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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연수원에 발령이 났을 때 큰 문제 중의 하나가 숙소 문제였다. 그 때 당시 자녀교육 문제로 세 식구는 마산에서 살고 있었고 나만 혼자서 옛 교육청 뒤에 조그만 방을 하나 얻어놓고 있었다. 여기에서 출퇴근하려면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나 가야 하고, 방이 쉽게 나가지도 않을 것 같고, 연수원 안에 숙소가 있어 고민 끝에 방을 그대로 둔 채 연수원에서 숙소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한 번씩 시내 볼 일이 있으면 나가서 거기에서 자고 오곤 했었다. 내가 얻은 방이 얼마나 오래된 집이었던지 집에서 수돗물을 틀면 녹물이 나올 정도였다. 3년이나 그 집에서 녹물을 먹고 살았으니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 그래도 참고 살아왔다. 그 녹물로 인해 건강상태가 더 좋지 않은지도 모른다. 미련하기 그지없도록 그 집을 떠날 생각도 안 했고 떠날 줄도 몰랐다. 온 식구들이 울산으로 이사올 때까지 좋든 싫든 그 집에서만 살았다. 마산에서 울산으로 오면서 가장 염려한 것이 환경오염 문제였다. 공기도 좋지 않고 물도 좋지 않고 살 곳이 못 된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언제나 적응하는데 힘들게 만들었다. 그런데다 집에서 먹는 물까지 낡은 수도관으로 인해 고통 속에 생활했으니 정말 지옥 같은 생활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기쁨은 찾을 수 있었다. 울산이라는 곳이 그렇게 살기 좋지 않은 것만 아니었다. 지금은 너무 살기가 좋다. 서울에 한강이 있듯이 울산에는 태화강이 있다. 서울에 한강을 중심으로 강남, 강북이 있듯이 울산에도 태화강을 중심으로 강남, 강북이 있다. 지역교육청도 강남교육청, 강북교육청이 있다. 서울에 학군의 1번지라고 할 수 있는 강남이 있듯이 울산에도 학군의 1번지라 할 수 있는 옥동이 있다. 인구는 서울과 비할 바가 아니지만 서울보다 지역은 더 넓고 좋다. 공기도 예전 공기가 아니다. 물도 예전 물도 아니다. 태화강의 수질이 너무 좋아 ‘수달’이 발견될 정도라고 한다. 출근길이 강변도로라 강변도로를 따라 태화강을 쳐다보면 물이 너무 맑고 좋다. 새들이 많이 모여든다. 이런 태화강을 따라 출근하는 것도 행복 중의 하나이다. 이제 울산을 떠나기가 싫을 정도이다. 이제 울산을 사랑하게 된다. 나의 교직생활의 마무리를 하게 해줄 울산에 애착을 느끼게 된다. 나의 남은 삶에 윤택을 안겨줄 울산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울산의 교육이 이러하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다. 울산교육연수원은 평생 잊지 못할 곳이다. 나를 사람 되게 만든 곳이다. 나를 새롭게 만든 곳이다. 나에게 용기를 준 곳이다. 나에게 교훈을 남겨준 곳이다. 나에게 감성을 키워준 곳이다. 나에게 그리움을 가르쳐 준 곳이다. 나에게 큰 꿈과 비전을 품도록 한 곳이다. 나를 단련시킨 곳이다. 울산교육연수원은 나로 하여금 ‘울산=태화강=생명=기쁨=행복=사랑=정=교육...’을 연결시켜 주는 고리역할을 해주기에 충분하다. 울산교육연수원은 영원하리라! 연수원 시절 4월 중순쯤 며칠 간 내가 얻은 놓은 자취방에서 방어진의 연수원까지 출근을 하게 되었는데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고 버스를 타고 다녔다. 태화강 경치도 구경할 겸 많은 사람들을 접할 겸, 울산 시내를 구경도 할 겸, 사람들 속에서 삶의 호흡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울산을 사랑할 만한 곳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울산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하기 위해 집에서 6시에 나섰다. 신정지하도에서 아침 6시 15분쯤 방어진으로 가는 좌석버스를 탔다. 내가 탄 버스에는 사람들은 주로 ‘현대중공업’ 글자가 새겨진 작업복을 입은 근로자가 대부분이었다. 우리나라가 그래도 이만큼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는 것은 이런 분들처럼 일찍부터 일터에서 피와 땀과 정성을 쏟은 덕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눈을 창가로 돌린다. 태화강 다리를 건너는 순간 동녘하늘에서 떠오른 아침 태양에 반사를 입은 태화강은 커다란 기둥을 내면서 환히 비추어 준다. 버스가 빠르게 지나가는 터라 바쁘게 강물을 쳐다본다. 그 빛에 반사된 물결은 동해바다의 푸른 물결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더 고요하고 맑고 고왔다. 그 위에는 많은 새가 둘씩 셋씩 짝을 이루며 강물 위로 날고 있다. 태화강 주변의 울산 시가는 그야말로 평화로운 도시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비둘기가 내 눈 속에 들어 왔는데 자세히 보니 한두 마리가 아니라 강 주변에 수백 마리가 앉아 모이를 쪼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 강변을 따라 버스가 지나가는데 강물 위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배가 물위에 떠 있었고 양쪽에 태화강을 수놓는 봄의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젊은 분들의 테니스 연습하는 모습이나, 연세 많으신 분들의 골프 치는 모습, 혼자서 열심히 강물과 함께 달리는 모습, 개와 친구가 되어 강줄기를 따라 걷는 모습, 무언가 신중히 생각하면서 걷는 모습...등 이 모든 아름다운 모습들은 아침 태양만큼이나 밝게 빛났으며 그 광경들은 태화강이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고 그 무엇인가? 머리 위로 따라오는 햇살을 받으며 힘차게 달려 1시간이라는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울기등대 입구에서 걸어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걸어오는 것도 낭만이리라. 20분 이상 걸어야 하는데 현대중공업이 있는 쪽으로 눈을 돌리면서 오면 한 가운데 작고 아담하면서도 귀엽게 생긴 돌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이 바위는 울기공원으로 들어오는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조물주의 선물이리라! 내가 근무하는 연수원 입구에 들어서면 수십 그루의 소나무들이 줄지어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양쪽에 서서 정중히 인사하며, 소나무 숲 사이로 아련히 비쳐오는 아침햇살은 푸른 바다의 기운을 담아 내 가슴속에 와 닿는다. 아침마다 이런 인사를 받으며 아침햇살을 안으면서 출근하는 분이 얼마나 되랴! 조금만 더 들어오면 여러 종류의 새들이 나무 사이에서 즐겁게 노래하며 환영한다. 제각기 환영하느라 박자가 다 다르고 음정도 다 다르다. 멀리서 날라 오는 솔잎 타는 냄새는 감기로 시달린 코에 닿아 시원하게 해준다. 몸 전체를 붉게 물들인 박테기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보랏빛 옷 입은 라일락도 웃어준다. 동백꽃이 새색시 얼굴보다 더 얼굴을 붉히며 나를 쳐다본다. 얼마 남지 않은 벚꽃들도 내년을 기약하면서 인사에 동참한다. 나도 내가 머무는 숙소 앞마당에서 한참 동안 발길을 멈추며 감사하다고 인사한다. 이 순간이야말로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행복이다.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아왔으니 이젠 내 평생의 직업이 교육자가 되었다. 그런데 어린 시절 에 나는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초등학교 내내 커서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무렵 읍내에 있는 공공 도서관에 가서 ‘돼지 기르기’에 관련된 책을 흥미롭게 읽으며 장차 양돈이나 양계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한 여학생에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나는 책 읽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문학서적, 철학서적을 읽고 위인전을 읽으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꿈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 꿈이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페스탈로치 같은 교육자, 슈바이처 같은 박애주의자, 소크라테스나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 덴마크의 달가스나 그룬트비히 같은 개척자의 삶을 동경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타고르, 바이런, 하이네와 같은 시인, 간디와 톨스토이 같은 사상가, 드골과 링컨 같은 정치가, 성 프란체스코 같은 종교적 인물을 모델로 설정했다.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나의 꿈은 사상적인 것, 문학적인 것, 철학적인 것이었으며 자아완성이라는 철학적 명제가 지상과제였다. 돈을 벌어야 한다든가 어떤 지위에 오른다던가 하는 것은 세속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경제 적인 것은 내 삶에 자연스럽게 수반될 것으로 자신하고 있었다. 집이 풍족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가난을 뼈저리게 체험하며 살았다면 장차 돈을 벌어야겠다는 꿈도 꾸었을 법 한데 나는 목축이나 양돈 같은 축산업을 잠시 꿈꾸었을 뿐 회사원, 교사, 혹은 공무원 등 구체적인 직업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은 어디에 연유하는 것일까. 아마 내 낙천적 기질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낳고 자란 농촌풍경이 경제적 풍요를 추구하는 도시적 삶과는 무관하여 욕심 없이 소박하게 사는 습성에 익숙했던 까닭인 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돈을 벌어 큰 부자가 되겠다는 목적의식이 부족하고 거기에 불을 댕 길 어떤 자극도 받지 못한 데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나의 청소년 시기 때 우리나라는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여 잘 살아보기 위해 온 국민이 총력을 경주하던 시절이었다. 공과대학에 대한 인기는 날로 치솟고 기술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날로 높아만 가던 시절 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구체적인 장래 직업을 설정하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가족을 고향에 남겨두 고 늘 혼자 객지생활을 했다. 옆에서 자식들의 생계를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의 모습 을 지켜볼 기회가 없었던 것도 내가 구체적 직업을 꿈꾸지 못하게 한 까닭이었는지도 모른 다. 고향에서 할아버지는 머슴을 두고 농사를 지으셨다. 재래적인 논농사와 밭농사가 전부였다. 나는 농업을 구체적인 직업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직업이라기보다는 타고나서 숙명적으로 해야 하는 일상생활이라고 여겼을 뿐이다. 나의 미래는 오로지 사상적으로 도덕적으로 완성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한 때 사관학교 에 입학해서 드골과 같은 멋진 정치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져보기도 했지만 나의 관심은 곧 다시 어학과 인문학 쪽으로 돌아왔다. 결국 시인이 되겠다는 막연한 꿈을 갖고 상경했다. 대학 국문학과 입학을 필두로 나는 새로운 환경의 난관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산업화 진행 과정의 한 복판, 도시적 삶의 한 복판에 내던져졌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안온한 고향을 떠나 황량한 도시의 한복판에 내던져진것이다. 