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기억 중에 이런 것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지리 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아프리카 지역의 열대우림 기후 풍토와 자연환경을 설명하는 중이었다. 우리가 흥미를 느낀 것은, 사람이 이것에 물리면 한없이 잠을 자게 되는, 이른바 수면병을 일으킨다는 흡혈 파리인 체체파리(Tsetse fly)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우리들의 흥미를 확인하신 선생님은 약간의 신명을 띠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질문인 듯 의문인 듯 말을 했다. “선생님, 그거 아프리카에 직접 가보시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순간 선생님의 낯빛이 달라졌다. 그 당시는 텔레비전이 귀한 시절이고, 자연 다큐멘터리 동영상 하나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학생으로서는 품어봄직한 의문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가 보지도 않고 아프리카를 다 아는 척 말하는 것 아니냐’는 다소 불손한 태도가 묻어나는 질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질문은 ‘지식에 대한 의문’이었지만 그것은 곧 ‘선생님 인격에 대한 의문’으로 오해받기에 족한 것이었다. 당신의 지식이 신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셨는지 선생님의 신명은 일시에 사그라졌다. 선생님은 “건방진 녀석!” 하고 짧게 되뇌시고는, 문제의 친구를 앞
2010년 한 해를 돌아보면 정책을 입안해 밀어붙이고 있는 교육주체자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교육객체가 된 구성원들은 즐거운 나날보다는 우울한 나날들이 많았다. 학교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사건들의 연속이었고 또 국민들 역시 혼란스럽고 어지러웠던 한 해였다고 평가한다면 너무 지나칠까. 교육과정 선도학교(시범학교) 학교인 S학교 H교장은 2010년 11월 10일 서울대에서 열린 ‘2009 개정 교육과정과 수능개편안,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교장으로서의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중학교의 경우, 거의 모든 과목이 필수인데, 한 학기 8개 과목으로 20% 자율증감하면서 운영해 보았더니 집중이수제를 안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교육에서 학생들의 수업부담을 줄이면,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라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주장은 천만의 말씀이고 과목수를 줄이면 학생들 수업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것도 절대 그렇지 않다.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논리를 기본으로 깔고 만든 것이 ‘2009 개정 교육과정’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라고 시범운영 1년간의 소회를 밝혔다. 이 교장 선생님의 고백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교과부는 교육과정 관련 보도자료 Q A에서
2010년 서울교육, 참 바빴다. 옳고 그름으로, 흑백으로 귀결되지만 않는다면 그간의 논쟁과 갈등의 깊이만큼 새해의 희망은 크다. 교육의 관점 변화, 교사의 역할 변화가 이렇게 강조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상대적으로 현장의 어려움도 만만치가 않다. 커다란 황금알이라도 낳으려는지 산통이 크다. 최근엔 언론 매체를 통해 교권‧수업권 침해와 관련된 아이들의 어처구니없는 행동들이 자주 보도된다. 괴로워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나오고, 교권수호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단호한 의견이 덧붙기도 한다. 현재의 상황을 빚어낸 문제는, 우리 교육의 현실은 잘못되었으니 바꿔야 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시대적 요구에 발맞추기 위해 일전불사의 결연한 각오로 제시하는 단절과 비약의 교육정책들이다. 과잉(過剩)과 과속(過速)으로 쏟아지는 정책들이 부담스럽다. 정말 최선의 처방이라고 화려하게 혹은 간곡하게 설득도 하며 제시되었던 지난 정책들이 몇 년 못 가 무용지물이 되고 가차 없이 폐기되는 것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 가. 현장에서 는 또 몇 년 후를 생각하며 대처해야 할지, 학생이나 학부모 대하기가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막막하기만 한다. 예측하기 어렵고 확신하기 어려운 미
좋은 직업 찾기 위한 ‘교육’ 더 이상 의미 없어 사랑‧인품‧관용 등 교육본질 목표 회복해야 2011년 새 날이 밝았습니다. 올 해는 또 어떤 일들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지난 50여 년간 서구 사회가 200~300년에 걸쳐 이룩한 경제 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했습니다. 정말 자랑스러운 역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압축 성장에 따른 그늘도 서구에 비해 훨씬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높은 자살률입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전 연령층에 걸쳐 OECD 국가 중 가장 높고, 특히 노인 자살률은 OECD 평균의 8배나 높습니다. 이러한 높은 자살률은 압축 성장에 따른 압축 모순의 표현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현대 문명은 근대 계몽주의자들이 설계한 것입니다. 그들은 세 가지 기둥, 즉 분리 독립된 개체로서의 개인과, 그 개인이 가진 최고의 능력으로서의 이성, 그리고 개인의 자아실현의 수단으로서의 노동을 중심으로 현대 문명을 설계하였습니다. 그리고 분리 독립된 개체로서의 인간이, 자신이 가진 이성을 활용하여 과거의 불합리한 제도와 관습을 철폐하고, 과학 기
고려대 사범대학(학장 강선보)가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한국장학재단이 주최한 교육봉사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22일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고려대 사범대학은가평군 관내 중고교 진학지도 교사를 대상으로 고려대 교수진의 현장연수와 입시정보교환, 사범대와 교육대학원재학생이 멘토(Mentor)로 이뤄지는 가평 중고생들과의 사이버 멘토링(Mentoring) 실시로 학생들의학력증진에 공헌한 점이 높이 평가됐다. 강선보 학장은 “현재 25명의 멘토가 50명의 멘티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며 “오프라인 멘토-멘티 관계에서 할 수 없는 다양한 질문과 답변, 공개강의, 상담, 진로지도까지 이루어지고 있으며 교재도 개발하는 등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반영된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공모전은 교육봉사의 중요성을 전파하고 국민적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학습지도, 방과 후 지도, 멘토링 3개 분야 총 20팀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대상은 '마을ⓝ도서관'이 받았다.
