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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지구 반대편에서 떠오른 이베리아 반도의 기억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을 계획했다. 이베리아반도로 떠나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 우선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은 20대 힘든 시절 나에게 등대와도 같았던 파올로 코엘류의 소설 <연금술사>의 배경이 되는 곳이고, 여행을 주제로 한 이한철의 앨범 <순간의 기록>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 ‘세비야(Seville)’이며, 마흔이 되기 전에 계획 중인 유라시아 도보횡단의 종착점이 포르투갈 리스본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2018년 여름, 이베리아반도로 떠났다.

 

까탈루니아의 심장,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북동부에 위치한 까탈루니아의 주도이다. 북쪽으로는 피레네산맥, 동쪽으로는 지중해와 맞닿은 까탈루니아는 오랜 기간 스페인으로부터 자치권을 갖고 있었다. 특히 까탈루니아는 스페인 국내 총생산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부유할 뿐 아니라 문화·언어·역사가 남다르다는 것에 자긍심이 뛰어나다. 이러한 이유로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독립운동을 하려는 요구가 많다. 특히 스페인 마드리드 정부와는 앙숙관계인데, 프랑코 정권의 지원을 많이 받았던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 간의 축구 라이벌전, ‘엘 클라시코’가 그 증거이다. 


까탈루니아의 심장이 바르셀로나라면, 바르셀로나의 상징은 FC 바르셀로나의 홈구장 ‘캄프 누(Camp Nou)’이다. 8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캄프 누에서 경기를 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7월은 프리메라리그 개막 전이라서 경기장 투어만 가능했다. 하지만 실제 선수들이 사용하는 라커룸과 프레스센터, 그리고 푸른 잔디의 그라운드를 실제로 보는 것만으로도 인상 깊었다.

 


가우디는 바르셀로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축가이다. 가우디가 디자인한 건물·공원·성당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지만, 풍부한 해설을 들어보기 위해 ‘가우디 투어’를 신청했다.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 집’을 연상하는 까사 비요뜨, 부드러운 곡선을 강조한 까사밀라, 바르셀로나의 부호 구엘의 지원으로 만든 ‘구엘 공원’…. 가우디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모더니즘의 직선보다는 부드러운 곡선을 강조한 것이 눈에 띈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단연 성가족 대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도착한 가이드는 ‘아직 뒤를 돌아보지 말라’며 우리에게 극적이면서 웅장한 음악을 틀어주었다. 음악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에 맞춰 우리는 고개를 돌렸고, 거대하고 치명적인 아름다움이 ‘전율’로 다가왔다. 특히 촛농이 흘러내리는 듯 물결치는 성당 전면은 불규칙스러움 속에 숨어있는 질서가 탁월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아직 미완성이다. 성당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가우디의 뒤를 이어, 후대 예술가들이 건축을 지속하고 있다. 

 

이슬람의 향기가 묻어나는 그라나다
바르셀로나에서 비행기를 타고 그라나다로 향했다. 그라나다는 스페인이 이슬람의 지배를 받던 때, 중심이 되었던 도시로 알람브라 궁전이 유명하며, 이슬람 분위기가 물씬 나는 좁은 골목의 알바이신 지구가 인상적이다. 


그라나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건조한 사막의 공기가 호흡을 타고 들어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라나다 숙소에 들어가니, 레드와인에 과일을 넣어서 달콤하게 숙성시킨 샹그리아를 병째로 내 입을 향해 따라주는 ‘웰컴 드링크’ 이벤트를 제공했다. 샹그리아가 담긴 유리병에서 나오는 술 줄기가 기다랗게 이어질수록 숙소 직원들과 나머지 여행자들은 박수를 쳤다. 새로 도착한 여행객들을 위한 샹그리아 환영식이 끝난 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여행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께’ 알바이신 투어를 가자고 제안했다.

 

 

스페인어와 영어를 넘나들면서 알바이신 지구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녔던 이번 투어는 상품화된 가이드 프로그램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여행자들은 서로 자유자재로 질문을 했고, 가이드뿐만 아니라 여행자들끼리 서로 질문에 답하면서 자유롭게 거리를 걷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투어, 그 자체였다. 알바이신 지구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의 허름한 히피 스타일 카페에서 짜이 한잔을 하고, 한때 이슬람 군대가 지배했었던 건조한 도시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여행자들도 자연스럽게 우리 옆으로 모여 함께 이야기 나누었고, 같이 셀피를 찍으며 가이드 투어를 마무리했다.

