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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비교하라! 비교 말라!

잘 알려진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이야기 내용에 대해서 내 나름의 해석을 해 보고자 함이다. ‘비교한다는 것’과 관련해서 새로운 통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덕이 높으신 고승(高僧)이 제자 스님들과 문답을 나누며 법문(法問)을 하는 중이었다. 스님이 제자들에게 문제 하나를 내셨다. 스님은 자신의 지팡이를 땅에 놓고 가리키며 말했다.

“이 막대기를 톱이나, 도끼나, 칼이나, 손을 대지 말고, 짧게 만들어 보아라.”

 

제자들은 석 달 이상 머리를 동여매고 궁리를 했지만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해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한 제자 스님이 앞으로 나가 고승에게 삼배를 올리고, “제가 해 보겠습니다” 하고 말한다. 모인 사람들이 시선을 집중하였다. 그 제자 스님은 앞으로 나가더니, 긴 막대기를 가져가다 그 지팡이 옆에 놓았다. 고승(高僧)은 빙그레 웃으시며 만족해하셨다.


달걀 세우기 시합에서, 달걀 하단을 살짝 깨트려서, 달걀을 세웠다는 콜럼버스 이야기만큼이나 맥 빠지는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제2장의 ‘장단상교(長短相較)’ 구절이 이 이야기 해석의 근거로 따라붙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그 대목 도덕경의 내용은 이러하다.


有無相生 [있음이 없음을 낳고, 없음이 있음을 낳는다. 유무는 서로 상생한다.]
難易相成 [어려움이 쉬움을 만들고, 쉬움이 어려움을 만든다. 난이는 서로 상성한다.]
長短相較 [긴 것이 짧은 것을 견주고, 짧은 것이 긴 것을 견준다. 장단은 서로 상교한다.]


장단상교(長短相較), 글자 그대로는 ‘긴 것’과 ‘짧은 것’은 서로 견준다. 이런 뜻이다. ‘長短相較’가 ‘長短相形(장단상형)’으로 된 버전도 있다. 이것까지 참조하면 “길고 짧은 것은, 견주어 봄으로써 그 모양(장단)의 본질이 드러난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럴 법하다. 그냥. 길고 짧음은 대어 보아야 안다. 이렇게만 받아들이면, 알려면 체험적 노력을 하라는 데서 이해가 끝난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이 장단상교(長短相較)에는 인지의 기본법칙이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길다’는 절대 의미로 존재하지 않는다. ‘짧다’가 같이 있으므로, ‘짧다’에 견주어서 ‘길다’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짧다’ 역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길다’를 제대로 인지하기 위해서는 ‘짧다’가 반드시 있어서, 서로 견주어 주어야(비교해 보아야) 한다. 이게 어디 ‘길다’와 ‘짧다’ 사이에만 있는 일이겠는가. 세상의 모든 실체와 개념들이 비록 그 자체로는 홀로 ‘절대적 지식’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만은 않다. 다른 상관적 실체나 개념들과 비교됨으로써 비로소 사람들이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한 제자 스님도 ‘인간의 인지’를 주목했다. 사람들이 짧다고 인지하면 짧은 것이 되는 이치를 택한 것이다(실제로 우리의 앎이 그러하다). 그리고 짧다는 것은 상대적 개념임에 주목했다. 고승의 지팡이를 짧게 인지하게 할 만한 다른 상관물(더 긴 지팡이)을 가져와서, 원래의 지팡이를 짧은 지팡이로 보이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길다’나 ‘짧다’를 확실하게 아는 어떤 절대적인 앎이 되려면, 그것과 상관되는 것들을 상대적으로 인지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다.


