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해 봄날, 경로잔치 겸 학예회를 하던 때였다. 프로그램은 노래와 춤, 효행 편지 낭독, 연극, 악기 연주 등 다양했다.
나는 저학년 학생들을 남녀 짝을 지어 꼭두각시 공연연습을 시켰다. 학생들은 뽑혔다는 자부심에 귀엽게 잘도 따라했다. 음악에 맞추어 고갯짓, 발짓, 너무너무 귀여웠다.
한복 준비도 잘 됐고 순서도 잘 익혔다. 발표 당일엔 예쁘게 화장하고 오라고 하면서도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다른 애들은 다 하고 와도 아마 명수는 맨얼굴로 오겠지?'
명수는 귀엽고 똑똑하고 나무랄 데 없는 남자 아이였지만, 명수 어머니는 화장을 하고 학교 오는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나가 있어서 명수 어머니가 학교에 드나드는 걸 몇 년 동안 목격했지만 언제나 학생 같은 단발머리에 주근깨 가득한 얼굴밖에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내심 명수에게 화장을 해주려고 몇 가지를 준비한 터였다. 그러나 발표 당일, 나는 기절초풍을 하고 말았다.
다른 애들은 성의 없게 화장을 하고 왔는데, 명수만은 온갖 색조 화장까지 다하고 립스틱이 지워질까봐 입술을 벌린 채 쉬잇, 쉬잇 하고 침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그란 눈이 더욱 커보이고 빨간 입술을 장난감 같이 벌리고 있으니 놀랍기도 하고 웃음도 나왔다.
물론 명수 어머니의 얼굴은 여전히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이었다. 후로도 학교에서 하라는 것은 빼놓지 않고 다하고, 농사짓느라 바쁜 와중에도 사회책에 나오는 어디어디를 다녀오라는 숙제를 내면 주말에 그곳에 꼭 갔다 오는 명수 어머니를 보면서 감탄할 뿐이었다.
쇼핑하러, 혹은 무엇을 먹으러 먼 곳까지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언제나 자녀 교육에 시간을 투자하고 힘을 쏟는 명수 어머니가 더욱 생각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