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100,231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
글말투에서도 불필요한 ‘의’는 빼버리자 지난 호 글에서, 입말에서 ‘의’가 생략되기 쉬운 세 가지 경우를 제시한 바 있다. 이번에는 글말에서 ‘의’의 생략이 어떠한지 알아보기 위해, 아래에 제시한 표현에서 ‘의’의 쓰임을 주목해보자. 회색빛의 구름 한 덩이 : 회색빛 구름 한 덩이 여우색의 모피 : 여우색 모피 16평형의 원룸 : 16평형의 원룸 여러 가지의 논의 : 여러 가지 논의 노랑 머리의 청년 : 노랑 머리 청년 여섯 가지의 재료 : 여섯 가지 재료 대규모의 조사단 : 대규모 조사단 대용량의 김치냉장고 : 대용량 김치냉장고 우주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다 : 우주 개발에 박차를 가하다 자동차의 가격이 올랐다 : 자동차 가격이 올랐다 모든 경우에 왼쪽 표현에 들어 있는 ‘의’는 불필요해 보인다. 입말투에서 ‘의’를 자연스럽게 생략하고 있는 경우라면, 그런 ‘의’는 글말투에서도 생략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굳이 ‘의’를 넣지 않아도 충분히 꾸며주는 말임을 알 수 있는데도 앞에 자리한 명사 뒤에 ‘의’를 습관적으로 쓴 문장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의’를 강조하듯이 집어넣게 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짐작된다. 하나는 글말투가 본디 형식을 중시한다는 점을 의식한 탓일지도 모르고, 또 하나는 영어 ‘of’ 혹은 일본어 ‘の’ 가 빈번하게 쓰이면서, 꾸미는 말과 꾸밈을 받는 말의 관계를 뚜렷이 제시하는 번역투 문체의 영향을 받은 까닭이기도 하다. ‘의’를 생략하기 쉬운 이유는, 본래 한국어가 명사와 명사가 어우러져 아주 손쉽게 복합명사를 이룬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앞의 명사가 저절로 뒤의 명사를 꾸며주는 구조를 취하는데, 무엇 하러 굳이 ‘의’라는 거추장스러운 조사를 끼워 넣겠는가. ‘한 송이의 국화꽃’이 말하고 싶은 것 대다수 한국어사용자들의 귀에 익숙한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는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 시인은 왜 ‘한 송이 국화꽃’이나 ‘국화꽃 한 송이’가 아니라 ‘한 송이의 국화꽃’이라고 했을까. 되풀이해서 읽으면서 이 세 가지 표현의 차이를 음미해보자. 그러면 역시 ‘한 송이 국화꽃’이나 ‘국화꽃 한 송이’보다는 ‘한 송이의 국화꽃’이 ‘한 송이’를 한결 강조한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처럼 특별한 시적 의도를 담고자 하는 목적이 없는데도 ‘의’를 넣어서 어색한 표현을 만드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세 가지 질문’이라 해도 될 것을 ‘세 가지의 질문’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러하다. 이렇게 ‘의’를 집어넣는 것은 아마도 꾸미는 말과 꾸밈을 받는 말을 구별하고자 하는 의식에서 비롯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것은 ‘의’의 올바른 쓰임을 의식하지 않은, 둔한 글쓰기를 보여주는 데 불과하다. 다음 표현들을 살펴보자. 하나의 침대, 두 명의 무장간첩, 20여 명의 관객, 다수의 국민, 대다수의 회원들, 여러 명의 구경꾼들, 단 하나의 이야기, 대박의 환상, 자신과의 약속, 한마디의 발언, 열 분 정도의 회원, 몇 개의 대문, 석 잔의 커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의 쓰임새다. 의미를 전달하는 데에는 크게 차이가 없을지 모르지만, 불필요한 ‘의’를 무분별하게 씀으로써 표현의 경제성과 의미전달의 효율성을 해치고 있다. 좀더 예민한 촉수를 내밀고 ‘의’를 다루어야겠다. ‘의’를 넣으면 앞뒤 단어 사이에 거리가 생긴다 ‘한국의 자연’을 ‘한국 자연’이라고 하면 어색한데, ‘한국의 사회’는 ‘한국 사회’로 줄이는 것이 훨씬 깔끔하게 느껴진다. 왜 그럴까? ‘한국의 정부/한국 정부’, ‘한국의 풍습/한국 풍습’처럼 어떤 것은 ‘의’를 넣어야만 의미가 명확하게 다가오는 한편, 어떤 것은 ‘의’가 없어도 충분히 의미가 전달될 뿐 아니라 오히려 그쪽이 더 매끄럽게 느껴진다. ‘의’는 자신이 연결하는 두 낱말 사이의 관계를 규정한다. ‘한국 자연’이 복합명사로서 아직 낯선 데 비해 ‘한국 사회’가 한 단위의 명사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한국’과 ‘사회’, ‘자연’이 맺는 관계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인류’, ‘사회’, ‘발전’이라는 세 낱말이 있을 때, ‘의’를 써서 이것들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의’를 다 쓰자면 ‘인류의 사회의 발전’이라 해야 할 테지만, 보통은 ‘인류 사회의 발전’이라고 쓸 것이다. ‘의’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명확하게 하려면 적절한 곳에 ‘의’를 써야 한다. 만약 이것을 ‘인류의 사회 발전’이라고 한다면 의미를 금방 알아채기가 힐들 것이기 때문이다. ‘의’는 단어와 단어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만드는 한편, ‘의’의 생략은 두 단어의 거리를 좁혀준다. 이렇게 거리가 좁아진 두 단어는 복합명사처럼 받아들여지기 쉽다. 나아가 ‘인류의 사회의 발전’으로 쓰면, ‘의’가 한꺼번에 둘이나 들어가 매끄럽지 못한 한국어 표현이 되어버린다. ‘인류 사회’라는 두 단어를 마치 복합명사처럼 취급함으로써 적절한 의미전달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전통 문화의 보존’, ‘국민 복지의 실현’, ‘통일 정책의 전환’ 등이 모두 이러한 예에 속한다. 이것을 ‘전통의 문화 보존’, ‘국민의 복지 실현’, ‘통일의 정책 전환’이라고 한다면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일본어투 조사를 남용한 예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국어 문장이 근대에 성립한 것이라는 사정에 대해서는 입말과 글말 사이 : 와/과 : (이)랑 : 하고 편에서 기술한 바 있다. 그때 한국어에 미친 일본어의 영향에 대해 언급했거니와, ‘의’야말로 일본어의 영향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문법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일본어의 영향을 받은 조사의 쓰임이 특히 거슬리는 경우가 많은데, 대개 이러한 조사에는 ‘의’가 붙어 있다. 우선 예문을 살펴보자. 나라 전체에 민주주의에의 갈망이 넘쳐나고 있다.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 현상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더욱 분발해야 한다. 당국으로부터의 지시에 따라 일제히 통행금지를 실시했다. 이 세상에서 내 아버지와의 만남은 겨우 15년이 될까 말까 한 짧은 기간이다. 이런 표현들을 바람직하게 바꾸는 방법으로, 문맥에 어울리는 서술어를 넣어주어야 할 경우, 체언을 서술어로 고쳐야 할 경우, 조사를 바꾸어야 할 경우 등이 있다. 위 예문들을 한국어의 특성에 맞게 고쳐보면 다음과 같다. 나라 전체에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이 넘쳐나고 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집단 따돌림 현상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더욱 분발해야 한다. 당국의 지시에 따라 일제히 통행금지를 실시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아버지를 만난 것은 겨우 15년이 될까 말까 한 짧은 기간이다. ‘의’를 잘 활용해야 한국어의 특성이 산다 ‘나의 살던 고향’을 굳이 예로 끌어오지 않더라도, ‘의’ 얘기만 나오면 일본어투 문제를 비껴가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사실상 일본어 문형에서는 ‘の’가 더욱 다양한 쓰임새로 훨씬 빈번하게 쓰이는 반면, 한국어에서 ‘의’는 그만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 않다. 물론 이런 점은 어디까지나 두 언어의 고유한 특성일 뿐이어서 우열을 따지는 기준은 결코 되지 못한다. 위의 다섯 예문에서 보듯이, 조사를 둘 이상 이어 붙여서 표현하는 어법은 일본어의 조사 쓰임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어서 그다지 친근하거나 자연스럽지가 않다.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데도 무리하게 조사를 사용하게 된 것은, 서술어 중심인 한국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명사 중심인 외국어에 한국어를 끼워 맞춘 결과로 보인다. 즉 근대 이후 외국어, 특히 일본어와 영어를 번역하기 시작하면서 ‘의’는 쓰임새는 확대일로를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번역을 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모국어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 혹은 모두가 도야, 즉 성장과 교육이라고 부르는 것, 혹은 감히 말한다면 모국어를 발견하거나 미개척 상태로 남겨진 모국어의 자원을 발견하는 것”(폴 리쾨르, 번역론)이라고 본다면, ‘의’가 이렇게 세력을 확장한 원인은 모국어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번역의 부작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원래 서술어가 중심인 한국어의 특성을 잘 살려서 자연스러운 번역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명사가 중심인 외국어 표현을 기계적으로 옮길 것이 아니라, 문맥에 따라 적절한 서술어를 활용하여 한국어 특성에 맞는 표현을 개발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이런 어색한 조사들은 입말에서 거의 쓰이지 않으므로, 한국어의 특성에 맞는 문장을 구사하기 위해서라도 글말에서도 자제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작가와의 만남’, ‘저자와의 대화’처럼 축약형 표현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겠지만, ‘작가와 함께’, ‘저자와 함께’ 같이 서술어를 생략한 문형으로 표현하는 방법도 있지 않은가.
