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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까지 떨어지는 증시, 연초 1700에서 1600으로 내려앉다가 1500까지 곤두박질 쳤던 주가 그래프를 바라보며 한숨만 쉬었던 것이 타인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얘기 아니었던가요? 하지만 주변에서 잘 됐다는 얘기는 모두 내 얘기가 아니라 남의 일인 것만 같습니다. 월급만 가지고 3년 동안 1억을 모았다는 평범한 직장인의 인터뷰에서부터, 무일푼에서 해외부동산 투자 성공으로 준재벌이 되었다는 아무개 씨의 신문기사까지. 우리에겐 멀게만 느껴지는 재테크 월드, 어떻게남들처럼 돈 좀 불릴 수 있을까요? 새는 돈을 어떻게 막지? 재테크 서적의 대부분이 기본적으로 깔고 가는 얘기에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수입의 30~50% 는 우선 저축하라 2) 가계부를 써서 지출을 확인하고, 새는 돈을 줄여라 3) 나만의 중장기 포트폴리오를 구상하고 실행에 옮겨라(가령 3년, 5년 후 목표액 얼마) 사실 이런 건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죠. 알면서도 실천에 옮기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은 넓고 돈 쓸 일, 돈 들어갈 일은 얼마나 많은지요. 게다가 좋은 물건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새로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디지털기기들은 최신사양에 품격 있는 디자인, 신기술을 탑재하고 신 버전을 출시하여 ‘나 좀 사주세요’하며 소위 지름신을 강림케 합니다. 그뿐인가요? 퇴근 후 집에 누워 리모컨이나 돌릴라 치면 좋아하는 의류브랜드의 ‘마감임박', ‘12개월 무이자'의 깜박거리는 홈쇼핑 자막이 심장을 벌렁거리게 합니다. 게다가 냉장고 열어보면 먹을 건 어떻게 하나도 없는지, 부식을 좀 사려고 집 근처의 24시간 대형마트에 들르지만 계산대에서 카드를 긁을 때는 10만 원 정도야 가볍게 넘기는 건 당연지사가 되어버렸습니다. 봄이 되니 여기저기 청첩장과 돌잔치, 칠순잔치 등 넘어갈 수 없는 행사들도 수만 가지 따라오게 되죠. 이러니 줄일 틈 없이 돈이 술술 빠져나가는 겁니다. 결국 ‘합리적 목표' 에 수반하는 ‘굳건한 의지'가 없으면 재테크는 남의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금 이 글에 고개 끄덕이는 분이 있다면 당장 온라인 가계부라도 장만 하실 것을 적극 권유합니다. 쓰기만 하면 뭐하냐는 사람도 많지만, 일단 한 달에 내가 얼마를 쓰고 변동지출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계획적인 소비를 하는데 도움이 되더란 말입니다 온라인 가계부 제공 사이트 모네타 www.moneta.co.kr 이지데이 www.ezday.co.kr 인터넷 가계부 www.gagebu.co.kr 정보에 밝은 사람을 곁에 두어라! 꼭 한두 명 정도 재테크에 뛰어난 수완을 자랑하는 주변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배운다는 자세로 그런 지인들의 행동을 꼼꼼히 살펴보세요. 제게도 늘 자극이 되는 재테크 달인인 선배가 하나 있습니다. ‘투자를 배우고 싶으면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말고 3대 경제지 정독한 다음 나 찾아오라'고 할 정도로, 그는 우선 경제 흐름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많이 알면 그만큼 눈에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주변에 한 ‘투자'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정보력에 밝은 사람들이기도 하죠. 어느 날 선배가 제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재테크는 끊임없는 자기 목표와의 싸움이야. 목돈이 없다면 종자돈부터 모으고자 계획을 세우는 게 우선이지. 3년에 1억을 모으려면 최소 매달 250만 원씩 모아야 하는 거야. 물론 처음에는 힘들겠지. 하지만 3년 후에 1억을 모은 사람은 그 돈을 1억 5천으로 불리는 건 3년간 1억 모은 것보다 훨씬 쉽고 빠르게 달성되지. 그다음 목표도 마찬가지이고….” 내게 맞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게 투자 비결 샤디가 재테크 전문가가 아닌 이상, 저보다 훨씬 많은 비법을 알고 계실 여러분께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 감히 훈수를 둘 처지는 아닌 듯하고요, 올해 갖고 계신 재테크 계획이 있다면 1/4분기가 지난 지금 계획대비 실천의 결과를 한 번 정도 훑어보며 작게는 CMA, 적금, 적립식 펀드에서부터 증권, 부동산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2/4분기의 청사진을 그려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결국 재테크는 꾸준한 관심과 노력의 결과인 것 같습니다. 로또도 꾸준히 사는 사람이 맞는다고 하질 않습니까? 현재 내 상황에 맞는 장기적인 투자플랜으로 성공하는 재테크로 부자 되는 상반기 되시길 기원합니다.
한반도의 봄은 섬진강변을 따라 시작된다. 푸릇푸릇 새싹이 돋고 광양의 청매실 농원에 매화꽃이 만발하면 이에 질세라 구례 상위마을도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린다. 꽃빛깔만큼이나 고운 봄이 찾아오는 것이다. 꽃소식은 남도에서부터 올라온다. 남도의 젖줄인 섬진강을 따라 전해진다. 섬진강 가에 사는 시인은 섬진강을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강이라고 했다. 전북 진안군 팔공산에서 시작해 전남 광양 앞바다에 안착 할 때까지 530리 길을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흐르는 섬진강은 어머니의 가슴처럼 편안하고 정겹다. 섬진강(蟾津江)의 섬 자는 ‘두꺼비 섬(蟾)’자를 쓴다. 고려 때 어느 여름 장마철에 두꺼비가 줄을 지어 몰려들었는데 그 길이가 10리에 달했다는 전설에서 기인한다. 고려 우왕 11년(1385) 왜구가 섬진강 하구에 침입했을 때 수십만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불길함을 느낀 왜구가 광양만 쪽으로 피해갔다는 또 다른 전설도 있다. 삼국시대 전, 섬진강변은 백제와 가야의 싸움터였고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가 섬진강 물목을 경계로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곳이다. 단군 조선 때도 지금처럼 모래가 많았는지 모래내 또는 모래가람이라 불렀고 그 이후에도 모래가 자꾸 쌓여 다사강(多沙江)이라고 하였다. 지금도 하동 부근에는 모래가 많다. 섬진강이라는 이름은 고려 말에 얻었다. 매화꽃비가 내리는 다압면 매화마을 섬진강 줄기를 따라 오르면 바람 속에 매화꽃 향기가 난다.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꽃을 피워 봄을 가장 먼저 알려줌으로서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이 되던 매화는 소나무, 대나무와 더불어 세한삼우(歲寒三友)로 불렸다. 고결한 이미지로 시나 그림의 단골소재로 사랑받는 꽃이기도 하다. 전남 광양시 다압면. 이곳에 이르면 섬진마을이라는 이름 외에 ‘매화마을이라는 불리는 아름다운 동네가 있다. 반짝이는 섬진강 수면 위로 매화꽃이 떠다닌다. 강 건너에서 동네를 건너다보면 수십만 그루의 매화나무가 산언덕에 심어져 있다. 동으로는 섬진강을 경계로 경남 하동군, 서로는 진상면과 옥룡면, 남으로는 진월면, 북으로는 구례군 간전면에 닿아 있다. 뒤쪽에는 전남에서 제일 높은 백운산이 병풍처럼 버티고 앞쪽에는 섬진강이 감아 도니 그림같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이곳 광양은 예로부터 ‘앞문을 열면 숭어가 뛰고, 뒷문을 열면 노루가 뛴다’는 말이 전해올 정도로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아름답고 살기 좋은 매화마을은 봄이 되면 온통 새하얀 매화꽃으로 뒤덮인다. 마을 주변 밭과 산능선 99여만㎡에 운집한 100만 그루의 매화나무 꽃 무리는 그림 같은 섬진강의 운치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보통 3월 중순 경에서부터 매화꽃이 피기 시작한다. 송이송이 매화꽃이 만개하면 한겨울의 함박눈이 가지마다 달린 듯, 수백 가마 팝콘을 하늘에서 쏟아 붓듯 황홀하기 그지없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바람결에 흩날리는 매화꽃잎이 몽환적이다. 이 광경을 보았는지 김용택 섬진강 시인은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라는 시를 지었다.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김용택 매화꽃 이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른 강물에 날리는 섬진강을 보셨는지요 푸른 강물 하얀 모래밭 날선 푸른 댓잎이 사운대는 섬진강가에 서럽게 서 보셨는지요 매화꽃을 감상하기 좋은 곳은 역시 청매실농원이다. 밤나무골 김영감, 고 김오천 선생이 1930년대 일본에서 광부생활로 모은 돈으로 매화나무 5천 그루를 사온 것이 그 시초다. 그의 며느리 홍쌍리 여사가 해충을 쫓아내기 위해 꽹과리를 쳐대며 10만 그루의 매화를 키웠다. 매화나무의 키는 5∼10m이다. 봄이 되면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데 연한 붉은 색을 띈 흰 빛의 매화나무 꽃은 은은한 향기가 난다. 마치 넓은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듯한 모양의 꽃잎이 여러 장 피는데 수술이 많고 그 끝에 노란 꽃가루가 아름답다. 이 꽃이 지며 교대라도 하듯 잎이 선보이는데 달걀 모양인 잎은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있고 양면에 털이 나 있으며 잎자루에 선(腺)이 있다. 꽃이 지고 나면 빽빽한 털이 난 씨방이 공모양의 열매가 된다. 녹색의 열매가 바로 매실(梅實)이다. 매실은 단지 매화나무 열매가 아니다. 집집마다 가정상비약으로 매실농축액을 보관하는데 배에 탈이 났을 때 따뜻한 물에 타서 먹으면 즉시 효과가 있다. 이는 과학적으로 이미 증명된 사실로 매실에는 위장, 소장, 대장의 작용을 활발하게 하고 혈중 콜레스테롤 증가를 억제하는 효능이 있다. 항균작용을 발휘하는 구연산 성분이 레몬보다 5~7배나 많아 적은 농도로도 높은 항균 효과를 보인다. 매실은 5∼6월에 덜 익었을 때 따서 약 40℃의 불에 쬐어 과육이 노란빛을 띤 갈색(60% 건조)이 되었을 때 햇빛에 말리면 검게 변한다. 이를 오매(烏梅)라 하는데 한방에서는 수렴(收斂), 지사(止瀉), 진해, 구충의 효능이 있어 설사, 이질, 해수, 인후종통(咽喉腫痛), 요혈(尿血), 혈변(血便), 회충복통, 구충증 등의 치료에 처방한다. 매화나무의 뿌리는 매근(梅根), 가지는 매지(梅枝), 잎은 매엽(梅葉), 씨는 매인(梅仁)이라 부르는데 역시 약용으로 사용하니 매화나무는 온 몸이 약재인 셈이다. 덜 익은 열매는 소주에 담가 매실주를 만든다. 청매실 농원을 돌아보면 소담한 매화꽃만큼이나 보기 좋은 풍광이 있다. 2500여 개의 옹기가 놓인 농원 앞마당의 장독대다. 가지런히 정렬된 장독대는 마치 사열을 받는 군인처럼 질서정연하다. 장독대 너머로 옥색의 섬진강이 그림 같은 풍경을 펼쳐낸다. 이 옹기 안에는 매실로 담은 고추장, 된장, 장아찌, 절임 등이 가득하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뿌듯하다. 그저 이곳에서 흩날리는 매화꽃을, 굽이치는 섬진강을, 늘어선 장독대를 보며 보고 마냥 그렇게 있고 싶어진다. 노란 수채화 속 동화세상 산수유 마을 매화마을에서 섬진강을 따라 북상하면 전남 구례군과 만난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끼고 있는 고장이다. 고속도로와 다를 바 없는 닦인 19번 국도를 따라 가다 보면 오른쪽에 산동면이 있다. 중국 산둥성 처녀가 지리산으로 시집오면서 산수유나무를 가져와 심었기 때문에 이 같은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생김새가 중국의 촉나라 대추와 비슷한데다 신맛이 두드러져 산수유는 촉산초(蜀散草)라고도 불린다. 구례 산동면의 산수유 꽃은 다압면의 매화보다 일주일가량 늦다. 하지만 막상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금방 천지를 진동시킨다. 매화마을과 산수유마을은 차량으로 30분 거리다. 원래 산수유마을은 지리산 북쪽 자락에 걸친 산동면 위안리 상위마을을 지칭했다. 2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자그마한 산골마을로 해마다 봄이면 산수유나무가 온 동네를 샛노랗게 뒤덮었다. 그러던 산수유 꽃구름대가 아래쪽으로 내려오더니 지금은 하위 월계 구산 대음 등 산동면 전체를 노랗게 물들인다. 산수유는 다년생 나무로 3월초에 꽃망울을 맺기 시작한다. 지리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을 먹고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하면 수줍은 시골 처자처럼 몰래몰래 번져 마을은 이내 노란 산수유 꽃으로 뒤덮인다. 이 시기에 맞춰 산수유축제도 열린다. 산수유두부먹기, 산수유 떡치기, 산수유꽃길걷기 등 산수유와 관련된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지리산온천단지에서 축제가 열리니 한창 때라면 여기서도 충분히 노란 산수유의 정취를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림엽서 같은 진풍경을 원한다면 지리산 중턱의 산중 마을을 답사하는 것이 좋다. 마치 노란 색으로 그린 수채화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 동화 속 분위기다. 봄을 상징하는 노란 꽃에는 무엇이 있을까. 개나리와 산수유, 생강나무가 이른 봄에 노란색 꽃을 핀다. 게다가 세 가지 모두 잎보다 먼저 노란 꽃이 피는 나무다. 개나리는 분별이 쉽지만 산수유와 생강나무는 엇비슷해 꽃잎만 보면 그게 그 꽃 같다. 산수유나무는 나무껍질이 거칠고 생강나무는 껍질이 매끈하다. 산수유는 큰키나무이고 생강나무는 떨기나무(뿌리에서 가는 줄기가 올라와 잔가지가 더부룩하게 자라는 나무)라는 점도 차이점이다. 추천할 일은 아니지만 가지를 꺾었을 때 생강냄새가 나면 생강나무다. 노랗던 산수유 꽃은 11월이면 붉은 보석 같은 열매를 맺는다. 층층나무 과에 속하는 산수유의 열매는 긴 타원형이다. 처음에는 녹색이었다가 8~10월에 붉게 익는데 약간의 단맛과 함께 떫고 강한 신맛이 난다. 10월 중순 상강(霜降 된서리가 내릴 때)에 수확하는데, 비타민 A와 다량의 당(糖)이 함유되어 있다. 동의보감, 향약집성방에는 두통, 이명(耳鳴), 해수병, 해열, 월경과다 등에 약재로 쓰이며 식은땀, 야뇨증 등의 민간요법에도 사용된다고 쓰여 있다. 빨간 껍질과 씨앗을 분리한 뒤 껍질로 차, 술, 한약재를 만든다. 예전에는 마을 처녀들이 열매를 입에 넣은 뒤 깨물어 껍질과 씨를 분리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이 작업을 한 이 마을 처녀들은 앞니가 닳아있어 산동처녀를 쉽게 구분했다고 한다. 다행이 지금은 기계가 작업을 대신하고 있다. 지리산온천단지에서부터 상위마을까지 산수유를 따라가는 길은 10리나 된다. 돌담길과 어우러지는 산수유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금쪽같은 나무다. 산수유 한그루 한그루가 이곳에서는 관상용이 아닌 한해 농사이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산수유는 열매가 실해 다른 지역의 산수유보다 상품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자연적 환경과 토질, 기후가 적합해 육질이 두껍고 시고 떫은맛이 두드러지며 색이 곱기 때문이다. 실제 산동면의 산수유 생산량은 연간 200톤가량으로 국내 생산량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그 넓이가 무려 30만평이다. 열매의 효능도 뛰어나다. 신장계통 및 당뇨병, 고혈압, 관절염, 부인병 등 각종 성인병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최근에는 남성 건강과 정력에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인기 열매로 자리 잡고 있다. 봄이면 봄소식을 가을이면 약재를 선사하는 산수유는 산동면의 보물이다. |chorani7@chol.com 알·아·두·면·좋·아·요 ------------------------ 가는 길 대전-진주고속도로를 타고 진주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 순천방면으로 가다가 옥곡IC에서 빠진다. 2번국도와 만나 하동 섬진강다리 앞에서 861번 도로를 타고 섬진강을 따라 올라가면 매화마을과 만난다. 매화마을에서 861번 도로를 타고 강을 따라 올라간다. 강 건너로 길이 하나 더 있는 데 19번 국도이다. 매화마을에서 화개장터로 유명한 남도대교를 건너 19번국도와 합류, 계속 북상하면 지리산온천단지가 있는 산동마을이 나온다. 온천관광지에서 4㎞가량 떨어진 언덕에 산수유마을인 상위마을이 있다. 구례군청 문화관광과(061-780-2227). 주변관광지 매화마을에서 구례로 향하는 길에는 ‘토지’의 배경인 최참판댁과 악양들판이 있다. 남도대교 근처에는 전라도 사람들이 나룻배를 타고 경상도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 장을 보던 화개장터가 있다. 지금이야 예전의 정취를 느낄 수 없지만 영호남이 화합하는 표상의 지명이기도 하다. 섬진강을 따라 더 오르면 운조루가 반기고 화엄사도 손짓한다. 잠잘 곳 매화마을은 광양시내에서 떨어져 있는 대신 섬진강 건너 경남 하동과 가깝기 때문에 하동군 화개면 일대 숙박시설을 이용하거나 매화마을 인근의 가정집 민박을 해야 한다. 산수유마을은 축제가 열리는 지리산 온천단지 주변에 호텔과 모텔 등 숙소가 많다. 지리산온천관광호텔(061-783-2900), 지리산송원리조트(780-8000) 등.
