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교육감과 보수 교육감. 우리 학생들은 이 둘의 대립 구도를 탈권위주의 교육관과 권위주의 교육관으로 이해한다.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 이론을 빌려 표현하면 진보적인 전자는 ‘자상한 부모’의 프레임으로, 보수적인 후자는 ‘엄격한 부모’의 프레임으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으로 본다면, 유권자들이 보수 성향의 후보들을 낙선시키고 진보 성향의 후보들에게 교육감 자리를 내어 준 것은 처벌과 보상, 권위와 통제, 경쟁 등의 가치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교육 시스템 대신 학생 자치와 학생 인권 보장, 낙오자 및 소수자에 대한 배려 등과 같은 탈권위적이고 수평적인 교육 시스템을 원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교육 시스템이 탈권위주의적인지 권위주의적인지에 따라 학교에서의 전반적인 삶이 결정되는 학생들 입장에서 어느 쪽을 더 만족스러워 할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는 변함없이 숨 막히고, 여전히 견고한 입시지옥 철옹성 그렇다면, ‘자상한 부모’ 이미지의 진보 교육감들은 지난 2년 동안 학생들에게 커다란 고통이 되어 왔던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교육 시스템을 청산하고 수평적인 교육현장
구글에서 만든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 9단 간의 바둑대결은 인공지능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을만한 사건이었다.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Deepmind)사의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는 “바둑은 경우의 수가 우주의 원자 수보다 많다”고 하였다. 따라서 알파고는 그 많은 경우의 수를 모두 계산하면서 바둑을 두는 것이 아니라, 게임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만을 간추린 후에 전체적인 대국 상황을 파악하면서 다음에 둘 수를 결정한다. 마치 인간이 ‘직관’을 통해 바둑을 두는 것과 같다. 이러한 알파고의 직관은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일까? 바로 인간이 만든 소프트웨어이다. 알파고가 갖고 있는 인공지능은 스스로 학습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이며, 그것은 인간의 코딩에 의해 만들어진다. 미래 사회는 인공지능과 같은 소프트웨어가 가치를 창출하는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가 될 것이다. 이미 소프트웨어는 우리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손에 항상 쥐어져 있는 스마트폰, 자동항법장치를 담고 있는 비행기나 자동차, 컴퓨터를 활용한 모든 작업들이 소프트웨어를 활용한다. 만약 이세돌 9단이 알파고의 도움을 받아 바둑을 둔다면, 바둑계에서 천
나는 내가 선생인 것이 행복하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선생 노릇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어휴, 더 늙고 힘 빠지기 전에 관둬야지’, ‘더 힘들어지기 전에 정리하는 게 좋겠어’라는 말들을 종종 듣게 된다. 아이들 때문에 힘들다는 건지, 여러 가지 교육적 변화 때문에 힘들다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학교생활이 힘들다는 것은 매 한 가지이다. “아이들 가르치는 게 뭐가 힘드냐?” 나 자신도 때로는 수업에 지치고, 일에 치여서 파김치가 될 때가 있다. 그런 푸념으로 ‘아휴, 힘들어’라고 하면 학교가 뭐가 힘드냐고 한다.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힘들다고 하면, “아이들 가르치는 게 뭐가 힘드냐?”라는 반문을 받게 된다. 교육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어찌 교과지식뿐이랴. 그런데 사회가 너무 경쟁 위주로 치우치다 보니 학교마저도 지식충전소인 양 되어 버렸다. 그래서 잘못 생각하면 선생을 지식전달자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학교는 단순히 지적 충전을 위한 공간만이 아니라 정의적 영역과 심동적 영역까지도 골고루 성장하도록 돕는 ‘사람됨’의 공간이다. 선생의 발걸음 하나라도 교육이 아닌 것이 없다. 그래서 교실
