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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우선적으로 농촌지역 학생들의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을 신장시키기 위해 ‘블렌디드-러닝을 활용한 농촌 지역 학생들의 수학 학습력 높이기’ 연구를 시작했다. 블렌디드-러닝(Blended- Learning)은 학습자들의 학습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학습방법으로 전통적인 면대면 방식과 e-러닝의 전달방식을 결합, 최대의 학습효과를 추구하는 전략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거기에는 물론 사이버가정학습이 활용됐다. 사이버가정학습의 수학과 학습콘텐츠는 충청남도사이버가정학습에 탑재 되어 있는 자료로 한정 운영했고, 초등학교 4학년 1학기 수학과 8개 단원 중 학습 콘텐츠가 탑재되어 있는 50차시 분을 중심으로 운영했다. 효율적 학습위한 여건 조성 필자가 있는 학교가 전형적인 농촌의 면지역에 위치해 있어서인지 도시 지역에 비해 공부를 봐 주시는 부모님이 매우 적었다. 이는 자기 주도적 학습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부분이었다. 학생들 또한 컴퓨터를 활용한 학습 기회 제공이 적기 때문에 온라인 학습에 대한 기회 제공으로 기초ㆍ기본학력 신장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우선 충남사이버가정학습에 학급을 개설해 학생들을 가입시켰다. 개설한 사이버학급에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하고, 기본적인 사이버가정학습 학습 방법을 익히도록 했다. 그 다음엔 수학과 교과로 개설한 사이버학급에 로그인해 들어가, 각 교과의 차시별로 탑재된 학습 내용을 학습하도록 했다. 미리 한 단원씩을 올려놓아, 예습을 원하는 학생들은 예습을 할 수 있도록 하였고,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미진한 부분은 스스로 찾아 할 수 있도록 학습 내용을 제시했다.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온라인의 경우 스스로 매일 공부하는 습관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학생들로 하여금 매달 초에 학습계획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한 달 공부할 내용을 적고 확인란을 두어서 스스로 공부하는 계획을 작성하고 자신의 학습 진도를 확인하도록 했다. 사이버가정학습을 이용, 학습하는 방법도 익히고, 인터넷 사이트 가입 방법도 가르쳤다. 또한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 한글 사용법과 문서 다운로드 및 업로드 방법과 그림판 사용법을 가르쳤다. 수학에 대한 흥미 늘리기 공부를 위해서는 일단 흥미 유발이 중요했기에 ‘수학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 읽기’부터 시작했다. ‘수학이 좋아지는 이야기’ 게시판을 만들어 수학사, 수학자 및 현실과 관련된 수학 이야기를 올리고 읽어봄으로써 수학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또 ‘칠교놀이’를 통한 창의력 키우기도 시도했다. 매주 1회씩 재량 활동 시간을 이용하여 지도했는데 사이버가정학습에도 게시판을 만들어 자료를 올려두고 관심 있는 학생들이 살펴볼 수 있게 했다. 미리 집에서 프린트해서 연습해 오는 학생들도 있었다. 수업시작 후 5분 정도, 간단한 수학 놀이로 수업을 시작했다. 놀이수학 후, 수학에 대한 흥미도와 관심이 부쩍 늘었다. 설사 수업 내용이 재미없다 하다라고 놀이로 수학을 시작했기 때문에 기다려지는 수학 시간을 만들 수 있었다. 단원을 마무리할 때도 간단한 놀이학습으로 진행하여 놀이를 하는 동안 학생 스스로 정리를 하도록 했다. 본격적인 학습능력 높이기 가. ‘수학왕 되기 프로젝트’ 사이버가정학습과 관련한 공부 계획을 스스로 세우고 학습 횟수를 적고, 평가 시 목표 점수를 정했다. 목표 세우기 활동을 통해 성취 의욕이 높아지고, 그 목표를 달성함으로 인해 자신감도 높아지고 성적도 올라가는 것을 보고는 더욱더 열심히 학업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나. ‘매일 풀어보는 수학문제’ 매일 모든 단원의 기본 문제를 게시판에 탑재해 집에서 풀어오면 학교에서 다시 채점한 후 고쳐 풀도록 했다. 이렇게 기본 학습 문제를 매일 풀어보게 되자 학습력이 향상됐고 교사의 개별 피드백을 통해 학습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다. 자신감 올리기 진단 평가에 비해 중간 평가와 기말고사의 성적이 차츰차츰 향상되자 학생들의 자신감이 올라가 즐거운 학교 생활이 이루어졌다. 라. ‘칭찬하기와 관심갖기’ 사이버가정학습의 여러 게시판을 각 반별로 다양한 주제로 만들어 놓아 친구를 칭찬하고 부모님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칭찬하기를 시작한 후부터, 반 학생들 사이가 부드러워졌다. 칭찬을 받고 나니 그 칭찬받은 행동을 다시 또 하게 되고, 칭찬으로 인해 행동에 자신감도 생기고 자신을 소중히 하는 모습도 보였다. 밝은 미래를 엿보다 3월부터 8월까지 이어진 수업 연구를 통해 사이버가정학습의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첫째, 사이버학급을 운영하여 학생들이 사이버가정학습의 학습 방법을 습득하고, 이의 학습을 통해 교과 보충 및 심화학습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다양한 기준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니 학습이 훨씬 치밀해지고, 다양한 방법으로 기본 학습 요소를 지도할 수 있어서 학생들도 흥미로워했고 재미있어했다. 둘째, ‘사이버가정학습의 학습하기’로 오프라인 형태의 교실수업에서 부족한 활동들을 보완해 주었다. 동시에 면대면 교실수업이 갖고 있는 교육의 유용성과 자율학습 방식을 함께 활용함으로써 학습효과를 극대화를 가져왔다. 셋째, 매일 일정한 양의 학습 분량이 있기 때문에 모아서 공부를 한다거나 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매일 공부하는 습관이 생겼다. 학습 계획표를 짜게 되니 더더욱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자기주도적 학습 방법을 몸에 습득하게 되었고 생활화하게 되어 다른 과목에도 전이되고 있었다. 넷째, 기본적인 ICT 활용 능력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하고 원하는 자료를 찾고. 자료를 다운 받아 편집하여 문서로 작성하여 업로드할 수 있게 됐다. 블랜디드 러닝을 활용한 수학에 대한 흥미 늘리기와 관련해서도 많은 성과가 있었다. 먼저 수학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수학에 흥미를 가지게 됐다. 특히 수학에 자신 없어 하던 학생들이 더욱 더 수학에 흥미를 갖게 됐다. 칠교놀이를 통해서는 일곱 조각으로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보며 응용력을 기를 수 있게 됐다. 모양을 빨리 파악하고, 이리 저리 맞춰보면서 창의력은 물론 집중력도 길러졌다. 간단한 놀이를 시작하는 수학 시간은 모두에게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었다. 길지 않게 채 5분이 안 되는 놀이로 수학을 시작했다. 놀이를 하면서 수학적 감각을 기를 수 있었고, 도전 의식과 성취감도 맛볼 수 있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수학을 시작하니 당연히 수학이 좋아졌다. 일반적으로 하게 되는 단원 평가를 놀이를 활용해 시행한 결과 학생들이 훨씬 덜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수확과 남은 과제들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 향상 또한 커다란 수확이었다. 자신의 학습 실력을 판단하고, 성취 목표를 세워 공부하고 반성하는, 즉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게 됐다. 짧은 기간으로 나누어 공부하는 계획을 세우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는 진취적인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결과 3월초 진단 평가에 비해 중간평가와 기말 평가의 점수가 올라갔다. 여러 번의 평가를 통해 확인했듯이 성적이 향상된 것이다. 특히 사이버가정학습으로 수업을 받은 과목은 다른 과목에 비해 그 성적 향상률이 두드러졌다. 사이버가정학습으로 공부를 시작한 과목의 점수가 올라가니 자신감이 향상됐고 이것이 다른 과목에까지 전이되어 성적이 쑥쑥 향상됐다.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긍정적인 요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학생별 개인차나 제반 여건에도 많은 신경을 필요로 했다. 게임만 하는 학생들은 학습 자체를 부담스러워해 개별 상담이 필요했다. 또 가정의 컴퓨터 사양 및 인터넷 연결 유무에 따른 학생 사이의 괴리감이 증가했다. 이를 막기 위해 정보실을 활용한 학습이 가능하도록 여건 조성도 필요했다. 사이버공간이 아니라면 감히 생각해 볼 수 없는 수업형태를 시도한 것은 큰 보람이었다. 학교를 중심으로 한 하드웨어적 기반만 꾸준히 제공된다면 사이버학습을 통해 농촌이라는 현실의 벽도 교육에서는 아무 문제될 게 없는 그 날이 올 것으로 생각한다.