"열정과 함께한 27년, 덕구는 제 삶의 일부죠" “어머, 진짜 교장선생님이잖아.” 어눌하게 더듬는 말투, 부자연스러운 행동, 허를 찌르는 연기에 객석에서는 학생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누구보다도 반듯한 50대 교장선생님의 감쪽같은 ‘지체장애아’ 변신이 아이들은 즐겁기만 하다. 서울 은일정보산업고 박재련 교장은 27년간 줄곧 ‘덕구’로 살아왔다. 순수한 영혼을 지닌 정신지체아 덕구의 이야기를 담은 이 연극 ‘빈방 있습니까’는 1981년 민예소극장에서 초연하면서부터 한해도 거르지 않고 공연됐다. 그동안 올린 공연 횟수만 해도 1000여 회. 박 교장은 숫자를 세다가 어느 순간 포기했다고 한다. 정기 공연은 매년 12월 대학로에서 열지만 주말마다 탈북자 보호정착시설 하나원을 비롯해 여러 복지시설을 방문해 연간 40회 정도 연극을 올린다. “수익을 목적으로 한 공연이 아니기 때문에 저를 비롯한 배우들이 기쁘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공연하고 있습니다. 조금 수익이 생기는 것은 장애우들을 돕는 데 쓰고 있죠.” 이 연극은 미국의 윌리라는 아이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성탄절을 맞아 공연을 준비하는 교회 고등부의 연극반이 배경이다. 크리스마스 공연일인 24일, 우여곡절 끝에 지체장애아인 덕구가 연극무대에 데뷔하고 현실과 연극을 혼동해서 연극을 망치고 말지만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학생들에게는 정서적으로 도움이 많이 되는 연극이에요. 지능이 낮다고 무시당하는 현실 속에서도 그야말로 순수한 영혼을 지닌 한 인간 ‘덕구’를 보게 되거든요.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배우게 됩니다.” “연극에 대한 열정은 살아가는 힘” 박 교장이 연극을 처음 시작한 것은 1974년. 교회 연극반에서 연극에 매료돼 1980년 30여 명의 멤버와 함께 극단 증언을 창단했고 이듬해부터 ‘빈방 있습니까’를 공연해왔다. “전문적으로 연극만 하고 싶었지만 직업을 삼는다면 쉽게 열정이 무뎌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취미이지만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일만큼은 무엇보다 열과 성을 다해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했죠. 그 결과물이 ‘빈방 있습니까’입니다” 그렇지만 27년간 열일곱 살의 덕구를 연기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덕구는 매해 같은 나이지만 박 교장은 어느덧 인생의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순수함의 결정체 덕구라는 인물은 저에게 연극 이상의 만족감과 희열을 주기 때문에 덕구로 살아가는 것은 보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덕구가 너무 늙어 보이지 않을까’하는 걱정은 늘 하고 있죠.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덕구를 연기하다가 더 나은 후배가 나타나면 물려줄 생각입니다.” 27년간을 걸어온 만큼 잊을 수 없는 관객들도 많다. 유치원부터 대학 갈 때까지 이 연극을 매해 보았다는 학생, 공연을 같이 본 후 청혼을 받았다며 결혼기념일마다 찾아오는 부부, 한창 공연 연습 중에 어떤 사람이 정말 정신지체아로 착각했던 황당함…. “가장 기억에 남는 관객은 10년 전의 한 어머니입니다. 아이들과 마지막 성탄절을 보내겠다며 거리를 헤매다가 우연히 저희 연극을 보게 됐고 ‘다시 한 번 열심히 살아 보자’는 삶의 희망을 발견했다고 저희 공연 관계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해왔는데 저 또한 보람과 감동을 느꼈습니다.” 박 교장이 생각하는 연극의 매력은 무엇일까. “연극의 매력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체험하는 것에서 오는 끌림이 있습니다. 남을 배려하고 삶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지죠. 또 연극은 공동 작업이기 때문에 함께 고생해서 최고의 공연을 올렸을 때의 뿌듯함 또한 큰 매력입니다.” 공연 예술 특성화 학교 만드는 것이 꿈 연극에 대한 박 교장의 열정은 학교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은일정보산업고에는 없는 공연예술매니지먼트과, 문화홍보디자인과, 문화·영상미디어과 등 다른 전문계고에서는 볼 수 없는 특성화된 과들이 있다. 이것은 모두 박 교장의 아이디어. 현재 구로2동에서 내년에 구로구 궁동으로 학교가 이전하면 인터넷 방송 스튜디오를 만들어 지역민들을 위한 인터넷 방송을 할 계획이다. “전문계고는 더 이상 디자인이나 컴퓨터만을 가지고는 승산이 없어요. 요즘 학생들이 공연과 예술에 관심이 많은데 그것을 전문적으로 배울 만한 곳이 드물죠. 그래서 특성화된 과들을 만들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공연 예술 특성화고를 만들고 싶습니다.” 박 교장의 다음 작품은 청소년 성교육 연극. 학생, 교사들과 함께 준비해 내년에는 순회공연을 할 예정이다.
‘반드시’ 제시해야만 하는 주장의 근거나 증거 네 번째 원칙은 ‘설명하기’입니다. 결론을 뒷받침할 만한 이유를 제시하고 나면 반드시 그 이유를 설명하는 타당한 근거나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드물게 ‘반드시!’라는 전제가 붙는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실제 토론에서는 의무 조항이라고 까지 합니다. 설명 없이 단순히 이유만 제시하면 결론이 얼마나 합리적인 근거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지 어떤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지 듣는 사람들이 평가할 기회가 없어질 것입니다. 또 충실한 설명은 듣는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설득력도 얻을 수 있게 합니다. 설명하는 사람에게는 자기주장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주장에 대한 객관화가 가능해지고 책임 있게 주장을 전개하는 법을 연습하는 기회도 될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주장을 합리적으로 옹호하는 능력은 설득에 있어 기본 중에 기본이 되는 것이지요. 설명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일의 순서나 과정을 자세히 묘사해 가면서 설명하는 법, 이치를 따져가며 설명하기, 논리의 내용에 따라 실험이나 실제 증거를 대 설명하기 등이 있는데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은 예를 들어 설명하는 방법입니다. 아이들이 토론을 처음 시작할 때 쉬워서 많이 쓰는 방법이지요. 자신의 경험이나 주변에서 경험한 것들, 책이나 기사, 자료에서 비슷한 경우를 찾아 예로 들고 그것을 자신의 결론과 이유를 연결하는 고리로 하여 일반화합니다. 그러나 몇 번만 하고 나면 늘 고만고만한 이야기들이라 아이들이 토론 수업 자체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으니 적절히 앞으로 나아가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심사평 할 때 심사관이나 지도자가 이끌어 주면 좋겠습니다. 설득력 있는 논거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넌지시 알려 주는 것이지요. 가능하면 많은 논거나 예를 찾게 하자 어떻게 이끌어 주면 좋을지 더 많이 알아보고 싶으시면 앤서니 웨스턴의 논증의 기술을 권합니다. 그의 분류에 의하면 유비에 의한 논증, 권위에 근거한 논증, 원인에 의한 논증, 연역적 논증 등이 있는데 이런 예와 활용을 적절히 제시해 주면 좋겠지요. 아이들에게는 예를 들어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로 든 것들이 반드시 사실에 근거해야 하고 출처나 자료가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며 최소한 두세 가지 이상, 가능하면 많을수록 유리하다고 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한 예가 될 수 있는 특별한 경우도 있지만 일반화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가능하면 많은 예들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데 정말 좋은 예, 설득력 있는 예를 찾으려면 폭넓게 조사하고 탐구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나 확인 가능한 역사적 사실이나 객관적 사실, 누구에게나 정설로 인정된 학설, 각종 통계자료들을 찾을 수 있도록 암시를 주고 논리의 힘은 이 논증 과정의 충실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강조해 주시면 좋겠지요. 책도 찾고 인터넷도 뒤지고 설문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되는데 예들을 찾기 위해 조사하고 찾는 과정이 아이들에게는 자기 주도적인 학습능력과 정보 활용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훌륭한 하나의 학습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이것이 ‘이유 찾기’에 이어 우리가 토론을 학습방법으로 선택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요. 다섯 번째 원칙은 ‘반론에 대한 고려’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준비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설득력 있고 논리적인 주장을 준비할 수 있을까요? 힘 있게 결론을 전제하고 타당한 이유를 대면서 확실한 논증까지 하면 매우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주장이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거나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의견이 되겠지요. 그러나 만약 그러한 내 주장을 나와 반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요? 오히려 더 강력한 반대 논리로 무장하도록 자극을 주게 되지는 않을까요? 이 때 이 안건에 대해 상대방이라면 어떤 이유로 찬성하거나 반대할까? 어떤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미리 생각해서 내 논증과 견주어 볼 수 있다면 내 주장은 어떻게 될까요? ‘반대의 입장에서 나의 논증을 스스로 검증해 보는 것’ 이것을 ‘반론에 대한 고려’라고 합니다. 