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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 고객님’이란 말, 불편하지 않으세요?

감정노동 다룬 영화 <불멸의 여자>, <더콜>, <카트>

항공기 승무원, 홍보도우미, 휴대폰 판매원, 아나운서, 콜센터 상담원. 이 직업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감정노동(感情勞動)이 심한 직업이라는 점이다. 학교현장에서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는 교사 역시 교육대상인 학생은 물론 학부모로부터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상황을 참작한다면, 이제 교사라는 직업도 감정노동자 직군에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감정노동이란 말투·표정·몸짓 등 드러나는 감정표현을 직무의 한 부분으로 연기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수반하는 노동을 말한다. 미국 버클리대 명예교수이자 여성 사회학자인 앨리 러셀 혹실드가 1983년에 낸 책 <통제된 마음(The Managed Heart)>에 이 용어가 등장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트렌드 지식사전 2013).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을 하는 사람들을 통칭해 감정노동자라고 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12년에 203개 직업에 종사하는 5,66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심각도 5점 만점에 승무원(4.7점), 홍보도우미(4.6점), 휴대폰 판매원(4.5점), 아나운서·리포터(4.46점), 콜센터 상담원(4.38점), 은행 창구직원(4.34점) 순으로 나타났다. 직업군별로는 음식서비스 관련직(4.13점), 영업 및 판매 관련직(4.10점) 미용·숙박·여행·오락·스포츠 관련직(4.04점), 사회복지 및 종교 관련직(4.02점) 순서를 보였다. 


주로 여성이, 연령별로는 30대 이하에서 감정노동에 대한 피로도가 높게 나타났으며, 학력별로는 고졸자와 전문대졸자의 비중이 컸다. 공공기관보다 민간기업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이 더 많았다. 통계에서 드러나듯 감정노동은 권력관계와 관련이 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돈과 권력인데, 이를 소유하지 못한 저학력자들이 상대적으로 ‘만만하게 봐도 되는 상대’가 되어 버린 것. 이번 호는 감정노동을 다룬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갑질 고객 대하는 화장품 판매원의 하루 <불멸의 여자> 
화장품 판매사원 ‘희경(이음)’과 ‘승아(이정경)’는 불쾌한 감정, 우울한 기운은 배제하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직원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이들의 구호는 ‘스마일, 스마일, 스마일!’과 ‘사랑합니다, 고객님!’ 화기애애한 어느 날, 화장품 반품 문의전화가 걸려온다. 눈가 주름방지용 화장품을 샀는데 오히려 주름이 더 늘었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고객 ‘정란(윤가현)’이다. 만족스럽지 못한 서비스에 매장을 찾아온 정란은 갑질을 통해 환불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웃어야 하는 판매원 희경과 승아는 정란의 끊임없는 접객 태도 지적에 지점장(안내상)의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정란은 진심을 담은 사과의 표현으로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라고 요구하는데…. 마트 개점 이래 최고의 진상손님 등장. 과연 희경과 승아는 계속되는 갑질에 끝까지 웃을 수 있을까?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말 뒤에 숨겨진 자본주의의 민낯을 고발하는 한 편의 영화가 극장가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4월 5일 개봉한 <불멸의 여자>(최종태 감독)는 화장품 매장에서 하루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을 담았다.


<불멸의 여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웃음’조차도 노동이 되어버린 현실을 고발한다. 환한 웃음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었지만, 서비스업계에서 웃음을 강요하다 보니 노동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것. 영화에서는 이런 점을 CCTV로 표현했다. 마치 조지 오웰의 <1984>처럼 감정노동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계속해서 감시하는 것처럼 보여준다. 갑질하는 정란은 카메라 앞에서 떳떳하다. 이 시스템 안에서는 희경과 승아가 자신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불멸의 여자>는 사랑·꿈·행복·웃음·친절이라는 가치를 상품화한 시스템, 자본주의의 구조문제를 날 선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끊임없는 서비스 착취로 노동자의 삶과 자본의 폭압적 구조를 스크린에 노출하는 <불멸의 여자>를 보다 보면, ‘자본주의는 혁명도 돈이 되면 이용한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상업화된 사회가 되면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진 순결성이 점점 희석되는 것. 


감정노동의 착취문제를 다루며 화제를 모았던 연극 <불멸의 여자>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는 연극 무대를 스크린으로 옮긴 ‘씨네마 인 씨어터(Cinema in Theater)’를 시도하며, 값싼 영상이 넘쳐나는 시대에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2022 웨일즈국제영화제(WIFF)에서 ‘베스트 극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봉준호 감독은 “극한의 감정노동을 직접 겪어보는 듯한, 숨 막히는 몰입감을 느꼈습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고밀도의 전개뿐 아니라, 연극무대라는 세팅을 5분 만에 잊게 만드는 예리한 카메라 워크와 편집·음악 등 풍성한 영화적 표현들 덕분에 하나의 ‘씨네마’로 남게 되는 작품 같아요”라고 극찬했다.

