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썽 많던 2004학년도 수능시험도 끝나고 정시모집 전형만을 남겨 놓고 있다. 금년 11월에 있을 2005학년도 수능시험은 7차 교육과정에 따라 치러지는 최초 시험이라 예비 고3들은 벌써부터 초긴장을 하고 있고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한 사교육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을 정도니 과연 사교육 공화국이라 하겠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평준화로 학생 수준에 맞는 교육이 어려워졌고, 또한 수능시험과 학교 교육과의 괴리가 커진데 있다. 이는 고교 교실이 상당한 정도로 붕괴되어 있고 수능시험에서 재수생의 강세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 웅변해 주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재수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많아졌고, 이로 인해 웬만큼 이름 있는 학원들은 입학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대학 입시를 앞 둔 예비 고3, 고2 학생들까지 사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도 교육당국은 아직까지도 속시원한 해결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니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의지가 정말 있는지 의심스럽다.
현행 수능시험과 내신점수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수능시험과 고교 교육과의 괴리 현상이다. 수능시험은 통합적 내용과 높은 사고력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고교 교육은 단편적 내용과 기본 사고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괴리 때문에 '내신 성적은 학교 교육이', '수능시험은 사교육이'라는 역할 분담이 공식화되고 있다. 서열화에 집착한 고난도의 수능시험 방식이 고교 교육과의 괴리로 공교육을 붕괴시키고 사교육을 활성화시키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수능시험은 많은 학생들이 학교 교육만으로도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학교 교육과 괴리를 빚는 현행의 수능시험은 과외를 받을 필요가 없는 중하위권의 학생들조차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고 있으니 웃지 못할 현실이다.
둘째, 고교에서 내신 성적을 불합리하게 산출하는 문제이다. 대부분의 고교에서는 자기 학교의 학생들을 대학 입시에서 유리하게 하기 위하여 내신을 부풀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거꾸로 서울 강남 소재의 B고교는 50% 상당의 문과 계열 학생들에게 국어, 영어, 수학 교과의 성적을 평어로
'가'를 주고 있다. '부풀리기' 내신이든 '깎아내기' 내신이든 이러한 내신 방식은 학교 교육의 권위와 내신 점수의 신뢰도를 현저히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그대로 방치해 두고서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은 난센스이다.
셋째, 대학에서 불합리한 내신 성적을 입시 점수로 반영하는 문제이다. 각 대학은 고교의 석차 백분율, 또는 평어를 스스로 정한 기준에 따라 점수로 환산하여 입시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고교에서 임의로 부여하는 내신 점수를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석차백분율은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평어는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자료이다.
몇 점 차이로 합격, 불합격이 결정되는 대학 입시에서 불합리한 내신 성적을 전형 자료로 활용한다는 사실은 결과적으로 입시 그 자체가 공정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현행 수능시험 방식과 내신 성적 산정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수능시험을 자격시험으로 하고 대학별 본 고사를 다양한 형태로 실시해야 한다.
고교 교육에 상응하는 평가를 통해 공교육의 붕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수능시험과 학교 교육과의 괴리를 최소화해야 한다. 학교 교육만으로도 수능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내신 성적의 산출과 적용을 합리적으로 해야 한다. 고교는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내신 점수를 산출하고, 대학은 신뢰성이 있는 내신을 입시 자료로 활용할 때 학교 교육이 정상화되고 입시도 공정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