이란과 이라크의 국경지대, 벌건 흙먼지 날리는 황량한 산길에 칠판을 멘 남자들이 나타난다. “구구단을 배우세요, 이름 쓰는 것도 가르쳐 드려요. 돈 대신 먹을 것 주셔도 돼요.” 하지만, 아무리 목청을 높여 봐도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 한 무리의 남자들은 커다란 칠판을 등에 지고 학생들을 찾아 이란과 이라크 국경지대를 헤매는 교사들이다. 마을과 마을을 떠돌며 방랑하는 이들 무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오직 흔들리는 카메라뿐이다. 그들이 가진 모든 것, 칠판 다큐멘터리처럼 시작한 영화 칠판은 이윽고 선생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리부아르(바흐만 고바디)와 사이드(사이드 모하마디), 두 남자의 여정을 따라간다. 산 위쪽으로 방향을 정한 리부아르는 이란과 이라크를 넘나들며 불법으로 밀수품과 장물을 운반하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만난다. 갈 길 바쁜 아이들을 막아서서 글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하지만, 그들에게 리부아르는 성가신 존재일 뿐이다. “글을 배우면 책도 읽을 수 있고, 신문도 읽을 수 있다”며 설득하는 리부아르. 하지만 아이들은 하루하루 밥벌이가 중요할 뿐, 글쓰기도 읽기도 구구단도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리부아르는 끈질기게 아이들을 쫓아다니지만,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비키세요. 우리는 빨리 이걸 날라야 한단 말이에요. 시간이 없어요.” 사이드도 사정은 비슷하다. 마을 쪽으로 내려간 그는 고향 이라크로 돌아가려는 쿠르드족 노인들의 행렬을 만나지만, 생존의 문제가 더 시급한 노인들에게 사이드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한평생 글을 모르고 살아온 이들에겐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글을 배울 이유도, 욕심도 없는 것이다. 결국 사이드는 고향까지 안내해주기로 하고 이들 일행에 합류한다. 리부아르와 사이드가 힘겹게 지고 가는 커다란 ‘칠판’은 그들에게는 생계수단이자 선생으로서의 사명감을 일깨워주는 도구이지만,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아이들과 식량도 없이 고향 이라크로 넘어가려는 쿠르드족 노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반 토막이 난 채 다친 아이의 발을 지탱할 부목이 되거나 국경수비대의 총알을 막을 방패로 쓰일 때가 더 유용하다. 진심, 소통의 문을 열다 영화는 어떻게든 한자라도 가르치려는 선생과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한데 글 배울 시간이 어디 있냐고 버티는 주민들 간의 신경전이 벌어지는 팍팍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소박하고 따뜻한 유머를 잃지 않는다. 남루한 행색의 교사들이 커다란 칠판을 등에 메고 다니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풍경이지만 그 칠판이 방패와 들것, 피란길에서 차린 신방을 가리는 대문, 결혼 예물과 이혼 위자료 등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고 있자면, 안타까운 한 편 절로 웃음이 나오게 된다. 노인들의 안내원을 자처한 사이드 역시 의도치 않은 상황에 휘말리면서 훈훈한 순간들을 선사한다. 호두 40알을 받고 자신의 칠판을 병든 노인의 들것 대용으로 빌려줬던 사이드는, 아예 칠판을 지참금으로 내주고 그의 딸과 결혼하게 된다. 사람 좋은 사이드, 노인의 간청으로 아이 딸린 과부와 엉겁결에 결혼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부인에게 글과 구구단을 열심히 가르친다. 하지만 새 신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내 마음은 기차와 같아요. 역마다 사람들이 탔다가 내리죠. 내리지 않는 건 이 아이뿐”이라며 사이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들의 교육의지가 쉽게 꺾이는 것은 아니다. 가르침을 거부하는 이들을 원망하지 않고 그들의 삶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한다. 글을 배우기는커녕 그를 경계하며 미워하기까지 하는 아이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리부아르. 드디어 그와 이름이 같은 한 명의 아이가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의 못말리는 열정도 월경을 막으려는 국경수비대의 총격이 시작되면서 고비를 맞게 된다. 게다가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가르침이 목적인 사이드와 고향에 남고자 하는 아내 사이의 근본적 차이가 수면 위로 부상한다. 팍팍한 현실에서 발견한 희망의 씨앗 영화 칠판은 이란과 이라크의 국경지대 근처에서 몸 하나 의지할 곳 없이 떠도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묵묵히 관찰한다. 감독 사미라 마흐말바프는 교육이나 전쟁에 대해 거창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대신 국경 마을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주민들의 일상을 꾸밈없이 카메라에 담아내면서 나지막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삶을 연명하기에도 벅찬 곳에서 글자읽기나 셈하기, 자신의 이름을 쓰기는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 칠판은 제 본래의 용도가 아닌 엉뚱한 용도로 쓰이게 된다. 선생 리부아르에게 글자를 배우던 단 한 명의 소년 리부아르는 겨우 자신의 이름을 쓰게 된 순간, 총에 맞아 죽고 만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전쟁의 그늘 속에서 신음하는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절망적인 현실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감독은 자신이 가진 것(칠판)으로 이웃과 소통하려던 가난한 교사들을 담담히 따라가며, 그들을 통해 척박한 삶에서 작은 희망의 씨앗을 길어 올린다. 영화의 마지막, 폐허가 된 고향이 보이는 국경지대에 도착한 사이드의 아내는 국경을 넘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이혼위자료로 칠판을 걸머진 아내가 국경너머로 사라질 때 그 칠판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글이 쓰여 있다. 양떼들 사이로 숨어서 밀수품을 나르는 아이들과, 남편의 마지막 선물-사랑한다는 말조차 읽을 수 없는 한 여인의 이야기에 마음 밑바닥까지 먹먹해진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하지만 분필도 없는 궁핍한 선생과 그보다 더 헐벗은 제자들의 일상엔 진한 감동 한 자락이 숨어 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면서도 삶은 계속된다. 생의 의지,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작은 친절과 희생, 관심과 진심이 가져다주는 순간들에서 감독은 한줄기 빛을 발견한다.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으려는 아이들. 공습을 피해 빠져나왔던 고향으로 어떻게든 되돌아가고자 하는 노인들. 그리고 그들의 험난한 여정에 기꺼이 동참하며 그들에게 글을 가르쳐주고자 애쓴 교사들. 이 순박하고 선한 인물들의 모습은 투박한 화면 속에서도 감동을 선사하며 관객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띠게 한다. 실제로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 중 감독이자 배우인 바흐만 고바디와 한 명의 여자배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비전문연기자들이다. 리부아르가 만난 아이들은 영화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목숨을 걸고 밀수품을 운반하며 살아가고 있다. 감독은 국경지대의 거주민들을 직접 캐스팅했고 지뢰가 많은 지대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히 카메라를 설치했으며,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란 태생의 젊은 여성 감독 사미라 마흐말바프의 두 번째 장편인 칠판은, 비극적인 현실의 한가운데로 주저없이 걸어 들어가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는 시종일관 온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지구촌의 관심사에서 멀어졌던 쿠르드족 문제를 부각시키며, 주변 국가들의 이기주의적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거칠지만 다부지게,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놀랍게도 영화 칠판을 만들 당시 갓 스무 살이었던 사미라 마흐말바프의 용기와 투지에 칸영화제(2000년)는 심사위원 대상이라는 격려로 화답했다. 원제: Takhte Siah(Blackboard). 이란. 2000. 감독: 사미라 마흐말바프(Samira Makhmalbaf) 관람정보: 전체 관람가. 85분. 국내개봉 2003.
공자와 논어의 오해와 편견에 도전하는 책, 논어는 진보다 고백하건대, 단 한 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논어를 읽었다거나 가슴 속에 새겨놓았다거나 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타인에게 읊어줄만한 구절을 외운다거나 오류없이 써내려갈 수도 없겠지요. 굳이 변명을 하자면, 고리타분한 유교의 시조인 공자가 그리 흥미를 끌지도, 식자들이 흔히 한 번씩 인용하는 논어의 가르침이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않았습니다. 한자들의 향연에 주눅 든 탓도 한몫 했겠지요. 그런데 이 사람, 도발적인 발언으로 등을 잡아챕니다. 우리가 잘못알고 있는 공자라니요? 점잖게 우리를 타이르던 그동안의 논어가, 2500년간 이어진 텍스트의 해석에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슬며시 여성과 노동을 낮은 자리에 두었던 공자, 충효의 속박에서 우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던 그가 사실 잘못 이해된 것이라니요. 슬슬 흥미가 끓어오르는군요. 저자는 반쪽짜리가 되어버린 논어번역의 가장 문제점은 논어를 철학서가 아닌 잠언집으로 만들어 버린 점이라고 꼬집습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해석이 되어버렸다는 것이지요. 사실 역사적 배경과 무관한 텍스트란 존재하지 않으며 논어도 그 텍스트이기는 마찬가지겠지요. 저자는 이민족에 대한 차별이라는 중화사상에서 한 발도 떨어지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 ‘팔일’편 5장이나 부모에 대한 무조건 복종으로 읽혀져 버린 ‘위정’편 5장, 여자와 하층민을 천시한 것으로 오해된 ‘양화’편 25장 등을 다시 해석해 보여줍니다. “공자는 이민족을 멸시하기는커녕 덕치의 위력은 오랑캐의 나라에서도 문명국 못지않은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공자는 어기지 말아야 할 것이 ‘부모의 뜻’이 아니라 ‘부모에 대한 예’라고 말하고 있다.” “여자와 하층민이 모자라 가르치기 힘들다는 것이 아니라 생존에 허덕이며 문화적 세례를 받지 못한 이들의 힘든 현실적 상황을 토로한 것이다.” 공자를 처세술의 귀재로 바꿔버린 최근의 오역들도 비판합니다. 공자의 제자인 子張의 물음에 “많이 보아 위태로운 것은 제쳐놓고 나머지를 신중히 행하면 후회가 적을 것이다.”라는 공자의 답은 자칫 안전하게 벼슬하는 방법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제자들의 개별적 특성을 고려한 공자의 의도를 이해하지 않고 벌어지는 오역임 셈이다. 이밖에도 공자는 보수주의자가 아니라는 것, 권위적이지 않았다는 것, 공자가 말하는 예는 윗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 국가주의자가 아니라는 것, 가족주의를 설파하지 않았다는 것 등을 들어 이런 편견들이 공자 사상의 ‘깊이’를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교언영색(巧言令色),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학즉불고(學則不固), 온고이지신(溫古而知新) 등 우리에게 익숙한 글귀들의 새로운 해석도 만날 수 있습니다. 당대의 상황과 한자의 섬세한 뉘앙스 차이를 듣고 보니 공자의 사상이 또 다르게 다가오는군요. 저자는 “종이를 둘둘 말아 10년을 두었다가 평평하게 펼쳐 놓으려면 다시 뒤집어 말았다가 펴야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려 말합니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한쪽으로 둘둘 말려있던 논어라는 텍스트를 반대편으로 뒤집어 말음으로써 이런 오해를 바로 잡고 싶었다.” 이 책이 텍스트를 제대로 뒤집어 2500년 전 공자의 생각이 제대로 펴졌는지는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잠언을 넘어 철학을 원하는 독자의 몫이겠지요. 아, 논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한문상식, 공자 연표, 주요 제자 일람, 공자시대 주요국 세계 등 풍성한 부록은 덤이라고 하네요. 박민영 지음. 포럼. 1만9500원.
