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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포도주의 나라 그루지야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그루지야공화국은 흑해 동남해안을 끼고 있으며, 카프카즈 산맥 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국내외의 어려운 정세 탓에 불안한 사회이기도 하지만,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곳의 문화유적들은 꼭 한 번 방문해야하는 이유를 더해주는 나라다. 특히 순박한 이곳 사람들에게서는 우리의 정을 느낄 수 있다.

복잡한 역사적 배경 지속되는 국가

평소에 달콤한 포도주를 통해 알게 된 그루지야. 영문으로 하면 ‘Georgia’(죠지아), 러시아어로 ‘그루지야’(грузия), 그루지야 어로는 ‘사크라토벨로’이다.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만큼 다양한 문화와 종교, 인종이 공존하는 곳이다.

작은 영토에 적은 인구의 나라지만 오래되고 독특한 문화와 건물들이 그루지야의 마력에 빠지게 만든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수도 트빌리시(Tbilisi)의 구(舊) 시가지, 40년 된 러시아 지하철, 도심지에 우뚝 솟은 요새, 그루지야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 등은 꼭 빠뜨리지 말아야 할 곳이다. 또 흥미로운 것은 그루지야 정교가 이 나라의 공식 종교이지만, 곳곳에 이슬람 사원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더 작은 이 나라에는 국경선이 참으로 복잡하다. ‘남오세티아’와 ‘압하지야’ 지역들은 지금도 독립을 꿈꾸며 그루지야 정부에 대항하고 있고, 현재 무력충돌은 없으나 외국인은 두 지역에 들어갈 수 없다. 수 년 전 남오세티아에 있는 초등학교에 가스 살포로 많은 어린이들과 지역 주민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었다. 두 지역 외에도 그루지야는 러시아와 아직 전쟁 중인 ‘체첸’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러시아 내 공화국들, ‘잉구세치아’, ‘다게스탄’과도 카프카즈 산맥을 사이에 두고 있다.

그루지야는 구(舊)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별다른 경제 부흥이 없었으며, 높은 실업률로 인해 이 나라 국민들은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다. 이에 따라 그루지야의 정국은 매우 불안한 상황이다.

작은 시골역의 낯선 이방인

지난 해 3일의 짧은 추석 연휴를 맞아 그루지야로 향했다. 연휴 기간이 짧아 장소보다는 비행기 시간에 맞는 나라를 찾다보니 그루지야가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정한 72시간의 짧은 여행지이긴 하지만, 달콤한 포도주의 나라를 방문한다는 생각에 출발부터 설렌다.

수도 트빌리시에 도착하자마자 스탈린의 고향인 ‘고리(Gori)’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이곳의 지하철은 외지인들에게는 그다지 친절하지 못하다. 제대로 된 안내판이 하나도 없어 감각으로 길을 찾아야 했다.



어느 나라나 시장 다음으로 북적거리는 곳은 역시 기차역이다. 눈썹이 유난히 짙은 그루지야 사람들이 표를 사려고 길게 줄을 서 있고, 기차역 구석에 걸린 그루지야 철도지도에는 소련시절 때 만들어진 기찻길이 그루지야 구석구석을 연결하고 있는 게 보인다.

트빌리시에서 고리까지는 한 시간이 소요된다. 한 시간이 지나 역에 도착했는데, 역 어디에도 ‘Gori’라는 간판이 없어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그러자 주변에 앉아있던 승객들이 자기 일인 것처럼 한 마디씩하며 도와주려 하는 광경에 작은 감동을 받았다. 고리를 지나쳐 ‘카슈리’라는 도시에 내렸다. 여행객을 처음 본 것처럼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멀리서 손 흔드는 사람, 다가와 얘기하자는 사람, 사진 찍어달라는 사람…. 필자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어쩌면 바로 이런 이방인이 된 내 모습이 좋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색색의 벽돌로 만들어진 므츠헤타 성당

트빌리시에서 고리로 가는 기찻길 양 옆으로는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 나라의 주 수출품목은 포도주와 광천수로 그루지야는 카프카즈 산맥에서 내려오는 물로 축복을 받은 나라다. 우리나라 주류시장에는 없는 ‘긴즈마라울리’ 포도주와 ‘보르죠미’ 광천수가 유명한테, 특히 보르죠미 광천수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즐겨 마신다고 한다. 그만큼 보르죠미는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에서 흔히 살 수 있으며, ‘긴즈마라울리’는 비싼 포도주로 주변 나라에서 잘 팔리고 있다.

