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는 변강쇠와 옹녀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함양과 남원 지역의 장승을 찾아갔었지요? 이번 호에서는 돌장승을 중심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돌은 나무에 비해 내구성이 뛰어나기에 처음 조성 당시의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일부 장승은 조성했을 당시의 날짜를 기록해 두어 장승의 변천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기도 하지요. 그에 반해 나무장승은 일정한 시간을 두어 교체를 해야 하기에 장승을 만드는 사람에 따라 저마다 개성을 뛴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장승에 대한 자료를 뒤지다가 다음 ‘장승코’라는 시를 찾아내곤 그 여운이 진하게 남아 소개하고자 합니다. 예로부터 코는 남성을 상징하였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돌부처의 코를 갉아 마시면 득남한다는 속신(俗信)을 갖고 있었지요. 그런데 1931년 7월 1일자 동아일보 문예란에 박 금이라는 사람이 쓴 시에서 장승의 코는 다른 용도로도 사용이 된 듯합니다. 장승코 - 洪原아리랑 朴 錦 낙태약 된다고 저 장승코를 어제 밤 비온 뒤 또 글거갔소 오목오목 들어간 고무신 자국 키 작은 여자가 발버팀쳤소 우뚝하던 그 코가 없어지고도 그 자리가 한 치나 패어드러났네 캄캄한 밤중타서 찬칼을 품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는 직업인이 아닌 '선생'의 길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적잖은 도전과 위로를 주는 영화이다. 박준용 | 한양대 강사, 문화평론가 불가능한 완성에 맞서 투쟁하는 삶 흔히 사용하는 속담에 말을 물가에 까지 이끌 수는 있으나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말이 목이 마른지 어떤지를 분간하여 물가로 인도하는 사람조차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예로부터 교사에게 기대되는 여러 가지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아이들의 잠재적 가능성을 찾아내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 교육현실에서 교사가 학생 개개인의 특별한 재능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발전하도록 돕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지나치게 많은 학생 수는 물론, 교사로 하여금 아이들에게만 집중할 수 없게 하는 과중한 업무와 입시 위주의 실용주의적 교육환경 등등은 교사를 인생을 먼저 살고 경험한 '선생(先生)'의 삶이 아닌 단순한 직업인의 길로 전락시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의 삶, 곧 그네들의 생각과 태도를 바람직한 방향성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긍정적인 가능성으로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무덤의 주인인 안티오크 두상* 박하선 | 사진작가, 여행칼럼니스트 산 정상에 남아있는 왕국의 자취 터키의 드넓은 아나톨리아 평원을 지나 동부로 향하다 보면 건조한 스텝 지대가 펼쳐지면서 군데군데 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해 앞길을 막기 시작한다. 이러한 산들은 거의가 석회암 질이어서 키가 작은 나무들만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을 뿐이다. 또 어떤 곳에는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들고 크고 작은 바위들만 뒹굴고 있어 삭막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것들도 있다. 이렇듯 이 모두가 한눈엔 별 볼일 없어 보일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산들 중에서 그냥 지나치지 못할 산이 하나 있다. 그게 바로 '넴루트 다이'다. '다이'라는 말은 이곳 말로 '산'을 뜻하기 때문에 '넴루트 산'이라고 해야겠다. 이 넴루트 산은 해발 2150m로 역시 삭막한 바위투성이의 산이다. 이 정도 이상의 높이를 갖은 산은 동부 터키에는 많다. 그렇다면 만년설을 이루고 있을 정도로 높은 것도 아니고, 또 수려한 계곡이나 숲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닌데 무엇이 이 넴루트 산의 매력이어서 뭇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일까.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특이하게도 이 산 정상에는 수수께끼의 고분과
박경민 | 역사 칼럼니스트(cafe.daum.net/parque) 충돌할 수밖에 없는 두 세력 문제(文帝)는 북주(北周)로부터 정권을 넘겨받아 새로운 국가를 건국하면서 국호를 수(隋)로 삼았다. 이는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하는 국호였다. 서기 589년 문제는 마지막 남조 국가인 진(陳)을 멸망시키고 무려 370년 만에 중국을 재통일했으나, 역사가 주는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진나라의 시황제와 거의 비슷한 길을 걸었다. 문제는 짧은 기간에 통일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지는데 주력하여 관료의 등용문인 과거제를 비롯하여 본격적인 율령국가 체제를 완성시켰다. 중국에서 과거제도는 청나라가 멸망하기 직전까지 약 1300년 간 지속되었다. 604년 양제(煬帝)도 부황(문제)의 국가건설 의욕을 그대로 이어받아 대규모 건설 사업을 강행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전체 길이 1800㎞에 달하는 대운하를 비롯한 여러 가지 토목사업이었다. 610년에 완공된 대운하 덕분에 중국에서는 물류혁명이 일어났다. 즉, 항저우[杭州]에서 베이징[北京]까지 선박수송이 가능해졌으며 강남의 풍부한 쌀을 비롯한 곡물을 화북지방까지 수송할 수 있어 중국을 명실상부한 통일국가로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대규모 토
신동호 | 코리아 뉴스와이어 편집장 바람직한 식사는 채식과 육식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인간은 초식동물이 아닌 잡식동물이기 때문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고기 좋아하는 원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백만 년 동안 인류의 고기 섭취 비율은 장소와 계절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대개 20∼40%였다. 인간의 고기 섭취 비율을 20%로 낮게 잡아도, 이 비율은 235종의 영장류 가운데 가장 높다. 진화의 레이스에서 최근 인간과 갈라져 나간 침팬지도 고기 섭취 비율이 4%에 불과하다. 육식 위한 과잉 사냥으로 동물 멸종 인간의 진화를 설명하는 유력한 이론으로 '사냥 학설'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냥과 육식을 통해 언어와 사회적 협동 관계가 발달하고, 영양 상태가 좋아져 뇌가 커졌다는 것이다. 인류학자들이 원시 사회의 표본으로 삼고 장기간 연구를 해온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쿵족은 하루 일과의 40%를 사냥을 하거나 또는 사냥 얘기로 보낸다. 이들 사회에는 '고기 고프다'는 단어도 있다. 인간이 고기 좋아하는 원숭이로 진화하면서 지구에서는 매머드 등 대형 포유류들이 대량 멸종했다. 그 원인도 사실은 워낙 인간이 사냥과 육식을 즐겼기 때문이다. 그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