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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희 수필 <장미의 이름으로>

본지는 이번 호부터 교원들의 참여 코너 <독자와 함께하는 새교육>을 신설합니다. 수필, 동화 등의 문학작품, 교단일기, 교육정책 제언, 색다른 수업 등 주제의 구분 없이 모두 소개 하는 코너입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선생님께서는 <새교육> 이메일 sae@kfta.or.kr 로원고를 보내주십시오. 관심 있는 선생님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파주에 있는 전문계고등학교다. 새 학년 새 학기가 되면 늘 치르는 곤혹스러운 일들, 결석생이 늘어만 가는 현실, 아이들은 고개 숙이고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오늘은 왜 이리 늦었니?”
“어머니가 안 계셔요. 그러다 보니 늦잠을 잤어요.”


어딘가 모르게 기가 꺾여 있고 서로의 눈치만 살피는 아픈 풍경들…. 인문계고에 진학하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불우한 가정환경 탓으로 실의에 빠져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의기소침한 상태로 하는 일에 자신감도 없었고 풀 죽어 지내는 그들의 모습은 한마디로 절망이었다. 그들에게 뭔가 얘기할 수 있는 공감의 장이 필요했다. 그래야만 그들에게 내일의 비전을 말할 수 있고 희망을 말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고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속마음을 그림으로 말하는 일이었다. 자신의 불만이든, 기쁨이든 볼펜 하나로 열심히 그림으로 표현하는 일, 때로는 수업 중에 자신의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10년 후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고, 자신의 가족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 첫 시작은 2003년 3월 13일이었다. 어느새 5년이나 되었다.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우리의 첫 만남은 어설프게 시작되었다. 절반의 학생들이 아직 등교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게 한 달이 되어가고 이제 푸른 오월을 준비할 무렵이었다.

처음에 아이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기 싫어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또래끼리 모여서 정을 나누면서 자신들의 아픔도 말하고 또 즐거움을 맘껏 토로하기 시작했다. 서로 발표를 기피하고 앞에 나서기를 거부하던 학생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고 서로의 성취감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으면 좋으련만, 그들은 말이나 글로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낙서와 그림 그리는 일을 시작했다. 그래서 발전한 모임이 바로 ‘장미문학회’라는 작은 모임이다.

먼저 포털사이트 다음에 인터넷 카페(cafe.daum.net/jangmimunhak)를 개설했다. 학생들이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든 국어 글짓기와 숙제는 인터넷을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숙제를 잘 한 학생에게는 도서 상품권도 나눠주고, 맛있는 간식도 서로 나누었다. 때론 자장면과 탕수육으로 그들을 격려했다. 어느덧 107명의 회원이 가입해서 활동하기에 이르렀다. 매년 각종 백일장 대회나 글짓기 대회에는 무조건 출전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는데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파주시 대회는 물론이고 경기도 대회, 전국 글짓기대회에서도 입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업을 빠지고 글짓기 대회에 나간다는 즐거움 때문에 문학회에 가입한 학생이 많았다. 학교 수업에 얽매여 있기보다는 답답한 교실을 벗어나 자유롭게 열린 공간으로 줄달음치고 싶어 했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아픈 세계가 있었기에 뭔가 얘기하고 떠들고 싶은 뭔가가 분명 있었다. 자유롭게 말하고 얘기할 수 있는 그 어떤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사실, 누군가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어야 함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그들과 눈을 맞추지 못했고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다.

장미는 우리 학교 교화다. 이름에 걸맞게 ‘열정적으로 살아가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푸른 오월의 붉은 장미처럼 향기롭고 빛나는 삶을 살자’는 의미도 있다. 장미문학회는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하나의 희망이다.

처음 우리들의 마음을 모은 곳은 지금은 도서관이 된 자리인데 그 때는 붉은 장미로 온통 가득한 명상의 숲이 있었다. 오솔길을 따라서 걷다가 잠시 앉아서 얘기하고 붉은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우리들의 소망을 적었다. 어쩌면 장미는 나와 우리 학교 학생들의 만남을 가져온 열정적인 매개체였다.

우리들은 모두 뭔가에 목말라 있었다. 열정의 감로수를 마시고 싶었다. 축 늘어진 삶이 아닌 빛나는 열정을 꿈꾸고 있었다. 푸른 사월과 오월의 장미처럼.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장미문학회다.