맛있는 그루지야 포도주가 냉대를 받는 곳이 있는데 바로 러시아다. 발단은 러시아와 그루지야 간의 분쟁이었다. 러시아 식품청은 그루지야의 포도 수확량보다 포도주 생산량이 많다고 시비를 걸었고, 이에 대해 그루지야 정부는 러시아 정보 요원을 추방했다. 이 사건으로 러시아는 그루지야에 무역 봉쇄조치를 내렸고, 상점에 진열되어 있던 그루지야 포도주 전량을 즉각 폐기 처분했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아직도 긴즈마라울리 포도주를 찾아보기 힘들다. 같은 연방에 속해 있었던 나라이지만,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 또 이 맛있는 포도주를 먹지 못하는 러시아 사람들이 측은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고리를 떠나 트빌리시 방향으로 30여분 달리자 ‘므츠헤타’에 도착했다. 트빌리시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작은 샛길로 빠져야 하는 곳이라 현지인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찾지 못했을 것이다. 므츠헤타 성당은 다른 색들의 돌들이 쌓여 있는 모습도 멋지지만, 내부의 벽화 또한 우수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그루지야에는 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므츠헤타에 있는 므츠헤타(Mtskheta) 성당, 북부 지역 스와네티(Svaneti)에 있는 우쉬굴리(Ushguli), 그리고 공업도시 ‘쿠타이시(Kutaisi)에 있는 겔라티 사원(Gelati)이다. 세 개의 유산들이 12~13세기에 지어진 독특한 양식의 그루지야 유산들이다. 이 외에도 그루지야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성당들이 나라 곳곳에 중세 시대의 빛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삼박자 갖춘 특별한 여행지

다음 목적지인 ‘아나누리’를 가려고 므츠헤타에서 버스를 수소문 해보지만, 대부분의 버스가 만석이 되서 오니 트빌리시에서 타라고 한다. 트빌리시로 돌아와 ‘아나누리’로 가는 15인승 버스를 탔다. 1시간 정도 북쪽으로 달리는 동안 카프카즈 준령들을 구비 구비 돌아 올라가고 강을 끼고 가다가 보니 아나누리 호수가 나왔다. 저 멋진 산세를 넘으면 체첸공화국이 나온다. 아름다운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전쟁터가 저 넘어에 있다니….



호수를 한가로이 내려다보는 아나누리 요새 안에는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금빛으로 찬란한 내부에 비해 성당 주변은 너무 초라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는 여행자를 입구에서 라벤더 향기가 반긴다.

성당 내부를 찬찬히 둘러본 다음 다시 트빌리시로 돌아가려고 길 한복에 섰다. 지나가는 차를 보기가 힘들다. 마냥 기다리는데 맞은편에서 술 마시던 사람들 중 마무카 씨가 트빌리시 가는 버스는 3시간 후에나 온다면서 같이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한다. 이 사람들은 대낮부터 보드카를 마시고 있다. 소련시대에 전해져 온 보드카가 여기에도 있다.



세 잔은 꼭 마셔야 한다는 이 나라 주도를 따라야 한다면서 마구 잔을 채워준다. 안주는 포도와 치즈. 나이와는 상관없이 무심코 지나가던 사람들이 바로 술친구가 되고, 대낮을 술로 보내는 모습이 낯설다. 도시 길 모퉁이에는 젊은이들이 할 일 없이 삼삼오오 모여 있고, 시골에는 길거리에서 술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는 게 그루지야의 현주소인 듯싶다.

술을 마시던 도중 마무카 씨가 보트로 호수를 구경시켜준다는 걸 겨우 말렸다. 알고 봤더니 그는 모스크바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현재는 그루지야에서 사업을 하면서 아나누리 호수 책임자라고 한다. 그런 과거가 있기에 술 마시던 사람 중에서 러시아어를 가장 잘했다. 비록 술에 취하긴 했지만 그루지야 사람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버스가 오지 않는다. 버스는 언제 오나, 혹시나 버스가 만석이라도 된다면 오늘 트빌리시에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이들과 아나누리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나? 조금씩 불안해 지는 마음이 자리 잡기 시작하는데, 다행히도 버스는 텅텅 빈 상태로 도착했다. 버스는 술에 취한 필자를 태우고 트빌리시로 향했다.

비록 짧은 여행이었지만 지금도 트빌리시의 골목길이 눈에 선하다. 한 지붕에 대여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사람냄새 나는 곳이다. 그루지야는 저렴한 물가, 눈이 즐거운 볼거리, 친절한 현지인의 삼박자가 잘 갖춰진 나라다. 이런 곳이 정치·경제적인 이유로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하루 빨리 안정을 찾게 되길 막연하게 기다려 본다.

* 여행 TIP: 그루지야 물가는 아주 저렴하다, 하루에 30~40$ 정도 경비가 든다. 북쪽에는 스키장이 있지만, 반정부 세력들이 있어서 위험하고, 서쪽에는 흑해가 있다. 주로 터키에서 육로로 들어간다. CIS 국가들 중에 우크라이나와 함께 무비자 방문국이다. 오른쪽으로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이 있는데, 두 나라다 비자가 필요하다. 아직 대사관이 없어서 여행시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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