고모부의 주벽으로 가난한 영세민에 불과했던 고모 댁에 얹혀서 나의 고단한 서울살이는 시작되었다. 포근한 고향의 품속에서 낭만을 추구하며 가꾸던 자아완성의 꿈은 각박한 현실에 직면하여 여지없이 파괴되었다. 시골 촌뜨기는 서서히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문학과에 진학했지만 정작 나의 관심은 외국문화와 외국어에 있었다. 이 잘못된 방향 설 정을 바로 잡는 데 또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나의 독서 취향과 관심 분야도 한국적이라기보다는 너무도 서구 지향적이었기 때문이다. 철학도, 종교도, 역사도, 문학도 모두 서양의 것만을 으뜸으로 쳤고 동양과 한국적인 모든 학문과 예술엔 무관심한 태도를 가졌기 때문이다. 상품도 미제라면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노래마저도 팝송에 심취하여 국악이나 국내가요는 진부한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 서양의 문물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 게 아니라 소나기처럼 퍼붓고 있다고 나는 느꼈다. 당시의 많은 젊은이들은 이렇듯 서양문물을 흠모하며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일제와 해방과 한국전쟁이 가져온 민족 정체성의 혼돈 때문이었다. 나는 가끔 당시 우리 사 회가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빈부의 격차, 독재와 민주주의, 산업화의 대두와 가족의 붕괴 등으로 민족의 정체성이 대혼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장래에 대한 구체적 목표 없이 국문과를 중퇴하고영문과에 다시 입학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다가 25세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했지만 군대에서조차 제대하면 농촌에 정착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군이라는 특수상황에서 나는 시대를 잘못 읽고 있었다. 당시의 농촌은 젊은이가 꿈을 펼치기엔 너무 열악한 여건이었다. 실제로 고향에서 목축과 양계에 종사하던 상당수의 친구들이 후일 파산에 이르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다. 나는 제대를 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직업을 갖기 위해 회사 문을 두드렸다. 건설회사도 좋고 언론기관도 좋고 제약회사도 좋았다. 회사는 다 유사할 것이라는 유아적 발상이었다. 순전히 호구지책의 일환이기도 했다. 나의 능력은 외국어능력이 전부였다. 구체적인 기술을 요하는 직종과는 거리가 멀었다. 방송국이나 신문사를 염두에 두었지만 이미 내 나이는 자격 한계를 넘어선 상태였다. 그래 입사한 곳이 제약회사였다. 젊음이 있는 한 무슨 일을 못하랴?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났을 때 회의가 생겼다. 내근도 아니고 내 전공인 영어를 활용할 수 있는 직종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업사원으로 병원과 약국을 찾아다니며 조금이라도 더 실적을 올려야 하는생활에 결코 만족할 수 없었다. 결단을 내렸다. 사표를 내고 모교의 주임교수님을 찾아간 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교직에 몸담게 되었다. 교직은 청소년 시절 나의 꿈이 아니었다. 교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영어선생님이 교사를 하지 않더라도 교직과목은 이수해 놓는 게 좋다는 충고의 말씀으로 교사자격증을 따놓았을 뿐이었다. 운명이 나도 모르게 나를 서서히 교단으로 이끌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제약회사를그만두고 교단에 섰을 때 아주 편안하고 흡족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전공한 분야라는 것으로 자신감이 충만했다. 결국 나는 청소년기에 한 번도 꿈꾸지 않았던 직업에 평생을 몸 담아온 셈이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어려서부터 비행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착실하게 밟아나 간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어려서부터 국악인, 요리사, 컴퓨터 전문가, 화가와 같은 전문가의꿈을 확고히 설정하고 그 꿈의 실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면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 그렇다면 소질도 능률적으로 개발할 수 있고 시행착오로 인한 방황과 갈등을 겪지도 않을 수도 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본다. 내가 겪은 혼란을 생각하면 일찍 소질을 개발하는 문제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나는 옛날을 돌아보면서 시인이 되자고 다짐하던 것과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꾼 것이 나의 선견지명이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그 두 가지는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내 인생의 소중한 두 줄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는 평생경제활동과 사회봉사의 수단이 되고 있고 국제 문화에 대한 이해와 교류의 가교역할을 해오고 있다. 또 시는 나의 사상과 감정을 가장 효율적으로 피력하는 도구가 되어주고 있다. 영어영문학으로 혹은 시인으로 크게 성공하지 않더라도 그 효용성과 값어치는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이제 지천명의 나이도 지나 나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되돌아본다. 구체적으로 현실적 직업에 대해서 꿈을 갖지 않았던 순수했던 시골뜨기가 어떻게 현실을 헤쳐 살아왔던가. 철학과 사상과 문학이라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명제를 안고 씨름하던 철부지의 꿈은 내 인생에 전혀 소득 없는 공허한 것에 불과했던가. 돈과 권력과 명예라는 현실적 가치를 추구했다면 인생이 한결 보람 있었을까. 지금은 어떤 결론도 내릴 단계가 아니다. 나는 아직 현역으로 직업일선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내 앞에는 지금도 많은 과제가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루어 생각하건데 나의 청소년기의 명제였던 자아완성이라는 이상은 내 인생의 귀중한 방향설정이었으며 나는 지금까지 상당부분 그 방향을 따라 살아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정의, 인도주의, 박애사상, 민주주의, 개척정신, 인문학의 힘에 대한 신념은 현실적인 직업 추구보다도 더 소중한 내 인생의 가치 기준이 되어왔다. 이러한 나의 체험을 지금 젊은이들에게 가르칠 수는 없다. 시대가 엄청나게 변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미래를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낱낱이 알 수는 없다. 옛날보다는 훨씬 더 효율적으로 부와 권력, 사랑과 행복을 추구하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같은 직종의 종사자라 하더라도 천태만상의 사람들이 있듯이 직업 이전에 갖추어야 할 기본 인격의 틀은 청소년시기를 거치는 동안 갖추어져야 한다. 그것은 직업선택 이전에 인생을 행복하고 보람 있게 살기 위해 갖추어야 할 소중한 기본덕목이기 때문이다.
수도권에 살면서 청계천 나들이가 그렇게 힘들었던가?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보는 맑은 시냇물, 흐르는 물소리, 청둥오리들의 모습을 보니 새로운 서울의 모습이 보인다. 공기도 사뭇 맑아진 듯 싶다. 청계천 복원, 대성공이다. 노인 자원 봉사자들의 활동 덕분인지 휴지 한 장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한 가지 개선할 점이 보인다. 청계천 8경에 방문 기념 스탬프 찍는 곳이 있는데 스탬프가 보이지 않는다. 서울시에서 일부러 떼어간 것인지? 아니면 몰지각한 관람객이 훼손한 것인지? 자세히 보니 끝 철사줄이 풀려져 있다. 그렇다면 시민의식의 실종인데. 옥의 티다. 서울시에서 어떻게 빨리 조치할 수는 없을까? "청계천 방문 기념 스탬프를 찍고 싶은데…."
일본 정부의 교육재생회의(노요리 료우지 단장)는 지난 1월 17일, 아베 수상에 제출하는 제1차 보고에 교원이 학생에 대해서 징계 할 수 있는 범위 등을 정한 1948년 법무청(법무성과 내각 법제국의 전신)의 견해 등을 재검토를 명기할 방침을 결정했다. 이는 교실에서 폭력을 휘두르거나 수업을 방해하거나 하는 아동을 일시적으로 교실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나, 폭력을 받았을 경우에 제지할 수 있는 것 등을 명확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법무성의 견해로는 떠들고 있는 아동을 교실 밖으로 내보내는 경우, 교실의 질서를 유지하여 다른 아동의 학습의 방해를 배제하는 경우에는 허용되지만, 징계의 수단으로서는 「용서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또, 교원이 폭력을 당할 경우, 예를 들면 「정당방위 등도 있을 수 있다」라고 하는 통지가 98년에 나와 있지만, 학교교육법에서 체벌이 금지되고 있기에「일방적으로 폭력을 받는 경우도 많다」(재생 회의 사무국)라는 것이다. 재생 회의는, 집단 괴롭힘이나 학급 붕괴에 대응하기 위해, 작년 12월의 제1차 보고의 원안에 「교원이 의연하게 지도를 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의 지도나 징계에 대한 1940년대의 통지 등을 재검토한다」라고 명기했다. 그 후, 논의 과정에서 삭제되었지만 다시 이를 최종적으로 포함시키기로 했다. 다만, 「체벌 용인」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게 「통지 등의 재검토」라는 표현에 그치고 있다. 구체적인 예도 들지 않고, 실제의 규정은 문부과학성 등에 맡길 방침이다.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한국 공연문화의 산실을 둘러보았다. 혜화역 일대는 길거리가 완전히 연극 포스터로 도배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살아 있는 문화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 동안 삶의 여유가 없었을까? 공연문화를 갈망하고 있지만 실천에 옮기기는 어려운가 보다.특히 서울 공연은 작심하고 시간을 내야 한다. 오랫만에 아내와 같이 연극 관람을 하였다. 그러고 보니 10여년 만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원작 로벨또마. 각색·연출 이기석). 포스터 광고에는 '상상초월, 예측불허, 흥미만점, 100%의 스릴과 웃음'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실제 보니 작품 완성도가 떨어진다. 출연 배우진은 열연을 하고 있지만 성숙도, 관객과 호흡 맞추기 등에서 부족한 점이 보인다. 연극 시각 전 분위기 잡는 멘트를 개그식으로 하는데어색하게 보인다. 주연과 조연의 대사와 행동도 가끔 오버 액션이보인다. 연출자는 구성의 빈틈없음을 강조했지만 빈틈이 보인다. 재미도 떨어지는 편이다. 관객들을 연극에 몰입시켜야 하는데 각색면에서 재구성의 세밀함이 요구된다. 대사의 현대화 또는 시사적인 요소 가미가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어 관객들의 긴장도를 늦추지 않게 한 것은 성공적이라고본다. 복선을 깔아 놓고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의 전개는 부담없이 가볍게 보려는 관객을 정신차리게 만든다. 1인 2역을 맡은 리샤르역의 명재환, 프랑소아즈역의 이미형, 루이즈역의 양선영의 열연이 돋보이고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보인다.
