용을 말하는 것은 배움이 아니며, 스스로 궁금함을 느끼고 질문할 수 있을 때 배움이 비로소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는 “질문이 없는 교실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질문이 없으면 배움도, 성장도, 미래도 없다”고 말했다. 창의적 질문을 이끌어내는 방법에 대해서는 조금 색다른 방식을 소개했다. 서로 다른 주제의 단어를 결합해 새로운 관점을 만드는 것이다. 예컨대 민주주의를 공부한다면 ‘민주주의 + 아픔’처럼 전혀 다른 맥락의 단어를 섞는 방식이다. 그는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에 출연했을 때 MC 유재석 씨에게 ‘돼지고기’와 ‘피아노’로 질문을 만들어보라고 했던 경험을 소개하며 “생각하지 못했던 조합에서 창의적 질문이 나온다”고 말했다. “커닝이 문제가 아니라 평가가 문제 … AI와 협업하는 평가로 바꿔야” 최근 대학가에서 챗GPT를 이용한 부정행위 논란에 대해서도 그는 교육의 책임을 강조했다. “챗GPT가 학생을 커닝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교수의 평가 방식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교재 내용을 베껴 쓰는 과제나 정답 찾기식 평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AI 활용을 막겠다는 발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AI 시대에는 AI를 활용해야만 풀 수 있는 문제를 만들어야 한다. AI와 협업하며 더 나은 답을 끌어내는 능력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AI 디지털교과서(AIDT) 논란에 대해서도 “종이교과서를 그대로 전자책으로 옮겨놓은 수준”이라며 “AI를 파트너처럼 활용하는 능력을 기르는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여러 AI를 경쟁시키는 ‘메타 AI 활용 능력’을 강조했다. 챗GPT로부터 의견을 얻고, 클로드에게 더 나은 대안을 요구하며, 퍼플렉시티로 사실 검증을 시키는 방식처럼 인간이 AI 팀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티칭의 시대는 끝났다’ AI가 교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그는 명확한 답을 내놓았다.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은 이미 AI가 더 잘하기 때문에 ‘티칭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이제 인간 교사의 핵심 역할은 학생의 재능을 발견하고 성장 경로를 설계해 주는 코치(coach)나 멘토(mentor)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AI는 설명을 잘하지만, 학생의 성향·흥미·정서까지 파악하며 길을 만들어 주는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AI를 활용해 기존의 자기주도성이 수십 배 확장되는 ‘초자기주도력(Hyper-Self-Directedness)’을 새로운 핵심 역량으로 제시했다.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AI와 드론을 결합해 농장 측량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사례를 언급하며 “AI와 협업할 줄 아는 학생은 능력이 폭발적으로 확대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모든 학생이 이런 능력을 갖춘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부모나 교사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초수동적 학생’들에겐 먼저 정서적 회복력, 즉 ‘스스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이를 그는 ‘태도의 지능’이라고 표현했다. ‘태도의 지능’이 뛰어난 사람은 실패를 배움의 기회로 삼는다 폴 킴 교수는 자신의 과거를 예로 들었다. 그는 초·중·고 시절 ‘하위 1%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세계 최고 대학 중 하나인 스탠퍼드대에서 교육 혁신을 논의하는 자리에 서 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그때의 상황을 고정된 운명으로 받아들였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태도의 지능이란 “실패를 부끄러움이 아니라 배움의 증거로 보는 태도”라고 정리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채용 과정에서 ‘실패 경험’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것, 실패를 주도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초자기주도력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는 기존의 핵심 역량 4C(창의력·협력·비판적사고·소통)에 연민(Compassion)과 헌신(Commitment)을 더한 ‘6C’를 제시했다. “AI 시대일수록 인간에 대한 연민과 헌신이 기술보다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IBM 등 빅테크기업들이 AI 프로젝트에 실패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인간의 고통과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기술은 반드시 엇나간다”고 강조했다. 폴 킴 교수는 한국 교육이 입시 중심으로 고착화된 현실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한국에서는 결국 의대가 정답이라는 구조가 굳어져 있다. 하지만 AI 시대에 대세를 따르는 것은 가장 위험한 선택”이라고 했다. 그는 “남들과 같은 길을 걷는 것은 더 이상 생존 전략이 아니다. 그렇게 얻는 지식은 사회에 기여하지 못하는 잉여 지식이 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인간의 경쟁력은 기술이 아니라 ‘배움의 태도’에 있다는 것이다. 배움은 종착점이 아니라 평생 이어지는 여정이며, 실패조차 배움의 일부라고도 했다. “오늘 실패했다면 ‘오늘 또 하나 배웠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AI 시대의 강자”라고 덧붙였다.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했던 정홍래(鄭弘來, 1720~?)가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침 해를 맞이하는 매(Hawk at Sunrise)에는 거친 파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붉게 타오르는 아침 해를 의연하게 바라보는 매 한 마리가 보인다.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치는 1월이다. 한 해의 시작과 끝은 인간이 만든 시간의 인위적 경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는 무엇인가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강박에 시달릴 수도 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여느 때와 다름없지만, 달력의 첫 장을 넘기는 우리 마음속에는 설렘과 막연한 두려움이 교차하곤 한다. 해마다 반복되는 학기이지만,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은 언제나 새로운 우주이며,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파도는 매년 다른 높이로 밀려오기 때문이다. 그럴 때, 오래된 회화 한 폭을 꺼내어 천천히 들여다보면 어떨까.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Hawk at Sunrise라는 제목의 조선 회화 한 점이 걸려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아침 해를 맞이하는 매이다. 거친 바다와 파도 위, 기암괴석, 떠오르는 붉은 해, 그리고 바위 끝에 홀로 선 한 마리 매가 화면을 채운다. 메트는 이 작품을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 정홍래(鄭弘來, 1720~?) 추정작으로 소개한다. 정홍래는 도화서에서 활동하며 어진1과 기록화를 그렸고, 특히 매와 일출을 결합한 그림, 이른바 〈욱일취도(旭日鷲圖)〉 계열로 이름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간송미술관에 역시 같은 구도의 작품들이 전하며, 새해마다 궁중에서 제작해 나누어 주던 세화2이다. 왕이 신하들에게 새해의 뜻을 전하기 위해 하사하던 그림, 새해의 첫인사를 대신하던 이미지가 바로 이런 매와 해의 조합이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조선 왕실과 상류층의 공간을 장식하던 이미지가 먼 시간을 돌아 세계적인 미술관에 걸려 있는 경우다. 2026년 새해를 맞는 오늘, 우리는 이 그림을 다시 우리의 교실과 연구실로 불러와 새해를 시작하는 시점에 꺼내보도록 하자. 거친 파도가 넘실대는 기암괴석 위에 우뚝 선 매 이 그림을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훑어보면 장면이 단계적으로 펼쳐진다. 가장 아래에는 청록과 남색이 뒤섞인 거친 파도가 있다. 겹겹이 말려 올라가는 곡선과 흰 포말이 화면 하단의 리듬을 만들어가며, 파도의 솟음이 생동감 있게 전달된다. 한 줄 한 줄의 붓질은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면서도 매 순간 조금씩 다른 듯하다. 끊임없이 몰려오지만, 결코 같은 모습이 아닌 파도를 바라본 경험이 연상된다. 그 위로는 대각선 방향으로 치솟은 괴석이 자리한다. 바위의 기울어진 형태는 화면에 대각선을 만들며, 밑에서는 파도가 바위를 끊임없이 때리며, 윗부분은 하늘과 해를 향해 비스듬히 치솟았다. 자세히 살펴보면, 청록과 갈색이 교차하는 바위의 표면은 거칠고 불규칙하다. 하단의 기저선이자 수평선, 왼쪽으로 기울어진 바위, 오른쪽 위의 둥근 해가 변화를 주면서도 균형되게 우리의 시선을 유도한다. 바위는 단단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금이 가고 패인 자국이 가득하다. 오랜 시간 파도와 바람을 견디며 깎여 나간 자리, 우리가 서 있는 학교와 교실이라는 교육 공간을 닮은 듯하다. 바위 끝에는 한 마리 매가 서 있다. 갈색·회색·흰색이 섞인 깃털은 매우 정교한 필선으로 묘사되었으며, 검은 발톱과 날카로운 부리와 동그란 눈이 또렷이 살아 있다. 앞으로 약간 기울어진 몸, 정교하게 묘사된 깃털이 긴장된 자세를 드러낸다. 작가의 선묘와 채색이 가장 밀도 높게 모인 곳이 바로 이 매의 몸이다. 정홍래의 매 그림이 화려한 색채와 장식적인 세부 묘사로 유명하다는 설명과 정확히 맞물린다. 화면 전체의 리듬감 있으면서 거친 바다 배경이라면, 중심에 위치한 매는 의연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무엇을 바라보고 서 있을 것인가 화면 왼쪽 상단에는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다. 일출을 본 경험이 있다면, 그 긴박감 있는 순간이 연상되리라. 기다리는 내내 느린 듯하다가, 어느 순간 훌쩍 하늘 위로 두둥 떠오른다. 주변의 하늘은 구름과 넓은 여백으로 처리되어, 복잡한 파도와 대비를 이루며 해를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게 한다. 붉은 해와 청록색 바위, 푸른 바다의 강한 색채 대비, 아래의 복잡함과 위의 여백이라는 공간 대비가 새벽의 서늘한 공기를 느끼게 낸다. 이 도상에는 미술사적 내러티브가 겹쳐져 있다. 조선 중기의 매 그림이 줄에 묶인 사냥매, 곧 ‘가응도’ 중심이었다면, 조선 후기에는 줄을 벗어 던진 야생의 매가 해·파도·바위와 함께 등장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욱일취도〉와 같은 작품이 그 사례이다. 바위 끝에 선 매는 정교한 선으로 그려진 깃털과 미세하게 갈라진 색채의 그러데이션으로 처리되며, 꼿꼿한 자세의 몸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 앞으로 조금 기울어진 몸이 긴장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매’를 가리키는 한자 웅응(雄鷹)의 발음을 거꾸로 읽으면 영웅(英雄)이 된다는 설명처럼 바위 위에 홀로 선 한 마리 매는 영웅독립(英雄獨立)이라고 읽히기도 한다는 해석도 있다. 새해마다 궁중에서 제작해 신하에게 나누어주던 세화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새해, 각자의 자리에서 곧게 서 있으라’는 왕실의 시각적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매는 ‘강인함’과 ‘용기’를 상징한다. 조선에서 매는 왕권을 감시하던 사헌부를 가리키는 이미지로도 쓰였고, 수컷 매를 뜻하는 웅응(雄鷹)의 발음이 영웅(英雄)으로 겹쳐 읽히기도 했다. 새해마다 나누어지던 세화 속 한 마리 매는 결국 ‘자기 자리를 지키는 영웅’의 초상에 가까웠을 것이다. 붉은 해와 함께 날아 볼 준비를 하자 조선 후기의 관점에서 보면 이 그림은 왕이 신하에게 건네는 새해의 당부였을 것이다. 파도가 거세더라도 바위 위에서 곧게 서 있으라는 요청, 영웅처럼 독립하여 나라를 지키라는 기대가 담긴 세화였다. 하지만 오늘의 교육현장에서 이 이미지는 조금 다르게 읽힌다. 거창한 영웅이 아니라 각자의 교실에서 묵묵히 학생들을 사랑하며 자신의 길을 가는 교육자, 변화무쌍한 정책과 여론의 부정적 물살 속에서도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바위 끝의 매는 교육의 험난한, 그렇지만 소중한 가치를 추구하는 우리이다, 세상은 파도처럼 변화무쌍해 보이는 예측불허의 급격한 시간으로 가득 차 있다. 변화하는 국내외 정세와 아울러 인공지능(AI)의 시대에 학생·학부모, 나아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때로는 누구인가에 대해 질문하기도 한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개인과 조직과 사회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언제든 밀려오는 파도에 가까운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와 함께하는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바위처럼 비록 시간에 닳고 마모되어 가겠지만, 같이 오래갈 수 있는 ‘우리’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누군가에게는 기댈 자리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질문과 변화를 몰고 오는 물결이 세상사가 된다. 붉은 해를 바라보며, 매의 고독을 하나의 외로움이 아니라 함께 하는 관계 속에서 독립된 우리 중 하나로 생각해 보자. 내 탓, 네 탓보다는 우리가 함께 정서적으로 공감한다면, 해결책도 자연스럽게 보이리라. 때로는 어려움에 흔들릴 수도 있지만 동시에 따뜻한 교직 사회의 일원으로서, 서로의 바위에 서서 해를 각자의 자리에서 바라보는 매가 되어 볼 수 있을 것이다. 2026년을 여는 새로운 시작에서, 각자의 교실과 삶의 자리를 떠올리며 이 그림을 마음속 세화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올해 나는 무엇을 향해 날고 싶은가, 누구와 함께 날고 싶은가, 날아가는 동안 무엇만은 잃지 않겠는가. 날아오르기 전, 잠시 멈추어 서서 묻는 이 질문이 우리 모두의 새해 첫 결심이 되기를 바란다.