음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 ◇잡식동물의 딜레마=인간과 같은 잡식동물은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음식과 관련된 모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로 인해 매번 먹을 것을 발견할 때마다 이것을 먹어도 될 것인가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잡식동물의 딜레마’이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단순히 오늘날 식품산업의 불투명성과 비도덕성을 고발한다거나, 독자들에게 무엇을 먹어야 한다고 강요하려고 드는 책이 아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와 세계의 교류방식이며, 우리 존재를 규정한다는 커다란 전제 하에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먹는 음식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를 원한다. 마이클폴란 지음. 다른세상. 아빠들이여 글씨기에 참여하라 ◇아빠가 하면 더 좋은 우리 아이 책읽기와 글쓰기=아빠들이 자녀의 책 읽기와 글쓰기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 지침서. 문화 일보에 아빠 눈으로 고른 책 칼럼을 연재해온 아동 출판 담당 기자인 저자가 책 정보를 얻는 경로와 좋은책을 판별하는 방법, 연령별 특성에 맞는 책 고르기까지, 책 안 읽는 아빠도 자녀의 책 읽기를 이끌어 줄 수 있도록 친절하게 돕는다. 장재선. 대교베텔스만. 아이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상식 ◇280가지 생각사전=아이들은 세상에 모든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갖고 접근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현명하고 지혜로운 대답을 해주기란 쉽지 않은 일. 280가지 생각사전은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을 수 있는 교양서로, 총 280가지의 질문과 답변이 소개되어 있다. 크게 인간, 가족, 감정과 정서, 학교, 사회, 환경으로 분류하고, 그 분류 안에 어린이들이 궁금해할만한 상식들을 담았다. 라루스 백과사전. 청림아이. 교실에서 활용할 구체적 미술방법론 ◇삶을 위한 미술교육=통합적 미술교육의 실제 수업안과 그에 관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책. 순수미술, 시각문화, 현대 테크놀로지, 창의적인 자기표현 등 우리의 실생활에 관련된 이슈들을 광범위하게 다루며, 실제적 미술교수에 관한 이론적 측면과 교실에서 활용할 구체적인 방법을 동시에 제공한다. 톰 앤더슨ㆍ멜로디 밀브란트. 예경 아이들과의 교감이 담긴 일기 ◇교단일기 : 아이들이 스승이다=한국의 교육 현장에서 담임으로서, 상담자로서, 교사로서, 그리고 친구로서 학생들에게 다가가고자 한 저자의 '교단 일기'. 아이들의 성격과 적성을 살피고, 대화를 나누면서 아이들과 교감하고, 더 나아가 아이들이 스승이라는 소박한 답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손선희. 월간싱클레어 교과서에 갇힌 詩를 놓아주자 ◇국어 선생님과 함께 읽는 현대시=고등학생들이 자주 만나게 되는 현대시 142편을 골라 해설을 덧붙였다. 원본 시집을 토대로 시 원문을 그대로 살려 수록했다. 시를 주로 연과 행, 단어의 의미를 암기하는 등으로 학습하는 요즘의 학생들에게 시 안에 담긴 시인의 마음에 눈을 맞춰 그 안에 담긴 풍경을 떠올려 볼 수 있게 도와준다. 이와 더불어 시인의 생애나 시에 관련된 일화, 회고담 등을 덧붙여 시인의 삶과 창작 배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김권섭. 산소리
“다중지능 평가로 아이들의 무한 잠재력 알았어요” “다중지능 이론은 30여 년간의 교직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해왔던 교육활동은 학부모나 학생들이 아닌 내 만족감을 채워주기 위한 것이었음을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양대부설 한양초 이인순(54) 교사는 어느 날 문득 “우리 아이 어때요?”라는 학부모의 질문에 학생에 대해 몇 줄 적힌 종이 한 장을 들고 설명하는 것이 너무나 창피한 행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털어놓으며 말문을 열었다. 이 날의 고민은 이 교사가 그간 관심을 가져왔던 ‘다중지능 이론’을 교실에 접목해보겠다는 ‘실천’이 돼서 돌아왔기 때문이다. 30년 교직생활을 달라지게 한 학습자 중심 평가 “학생, 학부모도 만족할 학교생활은 어떤 것일까 고민하던 중 한양대 한국교육문제연구소에서 연구해온 ‘다중지능 이론을 통한 학교개혁 프로젝트’가 떠올랐습니다. 학생들의 다양한 지능을 인정하고, 아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현할 수 있도록 교사와 학부모가 기다려주는 학습자 중심의 평가라는 점에서 제 고민을 말끔히 해결해줄 대안이 됐죠.” 이 교사는 그때부터 5년간 한양대 한국교육문제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수업을 개선해 나가기 시작했다. 다중지능 이론에서 ‘지능’은 알고 있는 지식의 양이나 암기 속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학생의 실제 생활에서 주어진 상황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느냐를 말한다. “사교육이 주는 가장 큰 폐해가 바로 ‘만들어진 교육’입니다. 빨리 학습해서 정확히 잘 외우도록 하기 때문에 맞는 답만 맞추는 아이가 최고가 되죠. 하지만 다중지능 평가에서는 그런 학생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어요. 그 아이가 얼마나 창의적인 행동을 했고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학생, 학부모 신뢰 얻은 ‘수업 동영상 공개’ 그는 다중지능 이론을 교실에 적용하기 위한 해답을 ‘협동학습’에서 찾았다. 다중지능 이론의 8가지 지능인 언어, 논리·수학, 공간, 신체·운동, 음악, 대인관계, 자기이해, 자연탐구 중 핵심지능 하나를 선택해 수업을 계획하고 협동학습 과정에서 그 재능에 대한 아이들의 잠재력과 특성을 파악했다. “교사의 일방적인 수업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자신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처음 우려와는 달리 아이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협동학습에 적응해가면서 자신이 잘하는 역할을 찾고, 자신감도 갖게 됐죠.” 또 수업활동을 촬영, 매주 1회 25~45분용 CD로 제작해 학부모에게 공개하고 아이들과 함께 보도록 했다. 모든 수업이 공개돼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해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알게 되자 학부모들의 불신은 사라졌다. 오히려 ‘우리 아이의 실체를 알게 됐다’며 이 교사를 격려했다. 아이들도 객관적으로 수업동영상을 다시 봄으로써 자기반성을 했고 학습효과도 높아졌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오는 성취감 때문에 수업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교사로서의 ‘나’ 발전시킨 다중지능 이 교사는 한 학기가 끝나면 다중지능의 8가지 영역별 능력에 대한 학생들의 발달, 진보 상황을 지적인 측면과 정서적인 측면에서 기록한 ‘다중지능평가발달표’를 작성해 각 가정에 보냈다. 발달표는 학생들 특성과 변화를 한눈에 알 수 있게 한다. “언어지능을 파악할 때 일반적으로 ‘유창함’이 평가기준이 되는데 다중지능 교실에서는 ‘남의 말을 잘 듣는 것’도 뛰어난 능력으로 평가받습니다. 8가지 영역에서 아이들 스스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느냐를 살피다 보면 어느새 아이의 약점보다 강점을 먼저 파악하고 독려해주는 제 자신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인순 교사는 다중지능 평가가 거창한 계획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학생들을 보는 방식만 달라져도 교실에는 큰 변화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교사는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습니다. 다중지능 평가를 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아이들이 등교할 때마다 ‘오늘은 학교에 가면 어떤 재미있는 수업을 할까’ 기대한다는 말을 들으면 모든 고민이 사라져요. ‘다중지능 평가’라는 대단한 이름을 붙인 연구나 평가여서가 아니라 교사로서 가장 큰 행복이 바로 학생이 즐거워하는 학교, 수업이기 때문이죠.”
칭찬의 교육학이 위세를 얻고 있다. 인격에 대한 인식이 성숙할수록 칭찬의 교육적 가치는 확장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렇게 덩치 큰 고래도 칭찬 한 마디에 긍정적으로 변화하여 춤을 추는데,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야 칭찬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할지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칭찬의 효력을 이렇게 강조하는 데에는 우리네 현실이 그만큼 칭찬에 인색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또 그만큼 칭찬의 반대편에 놓여 있는 나무람과 꾸짖음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스스로 돌아보건대 나는 학생들에게 칭찬을 많이 해 주는 편이다. 교사를 기르는 대학에서 선생을 하려면 ‘교사되기의 원리’를 교수가 모범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요컨대 나는 칭찬에 후한 사람이다. 그런데 드물기는 하지만, 아주 가끔은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어떤 진정성을 가지고, 학생에게 의미 있는 꾸지람을 해 주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꾸지람을 앞두고서는 몇 번씩 머뭇거리는 편이다. ‘아, 저 학생이 내 꾸지람을 정말 멋있게 수용해 주었으면 참 좋을 텐데. 혹시라도 내 진정한 마음은 전달되지 않고 상처로만 남게 되면, 이 꾸중은 안 하기만 못한 것 아닐까’하고.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머뭇거림이 길어질수록 나의 꾸중 계획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만다. 달라진 세태를 의식하고 주변을 둘러보면, 마음으로 충고하여 꾸중하기가 정말로 어려워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꾸중은 악덕이고 칭찬은 미덕이라는 단세포적인 이분법이 어느새 우리들 인식에 타성처럼 자리 잡았다. 꾸중 자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 꾸중은 본래의 의도한 효과와는 천리만리 먼 역효과의 길을 간다. 그리고 그 역효과의 상흔은 오히려 꾸중한 쪽에게도 오래 남겨진다. 제대로 된 진정성 넘치는 꾸중을 접해 본 경험이 아예 사라지고 있다. 꾸중의 방식이 문제가 될지언정, 그렇다고 꾸중 자체의 교육적 책무를 아주 무시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칭찬의 교육적 위력을 진정으로 높이기 위해서라도 꾸중의 길은 그것대로 바르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쯤에서 칭찬과 꾸지람의 위상(位相) 관계를 생각해 보게 된다. 왜냐하면 칭찬과 꾸지람은 이 지구상에서 선생 노릇 하는 사람 모두에게 숙명적 실천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칭찬의 교육학’이 중요하면 할수록 ‘꾸지람의 교육학’ 또한 마땅한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칭찬과 꾸지람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유기적 상호성을 가지는 것이다. 칭찬만 있는 세상에 칭찬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것은 마치 빛만 있는 세상과도 같다. 빛만 있는 세상이란 사실 피곤한 세상이다. 빛은 끝없는 시지각의 작동을 요구하여, 오로지 보고, 보고, 또 보게 할 뿐, 그 막막한 밝음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쉬지 못할 것이다. 빛만 있는 세상일수록 오히려 사람들은 눈을 감고 만상을 어둠 속에서 놓아 버리는 명상의 시공(時空)과 지각의 안식을 가지려고 애를 쓸 것이다. 빛이란 어둠이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그 가치가 드러난다. 칭찬 또한 꾸중이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그 가치가 드러난다. 칭찬만 있는 세상에서는 칭찬이 걷잡을 수 없이 인플레 될 것이다. 인플레 된 칭찬이란 이미 번다한 비위 맞추기이거나 임시방편의 안심시키기로 왜곡되기 쉽다. 이런 변질된 칭찬의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가 가지게 될 ‘말에 대한 불신’은 생각만 해도 두렵다. 