언론보도, 또는 국회방송을 시청하면 이런 이야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처리해야할 민생관련 사안이 산적해 있는데, 민생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권이 싸움만 한다.' 꼭 이 이야기는 아니지만 국회의원 중에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많다. 많은 의원중에서 그래도 제대로된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일 계속되는 여·야의 공방을 두고 이를 꼬집는 언론들도 많다. 그래도 이런 행태는 개선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의식개혁이 이루어져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모습이 보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요즈음의 교육부 행태는 어떠한가. 정치권에서 어떤 사안이 있으면 모든 역량을 그쪽에만 쏟아붓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오로지 교원평가를 비롯한 교단개혁만을 외치고 있는 것이 요즈음의 교육부이다. 연가투쟁에 참가한 전교조 소속교사들을 징계하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처리하는 곳은 각 시, 도교육청이다. 이 과정도 결국은 교원평가를 강행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징계시기를 정해놓고 거기에 억지로 꿰맞추기 위해 순식간에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을 어겼으면 징계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 시기가 꼭 지금이어야만 하느냐는 것이다. 연가투쟁을 강행했던 것이 지난해 11월인데 이제서 난리를 치는 이유가 의심스러울 뿐이다. 오로지 교원평가제 도입을 현실화하기 위해 '올인'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나머지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손을 쓰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요즈음의 교육부이다. 학교폭력문제가 그렇게 대두되었지만 해가 바뀌어도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존의 원칙적인 대책만을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사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이에대한 대책역시 전혀 없는 상태이다. 원칙적인 입장만 밝힐 뿐이다. 어디 그 뿐인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학생들의 인권보호에 적극 나서고 있음에도 교육부는 조용하다. 학생들의 인권보호와 함께 교사들의 인권을 보호할 의무가 교육부에 있다고 본다. 남의 일처럼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오로지 교원평가제 도입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지금은 각급학교의 방학기간이다. 방학기간에는 교사들이 모여서 충분한 의견을 나누기 어렵다. 이런 시기를 이용하여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의견을 모을 시간도 의견을 전달할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방학기간이 교사들에게는 비교적 한가한 시간이다. 학교교육을 깊이 생각해 볼 기회이다. 이런 기회를 교육부에서는 모조리 빼앗고 있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은 교원평가제 도입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때에 교사들과 함께 각종 교육현안을 논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학교폭력문제, 교권침해 문제, 사교육문제, 인권문제 등 다양한 사안들을 논의하기 더없이 좋은 시기임에도 이들 사안에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교원평가제만 도입하면 교육이 정상화될 것으로 보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들이야 그렇게 믿을 수도 있지만 나머지 학부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교육이 꼭 교사들 때문에 잘 안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학부모들도 많다. 또한 정부의 잘못된 교육정책때문에 교육정상화가 안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교단만 개혁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이 어느때인가. 교육과정 개정문제도 함께 부각되고 있는 시기이다. 교육과정개편을 두고 문제를 제기하면 무조건 교과이기주의로 몰아간다. 그럴 가능성이 일부 있긴 하지만 모두 그런것은 아니다. 해당교과담당 교사 뿐 아니라 다른 전문가들도 문제를 지적한다. 그 지적된 문제를 깊이 검토할 시간이 없는 모양이다. 왜?, 교원평가제 도입에만 올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상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결국은 제대로 된 교육과정이 만들어질수 없는 것이다. 교원평가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더 큰 문제를 묻어두는 결과를 가져올 수 도 있다. 교원평가제 도입도 중요하지만 많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이 원하고 있는 문제를 더 먼저 해결해야 한다. 대한민국 최대의 교육행정기관인 교육부에서 어느 한쪽으로만 올인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교육정상화를 위한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잘못된 우선순위를 고집하지 말고 제대로된 우선순위를 정하는 지혜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울대가 학생들이 강의 계획을 손수 짜고 지도교수도 직접 고르는 '학생설계 강의'를 전격 도입키로 했다. 서울대 기초교육원은 28일 핵심교양 과정 확대와 학생설계 과목 신설, 강의조교 인증제 및 교내 겸임교수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기초교육 내실화와 혁신을 위한 발전계획'을 발표하고 올해 2학기부터 실시한다고 밝혔다. 서울대는 또 교양영어 과목을 세분화하고 기초과학 과목에 우수 학생을 위한 특별반 혹은 특수학점제를 도입하며 체육 과목 성적 체계도 개선키로 했다. ◇ 학생설계 과목 도입 = 기존 교양 과목에서 다루지 못한 분야에 대한 맞춤식 과목이 정규 교과로 편성된다.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가 비교과 과목으로 운영 중인 '학생설계 과목'(Independent Study)을 교과로 편성해 학생들이 스스로 주제를 선택하고 강의 계획을 마련토록 할 계획이다. 학생설계 과목은 특정 주제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모여 적절한 지도 교수를 직접 섭외해 1대1 지도나 그룹 스터디 형식으로 강의가 이뤄지고 외부 인사를 교수로 초빙할 수 있다. 지도교수와 학생이 합의해서 작성한 문헌 목록에 따라 독서와 토론을 하고 보고서를 제출하는 인디펜던트 리딩(Independent Reading), 학생이 작성한 연구 계획서를 심사해 연구비를 지급하고 연구 결과 보고서를 제출하는 인디펜던트 리서치(Independent Research) 프로그램도 도입된다. ◇ 핵심교양 확대ㆍ강화 = 기초교육 강화를 위해 핵심교양의 범위가 넓어지고 이수 학점이 늘어난다. 문학과 예술, 역사와 철학, 사회와 이념, 자연의 이해 등 4개 분야로 나뉜 핵심교양에 '융합 학문' 분야를 추가하고 필수이수 학점을 종전 9학점에서 12∼15학점 이상으로 늘릴 방침이다. '융합 학문' 분야에는 인문ㆍ사회ㆍ자연계열 학문을 접목시킨 강의가 개설되며 교내 겸임교수 제도를 통해 관련 학과(부) 교수들이 2∼3년씩 돌아가며 기초교육원에 파견 근무하면서 핵심교양 강의를 맡게 된다. 아울러 교양 과정의 개편에 따라 필요성이 높아지는 강의조교(TA)의 질적 제고를 위해 강의조교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대학원생에게 일정한 자격을 부여하는 '강의조교 인증제'가 7월 도입된다. ◇ 기초교양 개편 = 그동안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된 영어, 과학, 체육 과목이 크게 달라진다. 서울대는 학생들의 영어 실력 편차를 고려해 텝스(TEPS) 성적에 따라 대학영어 면제, 대학영어 수강, '입학 전 교육' 뒤 대학영어 수강으로 나뉘던 것을 더욱 세분화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필수교양 과목인 대학영어와 선택 과목인 고급영어 사이에 중급 수준의 영어 과목을 개설하고 '법률 영어'와 같이 전공교육에 필요한 전공 연계 영어 과목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학점 부여의 필요성이 의문시된 체육 과목은 합격-불합격(Pass-Fail)제로 바꿔 불필요한 학점 경쟁과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을 억제하는 대신 모든 학생에게 체육 과목을 최소 1개 이상 이수토록 했다. 또 과목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을 수용해 기초체력 증진과 협동심 함양 등 체육 교육의 목적에 부합하는 과목을 제외한 일부 과목은 폐지하기로 했다. 기초과학 강화를 위해 그동안 수학 과목에만 적용되던 '입학 전 교육'과 물리 과목에서 시범 실시중인 특별반 및 특수학점 제도를 수학ㆍ물리ㆍ화학ㆍ생물 등 다른 과목에도 적용하는 방안을 놓고 협의 중이다. ◇ 리더십센터ㆍ한국학 등 본격화 = '공공 리더십 프로그램'이 교과ㆍ비교과 과목으로 편성되고 국제화 관련 영어 강의가 마련된다. 글로벌 리더를 육성하기 위해 설립을 추진 중인 '리더십 센터(가칭)'에 교과 과정과 함께 공동체 체험ㆍ국내외 인턴십 및 캠프 활동ㆍ멘토링 등 비교과 과정 강의를 개설한다. 또 외국 대학과 리더십 프로그램을 공동 운영해 합동캠프, 화상 강좌 및 토론 등을 추진키로 하고 서울대와 규모, 학문 수준이 비슷한 미국 대학 5곳과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영어로 진행되는 '한국학', '한국사', '한국철학', '한국법'과 '외국 문화의 이해' 등 국제화 관련 교양과목도 신설하고 교재도 자체 개발하기로 했다. 박은정 서울대 기초교육원장은 "교양과목 개편은 이장무 총장이 강조하는 국제화, 학문간 융ㆍ통합 및 기초교양 과목 강화 방침에 따른 것"이라며 "늦어도 올해 2학기부터 실시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가구주가 고학력인 가구일수록 상대적으로 교육비를 더 많이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4분기 2인 이상 도시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212만원, 교육비 지출은 30만원으로 전체 소비지출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14.15%였다. 이를 가구주 교육 정도별로 보면 가구주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인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146만원, 교육비 지출은 15만원으로 교육비 비중은 10.27%로 집계됐다. 가구주가 중학교 졸업인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과 교육비 지출은 각각 169만원과 18만원으로 교육비 비중은 10.65%에 그쳐 전체 평균에 못미쳤다. 