영화 중경삼림을 보았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홍콩이라는 도시는 어떤 도시인가? 얼마나 매력적인 도시일까? 하여 홍콩으로 떠나기로 했다. 일정은 5박 6일. 여행을 가기 위한 사전 조사를 해보면 정말 많은 사람이 3박 4일, 홍콩과 마카오를 묶어서 여행한다. 주변 지인에게 “홍콩에 5박 6일로 여행을 가려고요”라고 하면 “거기 뭐 볼 게 있어? 그렇게 오래?”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5박 6일도 짧고 아쉬웠던 여행.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일단 걷자. 홍콩의 길거리. 골목은 더 좋고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홍콩 여행지는 바로 홍콩의 길거리, 골목이다. 홍콩에 왔다면, 이곳의 분위기에 흠뻑 젖고 싶다면, 일단 걷자. 숙소 주변부터 차근차근 걷는 것이다. 홍콩의 길거리는 낮이고 밤이고 좋다. 특히 간판들과 건물들을 보는 것이다. 1990년대에 아주 흥했던 도시. 그리고 그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건물들과 투박하면서도 강렬한 한자로 쓰여있는 간판들을 보면서 길거리를 걷는 것이다. 정말 낭만적이지 않을 수 없다. 밤은 또 어떠한가. 반짝반짝 네온사인 간판들이 아름답게 빛난다. 너무 화려하고 번잡스러운 것이 아닌, 약간의 따뜻한 빨간빛과 주황빛의 간판들과 조명은 밤에도 잠 못 들게 한다. 홍콩의 밤거리가 아름다워서, 여행 내내 밤늦게까지 돌아다녔다. 낮보다는 밤을 즐기기가 좋은 곳이다. 그리고 1~2월에 가면 약간 선선한 가을 날씨라 춥지 않아 도톰한 카디건 한 장이면 충분했다. 밤에는 길에 다니는 택시들이 너무 예쁘다. 버건디색 택시들. 홍콩의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린다. 길거리에 다니는 택시뿐만이 아니다. 2층 버스와 트램도 아주 예쁜 교통수단이다. 높은 빌딩과 도로 사이로 다니는 높은 2층 버스는 눈길을 사로잡는다. 버스에 타면 시야가 높아서 도로의 사람들과 주변 풍경들을 잘 관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트램은 홍콩섬에 가면 볼 수 있다. 도로에 선로가 깔려있고, 그 위를 지나다니는 이색적인 풍경에, 여기가 유럽인지 아시아인지 잠깐 헷갈릴 정도이다. 실제로 홍콩의 트램은 영국 식민지 시대에 건설된 대중교통이라고 한다. 느리고, 저렴하다. 시간의 여유가 되어 빨리 이동하지 않아도 될 때 타기에 적합하다. 홍콩의 길거리를 더 천천히 구경하고 싶을 때 트램을 이용했다. 느리지만, 시간의 여유를 즐길 수 있고, 주변을 둘러보며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홍콩의 길거리를 걷다 보면 느끼는 점이 있다. 좁고, 높다. 건물들은 따닥따닥 붙어있고, 높이도 꽤 높은 편이다. 여기에는 지리적인 이유가 숨어 있다. 홍콩은 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살만한 공간이 작다. 그런데 홍콩이 세계적인 도시가 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모여들었고, 살 땅은 적은데 사람들은 많으니, 건물은 높게 올라가고, 건물들 사이에도 여유를 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홍콩은 숙소 값이 비싸다. 물가는 우리나라와 얼추 비슷하거나 더 저렴한 경우가 많은데, 숙소는 좁고, 비싼 편이다. 건물들을 보고 있으면 이 모든 곳이 관광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알록달록한 색감과 무늬. 오밀조밀한 모습. 뭔가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느낌이 든다. 걸으면서도, 버스·택시·트램을 타면서도, 낮에도, 밤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건물일 뿐인데 계속해서 시선을 끈다. 관광지가 아니지만 그 자체로 여행지인 것이다. 대표적인 명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익청빌딩에 들어서면 ㄷ자 모양의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 있다. 높고 특이해서 감탄이 나온다. 많은 관광객이 왔다 간다. 나는 궁금한 점이 생겨 더 있어 보기로 했다. 정말 이 주거지를 보러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렇게 오는데, 여기 사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 싶어 장소를 방문하는 관광객들과 주민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관광객들은 늘 그랬듯이 예쁜 사진을 남기려고 애를 쓰고, 줄을 서고, 사진을 찍고 바로 돌아간다. 주민들은 관광객들에게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마치 자체 블러처리를 한 것처럼. 1층에는 상가들이 있었다. 식당도 있고, 미용실 같은 것도 있었다. 잠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겼을 때 뭔가 깨달았다. 이곳은 주말의 평화로운 주거지구나. 여느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식사를 하고, 머리를 하고, 앵무새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잠깐 바깥바람을 쐬며 통화를 하는 곳이구나. 사람들의 평화로운 일상이 담겨있는 공간이구나 싶었다. 진짜 진짜 길거리만 주야장천 걷는 것이 맞는가 싶었던 찰나, 홍콩 소호 거리 벽화마을에 들렀다. 뭔가 두근두근. 길거리에 벽화가 그려져 있으면 얼마나 예쁠까 싶었다.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벽화마을이 많은데, 그 벽화마을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기대하며 간 장소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한 벽화에 엄청나게 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떤 벽화일지 궁금해서 봤다. 벽화를 보고 나니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가득 남았다. 어찌하여 이렇게 줄을 서 이 벽화에서 사진을 찍는 것일까? 이 벽화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찾아보니, 별다른 의미는 없고 소호 거리 벽화마을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대표 사진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장소를 검색했을 것이고, 이 사진을 봤을 것이고, 그리고 장소에 도착했을 때 왜 이것이 예쁜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줄 서 있고 하니까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너무 아름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특히 여행하러 와서 사진만 찍고 가는 사람들에게 진절머리가 나 있는 요즘에는 더더욱 반갑지 않았다. 그래서 그 장소를 떠났다. 여행 일차를 거듭할수록 홍콩은 딱히 특별한 관광지라고 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관광지를 가기 위한 여정에는 뜻밖의 행운도 있었고, 도전도 있었으며, 새로운 발견도 있었고, 나만 아는 멋진 관광지도 있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아. 관광지에 가지 않아도 여행을 하는구나. 여행이란 관광지를 가는 것이 아니구나. 여행이란 모든 여정이구나. 관광지에 가도 여행을 하지 않을 수 있고, 관광지에 가지 않아도 여행을 할 수 있는 거구나. 관광지를 추천한다면 구룡채성 아무리 모든 곳이 여행지라고 하더라도 홍콩에서 갔던 좋은 관광지를 소개하자면 구룡채성을 추천하고 싶다. 시각적으로 훌륭해서가 아니라, 의미가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구룡채성은 홍콩 시내에서 거리가 어느 정도 있는 곳이다. 버스를 타고 빌딩 숲을 벗어나면 사람들이 모여 사는 외곽지역이 나오는데, 그곳에 있다. 정확히 표현하면 ‘있었다’. 지금은 공원으로 바뀐 이곳. 구룡채성은 매우 독특한 경관을 자랑한다. 물론 사진으로만 남아있지만, 구룡채성은 무수히 빽빽한 건물들이 모여있는 무법지대이다. 영국도, 중국도 관리하지 않는 무법지대. 세금을 내지 않아 많은 이민자가 모여 살았고, 법이 닿지 않는 곳이라 온갖 범죄의 온상이 된 곳이다. 과거 구룡채성의 사진을 보면 어떻게 이러한 공간에 사람들이 살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햇빛과 바람이 들지 않는 곳에 도박·매춘·마약·쥐·바퀴벌레와 함께 살 수 있었다니.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근처에 공항이 있었는데, 건물들이 15층까지 올라가니 과거에는 머리 바로 위로 비행기가 지나갔다고 한다. 지금은 공원이 되어 사람들이 가족들과 여유롭게 주말을 즐기는 공간. 과거에는 참으로 답답한 공간이었을 이곳이 지금은 너무나도 여유 있는 공간인 것이 흥미롭다. 예전, 구룡채성에 살던 사람들은 이곳이 이렇게 다른 장소가 될지 상상이나 했을까. 한 지역에 오래 머무는 여행. 뭐 볼 게 있나 싶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같이 보이는 여행. 하지만 그만큼 깊게 느낄 수 있고, 쉽게 지나치느라 볼 수 없던 것들을 볼 수 있는 여행이다. 홍콩에서의 일주일은 그러했다. 뭔가 더 많이 돌아다녀야만 한다는 불안감과 투쟁하며 그저 걷고, 한곳에 오래 머물고, 같은 곳을 여러 번 가고, 같은 음식을 여러 번 먹었다. 그럴수록 많이 생각할 수 있었고,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팽나무는 전국 어디서나 자라지만, 남부 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제주도나 남해안에 가면 정말 멋진 팽나무 고목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특히 소금 바람이 부는 바닷가에서도 잘 자란다. 세월호 아픔을 간직한 팽목항도 주변에 팽나무가 많아 생긴 이름이다. 느티나무는 어느 정도 크면 나무껍질이 타원 모양으로 벗겨지지만, 팽나무는 벗겨지지 않아 매끄러운 점이 다르다. 2022년 방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엔 팽나무가 거의 주연급으로 출연했다. 경남 창원시 동부마을 뒤편 언덕에 큰 팽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팽나무 추정 수령은 500살로, 높이는 16m, 나무 둘레는 6.8m에 달하는 나무다. 나무 아래 서면 포근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이 마을 한가운데로 도로가 뚫릴 위기에 처하자, 마을 주민들과 변호사가 이 팽나무를 보여주면서 설득해 재판에서 이기는 줄거리였다. 팽나무라는 이름은 열매를 대나무 총에 넣고 쏘면 ‘팽~’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고 해서 붙은 것이다. 어릴 적 팽나무 열매를 모아 열심히 총을 쏘았다. 열매가 불그스름해지면 따먹기도 했는데, 살짝 단맛이 도는 것이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가을엔 나무 전체가 노랗게 단풍이 들었다. 팽나무는 필자에게 ‘고향의 추억으로 가는 표지판’이다. 팽나무 아래에서 슬픔 치유 2017년 이상문학상을 받은 구효서 중편 풍경소리에 팽나무가 주요 소재로 나와 반갑게 읽었다. 이 소설은 이은상의 시조 ‘성불사의 밤’을 모티프로 한 것이다. ‘서른두 셋쯤 보이는’ 미와는 뭔가 ‘달라지고 싶으면 성불사에 가서 풍경소리를 들으라’고 한 친구의 권유로 산사에 갔다. 미와는 미혼모로 자신을 키운 엄마의 죽음 이후 원인 모를 환청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미와가 깊은 밤에 풍경소리를 듣고, 절 마당에 있는 거대한 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특별한 사건은 생기지 않는다. 절에 온 지 사흘째, 공양주 좌자가 미와에게 ‘이곳에서는, 왜라고, 묻지, 않습니다’라고 말해준 것은 팽나무 그늘 아래서였다. 미와가 두릅나물과 표고버섯 무침을 맛있게 먹다 사레가 들려 쪼그리고 앉아 눈물을 흘린 곳도 팽나무 아래였다. 팽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아 미와는 눈물을 철철 흘렸다. 저도 멋쩍은지 실실 웃으며. 좌자가 다가와 미와의 등을 천천히 쓸었다. 미와의 다급한 발짝 소리에 놀란 쓰르라미들이 일시에 울음을 그쳤다. 그러자 팽나무 이파리들이 쏴아, 바닷소리를 냈다. …(중략)… 딱히 할 일이 없는 오후였으므로 좌자와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쓰르라미 소리를 들었다. 풍경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할 일이었다. 오후여서 좀 더웠다. 팽나무 이파리들이 끝없이 바닷바람 소리를 냈다. 팔랑거리는 작은 잎들을 하염없이 쳐다보자니 아련하고 간지럽고 재채기가 날 것 같고 졸렸다. 청각을 중심으로 한 팽나무 묘사가 감각적이다. 미와가 아주 오랜만에 휴대전화 전원을 넣고 남자 친구의 전화를 받은 것도 팽나무 아래서였다. ‘그의 말은 내가 팽나무 이파리를 다 셀 때까지도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팽나무가 있어서 가을 산사의 풍경은 더욱 고즈넉해졌고, 주인공의 내면 묘사는 더욱 섬세해졌다. 미와는 풍경소리에 귀 기울이며 ‘슥삭슥삭’ 글을 쓰고 성불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엄마를 잃은 슬픔을 치유해 가는 것 같다. 작가 구효서(1958년생)는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요즘엔 문학상 심사위원에 단골로 이름을 올리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소설도 발표하는 현역 작가다. 꽃에 관심을 갖는 필자 입장에서는 그가 여러 소설에서 꽃(식물)을 주요 소재 또는 상징으로 쓰는 것이 흥미롭다. 구효서가 2017년 내놓은 장편 옆에 앉아서 좀 울어도 돼요?에서는 산나물로 먹는 파드득나물이 중요한 소재로 나오고 있다. 파드득나물은 전국의 산지 습한 계곡 등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어린순을 따서 생으로 먹거나 무침 등으로 먹는 나물이다. 파드득나물은 작은 잎이 세 개씩 달린 것(3출엽)이 참나물과 비슷하게 생겼다. 그의 단편 소금가마니도 감명 깊게 읽은 소설 중 하나다. 소설은 두부를 만들어 자식들을 먹여 살린 어머니를 회상하는 내용인데, 버드나무의 한 종류인 용버들이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강인한 모성애를 보여주는 장면에 나오고 있다. 2005년 이효석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팽나무, 좀풍게나무, 풍게나무 식물에 관해 공부하면서 고수들이 팽나무 종류에 대해 논쟁하는 것을 여러 번 본 적 있다. “팽나무다”, “풍게나무다” 하는 식이었다. 그만큼 팽나무 종류 구분이 쉽지 않고 정리도 되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국내 팽나무 종류를 젊은 학자가 연구해 깔끔하게 정리했다. 바로 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이다. 허 연구원은 복잡한 국내 팽나무속을 열매가 노란색 또는 주황색으로 익는 팽나무·폭나무·노랑팽나무·왕팽나무 등 4가지, 열매가 검정색으로 익는 풍게나무와 좀풍게나무 등 2가지로 정리했다. 이중 폭나무·왕팽나무·노랑팽나무는 드물거나 남해안 등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그래서 서울 등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 만날 일이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팽나무·좀풍게나무·풍게나무만 알아도 충분할 것 같다. 팽나무는 가을에 익는 열매가 약간 붉은색이 있는 노란색이고, 팽나무잎은 가장자리 톱니가 잎 절반 정도까지만 있는데 비교적 규칙적인 것이 특징이다. ‘풍경소리’에서 미와가 가을에 성불사에 들어갔으니 그 당시 팽나무에도 등황색 열매가 무수히 달려 있었을 것이다. 좀풍게나무는 주로 중부 이북에서 자라는데, 열매가 노란색을 거쳐 검은색으로 익는다. 잎 가장자리의 톱니가 잎의 절반 이하로 조금만 나타나고, 잎의 가운데 맥을 기준으로 양측의 톱니가 비대칭 모양이다. 풍게나무는 한반도 전역에서 자라고, 열매가 검은색으로 익고, 잎의 가장자리에 있는 뾰족뾰족한 톱니가 잎의 절반 아래까지 길게 나타나는 점이 특징이다. 이런 기준을 알고 광화문 일대에 있는 팽나무를 보니 의외로 좀풍게나무가 적지 않았다. 허태임 연구원에 의하면 경복궁·창경궁·청와대에는 팽나무보다 좀풍게나무가 더 많다. 경복궁 향원정 옆에 있는 근사한 나무도 오랫동안 팽나무인 줄 알았는데, 허 연구원 글을 읽고 살펴보니 검은 열매가 달리는 좀풍게나무였다.