이것은 반대의 입장에서 나의 주장을 저울질해 보아도 상대방의 주장보다 더 낫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객관적이고 공정한 주장이라는 인상을 주게 되어 토론에서 설득력이 더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때도 주의해야 할 것은 너무 진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논점을 흐리게 하거나 반대 심리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반대 입장에 서서 미리 준비하는 ‘반론 꺾기’ 그러나 만일 반론을 놓고 서로 타당성을 저울질했는데 반대의 논리가 더욱 타당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때는 그 반론을 수용하거나 자기주장을 다시 고려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더 좋은 이유를 찾아야겠지요. 이런 과정이 때로는 몇 번이고 반복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양쪽이 엇비슷하거나 자신의 주장이 낫다는 판단이 선다면 거기에 보다 창조적인 논증을 더해야 확실한 설득력을 획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 상대팀의 예상을 뛰어넘는 창의적인 생각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것을 토론에서 ‘반론꺾기’라고 하였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해보니 이 반론꺾기를 준비하는 과정이 아이들에게는 가장 힘겨운 사유의 시간들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팀 안에서 논의가 이루어지고 아이들 사이에 깊이 있는 질문과 답이 오가는 자율적인 학습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비로소 교사는 보조자로서, 안내자로서의 역할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때때로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하였는데 지금 돌아보니 아득합니다. 이런 생각의 과정이 찬성 반대 양쪽에서 미리 이루어지고 준비되어진 주장이라면 실제 토론에서는 과격한 논쟁이나 말싸움 같은 소모적인 일은 없겠지요. 생활 속에서 어떤 일을 정할 때도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의사결정을 하려고 한다면 반대의 입장에서 나의 결정을 바라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견주어 보고 난 뒤 내린 결정이라면 훨씬 현명한 결정이 될 것이며 실패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우리 아이들이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이 단계까지 고려하고 결정할 수 있게 지도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여기까지 생각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요. 이 단계까지 생각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저는 아이들에게 이제 ‘생각하는 힘이 생겼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토론의 찬반 주장 외에 이상적인 ‘다른 의견’도 있다 끝으로 여섯 번째 원칙 ‘예외 부분 고려하기’입니다. 우리가 토론에서 다룰 수 있는 모든 안건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리든 거기에는 어느 정도 예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예외 부분 고려하기란 ‘찬성과 반대 모두를 포함하고 있거나 현실적으로 양쪽 모두를 어느 정도 만족시키는 또 다른 의견들이 있는지 찾아보고, 있다면 그 중 최선의 선택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특히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대안을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한 방에 모든 문제를 해결해 버릴 수 있는, 그래서 우리 모두가 만족할만한 그런 이상적인 의견은 없는지, 만약 있다면 어떤 내용이 될지, 그것이 비록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대안이라 할지라도 상상력을 발휘하여 가장 이상적인 상태를 그려보라는 주문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면 토론이 갑자기 재미있어지고 부드러워지기도 하지요. 언제 팽팽히 맞서 대결하였는지 잠시 잊고 숨을 고르게 됩니다. 이렇게 토론을 마무리하고 나면누구도 대결이나 싸움에 졌다는 느낌은 갖지 않게 되겠지요. 이렇게 토론을 하고 나면 참여한 아이들이 서로를 미워하거나 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전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더 가까워져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 의견은 토론을 함께 공부한 우리 아이들이 제게 들려 준 이야기였습니다.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주장이 되는 6가지 원칙 (1) 토론 가능한 주제의 안건에 대해 (2) 자신의 결론을 내리고 (3) 그 결론에 이르게 된 이유를 찾아 그것을 제시하고 (4) 이유의 옳음을 설명하고, 즉 논증을 하고 (5) 나의 결론에 반대 또는 대조되는 의견(반론)이나 생각을 고려하여 내 생각과 견주어 그것이 비논리적임을 보여주거나 부족함을 지적하고 (6) 예외를 정리하여 보여 주면 된다는 것입니다.
복잡한 역사적 배경 지속되는 국가 평소에 달콤한 포도주를 통해 알게 된 그루지야. 영문으로 하면 ‘Georgia’(죠지아), 러시아어로 ‘그루지야’(грузия), 그루지야 어로는 ‘사크라토벨로’이다.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만큼 다양한 문화와 종교, 인종이 공존하는 곳이다. 작은 영토에 적은 인구의 나라지만 오래되고 독특한 문화와 건물들이 그루지야의 마력에 빠지게 만든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수도 트빌리시(Tbilisi)의 구(舊) 시가지, 40년 된 러시아 지하철, 도심지에 우뚝 솟은 요새, 그루지야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 등은 꼭 빠뜨리지 말아야 할 곳이다. 또 흥미로운 것은 그루지야 정교가 이 나라의 공식 종교이지만, 곳곳에 이슬람 사원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더 작은 이 나라에는 국경선이 참으로 복잡하다. ‘남오세티아’와 ‘압하지야’ 지역들은 지금도 독립을 꿈꾸며 그루지야 정부에 대항하고 있고, 현재 무력충돌은 없으나 외국인은 두 지역에 들어갈 수 없다. 수 년 전 남오세티아에 있는 초등학교에 가스 살포로 많은 어린이들과 지역 주민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었다. 두 지역 외에도 그루지야는 러시아와 아직 전쟁 중인 ‘체첸’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러시아 내 공화국들, ‘잉구세치아’, ‘다게스탄’과도 카프카즈 산맥을 사이에 두고 있다. 그루지야는 구(舊)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별다른 경제 부흥이 없었으며, 높은 실업률로 인해 이 나라 국민들은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다. 이에 따라 그루지야의 정국은 매우 불안한 상황이다. 작은 시골역의 낯선 이방인 지난 해 3일의 짧은 추석 연휴를 맞아 그루지야로 향했다. 연휴 기간이 짧아 장소보다는 비행기 시간에 맞는 나라를 찾다보니 그루지야가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정한 72시간의 짧은 여행지이긴 하지만, 달콤한 포도주의 나라를 방문한다는 생각에 출발부터 설렌다. 수도 트빌리시에 도착하자마자 스탈린의 고향인 ‘고리(Gori)’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이곳의 지하철은 외지인들에게는 그다지 친절하지 못하다. 제대로 된 안내판이 하나도 없어 감각으로 길을 찾아야 했다. 어느 나라나 시장 다음으로 북적거리는 곳은 역시 기차역이다. 눈썹이 유난히 짙은 그루지야 사람들이 표를 사려고 길게 줄을 서 있고, 기차역 구석에 걸린 그루지야 철도지도에는 소련시절 때 만들어진 기찻길이 그루지야 구석구석을 연결하고 있는 게 보인다. 트빌리시에서 고리까지는 한 시간이 소요된다. 한 시간이 지나 역에 도착했는데, 역 어디에도 ‘Gori’라는 간판이 없어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그러자 주변에 앉아있던 승객들이 자기 일인 것처럼 한 마디씩하며 도와주려 하는 광경에 작은 감동을 받았다. 고리를 지나쳐 ‘카슈리’라는 도시에 내렸다. 여행객을 처음 본 것처럼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멀리서 손 흔드는 사람, 다가와 얘기하자는 사람, 사진 찍어달라는 사람…. 필자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어쩌면 바로 이런 이방인이 된 내 모습이 좋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색색의 벽돌로 만들어진 므츠헤타 성당 트빌리시에서 고리로 가는 기찻길 양 옆으로는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 나라의 주 수출품목은 포도주와 광천수로 그루지야는 카프카즈 산맥에서 내려오는 물로 축복을 받은 나라다. 우리나라 주류시장에는 없는 ‘긴즈마라울리’ 포도주와 ‘보르죠미’ 광천수가 유명한테, 특히 보르죠미 광천수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즐겨 마신다고 한다. 그만큼 보르죠미는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에서 흔히 살 수 있으며, ‘긴즈마라울리’는 비싼 포도주로 주변 나라에서 잘 팔리고 있다. 맛있는 그루지야 포도주가 냉대를 받는 곳이 있는데 바로 러시아다. 발단은 러시아와 그루지야 간의 분쟁이었다. 러시아 식품청은 그루지야의 포도 수확량보다 포도주 생산량이 많다고 시비를 걸었고, 이에 대해 그루지야 정부는 러시아 정보 요원을 추방했다. 이 사건으로 러시아는 그루지야에 무역 봉쇄조치를 내렸고, 상점에 진열되어 있던 그루지야 포도주 전량을 즉각 폐기 처분했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아직도 긴즈마라울리 포도주를 찾아보기 힘들다. 같은 연방에 속해 있었던 나라이지만,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 또 이 맛있는 포도주를 먹지 못하는 러시아 사람들이 측은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고리를 떠나 트빌리시 방향으로 30여분 달리자 ‘므츠헤타’에 도착했다. 트빌리시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작은 샛길로 빠져야 하는 곳이라 현지인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찾지 못했을 것이다. 