반면 가구주 학력이 고등학교 졸업인 경우에는 월평균 교육비 지출은 30만원으로 전체 소비지출(206만원)의 14.56%를 차지했고, 가구주 학력이 대학교 졸업인 가구의 교육비 지출은 45만원으로 전체 소비지출(271만원)의 16.60%에 달했다. 이처럼 가구주의 학력이 높을수록 교육비 지출 비중이 올라가는 것은 저학력자에 비해 고학력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소득을 올리면서 사교육 등에 대한 지출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가구주 학력 정도별 월평균 소득은 초졸이 201만원, 중졸이 234만원, 고졸이 295만원, 대졸이 414만원으로 대졸이 초졸의 2배를 넘었다. 이같은 가구주 소득 격차에 따른 교육비 지출 차이는 다시 자식들의 학력 격차로 이어져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부모의 학력격차는 소득격차로, 이는 다시 사교육 지출의 차이를 통해 자녀 세대의 학력격차로 이어져 가난이 대물림되는 악순환이 우려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70∼1980년대 모든 남녀 고교생들이 얼룩무늬 훈련복을 입고 운동장에 모여 뽀얀 먼지를 날리며 총검술과 제식훈련, 구급교육을 받던 광경을 떠올리는 교련 과목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교육인적자원부가 1997년 개정된 제7차교육과정이 사회 환경의 변화와 각계각층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초ㆍ중등 교과를 전반적으로 개편하면서 교련 과목의 이름을 바꾸기로 했기 때문이다. 교련이 남녀 고교의 필수과목으로 채택된 것은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다 1명을 제외하고 전원 사살된 이른바 김신조 사건이 발생한 이듬해인 1969년이다. 당시 생포된 김신조는 전국에 생방송된 기자회견에서 남파 목적을 묻자 "박정희의 목을 따러 왔다"고 말했고 이를 계기로 위기감을 느낀 박정희 정권은 북한의 비정규전에 대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향토예비군을 창설하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교련과목을 도입했다. 청소년들에게 확고한 국가관을 정립하고 투철한 안보의식을 확립한다는 목표로 학교에서 군사교육을 실시했던 것. 그 결과 모든 남녀 고교생들은 교련 수입이 있는 날이면 아예 집에서부터 얼룩무늬 교련복을 입고 등교했고 운동장은 카빈이나 M16 모형 총을 들고 총검술 등을 배우느라 하루종일 기합과 구령 소리가 끊이지 않아 군대 연병장을 방불케 했다. 학교 무기고 앞에 학생들이 모여앉아 M1 소총을 분해조립하거나 수입포로 총기 부품을 손질하는 광경도 수시로 목격됐다. 여고생들은 대부분 여군 출신인 교련 교사의 구령에 따라 제식훈련을 받거나 전쟁중에 부상한 군인들이 병원으로 후송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들것을 들고 전력 질주하거나 삼각건과 압박붕대로 부상병을 치료하는 훈련을 받았다. 군복 차림의 교련 교사들이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근엄한 표정을 지은 채 등교시간에 학교 정문에 서 있다가 두발이나 복장이 불량한 학생들에게 체벌을 가하거나 얼차레를 주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후 1980년대 말 세계적으로 냉전체제가 와해되고 한국에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분 덕분에 1992년 6차교육과정 개정 이후 교련 수업은 기존의 군사훈련 중심에서 간단한 응급처치술이나 인성교육, 심신수련 위주로 바뀌었다. 1997년 바뀐 7차교육과정에서는 교련 과목이 필수에서 선택으로 변경돼 교육청과 학교의 재량으로 교과목 포함 여부를 결정하게 됐다. 이 때문에 교련 과목을 가르치는 학교는 점차 줄었고 지난해에는 91개 고교(23만665명)에 그쳤던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 2천144개 국공립 및 사립 고교 가운데 교련과목을 유지한 학교는 고작 4.2%에 불과한 셈이다. 한편 교육부가 교련과목 이름을 바꾸기 위해 최근 아이디어를 공모한 결과 교련 교사들 사이에서 '안전과 보건'으로 개명하기를 희망하는 여론이 대세였으나 체육 등의 과목과 경계선이 모호해진다는 이유로 이 이름을 반대하는 다른 과목 교사들의 목소리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는 교육현장의 이런 상반된 시각을 감안해 '안전 생활', '생활 안전' 등으로 개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늦어도 다음달 말까지는 개명작업을 끝내고 2012학년도부터 새로운 이름의 교과목으로 수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온 국토의 병영화 바람 속에서 시작된 교련 과목이 38년 만에 군사문화의 흔적을 완전히 털어내고 어떤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날지 주목된다.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습니다. 괴롭힘을 당하여 전철에 뛰어들어, 자살했습니다. 이 메일을 9인에 보내지 않으면 그 시체가 당신의 집에 갑니다. 그만두면 알기 때문에」 PC실의 스크린에 비추어진 메일을 읽고 웅성거리는 아이들이 있다. 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 차례차례 전송되기 위해 체인 메일이라고도 불린다.「모두 이런 메일이 오면 어떻게 할까요?」 도쿄도 키타구의 아카바네다이 니시오 학교에서 행해진 6년생의 「정보」수업에 미술을 가르치고 있는 노마씨가 연결 메일의 대처법 등을 아이들에게 물어 보았다. 아이들에게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수업으로 사용한 메일은 실제로 동교의 아동들에게 보내져 온 것이다. 「메일을 보내지 않아도 자신이 살해당할 것은 없다」,「시체가 온다는 것은 절대 거짓말」이라고, 메일을 전송하지 않는다고 하는 소리가 대부분이지만 「무서워 보내 버릴지도」라고 어쩔 수 없이 대답하는 아이도 있었다. 노마씨는 「체인 메일을 보내면, 상대에게 불쾌한 생각을 시키는 가해자가 된다」 등을 설명하자 아이들은 「친구에게 무서운 마음을 갖게 해선 안 된다」라고 의견을 정리했다. 동교는 「정보교육에 관한 연간 계획」을 작성해, 작년부터 3-6년생을 대상으로 매주1시간 정도 「종합적인 학습의 시간」의 일부를 「정보」의 수업에 충당하고 있다. 특별히 힘을 쏟고 있는 것은 인터넷상의 트러블 방지다. 노마씨는 「아동들에게 빈번히 스팸 메일이 도착하고 있다. 게시판을 사용한 집단 괴롭힘이나, 넷 게임에 빠져든 부등교도 학교의 문제다. 모랄을 가르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이야기한다. 동교의 6년생의 휴대 전화의 소유율은 40% 이상이며, 수업을 시작하고 나서 「이상한 메일이 왔다」라고 아동이 상담하러 오는 케이스가 증가하는 등, 정보교육의 효과에 반응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학교에서의 정보 모랄교육은 충분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교토시의 정보화 추진 종합센터가 2005년 12월, 시내의 초중학교의 교원 약 1000명을 조사했는데, 「정보 모랄교육이 필요」라고 대답한 것은 93%이다. 그러나 실제로 가르친 경험이 있는 것은 41%정도였다.「교수법을 모른다」,「적절한 교재가 없다」라고 하는 소리도 적지 않다. 세이신 여자 대학 문학부 교수의 나가노 카즈오씨는 「아이의 흥미나 관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은 교사가 많다. 정보 교육은 일부의 열심인 선생님만이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이야기한다. 문부 과학성은 금년도, 전국에서 15개의 시범학교를 선정해, 정보 모랄 교육의 노하우를 구축하는 사업을 시작한다. 도쿄도나 쿄토시, 사이타마현등도 연달아 교사 전용의 지도 자료를 작성해 지원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조사의 「goo리서치」가 05년 6월, 초등학생의 보호자 1200명을 대상으로, 아이의 인터넷의 개시시기를 물었는데, 43%가 1학년생까지 이용을 시작했다고 회답했다.
충북도교육청은 27일 도내 초.중등 학생 및 교사의 영어 의사소통 능력을 제고하고 국제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해 현재 25명인 원어민 교사를 올해 120% 늘어난 55명으로 크게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도교육청은 이에 필요한 예산 21억여원을 확보하고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교원대의 협조를 얻는 한편 자체 노력을 통해 원어민 교사를 확보할 방침이다. 이들에게는 인건비 외에 주택은 물론 주거 지원비와 순회지도비, 항공료, 정착금, 퇴직금, 4대 보험료가 지원되며 집기 구입비도 별도로 지원된다. 도교육청은 영어교육 활성화를 위해 중학교에 우선적으로 원어민 교사를 배치하되 이들이 배치되지 않은 학교에 대해서는 선진 외국어 교수기법 개발과 보급, 영어교육 교재 개발 등의 장학자료 개발과 농산촌 원어민 체험교실 운영, English Park 운영, 협동수업, 순회 운영 등의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교장 자격증이 없는 28년 교육경력의 평교사가 교장에 올랐다. 주인공은 강원도 홍천정보과학고에서 국어과목을 가르치는 현원철(53)교사. 27일 강원도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26일 특성화 고교인 홍천정보과학고 교장초빙.공모제 지원자들에 대해 학교운영위원회와 도교육청 인사위원회의 심사를 한 결과 이 학교 국어 담당 현 교사가 교장으로 선출돼 4년 임기의 교장직을 수행하게 됐다. 교육부 방침에 따라 일반계고교와 달리 특성화고교 교장초빙.공모제에는 교장자격증이 없어도 지원할 수 있으며 강원지역 교육계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현 교사는 이 학교 근무경험만 9년으로 학교 특성을 잘 알고 있는데다 지역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적임자로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장에 발탁된 현 교사는 국제대(현 서경대)를 졸업한 뒤 3월이면 교직에 몸 담은 지 29년이 된다. 강원도 춘천이 고향인 현 교사는 인천 선화여상에서 처음 교직을 맡았다가 1979년 8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1989년부터 홍천지역 학교에 머물기 시작, 홍천정보고에서만 모두 9년째 근무 중이다. 그는 "이 학교 학과 개편때부터 직접 미용과를 만드는 등 나의 작은 보탬이 얼마든지 교육을 발전할 수 있다는 소신을 갖게 되었다"며 "나머지 교직생활을 실업계 학생들을 위해 조금만 힘이나마 보태 희망을 주고 싶었다"며 교장 공모에 지원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상대적으로 소외받고 있는 실업계 학생들에 대해 사회적인 관심과 돌파구를 마련해 주어서 하루빨리 이들을 학교에 안착시켜야 한다"며 "교육이야말로 국민에게 주는 가장 큰 복지이기 때문에 벽돌 한장 쌓는다는 생각으로 학생들을 위한 교육방향을 모색하면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강원도교육청은 도내 4개 초.중.고교 교장초빙.공모제 학교에 대해 심사를 벌여 홍천 정보과학고 교장에 현 교사를 비롯해 강릉사천초교에 김영금 강릉 성산초교 교장, 춘천 강서중에 이찬형 정선 임계고 교장, 화천 사내고에 신동수 강원사대부고 교감을 각각 선출했다. 교육부에서 추진하는 이번 교장공모제 학교에는 도교육청 차원의 행.재정적 지원과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권이 부여되며 교장에게 교사정원의 50% 범위 내에서 초빙권이 주어진다.