“잘 짜여진 교육시스템과 우수한 교사들이 참 부럽습니다. 우리 정부도 교사들의 자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하루속히 성과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주한 체코 토마스 후삭(Tomas Husak) 대사는 “한국에 근무하는 동안 눈부신 경제발전과 높은 교육수준이 가장 인상 깊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 학생들이 교사를 존경하고 지하철 등에서 어르신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청소년들을 보면서 ‘한국 교육의 힘이 참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덧붙였다. 체코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라는 것이다. 그는 체코 정부 내에서 대표적 지한파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지난 1990년 한국과 체코가 수교를 맺을 때 실무 역할을 하면서 한국을 처음 방문한 그는 이후 26년간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지난 2014년 주한 체코 대사로 부임해 2년째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어른 공경하고 교사 존경하는 한국 학생들 ‘인상적’ “한국은 참 놀라운 나라입니다. 유럽이 100년에 걸쳐 이룩한 경제발전을 한국은 불과 20여 년 만에 달성했어요. 그 밑바탕에 높은 교육열과 우수한 교사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또 한 번 놀랐습니다.” 후삭 대사는 “체코는 한국만큼
만약 말이 없었다면 영웅의 탄생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동서양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 유럽 지도의 대부분을 프랑스령으로 만들었던 나폴레옹, 동북아시아의 주도권을 장악했던 광개토대왕…. 이들은 말(馬)과 함께 전장을 누볐고, 인류 역사에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이처럼 말은 단순히 인간과 함께 살아온 ‘동물’의 차원을 넘어선, 수천 년 동안 ‘역사’를 함께 써내려간 사이이다. 그러나 ‘말’에 대한 우리나라의 관심은 아직까지 높지 않다. 말 사육 목장이 원당과 제주 단 두 곳에 불과하며, 말 관련 산업 분야 역시 선진국에 비해 취약하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도 된다. 국내 유일의 말 관리 인력 양성 마이스터고등학교인 한국경마축산고등학교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울음소리만 들어도 척척 … 말 도사 수두룩 한국경마축산고 학생들의 하루는 ‘마방’에서 시작해서 ‘마방’에서 끝난다. 새벽 6시 눈 뜨자마자 말들이 모여 있는 ‘마방’으로 달려가 말에게 사료를 주고 짚을 다시 깔아주며 건강 상태를 살피는 것도, 밤 9시 먹이를 주며 잠자리를 봐주는 것도 모두 학생들이다. 주말 및 방학을 포함하여 365일
올해로 영양교사 5년 차인 홍화진(서울 남대문중) 교사는 출근하자마자 새벽에 들어온 돼지고기와 김치부터 살폈다. 오늘은 야심 차게 개발한 특제 레시피를 선보이는 날. 지치기 쉬운 계절, 학생들의 입맛을 살려줄 ‘황해도 김치밥’을 점심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쌀과 김치, 고기를 한데 놓고 밥을 한 다음 양념간장에 쓱쓱 비벼 먹으면 별미 중 별미다. 한바탕 전쟁 같은 조리과정이 끝나면 학생들 급식시간. 오늘따라 잔반도 별로 없다. 맛있게 먹었다는 증표 같아 뿌듯하다. 교육청에서 보내온 공문들 몇 건 처리하고 한숨 돌리는가 싶었는데 일정표를 보니 영양상담이 잡혀있다. 보건교사와 사회복지사 등과 함께하는 건강 동아리활동이다. 돌도 씹어 먹을 나이라지만 군것질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 적정 칼로리 섭취를 주제로 잡아 교육을 했다. 몸매에 관심이 많은 또래여서인지 “그러다 살찐다”며 은근히 겁을 줬더니 먹혀든 눈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영양교사의 하루 영양교사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안전하고 맛있는 학교급식은 물론 학생들의 영양·식생활교육까지 그 중요하고 어려운 것을 해내는 급식실의 ‘태양의 후예’들이다. 일선 학교에 영양교사가 배치된 것은 지난 2007년
지난 4월 총선을 앞둔 어느 날, 모 일간지에 ‘선거권 연령 하향은 청소년 정치적 권리의 첫 단추’라는 기사가 떴다. ‘청소년 총선 대응 네트워크’라는 단체 대표가 “국회의원 선거는 18세, 지방선거는 16세까지 투표권을 달라”고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특정 정치적 성향을 가진 일간지 기사였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청소년단체들의 주장과 요구가 여과 없이 보도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청소년들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교복을 입고 거리에 나서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마치 정당이나 일부 시민단체와 같은 정치적 이익집단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느낌이다. 학교 담장 넘어 일상 정치 넘보는 청소년단체 최근 들어 자주 등장하는 청소년단체들의 주장과 그 흐름을 살펴보자. 지난 2010년 7월 서울 광화문에서 청소년인권운동을 표방한 A 단체 회원들이 일제고사 반대 집회를 열고 시험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주장했다. 또한 법원이 ‘19세 미만 청소년들이 당원으로 가입한 것은 부적합하다’고 결론 내리자 정치적 탄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정치적인 결사체에 속한 시민들처럼 행동하였다. 문제가 된 A 단체는 2004년 말 중·고생이 중심이 돼 만들어진 청소년인
