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의 법통을 계승한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서 보듯 임정은 우리의 뿌리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나라의 근원을 찾아보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이 있을까.
본지는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과 ‘심산김창숙기념관’ 관계자, 대학생 홍보 서포터즈들과 7~12일 임정 유적지를 중심으로 대한 독립운동의 흔적을 따라 걷고자 중국을 방문했다. 일정의 첫날은 상하이(상해), 마지막 날은 충칭(중경)이다. 이는 실제 임정 시작과 끝의 의미기도 하다.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머나먼 여정
8일(이하 현지시간) 상하이시 황푸(황포)구에 위치한 임정 유적지를 찾았다.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사용된 3층 규모의 청사로 김구 선생의 집무실, 임정 요인 숙소, 전시실 등이 마련됐다.
20위안(약 4000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음에도 최근 핫스폿으로 떠오른 ‘신티엔디’(신천지) 인근이라는 접근성 덕분에 연 수십만 명이 찾는다. 시티투어버스의 주요 코스 중 한 곳으로 선정됐을 정도다. 이 때문에 앞으로 인기가 높아질 가능성이 더 커졌다.
1932년 4월 투사들이 이곳을 떠나야 했던 이유는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로 거세진 일제 탄압 때문이다. 그들의 근거지는 항저우(항주), 전장(진강), 창사(장사), 광저우(광주), 류저우(류주) 등을 거쳐 1940년 충칭에 자리 잡기까지 4000㎞에 달하는 거리를 10차례 가까이 옮겨야 했다. 이후 충칭 임정은 1945년 광복까지 유지됐다.
마지막 임정의 방문을 위해 9일 상하이발 비행으로 약 3시간을 날아서야 충칭에 도착했다. 조국 독립을 위해 굴하지 않고 모든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임정을 지켜냈을 선열들이 떠올랐다. 정착하고 싶어도 먼 곳으로 밀려나고 떠돌아야 했던 현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비참함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10일 오전 충칭시 위중(유중)구 치싱강(칠성강) 롄화츠(연화지) 거리를 향했다. 이는 충칭에서만 4번째 청사로 1945년 1월부터 그해 8월 일제의 패망까지 사용된 곳이다.
설렘을 안고 향했으나 예상치 못한 일에 부딪혔다. 도착하니 우천으로 휴관한다는 알림장이 붙었다. 마당만 밟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지인 가이드는 전날 우리가 충칭 땅을 밟기 직전 쏟아진 비 때문이라고 했다. 도시 곳곳이 물에 잠길 정도였다.
허탈하게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학생들은 준비해 온 태극기를 손에 들고 단체로 흔들기 시작했다. 휴관 덕분에 다른 방문객도 없겠다, 대학생들은 대문 근처에서 ‘태극기 물결’을 연출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아쉬움 뒤로 하고 태극기 흔들어
탐방단의 사전 조사 자료에 따르면 청사는 3층 건물로, 총 5채의 연결 구조를 복원해 박물관 형식으로 운영 중이다. 1층에는 회의실, 응접실, 임정 요인들이 사용하던 가구, 집기류 등이 전시됐다. 2층은 김구 주석 집무실과 각 부서 사무실이 복원됐다. 광복군 관련 자료와 작전 지도 또한 비치됐다. 3층에는 생활공간, 임정 요인의 거처가 재현됐다.
오랜 기간 민가·학교·여관 등으로 사용되던 청사는 1990년대 초 문헌 및 구술 사료를 바탕으로 복원 과정 후 1995년 광복 50주년에 맞춰 공개됐다. 현재 충칭시에서 시급 문물보호단위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상하이의 임정 유적지가 시급이 아닌 황푸구 문물보호단위인 것과 비교하면 더 높은 신분이다.
이번 탐방은 상하이와 충칭에서 임정과 관련된 유적지를 찾고 또 찾으며,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독특한 방식으로 구성됐다. 그렇게 5일간 방문한 장소는 총 36곳이다.
1921년 임정 신년회를 개최한 후 단체사진을 촬영한 상징적인 장소로써 보존된 ‘윙온(영안)백화점’을 방문하고, 임정 초기 크게 활약했던 김창숙이 쑨원(손문, 중국에서는 별명인 손중산으로 알려짐)에게 독립운동 등 후원을 약속받은 장소인 ‘손중산고거기념관’ 등도 둘러봤다.
충칭에서도 임정 요원이 장제스(장개석)와 마오쩌둥(모택동)을 만났던 면담 장소들, 요원들의 만남과 이별의 장소였던 차오티엔먼(조천문)부두를 방문한 것도 그 이유다.
그 과정 중 임정과 중국 간의 관계가 눈길을 끌었다. 중국과 타이완의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우리나라 독립운동과도 연관이 깊었다는 것이다. 특히 쑨원의 아내 쑹칭링(송경령)과 장제스의 아내 쑹메이링(송미령)이 자매 관계였고, 신식교육을 받아 영어에 능숙했던 만큼 남편의 외교활동을 도와 우리나라 독립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이야기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현지에서만 가능했던 입체적 탐방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 역사와 임정에서 큰 영향을 미친 윤봉길 의사와 김창숙 선생과의 흔적들을 둘러보니 독립운동사는 더욱 입체적으로 채워졌다.
윤 의사의 한인애국단 입단식이 거행된 안공근(안중근 의사 친동생) 거주지, 상하이 의거 당일 김구 선생과 시계를 교환한 김해산 집, 김창숙 선생이 상하이에서 일제에 체포된 공제병원, 그 뒤 한국 압송 전까지 억류됐던 구상하이일본영사관 등은 약 100년 전의 장면을 생생하게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특히 아버지 이어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김창숙 차남 김찬기의 자녀 김위(87) 씨와 김주(84) 씨도 줄곧 동행해 각자의 조부와 부친 간 나눴던 일화까지 더했다. 갈수록 이야기는 풍성해졌다.
매헌·심산기념관 대학생 서포터즈들은 이를 바탕으로 홍보용 영상들을 만들고 있다. 탐방 중에도 틈틈이 조별 아이디어 회의를 거쳐 현재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른 상황이다. 다음 달 2일 최종 발표 예정이다.
임미선 매헌기념관 학예과장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특별한 행사를 위해 기획 단계부터 학생들에게 독립운동 유적지를 최대한 보여주고, 최대한 이야기를 연계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서포터즈 학생의 영상이 국민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