'대학교수도 철밥통이 깨지고 있다.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다. 각 대학이 승진요건을 강화하면서 대학교수들도 일정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승진이 되지 않음은 물론,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다. 일부대학에서는 직급정년제를 도입하고 있다. 예전에는 명성만 가지고 정년까지 가는 교수들이 많았으나 이제는 명성만 가지고는 어림없다는 이야기다. 연구실적이 뚜렷하고 강의평가도 잘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초,중,고등학교 교사들에게까지 밀려들고 있다. 대학교수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대학교수도 평가를 받는데, 교사들이 왜 평가를 반대하는지 모르겠다. 교사들도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잘못된 시각이다. 우리도 하는데 너희는 왜 안하느냐는 식의 이야기는 설득력이 없다. 어디 대학과 초,중,고등학교가 같은 상황인가. 아니 어디 비슷하기라도 한가. 같은것은 오로지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 뿐이다. 대학교수는 매주 자기가 맡은 강의만 하면 된다. 강의시간도 초,중,고에 비해 월등히 적다. 강의만 잘 하면 그만이다. 자신의 노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연구실적 쌓고 강의평가 잘 받을 수 있다. 일부교사들은 이런 이야기를 가끔 하는 경우가 있다. '저런 사람들 때문에 교원평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저런 사람이라고 지목하는 교사들은 극히 일부이다. 교원평가를 통해 어디 그들만 퇴출되겠는가. 전체를 상대로 교원평가를 하겠다고 하는데, 그것이 어디 쉽게 마음대로 될 것으로 보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교원평가제 도입되면 능력과 관계없이 모두가 퇴출대상이 될 것이다. 본인이 능력이 없어서 퇴출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교사는 아무도 없다. 자신은 절대로 퇴출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극히 일부를 퇴출시키기 위해 교원평가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나. 현재의 제도로도 부적격교사는 얼마든지 퇴출 시킬 수 있다. 이런 논리를 가지고 있는 교사들은 빈대 한마리 잡기위해 초가삼간을 모두 태우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교원평가가 진정한 교육정상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지 않는다. 교육부의 의도대로 진행될 수 없다. 학교사정을 모르기 때문이다. 흔하디 흔한 중, 고등학교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겠다. 어떤 교사가 지난해에는 수업시수에 여유가 있어서 남들보다 2-3시간을 덜 했다고 하자. 시간적인 여유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수업준비도 철저히 잘 할 수 있었고, 학생들 생활지도도 잘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각종업무처리도 제시간에 모두 해낼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해가 바뀌면서 교사수가 줄었다.(학급수 감축등의 원인으로) 자신의 교과에서 1명의 교사가 줄었다면 그 교사는 지난해보다 최소한 2-3시간의 수업을 더 떠안아야 한다. 1년사이에 모든것이 뒤바뀐 것이다. 수업부담이 높아졌는데, 그 교사가 지난해처럼 모든 것을 우수하게 완수할 수 있을까. 철인이 아닌다음에는 그렇게 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해처럼 수업부담이 많지 않았다면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하소연 할 것이다. 위의 예에서 교사는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교원평가에서는 어떤 점수를 받을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같은 교사가 1년사이에 평가에서는 천당과 지옥을 오갈 수 밖에 없다. 과연 평가에서 자유로운 교사가 있을까. 절대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매년 상황이 바뀌는데, 어떻게 자신은 퇴출대상이 아닐 것이라고 속단할 수 있겠는가. 결국 교원평가제도입은 모든 교사를 퇴출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교원성과급도 마찬가지 아닌가. 성과급의 등급과 교원평가를 묶어서 퇴출시킬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교원평가시행학교를 늘리면서 난데없이 교원성과급 차등지급을 50%이상으로 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20%에서 갑자기 높아진 수치이다. 교원평가제와 성과급을 묶어서 교사를 평가하겠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성과급의 경우도 학교상황이 매년 변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것을 평가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인가.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은 자신의 능력보다는 주변의 상황으로 인해 평가결과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자신의 능력과 관계없이 평가가 진행될 것이다. 같은 교사이면서 남의 이야기하듯이 평가가 어쩌구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모두가 똑같은 상황이다. 대학교수가 명성만 가지고는 안되는 것처럼 교사들도 자신의 능력만 가지고는 안된다. 모두가 잘못된 평가제도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교원평가가 성급히 시행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평가를 위한 제반여건이 갖추어질 때까지는 교원평가제 도입을 유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장이 되나 안 되나 가슴이 조마조마 했던 초등학교 시절 반장선거 때의 정경이 엊그제의 일만 같은데 벌써 50대다. 사무치는 연정에 편지를 띄워놓고 날이면 날마다 답장 오기를 학수고대하던 여리고 순진하던 나의 사춘기, 주체할 길 없는 그리움에 무작정 봄 길을 걸으면, 연두색 물감으로 색칠을 한 듯 멀리 파릇한 풍경을 만들며 봄을 알려오던 동구 밖 버드나무, 이 모두가 엊그제의 일만 같은데 벌써 나이가 이렇게 되었다. 그동안 지내온 세월을 나는 모두 손금을 보듯 드려다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니 그렇게 들여다보인다. 대학 새내기 시절, 명동의 지하 학사주점에서 호기를 부리며 낭만을 구가하던 일도, 그 시절의 데모 행렬도 어제 일 같고, 군에 입대해 이십팔 주 고된 훈련 받던 모습이며, 훈련이 끝나고 군모에 빛나는 하사관 계급장이 달려지던 일도 손에 잡힐 듯 어제의 일만 같다. 군복무를 마치고 만학을 하느라 삼십 가까운 무렵까지 대학 캠퍼스를 오가고 졸업을 한 후엔 곧장 고등학교 교단으로 가 십대의 젊은이와 함께 생활해 왔으니, 나의 마음은 어쩌면 지금도 세상 물정 모르고 새파랗게 젊기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젠 나이 먹었음을 부인할 수도 없다. 시절이 좋아서 날로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노년의 개념도 예전과는 다르다 하지만, 마냥 내가 젊다고 물불 안 가리고 앞으로 나설 수도 없는 것이다. 벌써 나를 보자마자 단번에 나의 나이를 짐작해내곤 그에 걸맞게 나를 대하려는 시선들은 도처에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나이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차후 생활의 자세를 궁리하여 보는 것이 순리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 과욕을 덜어내는 것이 되고 노욕을 방지하는 방편이 되기도 할 것이다.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왜 욕심이 없으며 의욕이 없을 것인가. 다만 그 나이에 걸맞게 품위를 지켜가며, 나이에 알맞게 욕심을 갖고 의욕을 불태우는 것이 젊은이들과 조화를 이루는 길이 될 것이다. 다양한 욕구가 있겠지만 건강하게 천수를 살고 싶은 욕망이 어떤 욕심보다 먼저 고개를 들 것이다. 노후를 대비하여 젊은 날에 어느 정도 준비를 해 놓았고 힘에 붙인 대로 자식들 교육도 시켜놓았으니 그 책임에서도 이제 벗어날 나이인 것이다. 이제 한시름 놓고 어떻게 노후를 건강하고 유익하게 보낼 것인가에 마음 쏠리는 것도 자명하고 자연스러울 터이다. 각자 각자 나름대로 사정이 있고 고충이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그 연령대의 공통분모는 또 찾아질 것이다. 이제 자식들에게 저희들 경제는 맡겨놓고 손자손녀 학업도 앞질러 노심초사 하지 말고 저희들에게 맡겨놓고,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일정거리 떨어져 지지 격려하는 차원이면 족할 것이다. 그래 이제부터는 내 건강, 내 능력에 맞게 인생을 찾아 즐기고 보람을 가꾸어 가는 것이 자식들에게 짐을 덜어주는 것이 될 것이다. 그저 내 생활은 소홀히 하고 자식들 문제에 여전히 얽매어 있다는 것은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일생을 자식들 건사하기에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 왔으니 그럴 개연성을 부인할 수도 없겠으나 노년에 이르러서는 벗어나서 나에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게 상호 편하고 바람직하지 않을까. 나는 이제 50대이다. 가끔 자각이 들면 벌써 내가 이 나이가 되었구나 하고 회한에 젖기도 하지만 아직은 노년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그래 항상 나는 아직 젊고 건강하다, 혹은 마음은 아직도 새파랗다고 젊음을 확인해 보다가도 종종 난관에 부딪치기도 한다. 내가 늙었다는 것보다는 내가 살아온 지난 세월이 이미 늙었다는 자각이다. 그런 자각이 들 때는 내가 쉰 세대(?)라는 생각을 꼼짝없이 하고 만다. 내가 10대 적에 무슨 책을 보았고 어떤 팝송에 몰두하였는지, 어떤 꿈을 품고 있었는지 엊그제의 일처럼 떠올라 마음은 그대로 그 시절에 사는 것 같아도 이미 그 시절은 까마득한 옛날인 것이다. 젊은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쯤으로 인식이 될 터이다. 그러니 아무리 내가 늙지 않은 것 같고 시대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도 벌써 나는 구세대에 속하고 마는 것이다. 요새 십대 아이들의 이성교제나 놀이문화의 양상을 보면 그만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쉽게 동화될 수 없음을 깨달아 긴 세월의 간극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서 그런가. 우리는 개인적인 면보다는 속한 집단, 속한 세대, 그리고 겪어온 역사 속에서 평가되어 그 위치가 결정되는 것도 보통이다. 즉 사회 전체의 맥락 속에서 내가 평가받고 규정되고 바라다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독불장군처럼 나 혼자 젊다고 고집할 수만도 없다. 내가 거쳐 온 옛 학창시절, 결혼하던 당시의 풍속도가 내 안에 그대로 각인되어 나를 비춰내고 있으니 젊은이는 나의 연륜을 감지하곤 자기들과는 다른 삶의 주인공임을 즉시 구별해 낼 것이다. 이것을 편견이라고 거부하거나 무시할 수 있을까. 젊은이들을 탓하고 예의범절도, 전통가치도 모르는 세대라고 분개라도 해야 할 것인가. 그만큼 나는 나도 모르게 옛날 관습, 그 가치관, 그 타성에 젖어 있다. 비로소 내가 젊은 것이 아니라 이 사회 속에서 이미 늙은 세대에 편입되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컴퓨터에 능하고 휴대폰의 기능을 잘 활용한다 해도 내가 젊은 세대와 같을 수 없고 쉽게 동화될 수 없는 이유다. 나는 이미 속속들이 옛날의 정치, 경제 문화적 환경 속에 상당 부분 젖어있게 마련이다. 이미 오늘의 세상은 다음 세대에게 상당부분 넘어가 있고 그 다음 세대가 또 만반의 준비를 하고 대기하고 있다. 이런 기반과 자각 위에 노후 설계도 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돈이 있어도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었어도 우리는 이미 지나간 세대로 분류되고 만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젊은이들 하자는 대로 내맡기고 양보하면 지혜로운 것인가. 젊은 세대를 꾸짖고 비판하고 내 생각을 고집하는 게 권위를 세우는 것인가? 모든 일이 다 그러하듯 중요한 것은 조화를 이루어 내는 것이다. 나의 행보를 건강하고 의연하게 유지하되 젊은 세대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내가 살아온 세월을 긍정하고 거기서 얻은 지혜를 소중하게 간직하며 실천하고 전수하되 마찰이 없어야 할 것이다. 권위는 노인들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나는 칠팔십 대의 노시인들이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솔직하게 삶을 회고하고 담백하게 심정을 토로하는 글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분들은 바로 우리가 가야할 길을 앞서 걸으며 풍부한 체험으로 이미 터득한 지혜의 횃불을 높이 받쳐 들고 계신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그 환한 선대의 불빛 아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전진하며 기쁨과 평화를 찾아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아무도 늙음을 피할 수는 없다. 노년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비관에 젖어 한탄하며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된다. 의연하게 목표를 세워 기쁨과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사람이 늙는 것은 지극히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마음먹기에 따라 노년은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할 것이다. 나도 벌써 오십대이다. 노년의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일임을 자각하면서 관련 서적을 몇 권 펼쳐보기도 했다. 그러나 책은 참고가 될 뿐 그 책에 맞춰 나의 노후를 설계할 수는 없다. 나의 체험, 나의 능력, 나의 개성에 맞게 노후 설계를 해야 할 것이다. 한편 나는 벌써 오십대이긴 하지만 또한 이제 겨우 오십대이기도 한 것이다. 아직 직장생활도 몇 해 더 해야 하고 자식들 출가시켜야 할 일도 남아있고 늦둥이가 이제 중학교에 입학하니 아무래도 노년을 생각해보는 게 얼토당토 않고 억지로라도 저만치 밀어두어야 할까보다. 혹시 이 글을 선배 어르신들께서 보신다면 치기어린 후배의 두서없는 문장에 따끔하게 일침을 놓아주시고, 좋은 지침 되도록 충고의 말씀 해주시기 바란다.