므츠헤타 성당은 다른 색들의 돌들이 쌓여 있는 모습도 멋지지만, 내부의 벽화 또한 우수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그루지야에는 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므츠헤타에 있는 므츠헤타(Mtskheta) 성당, 북부 지역 스와네티(Svaneti)에 있는 우쉬굴리(Ushguli), 그리고 공업도시 ‘쿠타이시(Kutaisi)에 있는 겔라티 사원(Gelati)이다. 세 개의 유산들이 12~13세기에 지어진 독특한 양식의 그루지야 유산들이다. 이 외에도 그루지야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성당들이 나라 곳곳에 중세 시대의 빛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삼박자 갖춘 특별한 여행지 다음 목적지인 ‘아나누리’를 가려고 므츠헤타에서 버스를 수소문 해보지만, 대부분의 버스가 만석이 되서 오니 트빌리시에서 타라고 한다. 트빌리시로 돌아와 ‘아나누리’로 가는 15인승 버스를 탔다. 1시간 정도 북쪽으로 달리는 동안 카프카즈 준령들을 구비 구비 돌아 올라가고 강을 끼고 가다가 보니 아나누리 호수가 나왔다. 저 멋진 산세를 넘으면 체첸공화국이 나온다. 아름다운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전쟁터가 저 넘어에 있다니…. 호수를 한가로이 내려다보는 아나누리 요새 안에는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금빛으로 찬란한 내부에 비해 성당 주변은 너무 초라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는 여행자를 입구에서 라벤더 향기가 반긴다. 성당 내부를 찬찬히 둘러본 다음 다시 트빌리시로 돌아가려고 길 한복에 섰다. 지나가는 차를 보기가 힘들다. 마냥 기다리는데 맞은편에서 술 마시던 사람들 중 마무카 씨가 트빌리시 가는 버스는 3시간 후에나 온다면서 같이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한다. 이 사람들은 대낮부터 보드카를 마시고 있다. 소련시대에 전해져 온 보드카가 여기에도 있다. 세 잔은 꼭 마셔야 한다는 이 나라 주도를 따라야 한다면서 마구 잔을 채워준다. 안주는 포도와 치즈. 나이와는 상관없이 무심코 지나가던 사람들이 바로 술친구가 되고, 대낮을 술로 보내는 모습이 낯설다. 도시 길 모퉁이에는 젊은이들이 할 일 없이 삼삼오오 모여 있고, 시골에는 길거리에서 술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는 게 그루지야의 현주소인 듯싶다. 술을 마시던 도중 마무카 씨가 보트로 호수를 구경시켜준다는 걸 겨우 말렸다. 알고 봤더니 그는 모스크바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현재는 그루지야에서 사업을 하면서 아나누리 호수 책임자라고 한다. 그런 과거가 있기에 술 마시던 사람 중에서 러시아어를 가장 잘했다. 비록 술에 취하긴 했지만 그루지야 사람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버스가 오지 않는다. 버스는 언제 오나, 혹시나 버스가 만석이라도 된다면 오늘 트빌리시에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이들과 아나누리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나? 조금씩 불안해 지는 마음이 자리 잡기 시작하는데, 다행히도 버스는 텅텅 빈 상태로 도착했다. 버스는 술에 취한 필자를 태우고 트빌리시로 향했다. 비록 짧은 여행이었지만 지금도 트빌리시의 골목길이 눈에 선하다. 한 지붕에 대여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사람냄새 나는 곳이다. 그루지야는 저렴한 물가, 눈이 즐거운 볼거리, 친절한 현지인의 삼박자가 잘 갖춰진 나라다. 이런 곳이 정치·경제적인 이유로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하루 빨리 안정을 찾게 되길 막연하게 기다려 본다. * 여행 TIP: 그루지야 물가는 아주 저렴하다, 하루에 30~40$ 정도 경비가 든다. 북쪽에는 스키장이 있지만, 반정부 세력들이 있어서 위험하고, 서쪽에는 흑해가 있다. 주로 터키에서 육로로 들어간다. CIS 국가들 중에 우크라이나와 함께 무비자 방문국이다. 오른쪽으로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이 있는데, 두 나라다 비자가 필요하다. 아직 대사관이 없어서 여행시 주의가 필요하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다이아몬드목걸이사건은 없었고, 따라서 프랑스혁명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목걸이사건도 있었고 혁명도 일어났다. 그 사건이 없었더라면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아래에서 보듯이 혁명은 거의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고, 따라서 목걸이사건 아니라도 프랑스혁명은 일어났을 것이다. 사가들이 산업혁명과 함께 ‘이중적 혁명’으로 부르는 프랑스혁명. 19세기의 프랑스 사가 줄미쉴레는 프랑스혁명을 평등의 재생이자 영원한 정의의 출현으로, 미국의 저명한 현대사가 C.브린턴은 ‘심지어 오늘날에도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심을 가지게 하는 근대사의 드문 사건’으로 평가했다. 좀 지루하지만 혁명의 전말부터 개괄해보자. 혁명의 불씨 제공한 겁 없는 왕비 1789년 5월에 170여 년간 개점휴업 중이던 ‘삼부회’가 소집되면서 혁명의 막이 올랐다. 1788, 1789년의 흉작으로 곡가가 앙등(昻騰)하고 실업자가 급증해 정치·사회적 불안이 고조되는 가운데 열린 삼부회는 투표방식을 놓고 대립했다. 평민대표는 1, 2신분의 승리를 보장하는 신분별 투표 대신에 1인 1표 방식을 주장했다. 삼부회가 3신분 610명, 1신분 291명, 2신분 30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므로 1인 1표제로 할 경우 3신분이 유리했다. ‘국민의회’를 선포해(6월 17일) 의회에서 축출된 3신분 대표들이 따로 테니스코트에 모여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저항할 것을 결의하자, 국왕 루이 16세도 1, 2신분 대표의 국민의회 참가를 허가했다. 하지만 왕이 질서유지와 의회보호 구실로 군대를 파견하고 국민의 신망이 두텁던 넥케르를 재정고문에서 해임하자 폭동이 일어났다. 7월 14일에는 독재정치의 상징이던 바스티유 감옥이 파괴되고 전국에서 제2, 제3의 바스티유 사건이 빈발했다. 그런 와중에 빵가게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일단의 여인들이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혁명을 모독했다는 소문에 분노해 베르사유의 국왕 처소로 쇄도했고, 국왕은 그들의 압력에 굴복해 파리로 이주해야 했다. 결국 앙상 레짐(구체제)은 그해 8월에 무너졌다. 면세특권, 매관매직, 노예제 등을 폐지한 국민의회는 8월 27일에 주권재민, 천부인권, 자유와 평등, 재산권의 불가침 등을 담은 ‘인권선언’을 발표했다. 단원제 의회와 사법부의 독립을 규정한 헌법도 제정되었다. 이후 국민의회는 헌법에 따라 해산되고 새로운 선거로 구성된 ‘입법의회’가 1791년 10월 1일에 열렸다. 입헌군주제를 지향한 온건 지롱드당의 세력이 점차 약해진 대신 과격 공화파인 자코뱅당(산악당)과 그 지도자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 등이 혁명을 주도했다. 이에 혁명의 전파를 우려한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하고 아시냐화(貨)가 폭등했다. 마르세유를 비롯해 전국에서 의용병이 파리에 집결해(마르세유 출신 의용병들이 부른 ‘라 마르세예즈’는 프랑스 국가(國歌)가 되었다) 무능한 정부를 비판하는 중에 자코뱅당이 정부를 접수했다. 그리고 새로 구성된 ‘국민공회’에서 중간파를 끌어들여 다수당이 된 자코뱅당의 공포정치가 막을 올렸다. 1793년 1월 국민공회에서 100시간의 논의 끝에 루이 16세에게 반역죄가 선고되었다. 하지만 출석 의원 721명 중 361명만이 왕의 처형에 찬성했기에 1월 19일 다시 투표해 380대310으로 가결했고, 루이 16세는 “국민들이여 나는 죄 없이 죽는다”는 말을 남긴 채 단두대(기요틴, guillotine)에서 목이 잘렸다. 프랑스는 이제 공화국(제1공화국)이 됐다. 자코뱅당은 로베스피에르, 당통 등을 중심으로 공안위원회와 혁명재판소를 설치하고 집단재판을 통해 반혁명 세력, 외국인 혐의자, 망명귀족 등을 가차 없이 처형했다. 자신들이 판 무덤 앞에서 기총소사로 처형된 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낭트에서는 2천명 이상을 르와르강에 익사시켰다. 마리 앙투아네트도 처형되었다. 국민의 심판으로 처형당한 왕과 왕비 공안위원회는 또한 혁명적 개혁을 단행했다. 빈농에 토지소유의 길을 열어주는가 하면 생필품 최고가격제와 임금을 포함한 일반 최고가격제를 시행했으며 망명귀족의 재산을 몰수해 농민에게 분배하고 초등교육을 의무화했다. 노트르담사원 같은 교회들이 행정사무소로 바뀌고 성직자들은 교회를 떠나야 했다. 또 국민총동원령을 내려 18~26세의 미혼 남자 모두를 징집했다. 하지만 공포정치는 오히려 사회적 불안과 경제적 침체를 격화시켰다. 자코뱅당이 지향한 도덕공화국은 국민에게 초인간적 헌신을 요구하며 비인간적 잔인성을 발휘했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반혁명세력이 집결하는 가운데 내분에 빠진 국민공회는 결국 로베스피에르를 버렸다. 1794년 7월 27일 군중들이 “폭군을 타도하라”고 외치는 가운데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추종자들이 체포되고 다음날 기요틴에서 처형됐다. 국민공회도 해산되고 ‘5인 집정정부’가 수립되었다. 하지만 백색테러 난무, 물가 앙등, 실업 증대 등 혁명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집정정부는 결국 나폴레옹의 쿠데타로 무너졌다. 정치, 경제, 사상 등으로 분류되는 혁명의 원인 또한 복잡했다. 정치적 원인은 바로 절대주의 구체제의 모순이었다. 군주들은 ‘왕권신수설’을 신봉하면서 권력을 휘둘렀다. 그들은 한 장의 밀서로 백성들을 체포·투옥했으며, 언론자유를 제한해 국왕의 정책에 대한 어떤 비판도 막을 수 있었다. 독재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부의 무능과 불합리성이었다. 정부기구들의 기능이 중복되는가 하면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했다. 예·결산제도, 왕실-정부재정의 구분, 공평조세 등이 확립되지 않았다. 토지의 대부분을 소유한 귀족과 성직자는 면세특권을 누렸다. 사법제도도 정비되지 않아 일부 지역에서는 처벌대상이 되는 행위가 다른 곳에서는 범죄행위가 되지 않기도 했다. 경제적 원인은 구체제의 계급적 착취구조에서 비롯했다. 국민의 1%도 안 되면서 20% 이상의 토지와 많은 재산을 소유한 고위 성직자들은 흔히 국민의 영혼을 구제하는 일을 제쳐두고 정치에 간여하거나 여타의 부도덕하고 사치스러운 일에 몰두했다. 