전문계고 학생들에게 사실 자랑하고 내세울 만한 것이 그리 없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의 학생들도 있고 한 부모 가정, 조손부모 가정의 아이들이 참 많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어떤 긍지나 자부심은 찾을 길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성적을 얘기하면 언제나 고개를 숙여야 했고 부모님, 가정사 얘기를 하면 풀이 죽어 어느새 조용해지고 만다. 그 때문일까? 그 어떤 것으로도 인정을 받은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또 인문계 학교가 아닌 전문계고에 진학했다는 자괴감은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의 속내를 쉽게 열지 않는다. 그들과 하나가 되어 공감하려면 수다를 떨고 공도 차고 목욕탕도 함께 가봐야 한다. 그래야 인생 문제도 얘기하고 때론 자신들의 아픔을 쉽게 말하곤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자신이 그린 그림에 대해 설명을 하기에 이르렀고 그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가슴 속에 묻은 속내 이야기를 차츰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카타르시스라고나 해야 할까? 그리고는 글로 적는 일이 익숙해지기 시작 했다. 수업 시간 마다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짧은 글로 표현하는 일이 거둔 작은 발전이었다. 어느덧 서로에게 친근해지고 환한 웃음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그림 그리는 일은 그렇게 언제나 즐거움이었다. 처음엔 학생들이 엉거주춤했었다. 뭘 하는지 몰랐고, 왜 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가슴 저린 이야기들이 하나, 둘 술술 나오기 시작하더니 가슴을 맞대고 서로 울기도 했다. 때론 우스꽝스런 말과 글에 배꼽을 잡고 웃는 일도 참 많았다.

장미문학회 시화전을 시작한 지 어느덧 5년이 흘렀다. 작년까지 교내 행사로 진행되었던 시화전, 이제 학교가 아닌 세상을 향해 그들의 가슴을 열 때가 온 것이다. 교내 시화전에 대한 잔잔한 소문이 번지면서 지역사회에서 전시 요청이 연이어 들어왔다. 파주시 청소년 문화의 집 전시를 했고, 파주시 우수 동아리 경연대회에 참여하는 기쁨도 있었다.

지난해는 2007년에는 경기문화재단에 공모한 청소년 문화 활동 우수단체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지원금이 제법 컸다. 아이들은 날뛰듯 기뻐했고 얼굴엔 싱글벙글 신나는 표정이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영광된 일이던가. 아이들에게 좋은 붓과 멋진 그림물감도 사줄 수 있었고 더 좋은 캔버스를 사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더운 날 아이스크림 하나라도 더 사줄 수 있어 기뻤다.

이런 사연이 알려지면서 많은 출판사에서 우리를 지원해 주셨다. 월간 샘터와 새마을 문고에서 100여 권씩 좋은 책을 보내주었다. 그래서 새로운 마음으로 아침 독서운동도 시작했다.

이제 학급문고를 만들어서 많은 학생들과 글 읽는 즐거움에 푹 빠지고 싶다. 장미의 이름으로 시작한 우리들의 만남, 이제는 꽃을 피워서 이웃에게 향기를 나누는 아름다움이 되고 싶다.

얼마 전 영화배우 안성기가 나온 한 은행의 광고를 본 적이 있다. 친절은 실력이라는 것이다. 사실 지금 시대는 지식의 능력만으로 세상을 살아가기가 그리 쉽지 않다. 때론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이 필요한 세상이다. 요즘, 의사, 검사, 변호사라는 직업이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나는 시대가 되고 있지 않든가.
지금은 문화가 사회를 이끌고 있는 세상이다. 탁월한 재능(끼)이 이끄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 학생들에겐 다양한 능력이 잠재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끼와 열정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많은 문화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오는 5월에 파주시 근린공원에서 열릴 ‘제6회 장미문학회 시화전’을 준비하고 있다. 교내가 아닌 세상에서 우리들의 향기와 빛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오는 6월과 11월에는 파주 청소년 문화의 집으로부터 전시 초청을 받았다.

전문계고 학생들이 시화전을 연다고 하면 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혹시 지난 시절, 학업에 대한 편견을 갖고 우리들을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두렵지만 그 편견에 도전해 보련다.

시화전이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왔다. 현수막도 달아야 하고 시화를 걸 이젤도 준비해야 한다. 이리저리 홍보문을 발송하고, 멋진 시화집도 만들어야 한다. 분주하긴 하지만 이처럼 두근거리는 설렘으로 가슴 벅찬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희망이 있기 때문이리라. 꿈과 사랑이 함께 하는 제6회 장미문학회 시화전, 그 슬로건처럼 ‘아름다운 글로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젊은 손길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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