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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친구처럼 반가운 청미래덩굴

김민철의 야생화 이야기

늦가을부터 겨울에 산에 오르다 보면 유난히 붉은 열매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청미래덩굴, 찔레꽃 열매를 비롯해 팥배나무, 백당나무 열매 등이 모두 빨간색이다. 이들 열매들이 붉은 것은 사람들 보기 좋으라는 것이 아니라 새들의 눈길을 끌려는 목적이다. 새들이 이 열매를 먹으면 과육은 소화가 되지만 씨는 배설하게 되는데 이런 방식으로 나무 들이 씨를 멀리 퍼트리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청미래덩굴 열매는 전국 어느 산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혹시 이름을 몰랐더라도 지름 1㎝ 정도 크기로 동그랗고 반들반들한 빨간 열매 사진을 보면 많이 본 열매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제주 4·3사건을 다룬 현기영의 중편소설 ‘순이삼촌’에는 이 청미래덩굴이 나온다.



소설을 읽기 전엔 순이삼촌이 당연히 남자인 줄 알았다. 책을 읽어보니 순이삼촌은 화자의 먼 친척인 아주머니였다. 제주도에서는 아저씨, 아주머니를 구분하지 않고, 촌수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 어른을 흔히 ‘삼촌’이라 부른다고 한다.


순이삼촌은 4·3사건의 연장선상에서 마을에 학살이 있을 때 가까스로 살아남은 인물이었다. 소설엔 당시 참상이 충격적일 정도로 자세히 나와 있다. 중산간 마을 주민들은 ‘밤에는 부락 출신 공비들이 나타나 입산하지 않은 자는 반동이라고 대창으로 찔러 죽이고, 낮에는 함덕리의 순경들이 스리쿼터를 타고와 도피자 검속을 하니’ 낮이나 밤이나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고, 할 수 없이 한라산 굴속으로 숨기도 했다. 행방을 모르는 남편 때문에 모진 고문을 당했던 순이삼촌도 따라 올라갔다.


솥도 져나르고 이불도 가져갔다. 밥을 지을 때 연기가 나면 발각될까 봐 연기 안 나는 청미래덩굴로 불을 땠다. 청미래덩굴은 비에도 젖지 않아 땔감으로는 십상이었다. 잠은 밥 짓고 난 잉걸불 위에 굵은 나무때기를 얼기설기 얹어 침상처럼 만들고 그 위에서 잤다.


하필 순이삼촌이 오누이 자식을 데려가기 위해 산에서 내려온 날, 군인들이 갑자기 마을 사람들을 국민학교에 모이라고 했다. 군경 가족만 제외한 다음, 50~60명씩 옴팡밭으로 몰고가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순이삼촌은 이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당시 충격 때문에 신경쇠약 증세를 안고 살다 결국 자살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