‘조사 편’ 연재 8개월의 질주를 잠시 멈추고 2007년 7월부터 2008년 2월까지 8회에 걸쳐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말’에서는 ‘로-에’, ‘에-에서’, ‘조차-까지-마저’, ‘같이-처럼’, ‘와-랑’ 그리고 ‘관형격조사 의’까지 줄기차게 ‘조사’를 다루어왔다. 이제까지 다루어왔던 명사나 동사, 부사 등과는 달리 조사는 자립성도 없고 그렇다 할 뚜렷한 의미도 없다. 다만 말과 말의 관계를 나타낼 뿐이다. 한복이라면 옷고름이요 화학반응이라면 촉매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아 다르고 어 다른’ 말뜻을 다루는 데 다른 때보다 글쓰기가 훨씬 까다로웠다. 모자란 능력을 탓하기 일쑤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막상 글을 써놓고 보니 딱딱하기 이를 데 없다. 지금까지 쓴 ‘조사 편’에 읽는 재미를 가미하려면 맛나고 곰삭은 글로 다듬어 내놓아야 할 것 같다. 8개월 동안 인내와 끈기로 졸고를 읽어주셨을 독자 여러분께 큰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다. 설날 연휴에 집안에 들어앉아 마음먹고 ‘조사 편’의 마지막 주자인 주격조사 ‘은/는-이/가’를 쓰려고 했었다. 하지만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머리만 아프고 도통 진척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쉬어가기로 했다. 높은 산에 오르기 전 숨고르기를 하는구나 하고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란다. 신성하고 정결한 희생양 오늘은 평소에 생각하던 ‘희생’과 ‘피해’에 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려 한다. ‘희생’과 ‘피해’라고? 어? 이건 ‘아 다르고 어 다른’ 정도가 아니라 뜻이 분명히 구별되는 말이잖아? 이렇게 반문하실 법하지만,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다음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원폭 희생자인가 원폭 피해자인가? 기름 유출 사고의 희생자인가 피해자인가? 만약 둘 다 성립한다면 과연 희생을 당하는 일과 피해를 입는 일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희생’과 ‘피해’는 둘 다 어떤 손실을 당하거나 해를 입는 상태를 가리키지만 그 대상의 성격이 좀 다르다. ‘희생’에는 본디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소, 양 따위의 산 짐승을 가리키는 뜻이 있다. 제의와 관련이 깊은 만큼 ‘희생’의 본질적인 요소는 신성함이다. 희생양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희생’의 대상은 신에게 바치는 신성하고 정결한 것이며 거기에는 혼이나 목숨이 깃들어 있다. 반면 ‘피해’의 대상은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아무리 소중한 것일망정 신성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다. 희생물로 바친 돼지의 영혼은 신에게 기원을 전해주는 영물이 되지만, 홍수에 떠내려간 돼지는 재산의 피해를 가져다줄 뿐이다(돼지를 예로 든 것은 통상적인 돼지의 이미지와는 달리 돼지에게도 혼이 있음을 말하고 싶었을 뿐 결코 돼지를 폄하하려는 뜻은 없다). 자기피해는 있을 수 없다 희생은 자발적이고 의식적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가 특별하고 심오하다. 희생물로 삼으려고 짐승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결국 자기 목숨을 대신해서 바치기 위함이 아닐까. 원래 기독교에서는 소명에 따라 몸을 바치는 것을 ‘헌신’이라고 하여 가장 고귀한 자기희생으로 여겼다. 나아가 생명체가 아니라 하더라도 공물이나 제물은 단순한 물질이나 소유물이라기보다 자신의 일부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피해’의 대상은 자신의 일부라기보다는 자신에게 속한 것, 자기가 소유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자기희생’이라는 말이 자연스럽다. ‘희생’은 굳이 종교적인 토양에 뿌리를 내리지 않을지라도 다른 사람이나 어떤 일을 위해 자신의 몸이나 재물 같은 귀중한 것을 바치는 행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피해’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희생적’인 자세나 마음가짐, ‘희생정신’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피해적인’ 자세나 마음가짐, ‘피해정신’은 성립하지 않는다. ‘피해’는 어디까지나 자기가 갖고 있는 재산, 명예, 신체 따위에 손해를 입는 일이다. 따라서 보험금을 노리는 것처럼 딴 뜻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결코 자발적인 피해 같은 것은 애당초 있을 수 없다. 그래서 ‘희생하다’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행위를 지칭하는 동사로서 버젓이 사전에 올라 있지만 ‘피해하다’는 동사가 될 수 없다. 무엇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것 소유물은 어디까지나 나와는 별개의 물건(대상)일 뿐이기에 손해를 입거나 잃어버리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피해 보상’이라는 말이 가능하다. 그러나 ‘희생’은 스스로 남을 위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기 자신(혹은 그 일부)을 바치는 것이지 결코 어떤 손해를 입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아무리 보상하려도 해도 보상할 수 없다. 따라서 돈으로 환산하는 것을 전제로 삼는 ‘피해액’이란 말은 두루 쓰이는 반면 ‘희생액’이란 계산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말 자체가 성립하지도 않는다. 물론 피해에는 정신적 피해도 있으므로 이것 역시 원칙적으로 보상할 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률의 테두리에서는 가시적인 형태로 쌍방의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정신적 피해도 물질로 환산해서 판결을 내린다. 이를테면 스토커 갑은 피해자 을에게 정신적 피해로 입은 몇 백만 원을 주라는 식이다. 희생자의 경우는 이와 좀 다르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한결같이 잘못을 시인하고 사죄하기를 바랄 뿐이며 물질적 보상을 2차적인 것으로 여긴다. 앞에서 “원폭 희생자인가 원폭 피해자인가? 기름 유출 사고의 희생자인가 피해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물론 두 가지 다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원폭이나 기름 유출 사고는 뜻밖에 벌어진 재난이므로 여기에 자발적인 ‘희생'이란 뜻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게 보면 '피해자'가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 피해자들 덕분에 전쟁이나 생존, 환경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 깊은 성찰과 반성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들을 '희생자'라고 일컬을 수 있는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물론 ‘희생’의 대상이 아무리 신성하고 정결하다고 해도 누구(혹은 무엇)를 위한 ‘희생’이냐에 따라 원통하고 억울한 ‘희생’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을 역사는 늘 증언해주지만 말이다. ‘희생’타에 박수를 보내는 까닭 세상은 자발적인 ‘희생자’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이것은 피해를 입은 사람한테 표명하는 유감의 뜻과 차원이 좀 다르다. 여기서 희생자가 영웅이 되는 구조를 엿볼 수 있다. 야구만큼 ‘희생’을 작전으로 구사하는 스포츠가 또 있을까 하는 인상마저 풍길 정도로 스포츠 중에서는 야구가 특히 ‘희생’과 친근한 듯싶다. 전체의 승리를 위해 희생구, 희생타, 희생 번트, 희생 플라이 등 ‘희생’이 빈번하게 활용된다. ‘희생’타를 날린 선수는 아웃을 당해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퇴장하지만, 덕분에 자기 팀 선수가 진루를 하거나 득점을 하게 되면 그 공을 인정받고 영웅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대의를 위해 ‘희생’을 한 사람은 만인의 존경을 받고 영웅으로 취급된다. 거꾸로 말하면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희생’이 필요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성경 구절이야말로 ‘희생’의 진정한 의미를 나타낸다. 결국 희생은 본질적으로 무고한 희생이 될 수 없고, 반드시 희생의 당사자나 희생물이 지닌 원래의 가치보다 더 큰 가치의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약속을 내포한다. 희생이 희생으로 끝나지 않고 언젠가 그 진정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으리라는 예정이야말로 희생정신이 끊어놓은 천국행 표일 것이다.
“재미있는 책 만들기로 창의력 키워요” 경기 고양 장성초(교장 박기준) 장수철 교사의 수업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장 교사의 독서교육은 지겨운 책 읽기, 독후감 쓰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책은 더 이상 공부가 아닌 재미있는 놀이다. 장 교사의 남다른 수업법은 다름 아닌 북아트(Book Art). 북아트는 수공예 책을 만들어 내는 예술분야로 책을 만드는 초기 작업부터 책의 내용을 구성하고 완성하는 작업까지 책에 관한 모든 과정을 사람의 손으로 직접 이뤄내는 것이다. 영국의 교육 예술학 학자이자 북 아티스트인 폴 존슨(Paul Johnson)이 북아트를 아이들의 창의적 표현력을 이끌어 내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체계화하면서 널리 교육에 활용되고 있다. 장 교사는 “책을 읽고 쓰는 기술적인 부분은 지도할 수 있지만 아이들이 정작 글쓰기를 좋아하고 재미있게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흥미를 느끼게 할까 고민하다가 북아트를 접목시키게 됐죠”라고 말했다. 기획부터 작품 완성까지 스스로 해내는 통합 활동 창의성 교육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그가 북아트를 처음 접한 것은 2004년. 책 만드는 것이 창의력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 시작했다가 북아트의 매력에 푹 빠졌다. “북아트의 매력은 무궁무진 합니다. 책 만드는 방법을 어떻게 응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의 창의력을 이끌어낼 수 있어요. 지금도 책 만드는 과정에서 내놓는 아이들의 아이디어 하나하나에 깜짝 놀라고는 합니다.” 북아트는 아이들 스스로 한 권의 책을 기획하고, 그 안에 자신의 생각과 느낌들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서 최종 완성하는 단계까지를 직접 하는 ‘프로젝트 활동’이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생각이나 느낌을 글쓰기나 그림을 그리는 등 따로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책 만들기를 통해 모두 통합해서 한다. 직접 책의 공동 저자가 되는 경험은 협동심과 창의성을 길러준다. “북아트는 그리기, 글쓰기, 만들기, NIE, 논술 등이 함께 어우러진 통합교육이 가능합니다.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재미있다는 것이에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접해 온 책을 스스로 만든다는 데 큰 희열과 기쁨을 느끼고 만든 책을 전시함으로써 자신감을 얻게 되죠. 책의 내용을 채우는 과정도 재미있습니다. 가족 이야기로 꾸밀 수도 있고, 수업 내용을 담을 수도, 여행 후기를 쓸 수도 있어요. 누구나 독창적인 책을 만드는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수업 위해 국회 모양 책, 세계지도 멀티북 등 구안 장 교사는 북아트를 독서교육과 특기적성 수업뿐 아니라 모든 수업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직접 학습내용에 맞춰 책을 개발하면, 아이들이 모둠 학습을 통해 책의 내용을 구성하고 완성한다. 그가 아는 북아트의 종류만 해도 30여 가지. 폴드형식(아코디언처럼 접는 책), 코덱스(일반적인 책), 팬(부채처럼 돌리는 방식), 블라인드(커튼 블라인드 형식), 팝업(펼치면 입체적으로 튀어나오는 방식) 등이 책 만드는 대표적인 방법인데 수업에 맞는 책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고되면서도 보람 있는 일이다. 