국민의 6, 7%에 불과한 귀족 역시 정치적, 경제적 특혜를 누리면서 국민 위에 군림한 기생적 존재였다. 반면 국민의 94% 정도였던 3신분은 대체로 가난과 압박에 시달렸다. 하지만 사가들은 3신분의 가난과 고통을 강조하지 않는다. 빈민이 아니라 부유한 자본가들이 혁명을 일으킨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국가경제의 주역이면서 과도한 세금을 물어야 했을 뿐 경제적 공헌에 걸맞은 정치적, 사회적 대우를 받지 못했다. 특히 중세적 길드와 중상주의로 인해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방해받자 산업자본들은 혁명세력으로 변해갔다. 때마침 계몽사상가들이 전제체제를 비판하고 나섰다. 합리와 자연주의를 강조하고 인간세계의 무한한 진보를 믿은 계몽사상가들은 자유와 평등을 주장했다. 그 중에서도 로크와 몽테스키외 등은 자유주의를 강조했고 루소는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그들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이론은 그처럼 대조적이면서도 공통의 요소를 가졌다. 두 이론 다 필요악인 국가는 계약에 토대해야 한다는 전제 위에 인민주권을 주장했다. 두 이론 다 기본적으로 개인의 권리를 중시했다. 결국 혁명의 도화선 역할을 한 것은 재정악화였다. 프랑스는 재정궁핍에 시달리면서도 함대를 파견해 독립전쟁을 벌리던 미국을 도왔다. 그로 인해 프랑스는 재정이 파산상태에 이르는 심각한 상황에 빠졌다. 몇몇 정책이 실패한 후 국왕은 증세를 통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삼부회를 소집했고, 프랑스는 바로 혁명으로 빠져들어 갔다. 사기극 부른 왕비의 끝없는 사치 드디어 목걸이사건 이야기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궁중의 여인들이 국정을 어지럽히거나 양귀비처럼 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경우가 없지 않다. 남편 루이16세에 뒤이어 기요틴에서 목이 잘린 마리앙투아네트도 현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치스럽고 탐욕스러웠다. 그녀의 끝없는 사치는 프랑스가 역사적 대혁명에 빠져들게 하는데 적지 않게 이바지했다. 그녀는 화려하고 사치한 궁정생활로 그렇지 않아도 재정적자에 허덕이던 국가의 살림살이를 어렵게 했을 뿐만 아니라, 루이 16세의 재무장관이나 재정고문들이 파산에 이른 재정 상태를 치유하기 위해 어렵사리 입안한 정책들을 그 때마다 귀족들과 결탁하여 반대하는 등 국왕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른바 ‘다이아몬드목걸이사건’(1785~1786)도 그녀의 역사적 역할에 걸맞게 널리 회자되는 일화이다. 오스트리아의 빈 주재 프랑스 대사로 일하다 오스트리아 여황제 마리아 테레지아와 그녀의 딸이자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미움을 산 추기경 드 로앙이 라 모트 백작부인의 사기극에 말려들면서 목걸이사건은 시작된다. 백작부인은 추기경에게 왕비가 문제의 목걸이를 갖고 싶어 하니 목걸이를 사주면 자신이 왕비에게 전해 화해시켜 주겠노라고 했다. 추기경은 가짜의 왕비 메모를 읽고 왕비로 변장한 창녀를 베르사유궁 정원에서 만난 뒤 대금을 분납키로 하고 구입한 목걸이를 백작부인에게 넘겼다. 그러나 로앙 추기경은 첫 분납금을 내지 않았고, 보석상이 왕비에게 대금지불을 요청하면서 사기극은 들통이 났다. 160만 루블이나 하는(당시 노동자 월급은 3, 40루블이었다) 다이아몬드목걸이는 이미 런던에서 조각조각 나뉘어 팔린 다음이었다. 추기경이 감히 목걸이 건을 발설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백작부인이 런던에서 팔아버린 것이다. 바스티유 감옥에 갇힌 추기경은 법정에서 목걸이 사취혐의는 벗었으나 공직에서 해임되었고 라 모트백작부인은 태형과 낙인형에다 종신형을 선고받아 투옥되었다. 이후 영국으로 도망간 그녀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방하는 회고록을 썼다. 부정적인 왕실 이미지 구축에 일조 다이아몬드목걸이사건 어디에도 마리 앙투아네트가 직접 개입한 부분은 없다. 하지만 그 사건은 ‘사치만 추구하는 왕비’라는 이미지와 상승 작용하여 그녀를 못된 왕비로 회자되게 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목걸이사건 소문은 꼬리를 물고 퍼졌고 국민은 무능하고 부패한 왕실과 정부에 더욱 분노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흉년으로 백성들이 빵이 없어 굶주린다니까 “빵 없으면 케이크 먹으라고 그래”라고 말했다나. “보리쌀이 떨어졌으면 쇠고기 먹으라고 그래”라와 다를 바 없는 말 아닌가. 다이아몬드목걸이사건이 없었을 경우 프랑스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상술한데로 루이 16세 때의 프랑스는 정치·경제·사회·이념 모두에서 혁명의 불길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역사에서 ‘불가피한’ 사건은 없겠지만 목걸이사건도 비록 주역은 아니었으되 프랑스를 혁명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데 일조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있는 일본의 미소녀 배우 아오이 유우. 청순한 그녀가 꽃목걸이를 두르고 훌라춤을 추는 장면이 너무도 눈부셨던 영화 훌라걸스는 거짓말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1960년대 중반, 쇠락해가는 탄광촌에 하와이안 센터가 건립되면서 관광도시로 변모한 일본 후쿠야마 현의 실화는 청춘영화에 묵직한 무게의 감동을 남긴다. 석탄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얼굴에 검댕을 가득 묻힌 한 소녀가 전단지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하와이안 댄서’ 모집. 순간 소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져간다. 빠듯한 살림에 동생들을 돌보며, 틈틈이 광산 일까지 도와야 했던 소녀 사나에(토쿠나가 에리)는 처음으로 부푼 꿈에 마음이 설레 온다. 마을에 전단지가 나붙게 된 사연은 이렇다. 석유에 밀려 석탄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탄광이 폐쇄되고 직원들은 정리해고 된다. 마을을 살릴 대책으로 마련한 안이 온천 관광지를 개발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온천 ‘하와이안 센터’를 홍보하는 댄서를 모집하게 된 것이다. 사나에는 잿빛 마을의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친구 기미코(아오이 유우)에게 희망에 들떠 자신의 꿈을 고백한다. 비누로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검댕을 묻히고 평생을 살아가는 대신 춤을 추겠노라고. 항상 손톱 밑에 낀 석탄 때가 불만이었던 여고생 사나에는 키미코에게 함께 춤을 배우자고 조른다. 이들에게 춤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쇠퇴해가는 탄광촌을 벗어날 수 있는 출구이다. 그러나 ‘온천이 정리해고의 주범’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당연히 딸들이 댄서가 되는 것을 반대한다. 회사에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고 관광수입도 올릴 수 있다고 설득하지만 대대로 탄광 일에 종사하며 살아온 주민들은 선뜻 찬성할 수 없다. 이런 시골에 최신식 온천이 들어온다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하지만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탄광이 폐쇄될 거라는 흉흉한 소문은 현실로 나타난다. 평생 광산 일만 바라보고 뼈 빠지게 일한 이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바야흐로 ‘석탄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는 것이다. 문화충격이 가져온 험난한 출발 하와이안 센터에 대한 설명회가 열리던 날. 앞자리에 옹기종기 앉은 몇 명의 여자들의 호기심에 찬 눈이 반짝인다. 울긋불긋한 꽃무늬 훌라티를 입은 센터 부장(키시베 이토쿠)은 “가족과 탄광을 구하기 위해 우리가 나서자”며 훌라춤에 관한 영상물을 튼다. 하지만 엉덩이를 흔들고 배꼽을 내놓은 댄서들을 보자마자 마을사람들은 얼굴이 발개져서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한다. “난 엉덩이 못 흔들어.” “배꼽도 다 보이잖아.” 이곳은 훌라춤이라는 이색 문화를 받아들이기엔 봉건적인 문화가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시골 마을이었던 것이다. 사양 산업이 된 석탄을 대신해 생계를 유지할 일을 찾아야 한다는 현실이 그들 앞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꼽을 내밀고 엉덩이를 흔드는 훌라춤은 천박한기 그지없는 짓이었다. 얼마 후 세련되고 아름다운 춤 선생 마도카(마쓰유키 야스코)가 도쿄에서 내려왔을 때, 남은 지원자는 달랑 4명의 여성뿐이다. 바로 검댕 소녀 사나에와 친구 기미코, 골격이 우람하고 뚱뚱해 남자 같다 놀림 받는 사유리(야마자키 시즈요), 어린 아들을 둔 센터 직원. 마도카의 화려한 춤사위에 흠뻑 빠져버린 이들은 훌라댄서가 되기로 굳게 결심하고 맹연습에 돌입한다. 하지만 이들이 훌라춤을 배우고 하와이안 센터를 건립하는 과정이 쉬울 리 만무하다. 기미코가 훌라댄스를 배운다는 사실에 엄마(후지 스미코)는 불같이 화를 내고, 기미코는 집을 뛰쳐나와 댄스 교습소에서 힘든 생활을 감수한다. 소녀들의 꿈이 된 훌라댄스 하늘과 대화하기 위해 손짓과 몸짓으로 달, 별, 사랑, 눈물 등의 언어를 만들어낸다는 하와이 전통춤 훌라댄스는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늘 교복 아니면 후줄근한 평상복 차림에 머리를 질끈 묶고 다니는 탄광촌 소녀들에게 하늘하늘한 하와이언 전통의상을 입고 곱게 화장한 자신의 모습은 낯설지만 행복하다. 그녀들의 부모들처럼 시커먼 갱도에서 인생을 보내는 것이 당연한 미래였던 아이들에게 훌라댄스는 달콤한 꿈을 선사한다. 부모의 눈을 피해서, 돌봐야 할 동생들과 손에 묻혀야 할 탄가루를 외면한 채 그녀들은 매일 매일 열심히 연습에 몰두하며 구슬땀을 흘린다. 훌라걸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은 두말 할 것 없이 소녀들이 훌라댄스를 추는 장면이다. 그중에서도 미소녀 아오이 유우의 춤추는 모습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가 밤마다 혼자서 연습을 하다 넘어지고 일어서길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하면서도 대견하다. 남모를 상처를 갖고 있는 선생님에게 보내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같은 몸짓들은 애틋한 울림을 준다. 