그것이 어찌 말에 대한 불신만으로 끝날 일인가. 필경에는 사람에 대한 불신, 교육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지 않겠는가. 꾸중의 철학 없이 막무가내 칭찬으로 나서는 것은 자칫 ‘주책없는 어른’을 자처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인생의 경험을 총체적으로 섭렵한 사람을 두고 우리는 ‘인생의 단맛 쓴맛을 다 맛본 사람’이라고 말한다. 단맛만 가지고 인생의 경륜을 쌓을 수 없고, 쓴맛만 가지고도 인생의 경륜을 쌓을 수 없다. 교육을 받고 자라는 쪽에서도 그 성숙의 총체적 발달을 위해서는 단맛과 쓴맛이 모두 필요한 것이다. 빛과 어둠의 순환이 만물의 생장을 주관하는 우주의 리듬이듯이, 칭찬과 꾸중 또한 한 인간의 성숙과 발달을 도모하는 상보적(相補的) 기제이다. 적어도 교육하는 행위의 총체성 속에 칭찬과 꾸중은 조화로운 동반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외우(畏友) W교수의 연구실을 오랜 만에 들렸다. 추운 날이었다. W교수가 만들어 주는 차 한 잔을 마시며 환담하는 동안, 누가 연구실 문을 두드린다. 20대 중반의, 선생인 듯 학생인 듯한 여성이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인사의 투로 보아 W교수의 제자인 듯하다. W교수가 제자를 소개하여 내게 인사시킨다. 이번 봄 새 학기에 대학원 석사과정에 들어 올 학생이란다. 학생이기도 하거니와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고도 한다. 현장 3년차의 선생님이라니 신참 교사는 지난 셈이다.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이렇게 본격적 공부를 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으니 참으로 장하다고, 나는 그녀에게 격려의 말을 한다. 신입제자를 자리에 앉힌 W교수는 제자의 공부에 대한 포부와 각오를 확인한다. 상대의 잘못된 학문 방식과 습관이 보이면 서슴없이 나무란다. 학문적 노력과 논문쓰기 과정의 엄밀성을 강조하면서, 제자의 준비 상태를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미흡하거나 부족하면 또 따끔하게 일침을 놓는다. 젊은 제자는 선생의 나무람이 있을 때마다 입을 굳게 다문다. 결심을 더욱 단단하게 굳히는 것인지, 마음이 상하여 면구스러워지는 것을 다스리기 위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W교수는 학문의 길을 같이 가는 동학의 친구들과 왕성하게 교유하기를 강조하면서, 앞으로도 쓴 소리를 많이 할 것이니 그리 알라고 한다. 간간 웃음을 띠며 이야기했지만 분명 W교수의 말은 나무람과 교정의 메시지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만 이야기했으니 자네의 말도 들어 보기로 하세. W교수가 말할 기회를 제자에게 넘겨준다. 그녀는 수그린 이마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W교수를 향하여 다시 한 번 가벼운 목례를 한다. 비로소 굳게 다물었던 입가의 근육을 풀고 가볍게 웃음을 머금는다. 그녀는 잠시 침묵을 두고서는 이렇게 말을 한다. “상처받지 않겠습니다.” 이 첫마디가 내게는 신선하고도 산뜻한 미더움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녀가 강하고 알차게 그리고 너그럽게 성장, 발전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학문의 길에서 자기연마를 하려는 사람의 다짐으로서 저처럼 견고하기도 쉽지 않으리라. 아울러 스승에 대한 신뢰를 저처럼 확고하게 보여주는 말이 달리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논어에는 공자가 제자들과 문답하며, 제자들의 모자람을 일깨우는 장면이 나온다. 그 일깨움의 대목을 꼭 꾸지람이라고 하기에는 무엇하지만, 그것이 칭찬의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닌 것만큼은 틀림없다. 공자의 제자들이 그렇게 꾸중 받는 자리에서 무어라 반응을 했는지 묘사돼 있지 않지만, 문맥의 큰 흐름으로 보면, 스승의 나무람을 가르침의 본질로 받들어 모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제자들이 공자의 언행을 논어로 기록하면서 그런 나무람의 장면들을 수록하지 않았겠는가. 신약성서에도 예수가 제자들을 꾸짖는 대목이 더러더러 나온다. 그러나 그 꾸중을 들은 제자들이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는 기록은 없다. 성서 역시 예수가 직접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예수 이후 예수의 제자들이 기록한 책이다. 예수의 꾸중을 제자들이 잊지 않고 굳이 의미 있게 기록한 것은 그 꾸중의 본질과 가치를 존중하고 감사히 여겼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문득 유도를 배우던 시절의 사범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유도의 연습과정에서는 상대가 공격을 걸어오면 무리하게 피하려 하지 말고 그 공격에 선선히 넘어가 주라. 이유는 두 가지이다. 그래야 다치지 않는다. 그래야만 실력이 발전할 수 있다. 단 연습할 때만 그러하다. 경기에 나가서는 그리하면 안 된다.” 꾸중이란 유도 연습에서 내게 가해오는 공격에 해당하는 것일 수 있다. 공격 자체를 거부하면 유도의 기량을 기를 수 없다. 공격의 리듬에 잘 호응하여 나를 매트 위에 떨어지게 만드는 과정이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유도의 기술에 눈을 뜨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꾸중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자리가 있는 사람이 발전한다는 뜻 아니겠는가. 꾸중이 사라져 가는 세태에는 상처의 과잉이 나타난다. 그만큼 눈에 안 보이는 학대가 심해지는 세상이라는 것일까. 우리 사는 세태가 얼마나 삭막해졌는지 사람들은 마치 언제라도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래서 조금의 꾸지람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우리들 존재는 더욱 허약해지고 우리 사회는 더욱 불안해지는 것 아닐까. 스스로의 강함을 위하여, 세상을 향한 너그러움을 위하여, 마음에 심어두고 주문처럼 되뇌어 보자. ‘상처받지 않겠습니다!’| 경인교대 교수 칭찬과 꾸지람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유기적 상호성을 가진다. 칭찬만 있는 세상은 마치 빛만 있는 세상과도 같다. 빛만 있는 세상이란 사실 피곤한 세상이다. 빛은 끝없는 시지각의 작동을 요구하고, 그 밝음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쉬지 못할 것이다. 빛만 있는 세상일수록 오히려 사람들은 눈을 감고 만상을 어둠 속에서 놓아 버리는 명상의 시공(時空)과 지각의 안식을 가지려고 애를 쓸 것이다.
오랫동안 정부출연기관에서 일해서 그런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거는 구호부터 살피는 버릇이 있다. 정책연구자의 본능이다. 독재정부든, 문민정부든, 국민의 정부든, 참여정부든 관계없이 정치적 슬로건은 국정지표와 정책변화를 예고하는 풍향계이다. 필자의 기억에 남는 구호만도 ‘근대화’, ‘세계화’, ‘지식’, ‘혁신’, ‘균형’ 등 꽤 된다. ‘교육개혁심의회’, ‘중앙교육심의회’, ‘교육개혁위원회’, ‘새교육공동체위원회’,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 ‘교육혁신위원회’의 문패는 정권의 부침사를 말해준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는 만큼 정치에 가까운 게 교육이라는 것이 아이러니다. 벌써 ‘균형’과 ‘혁신’이란 말 대신에 ‘창조’와 ‘실용’이 뜨고 있다. 교육에서는 ‘자율’과 ‘경쟁’의 바람이 분다. 인수위 워크숍 관련 보도에 따르면,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국가비전은 ‘선진화를 통한 세계 일류 국가’라고 규정. 대한민국의 역사를 ‘발전의 역사’로 긍정 평가하고 건국화, 산업화, 민주화를 승화시킨 새로운 발전모델을 지향하기로 했단다. 국정철학을 ‘화합적 자유주의(Harmonious Liberalism)’로 설정하고 행동규범은 ‘창조적 실용주의(Creative Pragmatism)’를 지향키로 했다고 한다. 창조적 실용주의라는 새 정부의 행동규범은 “아이디어는 창조적으로, 실행방법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으로…”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5대 국정 지표는 △알뜰하고 유능한 정부 △ 활기차고 열린 시장 △ 능동적 복지와 고신뢰 사회 △인재대국을 지향하는 평생학습국가 △글로벌 코리아의 실현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필자의 관심을 끄는 단어는 실용주의가 아닌 ‘창조’이다. 얼마 전 폐막된 다보스 포럼에서 빌게이츠는 배려와 인간의 얼굴을 한 ‘창조적 자본주의’를 주창, 신문의 기사를 장식했다. 빌게이츠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오늘날에는 ‘지식’이란 말보다 ‘창조’란 말이 우선한다. 오늘날 사회를 견인하는 키워드는 ‘창조성’이다. ‘창조사회’, ‘창조적 경제’, ‘창조적 자본’ 등 지식 대신에 창조로 시작하는 말이 유행이다. 2007년도는 삼성의 ‘창조경영’이 화두였다. 최근 두바이의 성공사례에서도 창조는 성공을 위한 핵심적인 키워드로 대두된다. 지금은 지식과 혁신을 넘어 창조의 시대로 가고 있다. 실용주의 앞에 있는 ‘창조적’이란 말은 그냥 수식어가 아니라 경제 패러다임 변환을 말한다. 실체가 있는 말이다. 오늘날 전 세계의 ‘창조적 경제’ 논의를 이끌고 있는 리처드 플로리다에 따르면 이미 미국 산업에서 1, 2차 산업인 농업과 제조업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1920년 이후 급속히 감소하여, 농업의 경우는 10%에, 제조업의 경우 20%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창조적 경제의 도래와 함께 산업을 이끌어가는 핵심 인력은 과학자, 엔지니어, 아키텍트, 디자이너, 교육자, 예술가, 음악가 등과 같은 창조적 산업에 종사하는 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전체 산업 인력의 26%가 제조업, 40%가 서비스업, 30%가 창조적 산업에 재직하고 있지만, 44%의 서비스업 재직자가 전체 경제적 수익의 30%를 창출하는 반면, 30%에 불과한 창조적 산업 재직자가 무려 전체 수익의 절반에 육박하는 47%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이들이 바로 창조적 계급이다. 오늘날 교육의 역할은 창조적 계급을 육성하고 빨아들이는 자석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플로리다의 창조성에 대한 관점은 경제성장의 3T란 단순한 공식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3T란 기술(Technology), 인재(Talent), 관용(Tolerance)을 말한다. 3T가 도시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플로리다의 핵심 메시지‘ 인간의 창조성’은 경제 성장의 궁극적 원천이며, 모든 개인은 창조적이며, 그러한 창조성을 완전히 개발, 이용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관용적이어야 하며, 다양해야 하며, 포용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재가 가는 곳에 혁신, 창조성, 경제성장이 뒤따른다. 그런데 그런 인재를 끌어들이려면 그 지역에는 관용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세 가지를 다 갖춘 조직이 바로 대학이다. 그러므로 대학은 인재, 관용, 기술의 집적지이기도 하지만 이를 빨아들이는 자석과 같다. 창조성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본질적 요소다. 교육의 본업정신도 바로 인간만이 갖고 있는 창조성이 발현되도록 돕는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언제부터 우리가 교육의 시장 모델에 관대하고, 친화적인 교육자들이 되었나 의아심이 든다. 공교육의 당초 이념은 신분과 지위에 관계없이 시민으로서의 공통된 자질을 길러주는 공통학교에 있다. 수월성에 앞서 ‘위대한 평등화 장치’로서의 역할을 하는 데 있었다. 초·중등교육 만큼은 국가가 책임지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타고난 창조성을 꽃 피우게 하는 것이다. 교육에 있어서는 실용성에 앞서 창조성이 우선한다. 인재대국을 지향하는 평생학습국가 건설이란 천릿길도 오늘날 초·중등 공교육의 정신에 충실하는 첫 걸음을 잘 떼는 데 있다. 다이내믹 코리아 대신에 글로벌 코리아를 주창하는 이명박 정부에서는 인수위 때부터 영어교육에 몰입하고 있다. 영어 공교육 원년에 앞서 창조교육 원년으로 삼았으면 한다. 그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플로리다의 창조경제론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대운하, 맘모스 스타디움, 고속철도 및 고속도로 등 대형공사에 앞서 교육과 문화 예술 등의 창조적 인프라에 충실하라고 권고한다. 왜냐하면 현재는 창조경제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시장에 기초한 ‘창조적 실용주의 교육’과 춤을 추기가 주저된다.