 

세비야에서 남긴 순간의 기록
그라나다에서 세비야까지는 버스로 이동했다. 도시를 벗어나자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거의 모든 풍경은 ‘올리브밭’이다. ‘지중해성 기후지역에서 올리브가 재배된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르며, ‘정말 스페인이 올리브의 나라’라는 것이 실감되었다. 


세비야를 꼭 가봐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순전히 ‘노래’ 때문이었다. 대학시절 즐겨 들었던 이한철의 <순간의 기록>이라는 앨범 중 ‘세비야’라는 노래를 가장 좋아했다. 세비야 여행 중, 낯선 아침에 골목과 가게를 지나다가 문득 지구 반대편에 있는 네가 떠올라 마음이 아련해지고, 그래서 지구 반대편 먼 곳에서 고마웠던 일들, 미안했던 일들이 떠오른다는 ‘평범하지만 소박한’ 가사와 멜로디가 마치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작은 골목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중에 꼭 세비야에 가서, 이 노래를 들으며, 거리를 걷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순간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트램의 도시, 리스본
리스본에 도착하자마자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갔다. 광장에 들어서자 많은 여행객과 상인들, 그리고 대서양의 따사로운 바람이 나를 맞이한다. 코메르시우는 상업을 뜻하는데, 과거에 테주강 연안부두를 통해 무역을 하던 상인들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리스본에서는 ‘트램’을 빼놓을 수 없다. 주황색 트램이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는 리스본 곳곳을 누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트램을 타고, 목적지도 없이 창밖 리스본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러다가 리스본의 야경이 잘 보일 것 같은 곳에서 내렸다. 상 조르제 성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카페에 앉아서 맥주 한잔과 감자튀김을 시켜놓고 노을이 지면서 서서히 바뀌는 하늘빛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곳에서 즐겁게 사진을 찍으며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리스본에서도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는데, 특이하게도 먼저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투어가 끝난 후 ‘만족한 만큼’ 돈을 내는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가이드 안토니오는 10개 국어에 능통했고, 역사와 철학을 전공한 덕분에 풍부한 해설을 곁들여 줬다. 또한 엄청난 애주가였던 그는 리스본 투어가 끝난 후, 광장 카페테리아에 앉아서 함께 맥주·위스키·와인을 마시며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애 이야기, 결혼 이야기, 그리고 인생 이야기들…. 


사실 여행이란 게 반드시 유명한 장소에 들러 유명한 것들을 보는 것만은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지인들을 만나고, 그들이 놀고 쉬는 곳에서 현지인들처럼 지내는 것이 진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날 밤, 리스본의 척척박사 안토니오와 페루·프랑스·네덜란드·아르헨티나 그리고 한국에서 온 나, 이렇게 여섯 명은 국적·나이·직업은 모두 달랐지만, 서로의 여행을 이야기하며 또 각자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짜 여행’을 했다.

 

Yes! 포르투
리스본에서 급행열차를 타고 포르투로 이동했다. 상 벤투역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처럼 느껴졌다. 역의 하얗고 커다란 벽면에 파란색으로 그려 넣은 청쾌한 아쥴레쥬 벽화가 인상적이었던 상 벤투역을 빠져나오자, 아기자기하면서도 동화같이 아름다운 도시의 광경에 넋이 나갔다. 역에서 숙소까지 이어지는 길은 온통 아름다운 예술작품 같았다. 왜 사람들이 포르투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포르투는 자그마한 도시이지만 골목마다 리스본과는 다른 포르투만의 색깔이 있었다.

 


포르투는 도시 자체가 그다지 크지 않아서 웬만한 곳은 거의 다 걸어갈 수 있다. 숙소에서 걸어서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해리포터>의 작가 J.K. 롤링이 영감을 받았다는 렐루 서점이 있고, 그 반대편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루이스 다리가 나온다. 구스타브 에펠의 제자 테오필레 세리그가 건축해서인지 에펠탑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루이스 다리를 건너면 모로 가든(Morro Garden)이 나온다. 벤치에 비스듬히 누워 대서양의 노을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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