결국 마을을 구하기 위해 소녀들이 댄스 교습소로 다시 몰려들면서 훌라댄스 팀이 정식으로 꾸려진다. 피나는 노력 끝에 드디어 댄스 팀은 전국 각지로 홍보를 위한 순회공연을 떠난다. 이제 마을과 가족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소중한 꿈을 위해 훌라춤을 추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감동을 배가시킨 실화의 힘 영화는 훌라댄스 팀의 성공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산재한 현실의 갈등들을 놓치지 않는다. 세대 간, 사제 간의 갈등, 현실과 이상의 갈등 등에 부딪히면서 마을주민들은 힘을 모으고, 서서히 성장해간다. 훌라댄스는 세대 간 갈등의 주범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갈등을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컴컴한 굴에서 흙을 파고 돌 깨는 것만이 일이라고 생각했던 키미코의 엄마(후지 준코)는 열정적으로 춤추는 딸의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꾼다. “평생 어두운 탄광에서 일하는 게 전부인줄 알았는데 이제야 춤춰서 남 기쁘게 하는 일도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아이들이라면 웃으면서 일하는 새 시대를 만들 수 있을지 몰라요.” 영화 훌라걸스는 변화하는 시대의 조류에 밀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새로운 희망에 대한 믿음을 탄광촌과 훌라춤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통해 보여준다. 시대와 청춘을 고루 담아낸 이야기 구조는 탄탄하지만, 실패한 무용수라는 자괴감에 빠져있는 춤 선생과 재능 없는 댄서들이 역경을 이겨내고 만들어낸 눈물겨운 성공 스토리는 다소 상투적이긴 하다. 또 갱도에서의 아버지의 죽음, 가족의 반대와 같은 갈등 요소들이 너무 익숙한 것도 흠이다. 하지만 1960년대 쇠락해가는 탄광촌에서 관광도시로 변모한 일본 후쿠시마의 유명 휴양지 ‘조반 하와이안즈’의 실화는 영화에 리얼리티를 덧입힌다. 탄광촌을 생생하게 재현한 감독의 탄탄한 연출력은 실화라는 강점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감동을 배가시킨다. 부모님의 눈가 주름이 빚는 삶의 땀내와 가족애, 삶의 애환과 끈끈한 연대가 묻어나는 공동체의 정서가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다. 소박한 공동체에 대한 판타지 훌라걸스는 공동체의 유대를 강조하는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춘 영화이다. 단일한 공동체가 어떻게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긍정적인 비전을 꿈꾼다. 착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공동체. 훌라걸스는 그 이룰 수 없는 판타지를 향해 나아간다. 화해와 연대에 대한 그 소박한 판타지는 개인주의가 득세한 21세기의 사람들에게는 너무 순진하고 무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그 시절만의 판타지이기에 오히려 보는 이의 마음에 애틋함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이 함께 뭔가를 하는 게 의미 있었던 시절, 각박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 시절은 돌아갈 순 없지만 늘 마음 한쪽에 품고 있는 이상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훌라걸스는 추억과 아쉬움에만 매달려 있는 영화가 아니다.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의 무게를 춤과 웃음으로 녹여내고 새로운 변화를 꿈꾼다. 그 춤과 웃음은 시각적 즐거움과 몸의 쾌감을 선사하며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온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춤과 웃음으로 활기를 되찾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기꺼이 훌라춤의 매력에 취하게 하는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훌라걸스는 자신의 틀을 깨고 새로운 비상을 위해 집을 나서는 소녀들을 격려하는 영화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갈 때 현실의 벽은 견고하지만, 성장통을 이겨내고 꿈을 포기하지 않을 때 잿빛 현실은 화려한 미래를 선사할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공동체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함께 힘을 모아간다면 한층 더 의미 있을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제멋대로 변해버린다고 해도, 세상을 살만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소박한 진심이라는 사실을 아직은 믿기 때문이다. *영화정보* 제목 : 훌라걸스 감독 : 이상일 출연 : 아오이 유우, 마츠유키 야스코 제작년도 : 2006년 관람등급 : 전체관람가 (사진설명) 포스터 010 - 011 - 012 -
길거리 인터뷰란 것이 있다. 길가나 골목 입구에 카메라를 대기해 놓고 지나가는 행인을 카메라 앞으로 데리고 와서 짧고 간략한 반응을 말해 보게 하는 식의 인터뷰이다. 제야의 종이 울리는 종각 앞에 몰린 군중들을 배경으로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시민의 소망을 인터뷰한다든지, 정부 당국에서 중요한 정치적 결단 같은 것이 내려졌을 때, 각계각층 시민들의 반응을 알아본다든지 할 때, 등장하는 인터뷰 방식이다. 일반 시청자들이야 이런 인터뷰 장면을 보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그저 아무나 나와서 자기 생각들을 잘들 말하고 가는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터뷰를 직접 진행해 보면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필자는 30대 초반 잠시 방송국 프로듀서로 근무한 적이 있다. 기생충 박멸 운동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을 맡았는데, 시민들의 길거리 인터뷰 장면을 찍어야 했다. 길가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기생충 박멸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길을 막고 물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카메라 앞으로 자진하여 나와서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사람이 없다. 인터뷰할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것이다. 왜 갈 길 바쁜 사람 붙잡고 귀찮게 하느냐 하는 짜증을 보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천신만고 끝에 인터뷰 의사가 있다는 사람을 찾아서 카메라 앞으로 데리고 오면, 그런 사람들은 물음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텔레비전에 자기 얼굴 나오는 것만 정신이 빠진다. 그런 사람일수록 엉뚱한 대답을 쏟아 놓기 일쑤여서, 이후 편집에서 잘라내는 경우가 많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만약 생방송에서 길거리 인터뷰를 하기로 한다면, 어쩔 수 없이 PD는 미리 인터뷰할 사람을 약속하여 정해 놓고 대기시켰다가, 순서대로 출연을 시켜야 할 판이다. 인터뷰의 진정성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이다. 모여든 사람 중에는 속내가 깊고 분별 있는 사람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들은 망설이거나 참는다. 굳이 이렇게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무슨 대단한 구경거리의 대상이라도 되는 듯한 분위기에서 말을 하기에는 적절치 않는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또 방송 화면으로 나가면 온갖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인데, 그것이야말로 번거롭고 요란스러운 작태라고 생각한다. 무슨 대단한 메시지도 아니고, 고작 물어보는 사람 구미에 대충 맞게 응해 주는 단순 역할이니, 그야말로 방송국 PD 좋으라고 해주는 인터뷰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길을 막고 물어보는 일이나, 길을 막고 물어보자는 사람에게 대꾸를 해 주는 일이나 만만치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관용어구 가운데, ‘길을 막고 물어봐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실제로 우리 한국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이다. 뻔한 이치를 외면하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늘어놓는 사람에게 해 주는 말이 바로 ‘길을 막고 물어봐라’ 쯤에 해당할 것이다. 이렇게 상식 수준에서 이 말을 인정하고 나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길을 막고 물어 본다’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면 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떠오른다. 생각과 상상이 여기에 이르면, 길을 막고 물어본다는 말의 저변에 깔려 있는 한국 사람들의 말하기 기질이랄까 말하기 문화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된다. 길을 막고 물어보라는 말 속에는 ‘내가 전적으로 옳고 너는 전적으로 그르다’는 절대적 확신이 들어 있다. 그런데 이 절대적 확신은 때때로 주관적일 수 있다. 본인만, 당사자만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정말 절대적 정당함이 있는 것이라면, 길을 막고 물어보지 않더라도 이미 상대방이 승복하게 되어 있다. 단지 시간이 좀더 필요할 뿐이다. 왜 굳이 길을 막고 지나가는 제 삼자들에게 물어 본다는 말인가. 그것도 길을 막아가면서까지 말이다. 그때 물음과 판단을 요구 받는 길 가던 사람들은 얼마나 타당하게, 얼마나 진지하게 물음에 답할 것인가. 그 제 삼자들은 절대로 선하고 절대로 믿을 만한 사람들인가. 절대적 확신이란 자기 최면에 불과할 때가 많다. 대화적 상황에서의 ‘나’는 상대에 의해서 상대화 되는 것이다. 그 점을 인정해야만 문제를 바로 보게 된다. 길을 막고 물어보라는 마인드 속에는 상대를 100대 0으로 완전 제압하겠다는 일종의 증오 기제가 있다. 