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을 사랑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내 삶을 충족된 것으로, 합리적인 것으로, 윤리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러한 일을 실천하는 확실성 있는 한 방법으로 독서를 고려할 수 있다. 어떤 책을 어떤 방법으로 읽으라고 권유하는 것은 좀 건방지고 위험하다. 자칫 독자 개인의 습관과 성격과 지향을 무시하고 획일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관계가 있어서 나의 삶에 음영을 드리우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내 고운 추억의 대상이며, 내 아픈 기억의 골목에 서성이는 허깨비들이다. 이들을 아울러 ‘의미있는 타자’라 한다. 그 의미있는 타자가 다양하고 풍부할수록 내 삶은 다양성과 풍부함을 더한다. 이 타자들은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 사물을 비롯한 사회 역사적인 제반사를 모두 포괄한다. 아울러 구체적인 대상일 경우도 있고, 언어를 매개로 내 안에 자리잡은 영상이거나 이념일 경우도 있다.
언어를 매개로 하여 내 안에 형성된 의미있는 타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책들이다. 책은 내가 잊을 수 없는 인물의 영상을 내 안에 남겨 놓기도 하고, 내 사유의 방식을 규정하는 논리를 흔적으로 남기기도 한다. 아울러 청신한 자연의 이미지를 착색해 놓기도 하고, 대상을 받아들이는 감수성을 길러 주기도 한다. 책을 통해 형성된 나의 정신세계는 직접 체험을 하기는 했으나 정리되지 않은 경험에 비하면 한결 역동성을 띠는 내 삶의 에너지이다. 언어의 일차적인 기능은 의미를 공유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책을 읽은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문화적 결속력이 형성된다. 이 결속력은 공유하는 경험의 농도와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소통에 힘입어 각각의 경험은 독특한 형태로 변용되고 새로운 방향을 잡아 번식해 간다. 이렇게 해서 경험의 공동체 안에서 독서경험은 그 공동체 구성원들의 감수성, 사유, 도덕적 판단 등의 방향과 특성을 형성하게 된다.
‘의미있는 타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내 안에 살아 있는 한 대화를 해야 한다. 구체적인 말로 문제를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태에 접해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데에 그 의미있는 타자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미있는 타자는 가족을 불려 달라는 요구를 끊임없이 해온다. 30년 전만 해도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던 환경문제가 절핍한 우리들의 문제가 되었다. 쇠고기를 먹는 일과 아울러 광우병이 현실 문제로 부각되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미국 어느 목장의 소가 내 삶의 맥락으로 의미있는 타자가 되어 다가온다. 그런데 이런 의미있는 타자를 적극적으로 내 안에 불러들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소통할 필요가 있다. 교육자들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의미있는 타자를 확대해 나간다. 그런 점에서 학생들은, 그들을 가르치는 나의 의미있는 타자이다. 학생들이 읽는 책은 나의 의미있는 타자의 경험 확장이다. 교육을 매개로 나의 의미있는 타자가 독서를 통해 자아 안으로 불러들인 의미있는 타자는 나에게 전이된다. 나의 독서는 학생들에게 전이되고, 학생들의 독서는 나에게 의미있는 타자의 감수성과 사유와 판단력을 옮겨준다. 교육자인 나는 학생들과 부단히 소통을 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내 안에 학생들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의 즐거움이 나의 즐거움이고 학생들의 괴로움이 나의 괴로움이다. 학생들이 졸거나 잠자고 있는 시간은 나의 존재가 숨을 죽이는 시간이다. 학생들이 삶을 무의미하게 탕진하는데 나는 교사로서 삶이 가치와 환희로 가득할 수 없다. 평생 내 안에 들어와 자리잡은 학생들이, 그리고 학생들의 마음에 자리잡은 내가 아무 관계없이 각 놀 수 없는 일이다. 학생과 우리 교사들은 그렇게 윤리적으로 맺어져 있는 것이다.
나의 의미있는 타자, 학생들을 사랑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내 삶을 충족된 것으로, 합리적인 것으로, 윤리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러한 일을 실천하는 확실성 있는 한 방법으로 독서를 고려할 수 있다. 어떤 책을 어떤 방법으로 읽으라고 권유하는 것은 좀 건방지고 위험하다. 자칫 독자 개인의 습관과 성격과 지향을 무시하고 획일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혹은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되는 책이라면 아무 상관이 없다. 아주 일반화해서 말하자면, 어떤 책이든지 내가 가지고 있는 관념을 강화하는 것보다는 그 관념을 깨고 새로운 지평을 모색할 수 있도록 읽는 것이 타당한 방법이리라. 종교적 경전의 경우는 좀 다르겠지만, 모든 좋은 책들은 일차적으로 독자를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리하여 감수성과 사유의 격랑을 지나는 동안 독자가 새로운 자아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 준다. 책을 통해 기존의 관념을 털어내고 나를 새롭게 태어나도록 하는 것은, 교육을 매개로 나의 의미있는 타자들을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교육자의 독서가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까닭이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