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8,544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갯벌과 학교 사이에 우리가 있다 지난해 10월 7일 충남 태안군 신두리는 때아닌 방문객들로 북적거렸다. 현직 교사들로 구성된 갯벌사랑동호회 회원과 가족 25명이 우리 나라 최대 사구지역으로 ‘한국의 사막’이라 불리는 이곳을 찾은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구의 형성과정과 그곳에 사는 여러 가지 독특한 식물상을 관찰·조사하기 위한 것. 이 행사는 갯벌사랑동호회의 주요 정기사업 중의 하나로 올해 처음 열렸지만 참가자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날 갯벌사랑동호회 회원들은 사구식물뿐 아니라 개미귀신이라 불리는 명주잠자리 애벌레 등 독특한 육상생물의 생활을 관찰하며 의미있는 하루를 보냈다. 갯벌보존과 전문성 향상 추구 갯벌사랑동호회는 2000년 5월 탄생됐다. 이해윤(안평초), 이혜원(원광초), 김종문(효제초) 등 서울지역 초등교사가 주축이 되어 창립했다. 생명과 조화의 땅, 갯벌을 이해하고 아이들에게 바르게 안내하자는 것이 그 첫 번째 창립취지. 그리고 자체연수를 통해 스스로 전문성을 향상시키고 회원들간의 정보와 경험을 서로 나누자는 취지였다. 동호회의 목적은 1년 동안 이루어지는 사업에서 잘 나타난다. 갯벌 기행, 사구관찰, 갯벌 교육자 워크숍, 해양환경교육자 훈련과정, 철새탐조, 염생식물 관찰 등 꽤 다양하다. 갯벌기행은 잘 알려져 있고 쉽게 찾아가는 갯벌 탐사를 통해 학교현장에서의 현장체험 학습에 활용하자는 것이다. 2000년에는 강화도 남단을 찾아 강화도 갯벌에 대한 지식을 얻었으며, 진흙갯벌의 생물상을 관찰했다. 2001년에는 대부도 갯벌에서 혼합갯벌의 생물상을 관찰하고 시화호를 탐방하는 기회를 가졌다. 갯벌 교육자 워크숍은 회원들의 전문적인 연수를 위한 프로그램이다. 제종길 박사(해양연구소), 민병미 교수(단국대) 등 해양학자와 전문가들을 초빙해 갯벌관련 이론, 해양환경교육, 생태관찰 실습 등에 대해 연수를 받는다. 2000년에는 충남 서천 갈목갯벌에서, 2001년에는 충남 당진의 대호만 갯벌에서 가졌다. 해양환경교육자 훈련과정도 전문적인 연수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해양연구소가 주최하는 직무연수이다. 철새탐조는 2001년에 처음 시작하는 프로그램으로 12월 27일∼28일 전북 군산 금강유역의 철새생태마을에서 가질 예정이다. 염생식물 관찰은 염분이 많은 바닷가에서도 생존하는 독특한 식물을 관찰하는 프로그램으로 2000년에는 인천 해양생태공원에서 가졌다. 다양한 자료 제공 계획 현재 이 동호회에 가입된 회원은 100여 명이지만 실제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회원은 30여 명 정도라고 총무를 맡고 있는 김종문 교사는 밝힌다. 2001년에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산하 동호회에 가입해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일한 지방 회원인 이봉재 교사(충남 보령 주산산업고)는 창립초기부터 각 프로그램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가한 열성파. 이 교사는 “갯벌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서울 지역의 선생님들과 정보도 주고받으며 동호회 활동에 푹 빠지게 됐다.”며 “다른 지역 교사들도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1년 7개월 정도의 짧은 연륜이지만 나름대로 알찬 활동이었다고 자평하는 진태원 회장(면일초 교장)은 “동호회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과 자료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갯벌가족캠프와 갯벌체험전시회와 같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내년부터 실시하겠다는 것. 진 회장은 또 “중단됐던 홈페이지도 업그레이드해 새 학기에는 다양한 자료를 탑재해 회원과 관심있는 교사들에게 서비스할 계획”이라며 많은 교사들의 관심을 당부한다.
송유재(일본 호쿠리쿠대 강사) ‘살아가는 힘’육성에 초점 맞춰 새 학습지도요령은 당초 2003년부터 실시 예정이었던 개정안이었지만, 2002년 4월부로 실시하기로 결정된 개정안의 포인트는 ‘살아가는 힘’이라고 제시되어 있다. ‘살아가는 힘’이란, 스스로 학습하고, 스스로 생각하며, 스스로 판단·행동하여 보다 올바르게 문제해결을 도모하고자 하는 ‘힘’과, 풍부한 인간성의 양성이라는 두 가지의 궁극적인 목표를 함의하고 있다. 구체적인 대책으로는 ‘종합적 학습시간’으로 주당 3시간을 신설함을 제시하고 있다. ‘살아가는 힘’을 양성하기 위한 지도내용으로는 첫째, 학교/가정/지역사회의 연계와 가정이나 지역사회에서의 충실한 교육, 둘째, 학생들의 생활체험/자연체험 등의 기회의 증가, 셋째, ‘살아가는 힘’ 육성을 중시한 학교교육의 전개, 넷째, 학생들과 사회전체의 ‘여유’ 확보 등 네 가지 시점으로부터 전개해 나갈 것을 제시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열거하자면 ‘국제이해’, 노령화사회/장애자 교육 등과 같은 ‘복지’, 컴퓨터 학습을 통한 ‘정보교육’, 그리고 ‘환경’ 등에 대한 학습을 통해 ‘살아가는 힘’을 양성하자는 것이다. 개정안 중 또 다른 중요 사항은 주 5일간 수업으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위와 같은 내용을 포함한 개정안에 대해서는 찬반양론, 그 외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여기서는 찬반양론을 간단하게 알아본다. 주 5일간 수업과 종합적 학습시간의 신설은 이과/수학 등의 지도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이해도가 떨어지는 학생들을 위주로 지도한다는 면에서 개정안에 찬성하는 이들이 있다. 또한 경제계(관광업계 등)의 요청에 부응한 면이 없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 중에도 관광업계가 불황대책으로 개정안에 대해 절대적 찬성을 하고 있다. 이에 반해 반대하는 이들은, 시간이 줄어듦으로써 내용이 간단해질 수밖에 없으며, 타과목의 학습시간의 삭제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그로 인한 악영향으로 학력저하를 이유로 들고 있다. 중학교 교사의 자살 중학교 교사(35세 독신남)가 2001년 10월 10일 “35년간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택에서 자살했다. 학교 관계자에 의하면 2001년 봄 가나자와시(金澤市)의 I중학교에서 인접시의 K중학교로 이동한 이 교사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없었고, 일부 학생들과는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을 취하지 못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2학년 담임이었던 교사는 지역간 교류를 위한 인사이동이라는 명목으로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는 이동을 원하지 않는다.’고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동했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이동당했다고 해야 할까. 5월에 접어들어 학급운영방침에 대한 의견차로 일부 학생들과의 관계에 틈이 생겼고, 그 후 여러 선배 교사들의 조언을 얻으며 학급을 운영해 갔다. 하지만 2학기가 되어서도 학생들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자 이 달 1일부터 병휴가를 냈다고 한다. 시교육위원회 관계자에 의하면 “교장선생님이 상담에 응했으며, 많은 학생들과 학부형들이 교사를 신뢰했다.”고 한다. I중학교에서는 품행이 방정치 못한 학생을 바로잡기도 했으며, 졸업생들과의 적극적인 교류에도 힘을 아끼지 않았던 ‘열혈교사(熱血敎師, 일본에서는 교사의 모범이 되는 교사를 이렇게 부른다.)’였다. “학생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면 교사를 그만두겠다.”고 단언했다고 한다. 한 교육관계자는 “지금까지 순조로웠던 교사생활에 대한 자신감이 무너져 내리며 좌절감을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학교가 다른 만큼 유연하게 대처해야죠.”라고 유감스러워했다. 위의 내용이 사건 이후의 일반적인 여론이었다. ‘열혈교사 자살’에 대한 소식을 전해들은 많은 이들로부터 전화, 편지, 전자메일 등을 통한 항의가 이어졌다고 한다. 그 중에는 전임중학교인 I중학교 관계자로부터의 항의가 주를 이루었으며, 그 주된 내용은 “그렇게 훌륭하신 선생님이 간단하게 자살하실 리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I중학교 졸업생과 학부형이 보낸 항의문에 나타난 항의는 더욱 거셌다. “선생님께서 왜 죽음을 선택하셨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전근가신 중학교의 학생들이 선생님을 집요하게 공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I중학교의 졸업생들에게 휴직하기 전의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들은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학교측이 선생님께 어드바이스를 했다고 하지만, 사실이 그런지 의문입니다. 선생님은 아이들과의 대화를 원했으리라 생각됩니다.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인 것을 알고 교장선생님 등 관계자들께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는 등의 조치를 취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학생들한테 문제가 있어도 물에 물탄 듯 넘어가는 학교측과 교육현실에 몸바쳐 문제제기를 하지는 않으셨을까요?”(학부형으로부터의 반향) [PAGE BREAK]“선생님이 무난하게 대처를 했어야 한다는 말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께서 고민 끝에 내리신 결론이 죽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KEEP YOUR SMILE’이라고 하신 선생님이 죽음을 택하셨습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의견이 맞지 않는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에 그 기분은 알 수 있죠. 하지만, 선생님께 상처를 주고 삶의 힘을 앗아간 원인은 어디에 있나요. 아무리 싫어도 조금은 용서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누구든지 커다란 절망 뒤에 오는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지 않을까요. 학교측의 ‘할 만큼 했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저희들은 납득할 수 없습니다.” (16세 여자 고등학생) 이 밖에도 주된 내용은 교사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었다. ‘I중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다’, ‘학생들한테 왕따 당했을 것이다’, ‘전임지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지도에 임해 학생들의 반발을 샀을 것이다’는 등의 소문으로 이어졌다. 무엇이 교사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가에 대한 확답은 그 누구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I중학교 관할 교육위원회 관계자중 이상과 같은 소문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이는 없다. 하지만, 위의 소문이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인지 아닌지는 접어 두고라도 교실 칠판에 교사를 비방하는 글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위의 사건에 대한 진상이 명확하지 않은 관계로 일본교직원조합이나 교육위원회는 코멘트를 피하고 있는 입장이다. 130만 명이 등교거부 통계에 의하면, 일본 전국에서 130만 명이 등교 거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일본의 학교에서는 차마 입으로 전하기조차 싫은 사건들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지난 1997년 神戶市에서 발생한 중학생살인 사건이다. 이 사건은 일명 ‘소년A’로 통하는 중학교 학생이 동생과 같은 학년의 학생을 두 명이나 살해하고 다른 한 학생에게 중상을 입힌 사건이다. 학부모는 인격자로서 인정받고 있어 가정 내에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그 중학생은 “나한테는 인간이 야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를 잡아 봐라.”, “나는 투명한 인간이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유 없는 살인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이 외에도 버스 납치 사건, 이케다 초등학교 사건 등은 일본내 교육계에 파문을 일으킨 사건들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학생들의 등교거부 증가’와 같은 현상이 늘어나게 했다고 할 수 있겠다. 고학력신앙이 무너지고 있다 이 외에 일본 교육계에는 다양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현상으로 ‘고학력신앙의 붕괴’를 들 수 있다. 지금까지는 도쿄대학을 입학/졸업하면 출세를 할 수 있었지만,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프리터를 증가시키고 있다. 이것은 학생들의 장래목표를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목수(그 외로는 게이머/대식가 등)가 되는 것이 1위를 차지한 예로부터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직업이 없어도, 대학에 가지 않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고등학교 중퇴가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부모의 교육에 대한 인식의 변화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계속되는 불황으로 인한 교육비의 저하 등도 들 수 있겠다. 다음은 ‘교사의 체벌 기피’다. 교직에 23년간 근무한 한 교사의 말을 빌리자. “체벌은 절대금지입니다. 옛날에는 말 안 듣는 아이들이 있으면 따귀를 때린다든지 하는 등의 체벌을 했지만, 지금은 절대로 금지입니다. 한 중학교 교사가 자살을 했습니다만, 자살했다는 것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도 교사를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었지 않았을 까요.” 체벌이 없어짐으로써 초래되는 교육계의 황폐화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는 듯해 보였다. ‘같은 학군 내에서의 학교 선택 가능’, ‘학급붕괴’ 등도 요즈음 일본 교육계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현상이다. 그 중에서도 커다란 문제로 부각되어 온 것이 ‘학급붕괴’다. 한 가지 예를 들자. 한 교사를 지도력이 없다는 이유로 괴롭히며, 학습내용을 모른다고 난폭하게 구는 등은 학급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학교를 둘러싼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유없는?)이 왜 발생했을까. 왜 ‘주 5일간 수업제도’로 개정하며, ‘살아가는 힘’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계가 움직이고 있는가를 우리 교육의 현주소와 비추어 가며 ‘왜’에 대해 생각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정숙(서울 선일여상 교사 / 미국 연수중) 필자는 지난 9월 11일 캠브리지 시(찰스 강을 사이에 두고 보스턴과 나누어지는 인근 대학도시) 공립학교 4학년에 재학중인 딸아이가 학교에 간 직후, 현지 시간 8시 40분 경 CNN 방송을 통해 미국 테러 참사 소식을 접했다. 그 날 이후 필자는 모든 미국인을 엄청난 충격으로 몰아넣은 그 사건을 학교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지에 대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다. 특히 이곳 보스턴은 9월 11일의 테러 참사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도시로서 뉴욕 세계무역센터를 공격한 비행기 중 한 대가 이곳 로간 공항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9월 11일, 보스턴의 로간 공항은 즉시 폐쇄되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소개되는 등 다른 어떤 곳보다도 직접적인 충격을 받았던 곳이다. 정확한 정보 제공에 주력 테러 참사가 일어난 지난 9월 11일 캠브리지 공립학교는 매우 정상적으로 수업을 진행하였으며 단축 수업 등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방송을 통해 테러 참사를 전해 들은 부모들 중 수업 중간에 서둘러서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경우도 없었다고 한다. 테러 참사 다음 날인 9월 12일, 모든 캠브리지 공립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중 그 전날 일어난 테러 참사를 주제로 공개 토론을 하였다. 캠브리지 시 소재 Graham and Parks alternative school의 학교 카운셀러 교사인 Charlene Desir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거의 모든 학급의 학생들이 자신들의 공포와 두려움, 슬픔 등을 말로써 표현하였으며 빌딩으로 다가가는 비행기 등을 그림으로 표현한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이 시간 동안에 교사는 먼저 학생들의 마음을 읽으면서 학생들이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점을 알게 하고 여러 가지 감정을 수용하려고 했다. 그 다음 학생들이 테러 참사에 대해 궁금해 하거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말하도록 하고,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해 가능한 한 정확한 정보를 주고자 노력했다. 