사회과 수업을 위해 국회, 청와대 모양의 책과 커다란 세계지도를 접으면 각 국가의 특징을 볼 수 있는 멀티북을 구안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17대 대통령 후보들의 약속’이라는 주제로 책을 만들었다. “각 교과, 단원에 어울리는 책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 봐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가장 힘들지만 교과 내용에 딱 맞는 책을 구안해서 아이들의 작품을 담아낼 때의 보람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죠.” 하지만 평소에 책을 개발한다는 쉽지 않은 일. 장 교사는 주로 방학을 이용해 교과 내용을 재구성하고 북아트를 적용할 단원을 골라 어울리는 책의 모양을 개발해 준비한다. 4년째 연구하다 보니 제법 노하우도 쌓였고 장 교사의 재미있는 수업이 입 소문이 나면서 수업 노하우를 배우려는 교사들이 주축이 된 ‘북아트활용교육연구회’도 만들어져 체계적인 교수·학습법을 연구하게 됐다. “가르치는 학년이 달라지는 초등학교 특성상 혼자 연구하기 벅찰 때가 많았는데 주변에서 함께 연구하는 분들이 생겨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책 재료비 부분 등 어려움이 많아요. 매년 200만 원 정도의 예산 지원이면 종잇값 걱정 안 하고 아이들과 얼마든지 책을 만들 수 있을 텐데 늘 아쉽습니다.” 책 만들기, 그 무한한 가능성 장 교사는 요즘 ‘북아트를 이용한 쓰기 교육’을 주제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북아트를 수업에 적용해온지 4년, 앞으로 6년을 더 연구해 10년째 될 때는 북아트 수업 전문가가 되는 것이 목표다. “우리 공교육이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저뿐 아니라 교사 개인이 가지고 있는 소질을 잘 계발해서 수업에 적용한다면 얼마든지 재미있는 수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의 수업이 즐거우면 교사로서의 자긍심도 높아지고 학부모에게도 열심히 하는 교사로 평가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수업을 해나가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파주에 있는 전문계고등학교다. 새 학년 새 학기가 되면 늘 치르는 곤혹스러운 일들, 결석생이 늘어만 가는 현실, 아이들은 고개 숙이고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오늘은 왜 이리 늦었니?” “어머니가 안 계셔요. 그러다 보니 늦잠을 잤어요.” 어딘가 모르게 기가 꺾여 있고 서로의 눈치만 살피는 아픈 풍경들…. 인문계고에 진학하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불우한 가정환경 탓으로 실의에 빠져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의기소침한 상태로 하는 일에 자신감도 없었고 풀 죽어 지내는 그들의 모습은 한마디로 절망이었다. 그들에게 뭔가 얘기할 수 있는 공감의 장이 필요했다. 그래야만 그들에게 내일의 비전을 말할 수 있고 희망을 말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고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속마음을 그림으로 말하는 일이었다. 자신의 불만이든, 기쁨이든 볼펜 하나로 열심히 그림으로 표현하는 일, 때로는 수업 중에 자신의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10년 후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고, 자신의 가족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 첫 시작은 2003년 3월 13일이었다. 어느새 5년이나 되었다.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우리의 첫 만남은 어설프게 시작되었다. 절반의 학생들이 아직 등교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게 한 달이 되어가고 이제 푸른 오월을 준비할 무렵이었다. 처음에 아이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기 싫어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또래끼리 모여서 정을 나누면서 자신들의 아픔도 말하고 또 즐거움을 맘껏 토로하기 시작했다. 서로 발표를 기피하고 앞에 나서기를 거부하던 학생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고 서로의 성취감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으면 좋으련만, 그들은 말이나 글로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낙서와 그림 그리는 일을 시작했다. 그래서 발전한 모임이 바로 ‘장미문학회’라는 작은 모임이다. 먼저 포털사이트 다음에 인터넷 카페(cafe.daum.net/jangmimunhak)를 개설했다. 학생들이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든 국어 글짓기와 숙제는 인터넷을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숙제를 잘 한 학생에게는 도서 상품권도 나눠주고, 맛있는 간식도 서로 나누었다. 때론 자장면과 탕수육으로 그들을 격려했다. 어느덧 107명의 회원이 가입해서 활동하기에 이르렀다. 매년 각종 백일장 대회나 글짓기 대회에는 무조건 출전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는데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파주시 대회는 물론이고 경기도 대회, 전국 글짓기대회에서도 입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업을 빠지고 글짓기 대회에 나간다는 즐거움 때문에 문학회에 가입한 학생이 많았다. 학교 수업에 얽매여 있기보다는 답답한 교실을 벗어나 자유롭게 열린 공간으로 줄달음치고 싶어 했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아픈 세계가 있었기에 뭔가 얘기하고 떠들고 싶은 뭔가가 분명 있었다. 자유롭게 말하고 얘기할 수 있는 그 어떤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사실, 누군가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어야 함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그들과 눈을 맞추지 못했고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다. 장미는 우리 학교 교화다. 이름에 걸맞게 ‘열정적으로 살아가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푸른 오월의 붉은 장미처럼 향기롭고 빛나는 삶을 살자’는 의미도 있다. 장미문학회는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하나의 희망이다. 처음 우리들의 마음을 모은 곳은 지금은 도서관이 된 자리인데 그 때는 붉은 장미로 온통 가득한 명상의 숲이 있었다. 오솔길을 따라서 걷다가 잠시 앉아서 얘기하고 붉은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우리들의 소망을 적었다. 어쩌면 장미는 나와 우리 학교 학생들의 만남을 가져온 열정적인 매개체였다. 우리들은 모두 뭔가에 목말라 있었다. 열정의 감로수를 마시고 싶었다. 축 늘어진 삶이 아닌 빛나는 열정을 꿈꾸고 있었다. 푸른 사월과 오월의 장미처럼.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장미문학회다. 전문계고 학생들에게 사실 자랑하고 내세울 만한 것이 그리 없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의 학생들도 있고 한 부모 가정, 조손부모 가정의 아이들이 참 많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어떤 긍지나 자부심은 찾을 길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성적을 얘기하면 언제나 고개를 숙여야 했고 부모님, 가정사 얘기를 하면 풀이 죽어 어느새 조용해지고 만다. 그 때문일까? 그 어떤 것으로도 인정을 받은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또 인문계 학교가 아닌 전문계고에 진학했다는 자괴감은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의 속내를 쉽게 열지 않는다. 그들과 하나가 되어 공감하려면 수다를 떨고 공도 차고 목욕탕도 함께 가봐야 한다. 그래야 인생 문제도 얘기하고 때론 자신들의 아픔을 쉽게 말하곤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자신이 그린 그림에 대해 설명을 하기에 이르렀고 그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가슴 속에 묻은 속내 이야기를 차츰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카타르시스라고나 해야 할까? 그리고는 글로 적는 일이 익숙해지기 시작 했다. 수업 시간 마다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짧은 글로 표현하는 일이 거둔 작은 발전이었다. 어느덧 서로에게 친근해지고 환한 웃음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그림 그리는 일은 그렇게 언제나 즐거움이었다. 처음엔 학생들이 엉거주춤했었다. 뭘 하는지 몰랐고, 왜 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가슴 저린 이야기들이 하나, 둘 술술 나오기 시작하더니 가슴을 맞대고 서로 울기도 했다. 때론 우스꽝스런 말과 글에 배꼽을 잡고 웃는 일도 참 많았다. 장미문학회 시화전을 시작한 지 어느덧 5년이 흘렀다. 작년까지 교내 행사로 진행되었던 시화전, 이제 학교가 아닌 세상을 향해 그들의 가슴을 열 때가 온 것이다. 교내 시화전에 대한 잔잔한 소문이 번지면서 지역사회에서 전시 요청이 연이어 들어왔다. 파주시 청소년 문화의 집 전시를 했고, 파주시 우수 동아리 경연대회에 참여하는 기쁨도 있었다. 지난해는 2007년에는 경기문화재단에 공모한 청소년 문화 활동 우수단체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지원금이 제법 컸다. 아이들은 날뛰듯 기뻐했고 얼굴엔 싱글벙글 신나는 표정이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영광된 일이던가. 아이들에게 좋은 붓과 멋진 그림물감도 사줄 수 있었고 더 좋은 캔버스를 사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더운 날 아이스크림 하나라도 더 사줄 수 있어 기뻤다. 이런 사연이 알려지면서 많은 출판사에서 우리를 지원해 주셨다. 월간 샘터와 새마을 문고에서 100여 권씩 좋은 책을 보내주었다. 그래서 새로운 마음으로 아침 독서운동도 시작했다. 이제 학급문고를 만들어서 많은 학생들과 글 읽는 즐거움에 푹 빠지고 싶다. 장미의 이름으로 시작한 우리들의 만남, 이제는 꽃을 피워서 이웃에게 향기를 나누는 아름다움이 되고 싶다. 얼마 전 영화배우 안성기가 나온 한 은행의 광고를 본 적이 있다. 친절은 실력이라는 것이다. 사실 지금 시대는 지식의 능력만으로 세상을 살아가기가 그리 쉽지 않다. 때론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이 필요한 세상이다. 요즘, 의사, 검사, 변호사라는 직업이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나는 시대가 되고 있지 않든가. 지금은 문화가 사회를 이끌고 있는 세상이다. 탁월한 재능(끼)이 이끄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 학생들에겐 다양한 능력이 잠재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끼와 열정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많은 문화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오는 5월에 파주시 근린공원에서 열릴 ‘제6회 장미문학회 시화전’을 준비하고 있다. 교내가 아닌 세상에서 우리들의 향기와 빛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오는 6월과 11월에는 파주 청소년 문화의 집으로부터 전시 초청을 받았다. 전문계고 학생들이 시화전을 연다고 하면 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혹시 지난 시절, 학업에 대한 편견을 갖고 우리들을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두렵지만 그 편견에 도전해 보련다. 시화전이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왔다. 현수막도 달아야 하고 시화를 걸 이젤도 준비해야 한다. 이리저리 홍보문을 발송하고, 멋진 시화집도 만들어야 한다. 분주하긴 하지만 이처럼 두근거리는 설렘으로 가슴 벅찬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희망이 있기 때문이리라. 꿈과 사랑이 함께 하는 제6회 장미문학회 시화전, 그 슬로건처럼 ‘아름다운 글로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젊은 손길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최근 세계 각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학교변화 동향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학교현장의 의미 있고 본질적인 변화를 강력하게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개선에 대한 관심은 그동안 수차례 추진되었던 교육개혁과 일련의 연속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강조점에 있어 주목할 만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학교 현장의 변화를 강조하는 최근의 동향은 지금까지의 교육개혁이 학교현장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데 대체로 실패했다는 반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범세계적으로 학교 변화를 추구하기 위한 이러한 노력은 결국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동시에 그에 따른 책무성도 증대시키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향후 미래사회에서는 기능의 분화와 구조적 복잡성이 더욱 증대될 전망이고, 이러한 사회에서는 중앙집권적이고 획일적인 통제에 의한 교육체제 운영은 부적합하다. 미래사회에서는 지역별, 학교별 특성이 고려되고 융통성이 발휘되는 자율성이 주어진 체제가 보다 적합하다. 단위학교가 교육체제의 중심축을 형성하도록 구조를 개편하는 일은 현재의 관료적 중앙집권체제를 개편하고, 실질적 자율화를 통해 단위학교가 행사할 수 있는 자유 재량권의 넓은 공간을 확보해 주는 일이다. 단위학교의 교육활동에 있어서 재량권을 갖도록 하는 이른바 ‘학교단위자율경영제’가 정착되어야 한다. 자율은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는 일이다. 즉,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하여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를 가리킨다.