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마다 봄·가을로 치르는 운동회이지만 그 열기는 점점 식어가고 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운동회는 학구내의 경사였다. 울긋불긋 차려입은 학부모들과 졸업생들, 푸짐한 점심 준비, 만국기, 경쾌한 행진곡 등 모두가 한번씩은 트랙을 달리며 기쁨을 맛보곤 했다.
볼거리도 많았다. 농악, 곤봉, 부채춤, 현대무용, 짝체조, 기마전, 차전놀이 프로그램 진행 중에는 감탄사와 박수소리,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어우러졌었다. 매스게임은 작품도 대작이려니와 집단의 협동 질서가 잡혀야만 하는 프로그램들이다.
시골에도 학생수가 많아서 청·백으로 나뉘어 단체경기를 했다. 교사들은 새로운 단체경기를 짜내느라 고심하였고 한 송이 국화꽃인양 예술작품으로 화려하게 운동장을 수놓았다. 또한 고전무용을 하려면 한복을 입어야 했으니 추석빔이 저절로 되었다. 모두가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래서 그 시절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곤봉 다루기도 물구나무서기도 풍물 리듬도 잘 탄다.
그러나 지금은 어렵고 위험한 경기는 아예 손대려고도 하지 않는다.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도 많지만 곤봉체조는 위험해서 하지 않고, 꾸미기 체조 역시 위험해서 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대부분의 시골에는 학생수가 적어서 같은 학년끼리의 단체경기가 불가능해 졌다.
학부모와 어우러져 단체 경기를 해보기도 했으나 부모님이 안 오신 학생들의 소외감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학부모 부담을 주지 않고 운영을 하자니 학생수가 적은 시골학교는 전교생이 조를 짜서 조별 대항을 하게 된다.
20∼30년 전의 교사들은 엄격하면서도 부드럽게 학생들을 다루어 씩씩한 남자 경기의 진수를 보여 주었고, 여교사들은 아름다운 음악에 온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었다. 긴 연습시간과 인내와 끈기의 시간을 보내고 난 학생들은 부쩍 커보였고 믿음직해 보였었다.
문화가 발달할수록 어렵고 힘든 것을 기피하는 풍조가 학교에까지 파고들어 마냥 서글프다. 그래도 역사는 거스를 수 없는 것. 굳세게 연습하지 않아도 되는 프로그램들로 바꾸어 가고 있다. 제기차기, 꼬리잡기, 투호, 후프, 줄넘기 등 준비물만 있으면 가능한 경기들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기를 바라면서 또 한번의 운동회를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