20년 만에 복귀하는 김민종 그리고 최지우의 3년 만의 신작 영화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1989)에서 단역으로 시작해 드라마 신사의 품격(2012)의 순정남 최윤 역할로 사랑받았고, 가수로 하늘 아래서와 손지창과 2인조 그룹 ‘더 블루’의 너만을 느끼며를 히트시키며 일약 청춘스타로 등극했던 김민종이 피렌체(감독 이창열)로 스크린에 복귀한다. 노 개런티로 참여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는데, 2005년 관객 1만 4천여 명을 동원한 종려나무 숲(감독 유상욱) 이후 꼭 20년 만이다. 피렌체는 권고사직과 무기력에 시달리며 삶의 방향을 잃은 중년의 ‘석인’(김민종)이 상실의 끝자락에서, 젊은 시절 자신의 열정이 숨 쉬었던 이탈리아 피렌체로 떠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로드무비다. 시간이 멈춘 듯 여전히 아름다운 피렌체 곳곳을 걸으며 석인은 그 시절 단짝 친구의 연인 ‘유정’(예지원)과 재회해 과거 자신이 버리고 떠난 기억과 감정을 마주한다. 범죄도시 4와 공조의 이성제 촬영감독이 피렌체 특유의 빨간 지붕들이 한눈에 보이는 전경과 광장 명소에 인물의 내러티브를 대입해 한 편의 무성영화 같은 웰메이드 로드무비로 완성했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한국적 감성의 판소리에 담은 전작 그대 어이가리(2023)로 밴쿠버국제독립영화제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56관왕을 수상한 이창열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이미 2025 글로벌 스테이지 할리우드 영화제에서 국내 최초로 작품상·감독상·각본상 3관왕의 쾌거를 올려 영화에 대한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피렌체 예고편 릴스 조회수가 이례적으로 1억 3천만 뷰를 넘어서면서, 최근 런던저널은 김민종의 절제된 눈빛과 침묵이 언어 장벽을 뛰어넘었다고 평가하면서, ‘멈춘 순간도 다시 걷기 위한 준비’라는 피렌체가 중년에 전하는 메시지는 영국 사회가 겪고 있는 중년의 고독과 맞닿아 현지 중장년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1월 7일 개봉.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사랑받아 온 ‘지우히메’ 최지우가 뉴 노멀(감독 정범식, 2023) 이후 3년 만에 주연을 맡은 실화 기반 영화 슈가(감독 최신춘)로 관객의 눈물샘을 터트린다. 워킹맘 ‘미라’(최지우)는 12살 아들 ‘동명’(고동하)의 갑작스러운 ‘1형 당뇨’ 판정에 충격을 받는다.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절망하지만, 공학도였던 전공을 살려 국내에 출시되지 않은 연속혈당측정기를 들여오고, 채혈 공포가 있던 동명이 혈당 관리를 쉽게 하게 되면서 가족은 저혈당 쇼크의 불안에서 해방된다. 소식을 알게 된 환우회 회원들의 요청으로 기기를 직접 수입해 제공하지만, 허가받지 않은 불법 의료기기를 통관 절차 없이 들여와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을 당하게 되고, 아들과 환우회를 위해 미라는 세상과 맞서기를 결심한다. 실제 딸을 키우고 있는 최지우는 최근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육아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하면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1형 당뇨 환우 가족들이 겪는 현실적 고통과 아이를 지키려는 절박함에 깊이 공감해 슈가 출연을 결정했다고 전해졌다. 최신춘 감독은 “최지우 배우가 보여줄 에너지는 상상 이상이다. 우아함 뒤에 숨겨진 강단과 뜨거운 모성애가 ‘미라’라는 캐릭터와 완벽히 일치했다. 그녀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놀랍고 따뜻한 챕터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전했다. 배우 최지우가 선택한 가장 따뜻한 기적 슈가는 1월 개봉 예정이다. 권상우와 키아누 리브스의 본격 코미디 대결! 한국 대표 코미디 배우 권상우와 할리우드 대표 액션 스타 키아누 리브스가 2026년 1월 극장가에서 코미디 영화로 한판 대결을 펼친다. 먼저 권상우는 히트맨 시리즈의 흥행을 이끈 코미디 장르 특화 감독 최원섭과 하트맨으로 재회했다. 대학 시절 무대 위에서 온몸으로 노래를 부르던 ‘승민’(권상우)은 따스한 햇살 아래 거리를 걷던 ‘보나’(문채원)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를 공연에 초대한다. 강렬한 퍼포먼스를 벌이다 대참사가 발생하고, 그렇게 세월은 흘러 승민은 뮤지션의 꿈을 접고 악기 판매점을 운영하는 중년이 됐다. 갑자기 그 앞에 다시 등장한 첫사랑 보나를 보면서, 식어 있던 감정과 설렘이 순식간에 되살아나며 그의 일상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보나의 마음을 다시 잡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승민의 고군분투가 웃음을 자아내는 가운데, 범죄도시 시리즈의 ‘장이수’로 관객에게 익숙한 박지환 배우가 승민의 음악 친구이자 현재 본격적으로 전업주부의 삶을 살고 있는 ‘원대’ 역으로 출연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라고 외쳤던, 한때 ‘히트맨’이었던 권상우의 첫사랑 되찾기 프로젝트 하트맨은 1월 14일 개봉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수십, 수백 명의 킬러를 단신으로 상대했던 존 윅은 이제 잊어야 할 거 같다. 키아누 리브스가 본격 코미디 영화 굿 포츈(감독 아지즈 안사리)에서 초보 천사 ‘가브리엘’ 역을 맡아 관객의 허를 찌른다. 가브리엘은 길 잃은 영혼들을 품어주는 ‘거창한’ 수호천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날개 크기도 작은 그의 현실은 운전하면서 문자 보내는 인간을 보호하는 일 정도다. 어느 날 열심히 살아도 노숙자의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아지’(아지즈 안사리)를 만나고 그를 구원하기 위해 금수저 벤처 투자자 ‘제프’(세스 로건)와 인생을 바꿔준다.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하지만 하루아침에 뒤바뀐 둘의 인생은 가브리엘의 선한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고, 이에 대한 책임으로 가브리엘은 날개를 반납한 채 인간으로 강등당하는데…. 인생이 뒤바뀐 아지와 제프, 인간이 된 가브리엘의 유쾌한 좌충우돌 운명 재도전기가 펼쳐진다! ‘존 윅’과 ‘매트릭스’ 시리즈로 강렬한 이미지를 공고히 해온 키아누 리브스는 이번 작품에서 대책 없는 초급 천사 가브리엘 역을 맡아 하찮고 허술한 모습으로 역대급 연기 변신을 선보인다. 노숙자 아지 역에는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과 에미상 각본상을 받은 아지즈 안사리가 감독·각본부터 주연으로까지 활약하고, 롱 샷(2019)과 50/50(2011) 등 코미디 장르에서 빛을 발해온 세스 로건이 제프로 분한다. 드라마 킬링 이브와 그레이 아나토미 시리즈로 국내 관객들에게 친숙한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가 선배 천사를 맡아 풍성한 라인업을 완성했다. 오지랖 넓은 천사의 소소한 호의로 정반대의 삶을 살게 된 두 인물의 좌충우돌 일상과 첫 인간 체험을 하게 된 천사의 고난이 발랄한 유머와 어우러져 큰 웃음을 선사한다. 1월 7일 개봉. 올해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애니메이션 2편 ‘인간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깊이 있는 인간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세계에서 가장 슬픈 애니메이션’(MagaZinema)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제49회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콩트르샹 심사위원상을 비롯해 국제 유수 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다수 수상한 광장(연출·각본 김보솔)이 6년여 제작 기간을 끝내고 관객을 만난다. 북한 평양으로 파견 나온 스웨덴 대사관 1등 서기관 ‘보리’는 외교관 신분 덕에 보호받지만, 감시의 눈길은 삼엄하다. 그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거침없는 평양 시민이자 교통보안원 ‘복주’ 뿐이다. 체제와 이념의 감시를 피해 조용한 만남을 이어가던 중 예정된 이별을 알게 된 복주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결국 ‘보리’는 아무 말 없이 상황을 지켜봤던 자신의 통역관 ‘명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국가의 신념을 곧 자신의 신념이라고 받아들이며 보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했던 명준은 처음으로 자신도 모르게 꿈틀거리는 마음 때문에 갈등하게 되는데…. 영원히 함께할 수 없어도 누군가의 내일을 묻고 싶은 관계가 있다. 잿빛 하늘과 삼엄한 통제 아래에서 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보리, 함께하는 미래를 포기해야만 하는 복주, 두 사람을 말없이 지켜보는 명준의 시선과 감정이 러닝타임 내내 아프게 가슴을 울린다. 1월 15일 개봉. ‘올해 가장 아름다운 애니메이션 중 하나’(Cinema Escapist),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더욱 깊이 와닿는 진실들이 있다’(Variety)라는 극찬을 받은 애니메이션 리틀 아멜리(감독 메일리스 발라데, 리안 조 한)도 새해 1월 관객에게 세 살 무렵 자신으로 돌아가는 마법 같은 여행을 선사해 준다. 거실에서 갑자기 쓰러지는 ‘아멜리’에게 엄마는 “괜찮니, 아가?”라고 묻는다. 그런 엄마를 가만히 바라보며 아멜리는 생각한다. “누가 아기라는 거지? 신은 아기가 아니에요. 세 살이면 모든 걸 볼 수 있지만, 아는 건 없어요. 마침내 신에게 시선과 몸이 생겼어요. 근데 이제 뭘 해야 하죠?” 리틀 아멜리는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를 신이라 믿은 엉뚱한 소녀 아멜리가 세상의 사계절을 마주하며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만개한 꽃들과 핑크빛 풍경은 스스로를 신이라 여기며 세상에 무감각했던 소녀 아멜리가 사계절의 다채로운 모습을 바탕으로 성장해 나가는 영화만의 서사를 암시하며 오색찬란한 비주얼로 그려낼 색다른 성장담을 기대하게 만든다. 오로지 사랑과 웃음, 희망과 행복으로만 가득해야 할 것만 같은 아멜리의 유년담은 “내가 세 살이 되던 그날, 모든 것이 달라졌어요”라는 아멜리의 독백을 통해 거대한 변화의 회오리를 향해 나아간다. 마치 우리 모두가 지나왔던 첫 기억에 관한 판타지처럼 리틀 아멜리는 사랑·우정·이별 등 다양한 감정을 마주해 나가는 ‘아멜리’의 이야기를 파스텔톤의 작화로 잔잔하게 보여주면서 관객 모두에게 유년 시절의 추억과 더불어 각자의 ‘처음’에 관한 기억을 끄집어낸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이 원작인 리틀 아멜리는 제78회 칸영화제 특별 상영 부문 공식 초청을 비롯해 제49회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장편영화 부문 관객상 수상 등으로 전 세계 유수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1월 14일 개봉. 사진 제공 ●출처 :㈜누리픽쳐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영화사 순수, 영화사 진진, KOBIS, 한국영화아카데미
우리나라에서 ‘부촌’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어디일까? 사람마다 떠올리는 지역은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 용산의 동부이촌동, 서초의 반포·잠원지구, 강남구 압구정동을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 지역들이 처음부터 부촌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동부이촌동은 군사시설과 철도 창고가 자리하던 변두리였고, 반포·잠원 일대는 한강의 모래톱과 습지가 넓게 펼쳐진 황량한 지역이었다. 압구정동 역시 배밭과 농경지가 이어지던 서울 외곽의 조용한 마을에 불과했다. 지금의 부촌은 결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도시 확장과 경제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결과이다. 그렇다면 이런 변두리였던 지역들은 어떻게 한국을 대표하는 최상급 주거지로 도약하게 되었을까? 그 과정에는 단순한 도시 확장 이상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국가의 개발 전략, 대규모 공유수면1 매립사업, 건설사들의 이해관계, 그리고 한강이라는 자연적 자원이 지닌 잠재적 가치가 서로 맞물리며 새로운 주거 축을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대기업 건설사에는 사업권과 용지 제공 등 다양한 형태의 특혜가 돌아갔고, 이는 곧 해당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다시 말해, 부촌의 탄생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결과라기보다, 국가와 기업이 상호 이익을 공유한 개발 방향 속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측면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지역들의 탄생 과정과 개발 과정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도시 개발의 이면을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떤 조건과 흐름이 한 지역을 부촌으로 만들어내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부촌이 앞으로도 높은 프리미엄을 유지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여러 단서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없던 땅을 만들어내다 _ 공유수면 매립사업 1960~70년대 한국 사회는 급격한 도시 팽창을 겪고 있었다.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수도권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서울의 주택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때 정부가 선택한 해법이 바로 ‘공유수면 매립사업’이었다. 서울시 입장에서는 한강에 제방 공사를 하면 홍수 예방뿐만 아니라 둑 위에 도로2를 만들어 교통 인프라도 확충할 수 있있고, 둑 안쪽에는 새로운 땅이 생겨나니 일석삼조의 효과를 가져다주는 전략이었다. 거기다 그 땅을 매각하면 도시 개발을 할 수 있는 재원까지 마련되니 일석사조의 효과였다. 건설사의 특혜 논란과 아파트 공화국의 시작 공유수면 매립사업은 본래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고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강과 바다를 매립해 도시 공간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얻은 매각 자금을 다시 다른 개발사업에 투입해 선순환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실제로 매립지에서 나온 택지 판매 수익은 여러 기반 시설 확충의 재원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업은 막대한 이권이 걸린 사업이었던 만큼, 편법과 특혜가 뒤섞였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당시 이 사업에 참여했던 건설사들은 공유수면 매립공사를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라고 표현했다. 