언어와 폭력 언어폭력의 결과는 행동의 폭력이다. 언어를 바르게, 곱게, 부드럽게 그리고 온아하게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에서는 안정감을 느낀다. 요즘 아이들이 매체를 통해 얻는 언어의 저속함이 가정에서 부모가 표현하는 말의 부드러움 속에서 정화되지 않는 것은 부모와 아이의 대화의 단절에서 오는 한 현상이다. 아이가 쓰는 억센 억양이 나타나도 부모는 아이가 좀 화가 났겠지. 저 아이는 그래 하고 단정해 버리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행복한 가정에서 나타나는 감성은 아이의 언어에서부터 드러나기 마련이다. 깊은 산속에서 스며나는 산소는 대도시에서 품어나는 공기와는 다르듯이, 아이의 감성은 부모의 감성으로 나타난다. 밥상머리 교육이 좋다고 한 것도 어린 시절의 부모의 영향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절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요즘 매스컴에서 연속적으로 터지는 교사 폭행과 폭언은 과연 학생들의 매스컴 영향으로만 돌려야 할까? 아무리 매스컴에서 폭력이 난무한다 하여도 폭력에도 정도라는 것이 있다. 자신을 길러 주는 자를 무참히 짓밟고, 자기를 지키는 자를 업신여긴다면 그 사회는 이미 병든 사회에 지나지 않다. 썩고 병든 교실이 이제는 막장교실로 표현되고 있는 실정이
각종 언론에서 흔히 교총과 노동조합을 비교하곤 하는데 교총과 노동조합은 직접적인 비교대상이 아니다. 교육법 제73조에 "교원이라 함은 각 학교에서 원아(園兒), 학생을 직접 지도·교육하는 자를 말한다."라고 명기되어 있고 세부 항을 보면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 총장, 교장, 교감, 원장, 원감, 교사, 교수 등 모두를 포함한다. 일부 노동조합에서 창립 당시 교직원노동조합이라고 명명했는데 교직원은 교원과 직원을 모두 포함한 개념으로 6급 이하 공무원과 교사만이 가입할 수 있는 노등조합의 명칭으로는 부적절하고 교사노동조합 등으로 개명해야 하며, 대한민국에서 교원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전문직단체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유일하다. 유일한 전문직 교원단체인 한국교총이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선 교총 내부에서부터 노동조합과의 차별화를 내세워야 한다. 지난 18일 한국교총에서 있었던 교원연수지원단 연수회에서 한 선생님이 “교총은 관리직단체라는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 교사가 과반수이고 관리직은 일부라며 강조하는데 그 방법을 보면 오히려 단점을 강조한다”라는 지적이 있었다. 교총은 관리직도 포함한 모든 교원을 아우르는 단체라는 장점은 부각 시키지 못한 채 일부 노동조합에서
이맘때가 되면 늘 세월의 빠름을 실감한다. 세상의 물결대로 흘러가지 못하는 인생살이를 살다보니 이룬 일도 없이 또 새해를 맞이한다. 한 해를 돌아보는 길목에서 지난 1년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즐거웠던 일도 많았고, 고마운 사람들도 참 많이 만났다. 호사다마가 인생살이인데 어찌 좋은 일만 있겠는가. 초등학교 동창생 둘이 하루 사이로 저 세상으로 갔다. 청주와 서울이라는 다른 울타리에 살던 두 친구가 같은 시기에 암에 걸린 것을 알았고, 같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며, 투병 끝에 하루를 사이에 두고 같은 영안실과 화장실을 거쳐 같은 납골당에 나란히 안식처를 마련했으니 인연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이 먹으며 손을 놔서는 안 될 게 친구라는데 하나둘 제풀에 멀어져간다. 곶감 빼먹듯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한 해, 두 해 쓰면서 어영부영 세월을 축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왠지 흘러가는 세월에서 내리막길의 수레바퀴만큼 빠른 속도가 느껴진다. 공자가 하늘의 명을 깨달았다는 지천명(知天命)을 보내면서 이제야 인생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는다. 살아온 날들 중에선 가장 늙은 지금 이 순간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 중에선 가장 젊은 순간이란다. 역경이 행복을 얻기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