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하였을지라도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제3자가 알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외부의 압력을 받아 행동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율은 스스로 합리적인 판단에 의하여 행동으로 나타난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판단의 준거로 사용되는 것은 합리성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율이란 인간의 이성이나 사물의 이치에 비추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여 행동하고, 그 결과에 대하여 책임지는 것을 말한다(신재철 외, 2003). 해방 이후 우리의 교육은 공공재이며, 공공성이 강하기 때문에 정부가 학교교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그 결과 국·공립학교가 많이 생겨나고, 사립학교라 하더라도 정부의 통제에 놓여 우리 교육은 사실상 정부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주도로 교육이 이루어질 경우,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교육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형평성의 논리가 자연스럽게 뒤따르게 되므로, 이는 모든 초·중·고등학교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획일성과 평준화라는 교육정책을 가능하게 하였다. 자율성이 확보되지 못한 교육이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나아가 교육 수요자의 요구에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점은 경제학적인 논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학교를 교육서비스를 생산하여 판매하는 기업으로 인식하는 관점으로 보았을 때, 교육서비스 생산하는 데 있어서 외부 시장거래를 조직 내의 내부거래로 전환함으로써, 이를 체계적이며 효율적으로 공급하는 조직이 학교이므로, 학교교육은 교육서비스의 공급자와 소비자의 선택 자유가 보장될 때 가장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학교 운영이 자율화되면 교육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다양한 학교가 출현할 것이며, 소비자는 자신의 소질과 기호, 특성에 맞는 학교를 선택하여 자신의 생산성을 높이고, 교육의 경쟁력 제고에도 기여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이러한 경제논리를 따지지 않더라도, 이미 세계적인 학교운영의 패러다임은 자율화와 다양화를 기본 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학교의 자율경영은 시대적 변화에 부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단위학교 자율경영의 방향 단위학교 자율경영은 특정한 학교경영체제라기 보다는 학교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권한을 정부나 교육청으로부터 단위학교로 이양하여 학교운영의 자율성과 책무성을 강화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을 의사결정에 폭 넓게 참여시키는 학교경영의 자율적 형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김성열 외, 2006). 따라서 단위학교 자율경영은 권한 이양을 통한 학교자율권의 강화, 학교경영 과정에 다양한 관련자들의 참여 확대, 자율운영에 따른 책무성 강화 등을 특징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은 지금까지 중앙정부의 교육시책 수행에 그 기능이 집중되어 왔기 때문에 학교의 자율성이 사실상 거의 없어, 우리의 실정에서 완전한 학교단위의 자율경영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러 가지 교육 분야의 변화에 따라 학교경영 구조 역시 크고 작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으며, 교장의 경영철학과 의지에 따라서는 학교 단위별로 특색 있는 학교경영을 모색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 학교경영구조 변화의 주요 내용을 보면, 새로운 형태의 학교단위 자율경영 중심의 학교는 자율과 책임 위주의 학교경영, 민주적 의사결정, 다양한 교육과정과 수요자의 선택권 확대, 재정 운영의 자율성 제고 등을 특징으로 한다. 교육은 그 본질적 특성상 자율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교육이 추구하는 가치와 목적 안에 이미 자율의 요소와 자율주장의 근거들이 내재해 있고, 이에 따라 그러한 가치와 목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교육활동의 특성이 또한 자율성 요구의 정당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학교의 자율성 개선을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단위학교의 독자적인 의사결정 권한이 증대되어야 한다. 즉, 상급 행정기관으로부터 단위학교에 많은 권한이 이양되어 단위학교가 상당한 재량권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권한의 이양1)은 지엽적인 사항보다는 교육과정, 인사, 재정 등의 핵심 사항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단위학교 자율경영의 저해요인 가. 대표성 부족한 학교운영위원회 단위학교의 의사결정(심의)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는 10여 년의 역사를 바탕으로 학교를 구성하는 주요 기구로서 자리 잡고 있으며, 나름대로 기여한 바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명실상부한 학교의 의사결정기구로 작용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우선 심의영역이 제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학교교육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 학업성취도 등과 관련하여서는 역할이 미미하다. 여기에다가 위원의 대표성 확보가 미흡한 문제도 학운위가 도입된 이래 지금까지 개선되지 못하는 상황에 있고, 위원의 전문성 부족 문제도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 그밖에 교내의 각종 위원회는 교장의 자문기구로서 역할을 해내고 있으나, 자문기구가 갖는 한계 때문에 교장의 일방적 의사결정을 견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나. 획일적인 교육과정의 운영상 한계 교육과정의 운영에서도 한계가 있다. 현재 학교의 교육과정 결정권은 국가수준에서 대부분이루어지고, 그 다음이 교육청이며, 단위학교는 권한의 여지가 가장 적다. 물론 과거에 비하면 최근에는 학교교육과정을 편성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 있기 때문에 권한의 여지가 확대되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실제적으로 자율성을 발휘하는 영역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교육청에서 장학지도나 학교평가 등을 통해 획일적인 기준을 가지고, 단위학교의 교육성과를 확인하고 점검하는 일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는 단위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수의 부족으로 자율성을 발휘하기보다 기본업무의 수행에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다. 학교 재량권 없는 교원 인사권 교원 인사권은 대부분 교육감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위학교의 인사 재량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재량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제도의 관행으로 인하여 실질적 재량권을 행사하기 쉽지 않다. 예를 들면, 교장이 소속직원의 근무성적을 평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나, 승진에 임박한 교사에게 좋은 점수를 주는 관행 등이 있다. 행정실장에 대한 평정도 대상자가 한 명밖에 없어서 좋은 점수를 주는 것이 관례이고, 행정직원에 대한 승진이나 전보권이 실질적으로 교육청에 있기 때문에 실질적 권한을 갖기가 어렵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권한행사 수단이 될 수 있는 보수의 경우도 단위학교에서는 거의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실정이다. 라. 재정운영의 자율성 발휘 제한 현재 단위학교는 재정운영과 관련하여 학교회계법 제도의 시행으로 비교적 자율권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경직성 경비가 많아서 자율운영의 여지가 적으며, 단위학교의 예산활용 능력도 미흡하여 전년도를 답습하는 관행이 널리 퍼져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예산편성과 운영과정에 교직원 참여가 확대되고 있으나, 교사들의 관심부족으로 새로운 예산 요구가 별로 없다는 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재정의 획일적 분배나 회계감사 중심의 운용 등의 문제로 자율성의 발휘가 제한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단위학교 자율경영의 과제 단위학교가 자율경영체제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교육청과 단위학교 간에 권한과 역할이 조정되어야 한다. 교육부는 국가수준의 교육정책의 수립 및 필수적 국가교육과정의 유지 기능만 수행하고, 초·중등교육의 책임기능을 시·도교육청에 이관하며, 시·도교육청은 시·도차원의 교육정책 및 기획, 직무조정, 평가 등 핵심적 기능만을 수행하고, 구체적인 관리기능은 지역교육청으로 이관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교육청은 학교에 대한 교육지원과 장학지원을 수행하며, 구체적인 학교교육 활동에 대해서는 단위학교가 중심이 되어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행정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가.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중심은 학교 예를 들면,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중심이 단위학교가 되도록 해주어야 한다. 교육청은 교육과정 편성의 지침을 최소화하고, 단위학교가 학교의 특성을 살리어 자율적인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어야 한다. 특히 선택교과의 선정, 수업일수와 교과시간 수의 조절 등과 같은 실질적 자율권이 단위학교에 주어져야 하며, 교육내용을 획일화시키는 국정교과서 제도 개선, 교과교사의 교재선택권, 재량시간 확대도 검토해 보아야 한다. 나. 교사, 일반행정직 인사관리권 보장 단위학교에 인사관리 자율권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교원초빙 범위를 확대하여 단위학교의 교사 선택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교원전보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행정 및 보조 인력의 채용권도 단위학교에 보장해 주어야 하며, 문제교사의 징계나 우수교사의 포상권도 단위학교에 이양하여 교육청의 간섭을 없앨 필요가 있다. 다. 교육과정 재정관리의 자율권 단위학교의 재정관리 자율권도 보장해 주어야 하는데, 현재 시행되고 있는 학교회계법은 교육과정영역이나 인사관리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육재정영역의 자율권을 확보해 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교육과정 영역과 인사관리 영역에도 학교회계법과 같은 자율운영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학교교육과정법과 학교인사관리법에 획기적인 내용을 담아 새로이 제정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학교재정이 완전한 자율권을 확보한 것은 아니다. 비록 법과 제도가 마련되었다고는 하나 운영의 과정이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교원과 학부모 및 학생의 참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학교 구성원 전체가 참여하여 교육과정 운영에 필요한 기자재 확충, 시설관리와 확충 등 학교운영 전반을 포함하는 학교운영계획을 수립하여, 그 계획에 따라 학교예산을 편성하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라. 학운위 심의 영역 확대 학교운영위원회의 예산 및 결산 심의 시기도 문제가 있다. 위원이 임기가 시작되는 4월에 예산을 심의하고, 위원의 임기가 끝나는 2월에 결산을 심의하게 되면 시기적으로 충실한 심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러므로 위원의 임기의 변경이나, 예·결산 심의 시기의 변화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영역의 자율권이 확보되기 위해서는 의사결정시스템의 기능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학교운영위원회가 명실상부한 자율기구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심의영역이 확대되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교육과정 편성·운영과 학업성취도 등에 대한 실질적 심의·의결권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운영위원회 산하에 교육과정소위원회를 필수기구화할 필요도 있다. 마. 학운위원 위한 전문성 신장 연수 필요 학교인사에 대한 심의·의결권도 부여해야 한다. 학교에 필요한 교원의 초빙, 공모교장의 선발과 평가, 행정 및 보조 직원의 채용 등이 단위학교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학교운영위원회의 실질적 기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실적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위원의 전문 능력이 필수적 요소이므로 이들에 대한 전문성 신장 지원이 있어야 한다. 현재의 교육연수원 프로그램에는 학교 교직원만을 위한 프로그램만이 존재할 뿐, 운영위원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없다. 이의 개선도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자율은 책임을 전제로 한다. 책임지지 않는 자율은 자율이 아니라 방종일 뿐이다. 