이러한 시구들은 입시 대비와 무관하게 내 푸른 시절을 온통 뒤흔들며 다가왔다. 어느새 나 자신은 또 다른 ‘종’, 또 ‘죄인(罪人)’과 ‘천치(天痴)’, 또 다른 ‘수캐’였다. 그의 자화상은 바로 나의 자화상이었다. 나는 내 청춘이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로 자신을 성찰하며 시작하자마자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로 영원히 끝나기를 바랐다. 다가올 삶이 마냥 불안하였으므로 삶이 그대로 끝나도 나는 좋았다. 돌이켜 보면 그는, 아니 나는? 고등학교 때 미당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배웠던 시간. 작가가 시인부락 동인이며 시 또한 입시에 자주 출제되니 그의 시는 반드시 외우라는 지시가 모두에게 떨어졌다. 별 어려움 없이 금세 외울 수 있었다. 시작은 ‘별로’ 탐탁하지 않았지만 과정은 ‘왠지’ 쉬웠고 성과도 ‘제법’ 근사했던 셈이다. 그랬다.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나 그의 어휘는 내 가슴 깊이 파고들었고, 또한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나 그의 심상은 내 머리 가득 폭발했고, 역시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나 그의 운율은 내 호흡 온통 흔들리게 만들었다. ‘무엇인지’는 과연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그 질문이 얼마나 큰지 당시에는 미처 가늠할 수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국문학 작품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나는 비로소 그 ‘무엇인지’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서구의 형식주의와 신화주의 비평의 세례 속에서 미당의 시들은 마침내 휘황한 정체를 드러냈던 것이다. 화사집과 귀촉도, 신라초와 동천, 그리고 질마재 신화로 이어지는 미당의 시들은 거대한 언어의 세계였다. 국문학 교수들은 서구 문학 이론으로 중무장하고 미당이 노래하는 이 땅의 정서와 언어를 능숙하게 드러내 주었다. 그의 시가 갖고 있는 마력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그의 언어들이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 그래서 나의 가슴에 어떻게 다가왔는지. 나의 호흡을 어떻게 멎고 트이게 하였는지 가르침은 명료하면서도 웅숭깊었다. 나는 문학의 비밀을 마침내 제대로 엿보기 시작한 청년, 문학의 풍요로움에 비로소 눈뜨기 시작한 영혼이었다. 나는 교수들을 학문의 스승으로, 미당을 창작의 스승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화사(花蛇)의 “아름다운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스며라! 배암.”, 그리고 문둥이의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귀촉도(歸蜀道)의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추천사(鞦韆詞)와 춘향 유문(遺文), 다시 동천(冬天)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내가 돌이 되면 등의 여러 시행마다 나도 모르게 밑줄을 긋고 또 긋고 있었다. 그의 상상력은 멀리 수천 년의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나를 끌어들였다. 기존의 언어에 자유자재로 리듬을 불어넣고 의미를 찾아내는 솜씨는 신부와 해일과 같은 산문시에서도 예외없이 놀랍게 빛났다. 특히 미당의 운율은 지금까지도 내 글과 내 호흡의 운율을 저 바닥 깊은 곳에서 좌우할 뿐만 아니라 다른 시들을 읽을 때 기본 운율로 작동하고 있을 듯싶다. 서정주. 그는 언어의 진정한 연금술사였다. 단지 몇 개의 낱말들이 그의 머리와 가슴, 목을 거치면 언제나 새로운 언어의 세계가 천상의 우주보다 더 웅대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미당 덕분에 시란 그저 영감이 스쳐서 이루어질 뿐이라는 가벼운 낭만적 가치관은 송두리째 흔들렸고 다시 흔들리고 또 다시 흔들렸다. 그는 내게 신화의 언어이자 언어의 신화였다. “미당은 운명하기 전까지 거의 60여 년 동안 십수 권의 시집을 펴내며 시작 활동을 계속해 온 열정의 시인이었다. 초기에는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아 서구적 원죄 의식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여 준다.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자화상)” 청춘의 피끓는 고뇌에 괴로워하는 시기다. 첫 번째 시집인 화사집((1941)에서 보여주는 본능적이고 관능적이며, 악마적이며, 상징적인 시들이 이 무렵의 대표적인 시들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나 불안한 젊은 천재의 모습이 어린다. 귀촉도(1946) 이후 불교와 신라를 만나면서 놀라울 만큼 변모한다. 즉 동양적 세계관으로 관심을 돌려 안정된 정신세계를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시인의 고향인 ‘질마재’는 유교와 불교, 무교가 뒤섞인 정신적 자궁으로서 톡톡히 구실한다. 토착적인 언어로 전통적 서정의 세계를 자유롭게 노래한 시기다. 말년에는 해외여행을 하면서 계속 시를 쓰는 놀라운 열정을 과시하기도 한다.“ (허병두, “'국어의 절정'-'반민족' 곤혹스럽게 하는 미당의 시”, 한겨레신문, 2004년 11월 15일) 하지만 미당, 서정주, 그는… 서정주, 그는 친일 시인이었다. 그가 쓴 친일의 시는 공식적으로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친일시는 엄혹한 군사 독재 시절, 밤마다 몰래 숨죽이며 펼쳐들던 월북 작가들의 작품집만큼이나 조악한 또 다른 자료집들에 박혀 있었다. 미당이 친일시를 썼다니! 우리 전통을 노래한 시인이 외세의 앞잡이가 되어 황국신민의 길을 노래하다니! 대단한 충격이었다. 더구나 그의 친일시들은 어쩔 수 없이 썼다고 보기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수준을 과시했다. 국가와 민족, 민중을 떠나서 생각한다면 그의 친일시들은 미학적으로도 빼어났다. 그가 현실과 전혀 상관없이, 또는 민족의 아픔을 외면한 채로 수천 년 동안의 우리 정서를 시로 그려냈다면 차라리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일제의 감옥에서 죽임 당한 육사지만 그의 시 주인공은 오히려 미당 자신일 수도 있으니까. 비록 지금 ‘눈’ 내리는 현실’ 따위는 아랑곳 않지만 오로지 ‘천고의 뒤’를 기다리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는 주인공은 반드시 역사의식만 가져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그가 만일 적극적으로 친일시를 쓰지 않았다면 나는 육사와 미당을 서로 다른 자세로 같은 좌표 위에 자리 잡은 예술가들로 대하였을 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세월이 어둡다고 언어마저 어두워야 할 이유는 없다. 아무리 모질고 힘든 시기라도 젖먹이에게 젖을 물리고 동화를 읽어줘야 하듯이 시인은 모국어를 품으며 자신의 영혼을 키우고 다시 모국어로 자신의 영혼을 드러내야 한다. 조금씩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서 국가가 감추었던 월북 작가들의 글이 점점 더 많이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매우 불경한 언어였고 그들을 읽는 것은 더욱 불온한 일이었다. 그들이 읽는 작가와 작품들은 그래서 더 부정해야 했고, 그들이 아닌 작가와 작품들은 우습게도 다시 더욱 훌륭하게 미화되곤 하였다. 월북 작가는 불온하고 위험한 원흉이었으며 친일 작가는 어쩔 수 없이 협조하고 만 인간이었다! 친일은 월북보다 낫다! 월북은 현실로 남은 과거요, 친일은 과거로 남은 현실이었다. 나는 민족 문학을 공부했고 다시 친일 문학에 관심을 두었다. 그들은 모두 내게 좋은 스승들이었다. 하나는 반드시 인정해야 하는 ‘정(正)’, 또 다른 하나는 반드시 인정하면 안 되는 ‘반(反)’. 나는 ‘합(合)’의 경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사유할 수 없는 풋내기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그러던 중에 다시 미당이 군사독재의 우두머리에게 바친 ‘신 용비어천가’가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가슴 깊은 곳이 다시 서늘하게 시려왔다. 이제 실수라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 많은 비난이 미당에게 쏟아졌고 미당 또한 감수하였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그는 예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모국어를 다루는 귀재 중의 귀재. 누가 그렇게 우리말을 자유스럽게 향토의 서정과 전통의 내음을 담아 오늘에 내놓을 수 있을까. 그의 언어에는 과거가 담기고 전통이 빛나며 신화가 숨쉰다. 그의 시편에는 범접하기 어려운 천재성이 빛난다. 천재와 언어가 만나는 행복한 풍경이 미당의 시편들마다 펼쳐진다. 그만큼 그의 작품에서는 작가가 살고 시가 살고 다시 시가 살고 미당이 산다. 하지만, 그는 사상적인 측면에서 보면 언제나 ‘해바라기’에 불과한 소인 중의 소인. 누가 그렇게 격렬하게 찬반의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그리고 지금은 이상하리 만큼 사그라든 채 온갖 비난을 받았을까. 그의 사유가 영원과 만나면 한껏 꽃을 피우지만, 그의 사상이 시속과 만나면 늘 심각하게 부작용을 일으켰다. 그에게는 평생 조국과 민족을 배신한 배역자라는 손가락질이 뒤따랐다. 그만큼 그의 시는 시인의 삶과 연관되며 비루하고 남루해지며 빛을 잃었다. “신들린 샤먼(shaman)처럼 한국어의 진경과 절창을 끊임없이 새롭게 펼쳐낸 시인. 친일 문학 작품을 쓴 부끄러운 원로 문학인. 수필 ‘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1943) 등 마지못해 썼다고 보기에는 적지 않은 친일 작품들, ‘오장 마쓰이 송가’(1944)와 같이 억지로 썼다고 보기에는 완성도가 빼어난 작품들. 독립운동처럼 민주화 운동이 뜨거웠을 때, 총칼로 집권한 군부 독재자에게 아부한 노년의 부적절한 행태. 뛰어난 언어적 재능과 뜨거운 예술적 열정. 그럼에도 힘센 권력에 빌붙던 처신. 복잡하게 그려지는 시와 시인 앞에 그저 곤혹스러울 뿐이다. (중략) 그를 읽으면서 여전히 두 개의 문장이 맴돌지 않을까 싶다. 그는 시인이다! 그는 시인이 아니다!-아, 도대체 시란 무엇인가? 시인이란 과연 누구인가?”(허병두, “'국어의 절정'-'반민족' 곤혹스럽게 하는 미당의 시”, 한겨레신문, 2004년 11월 15일) 아직까지 미당은 내게 풀지 못한 숙제다. 미당과 그의 시들을 푸른 영혼의 제자들이 어떻게 감상하게 해야 할까. 물론 모든 이들이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시를 즐겨야 하지만, 도무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작가와 작품, 다시 말해 작품 속의 작가와 작가 속의 작품을 구별하고 다시 연관지으며 가르쳐야 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인 것이다. 그렇다고 미당을 빼고 우리 문학사를 온전하게 가르칠 수 있을까? 또한 미당을 가르치면서 우리 문학사를 자랑스럽게 전해줄 수 있을까? 올바른 문인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그의 언어는 어떠해야 하는지 또렷하게 말해 줄 수 있을까? 국가가 중고등학생을 ‘인적 자원’으로 대하고 경쟁력 강화를 강조하면서 ‘무한경쟁’의 노동 시장으로 모는 현실에서 문인은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어떠한 문학적 형상화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가? 미당의 문제는 사실 미당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는 문학과 작가, 언어와 삶, 예술과 현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언제나 깊게 사유하게 만드는 존재다. 문학 작품의 해석과 평가, 그리고 교육 문학 작품은 그 자체로 해석하고 평가해야 한다. 굳이 형식주의의 문학 이론을 들지 않더라도 작품을 작품 그 자체로 대해야 하는 것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작품을 작품 그 자체로만 해석하고 평가하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작품을 창조한 작가와 이를 수용하는 독자, 이를 품은 넓은 의미의 현실을 모두 아우르며 평가해야 하기 위한 기초를 확실히 다져두자는 뜻에서다. 따라서 미당의 시에서는 모국어를 한껏 활용한 언어의 연금술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모국어를 사용한 시가 자칫 현실과 유리되고 역사의식을 잃게 될 때 얼마나 초라해지는지 학생들 각자 교훈을 얻게 해야 한다. 재주가 뛰어나다고 해서 존경 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또한 문학이 현실의 권력에 빌붙을 때 그 스스로의 힘, 아름다움의 힘을 잃게 된다는 진실. 훌륭한 문인은 현실과 치열하게 맞서며 자신의 작품을 잉태하고 출산하며 양육한다는 진리. 이 모든 것들을 학생 스스로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형성하면서 판단하게 도와야 한다. 가장 훌륭한 시와 시인이 가장 훌륭하지 않을 수 있다는 교훈은 문학과 삶을 의미심장하게 곱씹게 할 것이다. 함께 생각하면 좋은 점들 1. 통일이 되면 미당의 작품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 통일 문학사에서 미당의 시적 위상은? 2. 미당의 시집들에서 꾸준히 반복되는 공통점과 다양하게 변형되는 차이점들은 과연 무엇일까? 3. 미당이 쓴 시들 가운데 마음에 드는 시가 있다면 스스로 질문해 보자. 왜 그럴까? 덧붙이는 말들 1991년에 민음사에서 미당 서정주 전집이 두 권으로 나왔다. 이후의 미당 관련 책들도 이 책의 바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2002년에는 문학사상사에서 한국대표시인 101인선집 안에 미당 시선집 미당 서정주를 펴냈다. 이 책의 뒤편에는 서정주 시인이 직접 고르고 낭송한 육성 시낭송 CD가 덧붙여 있으니 꼭 챙겨놓으실 것. 부담 없이 미당의 시세계만 오롯하게 살펴보려면 미래사에서 2001년 말에 출판한 시선집 푸르른 날을 읽으면 좋다. 미당이 1915년부터 2000년까지 쓴 시들 가운데 스스로 고른 100여 편 정도를 모았다. 시인이 자신의 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짐작해 보는 의미와 재미 또한 쏠쏠하다.