또한 우리들이 알고 있는 사실과 확실하지 않은 루머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하면서 이 사건을 가능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가르쳤다. 마지막으로 수업의 마무리 과정에서 뉴욕테러 참사는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 주변의 이슬람 교도들, 중동 지역 사람들, 또는 이 지역 출신의 이민자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적대의식은 절대 옳지 않다는 것을 매우 강조하였다. 이러한 공개 토론 수업이 이루어지는 동안 공포심 등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학생이 있다면 그들은 별도의 교실에서 공개 토론이 끝나기를 기다리도록 하였다. Desir는 인터뷰에서 “학생들이 매우 건강하고 씩씩해서 이러한 공포와 두려움을 잘 이겨내는 것 같다.”고 말하였다. 다양한 프로그램 활용 9월 12일 오후, 각 학교에서는 캠브리지 교육위원회의 교육감인 바비 달레산드로(Bobbie Dalessandro)의 이름으로 가정 통신문을 보냈다. 그 가정 통신문의 서문에서 교육감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저희 캠브리지 교육위원회에서는 캠브리지 건강연합회와 캠브리지 어린이상담소, 가정상담소와 연계하여 모든 학교의 학생들과 그 가족들에게 어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에 대처하기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육위원회에서는 이런 서비스들이 우리 어린이들이 이번의 비극적이고 어려운 시기를 잘 겪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가정통신문은 위의 세 기관이 만든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필자는 이 자료가 매우 의미있다고 판단되어 그 내용을 전재하고자 한다. 학부모와 가족들에게: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간단하지만 정확한 정보의 제공 :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해 주세요. 어제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각기 다릅니다.- 슬프고 우울하다. 분노가 일어난다. 화가 난다. 긴장된다. 안절부절한다. 주의해야 하고 조심해야 한다. 의기소침해진다. 수면으로 문제를 회피한다. 먹는 것으로 문제를 회피한다. 위의 모든 반응들은 매우 정상적인 것입니다. 물론 다른 많은 반응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귀하의 자녀들과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질문을 주고받으시기 바랍니다. 만약 자녀와 이것에 대해 지금 당장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하셔도 괜찮습니다. 만약 아이가 이야기하고 싶어하면 궁금한 점이 무엇인지를 물어보고 가능한 한 정확한 정보를 주십시오. 다만 자녀들의 텔레비전 시청 시간을 줄이십시오. 이 사건에 대한 뉴스를 계속 지켜보고 있으면 우리는 점점 더 큰 공포와 걱정을 할 것입니다. 가능한 한 보통 때와 다름없이 행동하십시오. 특히 저녁 식사 시간과 취침 시간을 보통 때처럼 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은 안전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아이들을 주의깊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누구나 감정적인 반응과 함께 육체적인 반응을 같이 합니다. 만약 이상한 증세가 72시간 이상 지속되면 주치의나 학교, 어린이집, 다른 지역사회단체 등에 있는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심도있는 정신 건강 치료를 위한 기관들 - 캠브리지 병원 위기 대처팀, 캠브리지 병원 외래 환자부, 캠브리지 어린이상담소, 가정 상담소 [PAGE BREAK]학부모 교육도 강화 미국 최대의 휴일인 추수감사절을 며칠 앞둔 지난 11월 19일, 캠브리지 피츠제랄드 학교 강당에서는 ‘이러한 어려운 시기 동안 당신의 자녀들과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강연이 열렸다. 정신적인 쇼크를 연구하는 베셀(Bessel A Van Der Kolk) 박사의 강연을 듣기 위해 교사, 학부모 등 약 20여 명이 모였다. 강연은 먼저 뉴욕 참사 당시 세계무역센터 근처의 공립학교에 있었던 한 학생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 그림은 빌딩 옆을 나는 비행기에서 사람들이 떨어지는 장면을 매우 섬세하게 묘사한 것이었다. 베셀 박사에 따르면 이 그림을 그린 학생과 같이 매우 심각한 정신적인 쇼크를 받은 경우 여러 가지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첫째,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악몽을 꿀 수 있다. 둘째, 정신적인 쇼크를 받은 경험과 관련있는 것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테러 참사가 있던 날 아침에 먹었던 콘플레이크를 더 이상 먹지 않으려는 행동 등이다. 셋째, 정신적인 쇼크를 받은 경험 중 어떤 행동을 반복하려는 경향으로 화재 현장에 있던 아이가 불을 지르는 행동을 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증세는 매우 위험한 신호라고 볼 수 있는데 특히 초등학교 연령의 아이들은 테러 사건에 대한 기억을 되살릴 때 매우 혼란을 느끼거나 무규범 상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부모와 교사는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테러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인 쇼크를 받은 학생들을 보살펴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1.아이들과 대화하면서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도록 격려해라. 특히 공포나 두려움 등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2.아이들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고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라. 3.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적인 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4.매일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아이들이 이성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하라. 예를 들면 먹고 싶은 것이라든지 입고 싶은 옷을 스스로 고르게 하라. 5.무엇보다도 신체적인 단련을 해나가는 것이 매우 유용하다. 예를 들면 축구를 하거나 수영 등의 스포츠를 통해 새로운 기술을 익혀 나가도록 한다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베셀 박사의 강연이 끝나고 교사 학부모들은 매우 진지하고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필자는 참석한 부모들에게 9월 11일 이후 자녀들과 어떻게 대화하였는지를 질문하였다. 그들은 자녀들이 테러 참사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말하게 하고 자녀들이 궁금한 점에 대해 대답해 주었으며 텔레비전 시청 시간을 줄임으로써 과도한 공포심을 자극하지 않도록 배려하였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12월을 맞이하면서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 시즌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텔레비전 방송은 크리스마스 쇼핑 광고를 내보내고 있으며 대부분의 가게에서는 흥겨운 크리스마스 캐럴 송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는 9월 11일의 테러 참사 여파가 지속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거리의 창문에서는 크고 작은 미국 국기가 걸려져 있으며 미국 국기를 부착하고 운행하는 차량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거리 곳곳에서 ‘미국 우리는 일어섰다.’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라는 문구를 쉽게 볼 수 있다. 필자의 딸이 다니는 캠브리지 모스(Morse)학교에서는 11월 30일 학생들의 음악회가 열린다. 모스학교는 이번 음악회를 통해서 지난 뉴욕테러 참사의 큰 피해를 입었으며 모스학교에서 전학간 2명의 학생들이 다니는 뉴욕의 초등학교를 위한 기부금을 받을 예정이다. 미국인들 사이에서 9월 11일의 엄청난 사건은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필자는 현직 교사의 관점에서 9월 11일의 엄청난 테러 사건이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지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우리 나라 교육 현실에서 볼 때, 미국 교사 및 학부모들의 태도와 관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지난 9월 11일의 테러 참사에 대한 미국 교사들의 태도 및 가르치는 방식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은 결국 우리 교사들의 몫으로 남아 있다.
한복영 / 한국교총 교권옹호국 Q) 2년제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사범대학에 3학년으로 편입하여 졸업한 경우 학령가감산정 방법은 어떠한지요? A) 2년제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4년제 사범대학 3학년에 편입하여 졸업한 경우 학령은 16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재직중에 사범대학에 편입하여 졸업한 경우에는 학·경력 중복이 되므로 본인에게 유리한 1가지만 호봉산정에 반영되며, 또한 사범계 가산연수는 1회만 인정됩니다. Q) 출산휴직기간(’ 93.11.12∼’ 98.2.28) 중 2년제 대학졸업자가 서울교육대학교 계절제 초등교육전공 심화과정(2년 6월:’ 95. 7.18∼’ 98. 2.18)을 이수하여 졸업한 경우 동 학력이 인정됩니까? A) 각 시·도교육청에서 구체적 사례를 파악하여 처리할 사안이나 교육공무원법 제44조 제1항 제7호에 의한 휴직자가 휴직명분을 유지하면서 학위취득을 하였을 경우에는 학위취득기간과 다른 경력이 중복되지 아니하고 학사학위를 취득하였다면 대학졸업 학력을 가진 자에 해당되므로 공무원보수규정 [별표23] 학령산정 공식에 의거 호봉재획정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Q) 전문대학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의 발령으로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근무하다 퇴직한 후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교육공무원으로 임용되었을 경우, 동 교육공무원의 호봉획정시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근무한 경력은 몇 할을 인정하여야 하는지요? A) 유치원 교사자격 소지자로서 유아교육진흥법에 의한 새마을 어린이집 등에 근무한 경력에 대해서는 공무원보수규정 [별표22] “교육공무원 등의 경력환산율표”에 의거 호봉획정시 동 경력을 10할 인정함이 타당하다고 사료됩니다. Q) 사립학교에 근무했다는 신청인의 주장이 옳다는 것이 입증되고 단지 임용권자의 사무착오로 인하여 관할청에 보고되지 않았을 경우 동 경력 인정의 가능성이 있는지요? A) 사립학교에서 근무한 경력 중 공무원보수규정 [별표22] 교육공무원 등의 경력환산율표 제1류(10할) 제1호에 해당하는 경력은 사립학교법 제53조의 2에 의거 임용절차상 학교의 장의 제청으로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고, 동 법 제54조에 의거 관할청에 임용보고(승인)된 경력에 한하며, 만일 임용권자의 사무착오로 인하여 관할청에 보고되지 않았을 경우 그에 따른 충분한 증빙서류가 갖추어지고 이를 근거로 하여 관할청의 사립학교 교원임용대장에 추가로 등재된 경우에는 10할 인정이 가능하다고 사료됩니다. Q) 교육공무원 임용전 (미)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조교 또는 실험교습 조교로 5년 8월을 근무하면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는데, 동 기간 중 박사학위 취득기간 3년은 호봉획정시 경력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조교로 근무한 나머지 기간에 대하여 그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지요? A) 교육공무원 호봉획정시 승급기간에 포함하는 임용전 경력과 관련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경우, 대학원에서 실제 수학한 기간 중 입학일을 기준으로 3년을 대학원 경력으로 인정할 수 있으며, 총장이 발령한 조교경력에 대해서도 10할 인정할 수 있으나 위 사안의 경우 경력간 중복문제를 동시에 살펴보아야 합니다. 참고로 조교로 근무한 경력을 인정받고자 할 경우 (미)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총장이 임용한 경력증명서(임용 직명과 기간 등이 기재된 서류)를 제출하여야 합니다. Q) 금년부터 정기승급일이 연 4회로 확대 실시된 바 있습니다. 잔여 월·일 수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과거 15일 이상이면 1월로 계산했던 기간을 다시 새로운 방법인 월·일 단위로 계산해야 하는지요? A) 교육공무원의 호봉획정시 경력기간계산 방법은 ’ 96년까지는 문교예규 제187호에 의거 15일 이상은 1월로 계산하였으나 ’ 97년부터는 동 예규가 폐지되고 새로운 방법인 연·월·일로 계산하는 것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연·월·일로 계산하는 새로운 방법은 신규임용 및 호봉재획정시 적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위 사안의 경우는 문규예규 제187호에 의거 과거 15일 이상을 1월로 계산한 기간에 대해서는 그대로 인정함이 타당하다고 사료됩니다. *전화:(02) 577-7165, 576-5892∼7(교 242, 243) 080-022-5633 *FAX:(02) 3461-0431 *인터넷:www.kfta.or.kr->교직/교권상담
서춘수(조흥은행 재테크팀장)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H중학교 교사인 최선경씨는 지난 11월 말 여유자금으로 연금신탁을 가입했다. 연말정산을 대비해 미리 가입한 것이다. 최씨는 연금신탁에 240만 원을 가입했기 때문에 내년 1월 급여일에 약 53만여 원의 세금을 돌려받게 된다. 세액공제 상품-근로자주식저축·장기주식저축 가입액의 일정비율을 세금에서 직접 공제받는 세액공제 상품으로는 지난해 12월부터 올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판매하고 있는 근로자주식저축과 지난 10월 중순부터 판매를 시작한 장기주식저축이 있다. 근로자주식저축은 근로자에 한해 1인당 3천만 원까지 가입할 수 있으며, 가입액의 5.5%를 세액공제 받는다. 3천만 원을 가입한다면 내년 1월 급여일에 165만 원의 세금을 환급받는 것이다. 장기주식저축은 근로자뿐만 아니라 자영업자까지도 혜택을 받는다. 1인당 5천만 원까지 가입할 수 있으며 1차년도에 가입액의 5.5%, 2차년도에 7.7%의 세액공제를 받는다. 주택자금 소득공제 금융상품과 공제 금액 근로자가 내집을 마련할 때만큼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근로자가 내집을 마련할 경우 여러 가지 소득공제 제도를 두고 있다. 주택자금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크게 3가지이다. 첫째, 주택청약저축과 주택청약부금, 장기주택마련저축 등 주택마련저축에 가입한 금액에 대해서 소득공제를 받는다. 주택청약저축과 장기주택마련저축에 가입하면 연간 불입한 금액의 40%(연 300만 원 한도)를 소득공제 받는다. 둘째, 위의 주택마련저축에 가입한 무주택자가 지난해 10월 말 이전에 국민주택 규모의 주택을 임차 또는 취득하기 위해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았거나 지난해 11월 1일 이후 주택을 임차하기 위해 받은 대출금의 원금과 이자 상환액에 대해서도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셋째, 국민주택규모의 주택을 취득하기 위해 10년 이상 장기대출을 받을 경우에는 주택마련저축 가입과 관계없이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공제 대상은 당해 주택에 저당권을 설정하고 상환기간이 10년 이상인 대출이며, 소유권 이전 등기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대출을 받아야 한다. 올 1년 동안 상환한 이자에 대해서 최고 300만 원까지 소득공제를 받는다. 그러나 해당저축과 대출이 있다고 해서 모두 공제를 받는 것은 아니다.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배우자나 부양가족이 있는 세대주이어야 한다. 그리고 무주택자이거나 국민주택규모 이하의 1주택을 소유한자 이어야 한다. 개인연금 및 보험 가입액 소득공제 지난해 말까지 신규가입이 가능했던 개인연금저축과 신개인연금신탁에 추가로 불입한다면 연간 불입액의 40%(최고 72만 원)를 소득공제 받으며, 올 2월부터 판매를 시작한 연금저축은 개인연금신탁과는 별도로 연간 240만 원까지 소득공제를 받는다. 암이나 상해보험 등 보장성 보험도 연간 납입 금액 중 70만 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이 있다. 올해부터 바뀌는 내용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 한도가 올해부터 늘어났다. 지난해까지는 신용카드 사용액이 연간 급여의 10% 초과시 초과금액의 10%를 공제 받았으나 올해부터는 초과금액의 20%로 인상됐다. 공제한도 역시 지난해까지는 총급여액의 10%와 300만 원 중에서 적은 금액이었으나, 올해부터는 총급여액의 10%와 500만 원 중에서 적은 금액으로 인상됐다. 연간 3천만 원의 급여를 받은 사람이 1년간 신용카드를 500만 원 사용했다면 40만 원을 소득공제 받는 것이다. 올해부터는 국민연금도 연간납입 보험료의 50%까지 소득공제를 받는다. 주택청약부금은 지난해 10월 말 이전에 가입한 계좌에 대해서만 올해 불입한 금액의 40%(연 96만 원 한도)를 소득공제 받는다.