한 장의 사진을 보며 많은 생각을 떠올린다. 대통령의 존재 이유는 과연 무엇인지?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국민이 피눈물을 흘리지 않게 해 주는 것도 그 중의 하나가 아닐까? 기업 투자 활성화보다는 정치적 판단으로, 각종 수도권 규제 악법으로 이천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증설 불허를 보는 국민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항의 집회 모습.빨간 머리띠, 피켓, 현수막 그리고 항의 함성, 정부 비난 발언과지지 박수. 시장을 비롯한 지역 각급 단체 인사 및 상인 200여 명의 집단 삭발. 여인의 소복(素服)과 청와대, 건설교통부,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환경부를 상징하는 다섯 개의 관(棺). 참여정부의 끝을 보는 것 같다. 위정자들은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하는데… 지난 해 국회 앞에서 있었던 교육자치법 개악 반대집회 모습이 떠오른다. 전국에서 모인 수 천명의 선생님과 교육관계자들이차디찬 도로 바닥에 앉아 외친 함성을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언론의 주목도 크게 받지 못하였다. 결국 악법은 통과되어 교육자치가 사라지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말았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중앙부처의 관료들은 국민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나 보다. 아니다. 그들 나름대로는 열심히 하고 있는지 모른다. 때론 무지(無知)로도 그렇고. 어찌보면 그 자리에서 살아 남으려니 어쩔 수 없겠구나 하고 억지로 이해하기도 한다. 민폐 끼치고 국정 운영 능력이 부족한 교육부, "방 빼!" 모 선생님 말씀이 떠오른다. 남편이 중앙부처 소속 공무원으로 광화문에 있는 정부종합청사에서 근무하는데 유독 교육관련 시위가 많이 눈에 띈다는것이다. 시위대의 주장이 모두 옳다고 볼 수는 없지만 시위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유쾌할 리 없다. 한 두번도 아니고 자주 목격하다 보니 짜증이 나고 청사에서 교육부가 다른 곳으로 나가주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든다는 것이다. 그가 그 건물의 주인은 아니지만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민폐를 계속해서 주니 교육부를 향해 "방 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솟구친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교육부가 중앙부처로서 제대로 역할 수행을 했는지 못 했는지 자명히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문득, 국정 운영을 잘 하는 척도 한 가지가 떠오른다. 정책 관련 민원의 빈도나 시위도 그 중 한가지가 되지 않을까? 민의를 수렴하여 제대로 했으면 민원이나 항의 시위는 일어나지 않거나 횟수는 확실히 줄어들 것이다. 국정 운영자들이 탁상공론으로 자기 생각만 옳다는 아집과 독단에 빠져 일을 하고있지나 않은지 반성하여 볼 일이다. 특히 '선출된 권력'이라는 오만은 국민으로서 보아주기에 역겹다. 아마추어 참여정부의 정책은 허구 아닌지… 국토의 균형발전도 그렇다.말은 그럴 듯 하다. 흠 잡을 수 없는 단어이다. 그 결과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전국의 땅값만 올려 놓고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고 국민의 혈세를 더 많이 착취(?)한 것은 아닌가? 결국 경제를 죽이고 일자리는 없애며 민생을 도탄에 몰아 넣은 것은 아닌지? 누가 국토를 균형 발전시켜 달라고 하던가? 각 지역이 그 여건에 맞게 발전하면 되는 것이 순리라고 보는데 이 정부에서는 억지로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예컨대 서울의 강남은 강남대로, 경기도 수원은 수원대로, 이천은 이천대로 시민을 살리며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을 발전시킴과 동시에국가 경제를 살려야 하는 것이다. 지방의 모 도시를 수도권의 도시처럼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하는 정책은 잘못된 것이다. 누가 개헌 제안을 지금 꼭 해 달라고 하던가? 국민의 70% 이상이 대통령의 지금 개헌 추진을 반대하고 있는데 청와대는 강행하려 하고 있다. 이쯤되면 대통령에게는국민이 안중에 없다고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정치가 경제를 망치고 교육까지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정치가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고 국가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국민이 삶을 걱정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것이 대통령의 기본 책무가 아닌지? 또 그것이 정치인이 할 일이라고보는데…. "여보,상훈이(중학교 2학년 아들) 겨울 방학 영어 학원비 50만원 총 몇 시간 분이지?" "하루 3시간씩 20일이면 60시간이네요." 이것을 공교육인 학교에서 흡수했다면 얼마일까? 교육의 질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1텀 20시간 기준 20,000-25,000원으로 잡으면 60,000-75,000원으로 해결이 되었을텐데. 사교육비로 공교육 비용의 6-8배가 들어간 것이다. 교육부에서는 '방과후 학교'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학교는 지금 겨울방학 중이고 동면중이다. 이게 교육현실이다. 토요일 아침,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국민이 우는 이유를당신은 알고 있습니까?"
리포터는 지역교육청 평가에서 최우수교육청의 ‘영예’를 안은 평택교육청을 방문, 엄용관(嚴容寬.60) 교육장을 만났다. 평택교육청은 인간존중 의식 함양을 비롯한14개 평가 영역 중 9개 영역에서 최우수를 받아최우수교육청으로 선정되었다. 지난 달 27일,평가보고회에서 교육감으로부터 기관표창을 받고 특색사업인 ‘한울타리 사랑교육’과 ‘사랑의 편지쓰기’ 우수사례를 보고하였다. “매우 기쁘고 평택 교육가족들이 대견스럽습니다. 각급 학교에서의 글로벌 인재 육성을 위한 알찬 교육활동과 교육청의 적절한 장학지원 활동이 조화를 이룬 결과라고 봅니다.” 작년 3월부임한 그는 교육장으로서 학생을 직접 교육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음을 깨닫고 일선에서 교육을 직접 담당한 학교장에게 많은 자율권을 주어 신바람 나는 학교경영을 하도록 지원하고 도와주는 행정을 펴 나가겠다고 결심한다.한편으로는 교직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학생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업을 찾는다. ‘글로벌 꿈 키우기 품제 운영'이 바로 그것. 창의성,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신장, 독서, 효 실천, 체력단련 등의 분야에 학생들이 스스로 참가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결과 경쟁력 있는 글로벌 인재 육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혁신은 나부터,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것” 그는 요즘 한창 부르짖는 혁신을 그다지 어렵게 않게 생각하고 있다. “혁신은 나부터, 작은 일부터 실천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각종 회의시간이면 정해진 시각에 회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구성원이 미처 도착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교육장이 회의장에서 기다린다. 이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시간을 엄수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학교의 업무를 가중시키는 일은 가급적 지양하고 있다. 교직원들을 즐겁게는 해주지 못할망정 스트레스를 주는 기관장은 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 2007 교육청 교육계획엔 평택교육의 기본방향과 교육청 사업만 제시하였다. 학교의 자율성을 도모하고 창의적인 학교교육계획 수립을 유도하려는 것이다. 교육청에서 학교의 단위사업까지 시시콜콜이 간섭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학교 교육이 오히려 위축된다는 소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의 자율권과 창의적인 교육활동 최대한 보장·지원 그는 교육장이 가져할 선구자적 교육 마인드는 ‘우리의 교육이 나가야 할 바를 직시(直視)하고 학교교육이 정도(正道)를 가도록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지적(知的)·인성적(人性的) 권위를 유지해야 하며, 학교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여 창의적인 학교 교육활동을 지원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학교, 학생, 학부모, 교직원을 보는 시각이 확고하다. 학교는 학생교육을 책임져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학교경영의 자율성을 극대화하여 학교장이 책임지고 교육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은 학교에서 어떻게 교육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교직원은학생들에 대하여 무한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으로 교육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직원의 교육본질을 망각한 어떤 행위도 용납 안 돼 그는 말한다. 학부모는 학교를 신뢰하고 선생님을 믿어야 한다고. 학교 불신, 선생님 불신의 풍토에서는 교육의 효율성은커녕 교육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는 이러한 신념을 학부모 교육에서 강조한다. 선생님의 행동이 아무리 미워도 자식 앞에서 선생님 험담은 하지 말아 달라고 한다. 교직원에게도 당부한다. 교직원은 교육본질을 망각한 어떠한 행위도 해서는 안 되며 학교가 정한 교육목표 실현에 충실히 임해야 한다고. 또한 결손학교 예방에 교직원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그는 교육공동체간 갈등이 많은 학교를 결손학교로 지칭하고 있다. 그는 학교를 방문할 때 세 가지 관점을 갖고 학교를 바라보고 있다. 첫째, 학교장의 마인드는 열려 있는가? 학교장의 열린 마음과 수용적인 자세, 선생님의 눈높이를 맞추는 학교장상을 그리는 것이다. 둘째, 학교가 안정되어 있으면서도 생동감이 있는가? 우선 면학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가를 보고 살아 움직이는 교육을 살피는 것이다. 셋째, 교직원간 인간관계는 좋은가? 즉, 교직원간의 융화와 인화를 중히 여기는 것이다. 평택교육의 자랑은 ‘글로벌 꿈 키우기 품제 운영' ‘글로벌 꿈 키우기 품제 운영'은 인성이 바르며 자기주도적이고 창의적인 학습능력을 신장시켜 나갈 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 글로벌 인재 키우기 사업인데 평택교육의 자랑이다. 또한 올해 새사업으로 추진할 초등학교 동학년 협력담임제(학년담임제) 운영 계획은 질 높은 교육을 학생들에게 제공할것으로기대하고 있다. 현안과제로는 5개 분교장의 시설개선 및 복식수업 해소에 두고 있다. 예산이 수반되는 것이지만 폐교 가능성이 예상되어 투자를 하지 않은 결과 교육환경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이다. OECD 상위권인 나라에서 복식수업은 국가적 수치라고 말한다. 그는 교육장으로서 평택교육을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고 평택교육 발전의 전환점을 꾀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지만 이것이 바로 보람과 긍지이며 자부심이 아니겠냐고 되묻는다. 특별한 어려움은 없지만 교직원 단체가 학교에 깊숙이 관여하여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며 ‘집안일은 집안에서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말한다. 경쟁력 있는 글로벌 인재육성에 앞장 서는 평택교육 평택교육의 미래로는 평택항 발전,중국과의 교육교류 등에 관심을 두어 경쟁력 있는 글로벌 인재육성에 가장 먼저 다가갈 수 있는 교육환경 조성에 모든 시민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지리적 여건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평택교육 가족 모두가 ‘희망 평택교육의 실현은 「나부터」「작은 일부터」실천한다’는 마음으로 한데 힘을 모아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새해에는 우리 학생들 모두가 좋은 환경에서 학습할 수 있도록 지원행정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포부를 밝힌다. 평택 출신으로 1968년 교단에 입문한 그는 교사 21년, 교감 2.6년, 장학사 6.6년, 교장 3.6년, 장학관 5.6년 경력의 경기교육계의 베테랑이다. 외유내강 성품으로 물 흐르듯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 40년 가까이 교단에 봉직하여 온 그는 ‘원하는 삶을 스스로 가꾸어 가는 자체가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교직생활을 만족하고 있다는 뜻이다. [ 대담일시 2007.1.24(수)16:30-18:00. 교육장실 ]
서울초중등댄스스포츠교육연구회(회장 김남현)는 27일 서울 노원구 연촌초등학교 체육관에서 댄스스포츠 3급 지도자 자격시험을 개최 했다. 90여명의 선생님들은 방학기간 동안 연수한 실력을 선보였다.
