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해선ㅣ 경제교육연구소 소장(www.haeson.net) 일본에 발목 잡힌 한국의 무역 우리나라는 일본을 상대로 하는 상품 무역에서 단 한 해도 연간 흑자를 내지 못해, 만년 적자국 신세다. ‘일본을 상대로 상품을 수출하고 받은 대금’에서 ‘일본으로부터 상품을 수입하고 내 준 대금’을 빼면 그 결과가 대일 상품수지(무역수지)가 된다. 대일 상품수지는 수출액보다 수입액이 항상 더 커서 해마다 적자를 보고, 매년 적자폭도 커지고 있다. 1970년대에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적자액은 145억 달러. 1980년대에는 353억 달러, 1990년대에는 1001억 달러로 대략 10년에 3배씩 규모가 늘어났다. 2000년대 들어와서도 대일 무역적자는 2000년 114억 달러, 2001년 101억 달러, 2002년 145억 달러, 2003년 190억 달러, 2004년 245억 달러로 매년 연간 적자 신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해마다 적자를 크게 보면서 적자 누적액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일 두 나라가 대한민국 수립 후 국교를 재개한 것이 1965년. 그때부터 2003년 말까지 38년간 누적된 대일 무역적자가 무려 2070억 달러다. 달러 당 1000원으로 환산하면 우
박경민 | 역사 칼럼니스트 cafe.daum.net/parque 우선 동양을 살펴보자. 고대 4대문명의 발상지가 모두 그러하듯, 치수사업은 공통적인 중요 과제였다. 황하 문명의 경우, 치수사업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공로로 순 임금으로부터 임금 자리를 물려받은 우 임금에 이르러 역사적으로 처음 등장하는 고대국가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으며 이를 ‘하(夏)나라’라 부른다. 유물로 실증된 중국 최초의 국가, 은(殷)나라 공자의 ≪시경(詩經)≫에 나오는 하나라는 기록상으로만 존재하지만 왕권이 강화되자 비로소 왕위세습이 이루어졌다. 기원전 1500년경에 이르러 제17대 걸왕(桀王)은 말희에게 흠뻑 빠져 신하들과 ‘주지육림(酒池肉林)’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위하여’를 외쳐댔다. 군주와 신하가 똑같으니 나라가 어찌 되었겠는가! 하나라는 결국 그들과 앙숙이었던 상족(商族)에 의해서 멸망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은왕조(殷王朝)’의 시작이다. 은나라는 상족에 의해서 시작되었으므로 ‘상(商)나라’라 일컬어지며, 470여 년을 지속해 온 최초의 고대국가라 하더라도 중국 역사상 최초의 폭군 걸왕 때문에 멸망하고 말았다. 하나라와 은나라의 성격상의 차이는 하나라가 기록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