◆한상국 대한사립중고교장회 회장=새해를 맞아 우리 교장회는 특성 있는 건전한 사학의 육성이 모든 사람들에게 질 좋은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궁극적인 대책임을 널리 알려, 좋은 사학을 길러내기 위한 '중등사학육성법' 제정의 실현에 온 힘을 모아 나갈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모든 사학인과 교원은 현명한 지혜를 모으고 다소의 진통은 인내와 이해로 극복해 나가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의 자제가 있을 때 참다운 교육문화가 뿌리내린다는 것을 알고 서로의 앞과 뒤에서 협조와 질정을 아끼지 않는 따뜻한 교직사회를 만들어 갑시다. ◆이선정 학교사랑실천연대 위원장=우리 학실련은 무엇이 교육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지 파악하면서 학부모 운동을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영향력 있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먼저 조직을 확대하고 그 바탕 위에서 교육정책에 관한 토론회, 월례 학부모 교실,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캠페인 등을 펼치겠습니다. 훌륭한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우리 아이들이 좀 더 마음이 넉넉하고 남과 나누어 갖는 여유를 가지며 봉사하고 서로를 사랑하며 긍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밝은 내일을 기대하며 제삼 선생님들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드립니다. ◆남암순 한국초등교장협의회 회장=임오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한 해는 좌절과 실망의 늪에서 희망과 도약의 싹을 틔우기 위해 부단히 달려왔던 한 해였습니다. 그러기에 또한 우리들의 아픔도 컸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어려울 때마다 놀라운 지혜를 발휘해 왔었습니다. 새해에는 변화를 주저하지 말고 변화를 선도하는 주체가 되어 갈등과 반목이 아닌 관용과 화해로 사랑과 희망이 넘치는 학교를 만들어 나갑시다. 무너진 교원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교원이 존중받는 사회 풍토를 조성하여 교육계에 다시 한 번 희망의 불씨를 지펴 나갑시다. ◆김상권 사립학교교직원연금관리공단 이사장=우리 사학연금은 지난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사학교직원 여러분의 도움에 힘입어 연금자산 5조원 달성을 목전에 둔 큰 규모의 연금기금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사학교직원 여러분! 우리의 사학연금은 먼 후대에까지 든든하고 안정적인 연금제도로 유지 발전시켜야만 합니다. 따라서 2002년에도 우리 공단은 '연금 재정의 장기 안정화'를 경영의 최우선 목표로 하여 지속적인 경영합리화와 책임 및 봉사행정 구현 등 사학교직원과 그 가족들로부터 더욱 신뢰받는 공단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계획입니다. ◆유인종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감=새해에 우리 서울교육은 '서울교육 새물결 운동의 지속적 추진'과 '교육방법 개선을 위한 지원행정 구현'을 기본방향으로 설정하고 통일교육, 특기·적성 교육, 영어교육, 정보통신기술 활용 교육의 활성화를 역점사업으로 적극 추진할 것입니다. 또한 선생님들이 안심하고 신명나게 교육 활동에 임할 수 있도록 교권회복과 사기 진작 그리고 전문성 신장을 위한 지원에도 온 힘을 기울여 나갈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소중한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데 힘과 지혜를 모읍시다. ◆조선제 대한교원공제회 이사장=희망찬 임오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는 지난해의 굴곡이 많았던 만큼 모든 갈등과 진통을 딛고 일어서는, 보다 힘찬 한해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올 한해 실추된 교권이 회복되는 등 교육계의 모든 염원이 이뤄지고 교육이 진정으로 바로서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우리 대한교원공제회 임직원 또한 천직의 소명아래 진정한 백년대계(百年大計) 꾸려 가는 전국 60만 교직원 여러분들의 튼튼한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새해 아침, 교직자 여러분들의 가정에 만복이 함께 하시길 충심으로 기원합니다.
◆이택휘 서울교육대학교 총장=지금 우리 사회는 문명사적 전환에 비견될 정도로 매우 빠르게 급변하고 있으며 교육계에서는 교육 환경, 제도, 가치 등 전례 없는 전환의 소용돌이에 놓여 있습니다. 지금까지 닥쳐온 수많은 시련과 도전을 이겨내어 21세기 지식사회를 이끌어나갈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민주주의적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교육자로서의 의연하고 당당한 자세,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때, 그리고 국가적 정책의 일관성이 확립될 때, 비로소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교육적 가치를 창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성재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새해에는 학술지원사업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소비중심에서 지식생산에로의 전환'입니다. 오늘의 지식정보사회에서 지식생산은 모든 힘의 원천이기 때문에 지식생산 없이는 우리 학문의 미래도, 교육의 미래도, 국가의 미래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나라가 지식생산국가로 발전하고 세계와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한 연구와 교육에 집중 지원할 계획입니다. 특히 초·중등교사들에게도 연구비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새해에 더욱 건강하시고 학문연구와 교육에 큰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최재선 전국시·도교련회장협의회 회장=2002년은 교육의 중심에 있어야 할 선생님들의 긍지와 자존심을 회복시켜 교직안정과 교육발전을 이룩하는데 모든 역량을 모아 나갑시다. 대 국민·사회 홍보활동을 통해서 사회와 국민들이 교육현장의 실상과 잘못된 교육정책의 문제점을 바르게 이해하여, 교직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올바른 교육발전을 위하여 교원정년을 원상회복 시키고 교원존중의 사회적분위기 조성을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도록 합시다. 우리 모두 학생·학부모·지역사회가 만족하고 선생님들이 보람을 찾을 수 있는 학교풍토를 조성하는데 앞장섭시다. ◆최열곤 한국교육삼락회총연합회 회장=풍부한 경험적 지혜와 인성교육에 높은 경륜을 가진 원로 교육자 모임인 우리 삼락회는 새해에도 평생교육자로서 종신토록 교육으로 사회에 헌신할 것을 다짐합니다. 올해 우리는 시·도별 평생교육센터를 설치하고 학교교육의 역할분담, 교사 및 학부모 연수, 교육문제 상담, 도의교육, 전통문화 진작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겠습니다. 20만 삼락회원이 사람다운 사람을 기르기 위한 교육존중·교권신장과 교육정도를 밝히는 NGO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시기 바랍니다. 밝고 건강한 한 해 되십시오. ◆이종욱 전국공업고등학교장회 회장=교육가족 모두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올해는 제7차 교육과정이 고교에 처음으로 시행되는 해입니다. 그 동안 이에 대비한 선생님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기를 우선 바랍니다. 그렇지만 공고에서는 전문교과의 이수단위를 충분히 배정할 수 없으며 실기지도를 위한 실습시간 등 여러 문제가 공고의 교육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커리큘럼으로 이어질지 시험의 한 해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우수한 기능인을 양성하여 국가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고가 앞으로도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권이종 한국청소년개발원 원장=청소년 정책 및 육성에 대한 종합연구기관으로서 우리 원은 올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코자 합니다. 우선 청소년의 문화컨텐츠 개발과 지원에 역점을 두겠습니다. 그 다음 최근 중국 등 동남아에 불고있는 한류(韓流)에 대한 연구 및 국민적 관심과 참여유도에 나설 것입니다. 끝으로 남북통일에 대비하여 청소년의 통일의식을 고양하고 청소년의 남북교류를 진행하기 위한 기초·기반을 조성해 나가겠습니다. 새해에도 교육가족 모두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은 물론, 하시는 모든 일에 성공을 기원합니다.
올 국·공립교원의 봉급인상율이 6.7%로 확정됐다. 각종 수당의 경우 담임업무수당은 지난해의 월 8만원에서 10만원으로 2만원, 보직교사수당은 월 5만원에서 6만원으로 1만원, 초등교원 보전수당 가산금은 월 2만원에서 3만원으로 1만원씩 각각 인상됐다. 또 보건교사에게 지급되는 보건활동수당이 월 3만원씩 신설, 지급된다. 논란을 빚은 교원 성과상여금 및 봉급조정수당은 정부안대로 예산에 반영되었다, 국회 예결위는 구랍 21일 정부가 제출한 세출 기준 22조 3250 억의 예산안을 심의해 2467억이 줄어든 22조 783억6000만원 규모의 2002년도 교육예산안을 확정했다. 감액 내용은 BK21 사업비 중 50억,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출연금 3억 등 55억이며 이와함께 세수감소에 따른 1075억(내국세 13% 618억, 교육세 457억)이 감액되었다. 예결위에서 조정된 예산내용은 위의 처우개선 관련예산 외에 ▲5·18 해직 국립대교수 보상 8억 ▲홍콩 한인국제학교 증축 13억 ▲상해 한국학교 이전, 신축 증액 12억 5000만원 ▲사립유치원 교재교구 지원 3억 ▲실업대책의 일환인 초·중등 전산보조원 채용 200억 및 초·중등 환경개선 132억 ▲전북대병원 진료지원 센터 건축 등 국립학교 시설비 96억 등이 증액됐다. 이와 함께 보직교수 수당 177억은 보직수행 경비로 비목이 변경돼 확정됐다.
원단의 태양이 떠올랐다. 어제와 똑같은 그 태양이다. 하지만 오늘의 저 태양은 내 몸과 마음을 비춰보며 지난해를 돌아보고 새해의 각오를 다지게 하는 거울이기에 더욱 빛난다.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낸 교단이 새해를 맞았다. 희망찬 한해, 보람찬 새 해를 넘어 2002년은 교총에서 정했듯 `자존심 회복의 해'여야 한다. 물론 회복해야 할 그 자존심은 이기심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교원들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긍지이며 교직을 수행할 교원의 생명이다. 이제 우리 앞에 다가선 2002년을 진정 `자존심 회복의 해'로 우뚝 세우기 위해 함께 풀어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교원 정년 환원이다. 여기서 분명히 밝히고 싶은 것은 교원 정년 연장이 아니고, 교원정년의 65세 환원이다. 정치권도 이제는 믿을 수 없다. 우리 스스로 노력해 결과를 얻어내야 한다. 지난해 교단은 1년 때문에 자존심을 구겨버리고 말았다. 우리의 의지가 마치 `1년을 더 해먹기 위한 집단이기주의'로, 즉 우리들의 밥그릇 찾기로 비쳐진 것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요구한 것은 분명 1년이 아니었는데, 정치권에 휘말려 1년으로 비추어졌으니, 앞으로는 절대로 지난해와 같은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정년 65세 환원이다. 나아가서는 잘못된 교육정책을 바로잡는 것이다. 다음으로 7차 교육과정의 개선이다. 처음부터 준비가 잘 안된 상태에서 시행된 7차 교육과정은 초등학교는 4학년까지, 중학교는 1학년이 이미 적용 받고 있다. 내년에는 초등학교는 모든 학년, 중학교는 2학년까지, 고등학교도 1학년에 도입된다. 교육과정 전체를 뒤흔드는 일이 교육에 혼란을 가중시킨다면,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개선해야 한다. 지속적인 반대운동에도 불구하고 강행했다면 분명 책임은 교사나 학생, 학부모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일은 예측이 가능한 만큼 그 동안 파행적으로 도입된 7차 교육과정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교실에 컴퓨터만 갖다놓고 교사에게 컴퓨터만 지원한다고 해서 7차 교육과정이 제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에 걸맞은 여건을 충분히 갖추어 주어야 한다. 반드시 7차 교육과정을 개선 해야 한다. 교원성과급 제도도 근본적인 손질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틀을 깨뜨릴 수 없다면 기본을 유지하면서 합리적으 로 시행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 말이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을 가지고 받아들이느니, 못 받아들이느니 하는 식의 이야기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우리 스스로 좋은 방안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며, 그 방안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할 때다. 마지막으로 모든 학교의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일이다. 공교육을 못 믿어 유학을 떠난다고 한다. 공교육이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은 물론, 잘못된 교육정책 때문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우리 교사들도 전혀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학교를 버리고 학원으로 몰리는 학생들, 외국 유학 길에 오르는 학생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 동안의 교육방법이나 교육과정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사교육을 이길 수 있는, 즉 공교육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우리들 스스로 찾아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잘못된 교육정책을 탓하면서 거기에 편승하여 학생 지도를 소홀히 한다는 것은 교통사고 내놓고 잘잘못만 가리고 사고처리는 하지 않는 경우와 다르지 않다. `자존심 회복의 해'에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가 어디 이 것뿐 이겠는가. 더 중요하고 급한 과제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최소한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교사들의 첫 번째 사명은 우리 학생들을 사랑으로 지도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어떤 경우에도 어른들의 잘못된 제도가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막아야 한다. 만약 잘못된 교육정책으로 학생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면 우리는 정책을 탓하기에 앞서 그 피해를 최소화한 후 잘못된 교육정책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지난해 11월 교육인적자원부는 동일계 대입 정원외 선발 확대, 실업계 수능 신설, 실험실습기자재비 확충 등을 골자로 한 실업교육 육성방안을 발표했다. 그 동안 여러 채널을 통해 건의해 온 실업 교육의 문제점과 해결책이 어느 정도 반영됐다고 본다. 특히 실업고 교원과 직업교육전문가, 시도교육청 관계자가 참여해 각계의 의견을 반영하고자 노력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물론 다소 미흡하다는 비판도 듣고 있지만 이번 방안으로 실업교육에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기대한다. 그 예로 2002학년도 실업계고 입시 전형에서 지원율이 지난해보다 다소 높아진 것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실업교육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에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어 보인다. 우선은 제시된 방안을 보완을 거쳐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하겠지만, 실업교육이 단지 몇 가지 제도를 보완하거나 경제적인 지원을 다소 확대해서 될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의 통계에 따르면 전체 인문계 고교생은 1. 5%가 중도탈락한 반면, 실업계 고교생은 인문계 고교생의 세 배가 넘는 5%가 중도탈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산업현장에서 실습 중인 상당수의 학생조차도 특별한 소신이나 준비 없이 무작정 대학에 진학하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실업계 지원 당시의 꿈과 희망에 도달해 있다면 과연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겠는가. 실업고교의 설립 취지는 직업인으로서 기본적 교양을 함양하고 관련 직업 분야의 기초 전문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 나라의 실업계고 졸업생들이 이런 설립 취지에 부합할 정도로 자기 전공분야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노동에 대한 애착과 열정, 해박한 지식과 기술을 함양하고 있는 지 자문할 일이다. 실업교육 육성 방안의 본질은 실업고를 졸업해도 해당 직능 분양에서 우대 받는 유능한 직업인, 자긍심 갖는 장인(匠人)이 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데 두어야 한다. 실업고에 근무하는 교사들이 국가경쟁력의 근간을 세운다는 자부심과 사명감 속에 교육에 전념하도록 힘을 실어주는데 두어야 한다. 또 실업계고에 진학시킨 학부모의 어깨가 신명나게 하는 데 두어야 한다. 부디 실업교육이 제자리를 찾도록 정책 담당자와 관계 당국, 교사, 학부모님의 지혜와 노력이 모아지기를 촉구해본다.