공사가 대개 토목 비수기인 겨울철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평소 활용되지 않던 장비와 인력을 그대로 투입할 수 있었고,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제방을 쌓고 그 위에 모래를 채워 택지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공정이 진행되었다. 이렇게 조성된 토지 중 국가 귀속 토지 외 잔여 매립지는 건설사가 소유권을 가져갔다. 건설사는 이 땅을 국영기업이나 관공서에 매도하기도 했고, 건설사가 직접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기도 했다. 어떤 방법을 하든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고, 수익은 확실한 구조였다.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엄청난 이익을 거뒀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자금을 제공하여 기업은 비대해졌으며, 마침내 그룹으로 성장하고 재벌이 된 것이다. 그들이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던 사업지가 바로 오늘날 서울의 핵심 주거지로 꼽히는 이촌동·반포동·압구정동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대기업으로 성장한 건설사들은 한국 아파트 시장을 주도하며 전국적인 주거 패러다임을 만들어냈고, 대규모 아파트 공급을 통해 주거의 양과 질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의 이면에는 국가 주도의 개발사업에서 일부 기업이 과도한 특혜를 받으며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던 어두운 단면도 존재한다. 한국이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리게 된 배경에는 이 같은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동부이촌동의 개발 _ 한강 유역 최초의 매립사업지가 부촌으로 현재 용산의 동부이촌동 지역은 원래 미 8군 골프장3 아래에 있던 거대한 강변 백사장이었다. 지금의 도시 모습을 떠올리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곳은 여름이면 서울 시민이 피서를 즐기던 모래사장이었고, 겨울에는 스케이트와 썰매를 타는 놀이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 지역은 한강 범람이 잦아 비만 오면 침수되는 상습 침수 지역이었고, 제방 아래쪽에는 무허가 판잣집 약 2,400가구가 모여 살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제방 공사에서도 배제되어 수차례 홍수 피해를 봤고, 1925년 대홍수 때는 마을의 절반 이상이 쓸려 내려가는 참사를 겪기도 했다. 이러한 차별과 방치는 전쟁 이후에도 이어져, 6.25 전쟁 직후 서부이촌동에는 미 8군 쓰레기 처리장이 설치되고, 분뇨 처리 능력이 부족한 서울은 이촌 일대 곳곳에 분뇨를 버리기도 했다. 서울시는 침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도시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1968년부터 동부이촌동 앞 모래사장을 메우기 시작했다. 공사는 단 7개월 만에 완료되었으며, 1969년 6월 한강에서 퍼 올린 토사로 매립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이 매립지에 학교·기관·신규 아파트 단지가 조성된 이촌1동이 오늘날 동부이촌동이 되었고, 공영주택과 판잣집이 공존한 이촌2동이 서부이촌동이 되었다. 동부이촌동에 가장 먼저 들어선 건물은 공무원 아파트였지만, 이 지역을 진정한 고급 주거지로 탈바꿈시킨 결정적 계기는 1968년 착공된 ‘한강맨션’ 아파트였다. 대한주택공사 장동운 총재가 일본의 ‘맨션’과 ‘하이츠’를 모델로 고급 중산층 아파트를 도입하겠다는 구상 아래 지어진 이 단지는 총 660가구 규모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단지였다. 한강맨션은 한국 최초로 견본주택을 선보였고, ‘근린주구론’4을 적용해 상가·학교·생활시설을 함께 배치하는 도시계획적 실험도 진행했다. 상가 아케이드가 1층에 배치되어 생활 편의성을 높였고, 지금도 그 형태가 동부이촌동 길목에서 오래된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한강맨션 분양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정치인·연예인·기업인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들이 대거 입주하면서 ‘부촌이라면 이촌동’이라는 말이 돌았으며,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부촌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반포의 개발 _ 최대 규모의 한강 변신 프로젝트 오늘날 서울에서 부촌을 이야기할 때 서초구의 반포는 늘 중심에 놓인다. 초고가 재건축, 학군, 한강 조망 등 모든 요소가 한데 모인 상징적 공간이지만, 처음부터 이곳이 비싼 땅은 아니었다. 지금의 반포본동은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버드나무와 갈대, 모래밭과 채소밭이 뒤섞인 상습 침수지대였고, ‘반포’라는 이름조차 단지 나루터를 의미하던 시대였다. 이 일대는 그저 영등포의 동쪽을 뜻하는 ‘영동’이라 불렸다. 반포의 운명은 1970년대 초, 한강 공유수면 매립사업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주택난 해소와 강남 개발의 교두보 역할을 맡기 위해 정부와 대한주택공사(주공)는 이곳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 조성 계획을 마련했다. 국내 굴지의 건설기업인 현대건설·대림건설·삼부토건을 중심으로 반포지구 매립 면허를 받았고, 1972년 7월, 공사는 마무리되었다. 1970~1972년 한강 매립공사와 동시에 반포주공 건설은 시작되었고, 1971년 8월 착공에서 1974년 12월 완공까지 불과 3년여 만에 총 3,590가구가 들어섰다. 당시로서는 국내 최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였으며, 지금도 단일 단지 면적(56만㎡) 기준으로 서울 최대 규모였다. 한강맨션(1970)·여의도시범아파트(1971)와 함께 ‘중산층 아파트의 효시’로 평가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반포주공은 이전 아파트들이 10~20평형대에 머물던 것과 달리 22평형부터 32평형·42평형까지 다양한 평면을 도입했다. 특히 32평형 한 가구가 위아래 두 층을 사용하는 64평형 복층 구조는 당시 한국 아파트 시장에서 최초의 시도였다. 일부 평형에는 ‘식모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이는 당시 계층 구조와 주거 문화를 그대로 반영했다. 그러나 복층형은 호화성 논란이 일자 계획된 6개 동 중 2개 동만 유지하고 나머지는 단층으로 변경했다. 덕분에 반포주공 단지에는 지금까지도 ‘없는 동 번호’가 존재하는 독특한 흔적이 남기도 하였다. 평균 분양가는 395만~730만 원으로 당시 노동자 가구 평균 월 소득 4만 4천 원에 비하면 중산층 이상만 접근 가능한 가격이었다. 군인과 공공기관 종사자들, 서울대·KDI 교수 등이 사택으로 크게 유입되며 단지는 빠르게 중산층 주거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압구정의 개발 _ 현대가 만든 우리나라 최고의 부촌, 그 빛과 그림자 같은 시기, 한강에서는 또 하나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곳이 바로 압구정이다. 매립 이전의 압구정 일대 역시 한강 변을 따라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었고, 곳곳에는 배나무 과수원이 자리해 농경지로 활용되던 공간이었다. 사람이 상주하는 주거지는 거의 없었고, 그저 강변과 농경지가 이어지는 여유로운 농촌이었다. 이런 농촌 지역이 개발의 무대에 오르게 된 것은, 현대건설이 경부고속도로 공사 대금 일부를 현금 대신 한강 공유수면으로 받으면서부터였다. 현대건설은 처음에 압구정 일대의 공유수면을 ‘콘크리트 제품 공장부지 조성 및 강변도로 건설’을 명목으로 매립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실시계획인가 단계에서 매립 목적은 조용히 ‘택지 조성’으로 변경되었다. 현대는 매립권 확보 후 분양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용도 변경을 신청했고, 정부 역시 급격한 도시 팽창과 주택 수요 증가 속에서 택지 확보가 시급하다는 판단 아래 이를 승인한 것이다. 그 결과 산업시설용지로 계획되었던 매립지는 고급 아파트 단지로 개발 방향이 전환되었다. 현대건설은 매립 과정에서 성수대교와 동호대교 사이에 있던 작은 섬 ‘저자도’의 흙을 대량으로 퍼내 매립을 진행했다. 저자도는 결국 수몰됐고, 이렇게 조성된 인공 대지 위에 훗날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사실 정주영 회장은 처음에는 아파트 건설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지만, 당시 부장이던 이명박이 강력히 주장해 사업은 추진되었다. 정주영의 차남 정몽구가 한국도시개발 대표로 사업 총책을 맡았고, 현대건설은 압구정에 중대형 평형 중심의 고급 민영아파트 1,512가구를 짓는 계획을 세웠다. 정부는 허가 조건으로 이 중 952가구를 현대의 무주택 사원에게 우선 공급하고, 나머지 560가구만 일반 분양하도록 요구했다. 아파트 건설이 진행되는 동안 서울에는 아파트 투기 광풍이 불었고, 압구정 분양권에는 아파트 한 채 값에 가까운 프리미엄이 붙기 시작했다. 고위 공직자와 군 장성, 국회의원·법조인·기업인·언론인 등 각종 권력층에서 분양 청탁이 줄을 이었다. 결국 사원에게 돌아가야 할 952가구 중 실제로 사원에게 분배된 물량은 291가구뿐이었다. 600가구 이상이 권력층 인사 및 현대 임직원 친인척과 지인들에게 돌아가며 심각한 특혜 문제가 발생했다. 1977년 11월, 청와대에 특혜 의혹 투서가 접수되며 사건은 본격적으로 터졌다.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지만, 결과는 매우 미흡했다. 수백 명의 특혜 분양자 중 대부분은 처벌받지 않았고, 고위 공직자 56명은 단순 면직 등 경미한 조치에 그쳤으며, 정몽구 사장은 「건축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벌금 500만 원 선고유예를 받았다. 청와대가 수사에 직접 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고, 언론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는 사설을 내며 검찰을 비판했다. 결국 이 초대형 특혜 의혹은 큰 처벌 없이 사실상 종결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특혜 분양 사건은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상징성을 더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높은 사람들이 사는 곳’, ‘권력층이 선택한 아파트’라는 사회적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압구정 현대는 한국 고급 아파트의 원형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압구정은 처음부터 43평형·54평형·65평형·80평형 등 중대형 중심의 민영 아파트로 설계되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고급 주거 상품’이었다. 한강 조망과 강남의 중심 입지까지 더해지면서 압구정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입지로 지금까지 인정받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부촌, 그리고 미래의 부촌 동부이촌동·반포·압구정 등 세 지역은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부촌이자, 서울 부동산 시장의 축을 형성하는 상징적 공간들이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시기와 방식으로 발전했지만, 그 형성 과정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존재한다. 한강을 끼고 형성된 강력한 입지 프리미엄을 바탕으로 국가와 건설사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계획적 개발을 통해 조성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각 시대를 대표하는 ‘최초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곳으로서 상징성과 브랜드가치를 오랜 시간 쌓아왔고, 지금은 재건축을 통해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 역시 공통점이다. 그렇다면 이들 세 지역은 앞으로도 한국 최고 부촌의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 지위는 흔들리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한강이라는 절대적 입지 자산은 다른 지역이 쉽게 대체할 수 없는 희소성을 지니고 있고, 이곳들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브랜드 자산 역시 학군과 교통을 넘어 사회적 지위와 선택의 상징으로 군림하고 있다. 여기에 재건축이 본격화되면 이들 지역의 주거 품질은 한 단계 더 높아질 것이고, 이는 곧 부촌으로서의 위상을 한층 더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위험한 과학책(10주년 기념판) (랜들 먼로 지음, 이지연·장연재 옮김, 시공사 펴냄, 420쪽, 2만 5,000원) 세계적 밀리언셀러 ‘위험한 과학책’이 더욱 풍성한 유머와 최신 정보로 10년 만에 돌아왔다. 이 책은 NASA 출신 웹툰 작가가 독자들에게 받은 기상천외한 질문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검증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미분 방정식, 기밀 해제된 군사 문건까지 동원해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해결한다. 이번 10주년 기념판에는 기존 내용의 수정·보강은 물론, 한국 독자를 위한 특별 서문과 사인, 보너스 페이지가 수록됐다. 공짜로는 알 수 없는 아들 설계 비법 0~12세 (김준수 지음, 여의도책방 펴냄, 204쪽, 1만 7,500원) 10년 동안 축구 클럽과 학교에서 2,000여 명의 아이들을 밀착 지도한 ‘아들 특화’ 스포츠 심리 코치가 소개하는 아들 양육법. 스마트폰 중독을 막는 도파민 관리법, 평생 건강을 좌우하는 식습관과 운동 루틴, 그리고 자존감을 높이는 칭찬의 기술까지 바로 실천 가능한 매뉴얼을 담았다. 특히 AI 시대의 핵심 경쟁력으로 ‘자기조절력’과 ‘관계력’을 꼽으며, 이를 길러주기 위한 부모의 역할을 강조한다. 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 (최은정 지음, 갈매나무 펴냄, 312쪽, 2만 1,000원) 민간 기업과 우주 선진국들이 주도하는 무한 경쟁 속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룬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우주 쓰레기로 인한 충돌 위험, 위성 요격과 전파 방해 같은 우주 무기화, 그리고 궤도 독점에 따른 ‘우주 불평등’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과학적 사실을 넘어 우주 안보와 윤리,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고민도 살펴볼 수 있다. 