울산교육연수원은 나하고 인연이 많은 곳이다. 77년에 교직에 발을 들어놓은 이후 연수를 처음 받은 곳이 울산교육연수원이었다. 그 때 당시 ‘새마을연수’를 이곳 연수원에서 2박 3일간 받은 적이 있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때이다. 고속도로는 생기기 전이었고 국도도 비포장도로였다. 그 때 창녕군 계성면 계성중학교에서 근무를 했는데 창녕에서 울산까지 오는 길이 너무 멀고 험했다. 지금이야 고속도로로 오게 되면 빠르면 1시간 30분 내지 2시간이면 올 수 있다. 하지만 그 때는 창녕에서 비포장도로로 완행버스를 타고 영산까지 와서 거기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로 마산까지 와서 마산에서 울산으로 오는 버스를 탔는데 지금처럼 고속도로로 온 것 아니라 부산 동래를 거쳐 국도로 울산까지 왔다. 시간도 거의 하루를 소비해야 했다. 울산에 와서도 방어진이라는 곳에까지 가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 곳도 한창 개발 중이었고 길도 제대로 확장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 때 연수원에서 접한 거대하고 웅장한 바다는 나를 압도하기에 충분했고 그 때 처음으로 바다다운 바다를 구경할 수 있었다. 연수를 받았던 2층 강당이 지금도 그대로 있다. 음악교사가 아니면서도 평소에 닦은 실력으로 피아노 칠 분 나와서 반주하라는 연구사님의 말씀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곳에서 교재에 나와 있는 새마을 관련 노래 피아노 반주를 해서 많은 선생님들로 박수를 받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뒤 20년이 거의 되었을 즈음에 의령종고에 근무할 때 울산교육연수원에 사물놀이 지도가 가능한 파견교사 지원에 관한 공문을 받고 지원하기를 원했으나 그 때 교장선생님께서는 ‘둘러가는 것이 질러가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씀을 저에게 하시면서 가지 못하게 막아 그때는 원망스럽기도 했고 울산교육연수원 하면 그토록 가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슴에 한이 맺히게 했던 곳이다. 경남시절 그 때 연수원에 파견을 나가야만 도서벽지에 갈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해 울산에 있는 언양여상으로 오게 되었고 그 이후 전문직의 첫걸음을 걷게 한 곳이 바로 한이 서리게 했던 울산교육연수원이었다. 교사시절에는 오고 싶은 곳이었지만 전문직으로서는 오고 싶지 않은 울산에서의 오지라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사물놀이지도도 하게 되었고 교사시절 이루지 못했던 꿈을 늦게나마 이루게 되었으며 특히 교장선생님 말씀처럼 ‘둘러가는 것이 질러가는 것이다’라는 말씀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연수원의 앞뜰은 산자락이라 넓고 빈 공간이 많다. 이런 공간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어 텃밭을 일구기도 했고 닭집을 만들어 손수 닭도, 오리도, 토끼도 키우기도 하였다. 그 때 함께 근무를 하셨던 기사를 맡았던 박 주사님께서 3월 말에 언양에 나가 병아리를 사와서 키우려고 하셨다. 연세는 많으시지만 부지런하셨고 마음씨도 너무 착하고 좋았다. 지금은 퇴직을 해 개인택시 운전을 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박 주사님께서 하루는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연수원에 닭을 키우기 위해 언양 장터에 나가 병아리 10마리를 사게 되었는데 병아리를 파는 아줌마에게 방어진까지 가니 2상자에 넣어 달라고 부탁을 하니 그 아줌마는 화를 내면서 상자 하나만 하면 된다고 하기에 나이 많아 대꾸할 수도 없고 시키는 대로 싣고 왔는데 연수원에 와서 보니 일곱 마리는 죽고 세 마리만 살았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 밤 잠을 설쳤다는 것이다. ‘죽을 때 얼마나 발버둥 쳤을까’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고 사람이 짐승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하셨다. 그 이후 어느 신문에서 어떤 기사를 보았다. 박 주사님께서 들려준 이야기와 신문에서 읽을 기사를 보고서 너무 대조적이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메모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읽은 기사 내용은 대충 이러하다. ‘LA에서 애틀랜타로 가기 위해 공항 수속을 하던 중, 공항직원이 문제를 제기하는데 그 문제는 “자신이 보기에는 집이 작아 강아지가 불편해 할 것 같아 이 상태로는 강아지를 보내줄 수 없다”는 것. 그러고 나서 그 직원이 훨씬 큰 강아지 집을 갖고 와서 하시는 말씀. “자 이제야 강아지가 서 있건 누워 있건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고 하면서 마치 자기가 강아지 주인이라도 되는 듯 만족한 표정으로 수속을 끝내 주었다는 것이다. 언양 장날 시장에서 병아리를 판 병아리 장사와 LA공항 직원의 동물에 대한 관심과 인식은 너무 대조적이었다. 병아리를 넣는 상자가 크든 작든, 병아리가 죽든 말든, 그건 상관하지 않고 오직 병아리만 팔면 된다는 이기적인 한국인의 사고방식. 이 사고방식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싶어 안타깝기도 하였다. 병아리를 사는 직원의 요구대로 두 상자에 넣어주었다면 그렇게 많은 병아리가 죽었을까? 반면 LA공항 직원은 줄지어 20분 이상 차례를 기다리는 승객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아지 집이 작아 강아지를 보낼 수 없다고 하면서 더 큰집을 구해주었다는 건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 나에게 큰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고 우리도 미국인처럼 성숙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닮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도 하였다. 개의 불편함이 곧 나의 불편함인 양 무관심하게 넘기지 않고 개집을 구해주는 친절함은 분명 길이 기억되어야 할 선행임에 틀림없다. 병아리의 발버둥 치며 질식사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머릿속에 그려보았더라면 그 같은 무례한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병아리가 숨이 막혀 질식사 하는 거나 사람들이 숨이 막혀 질식사하는 것이 무엇이 다르며, 강아지 집이 작아 강아지가 불편해 하는 거나 사람들의 사는 집이 좁아 불편해 하는 거나 무엇이 다를까? 하찮은 동물이라도 인간의 도움으로 편하게 해 주고자 하는 마음, 이 작은 마음도 우리들이 본받아할 마음이 아닐까?