“표트르대제. 감기를 이기고 20여 년 더 통치해 러시아의 근대화를 크게 진척시켰다.”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다. 표트르 1세는 한창 일할 나이인 52세에 타계했고, 따라서 그가 열성적으로 추진하던 러시아의 서구화도 늦어지게 되었다. 표트르대제가 50대 초반에 타계하지 않았을 경우 러시아의 역사는 과연 달라졌을까? 그것과 관계없이 볼셰비키혁명은 일어났고 스탈린의 피의 숙청도 감행되었을까? 흔히 북극곰으로 불리는 러시아. 냉전시대의 소련만 못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강대국으로 행세하는 러시아. 9세기 중엽 이래 바이킹의 지배아래 있었고 -그들은 모스크바지역에 노보고로드왕국을 건설했다- 13세기 이후에는 몽골의 지배를 받아오다 15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겨우 몽골의 지배를 벗어나 독립했지만 후진의 굴레를 벗지 못한 러시아. 그 러시아의 근대화에 큰 족적을 남긴 표트르 1세(1682-1725) 이야기다. 후진국 굴레 벗지 못한 러시아 16세기에 접어들어 이반 4세가 짜르(tsar)를 칭하고, 17세기 초에 미하일 로마노프가 로마노프왕조를 연 후에도 러시아는 후진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표트르대제에 의해 서구적 근대국가의 모습을 갖추어가기 시작했다. 2m의 장신에 말(斗)술을 사양하지 않은 그는 즉위 즉시 내정을 개혁하고 산업의 근대화를 추진했다. 표트르는 이복형 이반과의 왕위계승 싸움에 이겨 10살에 제위에 올랐지만 그 후에도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반의 지지 세력이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14세기에 건설된 궁궐인 모스크바의 크레믈린을 장악한 이반 측 총병대는 어린 표트르 1세의 면전에서 7일 동안 별별 못된 짓을 다했다. 모후와 함께 크레믈린을 버리고 모스크바 교외로 탈출한 표트르는 죽음의 문턱을 수차례나 넘나들다 1689년에 제권을 회복했다. 그로부터 5년 뒤 섭정을 하던 모후도 타계해 22세의 표트르는 제국을 직접 통치할 수 있었다. 친정체제를 구축한 표트르 1세는 우선 강력한 해군의 창설을 시도했다. 흑해로 진출하기 위해 오스만제국에 도전했으나 -그 무렵 소아시아․중동․발칸반도․북아프리카 등지에 걸쳐 있던 오스만제국은 크림반도를 포함해 흑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보기 좋게 패한 후 해군을 창설하는 한편 서유럽 선진국들의 우수한 기술 도입에 진력했다. 표트르는 소년시절에 모스크바에 살던 서유럽인들과 매우 가까이 지내면서 항해와 기계․기술 등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회적으로 자유롭고 지적으로 적극적인 서구적 분위기를 체험했기 때문에 제국을 친정하는 즉시 서유럽의 활기차고 개방적인 생활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수 있었다. 강력한 해군 창설, 서유럽 문화 도입 표트르대제는 친정 15년여 만인 1697년에 250명으로 구성된 선진기술학습 사절단[Grand Embassy]을 이끌고 네덜란드로 향했다. 조선이 1881년에 일본에 파견한 신사유람단과 비교되지만 황제 자신도 사절단의 일원으로 참가한 점을 고려할 경우 서구의 선진 기술과 문물을 익히려던 그의 열정은 오히려 신사유람단의 그것을 능가하고도 남았던 것 같다. 사절단에 동행한 황제 표트르는 신분을 속이고 사르담에 있던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 조선소에서 기름때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기술습득단원들과 함께 기술을 익혔다. 하지만 4개월 여 후 황제신분이 탄로나 구경꾼들이 모여들자 황제는 암스테르담의 한 조선소로 옮겨갔다. 네덜란드에 머무는 동안 표트르 1세는 조선소에서 직접 기술을 연마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의 공장들은 물론 미술관․병원․양육원․천문대 등을 견학했다. 그때 그에게 편의를 제공한 인물은 네덜란드 총독을 겸하고 있던 영국의 윌리엄 3세였다 - 주지하듯이 명예혁명(1688)으로 축출된 제임스 2세의 딸 메리의 남편이었던 네덜란드의 윌리엄공(公)은 영국 국왕으로 초빙되어 윌리엄 3세가 되었다. 표트르대제는 이후 윌리엄 3세의 배려로 당시 세계의 공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잉글랜드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갈망하던 영국의 선진문물을 견학할 수 있어 더 없이 흡족했던 황제는 윌리엄 3세로부터 호화 요트를 선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최신예 군함을 시찰할 기회도 얻었다. 황제는 그밖에도 영국의 의회․대학․조폐국과 대소의 공장을 두루 견학했는데 네덜란드에서와 같이 그때마다 노트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영국에 머무는 동안 황실 근위대(스트렐치)의 반란소식을 접하고도 선진문물의 견학을 마무리한 다음에야 귀국해(1698년 여름) 반란 주동자 등 100여명을 처형하고 근위대를 해산했다. 표트르대제는 또한 효율적 정부를 겨냥해 행정개혁을 서두르는 일방 서구식 교육과 문화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국민, 특히 상류 지배층의 서구식 사고와 행위를 북돋우기 위해 귀족들에게 수염을 깎고 -1895년에 시행된 우리의 단발령과 비교된다- 서구식 옷을 입고 댄스파티에 참석하고 커피를 마시게 했다. 황제의 전방위에 걸친 서구화노력은 당연히 상당한 결실을 거두었다. 국민의 서양 제도와 문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유럽의 서적들이 활발하게 수입․번역되었다. 러시아 최초의 신문 베도모스티(기록)가 발행되고(1703) 영국과 프랑스에 이어 과학아카데미도 등장했다(1724). 재임기간 대부분 전쟁과 산업진흥 표트르 1세는 그밖에도 1718년에 전면적 개혁을 계획하고, 인구조사를 실시하여 인두세를 부과했다. 한편 국민은 그의 치하에서 군역과 중세에 시달렸는데, 그것은 그가 친정기간 30여 년의 대부분을 전쟁과 산업진흥 등으로 보낸 점을 고려할 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인두세도 재정 강화의 한 방편으로 채택되었는데, 그것으로 국가재정수입은 3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징수를 맡은 귀족의 농간도 한 몫 거들어 농민들은 이중삼중의 고통을 받았다. 1722년에는 14단계로 된 공무원 직제를 만들어 이론상으로는 최하위 공직자도 최상위 직으로 승진할 수 있게 했다. 그는 또한 1721년 이후 페르시아와의 전쟁에 승리하여 러시아의 남쪽 국경을 카스피해 연안까지 확장했다. 표트르의 서구화정책에 관한 이야기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상트페테르스부르크 건설이다. 그가 제위기간 내내 유념한 일 중의 하나는 북방진출이었다. 그는 북해와 대서양 같은 대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트해의 관문을 손에 넣기 위해 1700년에 스웨덴을 침공해 대(大)북방전쟁(1700-21)을 도발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서전에서 무참하게 패했다. 러시아군은 18세의 소년 왕 칼 12세가 지휘한 스웨덴군이 지키던 나르바요새를 선공했으나 병력의 1/3과 다수의 장교를 잃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스웨덴은 그것으로 전쟁이 끝난 것으로 착각하고 모스크바로 진격하지 않았다. 결국 표트르 1세에게 흩어진 전열을 수습할 여유를 준 셈이었다. 새로이 10개 연대를 편성한 표트르는 병사들에게 황제가 아니라 조국 러시아를 위해 싸우도록 독전해 결국 승리했다. 중상을 입은 칼 12세는 후퇴하던 중 포탄을 맞고 처참한 최후를 마쳤다. 러시아는 나르바의 패전을 9년 만에 설욕하고 핀란드만과 발트해의 동쪽을 장악함으로써 북해로 나갈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한 셈이다. 대북방전쟁 후 표트르대제는 북해 및 대서양으로 나가는 현관을 마련하고 서유럽과의 교류를 보다 원활히 하기 위해 핀란드로부터 뺏은 네바강 어구 소택지에 도시를 건설해 새 수도로 삼았다. 10년의 세월과 연인원 5만 명이 동원된 그 공사는 3만 여명의 인명손실을 낳았다. 그처럼 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서구의 도시를 본떠 건설된 도시는 완공된(1713) 후 ‘표트르의 도시’란 뜻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불리었다. 그리고 수도가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바뀜에 따라 러시아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 서유럽 쪽으로 옮겨갔다. 감기 하나에 무너진 근대화 그처럼 의욕적으로 근대화를 추진하던 표트르대제는 그러나 꿈을 못다 펼치고 52세에 타계했다. 1724년 11월 어느 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병기창으로 행차하던 대제는 병사를 가득 실은 배가 핀란드만의 여울 톱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보고 허리까지 올라오는 물로 뛰어 들었다. 하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11월 추위는 50대에 들어선 황제에게는 역시 힘겨운 것이었다. 그로 인해 감기를 얻은 황제는 결국 타계했다. 1725년 1월 28일. 표트르대제는 힘을 다해 “모든 것을 맡긴다”고 쓴 후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누구에게? 유약했던 황태자 알렉세이는 이미 10년 전에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후 자살인지 타살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죽었다.★ 결국 천한 신분출신이었으되 표트르가 죽기 4년 전에 황후가 된 예카테리나가 제위를 이었다(예카테리나 1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광장에 서 있는 대제 표트르의 동상에는 “어떤 정신이 이마에 새겨져 있고 어떤 힘이 그 속에 간직되어 있을까? 그의 말(馬)에는 어떤 불이 붙어 있을까? 자랑스런 말이여, 네가 뛰어오를 때 어느 곳에 발을 내릴 것인가?” 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러시아의 문호 푸슈킨의 글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유물변증법에 근거해 예상한 공산혁명은 자본주의의 후기단계는커녕 자본주의의 초기단계도 경험하지 못한 러시아에서 일어났지만(1917년의 볼셰비키혁명), 표트로대제가 1725년에 죽지 않고 10, 20년 더 통치했더라면 러시아의 역사는 어떤 길을 걸었고 나아가 유럽 현대사 또한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렇게 되었을 경우 아마도 서구화, 산업화가 보다 진척되는 등 러시아는 후진적 굴레를 더 일찍이 벗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러․일전쟁에서의 패배나 볼셰비키혁명은 없지 않았을까. 또한 소련이 단독으로 발을 빼지 않아 1차 대전의 양상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고, 스탈린의 피의 숙청도 아마 없었을 것이다. 혹 동유럽의 공산화나 세계의 공산주의운동은 물론 미국과 소련 중심으로 전개된 냉전도 그 모양을 달리했을지 모른다. ----------------------------------------------------------------------------------------- ★ 야심만만하고 적극적이며 활달했던 거구의 표트르대제와는 달리 외아들 알렉세이는 유약하고 허약했다. 대제와 그로부터 버림받은 황후 예브도키아 사이에 태어난 알렉세이는 아버지의 개혁정치에 무관심했을 뿐만 아니라 자라면서 아버지에게 반감을 품었다. 대제는 기사적 생활을 싫어하고 하찮은 일에 몰두하는 등 제왕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태자 알렉세이 때문에 적지 않게 고심했다. 상속권 포기와 사제의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은 알렉세이는 억압을 견디다 못해 독일로 도피했다. 