주말을 지낸 후 어제는 다래를 포함해 결석한 원아들이 많아 전화를 여러 통 걸었다. 하지만 다래에게만 연락을 못해 마음이 무거웠다. 밤낚시 갔다가 다래를 두고 영영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아빠 때문에 다래 네는 전화요금도 미납된 처지였다. 아빠의 자리가 비어서일까. 유독 날 잘 따르던 다래. 언젠가 급식실에서 벌어진 일이 생각난다. 줄을 서서 배식을 받은 아이들은 차례로 안쪽부터 앉기 위해 식판을 들고 걷고 있었다. 그 때, 다래가 식판을 든 채 "여기 앉 아 먹을래요"하며 어른 수저가 놓인 자리 옆에 서 있었다. 난 좀 망설이다가 "그래? 그럼 오늘 만이다"하며 다짐을 받았다. 그런데 뒤에 서 있던 성호가 다래에게 오더니 "임다래! 너 빨리 안으로 들어가!"라며 큰소리를 쳤다. 난 "성호야, 오늘만 앉으라고 하자"고 말했지만 성호는 "안 돼요. 먼저 받은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잖아요"라며 다래를 쏘아봤다. 다래는 난처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보며 편을 들어주길 바랐지만 성호의 당당한 질서의식 앞에 난 주눅들고 말았다. "다래야, 오늘 말고 내일은 꼭 선생님 옆에 앉게 해줄게"라며 다독이자 다래는 할 수 없이 식판을 들고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얼마 후, "선생님, 다래가 밥 안 먹고 울어요"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차' 싶어 가보았더니 다래의 얼굴에는 이술 같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다래는 자기를 안 예뻐한다고 생각했는지 보통 실망하게 아닌 눈치다. 눈물을 닦아주고 등을 토닥거리며 위로 했지만 친구들이 밥을 다 먹고 가버린 식탁에는 다래와 가까운 미정이만 남았다. "다래야, 선생님은 다래가 제일 좋단다. 슬프게 해서 미안하구나. 이제 그만 밥 먹자. 응?" 토라진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지, 다래는 한참 후에 밥을 먹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다래를 사랑해"하는 소리를 반찬으로 먹으면서…. 다래는 밥을 다 먹고 복도를 걸으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얼굴은 언제 비가 내렸다 싶게 환한 표정이다. 어제처럼 다래가 결석했을 때, 내 마음이 유난히 초조해지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 다래는 예쁘고 상큼한 모습으로 살포시 미소지으며 내 앞에 다가왔다. "다래야 선생님은 다래를 무척 사랑한단다." 다래를 껴안으며 마음으로 던진 말이 내 몸에서 공명처럼 울려 퍼졌다.
농촌지역 3학급 학교로 폐교 위기에 몰린 경북 남선초(교장 송영길)가 교직원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학생수를 두 배로 늘려 화제다. 안동시 남선면 구미리에 위치한 남선초는 20년 전만 해도 10학급(372명) 규모의 학교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농촌인구의 감소와 전학으로 99년에는 전교생 36명(3학급)의 소규모 학교가 돼 폐교 위기에 몰렸다. 교사 3명에 전학년 복식수업으로 교육환경도 크게 악화됐다. 이에 교직원들은 눈물겨운 학생수 늘리기 작전에 돌입했다. 취학을 앞둔 자녀의 가정과 학구위반 가정에 매월 남선 통신문을 보내고 매일 전화상담과 가정방문을 통해 소규모 소인수 학급의 장점을 홍보했다. 한 집을 20번 이상 방문하고 밤늦게 맞벌이 가정을 찾아 12시가 넘어 귀가한 일도 비일비재했다.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우선 여교사 3명 모두 자녀를 남선초로 전학시켰다. 교통이 불편하다는 용마아파트 237세대 주민 자녀를 위해 승합차를 마련, 운행하고 있으며 방과후 특기적성교육을 위해 전 문강사를 초빙해 피아노, 컴퓨터, 영어부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또 컴퓨터실·피아노실 설치, 급식소 정비 등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수준별 개별화 학습지도, 개인별 인성·특기적성 교육과 생활지도를 펼치며 소인수 학급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 결과 남선초는 2001학년도에 전교생이 63명으로 늘고 교직원 수도 6명에서 13명으로 늘어났다. 학급 수도 6학급으로 늘어 복식수업이 완전히 해소됐다. 대부분 위장 퇴거 후 자녀를 안동 시내 학교로 입학시키던 용마아파트 주민들이 2001학년도에는 취학 대상 자녀 9명중 7명을 남선초에 입학시켰다. 한 명도 입학시키지 않은 2000학년도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현상이었다. 또 안동시내 학교에 다니던 이 지역 학생 14명이 오히려 남선초로 전입해 오는 등 폐교 위기 학교에서 `돌아오는 학교'로 완전히 탈바꿈에 성공했다. 송영길 교장은 "내년에는 15명의 학생이 더 늘어날 전망"이라며 "모두가 교직원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이 행복한 골짜기에서, 흡족한 마음으로 죽는 용기를 발견하리라. - Camus ... 때때로 나는 변신에 능한 배우를 꿈꾸었다. 변신에 능한 배우들은 언제나 눈물을 미소로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어서 카프카의 한 마리 징그러운 벌레를 연상시켰다. 나는 종종 두 벌의 옷으로 세상을 그렸다. 내가 가진 한 벌의 옷은 완전한 권위를 향한 동경으로서 그것은 마음속에 자리한 일상의 안정적인 갈망을 충족시켜 주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벌의 옷은 크고 완전한 권위에 대한 반발로서 이는 필연적으로 미미한 존재로 향하는 헤아릴 수 없는 연민으로 통하는 것이었다. 두 개의 날개는 서로 타협할 수 없는 이질적인 다른 세계이면서 동시에 공존하는 것이었다. 때때로 나는 분명한 선택을 해야하는 국면에 처해지고는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동적으로 떠오르는 선택은 이성을 앞서 번번이 나를 곤경에 빠뜨리고는 하였다... 1. 목사는 꼽추였다. 빨간 지붕이 뾰족한 언덕 위의 교회에서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오후의 햇살이 찬찬히 스러지고 난 어느 더운 여름밤이었다. 세월의 파란이 그저 무관히 스쳐 지나가지 않았을 목사의 구부러진 등은 노회한 성직자의 한 현신처럼 보였다. 말씀을 전하는 도중 간간이 땀을 닦기 위해 등을 구부려 손수건을 꺼낼 때면 작고 구부러진 몸이 앞으로 고꾸라질 것처럼 위태롭게 보였다. 천정 아래 사방 벽면에 그려진 예수의 얼굴은 고통에 못 이겨 신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미소짓는 것 같기도 한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날의 분위기는 고요하다못해 어디인지 모르게 괴괴함마저 풍기고 있었는데 그러한 기묘한 적막감이 나를 사로잡았던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그 날 나는 종일 예배당을 찾아 헤매이다가, 마침내 예배를 드릴 만한 성소에는 모두 불이 꺼져버리고 난 늦은 밤이 되어서야, 언덕 위의 교회 하나를 발견했다. 언덕 위에 우뚝 서서 마치 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예쁜 뾰족 지붕의 건물 하나가 비현실적인 불빛을 반짝이며 서 있는 것을 보는 순간 나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은 내가 차를 타고 몇 번이나 지나친 적이 있는 낯익은 거리의 한 모퉁이에 위치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에 단 한 번도 눈에 띈 적이 없었다는 새삼스러운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도 잠시 마치 자석이 쇠를 끌어당기듯 알 수 없는 흡인력에 이끌려서 거짓말처럼 나는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날 낮에 내가 들었던 신의 음성은 오랜 방황이 만들어낸 내 생의 더없이 가난해진 마음 밭에 연유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지상 위에서 신의 얼굴이란 어쩌면 영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내 오래된 절망을 마감하고 이제 속히 집으로 돌아가리라는 신의 계시처럼 불쑥 나타나 나를 흔들어놓았다. 그러니까 이미 몇 번의 휴학과 복학 끝에 어렵게 야간 신학대학원을 수료한 지 햇수로 삼년여나 지난 아직까지도 미완으로 남아 있는 내 신학논문과, 그로 인해 영원히 수료로서만 남아있는 내 절름발이 신학의 이력처럼 주일이 되면 그저 아무렇게나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예배당을 기웃거리던 나는 차라리 무교회주의자로 불려야 마땅하리라. 딴에는 개신교도들이 내보이는 적극적인 구원의 집착에 대해 진작부터 풀리지 않는 의문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토록 간단히 안주의 터를 결심한 것이 무반응에 가까운 신도들의 과묵함이라든가 아무런 욕심 없이 예배당을 떠다니던 무심한 공기들 때문이었다면 그 또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또 한 사람- 어둠 속에서 바라본 꼽추 목사의 눈빛은 생의 숱한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잃지 않은 자의 단단한 위엄으로 나를 붙들었다. 그의 눈빛 속에서 나는 완벽한 나머지 교활함과 닮아 있는 어떤 종류의 카리스마를 보았다. 만일 꼽추목사에 대한 나의 이러한 견해가 정상적인 신체를 지니지 못한 장애인이라는 데에서 나온 동정심의 발로라거나 불구의 몸으로 신의 제단을 돌보는 일의 거룩함에 대한 그릇된 신성에서 나온 것이라면 나의 믿음은 심판을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경건함에 사로잡혀 그에게 어쩔 수 없는 신뢰를 느끼고 있었다. 과연 그것이 신 앞에서 정당한 신앙의 뿌리에 기초한 것이었는가. 그 날 이후 나의 머리 속에서 내내 떠나지 않는 의문이었다. 2. 교회는 케이크로 만든 아담하고 예쁜 굴뚝 집을 닮았다. 백여 명이 채 못되는 교인들은 별다른 동요 없이 착실한 모습으로 매주 주일 예배에 참석했다. 종교음악을 전공한 나는 작은 교회가 으레 그렇듯 간단한 오디션조차 없이 곧바로 지휘자로 취임하였다. 음악에는 사람의 영혼을 열어주는 힘이 있다. 음악을 통해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자신을 감싸고 있던 단단한 무장도구들을 해제 한다. 그것이 내가 별 다른 망설임 없이 음악을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성가대는 초보적인 중창단 규모였으며 재정상의 이유로 인해 조직이 몹시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첫 연습이 끝나고서 유아실에 모인 교인들이 작은 케이크에 불을 붙여 나의 지휘자 취임을 축하 해 주었을 때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행복을 느꼈다. 세상은 평온했고 순조로웠으며 그런 대로 아름다웠다. 나는 세상의 짐을 한쪽으로 부려놓고 모처럼 안주의 평화를 맛보고 싶었다. 만일 그간의 나의 삶이 오랜 방황으로 거듭된 것이었다면 이제야 비로소 봉사와 헌신을 통해 신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서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저녁 예배를 마치고 목회실에 들어갔을 때 목사는 기도 중이었다. 무릎을 꿇고 엎드린 목사의 등위로 흉물스러운 짐승의 조형물처럼 불쑥 튀어나온 반구가 그대로 불거져 보였다. 저녁 햇살이 스러지는 적막한 목회실에 홀로 엎드린 목사의 뒷모습은 차분한 실내의 다른 성물들과 어울려 경건하고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 힘에 굴복하듯 엎드린 목사 옆으로 다가가 그의 곁에 나란히 앉았다. 이윽고 목사가 천천히 몸을 돌려 나에게 읊조리듯 말했다. -자네가 보다시피 우리의 공동체는 주님의 몸이라 자부하기에는 몹시 비루한 형편이네. 허나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는 아니라네. 자네에게 한가지 부탁을 하겠네 만 이곳은 비록 보잘 것없는 성소이지만 자네의 모두를 바쳐야 할걸세. 잊지 말게. 자네의 전부를 걸고 성소를 지켜주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 구원의 희망을 두는 사람들이 아닌가. 모든 것을 바쳐 성소를 섬길 것을 거듭 당부하는 목사의 음성은 안에서 웅얼거리는 작은 속삭임처럼 미미하게 들렸지만 그 순간 지상 위에 존재하는 유일한 명령처럼 크고 강건하게 성전을 울렸다. 보이지 않는 곳에 구원의 희망을 두어야한다는 꼽추목사의 말을 되새기는 순간 머리 속을 재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예수의 불충한 제자 도마와, 허술하고 미진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던 내 청년기의 어느 그림이었다. 성서에서 예수는 부활을 믿지 못해 예수의 옆구리를 직접 만져 못 자국의 상처를 확인하는 의심 많은 제자 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눈으로 보고서야 믿느냐. 이제부터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이 있도다.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의 한 부분으로 태어났으면서 물질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은 인간이 지닌 모순의 하나일 터이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은 비로소 눈앞에 보이는 현상 뒤에 감추어진 진실을 깨닫는다. 이를테면 검은 비구름이 걷히고 난 후 그 속에 감추어진 눈부신 햇살을 마주하게 될 때 내밀히 감추어진 희망을 붙들게 되는 경우가 그러하듯. 그러나 나에게도 마치 도마와 같이 어리석게 증거를 보여달라고 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매달린 적이 있었다. 마치 무엇인가를 열정적으로 졸라대다가 막상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나면 얼른 실감이 나지 않아 어찌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그것은 예기지 않게 어느 날 나의 경험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스무 살을 갓 넘긴 대학 청년회 시절 수련회의 어느 날 밤, 사방이 모래벌판으로 가득하고 하늘에는 초롱초롱한 별빛들이 선명하게 박힌 모든 것이 알맞게 평온하고 간절한 여름밤이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저마다 꼬박 밤을 밝혀 기도하던 그 날 나의 기도제목이 하필 '방언기사(奇事)' 였던 것은 아마도 그 무렵 오랜 신앙의 친우인 허(許)가 방언은사를 받게된 것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혼자서 다리가 저리도록 되풀이되는 기도에 지쳐있을 무렵 까무잡잡한 작은 얼굴에 깡마른 체구를 지닌 허가 내게 다가왔다. 작은 얼굴에 쌍꺼풀진 두 눈이 오히려 더욱 크고 시원해 보이는 서글서글한 인상의 그녀는 언제나 에너지가 넘쳐 씩씩하게 보였 다. 허는 내게 다가와 자신이 기도 중에 큰 은혜를 받았노라며 함께 기도해보자고 권유했다. - 저길 봐라. 사방에 검은 옷을 입은 마귀 떼들이 우글거리고 있어. 저들은 지금 우리 기도를 방해하려고 온 거야. 그만큼 지금 우리의 영적인 힘이 충만해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 - ... ... 나는 허가 자신만만하게 가리키는 손가락 끝의 어둠을 돌아보았다. 내 눈 속에는 칠흑의 어둠속에서 무릎을 꿇은 성도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을 뿐이다. 그러나 허의 두 손을 잡는 순간 놀라운 흡인력이 그의 두 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뜨거워진 손을 붙잡았을 때 나는 더할 수 없이 간절히 방언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미지의 기이한 언어가 내 입 속에서 튀어나온다면 그때야말로 분명히 신의 존재를 시인할 수 있으리라는 신념 아닌 신념이 마주잡은 두 손을 더욱 단단히 그러쥐게 했다. 허와 함께 기도한지 십여 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내 입술에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무어라 정의 내리기 힘든 신비한 언어가 미친 듯이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소리들은 입 속에서 나온 것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크고 강력한 힘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두려워진 나머지 일상의 언어로 소리내 기도하려고 해보았지만 그 때마다 알아듣기 힘든 언어화되지 않은 소리들이 중언부언 되풀이될 뿐이었다. 허는 감격에 겨운 듯 큰 소리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으며 이윽고 주변에 있던 몇몇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다가와 나란히 감사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살아있는 신의 존재와 만난 최초의 기억이었다. 3. 