그리고 책임지기 위해서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므로 단위학교가 자율경영체제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능력을 갖추는 일 즉, 전문성 제고가 관건이 된다. 일부에서는 우리나라의 학교가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원인으로써 자율이 주어지지 않았다기보다는 자율을 수행할 역량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새 정부의 교육부문 운영 키워드가 ‘자율’과 ‘경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자율과 경쟁은 언뜻 다른 말인 것 같지만, 그것의 속성은 같다. 즉, 능력과 역량으로 표현되는 ‘전문성’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율을 누리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필요하며, 경쟁하기 위해서도 전문성이 필요하다. 단위학교 자율경영의 성패는 단위학교가 어느 정도의 역량, 즉 전문성을 지니고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교육 없이 경제 없다”, “공교육 두 배, 사교육 감소”라는 슬로건을 통하여 교육대통령을 표방한 바 있고, 이에 따른 다양한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2일 발표된 ‘단위학교의 자율성 확립을 위한 교육행정권한 이양’계획은 새 정부의 교육정책 방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담긴 ‘자율과 책무성을 바탕으로 한 단위학교의 교육활성화’의 밑그림에는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실제적 효과를 낼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이나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서두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교육부 권한 이양과 관련하여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다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유·초·중등교육의 지방 이양으로 시·도교육청의 권한이 지나치게 집중됨으로써 중앙정부의 지시와 통제를 시·도교육청이 대신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둘째, 지역의 재정자립도가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유·초·중등교육의 지방 이양은 교육 불균형 및 교육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중앙정부의 권한 이양은 이와 같이 예견되는 문제에 대하여 심층적인 논의를 거쳐 대책이 강구될 때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 교육 측면에서 바라본 문제점 지난 1월 2일 발표된 학교단위 자율운영 체제 확립과 현장교육의 활성화를 위한 ‘교육부의 권한 및 업무 이관 방침’은 신선한 충격으로까지 느껴졌다. 그러나 교육부 폐지와 권한 이양이 맞물리면서 그 의도와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특히 공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을 지방으로 떠넘기려는 의도로 파악되어 현장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국민의 보통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유·초·중등교육에 대한 국가수준의 질 관리와 지원의 필요성이 오히려 증대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은 사교육 중심의 왜곡된 구조 속에서 심각하게 위축되어 있다. 연간 사교육비 부담이 20조 400억 원에 이르고 있고, 초·중·고 전체 학생의 77%가 이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공교육의 현실과 소득 차에 의한 지역·계층 간 교육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에 대한 국가적 전략과 지원체제 강화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중앙정부의 권한 이양이 시장주의적 관점과 경쟁논리에 치우쳐 있다면 교육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숲을 바라보는’ 통합적 관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교육부 권한 이양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이 문제다. 시·도교육청별로 특색 있는 교육으로 자율성을 강화하고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의도는 그럴듯하지만 유·초·중등교육은 보통교육이지 전문화되고 특성화된 교육이 아니다. 즉, 보통교육은 국민으로서, 민주시민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질과 상식을 가르치는 교육일 뿐 전문화하거나 특성화할 대상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보통교육을 ‘자율과 경쟁’ 논리에 집착하여 그 생산성 및 효과성만 집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보통교육은 경쟁과 시장논리로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국민 복지적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둘째, 교육격차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 광역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매우 낮다고 한다. 2007년도 전국 광역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평균 53.9%에 불과하고, 서울이 85.7%로 가장 높고 전남은 고작 11.0%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기초자치단체는 서울 중구가 86.0%인 반면, 전라남도의 완도와 신안군은 겨우 6.4%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초·중등교육의 지방 이양은 비교적 지방 재정이 탄탄한 지역은 어느 정도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할 수 있지만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에서는 교육투자가 지역의 현안 사업에 밀려 소홀히 될 수밖에 없다. 셋째, 단위학교 지원보다는 통제 강화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중앙정부의 권한이 대폭 시·도교육청에 이양될 경우, 시·도교육청의 지시와 통제는 강화될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의 정책 방향이 권한 이양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에 상응한 평가체제를 강화하여 경쟁을 유도하면 필연적으로 단위학교의 자율성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결국 또 다른 지시와 통제를 양산하여 단위학교의 활성화와 자율경영을 가로막을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넷째, 권항 이양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 단위학교에 넘겨주어야 할 것은 교육과정 및 학사 운영, 재정 운영, 조직 편성 등에 관한 권한이다. 지금까지 이와 같은 권한은 중앙정부나 시·도교육청에 집중되어 있어서 단위학교의 교육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지 못한 채 포괄적인 지도, 감독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참고로 단위학교의 실질적 의사결정권한의 정도를 살펴보면 뉴질랜드가 71%, 스웨덴이 48%, 미국이 26%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얼마나 될지 구체적인 자료가 없는 것 같다. 교육과정과 학사 운영, 재정운영, 조직 편성 운영은 단위학교에 과감하게 이양해서 단위학교 교육에 활력을 주어야 한다. 아무런 준비나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문제를 중심으로 공허한 논리에 집착하기보다는 실천 가능한 문제부터 서둘러 이양해야 한다. 새 정부 교육정책에 담긴 문제점 지난 10년 동안 우리 교육계는 개혁의 한가운데서 상처투성이의 고통의 세월을 겪어왔다. 무엇하나 그럴 듯한 정책하나 만들지 못하면서 교원조직의 분열과 갈등만을 양산해 온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대선 기간 내내 ‘공교육 두 배’를 강조한 이명박 정부에 많은 기대를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교육정책들을 보면서 여전히 우리교육은 “실험 중”에 있는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함께 고민했던 교육 문제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면서 지나치게 시장주의와 경제 논리에 경도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우려하는 몇 가지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새 정부의 교육정책에는 ‘교육 철학’이 담겨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조직 개편과정에서 보인 바와 같이 ‘교육’과 ‘인재’의 기본적 의미마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교육계의 반발에 부딪쳐 ‘인재과학부’를 ‘교육과학부’로 바꾸더니 어느 날 슬쩍 ‘기술’을 더하여 이젠 ‘교육과학기술부’가 되었다. 청와대의 수석 인선에서도 교육은 여전히 소외되고 있는 느낌이다. ‘인재과학’ 수석 지명을 통하여 교육을 ‘시장주의와 경쟁 논리로 풀어갈 것 같다. ‘영어전용교사제’ 도입에서 보인 ‘교육과 교원에 대한 편견과 왜곡, 그리고 조급함’은 어느 사설에서 지적했듯 ‘대운하의 토목 공학’에 대응하는 ‘영어공학(英語工學)’을 보는 것 같다. 둘째, 대학입시를 대학교육협의회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은 공교육을 심각하게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대학에게 입시의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은 형식적으로는 대학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 같지만 유·초·중등교육은 ‘죽음의 입시 정글’로 몰아넣은 악순환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공교육 살리기’에 대한 확실한 중심이 서지 않은 채, 대학교육협의회의 통제되지 않는 입시관리는 유·초·중등교육을 대학의 시녀를 만들 우려가 있다. 대학의 근본적인 구조와 패러다임을 고치지 않고 대학교육협의회에게 권한을 이양하는 것은 각급 학교의 무한 희생을 강요할 뿐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초·중등교육의 성과는 국제학력비교(PISA)에서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은 어떠한가. 세계 100대 대학에도 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대학의 구조와 패러다임 개선은 무엇보다도 시급한 생각이 든다. 셋째,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교육 문제에 대한 해결의지와 고민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강도 높은(?) 교육 개혁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약화, 사교육 극성, 계층 간 지역 간 교육격차 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가장 환호작약하고 있는 곳이 사교육 시장이라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새 정부의 교육정책은 ‘공교육 강화’라는 목표와는 거리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넷째, 초·중등교육을 시·도교육청으로 대폭 이양하는 것은 공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될 것이다. 또한 지역 간, 계층 간 교육 격차를 심화시켜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원인이 될 것이다. 권한 이양을 위한 전제조건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해도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재정적 물리적 여건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결코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 교육재정을 충분히 확보하여 교육여건으로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못하고, 교육의 중심 주체인 교원들을 개혁의 중심세력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절대로 그 효과를 충분히 낼 수 없다는 것을 지난 10년 동안에 확실히 배우지 않았던가. 가. 안정적 교육재정 확보 첫째, 교육재정 확보가 선결과제이다. 거창한 구호나 제도들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늘 이상과 현실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초·중등교육의 지방 이양으로 자율성과 책무성을 높이는 교육을 실천하겠다는 비전도 교육재정이 확보되지 않으면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광역단체장들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교육 자치를 일반자치에 포함시켜 달라고 건의하였다고 한다. 지방재정자립도가 30%도 미치지 못한 광역자치단체가 무슨 교육을 제대로 할 것인지 걱정이다. 경기도 광명시와 경상북도 칠곡군의 교육비 지원 비율이 15,000:1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역별로 심각한 교육격차가 생겨날 것은 뻔한 일이다. 실제로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도 기초자치단체가 지원하는 학교급식지원비가 지역 현안사업에 밀려 작년 대비 1/3로 축소되었다. 이런 사례로 미루어 볼 때, 중앙정부의 권한 이양의 효과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재정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지역별로 현격한 차이가 있고, 교육재정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아무리 많은 권한 이양을 하고 다양한 정책을 마련한다고 해도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 대학입시제도의 정착 둘째, 대학입시제도가 보완·정착이 되어야 한다. 