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이 ‘열하일기’에서 개탄하고 있다. ‘열하일기’는 연암박지원이 살았던 시대에 제도나 문물 모든 면에서 세계 최첨단이었던 청의 선진문명을 돌아보고 나름의 소회를 피력해 놓은 일기형식의 글모음이다.
그 ‘열하일기’를 보면 당시조선의 고관대작들이 견마를 잡히고 말을 타는 것을 보고 중국 청나라의 모든 이들이 이러한 행태를 크게 비웃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말이라는 것이 인간이 보다 신속하게 이동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인데 견마잡이를 둠으로 해서 속도라는 말의 본래의 효용가치를 상실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속도라는 실질보다는 양반이라는 모양새만을 생각하여 견마를 잡은 채 말을 타는 조선의 관리들은 중국현지에서 크게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에서는 신분과 권위의 상징이 되고 있는 견마 잡은 말을 타는 것이 선진문물 앞에서는 한낱 조소거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청 제국 건설의 주역들인 여진족은 고구려 이전시대부터 우리 민족에게 복속 되어 말갈족으로 불리면서 민족의 하류층으로 종속되어 왔었다. 그런 여진족이 중원을 장악하고 세계를 지배 할 수 있었던 근원이 바로 ‘유목민족’ 특유의 속도를 중시하는 문화가 장려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속도가 힘을 나타내는 양상은 이미 징기즈칸이 세운 몽고제국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었다. 몽고족이 세계 최강 대국을 이룰 수 있었던 근원도 바로 유목민족 특유의 속도였던 것일 것이다. 그런 문화를 가진 이들에게 견마를 잡힌 채 말을 타며 거들먹거리는 연암시절 조선의 관리들은 그 자체가 희극이었을 것이다.
21세기를 사는 필자가 새삼스럽게 이를 다시 회고해봄은 작금에 와서 시대 사회상이 연암시절 견마잡이를 둔 양반님네들의 행태를 닮아가서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속칭 명품족들이라는 이들이 수천만원어치의 자기들끼리만 인정되고 인정받는 명품을 온몸에 휘감고 다니는 행태는 바로 연암시절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었던 견마 잡힌 양반들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지금 현재 우리는 또 하나의 다른 세계인 사이버세계에서 ‘황의 법칙’으로 대변되는 빠른 속도를 앞세워 정보 인프라 부문 세계 최강이라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속도를 잃으면서 몰락했던 아니 그 흔적조차도 찾기 어렵게 되었던 몽고족이나 여진족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정보화 부문에서 꾸준한 속도 향상의 노력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연암시절 자신들만의 세계에 도취되어 견마 잡히는 겉멋에만 빠지다가 일제에 의하여 나라를 송두리 째 잃어버렸던 우리 선조들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사회전반에 실질과 능률을 중시하는 건전한 기풍이 2007년 금 돼지해에 같이 하기를 바며 연암을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