성가대의 교육지휘자로 부임한지 이주일 만에, 나는 교회의 오랜 자매학교인 맹인학교의 개교 십주년 기념 행사를 지원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로 파견되었다. 교회에서 불과 삼십여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맹인학교 교정의 길목에는 키 작은 정원수가 낮게 엎드려 있었다. 정원수들의 한 쪽 귀퉁이에는 '쥐똥나무'라는 낯익은 현판하나가 매달려 있다. 세상의 모든 거창한 이름을 버려 두고 쥐똥에 비유되는 옹색한 이름만큼이나 자잘하고 흔한 나무가 공해에 잘 견디는 질긴 성질을 지녔다는 사실이 왠지 모를 연민을 느끼게 한다. 쥐똥나무는 교정의 먼지를 머리에 잔뜩 이고서 낮게 엎드려 있다.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서 바삐 걸었다. 날이 벌써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학수(學洙)는 맹인학교 현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게 꾸벅 인사하는 멀쑥하게 키가 큰 열여섯살 소년은 그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전혀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유리알처럼 투명한 그의 눈동자는 고요하게 정지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부모 모두 맹인인 선천성 맹인이라는 사실을 나는 자원봉사자를 위한 정기 모임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학수는 음악 페스티발의 총지휘를 맡은 대표급 학생이었다. 개교 십주년을 기념하는 음악 페스티발은 맹인학교의 첫 교외행사이자 학교의 위상을 외부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로서, 지역차원의 지원이 이루어지는 큰 행사였다. 나에게는 일주일에 두 번씩 소년을 만나 음악 페스티발 행사를 돕는 것 이외에도 점자화되지 않은 일반 음악전공서적을 지도해주는 등의 개인 레슨까지를 포함한 자원봉사의 임무가 맡겨졌다. 저녁나절의 교사는 어두컴컴하다. - 학교가 몹시 어둡구나. 불을 켜면 좋을 텐데. - ... ... 나는 무심코 소년의 눈빛과 마주친다. 초점이 없는 소년의 고정된 시선이 투명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너무 깊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철렁하게 하는 그런 눈빛. 그 순간 나는 아차 싶은 실수를 깨닫는다. 맹인에게 불빛이라니. 그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말인가. 나는 좀 당황한다. 내가 실수를 미처 인정하기도 전에 소년이 불쑥 말을 꺼낸다. - 생각보다 키가 크시군요. 나는 앞을 볼 수 없는 소년이 지닌 통찰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 어떻게 알았지....? - 목소리의 울림이 위쪽에서부터 시작되잖아요. 목소리의 위치와 발걸음의 울림을 들으면 상대 의 키를 짐작할 수 있지요. - ... ... 선천성 맹인인 소년은 빛의 세계를 전혀 알지 못하였다. 빛의 경험이란 그에게는 처음부터 미지의 것이었다. 꿈을 꿀 때조차도 소년은 소리로만 이루어진 세계 속에서 살았다. 그런 만큼 소리란 그에게는 독특하고 경이로운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대개의 맹인들에게도 해당하는 것이 겠지만 소년은 소리의 해석에 특히 뛰어났으며 피아노연주에 남다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가끔씩 공부가 지루해질 때면 음악실에서 그가 연주해 주곤 하던 월광소나타는 두 눈을 멀쩡히 뜨고 있는 정상인인 나 스스로를 향해 알 수 없는 자괴감 마저 느끼게 할만큼 아름다운 것이었다. 소년은 음악을 전공해서 훌륭한 음악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음악적 재능은 그가 세상을 향하는 희망의 통로와도 같은 것이었다. 점자로 된 음악서적하나 변변히 구할 수 없는 빈약한 현실 속에서도 맹인 소년의 꿈은 찬란하고 견고해 보였다. 나는 내 곁에 잠시 머물러 쉬고 있는 어린 천사의 날갯짓을 보고 있었다. 고요하게 정지되어 있는 그의 눈빛 속에서 엉뚱하게도 나는 생의 온갖 불행과 고뇌를 먼지처럼 머리에 이고 꿋꿋하게 서 있는 쥐똥나무 한 그루를 떠올리고는 했다. 연습이 끝난 어느 날 소년과 나는 버스정류장 앞에 나란히 서 있었다. 집 쪽으로 가는 버스 한 대가 막 도착했을 때 갑자기 소년이 큰 소리로 물었다. - 선생님, 소경 바디메오는 믿음으로 눈을 떴다지요? - ... ...? 복잡한 행인들의 움직임과 시끄러운 버스의 소음에 묻혀 나는 소년의 질문을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 세상이 존재하는 건 하느님의 뜻이 담겨있기 때문이 라지요. 그렇다면 제가 영원히 눈을 뜰 수 없는 것도 하느님의 뜻일까요? - ... .... 나는 소년의 질문에 명료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소년의 질문은 나를 혼란스럽게 하였다. 그것은 세상을 긍정하며 좀처럼 어두운 그림자를 내색하지 않았던 소년의 입에서 나온 것이기에 내 마음을 더욱 짓누르는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소년은 이내 인파 속에 묻혀 사라졌다. 나는 어둠 속에 던져졌던 나의 짧은 맹인의 기억을 떠올렸다. 자원봉사자로 파견된 지 열흘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나는 두 눈에 검은 안대를 하고서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자원봉사자 사무실에서 맹인학교까지 걸어가야 했다. 어느 종교 단체에서 기획한 맹인봉사자를 위한 프로그램에서였다. 물론 내 곁에는 보조 도우미가 붙어 있어 주었지만, 생전 처음 겪는 맹인도 정상인도 아닌 어정쩡함 사이에서 앞을 가로막는 어둠이란 바로 옆 사람의 도움조차 낯설게 하는 힘겨운 막막함일 따름이었다. 만일 처음 맹인을 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맹인들의 표정이 유난히 어둡다는 데에 놀라게 될 것이다. 이는 얼핏 대등한 장애처럼 여겨지는 농아인들과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농아인들이 손짓과 표정만으로 수화를 나누면서도 표정이 밝은 것과 대조적으로 맹인들이 음산할 만큼 어두운 표정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이란 천형에 비유될 만큼 가혹한 일이기 때문이리라. 허나 소년의 얼굴 위에서 나는 한번도 그런 종류의 어둠을 본 적이 없다. 소년은 차라리 너무 맑고 천진해 보이는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소년의 투명한 눈빛 속에서 천사를 보았노라고 믿고 있었으면서도 소년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던 스스로의 무심함이 가슴을 파고든다. 아니, 그보다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은 소년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으리라는 스스로의 무능함일 것이다. 나는 소년에게 쉽사리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인가. 한동안 나는 소년의 단정한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4. 맹인학교의 페스티발 행사가 성탄전야로 미루어진 것은 성탄절을 두달 여 앞둔 즈음의 일이었다. 수요예배가 끝난 후 목사는 나를 목회 실로 불러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며 맹인학교 내부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페스티발 행사의 날짜가 연기되었노라고 전언하였다. 이미 맹인학교 측에서는 성탄전야라는 시간상 내가 더 이상 페스티발 지도를 계속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관례적으로 교회에서는 매년 성탄전야에 크리스마스 칸타타라는 큰 행사를 가져왔으므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었다. 교회의 성가대는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으며 칸타타 공연은 성가대의 일년 행사 중 가장 큰 숙제이기도 했다. 목사는 내게 크리스마스 전야 칸타타 때에 교회 성가대에서 헨델의 메시아를 들어보는 것이 자신의 가장 오래된 소원이라고 말했다. 흔히 교회의 역량과 성가대의 수준이란 비례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했다. 바야흐로 성탄 전야의 칸타타를 기점으로 교회는 지역노회의 연합성가대에 합류함으로써 교세를 확장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기회로 삼고 싶어했다. 적어도 칸타타인가, 페스티발인가라는 두 가지 선택의 사이에서 망설임의 여지는 없었다. 나에게는 교육지휘자라는 본분에 알맞게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교회의 성가대 조직에 몰입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예정보다 앞당겨서 맹인학교의 페스티발 총리허설이 열렸다. 리허설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연극과 음악을 맡은 배우들이 신속하게 움직이고 객석 앞쪽에서는 외부에서 초빙해온 스텝들이 분주히 찬란한 조명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한 개의 붉은 조명이 사라지고 화려한 보랏빛으로 바뀌자 율동을 맡은 일군의 산뜻한 복장을 한 배우들이 무대 위에 섰다. 무대 왼편으로 작은 조명이 만들어 낸 원 안에서 소년과 피아노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선명한 빛깔의 조명등이 명멸할 때마다 무대는 흐느끼는 암흑이었다가 순식간에 빛나는 유토피아로 바뀌곤 했다. 빛깔들의 움직임을 따라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년의 여린 어깨가 규칙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어서 율동조의 움직임이 대사가 없는 무언극으로 바뀌자 무대 위의 조명이 뿌옇게 흩어졌다. 그 순간 갑작스럽게 무대 위의 피아노 연주가 끊어졌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 놀라 모든 움직임들이 일시에 정지된 화면처럼 멈추어 버렸다. 나는 준비실에서 나와 무대 왼편의 피아노 앞쪽으로 다가갔다. 학수는 고개를 꺾고 악보 위에 머리를 기대고 비스듬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멀리서 본 소년은 무대 위의 작은 원 안에 갇힌 새처럼 보인다. 하얗게 질린 소년의 얼굴이 파리하게 빛나보인다. 목에서 흰 셔츠 아래로 이어지는 붉은 피가 선명한 줄무늬를 그리며 흘러내리고 있다. 계속되는 수업 후의 늦은 연습이 힘에 겨웠던 걸까. 단순히 코피라고 하기에는 뭉클하게 쏟아지는 선혈들이 가슴을 철렁하게 훑고 지나간다. 나는 한 손으로 소년의 뒷머리를 받치고 오른 손 엄지와 검지로 콧등을 세게 누른다. 소년은 선량한 아이처럼 잠자코 응급처치를 견딘다. 코피를 수습하고 나서 나는 소년에게 타이르듯 말한다. - 오늘은 그만 쉬어야겠다. 너무 무리한 것 같구나. 흐린 조명 아래에서 군데군데 얼룩이 진 흰 교복 위로 소년의 여린 목덜미가 가늘게 떨린다. - 선생님도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시겠지요...? - .... ... 소년의 뜻하지 않은 질문에 나는 처음 코피를 발견했을 때처럼 가슴이 멍해진다. 나는 대답을 쉽게 찾지 못한다. 소년은 진지한 말을 할 때의 습관처럼 허공을 응시한 채 말을 잇는다. -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왔다가 스치듯 떠나갔어요. 모두들 눈 먼 자에게 빛이 되겠다고 말했 지만 이제 아무도 믿지 않아요. - ... ... - 난 살아서는 영원히 혼자서 날아오를 수 없을 거예요. 언제까지나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가야만 하니까요. 어쩌면 이번 음악 페스티발이 내게는 마지막 비상(飛翔)이 될 거예요. 리허설은 중단되었다. 무대 위에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고 소년과 나만이 남아있다. 그순간 나는 어쩌면 소년의 곁을 쉽게 떠나지 못하리라는 어떤 예감에 휩싸였다. 그것은 쉽사리 거스를 수 없는 견고한 운명처럼 단단히 발목을 붙들고 놓지 않는 이상한 간구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거리 위에서 나는 맹인 소년을 보았다. 나는 소년을 알아보았지만 소년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와 마주친 소년의 눈동자는 고요하게 정지되어 있었다. 소년의 눈동자는 오래 전에 퇴화된 더듬이처럼 허공 위에 망연히 던져져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하듯 오로지 한 곳을 향해 몰두하며 걷고 있었다. 소년은 이미 기나긴 시간 동안 반복된 온 몸의 감각으로 보도블록의 불규칙한 요철 따위에 적절히 리듬을 맞추어 가며 익숙하게 걷고 있었지만 도보에서의 급작스러운 사고의 출현에 예비하느라 몹시 신중해 보였다. 어느새 삶을 다 살아버린 노인처럼 가볍게 걷고 있는 소년의 뒷모습은 내가 손을 내밀 수 없는 다른 세계를 저 혼자 찾아가는 순례자 같았다. 소년 앞에서 나는 타인처럼 고독했다. 5. 오랜 신앙의 교우였던 허를 우연히 다시 만난 곳은 맹인 자원봉사자 세미나가 있는 지역성당의 휴게실에서였다. 여전히 가무잡잡한 피부가 건강해 보이는 그녀는 그러나 열성적인 자원봉사 활동 때문인지 다소 지쳐 보였다. 그녀가 다니던 교회의 전도사와 결혼을 하면서 동시에 집을 이사 해버리는 바람에 우리는 오래도록 만나지 못했다. 허는 예의 반가운 안부인사를 묻고 나서 심상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 교회는 좀 어때? - 늘 그렇지 뭘. - 맹인 학교 일은 이제 정리된 거야? - 아니, 아직. 나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아마도 허는 그것이 공허한 한숨이라는 것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을 것이다. 삶이란 때때로 스스로 원치 않는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것은 신의 뜻일까, 혹은 인간의 뜻일까. 성당의 휴게실에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텅 빈 실내의 허공을 망연히 바라다보던 허가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워 불을 붙이자, 불이 붙은 파란 연기가 머리를 풀고 자유롭게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허의 목소리가 갑자기 진지해진 것은 아마도 본래 개혁을 의미하는 언어임이 분명한 프로테스탄트가 어찌하다가 고작 술이나 담배 같은 기호품 따위를 일탈의 한 상징물로 여길 만큼 금욕주의로 발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투의 싱거운 이야기가 오고 간 끝이었을 것이다. - 그래도 자기는 행복한 편이야. 유능한 지휘자로서 희망이 있잖아...? 허는 담담해진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 난 나뭇가지에 홀로 앉은 외로운 새가 된 느낌이야.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성지순례를 하는 신혼여행기간 열흘 내내 그는 한 번도 내 곁에 오지 않았지. 그러다가 한 달에 한번, 석 달에 한번... 나는 그가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어. 낮에는 그토록 당당하고 누구에게나 상냥한 그가 밤이 되면 차가운 타인으로 변한다면..., 믿을 수 있겠어? -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잖아? - 만약 내용도 형편없다면? 이렇게 말하면서 허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웃었다. 나는 푸른 연기 사이에서 웃는 그녀의 시린 눈동자가 물기로 번들거리는 것을 보았다. - 다행이랄지. 우린 아직 법적으로는 부부로 남아 있는 상태야. 하지만 지금 나에게 그는 머나먼 타인이나 마찬가지야. 그는 내게 낯선 이방으로 함께 떠나 목회를 해보자고 권유했지만 난 대답할 수 없었어. 그를 따라서 영원히 고통을 함께 나눌 자신이 없었던 거지. 아마 지금도 그는 어디에선가 열심히 목회활동을 하고 있을 거야. 가끔 난 이런 생각을 해. 사람 사이의 사랑이라는 게 그토록 간단히 끝날 수 있는 것인가, 육신을 초월할 수는 없는 것인가... 하고 말이야. 난 정말 나쁜 여자일까? 어울리지 않는 우울한 표정으로 허가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메마른 얼굴 위로 검은 기미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세상에 드러내 놓을 수 없는 번민을 끌어 앉고 고뇌하는 그녀는 낮고 작은 미물처럼 느껴진다. 왜일까. 그 순간 나의 머리 위로 십자가 위에 못 박혀 고통받는 예수의 선연한 얼굴이 떠오른 것은. 육신을 빌었으되 육신을 초월해야 했던 예수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은 육신으로 태어나 육신의 사랑을 갈망하는 모든 이의 비애를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웅크린 허의 어깨 위로 허공에 뜬 갈망이 부유하듯 천천히 맴돌고 있었다. 6. 맹인학교 교정에 들어서자마자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원수의 제 쓰임을 다하기 위해 삼 미터나 되는 큰 키를 잘린 한 무리의 쥐똥나무들이 낮게 엎드려 무심히 빗방울을 맞고 있었다. 