중등 지리 수업 설계 가이드 (열정지리교사모임 지음, 푸른길 펴냄, 380쪽, 3만 원) 살아있는 지리수업을 고민하는 교사들을 위해 수업 디자인 방법을 소개한다.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질문과 패들렛, 실시간 항공기 추적 등 디지털 에듀테크 도구를 활용한 다양한 탐구활동 아이디어를 담았다. 수업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학생들의 역량과 성장을 학교생활기록부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기록과 연결하는 구체적인 방법도 알려준다. 자라느라 애쓰는 10대를 위한 마음챙김 (심윤정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152쪽, 1만 6,700원) 29년 차 중학교 교사이자 마음챙김 전문가인 저자가 성장통을 겪는 청소년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명상 처방전. 학업 스트레스부터 친구 관계,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10대들이 실제로 겪는 고민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각 상황에 맞춰 5분 안에 할 수 있는 짧고 쉬운 명상법을 제시하며,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는 구체적인 기술을 알려준다. 저자의 육성 가이드를 연결하는 QR코드가 들어있다. 예습과 복습의 과학 (시노가야 게이타 지음, 권정애 옮김, 또 다른 우주 펴냄, 244쪽, 1만 7,800원) “도쿄대에 떨어지고 나서야 공부법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뼈아픈 실패를 바탕으로 학습심리학자가 된 저자가 인지심리학 이론을 집대성해 쓴 공부 전략서다. 저자는 예습과 복습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설계된 ‘정보 처리 과정’임을 강조하며, 사전 지식을 활용해 새로운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드는 ‘정교화’ 전략과 지식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조직화’ 전략 등을 소개한다. 학교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세계와 지리 2026 (내셔널지오그래픽 키즈·세계와 지리 연구팀 지음, 비룡소 펴냄, 224쪽, 2만 8,000원) 초등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세계 지리 교양서. 생생한 고화질 사진 500여 컷과 최신 세계 정보를 한 권에 담았다. 대륙별 자연과 역사, 문화뿐 아니라 챗GPT의 지브리 스타일 그림, 매운 음식의 날 같은 흥미로운 토픽도 소개한다. 특히 2026년 판에는 경복궁, 석굴암, 비무장 지대, 한국형 달 탐사선 등 우리나라의 역사와 최신 기술을 집중 조명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출동! 황금 망토 구하랑 (황선애 글, 김민우 그림, 스푼북 펴냄, 80쪽, 1만 4,000원) 택배 기사인 부모님을 둔 주인공 구하랑의 당찬 질문에서 시작되는 창작 동화다. 추리극 형식을 빌려 ‘직업의 귀천’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명랑하게 풀어낸다. 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이모를 축하하는 파티에서 하랑이는 부모님이 택배 기사가 되었을 때는 왜 축하 파티를 하지 않았는지 의문을 품는다. 그러던 어느 날, 사라진 동네 길고양이를 찾는 과정에서 모든 직업이 퍼즐 조각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회 전반에 혐오가 넘쳐난다. 인터넷에서는 ‘젊은 척하는 영포티’, ‘라도인임? 긁혔나 보네?’, ‘이러니까 맘충소리 듣는 거임’, ‘딸피· 틀발진쉴 새 없이 사고 치는 노인’, ‘딸배거지극혐, 나만 그럼?’, ‘너네 아빠 200충? 300충?’등 특정 집단을 향한 조롱과 혐오가 담긴 영상이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익명 게시판에는 하루에도 수천 개씩 댓글이 달린다. ‘여자 혹은 남자라서’, ‘어리거나 젊거나, 나이가 많아서’,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기득권 세대여서’, ‘키가 작아서’. ‘내가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국적이 달라서’, ‘특정 직업·지역이라서’, ‘정치 성향이 달라서’…. 이유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내가 속하지 않은 누군가(혹은 집단)’를 향해 불편함·분노·적대감을 서슴없이 표현하며, 서로 헐뜯고 조롱하고 비난한다. 우리는 ‘혐오가 일상화된 사회’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토록 서로를 죽도록 미워하게 되었을까? 왜 혐오 표현을 즐기는 걸까? 혐오는 어디에서 자라고, 어떻게 전염되며, 무엇을 먹고 커지는 걸까? 이번 호와 다음 호에서는 밈과 신조어 속에 숨겨진 혐오의 심리학을 통해 혐오 표현의 기원, 확산 메커니즘, 특히 혐오 문화에 취약한 우리나라의 특징 등을 살펴본다. ‘웃자고 한 말인데, 왜 그래?’ _ ‘재미’로 포장된 혐오 우리 삶에 깊숙이 스며든 혐오는 더 이상 폭력적이지 않다. 차별적·모욕적 단어들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던 과거와는 다르게 밈·신조어로 유머러스하게 포장되어 죄의식 없이, 때로는 ‘함께 즐기는 놀이’로 가볍고 자연스럽게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혐오 표현이 밈·신조어와 결합하는 순간, 파급력은 커진다. ‘짧고 강렬한 메시지’는 즉각적인 공감을 얻으며 SNS를 통해 빠르게 퍼지고, ‘좋아요’와 ‘공유’를 먹으며 확산된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외모·출신·가정환경·국적·정체성이 다른 어떤 아이를 ‘우리와 다른 존재’로 취급한다. SNS에서 본 혐오 표현을 비판의식 없이 따라 하고, 단순한 농담이나 장난처럼 소비하며, 무의식적으로 혐오 메시지를 내면화한다. 아이들은 ‘그 속에 담긴 본질적 의미’를 모른 채 그저 ‘함께 즐기는 놀이’에 동조하며 웃고 즐긴다. ‘장난이었어요’, ‘그냥 웃자고 한 말이었는데’라는 말로 폭력성·차별성을 희석하면서 말이다. 간혹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거나 문제를 제기하면 ‘진지충이냐’는 또 다른 조롱이 따라온다. 이처럼 혐오는 ‘누구와 함께하고, 누구를 배제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강력한 도구로 사용된다. 특정 집단(소수자·약자 등)을 ‘그들(Out-group)’로 규정하고, 비하하고, 낙인찍음으로써 ‘우리(In-group)’는 저들과 다르다는 경계를 명확히 하고 결속을 다지게 한다. 편 먹고 차별하거나 공격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혐오는 감정이 아니라 메커니즘의 문제이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혐오 표현을 쓰지 말자’라는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혐오의 심리를 이해하고, 그 감정이 어떻게 왜곡되고 편향되는지 분석하며, 혐오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고민하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그걸 먹으면 죽는다’ _ 최초의 생존 감정으로서의 혐오 심리학에서 ‘혐오’는 단순한 ‘싫음’이나 ‘불쾌감’과 다른, 매우 독특한 정서로 분류된다. 혐오는 인간이 진화하면서 가장 먼저 획득한 감정 중 하나였다. 수천 년 동안 백신·항생제 없이 살아온 인류에게 부패한 고기나 오염된 물처럼 먹으면 안 되는 것, 곰팡이·배설물·사체처럼 병을 유발할 수 있는 오염물, 독이나 기생충 등은 치명적 위험이었다. 뇌는 이런 위험을 감지하면 즉각 신호를 보냈고, 우리는 얼굴을 찡그리거나 고개를 돌리고 뒤로 물러서며 구토 반응을 일으켰다. 즉각적으로 반응할수록 생존 확률은 높아졌고, 결국 혐오를 잘 느낄수록 오래 살아남았다. 이처럼 초기 혐오는 ‘목숨과 직결된’ 매우 직관적이고, 본능적이며, 생물학적인 정서였다. 결국 혐오는 생존을 위해 잘 기능해야 했던 ‘뇌의 경보 시스템’이자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장치’였던 셈이다. 문제는 세대를 통과하며 진화한 혐오가 이제 오염물뿐만 아니라 사람에게까지 적용한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보며 ‘더럽다’, ‘이상하다’, ‘불쾌하다’라고 느끼는 순간, 뇌는 부패한 오염물에 쓰던 회피 반응을 그대로 사람에게 적용한다. 즉, 인간의 뇌는 타인을 ‘물리적 오염물’처럼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염물로 인식된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더럽고 불쾌한 대상일 뿐이다. 따라서 공격·조롱·차별하는 것은 우리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일이라고 여긴다. 즉 혐오가 사람에게 적용될 때는 불쾌한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도덕적 판단을 동반한 혐오로 변환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확장된 혐오’라고 부른다. ‘한 번 더럽혀진 것은 영원히 더럽다’ _ 폴 로진의 ‘혐오의 도덕화’ 혐오 연구의 대표 학자인 폴 로진(Paul Rozin)은 혐오가 어떻게 사회적·도덕적 영역으로 확장되었는지 분석한 인물이다. 로진에 따르면 생물학적 혐오(부패·오염 회피)는 시간이 흐르면서 특정 행동·규범·집단을 ‘더럽다·추하다·타락했다’로 판단하는 도덕적 혐오로 변화했다. 그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 반응은 ‘입에서 뱉어내자’에서 출발해 ‘마음(심장) 심지어 영혼에서 꺼내버리고 싶다’로 이어진다. 로진은 혐오를 ‘오염’으로 설명한다. 가장 유명한 실험은 ‘바퀴벌레 물컵 실험’이다. 깨끗한 물 한 컵에 바퀴벌레를 살짝 담갔다가 뺀 후, 물을 끓여 완전히 소독하고 여과해서 실험자들에게 제시했다. 완전히 무균이며, 위험 요소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 누구도 물을 마시지 않았다. 한 번 더럽다고 느끼면 그것은 영원히 더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오염 심리’와 혐오 대상과 잠깐만 스치더라도 전체가 오염되었다고 판단하는 ‘접촉 금기 현상’ 때문이다. ‘오염 심리’와 ‘접촉 금기 현상’은 도덕적·사회적 혐오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정 집단이 ‘오염된 존재’로 분류되면, 개인이 아닌 ‘집단 전체’가 낙인찍힌다. ‘우리는 깨끗하고, 저들은 더럽다’는 인식이 강화되면서 차별·적대·혐오 표현이 정당화된다. 로진의 ‘바퀴벌레 물컵 실험’은 혐오가 물리적 사실이 아니라 심리적 ‘낙인’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아무리 논리적·위생적으로 오염이 제거되었음을 알아도 ‘더럽다’는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혐오 반응은 논리·이성·과학적 설명을 이기지 못한다. ‘저 집단 때문에 피해를 봤어, 저들은 틀렸어, 저들은 추하고 더러워, 저런 사람들과 섞이면 안 돼’ 등 극단적으로 비논리적이고, 고집스럽고, 폐쇄적이며, 갈등을 쉽게 해결하지 못하게 만든다. 뇌과학으로 본 혐오 _ 혐오의 본부는 ‘섬엽’ 우리 뇌는 여전히 더럽고, 추하고, 위험한 것을 보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뒷걸음쳐 멀리 도망가고, 구토하여 입 밖으로 내뱉는다. 직관적이고, 즉각적이며, 본능적이다. 원시 시대의 생존 전략을 지금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혐오를 담당하는 뇌 부위는 섬엽(insula)이다. 섬엽은 구토감·역겨움·신체적 거부감과 관련된 원초적 감정을 처리한다. 혐오 상황이 오면 뇌는 섬엽을 활성화하여 ‘위험해! 가까이하지 마!’라는 신호를 보내, 몸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혐오는 생존과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시는 이런 거 먹지 말자. 근처에도 가지 말자’라며 학습을 강화했다. 오랫동안 기억해야 했으므로 ‘기억 강화 효과’는 강력했고, 그 결과 혐오는 감정 중에서도 가장 각인되기 쉬웠다. 혐오가 사회적·도덕적 혐오로 확장되면서 섬엽 역시 사회의 ‘도덕적 질서’에도 관여하기 시작했다. 섬엽은 ‘사회적 혐오’를 느낄 때도 ‘오염된 음식’을 보았을 때처럼 처리한다. ‘더럽다 → 위험할 수 있다 → 피하자’라는 신체적 혐오와 ‘저 사람은 부정한(오염된) 사람이다 → 우리 공동체에 위험하다 → 거리를 두자’라는 도덕적 혐오의 패턴은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혐오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뇌 수준에서 ‘진짜 혐오’였던 것이다. 즉 인간의 뇌는 물리적 오염과 도덕적 오염을 동일한 네트워크로 처리한다. 이 때문에 혐오는 강력하며, 한 번 굳어지면 쉽게 변하지 않는다. 도덕적 분노가 만들어낸 ‘정당한 혐오’ _ 하이트의 신성-오염 가치체계 도덕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는 ‘한 방울의 오염은 전체를 망친다’는 로진의 오염 원리를 ‘도덕적 오염’으로 확장하여 정치·윤리·규범에 적용했다. 그는 오염을 회피하려는 생물학적 본능(혐오 감정)이 도덕의 기초라고 본다. 혐오라는 감정은 원래 기생충과 독소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진화했지만, 이제는 ‘도덕적 순수함(신성)’을 지키고 판단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하이트는 바른 마음: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에서 ‘신성-오염 가치체계’를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어떤 행동이 더럽다고 느껴진다면, 사람들은 그것이 도덕적으로도 틀렸다고 믿게 된다. 조너던 하이트, 바른 마음(2012), p. 80 부정부패한 사람을 보며 “썩었다”라고 말하고, 아동학대·폭력·배신·착취를 보며 역겨움이 올라오는 것이 바로 ‘신성-오염 가치’이다. 하이트는 도덕 판단이 대부분 직관적이라고 보았다. 혐오(위생·성적·문화적·도덕적)를 느끼는 순간 섬엽이 자동적으로 활성화되고, ‘도덕적으로 틀렸다’는 판단을 즉각적으로 일으키며, 혐오 감정이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 자동성 때문에 혐오는 통제하기 어렵고, 사회 갈등은 장기화된다. 결국 누군가를 혐오하는 과정은 논리보다 ‘직관’이 먼저 작동한다. 그래서 혐오는 이성적 설명이나 교육적 설득으로 쉽게 꺼지지 않는다. ‘바퀴벌레 물컵 실험’이 보여주듯, 한 번 형성된 혐오는 대상에 대한 평가 전체를 오염시키며, 관계의 회복 가능성마저 길게 잠식한다. 오늘 한국 사회가 세대·성별·정치·집단 간 갈등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한 번 생긴 균열이 좀처럼 봉합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음 호에서는 이 원초적 감정에 인터넷과 SNS가 어떻게 기름을 붓는지, 왜 한국 사회가 유난히 혐오에 취약한 구조를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아이들을 혐오의 확산과 회오리로부터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깊이 살펴본다.
