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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을 환하게 물들인 소녀들의 꿈-훌라걸스

1960년대 일본의 한 탄광촌. 쇠락해가는 탄광촌은 문을 닫아야만 했고, 그 자리는 관광 시설이 자리를 잡는다. 이제 새롭게 탄생한 관광시설을 위해 낯선 ‘훌라댄스’를 배워야만 했던, 아니 그 춤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미래를 꿈꿨던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훌라걸스>. 우리나라의 대표적 탄광 지대였던 강원도 정선에 들어선 카지노를 떠올리니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있는 일본의 미소녀 배우 아오이 유우. 청순한 그녀가 꽃목걸이를 두르고 훌라춤을 추는 장면이 너무도 눈부셨던 영화 <훌라걸스>는 거짓말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1960년대 중반, 쇠락해가는 탄광촌에 하와이안 센터가 건립되면서 관광도시로 변모한 일본 후쿠야마 현의 실화는 청춘영화에 묵직한 무게의 감동을 남긴다.

석탄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얼굴에 검댕을 가득 묻힌 한 소녀가 전단지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하와이안 댄서’ 모집. 순간 소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져간다. 빠듯한 살림에 동생들을 돌보며, 틈틈이 광산 일까지 도와야 했던 소녀 사나에(토쿠나가 에리)는 처음으로 부푼 꿈에 마음이 설레 온다.

마을에 전단지가 나붙게 된 사연은 이렇다. 석유에 밀려 석탄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탄광이 폐쇄되고 직원들은 정리해고 된다. 마을을 살릴 대책으로 마련한 안이 온천 관광지를 개발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온천 ‘하와이안 센터’를 홍보하는 댄서를 모집하게 된 것이다. 사나에는 잿빛 마을의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친구 기미코(아오이 유우)에게 희망에 들떠 자신의 꿈을 고백한다. 비누로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검댕을 묻히고 평생을 살아가는 대신 춤을 추겠노라고.

항상 손톱 밑에 낀 석탄 때가 불만이었던 여고생 사나에는 키미코에게 함께 춤을 배우자고 조른다. 이들에게 춤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쇠퇴해가는 탄광촌을 벗어날 수 있는 출구이다. 그러나 ‘온천이 정리해고의 주범’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당연히 딸들이 댄서가 되는 것을 반대한다.



회사에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고 관광수입도 올릴 수 있다고 설득하지만 대대로 탄광 일에 종사하며 살아온 주민들은 선뜻 찬성할 수 없다. 이런 시골에 최신식 온천이 들어온다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하지만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탄광이 폐쇄될 거라는 흉흉한 소문은 현실로 나타난다. 평생 광산 일만 바라보고 뼈 빠지게 일한 이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바야흐로 ‘석탄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는 것이다.

문화충격이 가져온 험난한 출발

하와이안 센터에 대한 설명회가 열리던 날. 앞자리에 옹기종기 앉은 몇 명의 여자들의 호기심에 찬 눈이 반짝인다. 울긋불긋한 꽃무늬 훌라티를 입은 센터 부장(키시베 이토쿠)은 “가족과 탄광을 구하기 위해 우리가 나서자”며 훌라춤에 관한 영상물을 튼다. 하지만 엉덩이를 흔들고 배꼽을 내놓은 댄서들을 보자마자 마을사람들은 얼굴이 발개져서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한다. “난 엉덩이 못 흔들어.” “배꼽도 다 보이잖아.” 이곳은 훌라춤이라는 이색 문화를 받아들이기엔 봉건적인 문화가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시골 마을이었던 것이다. 사양 산업이 된 석탄을 대신해 생계를 유지할 일을 찾아야 한다는 현실이 그들 앞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꼽을 내밀고 엉덩이를 흔드는 훌라춤은 천박한기 그지없는 짓이었다.
 
얼마 후 세련되고 아름다운 춤 선생 마도카(마쓰유키 야스코)가 도쿄에서 내려왔을 때, 남은 지원자는 달랑 4명의 여성뿐이다. 바로 검댕 소녀 사나에와 친구 기미코, 골격이 우람하고 뚱뚱해 남자 같다 놀림 받는 사유리(야마자키 시즈요), 어린 아들을 둔 센터 직원. 마도카의 화려한 춤사위에 흠뻑 빠져버린 이들은 훌라댄서가 되기로 굳게 결심하고 맹연습에 돌입한다. 하지만 이들이 훌라춤을 배우고 하와이안 센터를 건립하는 과정이 쉬울 리 만무하다. 기미코가 훌라댄스를 배운다는 사실에 엄마(후지 스미코)는 불같이 화를 내고, 기미코는 집을 뛰쳐나와 댄스 교습소에서 힘든 생활을 감수한다.

소녀들의 꿈이 된 훌라댄스

하늘과 대화하기 위해 손짓과 몸짓으로 달, 별, 사랑, 눈물 등의 언어를 만들어낸다는 하와이 전통춤 훌라댄스는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늘 교복 아니면 후줄근한 평상복 차림에 머리를 질끈 묶고 다니는 탄광촌 소녀들에게 하늘하늘한 하와이언 전통의상을 입고 곱게 화장한 자신의 모습은 낯설지만 행복하다. 그녀들의 부모들처럼 시커먼 갱도에서 인생을 보내는 것이 당연한 미래였던 아이들에게 훌라댄스는 달콤한 꿈을 선사한다.