새 정부의 교육정책에 의하면 대학입시는 대학교육협의회에 맡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은 교육과정에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도 대학입시제도가 이를 반영하거나 지원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유·초·중등교육에서는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논술시험 제도 도입이 가져온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알고 있지 않은가. 대학에 논술시험이 도입되자 전국의 각 급 학교가 대책을 마련하느라고 부산을 떨고 있는 모습을 보라. 아무리 대폭적인 권한 이양으로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강화한다 해도 입시제도가 이를 담아내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다. 원칙은 실현가능한 것부터 앞에서 논의된 문제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실현 가능하고 그 효과성이 기대되는 것은 적극적으로 이양해야 한다. 교육의 현장은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단위학교 현장이다. 중앙정부에서는 국가적인 정책 방향이나 지향점만 제시하고 구체적 실천 방법은 단위학교로 이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여기에 제시된 구체적 사례들은 현장에서 충분히 그 효과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으로 지금 당장 이양하여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는 과제들이다. 첫째, 중앙정부에 존치해야 할 업무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중앙정부의 역할은 국가적 비전을 제시하고 이에 맞는 정책목표설정 및 기본 방향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중앙정부에 존치해야 할 주요 업무는 다음과 같다. 중앙정부에 존치해야 할 업무 - 국가 의무교육의 기본 정책 수립 - 유·초·중등 교육정책 개발 및 수립 - 국가수준교육과정 총론 결정 및 각론의 개발 - 우수 교원 확보 및 교원 양성·자격·연수·보수 등 교원정책 수립 - 국가 교육재정 확보 및 시도교육청 교육재정 지원 확대 - 통일교육 등 국가수준에서 마련해야 할 특수 교육프로그램 개선 둘째, 시·도교육청의 업무는 중앙정부의 방침을 실현할 수 있는 중간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따라서 이에 대한 장학 지원 및 조정은 시·도교육청으로 이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시·도교육청에 이관해야 할 주요업무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시·도교육청에 이양해야 할 업무 - 교원임용 및 연수에 관한 사항(최소의 기준만 정하고 시도의 자율성을 강화해야 한다) - 초·중등 및 과학·직업 정책 - 유아·특수·학교체육 및 보건 급식 - 교육과정 마련 - 교육복지 및 학교폭력 대책 - 지방교육정책 및 교육단체 지원 등 셋째, 단위학교에는 교육활동이 일어나는 일차적 공간이다. 모든 교육활동에 대한 자율성과 책무성이 강화되어야 하고 단위학교의 특색이 드러날 수 있는 것은 학교단위로 이관되어야 한다. 단위학교에 이양해야 할 업무는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단위학교에 이양해야 할 업무 - 교육과정 및 학사운영권 확대 - 인사권 대폭 확대(우수교사 초빙권, 전입교사 지정권, 행정실 초빙권 등) - 학교규칙 및 헌장 제정권 등 - 학교운영에서 교원 및 학생보호에 관한 자율 권한 부여 등 이 외에도 교육과정평가원, 지방자치단체, 교원단체 등에 이관해야 할 내용들도 상당수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가졌던 권한을 조직의 기능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적절하게 조정하여 이양하는 일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교육은 우리 국민의 지대한 관심사이다. 특히 유·초·중등교육은 보통교육의 일환으로 국민 복지적 차원에서 검토하고 이에 따른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교육목표나 방향, 정책은 국가에서 수립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 실천 방안은 시·도교육청 및 단위학교에서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 실효성이 있고, 역할 분담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다만 중앙정부의 권한이 시·도교육청에 집중 이양되어 또 다른 지시와 통제를 양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특히 시·도교육청과 대학교육협의회,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단체에 대한 권한 이양이 시장주의와 경쟁을 유인하기 위한 것이라면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교육의 공공성과 국가적 책무성은 크게 약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의 공공성과 국가 책무성을 담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권한 이양은 적극 검토하되, 단위학교의 교육을 활성화하고 학교장 중심의 자율경영체제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학교현장에 오랫동안 근무한 경험에서 터득한 것 중 하나가 ‘아주 평범한 것이 진리’라는 생각이다. 식물이나 나무가 싱싱하게 자라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알찬 열매를 수확하려면 그 뿌리가 튼튼해야 하듯이 단위학교의 교육과정이 잘 운영되어야 교육이 활력을 얻고 살아난다는 것이다. 단위학교를 책임지고 있는 학교장의 경영과 리더십, 역할이 매우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단위학교도 초등, 중등이 차이가 있고 학교의 규모나 구성이 다양하고 대도시의 거대한 학교에서부터 농산어촌의 소규모 학교까지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획일적인 지시와 감독으로는 자율적이고 특색 있는 학교경영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의 교육정책은 교육부에서 좋은 정책을 구상해도 이런 다양한 학교의 성장풍토를 고려하지 않고 좋은 결실만 얻으려는 성과주의 위주였기 때문에 학교 현장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고 본다. 지금까지 자율경영이 전혀 안된 것은 아니지만 단위학교 책임경영이 더욱 활성화되려면 현재 학교현장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짚어보고 앞으로 변화되어야 할 과제는 어떤 것인지 필자의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제시해 보고자 한다. 시·도교육청 지시 → 지원 업무로 첫째, 현행 학교경영시스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시스템의 변화에 앞서 단위학교를 책임지고 경영하는 학교장의 생각과 의식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자율경영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상부관청의 지시에만 의존하지 말고 단위학교 구성원과 함께 자율경영의 폭을 넓혀 나가되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상부관청은 단위학교의 자율경영에 따른 권한을 선별하여 단계적으로 이양해야 한다. 그래서 단위학교의 특색이 최대한 살아나도록 지원해주고 관리해주는 시스템으로 변모해야 할 것이다. 현재까지의 학교장은 교육청의 공문지시에 따라 자율경영보다는 단위학교에 대한 무한 책임만 지워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교가 비슷비슷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마치 공장에서 벽돌을 찍어내듯이 다양성이 부족한 교육을 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단위학교를 경영하는 데는 인적구성, 학교재정, 학교교육과정운영 등으로 크게 구분해 볼 수 있다. 단위학교 인적구성을 위해 학교장의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는 인사시스템으로 상부관청의 인사발령에 따라 학교의 인적구성을 하여 경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도 따른다. 교원들이 선호하는 가산점이 있는 학교는 그래도 인적구성이 좋은 편이나 가산점이 없는 학교의 경우 근무의욕이 저조한 교원이나 신규교사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부장교사 업무를 맡아 학교교육과정 운영을 이끌어갈 사람이 없어서 교육경험이 짧은 2급 정교사가 보직을 맡아야 할 정도이기 때문에 학교경영에 어려움이 많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학교장이 많이 늘고 있다. 학교장에 부분적 인사권 부여를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학교장에게 학교구성원의 필수요원인 부장급 교사를 선택하여 교원조직을 할 수 있도록 인적구성 권한을 부여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순환근무제에 따라 본인의 희망을 받아 교육청의 인사규정에 근거한 점수를 내어 순위명부를 작성한 다음 비교적 공정한 인사를 하고 있다. 단위학교의 탄력적이고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학교특성에 맞는 필요한 교직원을 확보할 수 있는 학교장의 인사권이 필요한 것이다. 정작 필요한 교원이나 일반 행정직원을 발령할 때 학교장의 의견을 반영하여 인적 구성으로 인한 학교구성원의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인사시스템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학교 재정도 학생 수나 학급 수에 따라 획일적으로 예산을 배정해주는 시스템에서 단위학교의 실정에 따라 필요한 재정의 요구를 받아 교육청과 조율과정을 거쳐서 획일적인 배정이 아닌 지역과 학교여건을 고려한 신축성 있는 예산지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역자치단체로부터 지원받는 교육경비보조금도 시·군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이므로 지역교육청에 일괄적으로 지원하여 교육청이 단위학교의 재정을 고려하여 예산요구에 따른 조정과정을 거쳐 타당성 있고 필요한 학교에 보조금을 지원해 주고 그 사용 내역만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해 주는 시스템으로 가야 교육재정이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교권도 존중될 것이다. 자치단체 공무원이나 의원들에게 예산을 받으려고 머리를 숙이며 로비를 하는 행태는 결국 주민의 세금으로 행정기관이나 지방의회만 생색을 내게 해주는 꼴이다. 교육자치가 지방자치단체에 끌려가는 형국은 교육자치의 손상이요, 교권의 문제와 자존심과 맞물려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는 학교현장의 여론이 지배적이다. 학교교육과정 운영은 비교적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분야라고 볼 수 있다. 3월 1일자로 발령을 받은 학교장은 실질적으로는 전임교장이 수립해 놓은 학교교육계획을 가지고 단위학교를 경영하는 모순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학교장 자문기구로 교무위원회 제도화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학교가 비슷비슷한 교육계획이기 때문에 운영과정에서 수정해가면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더군다나 2학기에 승진이나 전보를 받아 부임하는 학교장의 경우는 한 학기는 단위학교 교장의 경영철학이나 교육관이 반영되지 못하고 운영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교원정년시기를 학년말로 일원화해야하는 문제와 맞물려 있어서 국가적 차원의 제도 개선이 수반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1년 단위의 교육과정을 정말 알차게 수립하여 운영하려면 교원정기인사를 새 학기가 시작되기 한 달 전인 2월 1일자로 발령해야만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자면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학하여 졸업식과 종업식을 하고 봄방학에 들어가던 1∼2주의 기간을 1월 말로 앞당겨서 실시하고 인사발령에 따른 학생과 이임인사도 모두 마친 후 학생들은 2월 말까지 다시 방학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업이 없는 이 기간에 새 학년도의 교내인사조직을 하고 새로 맡은 업무분장에 의해 새 학년도의 학교교육과정 계획과담당업무계획도 수립해야 한다. 또 새로 맡게 될 학생들의 실태를 미리파악하고 학교나 학급의 기본환경도 손질하여 새 학년도가 시작되는 3월에 신입생 입학식과 함께 아주 정상적인 교육과정이 운영되도록 모든 준비를 2월에 하면 산뜻하게 새 학년을 출발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지금처럼 3월 한 달이 어수선하고 우왕좌왕하며 정신없이 시작하는 시행착오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안정된 알찬 출발이 가능하다고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특별목적경비 편성할 재정권 보장해야 둘째, 단위학교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위한 각종 조직이 활성화 되도록 해야 한다. 현행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경영에 따른 행정적 측면이 강조된 조직이므로 학교 교육과정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학교장의 자문기구로 교무위원회를 제도화하여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단위학교의 특색 있는 교육과정운영을 위한 특별목적경비를 편성하여 운영할 수 있도록 교육청의 지원 체제가 필요하다. 이러한 권한을 주어야만 교육수요자들에게 만족감을 주는 다양한 교육과정운영이 가능해질 것이다.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자면 단위학교에 필요한 교원을 초빙할 수 있고 전임교원을 선택하여 교육과정운영에 참여시킬 수 있는 부분적 인사권도 주어져야 할 것이다. 학교의 업무가 증가하면서 행정실의 역할이 증대되었고 교원 외에 급식, 차량운행, 비정규직보조원 등 일반직 직원의 관리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교장이 점차 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교원을 관리하기보다 어려움이 더 많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 행정지원과 기능직 등의 인사이동 때는 학교장의 의사는 거의 반영이 되지 않고 교육청에서 일방적으로 인사발령을 내기 때문에 학교장의 권한이 전혀 없는 셈이다. 