최근 서이초 사태 이후 교육계에서는 학교에서의 학부모 정체성과 역할이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학부모의 학교교육 참여(이하 학부모 교육 참여)는 가정·교육 환경의 변화, 학부모와 학교 간 양방향 소통의 필요성 증대, 교육공동체 구성원 간 협력 요구에 따라 점차 강조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 학부모 교육 참여 논의는 ‘5.31 교육개혁’을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5.31 교육개혁’은 YS 정권이 당시 사회적 요구와 국제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교육의 구조 전환을 도모하고자 추진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교육개혁 중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이 개혁은 학교 자율화를 명분으로 교육 수요자인 학부모 교육 참여 확대를 위해 학교운영위원회 제도(이하 학운위)를 도입하였다. 그 결과 학교에서의 학부모 역할과 관심이 확대되었다. 이후 MB 정권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였다. 이때 수요자 정책으로 학부모 전담 부서를 교육부에 설치하였다. 이를 계기로 학부모 교육 참여는 한층 활발해졌다. 학부모 교육 참여를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부정적 시각이다. 이 시각은 학부모 교육 참여를 이른바 ‘치맛바람’이라 칭하며, 일부 여유 있는 학부모가 내 자녀만을 위해 학교에 출입하는 것으로 본다. 이것은 현재까지 학부모 교육 참여를 막는 주요 장애 요인이다. 둘째, 긍정적 시각이다. 이 시각은 학부모 교육 참여를 학교 발전과 교육력 제고를 위한 활동으로 본다. 이런 인식은 그 역사가 길지 않으며 교실 붕괴 이후 일부 학부모 중심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교육은 국가 주도의 중앙집권적, 폐쇄적 입시 위주 체제로 운영되어왔다. 그 결과 공교육에 대한 학생·학부모의 불안과 우려가 커져 왔다. 공교육을 제대로 복원하려면 학교·가정·지역사회가 함께 학생의 성장과 배움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와 학부모 간 신뢰를 회복하는 ‘올바른 학부모 교육 참여’가 필수적이다. 학부모의 학교교육 참여 이해 ● 학부모의 학교교육 참여 정의 학부모 교육 참여에 대한 정의는 학자마다 다르다. 용어만 보아도 학부모의 학교교육 참여, 학부모의 학교 운영 참여, 학부모의 학교 참여, 학부모의 교육적 관여 등 다양하다. 대표적인 정의를 살펴보면, 서현석은 학부모 교육 참여를 학부모가 교육활동의 동반자로서 학교와 유대 관계를 이루며, 의사소통을 통해 협력·지원·자문·조언하고, 나아가 학교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에 반해 류방란은 학부모의 학교 참여를 활동·조직·역량강화(교육) 3가지 차원으로 세분화하였다. 활동 차원은 학교 경영, 교육활동, 지원 활동, 소통 등 학교 운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직 차원은 학부모 학교 참여의 행위나 활동 그리고 그것의 기반이 되는 조직을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역량 강화 차원은 학부모 교육 등을 통해 가정 및 학교 기반 참여에 필요한 역량을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글에서는 학부모 교육 참여를 학교교육과 운영 전반에 대해 학부모가 학교교육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학교와 소통·협력하며 학교교육을 지원하고, 학생인 자녀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도모하는 것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 학부모의 학교교육 참여 방법 학부모 교육 참여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여기서는 세 가지 차원으로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개인적 차원의 참여다. 가정에서 자녀 학습을 지도하고, 학부모 대상 수업 공개에 참여하며, 학교 정보공시를 활용하는 것 등이 해당한다. 구체적으로는 학교 숙제 및 독서 지도와 함께 가정통신문·성적표·온라인상담 등을 통해 학교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활동을 말한다. 둘째, 학부모 단체를 통한 참여이다. 학부모총회, 학년·학급 학부모회, 기능별 학부모 모임(녹색어머니회·급식모니터단, 책 읽어주기 봉사단 등)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셋째, 학교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방법이 있다. 학운위 등에 참여하여 학교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 학부모의 학교교육 참여 문제점 •학부모의 과소 참여 문제 학부모 교육 참여에서 과소 참여의 문제는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참여 기회의 불균형이다. 맞벌이 가정, 소외계층의 경우 시간 제약으로 학부모 연수, 학운위, 학부모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렵다. 특히 학부모 단체 운영이 임원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일반 학부모의 참여 기회가 제한적이다. 둘째, 역할 인식 및 역량의 한계이다. 학부모를 여전히 교육 보조자로만 인식하거나, 학부모의 역량 강화가 미흡해 학교와의 파트너십 구축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셋째, 소통의 문제이다. 최근 서이초 사태나 체험활동 중 발생한 안전사고 등으로 교사와 학부모 간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학부모 참여를 가로막는 장애가 되고 있다. 넷째, 정책적 소외 발생이다. 학교 정책 결정 과정에서 학부모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으면서 학교 운영의 투명성과 신뢰성이 저하될 수 있다. •학부모 과잉 참여의 문제 학부모 교육 참여에서 나타나는 과잉 참여의 문제는 과거부터 존재해 왔으나 최근 사회의 병리 현상과 맞물리며 심각하다. 일부 학부모의 과도한 개입은 적절한 교육 참여 수준을 넘어 학교 운영과 학급 경영에 큰 혼란을 주고 있다. 이는 학부모 교육 참여가 ‘독’인 경우다. 학교장들은 과거와는 달라진 학생과 교직원만을 상대하기에도 벅차다. 그런데 학부모들의 과잉 요구와 민원, 병적인 학부모들을 응대하느라 너무 힘들다. 많은 학교장은 이런 부담을 극복하지 못하고 퇴직하거나 퇴직을 심각하게 고민한다. 그러나 학교장이 학부모를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학부모 교육 참여와 학교 교육력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기에 학교장들의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다. 학교 공동체 갈등 해소를 위한 학부모의 학교교육 참여 방안 ● 학교 공동체 구성원의 의식 전환 •학교 재영토화 필요 _ 학교 완결주의 극복 서이초 사태 이후 학부모 교육 참여를 둘러싼 학부모와 교사 간의 갈등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다. 이것은 ‘학교 완결주의’의 해체 과정에서 발생하는 당연한 성장통이다. 교사 전문성과 권위를 기반으로 했던 과거의 학교는 사교육의 득세와 학교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도입된 각종 제도의 심화로 인해 무너졌다. 이제 학교는 교사와 학생만의 영토가 아니라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재영토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철학적 배경으로 유네스코는 교육을 ‘공공재(public goods)’를 넘어 ‘공동재(common goods)’로 규정했다. 이제 공동재로서 교육은 모든 사회 구성원이 함께 만들고 함께 책임지는 것을 의미한다.4 이는 교육 주체가 다중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학교는 더 이상 교직원이 모든 것을 독점하여 결정하는 공간이 아니며, 학교 공동체 구성원 간 협력적 관계를 전제로 하는 곳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학교 공동체 구성원의 공존의식 회복 지금 학교 공동체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구성원들의 공존의식을 회복하는 일이다. 즉 사람을 통합시켜야만 한다. 공존은 제도화된 신뢰이며, 완벽한 일치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감내하며 관계를 지속시키는 의지 위에 세워진다. 즉 공존은 완벽한 하나 됨이 아닌 불완전함을 견디는 인내다. 학교 공동체가 지속가능한 공존을 위해서는 벽을 세우지 말고, 소통해야 한다. 갈등이 있더라도 대화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는 절제와 일관성이 요구된다. 성과를 과장하기보다 조용한 성과를 축적하는 문화, 학교 공동체 구성원 간 합의와 공감을 중시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공존은 전략이기 이전에 조직의 문화이며, 서로 다른 의견을 포용하는 내부의 연습이 있어야 외부와의 협력도 가능하다. •학교 공동체 구성원의 공존의식 회복, 그 출발은 교사 전문성 확보 공존의 출발점은 나의 생존이며, 생존은 스스로 지키는 힘에서 온다. 교사의 생존은 전문성에서 출발한다. 고로 전문성이 없는 공존은 공허하다. 또한 공존을 위해서는 일시적 감정 극복도 필수다. 학부모와 담을 쌓는 방식은 일시적이고, 감정 해소에 그칠 뿐이며, 지속성도 없다. 반면에 원칙은 지루하지만, 오래간다. 공존을 위해서는 철학의 확립과 행동 양식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 가장 중요한 원칙은 교사의 전문성 확립과 확보이다. ● 학부모 단체의 활용 건강한 학부모 교육 참여는 다수 학자가 주장한 바처럼 교육에 ‘약’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하면, 첫째, 학운위나 학부모회 등 정기모임을 활용하는 것이다. 학운위 회의 외에도 1학기에 2회 이상 학부모 정기모임을 통해 민원과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해 함께 논의한다. 이렇게 하면 간단한 민원은 학운위, 학부모 정기모임과 수시 소통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둘째, 학교와 학부모 간의 소통 창구로서 학부모회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미국 뉴욕주의 경우 유급 학부모 코디네이터 제도를 두어 학부모와 학교 간 의사소통을 도와 상당한 효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우선 실현 가능한 방안으로는 매년 반복되는 질문, 개인적 차원의 일상적 민원은 학부모 대상 연수 자료로 안내하거나 학부모회가 자체적으로 답변을 한다. 다만 학교 발전에 필요한 의견이나 학부모회에서 자체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만 학교에 정식 안건으로 제안하도록 하는 것이다. 셋째, 학부모 단체 활동이 ‘부모도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 되게 하는 것이다. 독서교육이나 지속가능성 교육 등 다양한 분과 활동을 통해 학부모가 학교교육과 만나고 공동체 역량을 키워나가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중 역량 강화(dual capacity-building) 프레임워크’을 실시하여 교사와 학부모 역량을 함께 강화하고 있으며,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최근 서이초 사태 이후 한국 사회는 교사에게는 지식노동자와 함께 감정노동자로서의 역할을, 교장에게는 감정노동자와 더불어 생각노동자로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학교장에게 학부모 교육 참여를 슬기롭게 이끌어낼 수 있는 지혜를 요구한다.
서울 광진구의 작은 학교, 양남초등학교가 달라지고 있다. 전교생 120명에 불과했던 학교는 최근 아파트 입주와 함께 186명으로 늘었고, ‘없어질 학교’라는 오명을 벗고 지역에서 주목받는 학교로 변모하는 중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지난해 9월 공모로 부임한 유태호 교장이 있다. 그는 “학생·학부모·교사가 모두 행복하게 성장하는 학교”를 비전으로 내걸고, 1년여 동안 소통·수업혁신·학생지원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정비해 왔다. 매월 열리는 ‘학부모 간담회’ … 민원은 줄고 신뢰는 높아져 부임 직후 유 교장이 마주한 것은 “학교가 빨리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학부모들의 기대와 요구였다.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별관 신축 문제, 낡은 학교시설, 예산 부족 등의 현안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엔 학부모 요구가 정말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시한 학교 비전인 ‘슬기로운 행복 성장’과 ‘학생·학부모·교사가 함께 성장하는 학교’를 실현하려면 우선 학부모 목소리를 충분히 듣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어요.” 그가 선택한 방식은 매월 한 번, 꾸준한 학부모 간담회였다. 단순히 학교 구성원만 참여하는 자리가 아니라, 지역 시의원·구청장·국회의원까지 초청해 논의의 폭을 넓혔다. 여당 의원을 부르면 다음 달엔 야당 의원을 초대하는 식으로 정치적 균형도 맞췄다. 작은 학교임에도 지역 정치권이 직접 와서 의견을 들으니, 학부모들의 목소리는 학교 울타리에만 머물지 않고 지역사회로 발산되기 시작했다. 학교 내부적으로는 SNS 등을 통해 학부모와 일대일 소통에 더욱 힘을 쏟았다. 기존 종이 가정통신문은 확인율이 낮고 전달력이 떨어졌다. 유 교장은 학교가 무엇을 하는지 학부모들에게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어 디지털화를 추진했다. 첫째는 노션 기반 온라인 소식지다. 각 부서 담당교사가 공동 작업으로 월간 소식지를 제작하고, 학부모는 링크로 손쉽게 확인한다. 인쇄·배포 절차가 사라져 업무 효율도 크게 올랐다. 둘째는 학교 공식 인스타그램 ‘yangnam_es’ 개설이다. 아이들 활동과 시설 변화 등을 꾸준히 올리자, 게시물에 따라 1,800회가 넘는 조회 수가 나오기도 한다. 학부모들이 사생활 노출을 우려해 ‘좋아요’는 적게 누르지만, 조회수는 꾸준히 높다는 것이 유 교장의 설명이다. “인스타가 처음엔 귀찮을 줄 알았는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학부모에게 바로 전할 수 있어 좋더라고요. ‘우리 아이들이 이런 활동을 했다’고 바로 보여드릴 수 있으니까요.” 이 같은 디지털 소통 강화로 학부모들과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졌고, 민원은 자연스럽게 줄었다. ‘PBS 프로그램’으로 학생 행동 변화 … “200만 원으로 학교가 달라졌다” 양남초 혁신의 또 다른 축은 PBS(긍정적 행동 지원) 프로그램이다. 원래 특수교육 분야에서 발전한 이 프로그램을 전교생이 참여하는 모델로 확대한 것이 특징이다. 아이들은 학교 규칙을 스스로 정하고, 이를 지키면 포인트를 받는다. 포인트는 분기별 ‘양남 마켓’에서 문구류·사탕 등 소소하지만 다양한 물건으로 교환할 수 있다. 연말엔 간식차를 불러 전교생에게 간식을 제공한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대표적인 변화는 등교 시간이다. 작년만 해도 8시 45분 독서 시간이 되면 으레 늦게 오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올해는 대부분 제시간에 맞춰 온다. 독서벨이 울리면 학생들은 10쪽 독서 후 ‘문해력 노트’를 작성해 쉬는 시간에 교장실로 가져온다. 유 교장은 학생들에게 직접 도장을 찍어주며 간식을 건넨다. 처음엔 한두 명만 올 줄 알았는데 전교생의 30~40%가 참여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 과정은 교장-학생 간 교류의 기회를 크게 늘렸고, 아이들은 스스로 독서 시간을 챙기는 습관이 생겼다. 칭찬 스티커 한두 장과 간식 하나에 아이들이 달라질까 싶겠지만 사실이다. 유 교장은 “물질적 풍요를 떠나 학교에서 칭찬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이들은 행복해하더라”고 전했다. 이 성과는 서울교육청에서도 주목해, 양남초는 올해만 3차례 사례 발표를 진행했다. 병설유치원도 자발적으로 참여해 스티커 보상 활동을 함께 운영하며 자연스러운 이음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탐구 질문’ 기반 수업으로 … 새해 IB 학교에 도전할 생각 교육활동 분야에서 유 교장은 교사 자율성과 전문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핵심은 ‘탐구 질문’을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사고하게 하는 수업 구조 전환이다. 이를 위해 수석교사가 중심이 되어 교사 개별 컨설팅을 진행했다. ‘수업목표에 물음표만 붙이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던 교사들도 “수업 후 도달점 질문과 목표점 질문이 같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통해 수업설계를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양남초는 서울시교육청의 ‘질문이 있는 학교’ 선도학교에 선정되었다. 새해에는 관련 예산을 지원받고, 운영 성과에 따라 현판도 받는다. 유 교장은 “앞으로 IB 학교까지 도전해 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러한 변화는 교사들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거나 ‘톱다운 방식’이 아닌, 교사들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그의 경영 스타일과 맥을 같이한다. 그는 “교사들이 원하지 않는 걸 억지로 하면 몇몇 부장교사나 교감만 힘들어진다”며 “변화는 교사 스스로 이해할 때 시작된다”고 말했다.” 유 교장은 남은 임기 동안 꼭 이루고 싶은 것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우선 학교시설을 현대화하는 것이다. 현재 양남초는 오래된 건물을 새로 짓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한때 지역 주민들 사이에 시설이 낙후돼 ‘없어질 학교’라는 오해도 있었기에 어디 내놔도 남부럽지 않은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또 “디지털 AI 쪽 연수를 통해 교사들의 역량을 키우고, 이를 아이들 수업에 자연스럽게 접목시켜 ‘양남초 하면 시설 좋고 디지털 교육 잘하는 학교’로 소문나고 싶다”고 말했다. 유 교장은 서울 시내 초등 교장 중 최연소 교장이다. 만 46세에 교장에 올랐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가장 편안한 공간이어야 한다는 그는 아이들이 이곳에서 안전하게 실패해 볼 수 있는 공간, 그 실패를 기반으로 더 단단해지고 성장하는 기반이 되는 곳이 학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교의 비전 역시 ‘행복 성장’이다. “아이도, 학부모도, 교사도 학교 오는 것이 즐겁고, 이 공간을 통해 각자 나름의 행복을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학교의 모습입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의 작은 초등학교, 젊은 교장이 만들어내는 패기가 머지않아 수도 서울교육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에 충분해 보인다.