스피드 퀴즈에서 단어를 잘 설명하여 빨리 알아맞히게 하자면 어떤 전략이 좋겠는가. 예컨대 스피드 퀴즈에서 ‘흥부’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이를 어떻게 설명하면 빠르고 효율적이겠는가. ‘흥부’를 사전식으로 정면으로 설명하면, 시간도 길어지고 내용도 어렵게 된다. 재치 있는 사람이라면 흥부를 “놀부의 동생!”하고서 설명할 것이다. 흥부를 놀부와 짝을 지어 비교하도록 함으로써 흥부를 빠르게 인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학습의 모든 과정에서 학생들에게는 ‘비교하기’의 과업이 진행된다. 이를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물론 큰 의미에서 ‘비교하기’는 단순히 두 사물의 유사점이나 공통점을 찾는 협의의 인지 프로세스를 넘어선다. 학생들이 알려고 하는 내용과 상관되는 모든 맥락의 지식과 경험이 모두 비교하기의 작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비교하기라는 인지 과정 없이 공부하기란 어렵다. 이처럼 ‘비교하기’는 의미있는 인지 전략이요, 학습 전략이요, 교수 전략이 되는 것이다.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해 보면 비교하기는 우리의 머릿속에서 앎의 구성을 질서 있게 만드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배우고 생각하는 과정에서는 열심히 ‘비교하기 사고’를 할 일이다. 잘 모르던 세계를 알게 하는 데에는 비교하기의 사고가 매우 유효하다. 비교하기 사고는 판단력을 키우는 지름길이다. 나를 ‘사회적 자아’로 또는 ‘도덕적 자아’로 일깨우는 유익한 깨달음은 대부분 남에게 나를 견주어 보는 데서 생겨난다. 이를 구체적으로 아주 실감 나게 써 놓은 이야기가 바로 성장소설(Bildungs Roman) 아니겠는가. 이런 소설에는 나를 정신적으로 성장시키는 데에는 ‘나’와 늘 비교되는 그 어떤 존재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심리학자 비고츠키(Vygotsky)는 아동의 인지발달이 혼자의 고립된 인지 노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누군가 어떤 비교의 위상을 가지고,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를 ‘근접발달영역(Zone of Proximal Development)’이라고 했다. 이처럼 누군가와의 ‘사회적 구성’이 중요함을 강조한 데서도 ‘비교하기의교육적 작용이 잘 드러난다. 즉, 나의 인지 발달과 매우 가까운 지점에서 나의 발달을 돕는 존재, 그와 나 사이에 이루어지는 비교의 영향이 작동함으로써 나의 인지가 발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비교하기가 지니는 교육적 미덕은 상당하다. 여기까지가 ‘비교하기’가 지닌 얼굴의 한쪽 면이다.

 

비교하기가 순기능만 있을까. 그렇지 않다. 내 이익과 내 욕망에 따라 편을 가를 때 우리는 누군가를 열심히 비교한다. 상대를 내칠 때에도 비교하기를 통하여 그를 망가뜨린다. 이것이 문제를 일으킨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일에는 ‘비교의 타산(打算)’을 말아야 한다. 이익과 손해를 따져가며 사람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사람이나 물건이나 다를 바없게 된다. 내 이익과 관련하여 누구는 낫다, 누구는 못하다, 이렇게 사람을 비교하면, 사람과 사람으로서의 순정한 관계는 설 자리가 없다. 그런 인간관계는 파탄을 면할 수 없다.


남의 장단점을 끄집어내어 비교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 사람을 동시에 망가뜨린다. 첫째는 자기 자신이 먼저 파괴된다. 남을 품평하듯 비교하는 동안, 자신의 품성이 걷잡을 수 없이 교만해진다.겉은 멀쩡할지 몰라도 그의 속사람은 비루해지고, 강퍅해지고, 천박해진다. 사람들은 그를 멀리하고 경계하게 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자신만이 그걸 모른다.


둘째, 그에게서 비교를 당한 사람들을 망가뜨린다. 비교 대상이 되었음을 알면서 마음에 원망을 품기 때문이다. 멀쩡한 사람을 누구와 나쁘게 비교하여 흠을 내었으니, 마음에 분노와 복수의 감정이 들끓게 될 것이다. 원망과 복수의 감정이란 품고 있을수록 사람을 망가뜨린다.


셋째는 제삼자로서 이런 비교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을 망가뜨린다. 남을 비교하여 평판하는 데에 귀를 내놓고 있으면, 사람에 대한 부정적 편견에 빠지고, 자기도 모르게 사람을 비교의 대상으로만 본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인간 관계가 나빠 그의 인생이 불행해지면서도, 그 원인이 사람 비교하기 습성에서 오는 것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개 여기에 속한다. 소비 욕망을 추구하다 보면 끊임없이 욕망을 비교하고 있는 자기를 볼 것이다. 비교의 결과로 불평과 불만에 갇히는 것은 딱하고 어리석다. 이런 잠언을 떠올린다. “불행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기술(skill)은 ‘비교’이다. 행복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기술(skill)은 ‘관계’이다.”


요컨대 ‘비교하기’는 인지와 학습의 발달에 매우 중요하다. 동시에 ‘비교하기’는 인간관계발달에서는 섣불리 끌어들이지 않아야 한다. ‘배우는 일’과 ‘관계 맺는 일’이 사람 사는 일의 전부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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