네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만천하에 확인시켜 주겠다. 앞으로 낯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하겠다는 심정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의 장본인 가운데는 확실한 제압을 해서 만천하에 알리고 모멸감을 주어 사회에서 매장을 시킬 사람이 혹시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들 일상의 자질구레한 논쟁거리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 논쟁이나 토론도 다 잘 살아가기 위한 방편들인데, 이번 논쟁 한 번하고 다시는 너와는 상종조차 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살기로 한다면, 그건 정말 본말(本末)이 뒤바뀐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세상 이치라는 것이 그렇다. 내가 상대를 100대 0으로 완전 제압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이제는 내가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이긴 것도 있고, 상대가 이긴 것도 있고, 그런 모양새로 살아가는 것이 균형을 이룬 사람살이의 모습이다. 길을 막고 물어보라는 마인드 속에는, 여차하면 사람들이 공공의 공간으로 사용하는 길마저도 막겠다는 발상이 들어 있다. 나의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수단으로 길을 막는 조치까지도 서슴지 않겠다는 것이니, 이 지나친 몰입이 두려울 뿐이다. 길이란 무엇인가. 개인 간의 사소한 논쟁 가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중요한 공공의 가치물이다. ‘길’이 추상적 의미로 승화되면 천명(天命)의 경지에 이르는 것인데, 그 까짓 길쯤이야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는 발상이 들어 있으니, 감정이 문제를 다루는 수단을 어떻게 악화시키는지를 잘 보여 준다. 길을 막고 물어본다는 발상 속에는 이처럼 다소 간의 억지가 전제되어 있다. 이 말을 즐겨 사용하는 우리네로서는 우리의 말하기 기질이 이처럼 잘 표현된 것도 없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언쟁의 당사자는 자기들의 문제를 자기들 수준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동네 사람들 전체의 문제로 끌고 들어온다. 그래서 조용히 자기네들끼리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내가 옳으면 그 옳다는 것을(상대가 잘못이면 상대가 잘못이라는 것을) 상대에게 차분하게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동네방네에 알려, 어떤 위세의 분위기로 제압하려는 발상이 들어 있는 것이다. 얼핏 사람들의 보증을 받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객관성이 보장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무책임한 선동의 힘을 믿는 측면이 없다 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한국 사람들의 언쟁 장면은 예측하기 힘들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정의 면모를 가지는 것이다. 좋게 시작한 대화가 중간에 무슨 연유인지 거친 싸움으로 비화되는 경우를 흔하게 본다. 부부싸움을 해 본 사람들은 다 절감할 것이다. 싸운 뒤 화해를 하기 위해 시작한 대화인데, 도대체 대화를 어떻게 전개하였기에 대화하기 이전보다 더 고약한 싸움의 경지로 되돌아가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본다. 이 모두가 감성이 과잉된 데서 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감성 과잉으로는 갈등과 논쟁을 당사자들이 책임 있게 해결하지 못하게 한다. 감성은 신명을 창출하는 데는 뛰어난 효력이 있지만, 감성이 갈등을 만나면 파국을 부른다. 길을 막고 물어보라는 감성의 마인드로는 나도 이기고 너도 이기는, 윈-윈(win-win)의 경지를 추구할 수 없게 한다. 문제를 차분하고 냉정하게 머리로써 생각할 때 ‘윈-윈’의 지혜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논쟁이 심화될 때는 감정의 불길에 휩싸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지혜를 발휘하는 셈이 된다. 논쟁이 거친 싸움의 파국으로 가는 것을 유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길을 막고 물어보라고 꾸짖는 톤으로 호소하는 모습을 보면서 절대 신뢰의 효과보다는 선동의 분위기를 먼저 느끼게 되는 것은 이 말이 이미 감정의 상투성이라는 맥락에 강하게 기대어서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나는 오늘도 그 어떤 상대를 향하여 ‘길을 막고 물어봐’를 남발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난 가을 김남조 시인이 주신 시집 한 장을 읽으면서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진검을 지닌 이 진검 그것 외엔 가진 거 없는 이는 좀체 칼을 뽑지 않는다 한 남자와 한 여자도 사랑한다는 마음의 진검을 평생 동안 아껴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날에 서로 알고 있었다. 진검·1, 김남조 나는 마음 속 진검은 고사하고 자주 가짜 검을 뽑아들며, 그 때마다 불쌍한 상대를 향하여 ‘길을 막고 물어봐’를 외쳐대며 살아 왔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답고 성숙한 소통은 언제나 나의 것이 될 것인가. 그것은 정녕 신기루인가.
창 너머 빼곡한 숲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에 잠겼다. 옛날에는 겨울이 다가올 때 쯤 되면 책보를 들고 뒷산에 올라 썩은 그루터기와 솔잎을 주워 모아 교실 마루 밑에 쌓아두었다가 추운 겨울에 난로용 땔감으로 사용했고, 땔감이 모자라면 초등학생의 어깨에 지고 온 두서너 개비씩의 장작으로 교실을 따뜻하게 했다. 그 자욱한 연기 속에서도 학교는 즐거웠고, 행복한 배움터였다. 난로에 올려놓은 도시락의 김치 반찬과 뒤섞인 보리볶음밥을 생각하면 지금도 행복하다. 물론 가정형편이 어려워 점심도 못 싸와 맹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던 학생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학교가 행복했고 교육에 희망을 걸었었다. 지나간 일이기에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라고들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사교육은커녕 교과서도 없어 헌책 물려주기 운동도 벌이고, 앞뒤장이 떨어져 나간 전과를 삼사년씩 대물림했지만 그런 전과라도 있는 친구가 그저 부럽기만 했다. 호롱불을 켜고 공부를 하면 “낮에는 머하고 비싼 세기지름만 딸구능겨”하며 일찍 자라던 그 말씀도 그립다. 삐걱거리는 책상에서 몽당연필로 공부하며 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맞춰 부르던 노래가 바로 희망의 노래였고, 그런 희망을 주는 선생님이 있었기에 학교 가는 일이 정말 즐거웠다. 전교생이 가창오리 떼처럼 주먹만 한 고무공을 쫓아 해지는 줄도 모르고 운동장을 뛰어다니던 그 날의 그 행복을 우리 아이들은 알까 모를까? 그런 행복한 학교와 희망교육이 위대한 힘을 발휘해 개천에서 용이 날 수도 있었다. DMB, WiBro가 국제표준으로 채택되는 등 세계가 부러워하는 국민소득 2만 불시대의 IT강국이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행복보다는 허전함에, 만족보다는 불평불만, 그리고 모두 함께가 아닌 ‘나’만, ‘내 자식만’이라는 생각으로 고액의 사교육에 매달리고 심지어는 교육을 찾아 해외로 유학을 가거나 교육이민의 길을 떠나고들 있다. 학교교육 무엇이 문제이고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행복과 희망’은 어디로 간 것인가? 그 ‘행복과 희망’이 사교육에 있고, 또 다른 나라에 있는 것일까? “학원에 가야 되니까 빨리 끝내 달라”는 말에 “학원에 먼저 갔다가 시간이 나면 학교에 와라”고 했던 나의 모습과 학교의 모습이 정말 부끄러웠다. 2003년 학교장이 되면서 ‘21세기 행복한 배움터’를 만들어 학교교육과 한국교육에서 희망을 찾아보자고, 2004년부터 밤 10시까지 개방하는 ‘밤에도 열린 학교’에서 하루 14시간의 보육과 다양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보은군 장학회와 함께하는 숙식 영어캠프, 다문화교육에도 앞장서고 있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 숟가락이 필요하듯,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의 국제화시대는 외국어가 숟가락이다’라는 생각으로, 원어민 강사를 활용한 영어 교육, 조선족을 활용한 중국어 교육과 학교장이 지도하는 일본어 교육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그밖에 지난해 12월 11일에는 농산어촌형 모델학교인 ‘21세기 행복한 배움터’ 선포식도 가졌다. 도시 학교에서 체험을 오는 학교, 세계 각국에서 유학을 오는 학교가 되는 것이 우리 학교의 희망이다. 교육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서울에 있으면 대단한 존재이고 시골에 있으면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 내가 어디에 있든 소중하고 귀한 존재이다. 소외된 곳에서 태어나고, 농산어촌에 산다는 이유로 문화 혜택도 누리지 못하는데, 학교도 통폐합돼 유치원 때부터 한두 시간씩 통학을 해야 하는 서러움을 생각해 보자. 그들이 행복하고, 희망을 찾을 곳이 학교가 아니고 그 어디겠는가? 이명박 대통령당선자께 농산어촌의 한 초등학교 교장으로서 평소의 바람을 말씀드리고 싶다. 초·중등교육에 자율권을 주시겠다는 첫 말씀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경제와 함께 교육도 확실하게 살려줬으면 한다. 흔히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고 한다. 선생님들이 소신을 갖고 교육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선생님들이 존경을 받지 않고서야 어찌 교육이 바로 설 수 있겠는가? 선생님들이 소신과 철학을 갖고 사명감에 불타 신명나게 교육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교권을 살려 주기를 바란다. 대선 교육공약으로 발표한 학교의 자율성 강화, 대입 자율화, 자율형·기능형·특성화고교, 국립대 법인화, 영어공교육 강화, 평생학습 사회 구현 등에 정말 기대가 크다. 이들 교육공약이 잘 실천되어 공교육으로 ‘국민성공 시대’가 열리기를 바란다.