부모의 눈을 피해서, 돌봐야 할 동생들과 손에 묻혀야 할 탄가루를 외면한 채 그녀들은 매일 매일 열심히 연습에 몰두하며 구슬땀을 흘린다. <훌라걸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은 두말 할 것 없이 소녀들이 훌라댄스를 추는 장면이다. 그중에서도 미소녀 아오이 유우의 춤추는 모습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가 밤마다 혼자서 연습을 하다 넘어지고 일어서길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하면서도 대견하다. 남모를 상처를 갖고 있는 선생님에게 보내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같은 몸짓들은 애틋한 울림을 준다.

결국 마을을 구하기 위해 소녀들이 댄스 교습소로 다시 몰려들면서 훌라댄스 팀이 정식으로 꾸려진다. 피나는 노력 끝에 드디어 댄스 팀은 전국 각지로 홍보를 위한 순회공연을 떠난다. 이제 마을과 가족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소중한 꿈을 위해 훌라춤을 추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감동을 배가시킨 실화의 힘

영화는 훌라댄스 팀의 성공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산재한 현실의 갈등들을 놓치지 않는다. 세대 간, 사제 간의 갈등, 현실과 이상의 갈등 등에 부딪히면서 마을주민들은 힘을 모으고, 서서히 성장해간다. 훌라댄스는 세대 간 갈등의 주범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갈등을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컴컴한 굴에서 흙을 파고 돌 깨는 것만이 일이라고 생각했던 키미코의 엄마(후지 준코)는 열정적으로 춤추는 딸의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꾼다. “평생 어두운 탄광에서 일하는 게 전부인줄 알았는데 이제야 춤춰서 남 기쁘게 하는 일도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아이들이라면 웃으면서 일하는 새 시대를 만들 수 있을지 몰라요.”



영화 <훌라걸스>는 변화하는 시대의 조류에 밀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새로운 희망에 대한 믿음을 탄광촌과 훌라춤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통해 보여준다. 시대와 청춘을 고루 담아낸 이야기 구조는 탄탄하지만, 실패한 무용수라는 자괴감에 빠져있는 춤 선생과 재능 없는 댄서들이 역경을 이겨내고 만들어낸 눈물겨운 성공 스토리는 다소 상투적이긴 하다. 또 갱도에서의 아버지의 죽음, 가족의 반대와 같은 갈등 요소들이 너무 익숙한 것도 흠이다. 하지만 1960년대 쇠락해가는 탄광촌에서 관광도시로 변모한 일본 후쿠시마의 유명 휴양지 ‘조반 하와이안즈’의 실화는 영화에 리얼리티를 덧입힌다.

탄광촌을 생생하게 재현한 감독의 탄탄한 연출력은 실화라는 강점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감동을 배가시킨다. 부모님의 눈가 주름이 빚는 삶의 땀내와 가족애, 삶의 애환과 끈끈한 연대가 묻어나는 공동체의 정서가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다.

소박한 공동체에 대한 판타지



<훌라걸스>는 공동체의 유대를 강조하는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춘 영화이다. 단일한 공동체가 어떻게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긍정적인 비전을 꿈꾼다. 착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공동체. <훌라걸스>는 그 이룰 수 없는 판타지를 향해 나아간다. 화해와 연대에 대한 그 소박한 판타지는 개인주의가 득세한 21세기의 사람들에게는 너무 순진하고 무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그 시절만의 판타지이기에 오히려 보는 이의 마음에 애틋함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이 함께 뭔가를 하는 게 의미 있었던 시절, 각박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 시절은 돌아갈 순 없지만 늘 마음 한쪽에 품고 있는 이상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훌라걸스>는 추억과 아쉬움에만 매달려 있는 영화가 아니다.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의 무게를 춤과 웃음으로 녹여내고 새로운 변화를 꿈꾼다. 그 춤과 웃음은 시각적 즐거움과 몸의 쾌감을 선사하며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온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춤과 웃음으로 활기를 되찾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기꺼이 훌라춤의 매력에 취하게 하는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훌라걸스>는 자신의 틀을 깨고 새로운 비상을 위해 집을 나서는 소녀들을 격려하는 영화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갈 때 현실의 벽은 견고하지만, 성장통을 이겨내고 꿈을 포기하지 않을 때 잿빛 현실은 화려한 미래를 선사할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공동체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함께 힘을 모아간다면 한층 더 의미 있을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제멋대로 변해버린다고 해도, 세상을 살만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소박한 진심이라는 사실을 아직은 믿기 때문이다.

*영화정보*
제목 : 훌라걸스
감독 : 이상일
출연 : 아오이 유우, 마츠유키 야스코
제작년도 : 2006년
관람등급 : 전체관람가

(사진설명)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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