나는 교정의 풍경을 외면하듯 맹인학교의 현관 쪽을 향해 분주히 걸음을 옮겼다. 인사를 마치고 맹인학교 교장실에서 나왔을 때, 현관에 서 있는 소년을 보았다. 소년은 오랫동안 그러고 있는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나는 생각보다 빨리 이별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나는 중대한 결심을 하는 사람처럼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나 소년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소년이 눈앞에 있는 내 존재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눈앞 에 서 있는 맹인 소년이 처음부터 나를 알지 못했던 사람처럼 나는 간단히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간다. 소년은 등뒤에 홀로 남는다. 정문을 지났을 때 빗줄기가 추적추적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리가 물에 퉁퉁 부은 것처럼 꼼짝도 할 수가 없다.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될까봐 두렵다. 택시승강장에는 다행히 사람들이 없었다. 기다려도 택시는 오지 않는다. 그때 맞은편의 버스정류장에서 비를 맞고 있는 소년을 보았다. 날이 어둡고 비마저 내려 행인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가는 버스 편을 알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길을 건너가 소년을 택시승강장으로 데리고 온다. 비에 젖은 소년은 유순한 짐승처럼 순순히 따라온다. 몇 대의 택시들이 비에 젖은 맹인 소년과 나를 지나쳐 버리고 거리를 질주해간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진다. 이제 물에 흠뻑 젖은 모습 때문에 차들은 더더욱 문을 열어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지쳐버린 소년과 나는 아예 승강장 난간에 기대 주저앉아 버린다. 그때 거짓말처럼 노란 택시 하나가 소년과 내 앞에 미끄러져 선다. 나는 재빨리 뒷문을 열어 소년을 먼저 태우고 옆자리에 나란히 앉는다. 달라붙은 폴리에스테르 스커트에서 바닥으로 물이 줄줄 떨어져 내린다. 무심코 바라본 왼편 발등 위로 철 지난 여름 샌들의 끈 한 짝이 떨어져 나가 덜렁거리고 있다. 무리하게 택시를 잡으려고 뛰어다닐 때 떨어져 나간 것이 분명하다. 이런 것을 신고서 어떻게 차를 탈 수 있었는지. 새삼스레 한숨이 튀어나온다. 샌들을 벗어들자 물에 젖어 가지런히 누워 있는 발가락들 끄트머리에 여린 새끼발가락 하나가 가냘프게 매달려 있다. 부실한 샌들 안에서 오랫동안 답답해진 탓일까. 좁은 공간 안에서 질긴 어둠을 참아내며 무던히 숨쉬고 있었을 새끼발가락은 작고 발갛게 상기되어 있다. 인간에게 새끼발가락이란 퇴화된 구조물에 속한다. 그래서 다른 발가락들과 달리 두 개의 뼈마디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창문을 열자 빗방울이 섞인 바람이 두서 없이 공간을 비집고 들어온다. 나는 가방에서 담배 한대를 꺼내 불을 붙인다. 비 오는 거리의 눅눅한 공기 속에서 연기 내음이 비릿하게 퍼진다. 앞자리의 택시 기사가 뭐라고 욕설을 해댄다. 기껏해야 비 맞은 사람을 태워주었더니 재수 없이 젊은 여자가 담 배를 피운다는 투의 상투적인 내용일 것이다. - 그러지 마세요. 이 분은 참 좋은 분이에요. 갑자기 맹인 소년이 발갛게 상기되어 진지하게 나를 위해 변호한다. 소년의 돌연한 행동에 기사와 나는 동시에 당황한다. 참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 가슴속을 찌르듯 남는다. 세상의 모든 진화들에 가리워져 퇴화된 관절처럼 세월은 크고 웅장한 역사만을 기록하겠지만 그런 진지함으로 존재를 기억해 줄만한 무엇이 남아 있을 것인가. 목적지에 먼저 도착한 소년이 차에서 내리며 빠르게 덧붙인다. - 페스티발 마지막 무대에서 선생님과 함께 연주하고 싶어요. 연습실에서 기다릴게요. 기ㆍ다ㆍ 릴ㆍ 게ㆍ 요 소년의 마지막 말이 사라질 때까지도 빗줄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빗물 속에서 소년을 떠나 보낸 택시가 어둠을 향해 쏜살 같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7. 꼽추목사의 집은 전원주택단지 안에 위치한 흰색 목조 건물이다. 나무 계단을 올라 현관에 다다랐을 때 거실 한가운데로 밝고 따스한 햇살이 비춰 왔다. 목사는 현관 입구에 서 있었다. 청결해 보이는 가르마 아래로 목사의 은테 안경이 햇살에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거실마루 앞 쪽 위로 나 있는 커다란 창으로 허공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목사는 내게 서재의 책들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서재로 오르는 2층 계단의 삐걱이는 소리는 들으며 나는 통로에 가득한 방대한 종교서적의 분량에 이미 압도당하고 있었다. 2층의 다락방은 벽면이 천정 끝까지 책들로 가득했다. 서가의 한쪽 끝에는 몸이 불편한 목사가 언제라도 필요한 책을 꺼내 볼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든 사다리가 걸쳐져 있었다. 목사는 몸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내게 종교음악편람이라고 씌여진 책을 보여주기도 했다. 엉금엉금 사다리를 오르는 그의 굽은 등이 갑각류의 껍데기처럼 마르고 딱딱해 보였다. 성탄전야 행사를 눈앞에 둔 그 날 아침에 나는 교역자 회의에 나와달라는 목사의 부름을 받았다. 회의 주제는 성가대의 조직 강화에 관한 것이었다. 칸타타에 거는 교인들의 기대는 엄중한 것이었다. 각 장로들을 비롯한 여러 기관들이 참석한 교역자 회의에서 노장로는 남은 한 달 동안 칸타타 조직에 최선을 다해 달라는 짧은 주문으로 회의를 마쳤다. 회의가 끝난 후 목사는 나를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목사는 반기는 것도 거부하는 것도 아닌 몸짓으로 나를 접대했다. 서재에서 집을 나올 때까지 목사는 내게 칸타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마침내 문 앞에서 배웅을 나오던 목사가 입을 열었다. - 자네에게 충고하겠네만, 아무래도 자네는 교회의 영적 활동에 좀더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바램일세. 자네의 음악적 재능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바일세. 자네를 믿네. 부디 날 실망시키지 말아 주게나. 이런 말을 해서 안됐지만 장애인은 장애인만이 알아볼 수 있다네. 보다시피 나 역시 불구의 몸이라 불구자의 심리를 잘 아는 편이지. 그들은 대개 어린아이와 같이 타인에 대해 의존심리가 높고 고집이 센 편이지. 그런 곳에 관여하고 있다보면 견문이 좁아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지. 전원주택단지 부근은 청결한 도로의 구획 위에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멀리서 바라 본 목사의 집은 흠집이 없는 권위의 상징처럼 깔끔하고 정결한 순백색을 띠고 있었다. 전원주택단지를 우측으로 끼고 돌아 나오면 빨간 지붕이 뾰족한 교회 건물이 나온다. 소년의 마지막 인사말들이 도보 위에 부딪혀 가볍게 흩어지고 있었다. 바람처럼 목사의 말들이 귓가에 흩어졌다 이내 사라졌다. 어쩌면 꼽추목사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교회 옆 공터의 너른 주차장 위에 낯익은 검정 승용차가 보였다. 대예배가 아닌 자잘한 행사들이 있을 때나, 새벽기도 때 교우들을 실어 나르던 목사의 검정색 자가용차는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충견처럼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나는 검정 승용차를 몰던 사내를 기억했다. 교우들을 실어 내리고 난 후 검정 승용차를 운전하던 사내는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맨 마지막으로 예배당 안에 들어왔다. 이따금 사람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검정 승용차에 매달려 유리문을 닦고 있는 사내를 보았다. 매끄러운 검정 승용차의 표면 위로 사내의 왜소한 몸집이 과장되게 부풀어져 보였다. 사내는 뾰족한 빨간 지붕 위에 올라가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사무실을 수리했으며 주일이 되면 차량을 운행하여 사람들의 발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이별은 예기치 않은 곳에 숨어 있었다.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인해 사내와 그의 어린 딸은 교회를 떠났다. 교회를 떠나던 날 사내는 사람들에게 어색하게 인사했다. 누군가가 떠나는 그들에게 박수를 쳐주자고 제안했다. 박수가 흐르자 잠시 사내가 얼굴을 돌려 말없이 화답했다. 검은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사내의 어린 딸은 교회식탁에서 마지막 식사를 했다. 소녀의 눈동자가 물기 먹은 머루처럼 검게 커졌다. 사내가 세운 빨간 지붕 위의 크리스마스 트리 위에도 그들이 함께 식사를 했던 식탁에도 이별이 보였다. 이별은 어디에나 널려 있었다. 그런데도 애틋한 이별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 사람들은 쉽게 이별에 익숙해졌다. 꼽추목사는 그들의 빈자리를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내가 떠나고 난 검정승용차는 커다란 껍데기로 남은 것 같았다. 나는 승용차 앞 유리문 쪽으로 다가가 주먹을 대고 질끈 쳐본다. 차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주먹의 떨림은 다만 얼얼함으로 기억될 뿐이다. 어림도 없다. 그것은 완벽하게 크고 웅장해서 좀처럼 미세한 존재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몸이 하나도 떨리지 않는다. 태초에 생명이 있었나니,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빛의 낭송이 울려 퍼지자 성탄전야의 별 빛 속에서 무대가 열린다. 경쾌하고 생기 있는 선율속에서 연극의 독백이 부드럽게 무대 위로 흐른다. 성극이 끝나고 나면 곧바로 칸타타가 시작될 것이다. 무대 안쪽의 연습 실에서 숨을 고르는 성가대들의 맑은 얼굴은 긴장으로 단단해 보인다. 무대 위로 꿈결 같은 세상이 열리자, 흰눈으로 뒤덮여 있는 풍경 속에서 구세주의 탄신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들려온다. 그 순간 나팔 소리 속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빠르게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음성은 신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그러나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낮은 음성은 얼핏 악마의 목소리와도 흡사해 보인다. 나는 음성 속에서 신의 목소리를 분간해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이내 깊이 모를 무대의 열기 속에 묻혀 사라지고 만다. 허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은 리허설이 있던 아침나절의 일이었다. 무대 위의 울림에 묻혀 수화기 너머에서 아득하게 들리는 허의 목소리는 기묘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 난 오늘 그를 따라 낯선 이방으로 떠날거야. 아무래도 그는 내가 평생 지고 가야 할 십자가인 것 같아. 남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나에게는 허리가 휘어지도록 무거운 그런 십자가 말이야... 내 말 듣고 있어? 전화를 받는 순간 나는 잠시 머리가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오래 전에 잊혀진 내 안의 숨은 그림자 하나를 발견했을 때처럼 이상한 전율이 온 몸을 통과하는 것을 느꼈다. 연습실 바깥으로 통하는 문을 열자 문 밖의 찬 공기가 한달음에 온 몸으로 다가든다. 얇은 주홍빛 지휘복을 입은 채로 망연히 바라다 본 성탄 전야의 세계는 여전히 강건하게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다. 나는 문을 닫고 연습실 안 쪽으로 들어가려다가 그대로 몸을 되돌려 거리 건너편의 횡단보도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횡단보도의 신호등 위에서 파란 불이 금방이라도 꺼질 듯 아슬아슬하게 점멸하고 있다. 마치 그 푸른빛을 놓치고 나면 세상이 영영 끝나버릴 것 같아서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달린다. 짧은 순간 머리 위로 맹인학교 강당의 큰문을 활짝 열어 젖히는 나의 모습이 아득히 떠오른다. 그러나 하얀 백지처럼 더 이상 아무런 그림도 떠오르지 않는다. 등줄기로 땀이 비오듯 흘러내린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산 중턱에 한 그루 옹이 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주변 경관과 참으로 어울리지 않게 유난히 못생기고 나무에는 옹이 투성이였습니다. 허리 아픈 아낙네가 산행을 할 때 한 번씩 짚어가고, 산 위 약수터에 물 길러 가는 아저씨들이 한번씩 쳐다보며 이 나 무가 왜 여기 있지 하는 표정을 짓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옹이나무는 왜 하필 이곳에 뿌 리를 내리게 되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곳 산중턱에는 자기와 닮은 옹이 나무는 한 그루도 볼 수 없었고 왜 자기가 옹이나무라 불리는 지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날 자신의 가지에 내려앉아 쉬고 있는 바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바람님, 저 산위에는 어떤 나무가 있나요? 나처럼 옹이나무라 불리는 나무들이 많이 있나 요? 혹시 우리 엄마 나무는 보지 못했나요?" "옹이나무님, 나는 세상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 때문에 많은 것을 보았답니다. 구름 낀 계 곡에도 갔었고, 높고 높은 산에도 여러 번 다녔고, 어떤 때에는 끝도 없는 바다를 며칠동안 돌아다녔답니다. 하지만 옹이나무님처럼 똑같이 생긴 나무는 본적이 없답니다." 지나가는 바람에게서조차 자기와 똑 같은 옹이나무를 본 적이 없다는 얘기에 슬픔이 복바 친 옹이나무의 몸에는 또 하나의 옹이가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옹이나무에게는 슬픈 감정이 생길 때마다 작은 옹이가 하나씩 생겨나서 온 몸이 옹이투성이였습니다. 어떤 옹이는 너무 커서 작은 골처럼 움푹 패였고, 작은 옹이 하나 하나가 모여 커다란 상처처럼 보이기도 했 습니다. "야, 옹이나무야, 넌 어쩜 그렇게 못생겼니? 온 몸이 곰보딱지잖아? 넌 나무라고 할 수도 없어. 저리 썩 가버려!" 주변의 친구나무들이 던지는 한 마디 말은 그대로 옹이가 되어 옹이나무에게 더해졌습니 다. 이젠 옹이나무의 몸은 옹이와 온갖 상처로 인해 정말 볼품이 없어졌습니다. 나무라기 보 다 흉측한 몰골을 한 낡은 비석 같은 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눈먼 새도 둥지를 틀지 않고, 힘에 겨운 구름조차 옹이나무에게 내려와 쉬기를 꺼려했습니다. 개미들만 부지런히 드나들 며 아픈 몸에 생채기를 만들기가 일쑤였고, 지나가던 바람이 잠시 들러 가끔씩 안부를 묻곤 했습니다. "바람님,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무도 아니랍니다. 내 몸이 너무 못생겨서 내 이야기를 들어 줄 그 어떤 누구도 없답니다. 가끔 바람님께서 전해 주시는 세상 얘기가 제게는 모두입니다. 여기를 지나가는 그 많은 사람들이 한 번만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 주고 어루만져 주기를 얼 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답니다. 이제는 산행을 하다가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기대는 힘없는 아주머니조차 없답니다. 아,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뿌리를 지탱 할 힘이 없답니다." "옹이나무님, 세상에 생명 있는 것 중에 의미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답니다. 나를 보세요. 나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옹이나무님처럼 상처투성이 뿐의 몸 같은 것이라도 없답니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언젠가 옹이나무로 태어나 이 곳에 뿌리내린 이유를 꼭 찾게 될 것입니다. 나처럼 어떤 곳에 머물지 못하고 언제나 떠돌아 다녀야 하는 바람의 일생도 그리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랍니다." 바람과 이야기를 나무면서 잠깐씩이라도 아픈 상처를 달래 보던 옹이나무는 비록 상처뿐인 가지일 망정 바람이 잠시라도 지친 몸을 쉴 수 있도록 편하게 해주려고 최선을 다했습니 다. 바람이 지나간 후 옹이나무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지금 아무도 날 봐 주는 이 없는 옹이와 상처로 뒤덮인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로 하는 존 재가 될 수 있을까? 