법률적 근거 _ 「교육공무원법」 제49조(고충처리) ① 교육공무원(공립대학에 근무하는 교육공무원은 제외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은 누구나 인사·조직·처우 등 각종 직무 조건과 그 밖의 신상 문제에 대하여 인사상담이나 고충의 심사를 청구할 수 있으며, 이를 이유로 불이익한 처분이나 대우를 받지 아니한다. 고충심사청구 사건 진행 경로 어떤 경우에 고충심사를 청구할 수 있나요? 1) 인사관리 관련 고충 - 승진·전직·전보 등 임용 관련 사항 - 근무성적평정·경력평정·교육훈련·복무 등 인사관리 사항 - 상훈·제안 등 업적 성취에 관한 사항 2) 근무조건 관련 고충 - 봉급·수당 등 보수 관련 사항 - 근무시간·휴식·휴가 등 근무조건 관련 사항 - 업무량 및 보건·위생 등 근무 환경 관련 사항 - 출산·육아·자녀교육 및 질병치료 등 후생복지 관련 사항 3) 직장 내 부적절한 행위로 인한 고충 -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의 성폭력 범죄 - 성희롱 등 부적절한 언행·신체적 접촉 - 위법·부당한 지시 또는 요구 -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직장 내 괴롭힘 - 성별·종교·연령 등에 따른 부당한 차별 선생님들의 QA Q. 고충심사청구 기간은 어떻게 되나요? A. 고충심사청구는 제기 기간의 제한이 없어, 교육공무원은 언제든지 고충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교육공무원 보통고충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하여 재심을 청구할 때는 ▲결정서를 통보받는 날부터 30일 이내, ▲그 결정서 사본과 재심 사유 등을 기재한 재심청구서를 교육부 중앙고충심사위원회에 제출해야 합니다. Q. 고충심사 결정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나요? A. 고충심사제도는 공무원으로서의 권익을 보장하고 적정한 근무 환경 조성을 위한 내부적·비쟁송 절차입니다. 따라서 고충심사 결정은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으로 보지 않으며, 이에 대한 불복을 이유로 행정소송을 직접 제기할 수 없습니다. Q. 고충심사청구서에 기재되어야 할 내용과 제출 방법은 어떻게 되나요? A. 1) 정해진 서식이 없으나, 다음 사항을 포함하여 작성해야 합니다. - 청구인의 성명·생년월일·주소, 소속기관명 및 직급 - 고충심사의 청구 취지와 이유 - 청구 내용을 뒷받침하는 증빙서류(해당되는 경우) 2) 교육공무원은 중앙고충심사 청구 전에 반드시 보통고충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보통고충심사는 관할 시·도교육감 소관이므로, 해당 교육청 민원실 또는 관련 부서에 청구서를 제출하면 됩니다. Q. 사립교원의 경우에는 고충심사 청구를 할 수 없나요? A. 사립학교 교원은 「교육공무원법」 제49조의 고충심사청구 대상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다문화·이주 배경 인구가 전체의 5%를 넘어섰다는 통계가 발표되었다. 이는 우리나라 인구 20명 중 1명은 본인 또는 부모 중 적어도 1명이 외국 국적을 가진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단순한 인구 구성의 변화가 아니라 한국 사회 운영의 기본 전제가 바뀌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특히 학교는 이 변화를 가장 앞서 받아들이는 공간이다. 교실 안의 낯선 언어와 문화는 더 이상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교육 체계는 단일한 언어와 문화를 중심에 두고 설계돼 있어,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은 대개 개인의 문제로 오해되곤 한다. 이제는 이를 개선해야 할 때가 되었다. 즉, 국가 차원의 다문화 교육정책을 전면 재정비해야 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째, 국가적인 표준 ‘한국어 교육 지원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현재 이주 배경 학생을 위한 한국어 교육은 학교, 지자체, 시민단체 등 여러 기관이 분절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학습 연속성이 떨어지고, 지원 대상·지원 수준의 형평성도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 입국 초기 한국어 집중 프로그램, 학교 내 학습언어 지원교사 배치, 학년·진학 단계별 언어 평가 및 상담 등 국가 표준 모델을 구축해 전국 공통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언어는 학습의 기초이자 정서적 안정의 핵심 요소이므로, 정교한 언어 지원은 단순한 보조 정책이 아니라 교육권 보장의 필수 기반이라 할 것이다. 둘째, 교원의 전문성 강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요건이다. 다문화 감수성, 제2 언어 습득, 문화 간 의사소통에 대한 이해 없이 교사는 교실 상황을 적절히 안내하기 어렵다. 예비 교원 양성 과정에서 ‘다문화·이주 배경 이해’ 과목을 필수화하고, 현장 교사를 대상으로는 실천 중심의 연수를 확대해야 한다. 또한 각 학교에 다문화·언어지원 전문 상담교사를 확충해 교사들의 부담을 분담하고, 학생 개별 사례에 적합한 전문적 개입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교사의 전문성 확보는 정책의 효과를 좌우하는 핵심 열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가정–학교–지역이 연결되는 교육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주 배경 가정은 교육 정보 접근이 어렵고, 언어적 장벽으로 인해 학교와의 소통이 제한되기 쉽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국어 학부모 안내 시스템, 지역 커뮤니티 기반의 학부모 역량 프로그램, 모국어 유지·계발 프로그램 등 가정을 교육 참여의 주체로 세우는 정책이 필요하다. 세계 여러 나라의 연구에서도 부모의 교육 참여는 학생의 학업 성취와 사회·정서 안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결국 학교 밖의 지원체계가 단단해지면 학교 안의 지원도 힘을 얻을 것이다. 넷째, 작은 교육 현장의 변화를 더욱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초등학생의 한 사례가 있다. 베트남 출신 어머니를 둔 초등학생이 발표 시간만 되면 고개를 숙이곤 했다. 서툰 억양을 흉내 내는 친구들의 장난이 반복되자, 그는 점차 말하기 자체를 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담임교사는 “한국어 실력이 부족해서”라고 설명했지만, 실제 문제는 서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실 문화였다. 이후 학교는 언어 다양성 교육을 강화하고, 학급에서 ‘다름을 듣는 법’을 배우는 시간을 마련했다. 그 학생은 서서히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기 시작했다. 이 작은 변화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교과서의 지식만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방법, 차이를 해석하는 태도라는 점에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교육은 ‘동화(同化)’가 아니라 ‘공존(共存) 능력’을 길러야 한다. 다문화·이주 배경 학생을 국가가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만 바라본다면 교육은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이들을 여러 언어와 문화, 다층적 정체성을 지닌 새로운 시대의 인재로 보아야 한다. 교육정책은 이 아이들이 자신의 뿌리를 숨기지 않고,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며,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주체적으로 성장할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이는 앞서 선진 다문화 국가에서 실행한 것처럼 이주 배경 학생들을 하나의 ‘용광로(melting pot)’ 안에 녹여 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 개개인의 특성과 개성을 장점으로 살릴 수 있는 ‘샐러드 보울(salad bowl)’로 만들어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주 배경 인구 5%를 상회하는 시대는 이미 우리 눈앞에 펼쳐진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는 이제 무엇보다 이주 배경 인구를 이방인으로 배척하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그들은 소중한 코리안 드림을 갖고 있으며 이 땅에서 당당하게 자신들의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 외국인 혐오 정서를 자극해 정파적 이익을 얻으려는 정치권은 특히 자중해야 한다. 이들은 국가적 저성장의 파고를 헤쳐갈 활력을 제공하는 소중한 인적 자산이 돨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은 이런 와중에 중요한 사명을 띠고 있다. 교육은 급변하는 사회를 조정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중요한 선택의 문 앞에 서 있다. 다름을 이유로 아이들을 위축시키는 사회가 될 것인가? 아니면 다양성을 힘으로 바꾸는 사회가 될 것인가? 그 선택은 결국 교육이 짊어져야 할 역할이자 소명이다. 교육이 흔들리지 않을 때, 우리 사회의 미래 역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굳건한 믿음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절실한 시대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한다.
다자녀 가정을 우선하는 고등학교 배정 기준이 서울에서 처음으로 도입된다. 형제·자매가 서로 다른 학교로 배정되며 발생해 온 통학과 돌봄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서울교육청은 후기 일반고 입학전형에 다자녀 우선 배정 제도를 전격 도입하기로 했다. 다만 배정 기준 조정이 평준화 체제 안에서 어느 수준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를 두고 형평성 논의도 함께 이어질 전망이다. 서울교육청은 5일 2027학년도 교육감 선발 후기 일반고 입학전형부터 다자녀 가정 학생을 대상으로 동일교 우선 배정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중학교 단계에서만 운영되던 다자녀 우선 배정 제도를 고등학교까지 확대한 것으로, 서울 지역 고교 배정 제도에서는 처음 도입되는 조치다. 적용 대상은 자녀가 셋 이상인 다자녀 가정으로, 둘째 자녀부터 형제·자매·남매가 이미 재학 중인 후기 일반고에 우선 배정된다. 서울교육청은 이번 제도가 ‘다자녀 우선’이라는 하나의 정책 틀 안에서 운영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형제·자매 동일학교 배정이 별도의 특례나 예외 규정이 아니라, 다자녀 가정 지원을 위한 우선 배정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첫째 자녀는 기존과 동일하게 일반 배정 절차를 적용받고, 둘째 이상 자녀부터 동일교 우선 배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적용 기준은 원서 접수일 현재 형제·자매·남매가 후기 일반고 1·2학년에 재학 중인 경우로 한정된다. 서울교육청은 그동안 후기 일반고 배정 과정에서 한 가정의 자녀들이 서로 다른 학교로 배정되며 통학 동선이 분산되고, 학교 행사·상담 일정이 겹치는 등 생활상의 부담이 크다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맞벌이 가정이나 돌봄 여건이 취약한 가정의 경우 이러한 부담이 더욱 크다는 점에서 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는 것이다. 중학교 단계에서는 이미 다자녀 우선 배정이 운영되고 있음에도 고등학교 진학 과정에서 제도가 단절되며 정책 연속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이번 조정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서울교육청은 저출생·학령인구 감소 상황에서 다자녀 가정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도 이번 제도 도입의 취지로 제시했다. 수도권 평준화 지역 가운데 서울이 선도적으로 다자녀 우선 배정을 고교까지 확대한 만큼, 향후 다른 시·도의 제도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배정 기준 조정에 따른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고교 배정이 추첨을 기본으로 하는 평준화 체제인 만큼, 다자녀 우선 배정 확대가 일부 학교에 대한 선호 집중이나 배정 결과의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다자녀가 아닌 가정의 경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 운영 과정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서울교육청은 다자녀 우선 배정이 전체 배정 인원 가운데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적용되는 만큼 배정의 공정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번 제도는 2027학년도 교육감 선발 후기 일반고 입학전형부터 적용되며, 구체적인 내용은 2026년 3월 말 공고 예정인 ‘2027학년도 서울특별시 고등학교 입학전형 기본계획’을 통해 안내될 예정이다. 서울교육청은 학부모와 학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안내 자료를 제작하고 설명을 강화할 방침이다.