 

짜증나고 슬퍼도 웃어야만 하는 콜센터 직원들 <더콜> 
한국에 119가 있다면, 미국에는 911이 있다. 1일 26만 8천 건, 1초당 3건의 벨소리가 울리는 911센터에서 ‘조던(할리 베리)’은 실로 유능한 요원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어느 날, 조던이 한 소녀의 응급전화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대처했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소녀는 목숨을 잃고 만다. 죄책감에 빠져드는 조던. 6개월이 지나고 힘들게 복귀한 그녀에게 또 한 명의 소녀가 911 전화를 건다. 이번에는 더 위급하다. 전화가 끊기는 순간, 소녀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6개월 전 한 소녀의 목숨을 앗아간 그놈 목소리! 목숨을 건 단 한 번의 통화! 이번엔 끊겨도, 끊어도, 들켜서도 안 된다!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그리고 슬픔이 밀물처럼 밀려들어도 웃어야만 하는 직업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콜센터 직원일 것이다. 영화 <더콜>(감독 브래드 앤더슨, 2013)은 그런 면에서 콜센터 직원이 처한 현실을 스릴러 형식을 차용해 긴박감 넘치는 속도로 보여주는 수작이다.


부모님이 외출한 밤, 괴한이 집에 침입하자 911센터에 전화를 건 소녀. 이 전화를 받은 조던은 늘 그랬듯이 행동지침을 설명해준다. 그러다 갑자기 전화가 끊겼다. 다급한 상황에서 조던은 다시 소녀에게 전화를 건다. 하지만 이 전화로 벨소리가 울리며 소녀는 결국 살해당하고 만다. <더콜>이 갑질이라는 감정노동의 차원에서 한 층위 진화하는 지점이다. 하지만 ‘성장영화’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는 여느 할리우드 영화처럼 <더콜> 역시 조던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준다. 


911에는 1초당 3건의 신고전화가 접수되지만, “걸려오는 전화의 절반은 장난전화”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더콜>은 생사의 여부가 촌각을 다투는 콜센터의 급박한 현장을 충실히 재현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더콜> 속 조던이 일하는 911센터의 모습은 112로 대변되는 경찰의 모습과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치안 유지와 법 집행의 최일선에 선 공무원인 경찰관은 그 제복 자체로 법과 권위를 상징한다. 하지만 민원인과 범죄자, 그리고 112 허위신고로 휘둘리는 경찰관 역시 감정노동자라는 직업군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한국고용정보원에서 주요 직업 730개 중 ‘화나게 하거나 무례한 사람을 대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 직업’으로 경찰관은 텔레마케터와 함께 공동 1위로 꼽혔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으로 연대하는 감정노동자를 그린 <카트>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고객님!” “대한민국 대표 마트인 ‘더 마트’의 생명은 매출, 매출은 고객, 고객은 서비스!” 고객만족 서비스를 실천한다는 미명 아래 온갖 컴플레인과 잔소리에도 꿋꿋이 웃는 얼굴로 일하는 ‘더 마트’ 직원들. 어느 날, 회사로부터 갑작스럽게 일방적인 해고 통지를 받는다. 정규직 전환을 눈앞에 둔 선희(염정아)를 비롯, 싱글맘 혜미(문정희), 청소원 순례(김영애), 순박한 아줌마 옥순(황정민), 88만 원 세대 미진(천우희)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회사가 잘 되면 우리도 잘 될 줄 알고 온갖 수모에도 웃음으로 일했는데…. 노조의 ‘노’자도 모르고 살았던 그녀들이 용기를 내어 서로 힘을 합치고, 그렇게 그들의 뜨거운 싸움이 시작된다!


감정노동자들은 언제까지고 고객의 선함을 기대해야 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면 법적 구제를 알아봐야만 하는 걸까? 여기에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영화가 있다. 개봉한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감정노동자를 다룬 영화로는 아직도 언급되는 영화 <카트>(감독 부지영, 2014)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전술한 대로 ‘더 마트’의 비정규직들은 한순간에 해고당한다. 진상 고객들로 인한 ‘갑질 종합세트’를 견디면서 오로지 정규직 전환을 꿈꾸며 감정노동을 견뎌냈던 그들은 ‘두 아이의 엄마’, ‘싱글맘’, ‘청소밥 20년 인생’, ‘고딩 알바생’처럼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이어서 더욱 공감을 자아낸다. 특히 청소밥 20년 차 아줌마 역할을 맡은 고 김영애 배우는 스크린에 등장하는 순간마다 아우라를 발휘하며 영화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간다.


영화 <카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관객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온다. 2000년대 ‘까르푸’와 ‘홈에버’의 노조파업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 감정노동이라는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수년간 성실히 일해 온 직원들을 한순간에 부당하게 해고하는 상황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점이 피부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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