그후 아버지의 뜻을 쫒아 마지못해 귀국했지만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자살설과 독살설이 있으나 여하간 그는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 감옥에서 죽었다.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은 29일 오후 6시 30분경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을 가졌다. 취임식이 끝난뒤 기관장들로 부터 축하 인사를 받고 있는 모습. 이날 김 장관은 취임사에서 "형평성에 수월성을 더해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사람을 키우는 것은 우리의 시대적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가 지났다. 이제 봄이 왔나 싶더니 며칠 전에는 함박눈이 내렸다. 그러나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계절은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 저녁, 늘 산책하던 저수지를 걷다보니 몸이 금방 더워지고 이마엔 땀이 흐른다. 때마침 버들강아지도 눈을 떴다. 버들강아지를 보면 귀여운 강아지의 보들보들한 꼬리가 떠오른다. 또나도 모르게 동요를 흥얼거리게 된다. 버들강아지 눈 떴다. 봄 아가씨 오신다. 연지 찍고곤지 찍고 봄 아가씨 오신다. 왜 봄을 아가씨에 비유했을까? 봄 아저씨...?남성에 비유하니 어색하기만 하다. 봄은 여성의 계절 아닐까? 그러고 보니 여학교에 근무할때 조병화의 시 '해마다 봄이 되면'을 가르치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여학생들과 시를 암송할 때'봄은 피어나는 가슴'에서 여학생들은 얼굴이 붉어지고해맑은 미소를 지었었다. 바로 그 시에서 조병화 시인은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을 기억한다.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항상 봄처럼 새로와라. 3월의 문턱에서 버들강아지를 보며 동요를 불러보고 시 한 수를 떠올려 보았다.
물위에 떠있는 오리를 아시는가. 고요한 수면, 아름다운 경치. 그 위에서 한가로이 헤엄을 치는 오리를 보면 평화롭기만 하다. 그러나 물밑을 보면 오리발이 쉴새 없이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의 학교가 그렇다. 아이들은 봄방학 중이고 교정은 정적에 싸여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보면 더없이 한가롭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학교 또한 물위에 떠있는 오리와 다를 것이 없다. 신학년도 교육계획을 세우랴, 학급경영계획서를 짜랴, 신입생들 신상정리 하랴, 지도안 짜랴. 정말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다. 오늘은 인근 서점에서 각종 문제집과 참고서를 한 트럭이나 싣고 왔다. 과목별로 일일이 구분하고 선별하여 해당 선생님들께 제공하느라 오전의 교무실은 도떼기시장이 됐다.
4년 가까이 중단된 서울시교육청과 교원노조의 단체교섭이 재개될지 학교 현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004년 5월 25일 유인종 당시 서울시교육감과 교원노조 사이에 체결된 단체협약을 마지막으로 양 측은 4년 가까이 재교섭 없이 기존 협약을 연장해오고 있다. 서울시의회(의장 박주웅)는 21일 열린 본회의에서 김진성 의원(한나라당) 등 32명의 의원들이 제안한 ‘서울시교육감과 교원노조와의 단체협약 재협상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결의안은 현행 단체협약이 ▲학급담임 배정, 보직교사 임명, 교무분장, 전입요청 등에 대한 학교장의 인사권을 침해할 수 있고 ▲사립학교에 대한 교섭권한이 없는 교육감과 사립학교 교원임용, 신분보장, 정관 및 예·결산 공개 등을 합의했으며 ▲주번·당번교사제 폐지, 일·숙직 폐지, 근무상황카드와 출·퇴근시간 기록부 및 체크기 폐지 등 학교장 책임이나 교육적 효과를 무시한 채 지나치게 조합원 편의 위주로 체결됐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의회는 다음날인 22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교원노조와의 단체협약 재협상 촉구 결의문’을 서울시교육청에 이송했으며 결의문은 현재 담당부서인 시교육청 교원단체업무추진반에 전달된 상태다. 시교육청은 후속조치로 28일 전교조와 한교조, 자유교조 등 3개 교원노조에 ‘단체교섭 진행 촉구’ 공문을 보냈다. 시교육청 박근석 사무관은 “이번 시의회 결정과 관계없이 교육청에서도 자체적으로 2004년 체결된 단체협약에 대한 현장 의견 등을 수합해왔으며 교섭 재개를 위한 노력도 계속해왔다”고 밝혔다. 박 사무관은 “시의회 결의문에서 지적한 단체교섭의 내용을 사실상 위법이나 무효라고 간주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도 “학교 현장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에 단체교섭이 재개된다면 그러한 부분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시교육청에 따르면 2004년 5월 교육청과 교원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이 끝나고 약 4개월 후인 2005년 9월 29일 전교조 측으로부터 단체교섭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양 측이 몇 차례의 준비모임을 가지던 중인 2006년 3월 ‘反 전교조’를 표방한 자유교조가 출범했고, 이에 “자유교조가 참여하는 단체교섭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며 전교조가 교섭 참여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시교육청은 “교원노조 쪽에서도 조합원의 요구에 따라 단협을 갱신할 필요성은 충분히 느끼고 있을 것”이라며 “전교조가 얻을 것을 다 얻었기 때문에 교섭을 거부한다고 보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자유교조 지회가 없는 지역은 2005년 이후에도 단체교섭이 무리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 시교육청의 설명이다. 시교육청은 시의회 결의안 통과 이전에 이미 세 차례에 걸쳐 교섭 촉구 공문을 교원노조 측에 보냈으나 전교조는 지금까지 교섭 참여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전교조의 보이콧으로 4년째 단체교섭이 이뤄지지 않자 한교조 역시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한교조 관계자는 “1년여 전 한교조와 전교조 집행부가 만났을 때 ‘단체교섭이 재개될 수 있도록 잘해보자’고 당부했었다”면서 “교원노조마다 추구하는 바가 달라서 어려움도 따르겠지만 올해는 교섭이 재개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학기초에 실시될 예정인 초·중학생 대상 진단평가를 놓고 일부에서 ‘일제고사 부활’이라며 반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달 치러지는 진단평가는 총 2종류다. 하나는 서울시교육청이 주관하는 중1 대상 진단평가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부가 주관하는 초 4~6, 중 2,3학년 대상 ‘교과학습 진단평가’다. 평가과목은 국·영·수·과·사 5개 과목으로 같으며 중학생은 6일, 초등학생은 11일 시험을 치른다. 교육부가 학습 부진아 판별을 위해 시행하는 초·중학생 교과학습 진단평가는 올해 처음 실시되는 것이다. 교육부는 평가결과 1%를 표집해 분석하기로 했지만 서울과 경기도교육청이 최근 ‘모든 학교가 치르도록 준비하라’는 공문을 각 학교에 보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제고사 부활’ 논란에 휩싸였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울, 경기뿐 아니라 대부분의 시·도에서 전체 학교가 시험을 치를 예정인 것으로 안다”면서 “이번 평가는 성취도평가가 아니라 ‘도달-미달’ 여부만 가리는 진단평가로 기존의 초3 평가와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된다”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표집분석을 통해 5월경 학생들의 ‘도달-미달’ 여부에 대한 판별도구를 내놓고 각 학교에서 학습부진아 지도자료로 활용하게 할 계획이다. 한편 중1 진단평가는 매년 실시되던 것이지만 올해는 예년과 달리 전국적으로 같은 문항으로 실시된다. 평가를 주관하는 서울시교육청은 “예산 절감은 물론 양질의 평가문항을 개발해보자는 차원에서 우리가 문항을 개발해 각 시·도교육청에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평가는 성적표에 점수, 평균, 전국 석차백분율을 매겨 학생에게 개별 통보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이 커졌다. 서울시교육청 중등교육정책과 김연배 장학사는 “평가 결과는 학생 개개인에게 성적표를 통해 배부하겠지만 성적표 양식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면서 “현재 성적처리기관과 검토 중인 상태로 개학일이 지난 후에야 최종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연말에 전체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취도 평가가 예정돼 있고 교육감협의회도 ‘학교별 학력 정보 공시’에 대한 의지를 밝힌 바 있어 학기초 진단평가가 아니더라도 개인 성취도 공개는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중학교 전국연합 학업성취도 평가는 5개 과목에 대해 1,2학년은 12월 23일, 3학년은 선발고사를 치러야 하는 일부 지역을 감안해 10월 29일에 평가가 실시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교육부가 관련 시행령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법령이 완비되면 성취도평가 결과 공개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장관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27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국회 교육위에서 열렸다. 이날 청문회는 이틀 뒤로 예정된 한승수 총리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와 4월 총선을 앞둔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야당이 된 통합민주당의 공격과 여당으로 이를 방어하려는 한나라당 의원 간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야당 의원들은 김도연 후보의 부동산, 수월성 위주의 사고방식 등을 주로 공격했으며,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려는 영어공교육 프로젝트, 대입시 자율화, 고교 다양화 300프로젝트 등에 대해서도 소신을 물었다.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로,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익숙하지 못한 김 후보는 구체적인 교육정책 대안을 묻는 질문에는 “아직 적합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는 말로 예봉을 피해갔다. ◆이군현 “영어만 잘한다고 교사 자격 부여 안 돼”=첫 질의자로 나선 김교흥 의원(통합민주당)이 “인수위가 영어전용 교사 2만 3천명 선발하겠다는데, 영어만 잘하면 교사 할 수 있나”라고 질문했다. 한나라당 이군현 의원도 “영어수업은 영어로 하는 데 동의하지만, 테솔 프로그램을 이수한 사람, 외국서 석·박사 취득한 자에게 교사자격을 주는 것은 기존 교원 양성 체계를 흔드는 것이다. 가치교육이 초중등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다. 영어를 잘 한다 해서 교사 자격증을 주는 것은 신중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안민석 의원(통합민주당)은 “영어를 잘하는 필리핀은 국가경쟁력 없지만, 영어를 못하는 일본은 국가경쟁력 높다. 모든 국민이 영어 잘할 필요 있나”라고 질의했다. 