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지인의 홈페이지에 이렇게 적혀있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말하고 싶을 때는 메신저 목록에 있는 안 친한 누구에게라도 말을 걸고 싶다. 정말 말하고 싶다.”라고 말이죠. MSN. 그러니까 다들 ‘엠에센’이라고 부르는 걸 제대로 하기 시작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메일보다 실시간으로 용건을 주고받을 수 있으니, 더 편하고 빠른 걸 찾는 세상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사실, 이 MSN 사용을 최대한 미루어 온 이유에는 녀석에 대한 초창기의 안 좋은(?)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로그인을 하는 순간, “뭐야, 지금 출근한 거야?”(취재를 다녀오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괜히 찔리는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라는 메시지를 읽어야 했고, 점심시간인 12시가 넘어도 로그인이 되어있으면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는 모양이지?”라는 친구의 재미없는 농담도 날라 오기 일쑤였으니까요. 나름 소심한 제가 녀석을 컴퓨터에서 파내 버린 건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오랫동안’ 메신저와는 담을 높게 쌓고 지냈다고 해야 할까요. 요즘엔 웹 카메라를 달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친구도 있지만 거기까진 아직, 좀 더 참아보려고 한답
선돌이 여근을 만났을 때 선돌은 대체적으로 청동기시대 산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선돌이 청동기 유물로 대표적인 고인돌과 결합한다면 어떨까요? 경북 영주로 떠나 봅시다. 시내 휴천동에서 고인돌 2기와 선돌 1기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선돌의 높이는 약 1.5m로 그리 크지는 않으며 고인돌에 사용된 덮개돌 두 점이 제 자리를 잃은 채 바닥에 엎어져 있습니다. 덮개돌엔 성혈(性穴)이 몇 점 보입니다. 성혈은 여근을 상징하며 선돌은 남근을 상징하니 음양의 조화가 완벽합니다. 이렇듯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문화재인 지석묘가 선돌과 나란히 서 있는 것은 이례적인 경우라 하겠는데, 순흥 땅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선돌은 5m 간격을 두고 2기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마을 입구 소나무 숲에 위치해 있는데 오른쪽에 서 있는 선돌 앞에도 덮개돌이 보이고 그 표면에 역시 성혈이 보입니다. 마침 인근에 여근동(女根洞)이라는 마을이 있어 그 여근에 대해 남근을 상징하는 선돌을 세운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여근과 관련해서 선돌이 세워진 것으로 해석하는 이러한 사례로 부산 기장군 철마면 선돌을 들 수 있습니다. 선돌 관리를 맡고
김철수 | 경남 거제중앙고 교사, 사진작가 금빛 물결 출렁이는 넓은 갈대밭 넓은 갈대밭과 끈적끈적한 머드팩의 모태, 순천만 갯벌! 육지의 물과 바다의 물이 만나 하모니를 이루며 만든 순천만 갯벌은 자연늪이라기 보다는 자연습지이다. 오늘도 8백만 평의 광활한 순천만 갯벌은 사람을 포함한 많은 생물들에게 생존의 의미가 되고 있다. 순천만은 여수반도와 고흥반도를 다리 삼아 깊숙이 들어와 형성된 만으로 길이가 동서 22㎞, 남북 30㎞다. 만의 입구에 적금도, 낭도, 둔병도 등이 있어 빠른 물살을 줄이는 역할을 하나, 워낙 수심이 얕아 조석 간만의 차이가 심하게 나타난다. 미네랄이 들어있는 영양수를 제공하는 동천, 이사천, 해룡천이 남해바다에서 밀려온 파도와 만나는 기수역에서 토사의 퇴적이 일어났다. 이렇게 만들어진 더 넓은 갯벌에 사람들은 염전을 만들었고, 천일염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염전은 가을이면 노란물을 들이는 농토로 변신했다. 농토와 갯벌 사이에 둑을 쌓아 둘을 단절시켰지만 기수역의 퇴적작용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밀려온 토사들은 더욱더 바다 멀리 나아가 쌓여 갯벌의 면적을 넓혀 왔고, 앞으로도 더 넓어질 것이다. 순천만은 바다뿐만 아니라 갯벌, 염생식물이
심영옥 | 경희대 겸임교수·미술사 경남 진주의 촉석루 입구에는 '실크박물관(1층)'과 '향토박물관(2층)'으로 구성된 진주향토민속관이 있다. 이 향토민속관은 '태정박물관'이라 불리기도 한다. 태정은 김창문의 호다. 김창문은 원래 진주에서 양화점을 경영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6.25 한국전쟁 후 어느 날 자신의 가게 앞에서 엿을 팔던 엿장수 지게 위에 내팽개쳐져 있던 경첩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함부로 버려진 것을 매우 안타까워하였다. 그 후 40여 년 동안 서양가구의 보급으로 하찮게 버려진 수많은 장석과 가구, 생활민속품을 수집했고, 수집품은 향토박물관의 토대가 되었다. 평범한 시민의 정성어린 집념이 자칫 사라질 수 있었던 우리의 아름다움을 되살린 것이다. 학문적인 내용이나 사상을 제쳐놓고서라도 의기 논개가 몸을 던져 나라를 도운 것처럼 태정도 자신의 사업을 멀리하며 한국미의 뿌리를 만들어 놓은 것은 어쩌면 우리 민족에게 흐르는 예술혼 덕분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한 사람의 집념으로 수집된 장석은 우리 전통 가구의 아름다움은 물론 장석들의 다양한 문양을 통하여 옛 선조들의 미의식을 느낄 수 있게 해주어 더욱 의미가 크다. 장석(裝錫)이란 자연미와 인공미를 최대
박준용 | 한양대 강사, 영화평론가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은 강원도 탄광촌의 도계중학교에 임시 음악교사로 부임하게 된 한 트럼펫 연주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배우 최민식이 연기하는 주인공 현우는 교향악단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류에서 밀려난 트럼펫 연주자. 재능은 없어도 자존심은 있어 자괴감에 괴로워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처지도 못되면서 음악 학원에서 용돈이나 벌라는 친구의 말에는 자존심 상해한다. 돈을 위해 음악을 하면 안 된다고 믿는 그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밤무대에 서는 일만은 끝내 피하려고 한다. 그런 주인공 현우에게 겨울은 길기만 했다. 교향악단 연주자를 꿈꾸었던 미래는 암담할 뿐, 현실의 벽에 부딪쳐 보내야만 했던 연인은 주위를 맴돌며 맘을 아프게 하고 나이든 홀어머니에게 효도도 못하고 걱정만 끼쳐드리는 형편이다. 그에게 인생은 늘 그렇게 캄캄한 겨울일 것만 같았다. 탄광촌에서 만난 순수한 열정 하지만 꽁꽁 언 땅 밑에서도 자연은 새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듯이 겨울은 고요히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떠나보낸 옛 연인 연희(김호정)가 결혼할지도 모른다고 말하던 날, 현우는 강원도 탄광촌에 있는 중학교 관악부 교사 자리에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