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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꿈을 가진 젊은이의 도전은 언젠가 이루어진다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의 상황은 일본의 젊은이들에 비하여 취업도 안되고, 그렇다고 다른 사업을 일으키기도 매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수십번 이력서를 내어도 꽉 막혀버린 상황이 되다보면 절망에 절망을 거듭하여 자포자기에 빠지는 젊은이들이 나오지 않을까 심히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란 꿈을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하면 언젠가는 그 꿈이 이루어진다고 믿어 젊은이들에게 한 가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때는 중국의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잠시나마 전란이 멎었을 무렵,지금의 중국 하남의 양성이라는 곳에는 두 남자가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그 밭의 주인이요, 다른 한사람은 그 집의 머슴인 진승이라고 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이 두사람이 나란히 밭갈이를 하고 있을 때 머슴이 문득 일손을 멈추고 그 주인에게 말하기를「혹시 우리가 장래에 부귀와 영화를 누리게 될지라도 서로의 옛 정을 잊지 말자」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진승을 꾸짖으며 말하기를「이 미친 녀석아! 남의 집 머슴으로 일하고 있는 주제에 부귀영화를 누린다니 그게 무슨 가당치도 않은 소리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진승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하기를「땅 위의 벌레나 잡아먹고 사는 참새며 제비가 어떻게 창공을 나르는 기러기나 고니의 큰 뜻을 알겠는가?」(燕雀安知鴻鵠之志哉)라고 했습니다.

그후 얼마 지나 진시황이 죽자 그동안 눌려 살던 백성들이 여기 저기에서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시 난세가 찾아오자 진승도 군대로 징집되어 국경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진승의 군대는 9백명이었는데 여름 철이어서 심한 장마로 더 이상 진군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군령이란 엄한 것이어서 장마이건 아니면 그 다른 이유 때문이었건 간에 시간을 어긴다는 것은 도저히 용서 받을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기한이 늦어진 이상 어차피 죽음을 당할 것은 뻔한 일이 되자 진승은 그의 친구인 오광과 함께 그 9백 명을 기반으로 하여 진나라에 반란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이때 진승은 무리를 모아놓고「왕후장상에 어찌 씨가 있겠는가?」(王侯將相 寧有種乎)라고 외쳤는데 고려의 노예 만적은 바로 이 구절을 구호로 삼았던 것입니다.

진승의 거병은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어 그의 병력은 곧 전차 7백 승에 말 1천여필, 그리고 수만명의 군대를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세력이 굳어지자 스스로 왕위에 올라 국호를 장초라고 정함으로써 진나라는 끝내 멸망하게 되었고, 진승 개인으로 말한다면 자신이 외친 것 처럼 왕후장상에는 씨가 없는 것임을 입증하였으며, 지난 날 머슴의 신세로 밭갈이하던 시절의 야망을 이룬 것입니다.

그후 진승은 신하를 잘못 쓴 탓으로 그들에게 피살됨으로써 불행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젊은 날의 온갖 역경과 수모를 웃음으로 받아 넘기며, 참을 때는 참고 결단을 내릴 때는 용감하게 결단을 내림으로써 끝내는 왕좌에 올랐던 그의 야망찬 일생을 오늘과 같이 갈길이 막힌 것 같아 스스로 외롭게 살아가는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많은 교훈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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