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생화 전시회를 준비하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다가 '야생화와 장승의 만남'이 우리들의 정서에 맞아떨어지는 듯한 생각이 들어서 장승을 찾아 나서기에 이르렀다.
마침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께서 목공예 체험학습에 온 식구들이 참가하여 장승을 깎아 놓은 것이 있다고 했다. 그것을 학교 야생화의 뜰에 세워보기로 하고 두개의 장승을 옮겼다.
그런데 세워 놓고 보니 두 장승 사이가 너무 허전해 '어떻게 하면 아담한 교정이 될까' 고민하게 됐다. 동산을 만들까, 돌무덤 성황당을 만들까, 화단을 만들까. 뾰족한 묘안 없이 하루 하루를 보내는 사이에 전시회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여물통이 등장하여 야생화 뜰이 조화롭게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갑작스런 광경에 벌어진 입을 도저히 다물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것은 우리 학교 L교사가 해놓은 일이었다.
사연인즉, 내가 두개의 장승을 세워 놓고 이런 저런 구상을 하고 있었으나 진척이 없는 것을 본 L교사가 본인의 집에서 애지중지하는 야생화가 담긴 여물통을 두 장승 사이에 가져다 놓으면 분위기가 살아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L교사는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다른 시까지 60여km를 통근하는 남편이 밤 11시에 야간 대학원 출석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남편과 함께 학교에 여물통을 옮겨다 놓았다는 것이 아닌가.
모든 사물이 고요히 잠든 깊은 한밤중에 두 부부가 끙끙대며 그 무거운 야생화 여물통을 학교에 싣고 와서 두개의 장승사이에 가지런히 놓고 뒷정리를 하고 돌아갔을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함은 물론 콧등이 찡하도록 진한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L교사를 보며 아직도 우리의 교육 현장에는 무너지지 않는 사랑의 버팀목이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곳곳에서 공교육 무너지는 터무니없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렇게 남모르게 헌신하는 교육혼이야말로 허물어져 가는 우리 교육 현장에 신선한 청량제가 되지 아닐까.