최근 인성교육에 대한 특강을 한 후에 받은 질문입니다. “저는 고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데요, 요즘 많은 학생들이 친구들에게 욕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왕따도 시키는데 너무 가슴이 아파요. 친구들의 괴로움과 슬픔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을 변화시킬 방법이 있나요?” 저는 한참 머뭇거렸습니다. 제가 마땅히 해드릴 짧은 답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생의 경우에는 아직 누군가의 영향력을 듬뿍 받을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게 참 많습니다. 중학생의 경우에도 비록 반항하는 사춘기지만 새로운 틀을 짜는 시기인 만큼 개입할 여지가 여전히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사고의 틀이 상당히 형성된 고등학생을 위해서 쉽게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고슴도치 보살피다 고슴도치 돼 버린 현실 “미안해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저도 모르겠어요.” 한참 뜸 드린 후에 이런 맥 빠진 답을 하게 되어 정말로 미안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바쁜 시간을 쪼개서 어렵게 특강에 참석하실 때에는 신통한 해결책을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참석자 모두에게 미안했습니다. 물론 이론적인 답변은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행동은 있지만 문제아는 없다. 아이들은 어른이 하기 나름이다. 문
지난 1세기 동안 세계의 정치나 경제, 문화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한 명을 꼽기란 쉽지 않다. 각자 꼽을 수는 있겠으나 합의는 어렵다. 그러나 교육 분야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다. 바로 존 듀이(John Dewey)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 미국 북동부의 한적한 마을에서 태어나 20세기 중반까지 활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넘어 세계 교육에 영향을 미쳤고, 20세기를 넘어 21세기 교육까지 그의 영향은 지속되고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대의 교육자는 모두 존 듀이의 후예라고도 볼 수 있다. 현대 교육자는 모두 ‘존 듀이의 후예’ 존 듀이는 민주주의와 교육(Democracy and Education) 출판 이후 그의 교육철학을 전파하기 위해 세계 많은 지역을 여행하였다. 만 60세가 되던 해, 그러니까 당시 한반도에서 3·1운동이 벌어지기 직전인 1919년 2월 9일 그는 부인과 함께 일본 요코하마 항에 도착했다. 그의 방문 이전에 이미 그가 저술한 대부분의 서적은 일본어로 번역되어 일본의 교육계와 철학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던 일본 지식인들의 비판을 경험한 듀이는 당초 계획이었던 5개월 일정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을 둘러본 서방의 어느 언론인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길 바라는 것과 같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국민은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하여 국가 지도자들의 잘못된 국정 운영과 정치를 준엄하게 꾸짖는다. 대의 민주주의와 민주적 선거제도를 통해서 나라가 나아갈 바를 국민이 스스로 결정한다. 이뿐만 인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적개발원조(ODA)* 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는 ‘한국의 교육을 배우겠다’며 찾아오는 개발도상국의 교육자·연구자·공무원들이 많다. 그들은 최빈국 수준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의 반열에 오른 한국의 원동력은 바로 교육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교육은 문제투성이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 교육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부모들은 치솟는 사교육비에 살림살이가 어렵다고 호소하고, 수험생들은 매년 바뀌는 입시제도에 불만이 크다. 교사들은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하지만, 교사들의 교육적 책무성과 공교육의 붕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최근 들어 교육 당국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싸우는 모습을 보이고, 어느 유력한 정치인은 교육부를 없애야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