그런 날은 얼마나 더 기다려야 오는 거지? 그 동안에 내 뿌리가 썩기 시작하면 어떻게 하지?' 이렇게 걱정과 기다림과 원망스런 마음을 안고 몇 번의 눈을 맞았는지, 또 꽃은 몇 번이나 피고지고 했는지 헤아리기조차 힘들어졌습니다. 옹이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던 산 중턱도 그 모습이 많이 변했습니다.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오더니 커다란 전동 톱으로 주변의 나무 를 한 그루 씩 베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선 트럭에 잘라낸 나무들을 싣고 어디론가 떠 나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베어지는 것일까? 저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지? 왜 나무를 베어내는 거야?' 주 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옹이나무에게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이는 없었지만 일하는 사람 들의 주고받는 얘기가 간간이 들려왔습니다. “어이, 김씨. 여기에다 동네 사람들을 위한 운동시설을 설치한다면서” "그렇다나봐. 마을 사람들이 민원을 넣었대. 지역 주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산책로와 배드민턴시설 등을 설치 해 달랬다나 봐. 장소 물색에 한참 시간이 걸렸는데 여기에 산행하 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해서 이곳의 나무를 좀 잘라내고 터를 닦아서 운동시설을 갖추기로 했대. 우리야 뭐 일이나 하고 돈이나 받으면 되지." "어여 일이나 하세." "그러세." 그러기를 며칠 후 굴러가기에도 힘겨운 커다란 바퀴가 달린 기계차가 오더니 땅을 평평하 게 한답시고 이리저리 냅다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처럼 산행을 즐기던 사람들도 공 사현장을 구경하느라 가던 걸음을 멈추고 현장 감독처럼 휘휘 둘러보며 인부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여기 좀 보세요. 입구가 이쪽인데 여기 흉칙하게 생긴 옹이나무가 한 그루가 있어요. 이 나무는 왜 안 베어냈어요?" "너무 재수 없게 생겼잖아요. 그래서 일하던 사람들이 그냥 놔 둔 모양인데, 막걸리로 목이 나 축이고 그 나무는 마지막에 베어 낼께요." 옹이나무는 마음이 서글퍼졌습니다. 얼마나 보기 싫었으면 나무로 태어나 가장 싫은 순간 인 베어냄을 당하는 순간에서도 마지막이라니 정말 나무로 태어나 이 곳에 뿌리박은 자신이 한없이 가엾고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옹이나무의 몸에는 더 이상 상처 아닌 곳이 한군데 도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나무로 뿌리내림을 하면서 한 번의 상처를 받을 때마다 생겨났 던 옹이가 더 이상 생겨 날 곳이 없어지자 움푹 패인 곳에 또 옹이가 생겨나고 딱지가 앉아 서 벼락맞아 제 형상을 잃어버린 나무 보다 더 흉칙했습니다. "박씨, 저쪽 입구 쪽에 옹이 투성이 흉칙한 나무 한 그루 보이죠? 저 나무 베어버리세요." 멀리서 일하던 박씨는 구부린 허리를 펴면서 대답 대신 손을 흔들어 보였습니다. 두어 시 간이 지났나 싶더니 박씨라고 불리던 남자가 옹이나무 옆으로 왔습니다. 손에는 전동 톱을 들고 허리에는 무섭게 생긴 연장들이 커다란 주머니 속에서 키재기라도 하려는 듯 빠꼼히 세상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박씨라고 불린 사람은 나이를 가늠 할 수 없을 정도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움푹 패인 이마의 주름은 그 동안의 삶의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음을 말 해주는 듯 했고, 투박한 손에는 굳은살이 잔뜩 박혀 있었습니다. 푹 눌러 쓴 모자 밑으로 작 은 눈이 인자하게 옹이 나무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놈 참 못생겼구나, 어디 보자." 박씨라고 불린 이 사람은 옹이나무를 쓱쓱 쓰다듬어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었습니 다.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옹이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본 후에 톱을 옹이나무의 몸에다 갖다대 었습니다. 그러자 온 몸이 뒤틀리고 머리가 아찔해지는 가 싶더니 온 몸이 쪼개지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옹이나무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트럭 뒷 칸 한 구석에 처박혀진 자신을 발견한 옹이나무 는 한 줄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제 그에게는 뿌리깊은 나무로서의 마지막 자존심도 사라 졌습니다. 보기 흉한 모습일 망정 가지와 잎이 있었던 자신의 몸이 몸뚱이만 덩그러니 남겨 진 것이었습니다. 상처투성이의 몸을 가리고 싶어도 이제는 가리울 나뭇잎 한 장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눈물샘 보다 더 깊은 상처를 안고 트럭 뒷 칸 한 구석에 자리를 차지한 옹이나 무는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조차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눈물이 마르지 않은 걸 보 면 살아 있기는 한 것 같았습니다. 차라리 한 번의 고통으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망각 의 강에 그대로 빠져들었다면 더 이상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그러지도 못한 자신의 처지가 한없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트럭이 갑자기 서는 바람에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제는 더 이상 사물을 분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두 개의 손이 옹이나무를 끌어내리고 또 다른 작 은 손이 밀어내는 느낌이 들어 자세히 바라보니 낮에 자기를 베어 낸 박씨라고 불린 그 사 람이 옹이나무를 어딘 가로 데려온 것이었습니다. 옹이나무가 뿌리내리고 살던 숲과는 다르 지만 주변에 나무들이 보여 좀 안심이 되었습니다. 마당이 있고 불빛이 새어나오는 창문을 보아하니 여기가 사람들이 산다는 집이란 곳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온 세상을 돌아다니는 바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박씨라고 불린 그 사람은 옹이나무를 담벼락 안쪽에 비 스듬히 세워놓고는 불빛 가득한 방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혼자 남은 옹이나무는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어두운 마당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온갖 물건들이 잔뜩 널려져 있었습니다. 깨진 항아리도 있고, 녹슨 도끼, 세수 대야며 물호스, 쪼 개진 나무토막이 보이고 저 멀리에 커다란 솥이 담 아래 걸려 있었습니다. 조그만 꽃밭도 보였습니다. '여기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저기 쌓여 있는 장작들처럼 나도 저렇게 온 몸이 쪼개어 지는 것일까? 너무나 답답하구나. 바람 님은 어디에 계신걸까?' 갑자기 서늘해진 공기에 차 가워진 몸을 움츠린 옹이나무는 깜짝 놀랐습니다. 바람이 지친 몸을 이끌고 잠시 쉬러 이 곳에 들른 것이었습니다. "바람님, 저에요. 옹이나무에요. 이렇게 잘려 버린 몸이라 알아보기 어려우시죠? 이런 지경 에까지 되어 버린 저에게 더 바랄게 무엇이 있을까요? 이제 남은 것은 절망뿐이랍니다." "옹이나무님, 절망하기엔 아직 이르답니다. 지치긴 했지만 아직 우리는 살아있잖아요. 그리 고 옹이나무님을 나무공장으로 보내지 않은 걸 보면 무슨 다른 뜻이 있을거에요. 살아 있는 한 내일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순 없어요." 바람은 절망에 지친 옹이나무 어깨에 앉아서 옹이나무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고는 옹이나무 가 편히 잠들 때까지 옹이나무를 지켜보았습니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바람은 소리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부산스런 소리가 집안을 가득 메웠습니다. 쪼개진 나무토막들이 타닥타 닥 소리를 내며 시뻘건 불길을 토해 놓고 있었고 담벼락에 걸려 있던 커다란 무쇠 솥이 그 위에 걸려 있었습니다. 무쇠 솥과 뚜껑 사이로 허연 김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작은 손을 가진 예쁜 여자아이가 헝겊으로 만들어진 작은 인형을 안고 펄펄 끓고 있는 무쇠 솥 곁에 쪼그리고 앉아 이었습니다. "아가야, 이쪽으로 와야지." 나즈막한 목소리로 소녀를 부른 사람은 박씨라고 불리던 사람 이었습니다. 아가라고 불린 여자아이는 박씨의 투박한 손에 이끌려 무쇠 솥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아까처럼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박씨라고 불리던 그 사람은 옹이나무 있는 데로 오 더니 옹이나무 위에 턱 하니 걸터앉는 것이었습니다. 연장주머니에서 커다란 칼을 꺼내더니 옹이나무의 살갗을 마구 도려내었습니다. 삐죽 나와 있던 잔가지 조각도 다 잘려 나가고 나 서 옹이나무는 이제 모든 것을 잊기로 했습니다. 더 이상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달은 옹이나무는 아픔보다 오히려 시원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자기 처럼 다른 사람에게 미움만 받으며 살아온 옹이나무를 그래도 어딘 가로 데려와 주고 쓰다 듬어 주었으니 이까짓 살갗 벗기는 정도의 아픔은 참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저만치서 예쁘 게 생긴 작은 여자아이가 아까부터 아무 말 없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그것 만으로도 감사해야 했습니다. 어느 누가 그렇게 자기를 바라 본 사람이 없었는데 이렇게 바 라 봐 주는 것만으로, 흉칙하게 생겼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바라만 봐 주는 것만으로도 자신 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살갗을 벗겨내더니 박씨라고 불린 사람은 옹이나무를 이쪽에서 한 번 내려다보고 툭툭 몸통 살을 찍어내고 저쪽에서 한 번 내려다보더니 툭툭 몸통 살을 찍어내는 것이었습 니다. 외마디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옹이나무의 몸통은 펄펄 끓고 있는 무쇠 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펄펄 끓는 물 속에 몸이 잠기는 순간 자신의 몸에 그런 기운이 있었는지 조 차 몰랐던 알 수 없는 기운이 모두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옹이나무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서늘한 기운이 옹이나무를 감싸는 순간 정신을 되찾은 옹이나무는 눈을 떴습니다. 모든 인내심과 내일에 대한 희망, 그 동안 자신을 지탱해 왔던 삶에 대한 애 착들이 사라지고 이제는 아무 것도 느끼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늘 진 담벼락 밑에 비스듬히 세워진 옹이나무는 자기가 왜 여기에 이렇게 있는지 알고 싶지도 않 았습니다. 뜨거운 물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대견하다고 여기면서 더 이 상 삶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로 마음을 먹으니 한결 마음이 가볍고 넓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 봐 주던 작은 여자아이 모습만 간직하기로 했습니다. 그걸로 충 분했습니다. 그 기억마저도 분에 넘치는 사치라면 그것 마저 다 버리기로 했습니다. 박씨라고 불리던 그 사람은 이제 옹이나무를 잊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어쩌다 한 번 씩 오 다가다 옹이나무 곁에 서서는 이리 저리 훑어보곤 했었는데 한 달이 넘도록 옹이나무를 찾 지 않았습니다. 가끔 작은 여자아이가 마당에서 놀다가 한번씩 옹이나무 곁에 와서 그 작은 얼굴을 바싹 들이대고는 납작한 코를 발름거리면서 냄새를 맡는 것이었습니다. 이 작은 여 자아이의 방문은 세상에 대한 원망,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분노를 송두리째 잊게 해 주었습니 다. 옹이나무 속에 있는 모든 욕심을 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자신을 찾아주는 작은 여자아이의 방문을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젠 웃음이 나왔습니다. 햇빛을 못 본지 두 달이 지나갔습니다. 살갗이 모두 벗겨진 옹이나무는 바람이 찾아 왔을 때 더 이상 여행에 지친 바람을 편히 쉬게 해 주지 못하는 자신이 안타까웠습니다. "바람님, 바람님이 잠시 머물다 갈 가지도, 바람님을 덮어 줄 나뭇잎 하나 없답니다. 이제 더 이상 제게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답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도 세상에 대한 원망도 모두 버 렸습니다. 가끔 이 집에 사는 작은 여자아이가 찾아오는데 그 아이는 밉게 생긴 제 모습에 는 아랑곳하지 않고 따뜻한 눈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바람님, 뿌리도 없이 이렇게 내 팽개쳐 진 모습이지만 그 작은 여자아이 때문에 행복함을 느끼며 지내고 있답니다." "옹이나무님, 편안한 모습의 옹이나무님을 보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나는 어느 한 곳에 머물 수 없는 운명이랍니다. 운명의 힘에 떠밀려 또 어디론 가로 가야만 합니다. 어디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내 몸은 어느새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져 있습니다. 옹이나무님, 운명이 허락하면 또 만나게 되겠지요. 안녕히 계세요."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어느새 차가운 기운만 남아 있었습니다. 다음 날 눈을 뜬 옹이나 무는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작은 여자아이 때문에 깜짝 놀랐습니다. 언제나 말 한마디 없이 자기를 바라보는 소녀였지만 오늘은 유난히 자기만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늘 갖고 다니던 인형도 손에 들고 있지 않았습니다. 박씨라고 불리던 그 사람이 연장주머니를 어깨 에 늘어지게 메고서 이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옹이나무 곁에 오더니 연장주머니를 바닥에 내려놓고서는 작은 여자아이를 덥썩 안는 것이었습니다. "아가야, 이제 슬슬 일을 시작해 볼까? 우리 아가는 아빠가 일하는 것 여기에서 보고 있을 래?" 박씨라고 불리던 이 사람은 그 작은 여자아이를 햇볕이 조용히 드는 곳에 납작하게 놓여있 는 돌 의자 위에 조심스럽게 앉혔습니다. 여자아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박씨라고 불리던 이 사람은 연장주머니에서 날카로운 끌 칼과 창 등을 꺼내더니 옹이나무의 몸 이곳 저곳을 마구 깎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톱으로 자르기도 하고, 주머니칼로 다듬 기도 하고, 까실까실한 종이 같은 걸로 온 몸을 마구 문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옹이나무의 몸 조각들이 찍혀 나가고 몸의 가루가 햇살 속에서 춤추듯 날아다녔습니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어둠이 찾아오고 옹이나무를 마구 깎고, 구멍도 뚫고, 몸 이곳 저것을 갈아대 던 손을 멈추고 박씨라고 불리던 그 사람은 온갖 연장들을 한 자리에 가지런히 모았습니다. 그리고선 박씨라고 불리던 사람이 일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 작은 여자아이를 덥썩 안더니 불빛 가득한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옹이나무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 자기는 영원히 잊혀진 존재라 생각하고 삶에 대한 모든 희망과 세상에 대한 원망도 다 버리고 오로지 가끔씩 찾아와서 따뜻한 미소로 자 신을 바라봐 주는 소녀에게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맛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뿌리 에서 몸통이 잘리고 뜨거운 물 속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옹이나무에게 작은 여자아이의 미소 는 마지막 위로라고 생가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박씨라고 불리던 그 사람은 옹이 나무를 하루 종일 깎고 다듬고, 만지고, 이리 저리 견주어 보는 것으로 보아 옹이나무를 다 른 용도로 쓸 모양인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쓰임이 된다는 것,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 는 일이었습니다. 