정부는 3월부터 전국 초·중·고에서 학생맞춤통합지원(학맞통) 전면 시행에 나선다. 유아 무상교육 지원 대상은 기존 5세에서 4~5세로 확대된다. 초등학교 3학년에 방과후 프로그램 이용권이 도입되고, 초등 저학년 자녀의 예체능 학원비를 교육비 세액공제로 받을 수 있게 된다. 새해에 맞춰 발간된 정부의 ‘2026년부터 이렇게 달라집니다’ 안내에서 교육·보육 등 분야에 이와 같은 내용이 포함됐다. 이 책자에는 37개 정부기관(부·처·청·위원회)에서 취합한 정책 280건이 분야·시기·기관별로 구성됐다. ▲유아 무상교육·보육비 지원 대상 4세까지 확대 =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유아에 대한 무상교육·보육비 지원이 4~5세로 확대된다.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5세 대상 무상교육·보육비 지원을 시작했다. ▲학맞통 시행 = 3월부터 전국 초·중·고교에서 학맞통이 전면 시행된다. 학맞통은 기초학력미달, 심리·정서 불안, 경제적 어려움 등 복합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조기에 발견한 뒤 학습, 복지, 건강, 진로, 상담 등 다양한 영역에서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초등 3학년에 방과후 프로그램 이용권 도입 = 방과후 학교 참여를 희망하는 초등 3학년에게 ‘방과후 프로그램 이용권’(바우처 등)이 지급된다. 이 지원은 이후 6학년까지 순차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기존 초등 1·2학년 대상 맞춤형 프로그램(연중 2시간 무상)은 계속 지원된다. ▲초등 저학년 예체능 학원비 세제지원 = 현재 시행 중인 교육비 세액공제(15%) 대상에 만 9세 미만 초등 저학년 자녀의 예체능 학원비도 포함된다. ▲아동·청소년 온라인 성착취 선제 대응 시스템 운영 = 온라인상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이나 성착취 유인 행위를 자동으로 탐지해 신고하는 선제적 대응 시스템이 4월부터 운영된다. 인공지능 기반 딥페이크 이미지 탐지·추적·삭제지원 시스템이 도입된다.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자립수당 신설 = 성착취 피해를 본 아동·청소년이 피해자 지원시설을 퇴소한 후에도 안정적으로 자립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최대 12개월간 월 50만 원씩 자립 지원수당이 지원된다. ▲재외동포청년 인재 유치·정착지원 사업 시행 = 모국에 귀환한 동포 청년 인재들을 위해 학업·취업 정착 사업이 시행된다. 국내 학업을 희망하는 동포 대학(원)생에게 어학연수비, 등록금, 장학금 등을 지원하고 취업 희망 직업훈련생에게는 취업교육과 초기정착금 등을 제공된다. ▲취업 후 학자금대출 신청 대상 확대 = 대학(원)생의 ‘취업 후 상환 학자금대출’ 신청 대상이 확대된다. 학부생의 등록금 대출은 9구간 이하에서 전 구간으로, 대학원생의 등록금 대출은 4구간 이하에서 전 구간으로 각각 넓어진다. 대학원생의 생활비 대출도 기존 4구간 이하에서 6구간 이하로 변경된다. ▲자녀 수에 따라 보육수당 비과세 한도 확대 = 근로자 1인당 월 20만 원인 보육수당 비과세 한도가 자녀 1인당 월 20만 원으로 확대된다. ▲자녀 수에 따라 신용카드 등 소득공제 한도 확대 = 신용카드 등 소득공제 기본한도가 자녀당 50만 원(최대 100만 원)으로 상향된다. 단, 총급여 7000만 원 초과자는 자녀당 25만 원(최대 50만 원) 상향이다. ▲대학생 교육비 특별세액공제 소득요건 폐지 = 현재 시행 중인 본인과 부양가족의 교육비에 대한 15% 세액공제가 대학생 자녀의 아르바이트 소득으로 인해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도록 자녀의 소득요건을 폐지한다. ▲아이돌봄서비스 정부 지원 확대 = 맞벌이 등으로 아이를 돌보기 어려운 가정에 찾아가 돌봄을 제공하는 아이돌봄서비스 지원 대상이 기준 중위소득 200% 이하에서 250% 이하 가구로 확대된다. ▲한부모가족 아동양육비 지원 확대 = 한부모가족 아동양육비 등 복지 지원 대상이 기준 중위소득 64% 이하에서 65% 이하로 늘어난다. 추가 아동양육비는 기존 월 5만~10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생활보조금은 월 5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인상된다.
교육부와 한국장학재단은 5일부터 2026학년도 1학기 학자금대출 신청·접수를 받는다. 2026학년도 1학기 학자금대출은 학생 본인이 한국장학재단의 누리집(www.kosaf.go.kr) 또는 모바일 앱을 통해 신청할 수 있으며, 신청 기간은 등록금 대출과 생활비 대출(학기당 200만 원, 연간 400만 원) 모두 5월 20일까지다. 학자금대출 신청 시에는 심사 기간(약 8주)을 고려해 미리 신청해야 등록금 납부 기간 등 필요한 때에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다. 교육부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청년들의 학자금 마련 및 상환 부담을 낮추기 위해 2026학년도 1학기에도 학자금대출 금리를 1.7%로 동결한다. 등록금 대출은 2025년도와 동일하게 소요액 전액(대출제도 및 학제에 따라 개인 총 한도 있음)을 받을 수 있고, 생활비는 200만 원까지 가능하다. 취업 후 상환 학자금대출자 대상 이자 면제도 계속 시행되며, 대상은 기초·차상위·다자녀 및 학자금 지원 5구간 이하(2026년 7월부터는 6구간 이하로 확대)이다. 2026년 5월 12일부터는 자립지원 대상자도 이자면제 대상에 포함될 예정이다. 교육부는 재학 중 상환 부담없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2026학년도부터 취업 후 상환 학자금대출 지원 대상을 대폭 확대한다. 취업 후 상환 대출 중 등록금 대출은 소득요건 제한 폐지로 모든 대학생과 대학원생이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등록금 대출을 신청할 수 있다. 생활비 대출은 학자금 지원 8구간 이하 대학생, 학자금 지원 6구간 이하 대학원생의 안정적인 생활과 학업을 지원한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대출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신청 기간 내에 꼭 신청해 혜택을 받기 바라며, 앞으로도 청년들이 도움이 된다고 체감할 수 있는 학자금 지원 방안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교학점제는 취지보다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그러나 점차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커지고 있으며, 현장은 이미 붕괴를 우려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충분한 논의 없이 발표한 국교위 최근 교원 3단체 설문에서 고1 교사의 90% 이상이 최소성취수준보장지도(최성보)에 대해 효과가 없거나 반대한다고 응답했고, 학생·학부모 설문에서도 부정적 인식이 70%를 넘었다. 이는 일부 교사의 불만이 아니라, 운영 전반에 대한 현장의 분명한 경고다. 전국 17개 시·도 중 10곳 이상이 최성보 유예 또는 폐지를 요구했지만, 교육부는 출석률과 학업성취율을 함께 적용하는 ‘교육부 1안’을 고수했다. 더 큰 문제는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다. 국교위는 행정예고안에 대한 국교위원의 충분한 논의 없이 교육부 1안을 사실상 그대로 확정·권고했다. 현장 교원 국교위원들이 출석률만 반영하는 ‘교육부 2안’에 대한 재논의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교사·학생·학부모가 학업성취율 이수 기준에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선, ‘개근을 해도 성적에 따라 유급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 고교는 의무교육의 연장선에 가깝고,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의 졸업 기준은 출석일수다. 학업성취율을 졸업 요건에 포함할 경우 갈등과 민원은 학교와 교사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해외 주요 국가들도 무학년제를 전제로 하여 보다 유연한 학사 운영을 하고 있다. 둘째, 고교학점제의 본질적 핵심은 책임교육이 아니라 학생 과목 선택권 확대다. 미이수제와 최성보가 중심 이슈에 놓이면서 불필요한 소모전만 키우고 있다. 이는 초·중학교에서 누적된 학습 결손을 고교 교사 개인에게 전가하는 구조다. 기초학력에 대한 책임교육은 개인의 헌신이 아니라 제도적 시스템으로 접근해야 한다. 셋째,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최성보는 부작용만 낳고 있다. 1% 미만의 미이수자를 만들기 위해 평가 왜곡과 행정업무 폭증, 학생 낙인이 발생하고 있으며, 형식적인 보충지도는 학습 보장과 거리가 멀다. 가장 바쁜 시기인 3월에 미이수로 예상되는 학생을 선별해 예방지도를 해야 하는데 학생들은 이 순간부터 낙인으로 인식하고, 교사들도 학생 선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교중심에 둔 결단 필요해 결론은 명확하다. 현행 졸업 이수 기준에서는 학업성취율을 제외하고 출석률만 적용하는 것이 고교학점제 안착을 위한 현실적인 해법이다. 더 나아가 현장은 1% 미이수자보다, 99% 학생의 진로를 좌우할 선택과목과 전문교과의 성취평가제(절대평가) 전환을 더욱 요구하고 있다. 이는 고교학점제의 취지에도 부합한다. 이러한 현장성 있는 정책을 빠르게 추진하고 적용하는 교육부와 국교위가 돼야 한다. 백 번의 토론보다 한 번의 현장 학교 방문이 답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이상이 아니라, 현장을 중심에 둔 결단이다.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바른 가치와 태도를 새기는 일이다. 그러나 교실의 현실은 그 이상과 멀어지고 있다. 교권 약화로 교실 불안정해져 수업 중 교사 발언은 자주 왜곡돼소비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을 예로 든 말이 ‘우리 아이를 교만하다고 지적했다’는 식으로 퍼진다. 학생이 수업을 방해해도 교사는 조심스럽다. 언성을 높였다가는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신고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사를 상대로 한 고소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한국교총에 따르면 2024년 교권침해 피해 교원 소송비 지원은 53건, 지원금은 1억2960만 원에 달했다. 이처럼 교실이 불안정해진 데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중 하나는 급격한 정책 변화다. 1998년 무시험 전형, 상대평가 축소 등 경쟁 완화 정책이 시행됐다. 취지는 좋았으나 학습 의욕 저하와 성취도 하락을 불렀다. 여기에 교원 정년이 만62세로 단축돼 약 2만 명의 교원이 퇴임했다. 이로 인한 교원 공백, 충분한 검증 없이 발급된 자격증, 성과급 제도 등은 현장에 긴장감을 줬지만, 협력보다는 경쟁을 심화시켰다. 2010년 이후 교사 통제권도 약해졌다. 위축된 교육은 수요자에 맞는 기형적 형태로 변했다. 학생 간 사소한 다툼이 학부모 간의 갈등으로 번지고, SNS를 통해 확대 재생산된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아이들 사이의 사소한 다툼이 내 자식을 편드는 부모의 싸움으로 확전돼 교사를 괴롭히는 사례는 이제 비일비재하다. 교사의 지도력은 점점 힘을 잃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한때 교육의 힘으로 나라를 일으켰다. 자원도, 자본도 부족하던 시절, 70명이 넘는 과밀학급에서도 아이들은 웃으며 공부했고, 학부모는 학교와 협력했다. 그 시절 교사와 학부모, 학생은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였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시절의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교육의 신뢰를 회복하는 구조적 복원이다. 교육의 변화는 교실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교사와 학생이 중심이 되는 열린 교육 생태계를 구축하고, 교실에서 만들어진 교육 콘텐츠가 지역과 사회로 환류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 상처받은 교사에게 심리상담은 위로가 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교사가 어려울 때 가장 먼저 의지할 곳은 국가 제도가 되어야 한다. 민원을 견디는 일이 교사의 역량이 돼서도 안 된다. 교육 당국은 교원이 교육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적·법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교원 존중이 최소한의 장치 교육은 결국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교사를 보호하는 것은 교사를 위한 특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다음 세대를 책임지는 최소한의 장치다. 교사가 존중받을 때, 교실은 다시 배움의 공간으로 살아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정책이 아니라, 교육의 신뢰를 다시 세우는 일,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리고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바에 조금 더 가까워지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상담자는 내담자가 원하는 바를 찾아가는 것을 돕도록 훈련받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훈련은 이론(theory)적 관점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는 현실치료(Reality Therapy) 이론에 근거를 둔 몇 가지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생존, 사랑·소속감, 힘, 자유 즐거움 현실치료 이론은 윌리엄 글래서(William Glasser)가 제안한 상담이론입니다. 이 이론에서는 인간은 5가지 기본 욕구(생존, 사랑·소속감, 힘, 자유, 즐거움)를 충족시키기 위해 스스로 행동을 선택하는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어떤 행동은 ‘그 순간 가능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현실치료에 기초한 상담에서 상담자는 내담자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아가고, 자신의 욕구를 더 잘 충족시키는 행동을 선택·실천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면, 또는 주변의 소중한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기대하고 있다면, 다음의 질문을 사용해 보세요. WDEP 모델 활용하기 1단계) Wants: 당신이 진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자신의 행동 이면에 숨겨져 있는 욕구와 소망을 찾는 질문입니다. 무엇이 문제인가에 집중하는 대신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는가, 그 이면에 숨겨진 진짜 원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찬찬히 탐색해 가는 단계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 다른 사람들과 지낼 때,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복잡하게 얽힌 상황이 원하는 대로 바뀔 수 있다면 당신이 진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요?’와 같은 질문을 활용해 볼 수 있습니다. 2단계) Doing Direction: 지금 당신은 그것(wants)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나요? 이 질문의 목적은 자기 행동의 잘잘못이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인식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통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 당신은 어떤 태도를 보이나요?’와 같은 질문을 사용하거나,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는지, 듣는 태도는 어떠한지와 같은 구체적인 행동을 그려볼 수 있도록 돕습니다. 3단계) Evaluation: 지금 당신이 하는 행동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자신이 원하는 바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견주어 보는, 즉 평가를 촉진하는 질문입니다. 지금 내가 수행하는 행동이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스스로 평가해 봅니다. 상담자가 평가해 주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스스로 고민하게 하는 단계입니다. 4단계) Planning: 내가 원하는 것에 조금 더 가까워지기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볼 수 있을까요? 자신이 내린 평가에 기초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에 가까워지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세우는 단계입니다. 평가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세우고 실천을 독려하는 단계입니다. 크고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지금 당장, 또는 내일부터 바로 해볼 수 있는 작고 구체적인 한 가지에 초점을 두게 합니다. 2026년이라는 선물을 기다리는 지금, WDEP 단계에 따라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 태평양 한가운데에 남겨진 청년 파이와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의 227일간의 대서사시를 그린 작품. 맨부커상을 수상한 얀 마텔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폭풍우, 야간 바다 등 거대한 자연을 무대 위에 스펙터클하게 구현했다. 토니상 3개 부문, 올리비에상 5개 부문 등 주요 시상식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2025.11.29.~2026.3.2 GS 아트센터 연극 비밀통로 낯선 공간에서 생의 기억을 잃은 채 마주한 두 사람. 이들은 서로 얽힌 기억이 담긴 책들을 통해 삶과 죽음 사이에서 만난 인연, 반복된 생을 들여다본다. 일본 연극계를 대표하는 극작가 겸 연출가 마에카와 토모히로의 작품 허점의 회의실을 원작으로 한다. 2026.2.13~5.3 NOL씨어터 대학로 중극장 연극 그때도 오늘2: 꽃신 역사 속에 존재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투리 말맛을 살려 전하는 여성 2인극. 1590년대 진주의 산골 집, 1950년대 공중의 전통가옥, 1970년대 서울의 잡화점, 2020년대의 병원을 배경으로 한 4개의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펼쳐진다. 2025.12.15~2026.2.22 NOL 서경스퀘어 스콘2관 전시 신상호: 무한변주 신상호는 도예의 전통적 규범을 과감히 넘어서며 도자 조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도예가다. 전시에서는 전통 도자에서 도자 조각, 건축 도자, 타 매체와 결합한 오브제, 그리고 도자 회화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폭넓은 창작 스펙트럼을 만날 수 있다. 2025.11.27~2026.3.29 국립현대미술관 과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