[뉴질랜드 및 호주 기행 2] 적도를 넘어 남태평양으로~ * 1월 14일(일) 어느 나라보다도 꼼꼼하고 까다로운 입국 수속 뉴질랜드의 입국 수속은 정말 까다로웠다. 꼼짝없이 1시간을 입국 절차를 밟는데 할애해 했다. 요즈음 ‘조류독감이다, 광우병이다, 구제역이다’ 하여 많은 나라들이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뉴질랜드에 올 때는 특별히 더 신경을 써서 입국가드 및 물품신고카드를 바르고 성실하게 작성해야 한다. 만약 불성실하게 작성했을 경우, 불법체류 가능자로 오해받아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단다. 반입 금지 또는 신고 품목이 있을 경우 빠짐없이 기록해야 한다. 신고에 누락된 반입 금지, 제한 품목이 적발되는 경우, 즉석 벌과금에서 징역형까지 부과하기 때문이다. 만약 반입금지 품목이나 유해물품을 가지고 온 경우, 뉴질랜드 공항 내 보세 구역에 마련된 폐기함에 버리거나 본인 비용 부담으로 반송해야 한다. 반입 신고 품목이 있는 경우에는 검사가 용이하도록 가방의 맨 위에 넣어두면 되고, 신발, 골프용품, 낚시용품, 자전거 등은 흙이나 먼지가 없도록 깨끗하게 씻어 준비해야 한다. * 주요 반입 금지 품목 : 흙, 생야채 및 생과일, 육류 및 육류제품(날 것, 말린 것), 어패류, 녹용, 웅담, 파충류, 약재로 사용하는 건조된 동물 부위, 꿀, 꽃가루, 벌집, 꿀제품, 우유 · 치즈 등 유제품, 계란제품, 살아있는 동물, 식물, 화초, 씨앗 등 * 주요 반입 제한 품목(신고하여야 하며 입국 시 검사 후 반입 가능 여부가 결정됨) : 된장, 고추장, 멸치, 김, 김치, 상업적으로 포장된 씨앗 제품, 마른 과일이나 나물 · 털 · 가죽 · 뼈 · 나무로 만든 제품, 호두 · 콩 · 밤 등 견과류 고추장, 된장, 김 등이 예전에는 반입 금지 품목이었으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워낙 많이 들고 오다보니 지금은 튜브형 고추장과 된장, 그리고 포장된 김은 입국이 허용하고 있었다.(결국은 포장 여부가 중요한 듯했다. 즉 농산물이라도 공산품처럼 상품화 된 것은 신고만 하면 입국 가능한 셈이다.) 이토록 뉴질랜드가 입국검사를 철두철미하게 하는 것은 이 나라가 바로 낙농국가이기 때문이란다. 혹시라도 관광객이 가지고 온 동식물을 통해 목축과 농산물에 유해한 영향을 끼칠까 봐 노심초사하는 것이란다. 듣자니, 이곳 공항관계자들이 때때로 우리나라 신혼부부 여행객으로 인해 홍역을 치른단다. 폐백 시 어르신들이 아들딸 많이 낳고 다복하게 살라는 의미에서 던져 준 대추와 밤을 자기도 모르게 가져왔다가 미처 신고를 하지 않아 한바탕 소동이 일곤 한단다. 이런 일이 심심치 않게 있다 보니 이곳 관계자들도 ‘대추, 밤’이라는 말을 할 줄 안단다. 일행 중에 대구에서 온 신혼부부가 있었는데, 이들도 입국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머지 일행이 공항에서 이 부부를 한참동안이나 기다려야 했다. 이 부부도 밤, 대추 때문에 그런가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신혼부부가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친지들에게 선물하려고 이것저것을 산 모양인데, 검사원들이 그 선물꾸러미를 보고는 혹시 불법체류 가능성이 있나 싶어 보류했다는 것이다. 어렵사리 입국 수속을 끝내고 나오니, 2~30여명 정도의 뉴질랜드사람들이 붉은 색의 유니폼에, 손에는 풍선을 들고 밝은 표정으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향하여 환호하고 있었다. 전에 태국 돈무항 공항에 내렸을 때, 여행객에게 일일이 꽃목걸이를 걸어주던 기억이 문득 떠올라 혹시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한 행사인가 싶었는데, 그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환영 인파가 한 사람에게 집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신문과 방송기자들까지 나와서 열띤 취재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저 사람이 뉴질랜드에서 굉장히 유명한 연예인이거나 스포츠 관계자인가 싶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퍼시픽 블루’ 항공사 사주(영국인)가족이 뉴질랜드 방문한 것을 환영하는 행사란다. 우리 일행은 현지 길잡이(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대기하고 있던 관광버스로 이동했다. 각자의 짐을 가지고 버스로 가려는데, 약한 소나기가 우리를 맞이하였다. 여행 오기 전에 그토록 날씨를 위해 기도했는데, ‘오자마자 소나기라니!’ 솔직히 걱정부터 앞섰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조금 가다보니,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우리의 현지 길잡이 강동원 님은 이곳 크라이스트처치에 13년째 거주하는 교민으로, 무역업에 종사하다가 교육 관련 일 때문에 뉴질랜드에 오게 되었다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또한 운전기사는 세리(56세)라는 이름의 여자 분으로 뉴질랜드사람이었는데, 이분 덕분에 우리의 뉴질랜드 남섬 여행이 편안하고 즐거웠다. 그림 같은 정원의 도시, 크라이스트처치 뉴질랜드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자, 남섬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 크라이스트처치(인구 35만 명)는 ‘정원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말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도시라는데도 높은 빌딩이나 아파트는 보이지 않고, 온통 붉은 색깔의 단층지붕과 푸른 나무와 숲,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서 빠끔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예쁜 꽃들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 풍경이 마치 숲속에 동화 같은 집들을 한 채씩 지어놓은 것 같았다. 구석구석이 깔끔하게 정리 정돈되어 있는 이 아름다운 크라이스트처치는 3헥타르 당 1헥타르가 공원이나 보호구역, 혹은 레크리에이션 구역이란다. 도시 곳곳에서 포근한 느낌을 주는 영국산 나무들을 만날 수 있고, 또한 우아하고 고풍스런 영국식 · 고딕식 · 식민지식 의 각기 다른 다양한 건물양식을 접할 수 있었다. 정말 사방 어느 곳으로 눈길을 주어도, 드넓게 펼쳐진 우아하고 푸르른 공원들과 이런 저런 단아한 건축물들이 조화를 이룬 풍경이 마치 중세시대를 연상케 할 정도로 고전적이고 매력적인 도시라 여겨졌다. 어느 곳을 향하여 사진을 찍어도 그림엽서 같이 훌륭한 사진이 나온다더니, 그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뉴질랜드는 청정한 물과 공기와 자연의 나라답게, 맨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며, 심지어 아기들 이유식까지 수돗물에 그냥 타서 먹인다고 한다. 실제로 이곳 사람들은 비가 올 때도 우산을 쓰지 않고 그냥 맞으며 다닌단다. 빗물이 전혀 더럽지 않기 때문이란다. 비가 쏟아져도 빨래를 걷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빗물을 받아 식수로 이용하기도 한단다. 따라서 여행 중에 비를 만나더라도 크게 걱정하지 말란다. 식수로 쓸 수 있을 만큼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비가 내리므로 맞아도 상관없고 또 바로 그치기 때문이란다. 세상에, 아직도 이렇게 깨끗하고 청정한 나라가 남아 있다니, 그저 놀랍고 또 놀라울 뿐이었다. 문득 우리나라가 떠올랐다. 천혜의 금수강산으로 이름난 우리의 경우도, 조선시대, 아니 몇 십 년 전만 해도 이와 같은 일들이 가능하지 않았던가? 전국 방방곡곡 어느 시냇물을 먹어도 괜찮았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비를 받아먹어도 되었던 우리나라가 어쩌다가 수질오염이 심각해져 식수까지 사먹는 나라가 되었단 말인가? 새삼 자연 환경의 중요성이 파도처럼 다가왔다. 광대한 녹음을 자랑하는 해글리 공원과 아름다운 보타닉 가든 버스에서 내려 해글리 공원을 산책하였는데, 그 크기에 일단 기가 눌렸다. 크라이스트처치의 시내에서부터 쭉 뻗어있는 해글리 공원은 광대한 부지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 공원은 시내와 서쪽의 주택가 리카튼, 펜달튼, 아이람까지 뻗어있는 아주 광대한 녹지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큰 공원이란다. 공원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보타닉 가든(Botanic Gardens)은 크라이스트처치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정원이자, 시민들이 즐겨 찾는 쉼터로, 뉴질랜드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특이하고 아름다운 식물들로 채워져 있단다. 이 정원에 들어서자마자, 정말로 거대한 아름드리나무들이 방문객의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우리나라 광릉수목원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4~5백년 수령의 거목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아름드리나무들의 수령이 겨우 100년에서 150년 밖에 안 되었다는 현지 길잡이의 설명에 우리 일행은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은 겨울에도 잔디가 푸를 정도로 춥지 않고, 또한 햇볕이 강하기 때문에 나무들이 빨리 자란다는 것이다. 일 년 내내 갖가지 꽃들이 피어난다는 아름다운 정원을 빙 둘러보았다. 푸른 잔디와 나무들이 두 눈과 마음까지 편안하게 해 주었다. 또한 나무 주변에 꾸며 놓은 큰 돌이나, 분수대, 허브 정원 등이 공원의 다채로움을 한껏 더하고 있었고, 수영장, 놀이터, 레스토랑 등의 편의시설도 공원과 어울리게 자리 잡고 있었다. 모나베일을 관통하여 내려오는 에이번 강(Avon River)이 해글리 공원을 가로질러 시내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비스듬하게 흐르고 있단다. 이곳 사람들은 분명 ‘강’이라고 했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시내’ 또는 ‘개천’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았다. 우리나라 서울의 청계천을 연상하면 좋을 듯하다. 에이번 강은 도심을 가로지르는 하천임에도 불구하고 그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 바닥이 다 보일 뿐만 아니라, 야생의 청둥오리들이 내려와 한가롭게 노닐기도 하고, 자맥질을 하며 물고기를 잡는 풍경이 참으로 보기에 좋았다. 잠깐 동안 내가 도심이 아니라 어느 한적한 산속 개울가를 거닐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호젓한 풍경이었다. 영찬이의 일기 1 * 제 3회에서 계속됩니다. 오마이뉴스와 서울방송(SBS) 등의 매체에도 송고합니다. 또한 이 여행기사를 작성함에 있어 현지 길잡이의 친절한 설명과 안내 책자를 참고하였습니다.
철강왕 카네기는 칭찬을 “상대로 하여금 자신이 중요한 사람임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누구나 남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고,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게 되면 자신의 능력이 인정되었다는 생각에 스스로에게도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더 열심히 노력하려고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교사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많은 칭찬을 해줄까? 아쉽게도 많은 교사들은 칭찬에 인색한 편이다. 수업시간의 질문에 대답을 잘하는 학생이 머뭇거리는 학생보다 이쁘고, 과제를 잘 해 오는 학생이 해오지 않은 학생보다 이쁘고, 시험성적이 좋은 학생이 시험성적이 나쁜 학생보다 이쁜 것은 교사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기에 당연한 마음일 것이다. 교사들은 이렇게 이쁜 아이들에게는 그나마 칭찬을 하지만, 반대인 학생에게는 칭찬보다는 충고나 꾸중을 더 많이 한다. 이럴 경우 조금 부족한 학생들은 자신의 능력에 의구심을 품게 되고 자신의 학습능력 자체에 흥미를 잃을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교사에게 있어 말하는 기술은 아주 중요한 기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대인관계부터 수업 진행상의 말하는 기술은 의사소통의 기본이다. 하지만 다른 재능과 달리 말하는 기술은 연습으로 충분히 개선시킬 수 있다. 교사는 많은 학생들을 대해야 하기 때문에 때론 힘들겠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학생들과의 상담이나 의견조사 등을 통해서 그들과 훨씬 더 좋아진 말하는 기술로 그들을 다룰 수 있다고 본다. 가끔은 자신의 기분을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표현하게 되는 일이 있다. 하지만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고 하지 않은가?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한다고 했으니, 자신의 기분을 말로 다 표현하지 말고 조금 정화한 뒤 표현하는 게 좋을 것이다. 한 커피광고 문구를 기억하는가?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 작년 백일장에 어느 한 학생이 ‘가슴이 따뜻한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라는 표어를 제출했다. 너무나 흔하게 접하던 카피문구여서 그 당시에는 패러디라고 웃고 넘어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멘트가 너무가 따뜻하며 감동적인 문구임을 느끼게 된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는 긴밀한 상호협력이 요구되고, 서로에 대한 이해심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교사는 학생의 개인적인 경험과 지식을 인정해주어야 하고, 자신의 시각과 관심 대신 학생의 시각과 관심이 그들의 학습에 반영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사실 잊지말아야 겠다. 학생에 대한 넒은 이해심으로 학생들에게 따뜻한 선생님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