김 후보는 “지적한 기본 방향에 충분히 공감 한다” “모든 국민이 영어를 다 잘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영어교육을 영어로 하면 더 효과적이라 생각 한다”고 답변했다. ◆“지역 격차 줄여야”=김 후보는 모두 발언을 통해 초중등 교육 업무를 빠르게 지방으로 이양해, 실질적인 교육 자치를 실현하고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학교교육의 다양화를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문헌 의원(한나라당)이 “초중등 교육을 시도교육청으로 이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지방재정과 인프라가 큰 격차가 있음을 인식하고 풀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교흥 의원도 “지자체 여력에 따라서 공교육이 어려워 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초중등 교육 이양하면 지역 간 격차가 가장 큰 문제점이며, (재정)격차가 10배까지 난다고 보고 받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 하겠다”고 응답했다. 김영숙 의원(한나라당)이 “시도교육청에 권한을 대폭 이양하고, 교육정책이 현장 속에서 이뤄지려면 유초중고 출신 전문직을 대폭 증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후보는 “현장 경험 있으신 분 많이 모시도록 하겠다.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충분히 연구 검토 하겠다”고 답변했다. ◆대입시 업무, 연말까지 대교협 이양=유기홍 의원(통합민주당)이 “2004년에 유명 대학들이 고교등급제로 제재 받았다. 그 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김 후보는 “등급으로 세우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 한다”고 답변했다. 이어서 “혹시 기여입학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몇 년 전) 국감서 대교협 사무총장에게, 연·고대가 어느 정도 기부금 내면 된다고 알려져 있느냐고 묻자, 20억 정도라고 답변했다. (이것도) 대학 자율의 범위에 포함되나”고 유 의원이 물었다. 김 후보는 “(학생의)자질 외 기부금(으로 입학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인 기조는 대입시에서 대학 자율이 맞지만 지금 말씀 드린 것은 허용되면 안 된다”고 밝혔다. 주호영 의원이 “임기 중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우리나라 교육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대입시에 변화가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로스쿨 정원 재조정은 또 다른 문제 유발”=이은영 의원(통합민주당)이 “로스쿨 예비인가 정원이 너무 적어 3천명으로 늘리자는 의견 있다. 또 등록금이 막대하다는 얘기 있어 어려운 가정이 로스쿨 가는 게 어려운 게 아닌가하는 우려 있다.”고 지적했다. 이군현 의원도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자, 김 후보는 “20% 학생에 장학금을, 9천만 원까지 대여금을 지급할 것”이라며 “돈 있는 사람만 다니는 학교가 돼선 안 된다”고 대답했다. 김 후보는 그러나 “(로스쿨 정원 재조정은) 또 다른 문제점이 유발될 것 같다. 확정된 것 아니고 가승인 단계라 추이 지켜봐야겠다. 정원 재조정은 교육부만 결정할 일 아니고 여러 분야의 의사소통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과기부 페지에는 부정적 생각=민병두 의원이 “한국과학기술원 부회장으로서 과기부 폐지 반대 성명 냈다. 지금도 그 소신에 변함 없나”고 묻자, 김 후보는 “과학기술이 중요하다. 가능하면 (과기부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과기부를 교육부에 통합한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음을 내비쳤다. 권철현 의원이 “교육과 과학부서가 하나 되니 과학자들은 우려 많았지만 후보자 내정에 (과학계가) 안도하는 것 같다. 일본도 문부과학성을 만들었지만 그 성과는 결코 성공적이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호영 의원은 “과기부를 합치고 난 이후 융합이나 부처 인맥 때문에 실질적인 정부조직 통합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우려 많다”며 이에 대한 대책을 물었다. 김 후보는 “지적한 게 가장 큰 문제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 구체적인 안믈 생각하고 있다. (교육, 과학부서 공무원이)섞여서 같이 일할 수 있는 물리적인 결합도 시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부동산 정리하겠다”=서울 문정동과 봉천동의 두 아파트, 이천시 마장동의 전원주택이 야당의 표적이 됐다. 이경숙 의원(통합민주당)이 실제 어디서 거주하느냐고 묻자 김 후보는 “여름에는 이천, 겨울에는 문정동의 아파트에 있다.” 고 답변했다. 아파트를 두 채 소유한 것은 한 채가 미처 팔리지 않아 그런 것이며, 투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택문제가 자랑스런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가능한 빨리 정리할 것을 약속 드린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인 고교 다양화 300프로젝트와 특성화 플랜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5년간 총 2조 1850억원의 재정이 소요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당초 재원확보 방안으로 기대했던 자사고 100개 운영으로는 5년간 3180억원만 절감할 수 있어 1조 8670여억원의 추가 재원은 상당액 시도 부담으로 돌아갈 전망이다. 한국교육재정경제학회(회장 공은배)가 29일 개최한 ‘이명박 정부의 교육재정정책 운용방안’ 토론회에서 최준렬 공주대 교수는 제2주제발표에서 “5년간 기숙형 공립고 150개 운영에 1조 3299억원, 마이스터고 50개 육성1275억원, 1850개 고교 특성화에 7280억원이 든다”며 분석결과를 내놨다. 최 교수는 “인수위의 국정과제 실천방안 세밀화 작업 시 참여해 논의했던 안을 산출 기준으로 삼았다”며 “대통령께 보고된 최종안과는 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막대한 추가 재원을 조달하는 방법이 관건인데 당초 공약에서 내건 자사고 예산절감으로는 3000여억원만 확보할 수 있고, 특별교부금 사용, BTL 도입은 모두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사고 절감액과 관련해 “올 20개를 시작으로 매년 20개 학교를 추가 선정해 학교당 25억원의 재정결함 보조금을 절감한다 해도 5년간 7500억원”이라며 “하지만 정원의 30%를 국가․교내장학생으로 선발해 1인당 연 600만~1000만원을 지원할 계획을 갖고 있어 이를 감안하면 실제 절감액은 5년간 3180억원”이라고 밝혔다. 이어 “특히 자사고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도 과연 100개가 전환될 수 있을까도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숙사를 BTL로 짓는 것도 손실이 크고, 특별교부금도 계속 축소되는 상황이어서 기대할 게 못된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합리적인 재원확보 방안에 대해 “교육재정교부금의 내국세 교부율이 0.6% 높아져 시도교육청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며 “지방 이양에 발맞춰 교육부와의 조율을 통해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지자체의 세수 확대 방안을 마련해주면서 전입금을 높여나가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병주 영남대 교수는 1주제 발표에서 “국세 일부를 지방세로 이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지금도 1조 5000억원의 부채를 떠안고 있는 시도교육청, 2조원 가까운 학교용지매입비를 시도교육청에 못 넘기고 있는 시도가 추가 재정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지 논란이 예상된다.
우리 서령고에서는 2008학년도 입시에서 다음과 같은 결과를 거뒀답니다. 서울대 경영학과 1명, 단국대 의예과 1명, 경찰대 2명, 한국정보통신대학(ICU) 1명, 연세대 3명, 고려대 7명, 사관학교 2명, 서강대 4명, 한양대 5명, 성균관대 9명, 경희대 16명, 중앙대 3명 등 서울경기지역의 대학에 210명이 합격하였고, 서울교대 2명을 포함하여 교대 및 사범대학교에는 16명, 충청권 대학에는 105명, 기타 지역으로는 38명이 진학하였답니다. 3년 동안 불철주야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과 가정을 잊고 아이들을 가르치신 선생님들이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가 바로요즘입니다. 교육여건이 열악한 시골 고등학교에서 이처럼 훌륭한 결과를 거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대학에 가서도 부디고교시설의 그 마음 잊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인재가 되길 기원합니다. 합격한 모든 학생들에게 다시 한번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교직에 몸담아 정년에 이르기까지의 사진들이 파노라마가 되어 영상으로 스크린에 스쳐지나 간다. 젊은 시절엔 장발로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던 모습이 그 시대의 자화상이 되어 어색해 보인다. 월남파병까지 하신 군 생활의 사진이 나올 때는 풋풋한 젊은 모습이 지금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2008년 2월 27일 오후3시 충청북도제천교육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김영호 교육장님의 정년퇴임식이 시작되기 전 사모님의 인터뷰가 유난히 강한 인상을 주었다. 이기용 충청북도교육감, 성영용 교육위원회 의장, 도내지역교육장, 제천관내 초중고교장, 엄태영 제천시장, 윤종섭 제천시의회 의장, 제천지역단체장 등 많은 내빈이 소개되고 퇴임식이 시작되었다. 이원기 관리과장의 약력소개, 직원대표와 가족 등 많은 꽃다발증정이 있었고, 송공 패와, 기념품전달도 풍성하였다. 김영호 교육장이 교육자로서 얼마나 잘 살아오셨는지 알 수 있는 훈훈한 정이 오가는 보기좋은 모습이었다. 존경과 감사의 정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교육자의 길이 저렇게 보람 있게 마감하는 분은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퇴임하는 김 교육장님께 주어지는 꽃과 기념품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그 공을 기리고 사랑으로 맺어진 인간관계와 따듯한 정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교육청 직원을 대표하여 류병섭 교육과장이 읽은 송공사, 교육감, 의장, 시장의 축사, 의림여중 근무시 제자의 사은사에서는 가슴이 찡하는 대목이나와 식장이 숙연해 졌었다. 김교육장의 퇴임사로 이어지는 동안 그분이 걸어온 교육자의 외길이 돋보였고 후배교육자의 귀감이 되었으며 그 진솔함이 배어나왔다. 낮은 음악이 흐르면서 섹스폰의 석별의 정이 식장분위기를 감동으로 넘치게 하였다. 한송이 백합화를 부른 축가와 아드님의 가족대표 인사로 퇴임식은 끝이 났지만 식장을 가득 메운 축하객들의 얼굴엔 아쉬움이 역력해 보였다. 언젠가 교육장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교육장님처럼 훌륭한 교육자가 정년단축으로 교육계에 더 봉직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법적나이라는 잣대로 아직 열정이 남아있는 훌륭한 교육자를 백수로 내보내야만 하는 교육계의 현실이 안타깝다. 교육계에 들어와서 교육장으로 정년을 맞이하는 분들은 더 바랄 것이 없는 행복한 분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몇년 후에 나에게도 닥아올퇴임을머리속에상상해 보며 식장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