심지어 경력이 짧은 행정실장이 경력 25년이 넘는 교감과 동급으로 생각하거나 지시를 거역하는 잘못된 현상도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단위학교의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서는 일반직의 인사권한도 학교장에게 어느 정도 이양되어야 한다. 학교장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인사는 학교장이 힘은 없고 책임만 지는 무력한 기관장으로 만들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교에 두도록 되어 있는 각종 위원회나 후원단체도 학교장의 자율권을 존중하여 필요한 것만 존치시키도록 권한을 위임해 주어야 한다. 천편일률적으로 위원회를 설치토록 하기 때문에 유명무실한 위원회는 폐지시키도록 해야 한다. 물론 학교장이 독단으로 존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운영위원회나 교무위원회 등의 자문을 받아 학교장이 결정하도록 하여야 한다. 단위학교 자율성 침해할 법규 정비를 셋째, 단위학교 교육과정운영에 걸림돌이 되는 법규나 규제를 정비하여 자율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학교현장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교원의 목소리를 들어서 각종 법령이나 규칙을 손질하여 교육과정운영에 대한 자율권과 창의성을 단위학교에 더 확대해 주어야 할 것이다. 민족의 혼을 심어주는 기본공통 교육과정은 교육부에서 관리하고 지역교육과정은 지역의 특색을 살려서 창조적으로 운영하도록 재량권을 확대해야 한다. 수업일수와 시수도 초등은 더 줄여서 많이 가르치려는 욕심보다는 꼭 필요한 것을 쉽고 재미있게 가르쳐 흥미와 학업성취동기를 만족시켜주는 체험과 인성위주의 교육과정에 주력해야 한다. 중·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더 많이 배우고 대학은 몇 배 더 공부하는 풍토조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습관을 형성하며 인성교육에 중점을 두어야 할 어린 시절부터 공부에 억눌려서 진을 빼버리면 학문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무한한 가능성의 싹을 말리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량휴업일 운영이나 반쪽으로 끌고 가고 있는 주5일수업제 등 국가수준에서 법령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한 조속한 정비가 이루어져야 학교단위 교육과정운영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청에서 주요업무계획을 수립할 때 많은 내용을 단위학교 교육과정수립에 반영하도록 요구하면 학교교육과정이 교육청단위로 대동소이해져 버린다. 단위학교의 특색을 존중하려면 학교현장을 어떻게 지원할까에 대한 계획을 지역별, 학교 급별에 따라 세워야 한다. 교육청단위 계획 중에서 학교에서 필요한 부분만 학교실정에 맞게 선택하고 가공하여 교육과정에 반영하도록 자율권을 부여해 주어야만 학교마다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 학교장의 의식변화 위한 연수 필요 넷째, 교육부나 교육청의 역할과 기능이 지시 관리감독 통제에서 단위학교를 지원해 주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교육격차해소를 위한 업무조정, 재정지원, 우수인적자원지원 등 좋은 정책을 개발 보급해 주는 조언자 상담자 지원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단위학교 교육과정운영에 초점을 맞추어 학생과 학부모가 만족하는 교육의 꽃을 피우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단위학교가 지역의 교육센터의 기능과 역할을 하도록 지원해 주어서 평생교육의 센터로 지역사회학교가 거듭나야 한다. 단위학교 교육과정이 잘 운영되어 일반화시킬 때도 획일적인 행정력으로 밀어붙이지 말고 단위학교에서 현장을 방문하여 꼭 필요한 부분만 벤치마킹하여 점차적으로 확산 보급되도록 지원해 주어야 한다. 다섯째, 단위학교 자율경영으로 학교장에게 권한이 이양되어 정착하려면 맡은 역할과 기능을 조정하면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단위학교 자율경영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지금까지의 관행에서 과감히 탈피하여야 한다. 그러려면 연수나 연찬회를 통하여 학교장의 의식의 변화를 가져와야 하고 자율권이 주어진 만큼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교육청이나 학교의 모든 업무가 전자문서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예전에 비해 너무나 편리해졌다. 그러나 학교를 경영하면서 항상 느끼는 점은 구성원 간의 인간적인 예절이나 최소한의 도리마저도 사라져가고 있다는 안타까움이다. 복무상황도 교육행정정보 시스템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연가, 병가, 특별 휴가 출장, 조퇴 등도 전자시스템의 편리성에만 익숙해져가고 있어 학교장이나 교직원간에 얼굴을 대하며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동료의식이 소원해지는 단점도 있다. 인간이 기계에 예속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단위학교를 자율적으로 경영하자면 인간관계가 매우 중요한데도 말이다. 이를 극복해 나가자면 학교장의 리더십이 더 강화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청의 권한을 무조건 단위학교로 이양하는 것이 단위학교경영에 도움만 주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 부담되는 각종 관리는 교육청이 예를 들면 학교의 잡종재산관리나 학생수 감소로 인한 통폐합으로 폐교된 학교의 관리 등 교육청에서 관리해야 할 것을 학교에 위임하고 있어 학교장에겐 부담이 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학교현장에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관리부문은 교육청에서 관리해 주는 것이 단위학교를 도와주는 지원행정의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장은 단위학교 교직원과 시설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기관과 유대관계 유지는 물론 축제행사나 동문회행사 참여 학부모와의 유대관계 등을 원만히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업무추진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힘들어한다. 학교운영위원회가 단위학교 운영의 주요안건을 심의하며 학교발전기금을 접수 관리하는 기관으로 출발했는데 학교장을 통제하고 감독하는 기관으로 잘못알고 지역의 정치세력이나 특정단체와 연계하여 학교경영에 파행적으로 관여하며 학교장의 자율경영체제에 걸림돌이 되거나 권한을 약화시키는 위원회로 남아서는 안 되겠다. 도리어 학생과 교원의 복리증진과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단위학교의 교육이 더욱 활성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사회학교의 기관단체장으로서 학교장이 품위를 유지하며 존경의 대상으로 학교경영을 하기 위해선 학교장에게 재정운영재량권을 확대해 줄 필요가 있다. 그 다음은 상부관청으로서 지시, 감독, 통제로 교육행정을 펼치던 교육청의 관리시스템이 단위학교를 살리기 위한 상담, 지원, 격려자로 변신하여 일선 교육현장에 도움을 주는 후원 기관으로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교육부에서 쥐고 있던 중앙의 권한이 교육청과 단위학교로 이양만 하면 단위학교 교육이 잘되고 금방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동안 추락된 교권을 보듬어주는 것이 우선될 문제다.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신뢰를 얻고 청렴하고 투명한 학교경영으로 일반국민이 교원을 존중하도록 교육자부터 스스로 자정노력을 하여야 한다. 또한 학교장도 이제는 권한만 행사하려는 학교장이 아닌 단위학교 구성원과 대화로 협상하고 타협하며 설득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새 정부에서는 교권이 존중되고 바로 서도록 교육정책을 펼쳐서 교원과 학생이 배움의 기쁨을 안고 꿈과 희망을 싹틔우고 활짝 펼쳐나가는 행복한 학교가 되었으면 한다.
그동안 일선학교는 정부와 각 시·도 교육청의 획일화된 교육정책추진으로 큰 어려움 없이 안주해왔다. 즉, 학교장은 학교경영에 대한 구체적인 전문성이나 자율적인 학교운영에 관한 전문적 지식이 없어도 정부와 각 시·도 교육청의 방침만 충실히 수행하면 학교경영에 어려움이 없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상급교육행정기관에서 실시하는 학교경영의 실태와 점검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게 되는데, 결국은 상급교육행정기관의 방침을 얼마나 충실히 따랐는지에 점검이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획일화된 지시일변도의 교육으로는 교육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단위학교에 권한을 대폭 이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미 1995년 이후에 정부에서는 수요자 중심교육을 강조해 왔으나, 아직도 일선학교에서는 중앙의 교육방침 시행을 그대로 따르고 있을 뿐 별다른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자치제의 본격적인 실시와 함께 학교자치도 더욱더 중요시 되는 시점에서 지난해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그동안 교육부(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관장하던 각종 업무와 권한을 각 시·도 교육청에 대폭 이양하고 아울러 단위학교에도 권한을 이양하겠다고 밝혔었다. 이런 기본적인 방침이 새정부 출범과 함께 더욱더 구체화되고 있다. 이렇듯 중앙교육행정기관에서 관장하던 각종 업무와 권한을 각 시·도교육청과 일선학교로 과감히 넘기겠다고 했지만 이에 대해 학교에서는 기본적으로는 환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즉, 중앙교육행정기관에서 각 시·도교육청으로 각종 업무가 대폭 이양되는 것에는 원칙적으로 찬성을 하지만 각 시·도교육청에서 어느 정도의 권한을 일선학교에 넘겨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리어 각 시·도교육청에서 중앙으로부터 이양받은 각종 권한을 필요이상으로 행사하면서 도리어 일선학교의 교육활동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도 필요 이상의 간섭과 지시로 인해 일선학교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흔히 접할 수 있다. 단위학교에서 이런 우려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너무나 당연하다 하겠다. 왜 이양되어야 하는가 단위학교에 대폭적인 권한이 이양되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학교라는 공동체의 직접 당사자인 학생, 교원, 학부모 및 지역사회가 학교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 구성원들이 단위학교교육활동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다양한 학교교육이 가능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학교경쟁력을 끌어올려 당초 목표한 교육의 성과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간에도 단위학교에 권한이 많이 이양된 것으로 오인하도록 하는 여러 가지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 중 대부분이 실질적인 권한 이양이 되지 못하였고, 필요에 따라 권한 이양의 형태로 포장되었을 뿐이다. 이들 경우의 예로, 지금은 교육행정정보시스템과 교무업무시스템이라는 이름의 두 시스템이 일선학교에서는 단 하루라도 없으면 안될 만큼 일반화되어 있지만 이 시스템이 자리 잡기까지 어려움을 겪었던 것을 교사들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한창 문제가 심각했을 때, 당시의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서는 논란이 가중되자 일시적인 처방으로 새로운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시스템결정을 학교장에게 일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일선학교에 슬그머니 미뤄 버렸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교원단체를 비롯한 교원들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한 권한이 주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단위학교 교원들 간의 갈등만 조장했을 뿐 그 어떤 권한도 행사할 수 없었다. 그 당시를 돌아본다면 어느 누구도 학교장에게 권한을 넘겨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많은 교원들이 교육행정기관에서 해결하기 난감하고 책임지기 어려웠기 때문에 일선학교로 넘겼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일들은 현재까지도 계속 반복되고 있다. 교육행정기관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일방적으로 학교로 떠넘긴 사례로는 현재도 매년 되풀이 되고 있는 교원성과급문제이다. 성과급 자체가 등급을 정해야만 쉽게 지급이 가능한데, 그 등급을 정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고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이 문제를 슬그머니 학교에 떠넘겼던 것이다. 최소한의 기본만을 제시하고 나머지는 학교에서 알아서 하도록 했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당연히 학교에서는 성과급 심사위원회 구성부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고일정을 짧게 함으로써 일선학교에서는 졸속으로 결정해서 보고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학교장에게 일임했으니 교육행정기관의 책임이 없는 듯하지만 실제로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실질적인 권한 이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선학교에 권한 이양이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지만 그동안의 경우를 보면 실제로 학교에 넘겨줘야 할 권한은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반드시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슬그머니 학교로 밀어 버린다. 이런 행태가 지속되는 한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하여 권한 이양을 하더라도 실질적인 권한 이양이 되지 않을 것이다. 