인천시교육청은 2008학년도 특수교육여건 개선 일환으로 유치부 1학급과 초등학교 19학급, 중학교 7학급, 고등학교 10학급 등 총 37개 특수학급을 신·증설한다. 따라서 유·초·중·고등학교에 총 383개 특수학급을 운영하게 되며 특수학교의 급당 학생수는 유치원 4명, 초등학교 7명, 중학교 8명, 고등학교 8명으로 하향 조정하여 특수교육 대상학생의 개별화교육 내실화와 특수교육의 질을 향상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시각장애 대상학교인 인천혜광학교에 안마 침술을 배우는 3년 과정의 전공과 1학급을 추가 설치하는 한편 특수학교에서 고등학교 전공과정을 마친 후에도 직업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을 수 있는 교육지원체제로서 인혜학교와 연일학교에 조리포장, 과·제빵,세차 등 2년 과정을 신설 운영 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시교육청 관계자는 “앞으로도 특수학급 급당 학생수를 하향 조정해 특수학급의 신증설을 적극 추진 할 것이며, 근거리 통학 및 희망학교에 배치되어 교육받을 수 있도록 특수교육 여건을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도 특수학급 신증설 현황으로 덕적초(1)신흥여중(1)금마초(1)부일중(1)옥련초(1), 축현초(1), 청학초(1)담방초(1), 동막초(1), 장도초(1) 석천초(증1), 조동초(증1)중연수중(증1), 성리중(1)해서초병설(1)병방초(1). 작전초(1), 효성남초(1)당산초(1), 경서초(1), 왕길초(1) 부평초(증1), 안남초(증1)가현중(1), 효성중(1), 양촌중(1)하점초(1) 효성고(1), 만수고(1), 은봉고(1),작전고(1), 부흥고(1), 검단고(1), 부광여고(1), 석정여고(1)작전여고(1), 계산여고(1) 등 이다.
-드림 팩토리와 왁자지껄 노래방에서 일상의 놀이문화를 탈피해 보자-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오는 2.1일부터 청소년들의 자유이용실인 드림팩토리와 왁자지껄 노래방을 새로이 운영한다. 학생문화회관에 따르면 드림팩토리는 청소년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그림보고, 책보다 무료해지면 음악이나 영화까지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가능’한 문화카페이다. 책, 음악, 영화, 이야기를 테마로 하는 신 개념의 청소년 문화휴식공간으로 북갤러리, 뮤직갤러리, 디비디갤러리, 인터넷갤러리, 미플 등 5개의 섹션으로 구분하고 다양한 쟝르의 문화, 예술에 대한 전문서적, 음반, 뮤지컬, 오페라, 영화, 검색, 동아리모임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며. 왁자지껄 노래방은 7개실로 청소년들이 스트레스를 풀고 친구들과 어우러져 신명나게 노래 부를 수 있는 열린 문화공간으로 기존의 부정적인 노래방을 탈피하여 고급스런 실내인테리어와 함께 최신식 노래방기기 및 영상녹화장치 등을 갖추어 청소년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드림팩토리와 왁자지껄 노래방은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회원카드를 소지한 중·고교생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며 방학기간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학기 중에는 오후 1시부터 8시까지 운영한다.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최종설관장은 “청소년들에게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 생활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도록 일상의 놀이문화를 바꾸어 보고자 드림팩토리와 왁자지껄 노래방을 구성하였다며 이곳에서 청소년들의 삶에 활력을 주고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자유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1월 30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영어 공교육 완성 실천방안을 발표했다. 영어를 영어로 수업하는 영어전용 교사를 2013년까지 2만3000명을 선발해 6개월의 연수를 통해 계약직 교원으로 채용하고, 현직 영어교사를 매년 3000명씩 심화연수하며, 영어능통 대학생·주부 등 영어전용 보조교사 확대, 2010년부터 초등 3~6학년생의 영어수업을 주당 3시간으로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5년간 약 4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영어 사교육비가 연간 15조원에 달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인수위의 영어 공교육 강화와 사교육비 경감 목표에 공감한다. 그러나 세부 추진방안들은 내용과 속도를 대폭 보완해야 할 것으로 본다. 우선, 영어전용교사제는 기존의 영어교사와 다른 별도의 자격과 역할을 지니기 때문에 영어교사 자격증제도 자체를 뒤흔들 수 있다. 또 학교현장에서 두 유형의 영어교사간의 역할갈등과 학생들의 비교로 인해 영어수업의 효과가 오히려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별도의 전용교사보다는 현재의 예비·현직 영어교사의 능력향상을 꾀하는 것이 보다 실효적이다. 초등 영어교과전담교사의 인원과 능력 향상, 중등의 미임용 영어자격증 소지자의 입직 확대, 현직 영어교사의 심화연수 규모와 프로그램 내실화, 원어민 등 우수 영어강사와 무료 수강의 방과후 학교 운영 등의 방안이 보다 실효성이 높은 방법이다. 회화 등 영어소통능력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영어교육의 전부가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 사교육비 경감이나 글로벌 리더 양성도 중요하지만 영어 공교육 완성을 통해 도달하려는 목적이 무엇인지 교육적 좌표 설정이 필요하다. 인수위는 5년 내에 모든 것을 완성하려는 과욕을 버리기 바란다. 무엇보다 영어교사의 교육적 동력 향상, 학급당 학생 수 감축, 멀티미디어실 등 영어교과실의 확보, 영어 관련 인프라 구축 등 현장의 여건 개선을 우선시하길 바란다. 영어강국을 만들려다 영어망국으로 전락되지 않도록 인수위의 보다 정교하고 현실적인 계획 수립을 기대한다.
단테 [Alighieri Dante, 1265~1321] 13세기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시인. 예언자, 신앙인으로서,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인류에게 영원불멸의 거작 《신곡》을 남겼다. 중세의 정신을 종합하여 문예부흥의 선구자가 되어 인류문화가 지향할 목표를 제시하였다. 주요작품은《신생》,《농경시》,《향연》등이 있다. 피렌체에 단테가 살던 건물이 그대로 보존 되어 있었고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집앞 마당에 단테의 얼굴부조상(맨 위의 사진)을 만들어 놓아 호기심을 끌었다.
“학교혁신의 밑거름은 교실 수업의 질 향상에서부터” 강화교육청(교육장 진익천)은 지난 29-30일 양일간 관내 학급학교 학교교육계획 작성 담당자 연수 및 후반기 초등 교실수업개선 연수회를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있었다. 이번 연수는 학교 교육계획서 작성에 관한 교원들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좋은 수업을 만들기 위한 수업분석을 통해 교사들의 능력을 신장시키며, 교원의 전문성 확보와 교육과정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마련되었는데. 29일에는 관내 교무부장을 대상으로 삼성초 정종숙 교감이『2008 학교 교육과정』작성에 대해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 만들어 갈 학교 교육과정 운영 계획 작성의 실제’라는 주제를 가지고 3시간에 걸쳐 연수하였고, 30일에는 각급학교 교감(인천인동초 김인길, 인천안산초 김윤주, 인천석정초 윤성한)들이 수업 분석의 기본이해와 좋은 수업을 만들 수 있는 대안, '교육과정 편성 운영'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연수를 실시 참가자들로 부토 좋은 호응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