옹이나무는 다시금 삶에 대한 가느다란 희망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 습니다. 그런 것이 옹이나무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 해도, 옹이나무에겐 지나친 욕심이라 해도 무언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욕구가 용솟음 치는 걸 억누를 수가 없었 습니다. 이 날의 흥분으로 밤새 한 잠도 자지 못하고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던 옹이나무는 박씨라고 불리던 그 사람과 작은 여자아이가 곁에 오자 온 몸을 가볍게 떨었습니다. 투박한 그 손으로 어서 자기를 다듬어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게 해 주라고 애원하고 싶었습니 다. "아가야, 여기 앉자. 아빠 일할게." 아가라고 불린 작은 여자아이는 어제처럼 작은 돌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박씨라 고 불리던 투박한 손을 가진 이 사람은 어제처럼 다시 옹이나무를 이리 깎고 저리 깎고, 날 카로운 날로 밀고 당겨서 옹이나무의 살갗을 보드랍게 다듬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나무 조 각이 박히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해가 서쪽으로 꼴딱 넘어가서야 투박한 손을 가진 박씨라 고 불리던 이 사람은 누런 빛깔의 칠을 옹이나무에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끔거리는 느낌 과 향긋한 냄새는 숲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아가야, 황색 옻을 입히니까 훨씬 예쁘지? 이제 마르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단다." "아빠..." "우리 아가, 지금 뭐라고 했니? 아빠라고 했니? 다시 한 번 아빠라고 불러봐." "아빠......" "수지야!" 투박한 손을 가진 박씨라고 불리던 이 사람은 작은 여자아이를 와락 품에 안았습니다. 말 이 별로 없던 이 사나이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작년에 네 엄마 잃고 말문을 닫더니 이제야...... 이제서야...... 고맙다. 우리 아가 수지야." 박씨라 불리던 이 사람은 작은 여자아이를 안고 불빛 가득한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옹이나무는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자신의 몸을 둘러보니 자 신의 몸이 커다란 상자 모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몸은 두 개로 나누어져 위로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옹이나무의 속은 파내어지고 그 안에는 여러 개의 작은 방이 만들어졌습니다. 옹이 자국이 심했던 곳에 독수리 모양과 꽃잎이 아로새겨 졌습니다. 상처가 가장 심했던 윗 부분은 용이 하늘로 날아가는 모양이 아로새겨진 손잡이 로 변했습니다. 옹이나무는 오늘의 일을 절대 잊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다음날 투박한 손을 가진 박씨라고 불리던 그 사람은 옹이나무를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갔 습니다. 가재도구라고는 장롱과 서랍장밖에 없는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무척 깨끗했습니다. 방안에는 작은 여자아이가 앉아 있다가 옹이나무를 보자 벌떡 일어섰습니다. 투박한 손을 가진 박씨라고 불리던 그 사람은 그 큰 옹이나무 상자를 작은 여자아이 곁에 놓았습니다. 작은 여자아이는 두 손으로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아빠, 여기는 엄마 머리카락 넣어두고, 이 작은 서랍에는 엄마 사진도 넣어 두고, 조개 목 걸이는 여기에, 또 여기는 우리 가족 사진을 넣어 둘 거에요. 아빠는 우리를 지켜주는 제일 큰 사람이니까 여기 큰방을 쓰세요." 작은 여자아이는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띄우며 자기의 보물을 옹이나무 상자 속 작은 방 들 속에 차곡차곡 정리해 넣는 것이었습니다. 옹이나무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흉하게 생긴 모습 때문에 모두가 미워했던 자신을 이렇게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가족 곁에서 지내게 된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도 예쁘고 작은 여자아이의 가장 귀한 보물을 간수하는 창고가 된 것 입니다. 옹이나무는 언젠가 바람이 말해주었던 생명 있는 것은 모두가 의미 있는 것이라는 말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이렇게 고운 여자아이가 꼭 필요로 했던 보물 상자가 되다니 드디 어 옹이나무로 태어난 자신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 감격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인터넷 대부분 게임·오락에 이용 통계청 사회지표 조사 우리나라 청소년의 연간 평균 독서량은 33.5권으로 전체인구의 독서량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인터넷 이용의 대부분은 게 임이나 오락에 할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청이 구랍 26일 발표한 사회지표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중 93.2%가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알며 81.8%는 인터넷 이용이 가능했 다. 컴퓨터 사용가능한 청소년의 평소 1주일간 컴퓨터 사용시간은 평균 11.2시간이었다. 컴퓨터 사용부문은 14세 이하에서는 '게임·오락'을, 15∼18세에 서는 'PC통신 및 인터넷' 을 가장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 터넷 이용자(6∼18세)의 1주일간 인터넷 평균이용은 8.5시간이나 15∼18세 연령층은 9.8시간이었다. 인터넷 이용부문은 '게임·오 락'(80.7%)비중이 가장 높고, 다음으로 '전자 우편'(56.4%), '정보검 색'(40.0%) 순이었다. 청소년의 평균독서권수(1년간)는 33.5권으로 전체인구의 독서량인 13.2권에 비해 20.3권이 많았다. 11∼20권을 읽은 청소년 비율이 가장 많고(16.2%) 다음으로 61권 이상으로 13.5%였다. 성별로 보 면 남자가 39.6권, 여자가 26.8권으로 남자가 1년 간 12.8권을 더 독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읽은 서적별로는 66.0%가 교양서적이며 다음으로 잡지(44.3%), 기타서적(44.3%) 순이었다. 성별로는 남자는 만화 등 기타서적을, 여자는 교양서적, 잡지를 많이 읽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 다. 청소년은 TV프로그램 중 오락프로그램을 가장 좋아해 시청자 중 76.3%가 이를 즐겨보았으며 다음으로 연속극(58.7%), 영화 (54.9%) 순이었다. 반면 선호도가 낮은 프로그램으로는 홈쇼핑프 로그램(0.7%), 교육, 교양(9.9%), 뉴스(25.3%) 등이었다. 청소년이 주말이나 휴일 등 여가활용방법의 첫번째가 TV시청으로 66.3%였 으며 다음이 PC관련(47.3%), 사교관련(43.8%)순이었다. 청소년(15∼18세)의 주요 생활관심사는 학업·진학이 65.3%로 가장 많고 경제(돈) 13.4%, 건강 11.7%순으로 나타났다. 청소년의 고민상담대상은 친구 57.3%, 부모15.2%, 스스로 해결이 14.9% 나 됐으며 교사(수)와의 상담은 1.2%에 그쳤다.
"야생식물통해 세상을 배우죠" 의정부지역 1200여종 자료 수집 시와 연계해 매년 식물도감 발간 그는 오늘도 산에 오른다. 산을 오르지만 그의 목적지는 정상이 아니다. 줄을 지어 올라가는 사람들을 떠나 홀로 숲을 헤메고 다 닌다. 그의 관심은 온통 식물뿐이다. 이름도 알 수 없는 들꽃. 이 들을 찾아 카메라에 담다보면 한나절이 다 가버린다. 의정부여고 이명호교사(사진). 생물을 담당하는 평범한 교사에 머물지 않고 늘 우리 식물에 관심을 갖자고 주장하는 이 지역 야 생식물의 전문가다. 그가 야생식물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추적 한지는 벌써 20년이 넘었다. 전공인 식물생태학에 관한 석사 논문 을 쓰면서 본격적으로 우리 식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남들이 스쳐 지나가는 그 들풀들에 이름을 붙이고 함께 살아가는 자연을 느끼고 싶었다. 제대로된 자료를 만들어보기 위해 사진기술도 따 로 배웠다. 그동안 경기북부 지역을 비롯해 의정부 지역의 산야를 돌아다니 며 야생식물의 생태를 파악하고 본격적으로 자료를 구축하기 시작 한 지 6년째. 그 자료를 바탕으로 의정부교육청과 함께 식물도감 을 제작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의정부 지역 분포 야생식물이 약 1200여종 정도에 이르며 초본이 약 800종, 목본이 약 400종 정도 다. 이 자료들을 중심으로 99년부터는 의정부시와 연계해 매년 한 권씩 `의정부지역 분포 야생식물도감'도 펴냈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이버 상에 그 자료들을 구축한 사이버야생식 물도감(http://www.ui4u.net/nature)을 펴냈다. 의정부 지역은 북부 지방의 식물상과 남부지방의 식물상이 합류돼 매우 다양한 종의 특성을 보여준다. 사이트에는 야생화를 중심으로 촬영한 사진과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도 덧붙여놓고 있다. 그가 근무하는 의정부여고 교정엔 식물 표찰이 예쁘게 붙어 있 다. 모두 그가 정성들여 만든 것들이다. 130여개를 만들었는데 학 생들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섭섭한 마음이기도 하다. 수업시간 에 자신이 만든 도감을 이용해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입시관 련 과목이 아니다보니 폭넓은 소개가 되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다. 이 교사는 "힘들게 모은 자료들은 그대로 아이들에게 생생한 교 재가 된다"며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해 10년후 쯤에 제대로 된 도감하나 펼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형준 limhj1@kfta.or.kr
시작! 그 가슴 벅참으로... 그 늦은 가을날은 마치 봄날처럼 햇살이 따스했다. 전화벨이 울리고 상큼하게 들려오는 저편 여자의 목소리. 공책 속에서 기약 없이 잠만 자던 활자들이 한꺼번에 벌떡 일어서는 듯. 내 교단에서의 삶의 푸념을 섞어서 쓰기 시작한 것이 이렇게 세상의 빛을 보는구나했다. 순간, 부끄럽고, 두렵고, 또 가슴이 벅찼다. 보잘것없음에 부끄럽고,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 날까 두렵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에 가슴이 벅찼다. 아이들이 저만치 보였다. 어쩌면 그들이 어른들을 길들이며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요동치는 그들만의 본능은 협곡을 흐르는 물이다. 그렇게 바다로 가고 있나보다. 사랑스런 아이들, 사랑해야할 아이들, 가까이 다가가 함께 어울려야할 아이들, 나이가 들수 록 멀어져 가는 것 같은 아이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나, 사랑한다면 무슨 일이든 못할 까. 할 수 있다면 무엇이 그리 어려울까. 졸작을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 드린다. 또 이런 기회를 주신 한국교육신문사에 무 궁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한다. /서울 성수공고 교사
내년 2월 지급 예정인 교원 성과급의 경우 일정액은 균등 지급하고 일정액은 초과수업수당 형식으로 차등 지급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교육부는 14일 제6차 교육공무원 성과상여금 제도개선위원회(위원장 최희선 차관)를 열고 이 같은 방안을 제시했다. 교육부는 개선 방안에서 △일정액(50%정도)은 기본 성과수당 형태로 전 교원에게 균등 지급하고 △나머지는 수업시수에 따라 초과수업 형태로 차등 지급하되 지급 금액의 상한만 지침으로 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교장, 교감, 교육전문직 등 관리직에게는 타 직종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현행 성과상여금 제도를 유지하되 교원의 특수성을 반영해 평가기준을 일부 변경해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인별 지급기준액 중 전체 기본 성과수당 지급 비율은 시·도교육청, 교원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해 별도로 정하고 지역·학교별 또는 담당과목, 보직여부 등에 따라 수업시수가 차이가 있으므로 학교별로 기준수업시수를 자체적으로 마련토록 할 계획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이와 관련 중앙인사위 김동극 급여정책과장은 "교원단체는 연구·연수 수당으로 일괄 지급을 원하고 있으나 이는 성과급의 취지와 배치되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교원을 제외한 공무원 여론조사 결과 일정액은 차등 지급하고 일정액은 균등 배분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라며 교육부의 성과급 개선 기본 방향을 지지했다. 그러나 김 과장은 "차등 지급 기준이 수업 시수 하나 일 때 과목 및 보직에 따른 형평성 등 여러 문제가 있을 것"이라며 신중한 검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우형식 교원정책심의관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교사 직무평가 기준이 개발되고 정착될 때까지는 교사의 다양한 직무 중 가장 기본적이고도 객관적인 수업시수를 기준으로 성과상여금 차등 지급을 위한 업무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교총 우재구 교권정책국장은 "연구·연수수당으로 하되 지급 기준은 개인 호봉별 동일지급율을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제도개선위원회는 교육부·중앙인사위 간부와 교원 3단체 대표 등 15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날 위원회는 교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다음 회의에서 재론키로 했다.
정부예산 심의 막바지 내년도 교육예산안이 국회 예결위 심의과정에서 논란을 빚고 있다. 현재 국회 예결위에 상정된 내년도 교육예산안(세출예산 기준) 은 올 보다 7422억(3.4%) 늘어난 22조 3250억원으로 당초예산과 비교할 때 11.5%에 해당하는 2조 3062억이 증가한 규모다. 이 안은 국회 교육위 심의과정에서 당초 정부예산안보다 35개 사업에서 1772억이 증액된 것. 또한 예결위 종합 정책질의시에 도 교육위의 35개 증액사업에 추가로 353억 증액 외에 실고 내실 화 등 6개 사업에 325억의 증액이 거론된 바 있다. 한완상 부총리는 지난 11일 열린 예결위 계수조정 소위에 참석 해 증액사업 중 3개 사업은 특별히 확보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부총리가 강조한 3개 사업은 ▲유·초등교원 보전수당 가산 금 473억 ▲5·18 민주화운동 관련 해직교수 보상액 83억 ▲보직 교사수당 및 보건활동수당 57억 등이다. 유·초등교원 보전수당 가산금의 경우 현재 중등교원과 비교할 때, 월 2만2000원에서 4만7000원까지 적게 지급되고 있어 14만 5973명의 유·초등교원에게 월 평균 2만7000원을 인상해 차액을 보전하자는 것. 5·18 민주화 해직교수 보상은 80년 당시 해직된 76명의 교수 에게 해직기간 동안의 보수를 보상하자는 것. 보직교사수당 및 보건활동수당의 경우 담임수당은 올 대비 월 2만원 인상될 예정 이나 3만 2888명의 보직교사 수당은 월 1만원 인상분만 반영돼 형평성 차원에서 동일한 인상액 지원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또 5138명의 보건교사 활동수당은 주당 6시간의 보건교육을 담 당하는 외에 업무증가에 따른 수당을 지급하자는 내용이다. 국회 예결위는 계수조정소위 활동 등을 거쳐 임시국회 회기내 에 2002년 정부예산안을 최종 확정하게 된다. /박남화
교대생 수업복귀 결정 교육부의 `중초교사' 임용계획에 반발, 지난 10월부터 시작된 교대생들의 집단 수업거부가 두달만에 종료됐다. 전국교대생대표자협의회(회장 김구현)는 16일 "교육부가 최근 교대협의 요구사항인 초등교육발전위 구성에 동의했고 유급위기 등을 감안해 수업거부 투쟁을 중단하고 수업에 복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교육부는 앞으로 초등교육 발전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초등교육발전위원회를 내년 1월중 구성해 운영하기로 했다. 또 초등교원의 중장기 수급계획을 수립하며 임시교원양성소 및 보수교육 관련규정을 폐지, 보완하는 내용의 서한을 교대협에 보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