권한 이양에 필요한 선행조건 일선학교에 대폭적인 권한 이양을 추진하고 있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일선학교의 여건이다. 다양한 여건이 필요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학교현장의 분위기이다. 즉, 권한을 넘겨받을 준비가 되어있느냐는 것이다. 그동안 학교장이 충분히 권한을 발휘할 수 있는 경우에도 상급교육행정기관의 의도를 파악하느라 제대로 권한을 발휘하지 못한 경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학교장의 과감한 권한행사와 단위학교 구성원들의 인식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한 선행조건이라 하겠다. 현실적으로는 이양 받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학교 내의 다양한 위원회의 활성화, 교무회의의 기능강화,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유기적인 관계유지를 통한 의견수렴방안모색 등이 당장에 해결되어야 할 학교 내의 조건들이다. 또 하나는 상급교육행정기관이 실질적인 권한 이양에 어느 정도의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즉, 상급교육행정기관에서는 일선학교에 행·재정적 지원을 해 주는 지원행정위주로 변화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각종 행정행위도 지시와 통제위주보다는 논의와 협의를 통해 단위학교에 완전히 넘기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겠다. 따라서 상급교육행정기관인 교육과학기술부나 각 시·도 교육청에서도 기본적인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 즉, 학교를 단순히 최하위 교육행정기관으로 판단하여 일일이 간섭하고 지시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교육행정기관에서는 일선학교의 교육활동을 도와준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감시하고 통제한다는 인식을 바꾸기 전에는 어떠한 권한도 학교에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큰 틀의 업무만 학교에 전달하고 세부적인 영역은 절대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권한이 필요한가 학교교육은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단위학교가 조직의 관리에서부터, 교육과정운영, 인사, 재정 등의 자율권을 가지고 학교교육활동을 진행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면 당연히 단위학교에 최대한 많은 권한이 부여되어야 한다. 또한 학생과 학부모의 다양한 요구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단위학교도 다른 학교와의 자율경쟁체제에 대비해야 한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지역이나 학교급에 따라서 여건이 다른 것을 감안한다면 천편일률적인 학교교육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최소한의 기본적인 여건(국가교육과정 준수 등)을 충족해야 하겠지만 독자적인 교육활동은 필수적 요소라 하겠다. 이렇게 단위학교마다 독자적인 교육활동이 가능하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반드시 이양되어야 할 권한들이 있다. 학교에 넘겨져야 할 권한이나 업무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꼭 필요한 사항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가. 교육과정 편성, 운영권 첫째, 학교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에 관한 사항이다. 일선학교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이 학교교육활동이다. 연간 계획에 따라 교육계획이 세워지고 여기에 부합되는 학교교육과정을 편성하게 된다. 학교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가 교육활동에 있다고 볼 때, 학교교육활동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학교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은 전적으로 학교에 넘겨주어야 한다. 그동안은 중앙교육행정기관의 방침과 각 시·도 교육청의 방침, 각 지역교육청의 방침 등을 반드시 따라야 했다. 이것저것 다 따르다보면 특색 있는 교육과정편성이 어렵고 설령 일부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편성했다고 해도 이를 실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었다. 따라서 단위학교에 권한을 이양한다는 의미는 단순한 권한부여가 아니고, 학교장을 중심으로 단위학교 구성원들이 스스로 교육과정편성에서 운영까지 완벽하게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모든 권한을 넘겨주고 상급행정기관의 관여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야만 이 다양한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연간수업일수조정 및 수업시수조정, 각종행사와 관련된 내용, 각종 평가에 관한 내용, 체험학습 및 재량활동, 봉사활동 등이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현재처럼 수업일수와 수업시수를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모든 것을 지침에 따르도록 하면서 자율적으로 학사운영을 하라는 것은 아무런 권한 없이 그대로 따르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나. 다양한 위원회 활성화를 위한 권한 둘째, 학교 내의 각종위원회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 최대한의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단위학교에서 책임경영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위원회가 설치되어야 한다. 그만큼 단위학교 구성원들이 서로 협의하고 토론하여 가장 효율적인 결정을 내림으로써, 학교교육과정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대표적인 위원회가 학교운영위원회인데, 원래 학교운영위원회의 설립목적은 학교운영에 관한 규제를 철폐하고 권한을 과감히 이양·위임함으로써 학교운영의 자율성을 증대하며, 운영결과에 대한 평가를 통하여 책무성을 증진시킴으로써 학교단위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한다는 것과 학교운영을 민주화하고 투명성을 제고하고 아울러 학교를 운영하는데 교직원, 학부모, 지역사회 인사의 요구를 체계적으로 반영해 나간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극히 상식적이고 설득력 있는 취지에서 출발한 학교운영위원회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든 사항이 한 곳에 집중됨으로써 학교운영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즉, 연간 몇 회 이상 학교운영위원회를 의무적으로 개최하도록 하여 학교 내의 거의 모든 사항을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명문화함으로써 또 다른 규제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 사항을 일일이 정하여 대부분의 모든 사항으로 할 것이 아니고, 학교장과 학교구성원 및 학부모의 판단에 의한 심의활동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학교 내에 설치된 나머지 위원회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하겠다. 다. 학교장의 교원인사 요청 권한 셋째, 교원인사에 관한 사항의 이양이다. 물론 기본 틀은 유지해야 하겠지만 지나치게 규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가령 정기전보시에 유예율이나 학교장이 요청할 수 있는 비율 등을 교육청에서 일괄적으로 인사관리기준을 제시하여 정확히 맞추도록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학교교육활동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학교별로 필요한 인재가 달라지게 된다. 특색 있는 학교교육활동을 위해서는 여기에 가장 적합한 교사들의 필요성이 대두되게 된다. 지금처럼 구체적인 비율을 제시하기보다는 최소한의 하한선과 상한선만을 제시하고 나머지는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하도록 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상급교육행정기관의 업무경감측면에서도 상당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학교에서는 교육청에서 제시된 유예기준을 따르기 위해 유예를 원하는 교사들을 상대로 별도의 협의를 거쳐 유예가능교사와 불가능 교사를 구분하고 있다. 완전한 권한부여가 필요하다 하겠다. 또한 교사초빙문제도 학교장에게 권한을 넘겨야 한다. 이런 일련의 권한들이 학교로 넘어오게 되면 학교별로 다양하고 특색 있는 교육활동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라. 예산 투입, 집행에 대한 권한 넷째, 예산의 편성에서 집행까지의 모든 권한을 학교에 넘겨야 한다. 이 부분은 다른 분야에 비해 비교적 많은 권한이 일선학교에 넘어와 있지만, 아직도 미흡한 부분이 있다. 현재의 학교예산편성과정은 상급교육행정기관으로부터 예산편성지침을 받아 그 지침을 그대로 따르면서 편성하고 있다. 지침을 따르도록 하는 것 자체가 단위학교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즉, 이런 지침 때문에 일선학교에서는 적절한 예산 투입을 위한 우선순위 선정에서부터 기본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현재는 목적경비를 별도로 내려 보내고 있으나, 이렇게 내려오는 목적경비 외에도 단위학교에서 교육과정운영상 특별히 필요한 경우, 특별목적경비를 편성하여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예산편성 및 집행에 대한 권한의 대폭적인 이양이 필요하다. 학교장, 교원, 학부모 모두 책무성 강화해야 지금까지는 중앙교육행정기관이나 각 시·도 교육청에서 대부분의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향후에 문제가 발생해도 책임소재가 불분명하여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즉, 상급교육행정기관에서 지시·전달한 내용을 일선학교에서 그대로 따랐음에도 문제발생 시에는 도리어 학교에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권한 없이 책임만을 떠안는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선학교에 대폭적인 권한을 이양하고 그에 따른 책임의 한계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즉, 학교단위에서 충분한 검토와 협의를 통해 결정된 사항이라 할지라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경우에는 단위학교에서 전적으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책임을 묻게 될 경우 학교장과 나머지 교원을 포함하는 것은 물론, 학부모도 함께 책임지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날로 증가하는 학부모의 학교운영참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활성화하되, 학부모도 잘못된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는 풍토의 조성이 필요하다. 학부모의 학교 교육활동 참여의 가장 일반적인 경우가 학교운영위원회라고 본다면 학교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논의·심의된 사항에 대해서는 단위학교 교원은 물론 학부모도 함께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많은 권한 이양과 함께 책무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단순하게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에서 현재의 학교평가를 좀 더 개선하여 적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우선적으로는 단위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자체평가를 좀 더 활성화하여 적절한 피드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지만 좀 더 발전적인 방안으로 각 시·도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학교평가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의 학교평가형태로는 어떠한 책임도 물을 수 없기 때문에 학교평가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이루어진 후에 논의되어야 한다. 즉, 평가단의 구성부터 평가단의 활동까지 모든 것이 공정하고 객관성 있게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 하겠다. 단위학교에서 이루어진 교육활동에 대해 적절히 평가하고 개선점을 찾아내어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단위학교의 자체평가에서 모든 것이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교육목표달성이 가장 중요하다 학교교육의 성패는 학생이 중심이 되고 교사와 학부모의 역할이 어느 정도 고려되고 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학교경영은 학교장을 비롯한 단위학교 구성원들이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노력하는 과정이다. 여기에 학부모가 함께한다면 그야말로 교육의 3주체가 완벽하게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어 최대한의 성과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런 훌륭한 인적 조건이 모두 갖추어져 있더라도 현재의 학교교육은 어느 영역 하나라도 단위학교에서 단독으로 수행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향후의 학교교육은 규제와 통제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개별학교의 자율성과 책무성을 중시하는 교육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며, 학생과 교사 학부모는 물론 단위학교 교육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인사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만 자율적인 학교운영이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