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두 달 반만 지나면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가 실시된다. 선거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민주공동체에서 중차대한 행사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분명 시민이 정치공동체의 주인이 된다는 것에 대한 의미가 가장 뚜렷하고 엄숙하게 드러나는 이벤트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생각해보면 선거에는 다른 측면도 있다. 선거란 운동경기와 비슷한 치열한 경쟁의 장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다른 두 편으로 나뉘거나 혹은 세 편, 네 편으로 나뉘어져 격렬하게 다투는 경기이며, 바로 이 다툼의 과정을 거쳐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다. 이처럼 승패가 뚜렷하게 갈리기 때문에 선거는 뜨거울 수밖에 없다. 너와 내가 함께 승자가 되는 ‘윈윈 게임’이 아니라 너의 불행이 내게 행복이 되는, 이른바 ‘제로섬 게임’이기에 온갖 쟁점들을 놓고 무한대로 격돌하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치열하게 다툴만한 쟁점들이 수두룩하다. 이념적으로도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가 극렬하게 다투고 있는가하면 지리적으로도 수도권과 지방, 혹은 영남권과 호남권의 균열이 있으며, 세대별로 보아도 자녀세대와 부모세대가 사사건건 맞서고 있다. 전 방위 다툼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경합과 분열, 대치는
교육은 ‘인권’ 보다 훨씬 큰 ‘전인적’ 문제 인성발달단계 맞춰 적절한 권리 가르쳐야 서울과 경기, 강원교육청 등 진보교육감들의 체벌전면금지 조치가 확산되고 있다. 진보교육감들은 체벌이 ‘교육적 목적’을 지녔더라도 금지돼야 할 사안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법률에 의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타인에게 물리력을 행사하는 행위는 법치주의에 반하는 ‘폭력’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체벌 전면금지는 시기상조이고 일방적으로 추진된 졸속 정책’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체벌금지와 인권조례를 둘러싼 논란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학생인권은 중요하다. 하지만 학교는 인권문제를 넘어 인성전반에 걸친 전인교육을 담당하는 곳이다. 이런 점에서 진보교육감들이 교육 어젠다로 학생인권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꼬리가 강아지를 흔드는’ 상황을 방불케 한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어야지 꼬리가 강아지를 흔들어서야 되겠는가. 교육과 인권은 물론 연관이 있다. 그러나 동일한 것은 아니다. 인권은 교도소의 죄수에게도, 병원의 환자에게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의 학생에게도 있는가하면, 교사에게도 있고 학부모에게도 있다. 그러다보면,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인권 등, 상호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